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유명 인물들을 정리한 항목입니다. 본 항목은 기수별로 정리되었습니다.
1. 1기2. 2기3. 3기4. 4기5. 5기6. 6기7. 7기8. 8기9. 9기10. 10기 (생도1기)
10.1. 생도2기
11. 11기12. 12기13. 13기14. 14기15. 15기16. 16기17. 17기18. 18기19. 19기20. 20기21. 21기22. 22기23. 23기24. 24기25. 25기26. 26기27. 27기28. 28기29. 29기30. 30기31. 31기32. 32기33. 33기34. 34기35. 35기36. 36기37. 37기38. 38기39. 39기40. 40기41. 41기42. 42기43. 43기44. 44기45. 45기46. 46기47. 47기48. 48기49. 49기50. 50기51. 51기52. 52기53. 53기54. 54기55. 55기56. 56기57. 57기58. 58기59. 59기60. 60기61. 61기62. 62기63. 63기64. 64기65. 65기66. 66기67. 67기68. 68기69. 69기70. 70기71. 71기72. 72기73. 73기74. 74기75. 75기76. 76기77. 77기78. 78기79. 79기80. 80기81. 81기82. 역대 대통령상, 대표화랑상 수상자83. 관련문서1. 1기
2. 2기
입교일: 1946년 9월 24일
입교 인원: 263명
교육기간: 3개월
임관일: 1946년 12월 14일
임관인원: 196명
입교 인원: 263명
교육기간: 3개월
임관일: 1946년 12월 14일
임관인원: 196명
3. 3기
입교일 : 1947년 1월 13일
입교 인원 : 338명
교육기간 : 3개월
임관일 : 1947년 4월 19일
임관인원 : 296명
입교 인원 : 338명
교육기간 : 3개월
임관일 : 1947년 4월 19일
임관인원 : 296명
4. 4기
입교일 : 1947년 5월 16일
입교 인원 : 120명
교육기간 : 4개월
임관일 : 1947년 9월 10일
임관인원 : 107명
입교 인원 : 120명
교육기간 : 4개월
임관일 : 1947년 9월 10일
임관인원 : 107명
5. 5기
입교일 : 1947년 10월 23일
입교 인원 : 400명
교육기간 : 6개월
임관일 : 1948년 4월 6일
임관인원 : 380명
입교 인원 : 400명
교육기간 : 6개월
임관일 : 1948년 4월 6일
임관인원 : 380명
6. 6기
입교일 : 1948년 5월 5일
입교 인원 : 227명
교육기간 : 3개월
임관일 : 1948년 7월 28일
임관인원 : 235명
입교 인원 : 227명
교육기간 : 3개월
임관일 : 1948년 7월 28일
임관인원 : 235명
7. 7기
입교일
| 입교인원
| 임관일
| 임관인원
| |
정기
| 1948년 8월 9일
| 602명
| 1948년 11월 11일
| 561명
|
특별
| 1948년 8월 17일~9월 13일
| 246명
| 1948년 10월 12일
| 190명
|
후기
| 1948년 11월 22일
| 350명
| 1948년 12월 21일
| 345명
|
- 권영길 : 중앙정보부 감찰실장. 육군첩보부대(HID)장. 2011년 별세.
- 김관오 : 독립유공자.
- 김국주(군인) : 독립유공자. 예비역 소장
- 박영수 : 예비역 대령. 치안국장, 내무부 차관, 서울특별시장.
- 이대용 : 주월공사.
- 장흥(독립운동가) : 독립유공자
- 이한범 : 예비역 소장. 2019년 별세. 향년 96세.
- 최영구 : 예비역 중장. 2014년 별세. 향년 89세.
- 태윤기 : 독립유공자. 예비역 대령.
8. 8기
입교일
| 입교인원
| 임관일
| 임관인원
| |
정기
| 1948년 12월 7일
| 948명
| 1949년 5월 23일
| 1263명
|
1949년 1월 27일
| 37명
| |||
1949년 3월 19일
| 315명
| |||
특별1
| 1948년 12월 7일
| 11명
| 1949년 1월 1일
| 11명
|
특별2
| 160명
| 1949년 1월 14일
| 145명
| |
특별3
| 190명
| 1949년 3월 2일
| 181명
| |
특별4
| 1949년 2월 21일 ~ 3월 5일
| 250명
| 1949년 3월 29일
| 148명
|
1949년 4월 27일
| 99명
|
- 강창성 前 기무사령관
- 권준(독립운동가) : 독립유공자
- 김영일 : 독립유공자
- 박영준(1915) : 독립유공자
- 이재전 : 전 청와대 경호차장
- 이준식(군인) : 독립유공자
- 이희성 : 육군참모총장을 역임
- 전재덕 : 전 롯데알미늄 대표이사 사장.
- 전성호 : 독립유공자
- 장호강 : 독립유공자
- 전성각 : 수도경비사령관, 3군단장 역임.
9. 9기
입교일 : 1949년 7월 15일 ~ 10월 25일
입교 인원 : 647명
임관일 : 1950년 1월 14일
임관인원 : 580명
입교 인원 : 647명
임관일 : 1950년 1월 14일
임관인원 : 580명
- 강상욱 : 예비역 준장. 공화당 국회의원(6대/9대).
- 류범수 : 예비역 중령. 공화당 국회의원(7대).
- 문홍구 : 예비역 중장. 12.12 군사반란 당시 합참본부장으로 반란 진압을 위해 노력했으나 반란 직후 반란군에 의해 강제 예편당했다. 여담으로 반란군은 반란 직후 숙청 작업에서 윤성민과 문홍구 둘 중에 1명만 살릴려고 했었는데 윤성민이 선택되어 대장으로 진급했다. [3]
- 안종훈 : 예비역 중장. 12.12 군사반란 당시 군수참모부장으로 진압군의 일원이었으며, 반란군에 대한 강경 진압을 주장했다. 또한 이듬해 5.17 내란 하루 전 전군 지휘관 회의에서 노태우, 정호용이 밀어붙인 계엄 확대론에 대해 유일하게 이의를 제기한 인물이다.
- 정병주 : 예비역 소장. 12.12 군사반란 당시 특전사령관으로 반란 진압을 위해 노력했으나 직속 부하 최세창에 의해 체포되었고, 반란 직후 반란군에 의해 강제 예편당했다. 1989년, 야산에서 교수형 형태의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그의 죽음에는 의문이 있다. 종교가 가톨릭(세례명:요셉)인데도 군당국에서는 계속 자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윤성민 : 예비역 대장(합참의장, 1군사령관 등 역임). 국방부장관 역임. 12.12 군사반란 당시 육참차장으로 진압군의 총지휘관이었다. 그러나 반란 이후 신군부 정권에서 국방부장관, 합참의장을 역임했다.
- 최명헌 : 예비역 대령. 민정당/민주당 국회의원(11대/12대/16대). 노동부장관 역임.
- 하중원 : 예비역 준장. 하일성의 부친.
10. 10기 (생도1기)
입교일 : 1949년 7월 15일 ~ 7월 30일
입교 인원 : 338명
임관일 : 1950년 7월 10일
임관인원 : 134명
입교 인원 : 338명
임관일 : 1950년 7월 10일
임관인원 : 134명
- 소준열 : 예비역 대장(1군사령관, 교육사령관 등 역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윤흥정[7] 전남북 계엄 사령관의 온건 대응에 불만을 품은 신군부에 의해 파견되어 지휘권을 인수하고 강경 유혈 진압을 지휘했다. 2004년 사망(향년 75세).
- 양창식 : 예비역 준장. 민정당/민자당 국회의원(11대/12대/14대).
- 이상익 : 예비역 대령. 중앙정보부 차장 역임. 공화당/민정당 국회의원(8대/10대/11대/12대).
10.1. 생도2기
입교일 : 1950년 6월 1일
입교 인원 : 333명
임관일 : 1950년 10월 23일
입교 인원 : 333명
임관일 : 1950년 10월 23일
- 박경석 : 예비역 준장. 입교 25일만에 6.25 전쟁에 투입되어 여러 전투에서 생사를 넘나들었고 포로로 잡혔다 탈출하기도 했다.특히 1965년 맹호사단 제1진 초대 재구대대장(고 강재구 소령 순직을 기리기 위해 명명)으로 참전 발군의 전공을 세우고 국위를 떨쳤다. 12.12군사반란 직후 정치군인과 결별, 전업작가로 활동 2016년 현재 79권의 저서를 펴냈다.
- 박보희 : 예비역 중령. 한국문화재단 이사장. 통일교의 2인자였던 인물.
- 장정열 : 예비역 중장. 그가 만든 전력증강계획 문서는 90년대 이후에도 참고자료로 활용될만큼 충실했다고 한다. 2010년 자랑스런 육사인상 수상.
- 황오연 : 예비역 준장. 채명신 월남사령관의 비서실장. 육군본부 작전처장. 초대 제1공병여단장. 그의 형은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한 황정연 대장.
- 김기석 : 예비역 소장. 전교사 부사령관.
- 김용진 : 예비역 중장. 군수사령관.
생도 2기는 불운의 기수이다. 본래 첫 정규 4년제 교육과정 기수였으나 입교한지 한 달도 안되어 6.25 전쟁이 터져버렸다. 정신 나간 참모총장 채병덕은 입교한지 한 달도 안된 이들을 육사 10기(생도 1기)[8]와 함께 전장에 투입시켰고 98명이 전사, 실종되었다. 또한, 전쟁으로 인해 육사가 휴교함에 따라 종합학교에 강제 편입되어 보충장교로 임관해 육사를 졸업하지 못하게 되었고, 전쟁 동안 동기생의 43%가 사망한 '죽음의 기수'가 되었다. 전쟁이 교착되자 생도 2기에 대한 복교 문제가 불거졌으나 이루어지지 않았고 생도 2기는 이후 육사 기수에서 사라져버린 비운의 기수가 되었다. 이들은 국방부에 대해 명예 졸업이란 정당한 요구를 촉구하였고 1996년 5월 4일, 생도 2기 전원에게 명예졸업장이 수여되었다.
11. 11기
11기부터 정규 4년제 교육과정을 거쳤다. 1951년에 입학해 1955년에 임관했다.
- 김복동 : 예비역 중장(육사 교장 등 역임). 하나회. 민자당/자민련 국회의원(14대/15대). 작전통으로 유명했으며 12.12 군사반란 즈음부터 전두환, 노태우[10]와 갈라섰다. 2000년 사망(향년 68세).
- 김성진 : 예비역 준장. 체신부(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중앙정보부 차장 등 역임. 생도 시절부터 수학 천재로 유명했다고 한다.
- 김식 : 예비역 소장. 민정당 국회의원(11대/12대).
- 노태우 : 예비역 대장(9사단장, 국군보안사령관, 수도경비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12.12 때 최전방 병력을 불법으로 동원했다. 하나회의 2인자로 전두환의 뒤를 이어 13대 대통령이 되었다. 이 인물의 경력은 마치 전두환을 복사한것처럼 거의 비슷하다. 군인으로서도 그렇고 심지어 둘이 연달아 대통령을 했다.
- 안교덕 : 예비역 대령. 전 민정수석비서관.
- 이기백 : 예비역 대장(합참의장, 2군사령관 등 역임). 합동참모의장 시절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에 휘말렸으나 살아남았다. 그 이후 국방부 장관 역임. 평화의 댐 사기극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으며 국보위에서도 활동한 전력이 있다.
- 이상훈 : 예비역 대장(연합사 부사령관, 합참본부장 등 역임). 국방부 장관, KBO 총재 역임. 하나회의 라이벌 조직 청죽회의 일원이었다.
- 전두환 : 예비역 대장(국군보안사령관, 중앙정보부장서리 역임). 하나회 우두머리. 11대, 12대 대통령.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핵심인물이며, 하나회의 수장. 갑종장교에 탈락하고 시간을 때우다 육사에 입학한 관계로 동기들에 비해 나이가 많았고, 그래서인지 동기들에게는 우두머리 역할을 했다.
- 정호용 : 예비역 대장(육군참모총장, 3군사령관, 특전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국방부장관, 내무부장관 등 역임. 13대, 14대 국회의원 역임. 12.12 군사반란 후 신군부의 일원으로[14] 전두환, 노태우에 이은 명실상부한 하나회의 3인자였다.
12. 12기
1952년에 입학해 1956년에 임관했다.
- 박준병 : 예비역 대장(보안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쓰리박. 민자당/민정당/자민련 국회의원(12대/13대/14대). 12.12 군사반란 참여자로[19] 후에 민정당으로 차출되어 사무총장을 지내는 등 정계에서 활동했다. 2016년 사망(향년 83세).
- 박희도 : 예비역 대장(육군참모총장, 3군사령관, 특전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쓰리박. 12.12 군사반란 당시 휘하 특전사 1공수여단을 동원해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유혈 점령한 반란군 1등 공신으로 전두환의 충복으로 전두환 정권에서 영화를 누렸다.
- 장기오 : 예비역 중장. 하나회. 총무처 장관 역임. 12.12 군사반란 참여자. 박희도, 최세창과 달리 반란에서 세운 공이 적어서인지[20], 다른 멤버들에 비해 비교적 한직을 맡았고 중장으로 예편했다. 예편 후 장관직을 받았다.
- 안필준 : 예비역 대장(1군사령관, 기무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보사부 장관 역임. 12대 총선 직후 야권이 약진하자 전두환을 위해 국회를 해산하려는 친위 쿠데타를 계획하려 한 전력이 있다. 2009년 사망(향년 77세).
- 한철수 : 예비역 대장(연합사 부사령관, 합참본부장 등 역임).
13. 13기
1953년에 입학해 1957년에 임관했다.
- 민태구 : 예비역 소장. 충북도지사 역임. 민자당 국회의원(14대).
- 신재기 : 예비역 대령. 민자당 국회의원(13대/14대).
- 오한구 : 예비역 대령. 하나회. 민정당 국회의원(11대/12대/13대).
- 이우재 : 예비역 준장. 하나회. 체신부 장관 역임. 민정당 국회의원(11대).
- 임동원 : 예비역 소장. 국정원장, 통일부장관 역임. 하나회에 치여 예편했으나 후일 김대중 정권에서 국정원장, 통일부장관을 역임하며 햇볕정책을 총 지휘했다.
- 정동호 : 예비역 중장. 하나회. 경호실장 역임. 민정당/민자당 국회의원(13대, 14대). 12.12 군사반란 당시 경호실장 직무대리[24]로 경호실 병력을 무단으로 동원해 최규하 대통령이 있는 총리공관을 접수했다. 이후 승승장구하나 국방위 회식 난투극의 책임을 지고 예편, 정계로 진출했다.
- 정진태 : 예비역 대장(연합사 부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 조홍 : 12.12 군사반란 당시 수도경비사령부 헌병단장. 하나회.
- 최세창 : 예비역 대장(합참의장, 3군사령관, 수방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국방부 장관 역임. 12.12 군사반란 당시 휘하 특전사 3공수여단을 동원해 직속 상관인 특전사령관 정병주를 유혈 체포한 반란군 1등 공신. 전두환의 충복으로 전두환 정권에서 영화를 누렸다. 반전으로 부친은 의열단과 광복군으로 활약한 독립운동가다.
14. 14기
1954년에 입학해 1958년에 임관했다.
- 민경배 : 예비역 대장(2군사령관, 교육사령관 등 역임).
- 이종구 : 예비역 대장(육군참모총장, 2군사령관, 기무사령관, 수방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국방부 장관 역임. '하나회의 황태자'. 하나회의 총무를 맡은 조직의 핵심이었으며 이후 하나회 정권인 전/노 정권 모두에서 그야말로 한국군 역사상 최고의 출세 가도를 달리며 영화를 누렸다.
- 이춘구 : 예비역 준장. 하나회. 내무부 장관, 민정당/민자당 국회의원(11대/12대/13대/14대). 하나회 동기 안무혁과 더불어 5공화국 초기 군복을 벗고 정계에서 활동했다.
15. 15기
1955년에 입학해 1959년에 임관했다.
- 고명승 : 예비역 대장(3군사령관, 기무사령관, 수방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12.12 군사반란 당시 정동호와 함께 경호실 병력을 동원해 최규하 대통령이 있는 총리 공관을 점령했다. 이후 전두환의 직계로써 요직들을 꿰차며 승승장구했으나 노태우 정권에서 참모총장은 되지 못했다.
- 나중배 : 예비역 대장(연합사 부사령관 등 역임). 前9군단장 하나회.
16. 16기
1956년에 입학해 1960년에 임관했다.
- 강재구 : 최종계급 대위(소령 추서). 1965년, 수류탄 투척 훈련 중 이등병이 실수로 놓친 수류탄을 몸으로 덮쳐 막고 다른 중대원 100여명의 목숨을 구하고 산화했다. 살신성인의 정신을 보여준 인물로 현재도 육군사관학교 등에서 추모되고 있다.
- 송응섭 : 예비역 대장(합참차장, 합참본부장 등 역임). 하나회. 12.12 군사반란 당시 하나회 선배들의 명령으로 휘하 30사단 90연대를 이끌고 반란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2012년 사망(향년 76세).
- 신말업 : 예비역 대장(3군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 이필섭 : 예비역 대장(합참의장, 2군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12.12 군사반란 당시 노태우 9사단장 휘하 제 29 보병연대장으로 노태우의 지시를 받아 최전방 병력을 이끌고 서울로 향했다. 이후 노태우 직계 9.9 인맥의 일원으로 노태우 정권에서 승승장구하다 김영삼에게 숙청당했다.
- 장세동 : 예비역 중장. 하나회. 안기부장, 경호실장 역임. 12.12 군사반란 당시 반란군 지휘소가 차려진 30경비단의 단장이었다. 전두환의 최고 충복으로 경호실장, 안기부장을 역임하며 자타 공인 전두환 정권의 최고 실세였다. 수지 김 사건 등 정권 유지를 위한 갖가지 공작을 진두 지휘했다.
- 정순덕 : 예비역 준장. 하나회. 청와대 정무제1수석비서관 역임. 민정당/민자당 국회의원(11대/12대/13대/14대 국회의원). 5공화국 초기 군복을 벗고 정계에서 활동했다.
- 천용택 : 예비역 중장. 국정원장, 국방부 장관 역임. 새정치국민회의/민주당 국회의원(15대/16대). 전남 출신으로 예편 후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에 참여했고, 김대중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과 국정원장을 지냈다.
17. 17기
1957년에 입학해 1961년에 임관했다.
- 김연각 : 예비역 대장(2군사령관 등 역임).
- 김용갑 : 예비역 소령. 청와대 민정수석, 행자부 장관 역임. 신한국당/한나라당 국회의원(15대/16대/17대). 예편 후 중앙정보부에서 근무했고 이후 전두환/노태우 정권과 신한국당, 한나라당에서 활동하며 '강성 보수', '미스터 쓴소리'로 불렸다.
- 김진영 : 예비역 대장(육군참모총장, 연합사 부사령관, 수방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12.12 군사반란 당시 1기수 선배 장세동처럼, 직속상관 장태완을 배신하고 반란군에게 동조했다. 자타 공인 하나회의 실력자였으나 우여곡절 끝에 참모총장에 올랐다. 그리고 김영삼의 하나회 대숙청의 첫 빠따가 되었다.
- 안현태 : 예비역 소장. 하나회. 경호실장 역임. 전두환의 충복 중 한 명으로 전두환의 경호실장을 지냈다. 2011년 사망하자 하나회임에도 불구하고 법에 따라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논란이 되었다.
- 이문석 : 예비역 대장(1군사령관, 특전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총무처 장관 역임. 노태우 직계 9.9 인맥으로 노태우 정권에서 승승장구해 자타공인 차기 참모총장이던 김진영을 제치고 대장으로 1차 진급했다. 그러나, 노태우가 끝내 김진영을 버리지 못해 참모총장이 되지 못했고 대신 장관이 되었다.
- 임복진 : 예비역 소장. 민주당/새정치민주회의 국회의원(14대, 15대). 호남 출신으로 하나회에 의해 차별받았다고 한다. 예편 후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 등에서 활동했다.
- 정선호 : 민정당 국회의원(11대, 12대). 동기 허삼수, 허화평과의 연결고리로 정계에서 활동했다.
- 허삼수 : 예비역 준장. 하나회. 청와대 사정수석 역임. 민자당 국회의원(14대). 전두환의 핵심 참모로 12.12 군사반란 당시 정승화 참모총장을 납치했다. 이후 전두환을 따라 청와대로 들어가 허화평과 함께 실세로 군림했으나 전두환과 문제를 일으키는 바람에 허화평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 허화평 : 예비역 준장. 하나회.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보좌관[32] 역임. 민자당 국회의원(14대). 12.12 군사반란과 정권 장악 과정에서 전두환의 핵심참모로 활약했다. 이후 전두환을 따라 청와대로 들어가 정권 초기 최고 실세로 군림했으나, 동기 허삼수처럼 전두환과 마찰을 일으키다가 쫓겨났다.
18. 18기
1958년에 입학해 1962년에 임관했다.
- 구창회 : 예비역 대장(3군사령관, 기무사령관, 수방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12.12 군사반란 당시 9사단 참모장으로 사단장 노태우의 명령으로 최전방 병력을 빼내 서울로 출동시켰다.[38] 노태우 직계 9.9 인맥으로 노태우 정권에서 승승장구하다가 김영삼에게 숙청당했다. [39]
- 성환옥 : 예비역 준장. 청와대 대통령경호실 차장, 감사원 사무총장 등 역임. 12.12 군사반란에 가담했다.
- 오명 : 예비역 대령. 체신부/교통부/과기부 장관, 엑스포 조직 위원장. 현 카이스트 이사장. 업적을 남긴 기술관료이나 국보위 활동 전력이 있다.
- 이학봉 : 예비역 준장. 하나회. 민정수석, 안기부 차장 역임. 민정당 국회의원(13대). 전두환의 충복. 수사(고문), 공작 전문가로 12.12 군사반란, 정권 장악 과정에서 수많은 인사들을 수사(고문)했다. 민정수석을 지냈고 안기부장 장세동을 보좌하며 정권 유지를 위한 갖가지 공작들에 관여했다.
- 최창윤 : 예비역 준장. 행자부 장관 역임. 민정당 국회의원(13대). 일찍 예편한 뒤 정계에서 활동했으며 후일 김영삼과 가까워지기도 하였다.
- 황원탁 : 예비역 소장. 육사생도 시절 18기 대표화랑을 지냈고 12.12 군사반란 당시 정승화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의 비서실장을 지냈기 때문에 5공화국 시절 힘든시간을 보냈다. 드라마 코리아게이트에서는 장태완 소장이 체포되는걸 보고 통곡하는 장면이 나온다.
19. 19기
1959년에 입학해 1963년에 임관했다.
- 김진선 예)대장 : 제2야전군사령관, 수방사령관 등 역임. 하나회. 12.12 군사반란 당시 수경사 상황실장으로 애매한 태도[45]를 보였으며, 노태우 직계 9.9 인맥으로 노태우 정권에서 승승장구하다 김영삼 정권에서 숙청당했다. [46]
- 윤용남 예)대장 :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3군사령관 등 역임). 기동전의 전문가로 알려져있다.
- 이병호 예)대령 : 전 국정원장.
* 서정화 예) 중령 :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 국회의원(12대/13대/14대/15대)
20. 20기
1960년에 입학해 1964년에 임관했다.
- 안병호(군인) 예)중장 : 하나회, 최종보직 수방사령관.
- 신정 예)소장 : 前 울진군수, 제53보병사단장
- 허청일 예)대령 : 제11~12대 국회의원, 육군본부 헌병단장.
21. 21기
1961년에 입학해 1965년에 임관했다.
* 김동신 : 예)대장 : 육군참모총장, 연합사 부사령관, 합참 작전본부장 등 역임). 국방부장관 역임. 김대중 정권에서 첫 호남 출신 육군참모총장이 되었다.
* 유재열 : 예)대장 : 제3야전군사령관 등 역임
* 이재관 : 예)대장 : 제1야전군사령관 등 역임
- 이충석 예)소장 : 하나회. 하나회 대숙청 당시 합참 작전부장으로 회식에서 불만을 토로한 사건으로 보직해임당하고 전역해야 했다. [52] 청춘을 바친 군대에서 쫓겨난 후 매일같이 군대 꿈을 꿨다고 한다.
- 신윤희 예)소장 : (육군본부 헌병감 등 역임). 12.12사태 당시 수도경비사령부 헌병 부단장으로 있으면서 전두환의 사주를 받아 직속상관인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을 체포한다.
22. 22기
1962년에 입학해 1966년에 임관했다.
- 길형보 예)대장 : 육군참모총장, 제3야전군사령관 역임.
- 정영무 예)대장 :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합참 작전본부장, 특전사령관 등 역임
- 지만원 예)대령 : 여러가지 발언으로 유명한 그 분 맞다.
23. 23기
24. 24기
1964년에 입학해 1968년에 임관했다.
- 김판규 예)대장 : 육군참모총장, 1군사령관 등 역임). 초대 항공작전사령관.
- 김인종 예)대장 : 제2야전군사령관, 수도방위사령관 등 역임). 경호실장 역임. 예편 후 이명박 정권에서 경호실장을 지냈으며, 이명박 내곡동 사저 매입 사건의 관련자로 사퇴 후 불구속 기소되었다.
- 이종옥 예)대장 : 한미연합사부사령관 역임
- 김희상 : 예비역 중장. 문민정부에서는 청외대 국방비서관,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국방보좌관을 역임하며 주요 국방정책 결정에 관여했다.
- 안주섭 : 예비역 소장. 대통령경호실장 역임. 예편 후 김대중 정부에서 정권의 시작부터 끝까지 경호실장을 지냈다.
- 이유중 예)대령 : 前 1사단 12연대 3대대장(중령) 당시[58] DMZ 사계청소 작업을 지휘하던 중 넘어지는 참나무에 깔려 우하부 늑골 네대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고 이후 간 악화로 인해 1981년 6월 21일 순직, 순직 다음 날 대령으로 추서, 파주 통일공원에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 이건식 예)대위 : 前 김제시장
25. 25기
1965년에 입학해 1969년에 임관했다.
- 김종환(1946) 예)대장 : 31대 합참의장을 지냈다. 육사 4기의 김종환과는 동명이인.
- 남재준 예)대장 : 36대 육참총장을 지내고 전역한 후 국가정보원장을 지냈다.
- 서종표 예)대장 : 제3야전군사령관, 제18대 국회의원 역임.
- 권경석 예)소령 : 하나회. 제17, 18대 국회의원
18대 국회의원.
- 유덕준 예)소령 : 충청남도 정무부지사, 행정부지사, 충남도지사 권한대행 역임
- 정승우 예)소령 : 경기도 행정2부지사 역임
- 채규정 예)소령 : 민선3기 전북 익산시장, 전라북도 행정부지사 역임
26. 26기
1966년에 입학해 1970년에 임관했다.
- 김충배 예)중장, 육군사관학교장 역임.
- 권문택 예)준장. 대령시절 육군전산소장을 역임했고 준장시절에는 국방정보체계국 차장을 역임했다. 퇴역후에는 경희사이버대학교 초대학장을 지냈다.
- 김재철 예)소령 : 전 전라남도 행정부지사,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27. 27기
1967년에 입학해 1971년에 임관했다.
- 김장수 예)대장 : 1971년 졸업과 동시에 보병 병과 소위로 임관, 2004년에 대장까지 진급 후 2006년 전역했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 육군참모총장 → 국방부 장관 → 한나라당 국회의원 →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간사 →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역임한 인물. 여담으로 국방장관 시절에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함께 제2차 남북 정상회담차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과 악수를 하며 고개를 숙이지 않는
군기 바짝 든군인의 모범이라 할 만한 모습으로 '꼿꼿장수'라 세간에 회자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아들인 김용우 소령이 육사 62기라서 2대에 걸쳐 육사 출신인 집안이다. 굉장히 특이한 게 어떤 정권을 만나든 전부 김장수를 마음에 들어했다. 문제는 박근혜 정권 자체가 통째로 갈려나갔다는 점이다.
- 송영근 예)중장 : 국군기무사령관 역임. 19대 국회의원.
- 류선준 예)소장 : 前 제22보병사단]장
28. 28기
1968년에 입학해 1972년에 임관했다.
- 김관진 예)대장 : 43대 국방장관과 제3야전군사령관 등의 요직을 역임. 약 4년간 국방장관으로 재임했다. 전 청와대 안보실장. 참고로 김관진 장군이 국방장관ᆞ안보실장을 지내면서 대북제재가 생겨나자 북한에서는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과 묶어서 증오하고있다.
- 박흥렬 예)대장 : 전 대통령경호실장. 38대 육참총장. 먼저 대장 진급했으며 군내 신망이 두터웠던 김관진과 김병관을 꺾고 참모총장이 되었다. 또한 대장 2차 보직인 참모총장을 1차 보직도 없이 참모차장에서 바로 영전하는 대이변을 연출했는데, 이는 당시 국방부장관으로 영전한 김장수 참모총장의 힘이 컸다. 대표적인 김장수 라인으로 꼽힌다.
- 김종천 예)중장 : 국방부 차관, 제5군단장 역임.
- 박장규 예)소장 : 前 육군3사관학교장, 제22보병사단장
- 박상돈 : 예)소령 : 전 17~18대 국회의원, 현직 충남 천안시장
29. 29기
1969년에 입학해 1973년에 임관했다.
- 김태영 예)대장 : 제23보병사단장. 제1야전군 사령관, 제34대 합동참모본부 의장. 제42대 국방부 장관.
- 임충빈 예)대장 :제 39대 육군참모총장, 육군사관학교 교장, 제1군단장.
* 문병권 예)소령 : 前 중랑구청장
30. 30기
1970년에 입학해 1974년에 임관했다.
- 김근태 예)대장 : 1974년 졸업과 동시에 보병 소위로 임관, 2007년 9월 대장으로 진급해 제1야전군사령관을 역임한 후 2009년 이임과 동시에 전역했다. 32기인 박정이 예비역 대장이 20사단장에 재임하던 시절 그의 직속상관인 제7기동군단장을 역임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충청남도 청양군-부여군 지역구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서 자신보다 15기나 선배인
딱 딱이진삼을 누르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선거법 위반으로 대법원에서 당선무효 판결을 받고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이근안에게 모진 고문을 받았던 민주화 운동가와는 동명이인. - 이상의 예)대장 : 합참의장을 역임하였고, 천안함이 침몰하던 시간에 음주상태여서 논란이 있었다.
- 이영계 예)중장 : 수도방위사령관, 육군교육사령관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전쟁기념관 관장(전쟁기념사업회 회장)이다.
- 백병춘 예)소장 : 충남 논산 강경 출신으로 수도기계화보병사단장, 1군 부사령관, 육군종합군수학교장, 육사 부교장을 역임하였으며, 2011년 6월 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62세. 여담으로 기독교를 믿으며, 부인도 교회 권사였고, 종군교 교장시절 일요일에 영내 교회에 자주 예배보러 왔었다. 그리고 육사부교장으로 가기 직전 마지막 주일에는 백 장군의 아들 내외도 교회에 왔었다.
- 김진항 예)소장 : 국군의 날 행사 제병지휘관[62], 제12보병사단장, 육군포병학교장 역임
- 고창부 예)준장 : 제7공수특전여단장, 특전교육단장, 특전사 작전처장 정보처장 역임.
31. 31기
1971년에 입학해 1975년에 임관했다. 2000년 선두주자들이 준장으로 진급했고, 2003년 소장으로 진급했다.
- 최광준 예)준장 : 아나운서 최지인 씨의 부친이기도 하다. 2004년 하반기 장군 인사 때 당시 남재준 육참총장이 위로차 불렀던 세 명의 준장 중의 한명으로서 2005년 1월에 동기생인 백승도 준장과 함께 전역하였다.
- 박홍건 예)대령 : 철도공사(코레일) 비상계획관. 김일성의 간담을 서늘케 한 유명한 맹장이자 백골부대장인 박정인 장군의 장남이다. 박정인 장군은 2014년 11월 뇌경색으로 쓰러져 중앙보훈병원에 입원 후 투병 중 2016년 2월 3일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박 장군이 투병할 동안 장남인 박홍건 대령은 부인 김순실 여사와 매일같이 간병을 왔다고 한다. 또한 박 대령에겐 쌍둥이 아들이 있는데 장남인 박선욱씨는 육사 64기(04년에 입교, 08년에 소위 임관) 출신으로 할아버지가 부대장으로 있던 백골부대에서 병참병과 육군 대위로 복무하고 소령으로 진급하면서 육사 심리학과 교관으로 근무중이다. 쌍둥이 동생은 현재 회계사로서 육군 장교로 병역을 마쳤다. 즉, 3대가 육사 출신이다.
- 문승국 : 군전역 후 유신사무관으로 공직에 입직하여 서울특별시 행정2부시장(차관급)을 지냈다.
- 서효원(공무원) : 군전역 후 유신사무관으로 공직에 입직하여 1급공무원인 경기도 행정2부지사까지 올랐다.
32. 32기
1972년에 입학해 1976년에 임관했다.
33. 33기
1973년에 입학해 1977년에 임관했다.
- 조정환 예)대장 : 1977년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 2011년 4월 대장으로 진급해 제2작전사령관을 역임하고 2012년 10월 제43대 육군참모총장에 취임했다. 12개월간의 총장 임기를 끝으로 2013년 9월 한 기수 후배인 권오성 대장이 후임 참모총장에 오르면서 이임과 동시에 전역했다.
- 배득식 예)중장 : 2010년 6월부터 2013년 4월까지 국군기무사령관으로 재직했었다. 장경욱 전 기무사령관의 전임자다.
- 권명국 예)소장 : 1977년 졸업과 동시에 방공포병 소위로 임관하였다. 1991년 소령 시절에 방공포병이 공군으로 전군함에 따라 권 장군도 공군으로 전군되었다. 방공포병여단장, 방공유도탄사령관을 역임하고, 공군 소장으로 전역하였다. 전역 후 현재는 군인공제회 감사로 재직 중이다.(2014년 11월 27일에 임명)
34. 34기
1974년에 입학해 1978년에 임관했다. 17기, 31기에 이어 육군참모총장을 두 명 배출하게 된 기수이다.
- 배명헌 예)소장 : 육군항공병과로서 2010년 소장계급으로 14대 육군항공작전사령관 및 육군항공 병과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성우회 소속 안보강사로 활동중이다. 항작사령관 재임시절인 11년 8월 공금 유용 혐의로 집무실이 압수수색된 적이 있다.http://news.joins.com/article/6091348
- 박휘락 예)대령 : 국민대 정치대학원장
35. 35기
1975년에 입학해 1979년에 임관했다.
육사는 6기를 제외[83]하고는 모든 기수에서 합참의장 혹은 육참총장을 배출한 역사가 있었다. 4년제 정규육사인 11기 이후부터는 모든 기수에서 합참의장이나 육참총장을 배출했는데, 18기에 이어 35기가 합참의장 뿐만 아니라 육참총장도 배출하지 못했다.
육사는 6기를 제외[83]하고는 모든 기수에서 합참의장 혹은 육참총장을 배출한 역사가 있었다. 4년제 정규육사인 11기 이후부터는 모든 기수에서 합참의장이나 육참총장을 배출했는데, 18기에 이어 35기가 합참의장 뿐만 아니라 육참총장도 배출하지 못했다.
36. 36기
1976년에 입학해 1980년에 임관했다. 2005년에 처음 준장으로 진급했다.
- 원정희 : 예) 대위 : 1959년생, 1987년 국세청 특채사무관 시험(10기)에 합격하여 국세청에 입문했다. 이후 영덕세무서장과 영등포세무서장을 지냈으며,지난 2014년 국세청 조세국장에 오르게 된다.이후 불과 7개월만에 1급 공무원 보직인 부산지방국세청장에 임명되면서 군 특채 출신으로는 처음이자 마지막 1급 공무원이 되었다. 지난해 연말을 끝으로 국세청에서 명예퇴직하였다.
37. 37기
1977년에 입학해 1981년에 임관했다. 2006년에 처음 장성급에 진출했다. 18기, 35기에 이어 합참의장과 육참총장 모두 배출하지 못했다.
박지만 씨에 대해 특별대우는 없었을까. 동기생들은 입을 모아 “특혜는커녕 대통령 아들과 동기생이라는 이유로 곤욕을 치른 경우가 더 많았다”고 했다. 육사 38기의 한 대령은 “당시 37기의 선배 기수들은 박지만 선배가 포함된 37기에 편견을 갖고, 다른 기수라면 그냥 넘어갈 일도 더 엄격하게 얼차려를 줬다”며 “특히 시골에서 올라온 선배들은 정의감에 불타 유명인사 자제들의 잘못은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영웅심리를 갖고 있었다”고 했다.
37기 동기회의 한 간부는 “1979년 여름, 포천 8사단 신병교육대 훈련장에 갔는데 대통령 아들 기수가 왔다며 쓸고 닦고 했다고 들었다”며 “우리는 처음 가는 야전부대라 부대가 원래 이런가 보다 했고, 삼계탕을 주면 부식이 원래 이런가 보다 했다. 훈련을 마치고 육사에 복귀하면서 선배들이 37기 동기 전체를 집합시켰다”고 했다. 그는 “해당 부대의 갓 졸업한 육사 선배들이 육사 선배들이나 훈육관들에게 전화를 걸어 ‘박지만이 때문에 하사관학교 학생들이 교육도 못하고 쓸고 닦는다’고 해서 얼굴을 못 든다고 했다”며 “우리들은 대통령 아들이 지원한 줄도 모르고 육사에 들어왔는데, 선배들은 ‘유사 이래 너희가 훈련소에서 삼계탕을 처음 먹었다’고 말해서 속상했다”고 했다. 그는 “하도 36기 선배들에게 들볶이다 보니 38기 후배들을 교육시킬 여력이 없어 동기들 사이에선 38기들이 기어오른다는 이야기도 했었다”며 “동기생 중 전인범 특전사령관이 ‘잔인범’ 소리를 들어 가며 후배들 교육을 시키지 않았으면 선배 노릇도 못할 뻔했다”고 했다.
— 오동룡. 2013. “朴志晩 同期 陸士 37期生들.” 『月刊朝鮮』 2013년 12월호, 98-115.
- 고명현 예)준장 : 前 국군체육부대장. 남재준 육군참모총장 시절에 수석부관을 지냈다. 남재준 총장이 당시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운 탓에 진급에 불이익을 받았다는 얘기가 장교단 내에서 돌았다. 남총장이 국정원장이 되자 부사단장으로 재직 중이던 고대령을 국정원 국방보좌관[120]로 불러들였고 2013년에 13차 진급으로 준장을 달았다. 이 해에 육사 43기가 처음으로 준장에 진출했다. 본래는 3차 진급 이상 떨어지면 진급을 시키지 않으나 관행에서 벗어나 4차 이상의 진급 대상자들도 포함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13차 진급이라는 위엄은 다시 쉽게 나오지 않을 듯하다.[121]
- 임정택 예)대령 : 前 우석대 학군단장
38. 38기
1978년에 입학했고 1982년에 임관했다. 2007년 10월에 준장 1차, 2010년 12월에 소장 1차가 있었다. 그리고 중장 1차 진급자가 2013년 10월에 나온 김용현 중장 1명이고, 2차는 2014년 4월에 정연봉, 최병로, 정항래 중장이, 2014년 10월에는 3차로 임호영, 조현천, 위승호 중장이 진급했다.
38기의 입학생은 377명이었고, 입학 경쟁률은 137:1 이었는데 경쟁률이 이렇게 높았던 건 대위 복무 후 공무원 5급으로 채용되는 유신사무관이란 제도 때문이었다.[122] 1988년에 유신사무관이 폐지되는 바람에 육사 38기부터 인사적체가 심각해졌다. 결국 37기와 마찬가지로 육참총장과 합참의장을 배출하지 못했다.
38기의 입학생은 377명이었고, 입학 경쟁률은 137:1 이었는데 경쟁률이 이렇게 높았던 건 대위 복무 후 공무원 5급으로 채용되는 유신사무관이란 제도 때문이었다.[122] 1988년에 유신사무관이 폐지되는 바람에 육사 38기부터 인사적체가 심각해졌다. 결국 37기와 마찬가지로 육참총장과 합참의장을 배출하지 못했다.
- 박형진 예)대령(추서계급) : 네팔로 파병되어 유엔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하던 중 2008년 불의의 헬기추락 사고로 순직하였고, 대령으로 추서되었다.
39. 39기
1979년에 입학했고 1983년에 임관했다. 2008년에 처음 준장으로 진급했다. 여담으로 알자회를 최초로 고발한 기수이며, 김용우 장군만이 유일하게 4성장군이자 육참총장으로 영전했다.
- 이종명 예)대령 : 前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前 합동군사대학 교관 역임.
2000년 6월 27일 경기도 파주 인근 비무장지대(DMZ)에서 수색작전에 나섰다가 지뢰 폭발로 두 다리를 잃었다. 수색대대장(중령)으로 후임 대대장(설동섭, 육사 40기, 중령 예편)에게 임무 인수인계를 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작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후임 대대장이 지뢰를 밟았고, 함께 있던 중대장도 관통상을 입었다. 이 대령은 두 사람이 쓰러진 곳까지 갔다. 수년 동안 수색작전을 하며 파악해 놓은 이 지역 지리에 대해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음하는 후임 대대장을 업으려고 쪼그려 앉는 순간 그의 발 아래에서 다시 지뢰가 폭발했다. 수도 없이 다녔던 길이라 지뢰가 없다고 확신했던 곳이었다. 전날 비가 왔지만 지뢰가 떠내려 올 정도는 아니었다. 북한군이 우리 군 동선을 파악해 의도적으로 지뢰를 매설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이 대령은 두 다리를 잃었다. 다리를 잃은 뒤 이 대령은 2년 반 동안이나 치료를 받았다. 전역할 줄 알았지만 군은 하반신이 절단된 그에게 정년까지 복무토록 했다. 2015년 9월 전역.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시구자로 나왔다. 그리고 이번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2번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168]
40. 40기
1980년에 입학했고 1984년에 임관했다. 2009년에 처음으로 준장, 2012년 10월에 처음으로 소장, 2015년 10월에 첫 중장, 2017년 8월에 대장 진급자가 나왔다.
바로 1기수 선배들이 알자회를 고발할 때 이들도 함께 목소리를 냈는데, 한술 더떠서 아예 25기수 선배인 권영해 장관을 찾아가서 알자회의 군내퇴출을 가장 강력하게 요구한 기수이다. 특히 김운용 전 지상작전사령관이 더 적극적이었는데 이 때문에 알자회를 가장 강력하게 후원하는 박근혜 정권 때 소장 진급을 사실상 막차를 탔고 이대로 군생활이 끝나나 싶었지만 2014년 한 해 동안 온갖 사고가 터져 소장급 선두그룹들이 3명이나 한꺼번에 날아가는 바람에[169] 운좋게 중장 2차진급을 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지 3달 뒤 전격적으로 3군사령관에 승진발령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비육사-비육군 인사 등용 정책에 영향을 받아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과 합동참모의장을 배출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의 수혜자와 동시에 피해자인 셈.
바로 1기수 선배들이 알자회를 고발할 때 이들도 함께 목소리를 냈는데, 한술 더떠서 아예 25기수 선배인 권영해 장관을 찾아가서 알자회의 군내퇴출을 가장 강력하게 요구한 기수이다. 특히 김운용 전 지상작전사령관이 더 적극적이었는데 이 때문에 알자회를 가장 강력하게 후원하는 박근혜 정권 때 소장 진급을 사실상 막차를 탔고 이대로 군생활이 끝나나 싶었지만 2014년 한 해 동안 온갖 사고가 터져 소장급 선두그룹들이 3명이나 한꺼번에 날아가는 바람에[169] 운좋게 중장 2차진급을 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지 3달 뒤 전격적으로 3군사령관에 승진발령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비육사-비육군 인사 등용 정책에 영향을 받아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과 합동참모의장을 배출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의 수혜자와 동시에 피해자인 셈.
- 김병주 예) 대장 : 現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前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2017년 8월 대장 1차 진급). 제3군단장(2015년 10월 중장 1차 진급), 육군미사일사령관, 제30기계화보병사단장 역임.
41. 41기
42. 42기
1982년에 입학했고 1986년에 임관했다. 42기부터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하는데 2011년부터 기간이 4년에서 5년으로 늘어남에 따라 2012년에 처음 준장을 배출했으며, 2014년 10월에 첫 소장 진급, 2017년 9월에 첫 중장 진급, 2020년 9월에 대장 진급자가 나왔다.
현역 중장급 인사들 가운데 비육사 출신 임관 동기(3사 21기[206], 학군 24기[207])가 없어 육사 42기 내부에서만 경쟁을 하게되었는데 2020년 9월 21일, 김승겸, 김정수 중장이 대장 진급에 성공하였다. 그후 같은해 12월 3일 인사에서 중장급 동기들은 박주경 중장만이 대한민국 육군참모차장으로 영전하고 나머지는 전역하였다.
현역 중장급 인사들 가운데 비육사 출신 임관 동기(3사 21기[206], 학군 24기[207])가 없어 육사 42기 내부에서만 경쟁을 하게되었는데 2020년 9월 21일, 김승겸, 김정수 중장이 대장 진급에 성공하였다. 그후 같은해 12월 3일 인사에서 중장급 동기들은 박주경 중장만이 대한민국 육군참모차장으로 영전하고 나머지는 전역하였다.
- 박철균 예)준장 : 前 군비통제검증단장, 국방부 미국정책과장, 방위분담금협상TF장
- 김대석 예)준장 : 前 방위사업청 사업관리부장. (2016년 12월 31일 퇴역).
- 황인 예)준장 : 前 육군본부 시험평가단장 역임 후 퇴역(18.4.30)
- 김용덕 예)준장 : 前 특수전학교장 역임 후 퇴역(18.4.30).
- 강재구 예)준장 : 前 육군탄약지원사령관. (2017년 준장 진급).
- 장진섭 : 졸업 시 대통령상 수상
- 박건서 : 졸업 시 국무총리상 수상
43. 43기
1983년에 입학했고 1987년에 임관했다. 2013년에 첫 준장 진급, 2015년 10월 첫 소장 진급, 2018년 11월 첫 중장 진급, 2020년 9월 첫 대장 진급.
- 나승용 준장 : 前 국방정신전력원장
- 김태업 준장 : 前 한미연합군사령부 제8미군 한국측 부사령관
- 심동현 준장 : 前 한미연합군사령부 기획참모부 차장
- 김덕영 준장 : 前 제60보병사단장
- 김동열 예)준장 : 前 제66보병사단장
- 정찬호 준장 : 前 제201특공여단장
- 이우조 준장 : 前 육군군수사령부 보급처장
- 이창영 준장 : 前 육군교육사령부 지원부장
- 송지호 예)준장 : 前 육군전투지휘훈련단장
- 이동훈 준장 : 前 육군공병학교장
- 황순필 준장 : 前 육군정보학교장
- 고효욱 준장 : 前 육군3사관학교 교수부장
- 최병호 준장 : 前 육군종합행정학교 교수부장
- 김주재 준장 : 前 육군보병학교 교육여단장
- 최세영 준장 : 前 국군수송사령부 사령관
- 박웅진 대령 : 前 우석대 학군단장
44. 44기
1984년에 입학했고 1988년에 임관했다. 2014년에 첫 준장 진급, 2016년에 첫 소장 진급, 2019년에 첫 중장 진급자가 나왔다.
44기의 경우 소장급 선두주자들이 사건사고에 휘말리지 않았음에도 진급누락이 되는가 하면, 사단장 경력도 없는 인물이 중장으로 진급하여 수도방위사령관에 임명되는 등 중장 진급에 있어 파격적인 인사가 이루어졌다.
44기의 경우 소장급 선두주자들이 사건사고에 휘말리지 않았음에도 진급누락이 되는가 하면, 사단장 경력도 없는 인물이 중장으로 진급하여 수도방위사령관에 임명되는 등 중장 진급에 있어 파격적인 인사가 이루어졌다.
- 김용호 준장 : 現 육군본부 분석평가단장.
- 연경흠 준장 : 現 제1포병여단장.
- 이근표 준장 : 現 제3공수특전여단장.
- 김광락 준장 : 現 육군군수사령부 보급관리처장.
- 이종호 준장 : 現 육군탄약지원사령관
- 최완규 준장 : 現 육군3사관학교 교수부장.
- 박정택 준장 : 現 육군포병학교 교육여단장.
- 박헌규 대령 : 前 제2작전사령부 지휘통신처장
45. 45기
1985년에 입학했고 1989년에 임관했다. 2015년에 첫 준장 진급, 2017년에 첫 소장 진급자가 나왔으며, 2020년 하반기에 첫 중장 진급자가 나왔다.
- 연경흠 준장 : 現 제1포병여단장.
- 이태우 대령: 現 제5보병사단 행정부사단장
46. 46기
1986년에 입학했고 1990년에 임관했다. 2012년에 첫 준장 진급[240], 2018년에 첫 소장 진급자가 나왔다.
-
- 이숭재 준장 : 現 육군본부 공병실장
- 박진호 대령 : 現 호서대 학군단장.
- 지영하 대령 : 現 제5기갑여단장.
- 김남훈 중령 : 前 목포대 학군단장.
- 정순호 중령 : 방위사업청 근무 .
47. 47기
1987년에 입학했고 1991년에 임관했다. 2014년에 첫 준장 진급[247], 2019년에 첫 소장 진급자가 나왔다.
- 강인규 소장 : 現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2020년 12월 소장 3차 진급).
- 장형갑 대령 : 숭실대 학군단장 역임.
- 박경민 대령 : 국방시설본부 경기북부시설단장 역임.
- 천윤환 대령 : 육군사관학교 교수 역임.
- 김범식 대령 : 제3보병사단 연대장 역임.
- 이헌관 대령 : 제2작전사령부 군사경찰단장
- 김기범 중령 : 정훈장교, '15년 별세
- 박경식 중령 : 국제평화지원단 파병준비단장
- 김경호 중령 : 제51보병사단 헌병대장
48. 48기
1988년에 입학했고 1992년에 임관했다. 2018년에 첫 준장 진급자가 나왔으며 2020년에 첫 소장 진급자가 나왔다.
- 정진팔 준장 : 現 육군본부 정책실장.
- 임강규 준장 : 現 육군본부 정보화기획참모부 차장. 부안고등학교(19회) 졸업
- 김경중 준장 : 現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인사기획근무차장.
- 박동국 준장 : 現 육군본부 동원참모부 차장. 춘천고등학교(60회) 졸업
- 전병희 준장 : 現 지상작전사령부 군사지원참모부장. 대구영신고등학교 졸업.
- 김정혁 준장 : 現 제2포병여단장.
- 김남훈 준장 : 現 제5포병여단장.
- 김흥규 준장 : 現 제1공병여단장.
- 주성운 준장 : 現 제3기갑여단장.
- 김훈년 준장 : 現 제7공수특전여단장.
- 이영규 준장 : 現 제2군단 참모장
- 김태완 대령 : 제5공병여단장 역임.
49. 49기
1989년에 입학했고 1993년에 임관했다. 2019년에 첫 준장 진급자가 나왔다.
* 김흥준 준장 : 現 대통령경호처 군사관리관. (2019년 11월 준장 1차 진급). 제주남녕고등학교(1회) 졸업.
* 조용근 준장 : 現 국방부 대북정책관. 국방부 대북정책차장. (2019년 11월 준장 1차 진급).
* 어창준 준장 : 現 국방부 군사보좌관. 육군본부 비서실장. (2019년 11월 준장 1차 진급).
* 류승민 준장 : 現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인사관리복지차장. (2019년 11월 준장 1차 진급).
* 이승오 준장 : 합참 작전1처장, 前 제1군단참모장(2019년 11월 준장 1차 진급).
* 석용규 준장 : 現 제6군단 참모장. (2019년 11월 준장 1차 진급).
* 문병삼 준장 : 現 제8군단 참모장. (2019년 11월 준장 1차 진급).
* 이정환 준장 : 現 제13공수특전여단장. (2019년 11월 준장 1차 진급).
* 조용근 준장 : 現 국방부 대북정책관. 국방부 대북정책차장. (2019년 11월 준장 1차 진급).
* 어창준 준장 : 現 국방부 군사보좌관. 육군본부 비서실장. (2019년 11월 준장 1차 진급).
* 류승민 준장 : 現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인사관리복지차장. (2019년 11월 준장 1차 진급).
* 이승오 준장 : 합참 작전1처장, 前 제1군단참모장(2019년 11월 준장 1차 진급).
* 석용규 준장 : 現 제6군단 참모장. (2019년 11월 준장 1차 진급).
* 문병삼 준장 : 現 제8군단 참모장. (2019년 11월 준장 1차 진급).
* 이정환 준장 : 現 제13공수특전여단장. (2019년 11월 준장 1차 진급).
- 박석현 중령 : 前 우석대 학군단장
50. 50기
1990년에 입학했고 1994년에 임관했다. 2020년에 첫 준장 진급자가 나왔다.
- 강현우 준장 : 現 6군단 참모장(2020년 12월 준장 1차 진급)
- 국민수 대령 : 동아대 학군단장
- 임기수 중령 : 제22보병사단 진격부대장
- 김특중 예)중위 : 1994년 53사단 장교 무장탈영 사건의 주인공이다. 비록 탈영은 했지만 이분 덕택에 '소대장길들이기'라는 악습이 없어졌으며, 군의 질서가 바로 잡힌 순기능이 있다. 수감 중에 95년 3월 중위로 진급한 후 징역이 확정되자 현 계급에서 제대하였다. 그 후 육사에서 수학을 전공한 것을 살려 입시학원 및 논술학원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51. 51기
1991년에 입학했고 1995년에 임관했다. 2017년부터 대령으로 진급했다.
52. 52기
1992년에 입학했고 1996년에 임관했다. 졸업식 날 묘한 타이밍인 것이 대선배들인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법정에 선 날이었다.#
동기인 김훈 중위의 죽음에 군에 실망한 사람이 많아 5년차에 33명이 대거 전역했다. 보통은 10명 내외이다. 관련기사[250] 2018년부터 대령으로 진급했다.
동기인 김훈 중위의 죽음에 군에 실망한 사람이 많아 5년차에 33명이 대거 전역했다. 보통은 10명 내외이다. 관련기사[250] 2018년부터 대령으로 진급했다.
53. 53기
1993년에 입학했고 1997년에 임관했다. 2019년부터 대령으로 진급했다.
- 김종화 : 보병, 보국훈장 광복장 수상, 7사단 수색중대장으로 근무하던 2003년 5월 20일, DMZ 수색작전 도중 군견이 미확인 지뢰를 건드려 폭발사고가 일어났고, 본인도 몸에 지뢰파편이 박히는 중상을 입었지만 추가 사고를 막기 위해 침착하게 중대원들을 대피시켰다.
- 이선우 : 보병, 임관식에서 대통령상 수상, 대구 경원고 졸업
- 김인수 : 기갑, 국무총리상 수상, 경기 창형고 졸업
- 김상목 : 보병, 국방부장관상 수상, 경북고 졸업
- 배기옥 : 보병, 합참의장상 수상, 전남 해룡고 졸업
- 정성훈 : 보병, 참모총장상 수상, 전남 여수고 졸업
- 이준학 : 포병, 군사령관상 수상, 서울 상문고 졸업
- 이병창 : 정보, 학교장상 수상, 충남 예산고 졸업
- 최형진 : 보병, 대표화랑상 수상
54. 54기
1994년에 입학했고 1998년에 임관했다. 2020년부터 대령으로 진급했다.
- 김성제 : 임관식에서 대통령상 수상. 광주 동신고 졸업.
- 이창호 : 대표화랑상. 대구 경신고 졸업.
- 임동찬 : 미국 웨스트포인트 유학. 대전 서일고 졸업.
55. 55기
1995년에 입학했고 1999년에 임관했다. 2021년부터 대령으로 진급예정이다.
- 최정원 : 기갑, 임관식에서 대통령상 수상
- 이상준 : 보병, 대표화랑상
- 임정교 : 포병, 합동군사대학 단기 육군과정 합참의장상 수상
56. 56기
57. 57기
1997년에 입학했고 2001년에 임관했다. 2018년부터 중령으로 진급했다.
- 양준혁 : 임관식에서 대통령상 수상, 인천고 졸업
- 강지석 : 국무총리상 수상, 부산 해운대고 졸업
58. 58기
1998년에 입학했고 2002년에 임관했다. 처음으로 여성 사관생도를 받아들인 기수이다. 2019년부터 중령으로 진급했다.
- 유영재 : 2008년 헬기 추락사고로 순직한 선효선 소령(국군간호사관학교 43기)의 남편
- 최준혁 : 육사 졸업식에서 합참의장상을 수상하며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26사 신교대, 육사, 수방사 등에서 근무했고 합동군사대학교 합동고급과정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 권성이 : 28사단 돌풍연대 대대장. 여군 최초의 전방부대 대대장.
- 오홍상 : 임관식에서 대통령상 수상
- 김복찬 : 제5포병여단 작전참모
59. 59기
1999년에 입학했고 2003년에 임관했다. 졸업 4년 전 입교한 여생도 25명 전원이 중도 탈락없이 소위 계급장을 달았다. 2020년부터 중령으로 진급했다.
- 박신애 : 여자 수석입학, 보병 고군반 1등(대위), 합동군사대학교 합동기본 정규과정 대통령상 수상(여군 최초 수석, 소령), 부산 동래여고(학생회장) 졸업
- 정근홍 : 육군사관학교 물리화학과 교수
- 임성훈 : 임관식에서 대통령상 수상, 부산 충렬고 졸업
- 김광동 : 국무총리상 수상, 안동고 졸업
- 강완희 : 국방부장관상 수상, 경기 성일고 졸업
- 우현우 : 대표화랑상 수상, 경남 창원고 졸업
- 김은비 : 유엔군사령관상 수상, 광명 진성고 졸업
60. 60기
2000년에 입학했고 2004년에 임관했다. 2021년부터 중령으로 진급예정이다.
- 강대현 : 임관식에서 대통령상 수상
- 이광현 : 대표화랑상, 보병, 수원 수성고 졸업
- 권성미 : 보병, 4등상(합참의장상) 수상, 자매 육사졸업생[259], 경북과학고 졸업
- 유경화(女) : 정훈, 14등상(멕시코 육군사령관상) 수상, 무도실력 6단, 안양고 졸업
- 임여진 : 육사 개교 이래 첫 3부자녀 직업군인[260], 의정부여고 졸업
- 이승호 : 부자 육사 동문, 생도 시절 9회에 걸친 해외여행에서 12개국 방문, 대일외국어고 졸업
- 안성화
- 허진
- 김해용
- 이장형
- 김현정
- 전현수 : 미국 웨스트포인트 유학
- 이욱현 : 프랑스 육사 유학
- 장형익 : 일본 방위대학교 유학
- 김진우 : 터키 육사 유학
- 나웅하
- 박준걸
- 오제희
- 이영재
- 임시온
- 정건호
- 정민희
- 김기진
- 신윤철
- 조현기
- 고시우
- 김윤환
- 서무열
- 유재환
- 서 현
- 이용수
- 황준호
- 차태성
- 김승화
- 윤비나
- 조상목
61. 61기
2001년에 입학했고 2005년에 임관했다. 이 해에 처음으로 대통령이 육사 졸업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2016년부터 소령으로 진급했다.
- 황원중 : 보병, 아산 온양고 졸업. 대통령상 수상(수석졸업).
- 이용경 : 보병, 서울외고 졸업. 대표화랑상 수상.
- 조현조 : 보병, 공주 한일고 졸업
- 신윤태 : 기갑, 광주 동신고 졸업
- 구본철 : 보병, 대구 달성고 졸업
- 백찬영 : 정보, 포항고 졸업
- 우승진 : 정보, 서울 중앙고 졸업
- 이종환 : 정보
- 황성훈 : 보병
- 장정우 : 보병
- 고진영 : 경리
- 하동훈
- 권영상
- 차용환 : 독일 육사 유학
- 김정환 : 프랑스 육사 유학
- 김지연(女) : 화학, 의정부여고 졸업
- 배상미(女) : 정훈
- 정민(女) : 경리
62. 62기
2002년에 입학했고 2006년에 임관했다. 2017년부터 소령으로 진급했다.
- 김용우 : 27기인 김장수 예비역 대장의 아들. 프랑스 육사 위탁생 출신인 그는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가 되었는데 동명이인이 본인의 육사 23기수 선배(육사39기)이자 문재인 정부 첫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이다(...) 복싱과 헬스를 취미삼아 한다고 한다.
- 서동현 : 임관식에서 대통령상 수상
- 문 권 : 국무총리상 수상
- 이운웅 : 변호사(서울대 로스쿨 5기), 합참의장상 수상
- 유준호
- 서진식
- 양희식
- 오동진
- 유찬욱
터키의 비르칸 생도는 4년간 한국 육사 교육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사상 첫 외국 수탁생이다.
63. 63기
2003년에 입학했고 2007년에 임관했다. 2018년부터 소령으로 진급했다.
- 조성환 : 임관식에서 대통령상 수상, 현재 육군사관학교 전자공학과 교수
- 설인환 : 국무총리상 수상
- 마동혁 : 국방부장관상 수상
- 김재만 : 합참의장상 수상
- 이재훈 : 통신[263]
64. 64기
2004년에 입학했고 2008년에 임관했다. 2019년부터 소령으로 진급했다.
- 이석 소령 : 前 합참의장 이순진 대장의 아들.
- 조홍래 소령 : 육군사관학교 개교 이래 최초로 대통령상과 대표화랑상을 동시에 수상함.
- 박선욱 소령 : 박정인 전 3사단장의 장손이다.
65. 65기
66. 66기
2006년에 입학했고 2010년에 임관했다. 2021년부터 소령으로 진급예정이다.
서창원 대통령상 보병
윤대화 국무총리상 보병
김민식 육사 교수
장시호 보병
김성홍 보병
황경진 보병
최민호 군의
김태현 보병
이지연 보병
박정민 보병
정세영 보병
부혁진 보병
최수연 정보
서창원 대통령상 보병
윤대화 국무총리상 보병
김민식 육사 교수
장시호 보병
김성홍 보병
황경진 보병
최민호 군의
김태현 보병
이지연 보병
박정민 보병
정세영 보병
부혁진 보병
최수연 정보
67. 67기
2007년에 입학했고 2011년에 임관했다. 2014년부터 대위로 진급했다.
68. 68기
89년생이 주류. 2008년에 입학했고 2012년에 임관했다. 졸업자는 199명(남 179, 여 20). 관련기사 2015년부터 대위로 진급했다.
- 백인준 : 대표화랑상
- 서경준 : 국무총리상
- 윤가희 : 첫 번째 여성 생도 대통령상(수석졸업)
69. 69기
90년생이 주류이며, 2009년에 입학했고 2013년에 임관했다. 졸업자는 205명. 관련기사 2016년부터 대위로 진급했다.
- 김용 : 국무총리상
- 양주희 : 두 번째 여성 생도 대통령상(2년 연속 여성생도 수석졸업)[265]
- 윤성원 : 대표화랑상
- 윗사루 루왕스리 : 태국 출신 수탁생도(아버지가 육군 중령)
70. 70기
91년생이 주류이며, 2010년에 입학했고 2014년에 임관했다. 졸업자는 198명 임관.(남 178, 여 20) 관련기사, 2017년부터 대위로 진급하기 시작했다.
- 김수찬(남) : 대통령상.(수석졸업) 1991년생. 현재 육군사관학교에서 무기시스템공학 교수(대위)로 복무 중.
- 강은정(여) : 국무총리상.(차석졸업) 1990년생으로 재수해서 육사에 입학했다.
- 최영환(남) : 1991년생. 사관생도로는 처음으로 건축시공대전 최우수상 수상.
71. 71기
72. 72기
2012년에 입학했고 2016년에 임관했다. 2019년부터 대위로 진급하기 시작했다.
73. 73기
74. 74기
75. 75기
2015년에 입학했고 2019년에 임관하였다. 현재 중위로 복무중이다. 아래는 육사 건립후 이례적으로 중위 1년 차에 진급 확정이 되어 2022년부터 대위로 진급 예정이다.
- 박인환
- 한은성 (前 합참의장 김종오 대장의 손자)
- 이하민
76. 76기
2016년에 입학했고 2020년에 임관하였다. 현재 소위로 복무중이다.
77. 77기
2017년에 입학했고 2021년 3월에 임관할 예정이다. 현재 4학년으로, 임관 및 졸업을 앞두고 있다.
78. 78기
2018년에 입학했고 2022년 3월에 임관할 예정이다. 현재 3학년이다.
79. 79기
2019년에 입학했고 2023년 3월에 임관할 예정이다. 현재 2학년이다.
80. 80기
2020년에 입학했고 2024년 3월에 임관할 예정이다. 현재 1학년이다.
81. 81기
2021년에 입학예정이다.
82. 역대 대통령상, 대표화랑상 수상자
대통령상은 졸업성적이 가장 높은 수석졸업생에게 수상되고, 대표화랑상은 성적, 체력, 훈육, 생도생활 등을 종합평가하여 가장 우수한 졸업생에게 수상되는데 주로 연대장생도(여단장생도)를 역임한 졸업생이 수상한다. 대통령상과 대표화랑상을 수상한 졸업생은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있는 백년탑이라는 기념물에 이름이 새겨진다.
11기 : 대통령상 김성진
12기 : 대통령상 이병간
13기 : 대통령상 장기철, 대표화랑상 정일성
14기 : 대통령상 박희용, 대표화랑상 박동원
15기 : 대통령상 양창현, 대표화랑상 신대진
16기 : 대통령상 정형식, 대표화랑상 최평욱
17기 : 대통령상 김동진, 대표화랑상 김진영
18기 : 대통령상 조성환, 대표화랑상 황원탁
19기 : 대통령상 이종원, 대표화랑상 이 준
20기 : 대통령상 윤여길, 대표화랑상 이현부
21기 : 대통령상 홍순용, 대표화랑상 서장원
22기 : 대통령상 심창섭, 대표화랑상 강재수
23기 : 대통령상 온창일, 대표화랑상 이 재
24기 : 대통령상 최승의, 대표화랑상 김덕중
25기 : 대통령상 김순효, 대표화랑상 안광찬
26기 : 대통령상 송운호, 대표화랑상 김창호
27기 : 대통령상 김종훈, 대표화랑상 신응수
28기 : 대통령상 김병관, 대표화랑상 이성규
29기 : 대통령상 박명진, 대표화랑상 이강호
30기 : 대통령상 임웅환, 대표화랑상 이현중
31기 : 대통령상 임성택, 대표화랑상 임치규
32기 : 대통령상 정승조, 대표화랑상 최진학
33기 : 대통령상 김종수, 대표화랑상 김돈수
34기 : 대통령상 이장송, 대표화랑상 박종래
35기 : 대통령상 남인우, 대표화랑상 최승주
36기 : 대통령상 김춘도, 대표화랑상 김용빈
37기 : 대통령상 김권희, 대표화랑상 고장호
38기 : 대통령상 최영윤, 대표화랑상 이창형
39기 : 대통령상 장경석, 대표화랑상 이형국
40기 : 대통령상 성인용, 대표화랑상 김호익
41기 : 대통령상 이희범, 대표화랑상 김병묵
42기 : 대통령상 장진섭, 대표화랑상 정동영
43기 : 대통령상 심상선, 대표화랑상 홍장원
44기 : 대통령상 김현종, 대표화랑상 박일송
45기 : 대통령상 조창래, 대표화랑상 허태근
46기 : 대통령상 최인수, 대표화랑상 김대욱
47기 : 대통령상 함형필, 대표화랑상 이춘주
48기 : 대통령상 김성민, 대표화랑상 손광제
49기 : 대통령상 석용규, 대표화랑상 류승민
50기 : 대통령상 정 관, 대표화랑상 윤만영
51기 : 대통령상 곽태신, 대표화랑상 하형호
52기 : 대통령상 이진우, 대표화랑상 김주희
53기 : 대통령상 이선우, 대표화랑상 최형진
54기 : 대통령상 김성제, 대표화랑상 이창호
55기 : 대통령상 최정원, 대표화랑상 이상준
56기 : 대통령상 김병석, 대표화랑상 탁희철
57기 : 대통령상 양준혁, 대표화랑상 이상훈
58기 : 대통령상 오홍상, 대표화랑상 조종희
59기 : 대통령상 임성훈, 대표화랑상 우현우
60기 : 대통령상 강대현, 대표화랑상 이광현
61기 : 대통령상 황원중, 대표화랑상 이용경
62기 : 대통령상 서동현, 대표화랑상 이상협
63기 : 대통령상 조성환, 대표화랑상 이원용
64기 : 대통령상, 대표화랑상 조홍래[267]
65기 : 대통령상 정태희, 대표화랑상 이익현
66기 : 대통령상 서창원, 대표화랑상 유준성
67기 : 대통령상 이승준, 대표화랑상 하정훈
68기 : 대통령상 윤가희[268], 대표화랑상 백인준
69기 : 대통령상 양주희, 대표화랑상 윤성원
70기 : 대통령상 김수찬, 대표화랑상 기형관
71기 : 대통령상 김승태, 대표화랑상 송형석
72기 : 대통령상 전영준, 대표화랑상 전다훈
73기 : 대통령상 이은애, 대표화랑상 조성래
74기 : 대통령상 이도현, 대표화랑상 권남기
75기 : 대통령상 이하민, 대표화랑상 김정균
76기 : 대통령상 나호선, 대표화랑상 이지홍
11기 : 대통령상 김성진
12기 : 대통령상 이병간
13기 : 대통령상 장기철, 대표화랑상 정일성
14기 : 대통령상 박희용, 대표화랑상 박동원
15기 : 대통령상 양창현, 대표화랑상 신대진
16기 : 대통령상 정형식, 대표화랑상 최평욱
17기 : 대통령상 김동진, 대표화랑상 김진영
18기 : 대통령상 조성환, 대표화랑상 황원탁
19기 : 대통령상 이종원, 대표화랑상 이 준
20기 : 대통령상 윤여길, 대표화랑상 이현부
21기 : 대통령상 홍순용, 대표화랑상 서장원
22기 : 대통령상 심창섭, 대표화랑상 강재수
23기 : 대통령상 온창일, 대표화랑상 이 재
24기 : 대통령상 최승의, 대표화랑상 김덕중
25기 : 대통령상 김순효, 대표화랑상 안광찬
26기 : 대통령상 송운호, 대표화랑상 김창호
27기 : 대통령상 김종훈, 대표화랑상 신응수
28기 : 대통령상 김병관, 대표화랑상 이성규
29기 : 대통령상 박명진, 대표화랑상 이강호
30기 : 대통령상 임웅환, 대표화랑상 이현중
31기 : 대통령상 임성택, 대표화랑상 임치규
32기 : 대통령상 정승조, 대표화랑상 최진학
33기 : 대통령상 김종수, 대표화랑상 김돈수
34기 : 대통령상 이장송, 대표화랑상 박종래
35기 : 대통령상 남인우, 대표화랑상 최승주
36기 : 대통령상 김춘도, 대표화랑상 김용빈
37기 : 대통령상 김권희, 대표화랑상 고장호
38기 : 대통령상 최영윤, 대표화랑상 이창형
39기 : 대통령상 장경석, 대표화랑상 이형국
40기 : 대통령상 성인용, 대표화랑상 김호익
41기 : 대통령상 이희범, 대표화랑상 김병묵
42기 : 대통령상 장진섭, 대표화랑상 정동영
43기 : 대통령상 심상선, 대표화랑상 홍장원
44기 : 대통령상 김현종, 대표화랑상 박일송
45기 : 대통령상 조창래, 대표화랑상 허태근
46기 : 대통령상 최인수, 대표화랑상 김대욱
47기 : 대통령상 함형필, 대표화랑상 이춘주
48기 : 대통령상 김성민, 대표화랑상 손광제
49기 : 대통령상 석용규, 대표화랑상 류승민
50기 : 대통령상 정 관, 대표화랑상 윤만영
51기 : 대통령상 곽태신, 대표화랑상 하형호
52기 : 대통령상 이진우, 대표화랑상 김주희
53기 : 대통령상 이선우, 대표화랑상 최형진
54기 : 대통령상 김성제, 대표화랑상 이창호
55기 : 대통령상 최정원, 대표화랑상 이상준
56기 : 대통령상 김병석, 대표화랑상 탁희철
57기 : 대통령상 양준혁, 대표화랑상 이상훈
58기 : 대통령상 오홍상, 대표화랑상 조종희
59기 : 대통령상 임성훈, 대표화랑상 우현우
60기 : 대통령상 강대현, 대표화랑상 이광현
61기 : 대통령상 황원중, 대표화랑상 이용경
62기 : 대통령상 서동현, 대표화랑상 이상협
63기 : 대통령상 조성환, 대표화랑상 이원용
64기 : 대통령상, 대표화랑상 조홍래[267]
65기 : 대통령상 정태희, 대표화랑상 이익현
66기 : 대통령상 서창원, 대표화랑상 유준성
67기 : 대통령상 이승준, 대표화랑상 하정훈
68기 : 대통령상 윤가희[268], 대표화랑상 백인준
69기 : 대통령상 양주희, 대표화랑상 윤성원
70기 : 대통령상 김수찬, 대표화랑상 기형관
71기 : 대통령상 김승태, 대표화랑상 송형석
72기 : 대통령상 전영준, 대표화랑상 전다훈
73기 : 대통령상 이은애, 대표화랑상 조성래
74기 : 대통령상 이도현, 대표화랑상 권남기
75기 : 대통령상 이하민, 대표화랑상 김정균
76기 : 대통령상 나호선, 대표화랑상 이지홍
83. 관련문서
[1] 전두환이 장태완, 정병주, 김진기를 붙잡기 위하여 요정으로 초대하는데 정병주 장군(배우: 민욱)이 요정에 도착 후 차에서 내리는 씬[2] 윤성민이 진압 과정에서 반란군에 유화적이었던 점, 호남 출신이라는 점이 고려되어 회유 대상이 되었다. 윤성민은 이후 전두환 정권에서 1군사령관, 합참의장, 국방부장관을 역임한다.[3] 윤성민이 진압 과정에서 반란군에 유화적이었던 점, 호남 출신이라는 점이 고려되어 회유 대상이 되었다. 윤성민은 이후 전두환 정권에서 1군사령관, 합참의장, 국방부장관을 역임한다.[4] 반란 직후 논공행상과 반대파 숙청 작업을 했던 6인 위원회(전두환, 노태우, 황영시, 유학성, 차규헌, 김윤호)의 1인이다.[5] 12.12 군사반란 당시 하나회에 반기를 들었던 9공수 여단장 윤흥기 장군의 형[6] 반란 직후 논공행상과 반대파 숙청 작업을 했던 6인 위원회(전두환, 노태우, 황영시, 유학성, 차규헌, 김윤호)의 1인이다.[7] 12.12 군사반란 당시 하나회에 반기를 들었던 9공수 여단장 윤흥기 장군의 형[8] 생도 1기는 그나마 교육을 거의 마치고 임관을 앞둔 기수임에 반해 생도 2기는 아직 이등병이나 다름없는데 채병덕은 뒷날에 대한 생각도 없이 소중한 장교 재원들을 총알받이로 갈아버린 것이다. 패전 직전의 일본군도 이런 짓은 하지 않았다.[9] 노태우의 부인 김옥숙의 오빠, 즉 노태우의 손윗처남이다.[10] 노태우의 부인 김옥숙의 오빠, 즉 노태우의 손윗처남이다.[11] 박정희의 총애를 바탕으로 초기에는 전두환보다도 더 잘나가는 실력자였다. 윤필용 사건에서 전두환, 노태우가 하나회 주도권을 쟁취하고자 자신을 배신하고 모함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전두환이 이 사건에서 윤필용과 손영길이 숙청되는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은 여러 정황으로 확인된다.[12] 박정희의 총애를 바탕으로 초기에는 전두환보다도 더 잘나가는 실력자였다. 윤필용 사건에서 전두환, 노태우가 하나회 주도권을 쟁취하고자 자신을 배신하고 모함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전두환이 이 사건에서 윤필용과 손영길이 숙청되는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은 여러 정황으로 확인된다.[13] 당시 50사단장으로 지방에 근무했기 때문에 12.12 군사반란 당일에는 빠졌으나, 반란이 끝난 다음날 새벽에 반란군에 합류했다. 본인은 반란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14] 당시 50사단장으로 지방에 근무했기 때문에 12.12 군사반란 당일에는 빠졌으나, 반란이 끝난 다음날 새벽에 반란군에 합류했다. 본인은 반란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15] 하나회 12기로 전두환 정권 초기 실세로 군림한 박세직, 박준병, 박희도를 일컫는다[16] 반란 당시 휘하 20사단이 서울로 출동하지 않아 후일 12.12. 군사반란에 대한 처벌을 피했다. 본인은 전두환의 명령을 거부했다고 하는데 진실은 저 너머에.[17]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유혈 점령한 박희도의 1공수, 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 정병주를 유혈 체포한 최세창의 3공수와 달리 당일 장기오의 5공수는 효창 운동장에서 예비대로 대기했다. [18] 하나회 12기로 전두환 정권 초기 실세로 군림한 박세직, 박준병, 박희도를 일컫는다[19] 반란 당시 휘하 20사단이 서울로 출동하지 않아 후일 12.12. 군사반란에 대한 처벌을 피했다. 본인은 전두환의 명령을 거부했다고 하는데 진실은 저 너머에.[20]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유혈 점령한 박희도의 1공수, 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 정병주를 유혈 체포한 최세창의 3공수와 달리 당일 장기오의 5공수는 효창 운동장에서 예비대로 대기했다. [21] 휠체어 신세임에도 불구하고 이후 소장까지 달고 예편했다. 반란군에 대한 복지는 참 가관일 따름이다.[22] NO.1 경호실장 차지철이 김재규에 피살, NO.2 경호차장 이재전이 직무유기 혐의로 구속, NO.3 경호차장보 김복동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좌천되는 바람에 NO.4인 정동호가 3계급을 뛰어넘어 경호실장 직무를 대리하고 있었다. 경호실장 직무를 맡은 인간이 반란군 수괴의 지시에 따라 대통령을 사실상 감금했다.[23] 휠체어 신세임에도 불구하고 이후 소장까지 달고 예편했다. 반란군에 대한 복지는 참 가관일 따름이다.[24] NO.1 경호실장 차지철이 김재규에 피살, NO.2 경호차장 이재전이 직무유기 혐의로 구속, NO.3 경호차장보 김복동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좌천되는 바람에 NO.4인 정동호가 3계급을 뛰어넘어 경호실장 직무를 대리하고 있었다. 경호실장 직무를 맡은 인간이 반란군 수괴의 지시에 따라 대통령을 사실상 감금했다.[25] 재학 시절 이춘구, 안무혁, 배명국, 이종구 등 하나회 멤버들과 절친이었고 훗날 이춘구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회의 대부 이종구는 이 인연을 기반으로 MB 정권에서 국방 정책에 영향력을 끼쳤다.[26] 재학 시절 이춘구, 안무혁, 배명국, 이종구 등 하나회 멤버들과 절친이었고 훗날 이춘구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회의 대부 이종구는 이 인연을 기반으로 MB 정권에서 국방 정책에 영향력을 끼쳤다.[27] 자신의 잘못을 비판하는 장태완(갑종 출신)을 자신은 정규 육사 출신이라며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대놓고 깔보며 항명했다. 전두환의 하나회와 장태완의 악연의 장렬한 시작이었다.[28] 노태우의 9공수여단장, 9사단장 재임 시절 직속 부하들로 이루어진 군맥으로 노태우 정권에서 크게 중용되었다.[29] 자신의 잘못을 비판하는 장태완(갑종 출신)을 자신은 정규 육사 출신이라며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대놓고 깔보며 항명했다. 전두환의 하나회와 장태완의 악연의 장렬한 시작이었다.[30] 노태우의 9공수여단장, 9사단장 재임 시절 직속 부하들로 이루어진 군맥으로 노태우 정권에서 크게 중용되었다.[31] 허화평을 위해 만들어진 자리로 전무후무한 자리였다.[32] 허화평을 위해 만들어진 자리로 전무후무한 자리였다.[33] 17기의 후임 기수 대장들인 1군사령관 조남풍, 3군사령관 구창회는 모두 하나회 핵심 멤버여서, 부득이하게 동기인 김동진을 올렸다.[34] 휘하 9사단의 불법 출동 소식을 접한 3군사령관 이건영이 전화를 걸어 사실이냐고 묻자 그런 일 없다고 여러 번 발뺌하고, 출동하지 말라고 재차 지시했음에도 계속 출동시켰다.[35] 당시 인사참모부장-수방사령관-기무사령관-3군사령관이라는 그야말로 최강 진급 코스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차기 참모총장으로 매우 유력했다.[36] 하나회 대숙청의 시작이었던 김진영 참모총장 전격 해임 후 약 1년 뒤인 1994년 4월 해임되었다.[37] 통상 3차만 넘어가도 진급하기가 힘든데 무려 7차다. 독보적인 기록.[38] 휘하 9사단의 불법 출동 소식을 접한 3군사령관 이건영이 전화를 걸어 사실이냐고 묻자 그런 일 없다고 여러 번 발뺌하고, 출동하지 말라고 재차 지시했음에도 계속 출동시켰다.[39] 당시 인사참모부장-수방사령관-기무사령관-3군사령관이라는 그야말로 최강 진급 코스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차기 참모총장으로 매우 유력했다.[40] 하나회 대숙청의 시작이었던 김진영 참모총장 전격 해임 후 약 1년 뒤인 1994년 4월 해임되었다.[41] 통상 3차만 넘어가도 진급하기가 힘든데 무려 7차다. 독보적인 기록.[42] 다른 기수로는 최근 기수인 35기와 37기, 38기, 40기가 있다. 35기는 두 명의 대장이 있었는데 신현돈은 음주 추태로 예편당했고, 합참의장이 유력하던 박선우는 충격과 공포의 '3사 출신 이순진 합참의장 내정'이라는 대이변이 일어나 영전 없이 예편해야 했다. 37기는 2작전사령관 박찬주의 공관병 갑질로 인해 나머지 1,3야전사령관도 교체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38기는 임호영이 2016년 9월에 대장으로 진급했으나 알자회 회원인 것이 확인되어 정권 교체 3개월만에 강제예편되었으며 나머지 중장급 동기들도 39, 40기의 대장 진급으로 인해 예편되었다. 40기는 바로 윗기수 선배들이 알자회 퇴출 때 한목소리를 낸 것 때문에 대장 진급자도 배출 못할 뻔 했으나 정권이 바뀌고 구사일생으로 김병주, 김운용이 대장 진급을 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비육사 출신 우대 기조로 인해 합참의장과 육참총장으로의 진출을 하지 못했다.[43] 확실하진 않으나 상황실에서 반란군에 협력한 정황이 있다.[44] 본인은 하나회가 아니라고 주장해서 하나회 1차 숙청 때 살아남아 대장으로 진급했으나 결국 40일만에 예편되었다. 본인은 하나회가 아니라고 하지만 12.12 군사반란 이후 무척 애를 써 뒤늦게 하나회에 가입한 정황이 있다.[45] 확실하진 않으나 상황실에서 반란군에 협력한 정황이 있다.[46] 본인은 하나회가 아니라고 주장해서 하나회 1차 숙청 때 살아남아 대장으로 진급했으나 결국 40일만에 예편되었다. 본인은 하나회가 아니라고 하지만 12.12 군사반란 이후 무척 애를 써 뒤늦게 하나회에 가입한 정황이 있다.[47] 하나회 20기 멤버로 거론되나 오늘날까지 진위가 불분명하다.[48] 現 국방대학교 총장.[49] 하나회 20기 멤버로 거론되나 오늘날까지 진위가 불분명하다.[50] 現 국방대학교 총장.[51] 소란을 피운 다음날 당시 이양호 합참의장에게 사과해서 별 일 없을 줄 알았으나, 결국 청와대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일벌백계의 대상으로 이충석은 군복을 벗게 되었다.[52] 소란을 피운 다음날 당시 이양호 합참의장에게 사과해서 별 일 없을 줄 알았으나, 결국 청와대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일벌백계의 대상으로 이충석은 군복을 벗게 되었다.[53] 12.12 군사 반란 관련자이나 하나회 멤버는 아니다.[54] 군소 정당을 차려 기호 9번으로 출마하여 유명해졌다. 대선에서는 최저득표율로 낙선하는 굴욕을 겪었다.[55] 12.12 군사 반란 관련자이나 하나회 멤버는 아니다.[56] 군소 정당을 차려 기호 9번으로 출마하여 유명해졌다. 대선에서는 최저득표율로 낙선하는 굴욕을 겪었다.[57] 1980년 12월 29일의 추운 겨울이였다.[58] 1980년 12월 29일의 추운 겨울이였다.[59] 2018년 3월 9일 지병으로 별세.[60] 2018년 3월 9일 지병으로 별세.[61] 건군 56주년(2004년)[62] 건군 56주년(2004년)[63]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인한 시장직 상실.[64]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인한 시장직 상실.[65] 박근혜 정부 시절 역임[66] 박근혜 정부 시절 역임[67] 백승도, 최광준, 김형수 준장[68] 백승도, 최광준, 김형수 준장[69] 육군 역사상 최고의 작전통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천안함 피격사건당시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재직중이었기 때문에 진급을 하지 못하고 이에 대한 책임으로 예편해야만 했다. 여담으로 선친이 교회의 장로였고, 친형과 친동생이 목사고, 친동생은 군목으로 15년 동안 복무하였었다. 전역 후 황중선 장군 본인도 교회장로로 활동하는 듯하다.[70] 육군 역사상 최고의 작전통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천안함 피격사건당시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재직중이었기 때문에 진급을 하지 못하고 이에 대한 책임으로 예편해야만 했다. 여담으로 선친이 교회의 장로였고, 친형과 친동생이 목사고, 친동생은 군목으로 15년 동안 복무하였었다. 전역 후 황중선 장군 본인도 교회장로로 활동하는 듯하다.[71] 대개 군수사령관을 하고, 전역을 하지만 이봉원 장군은 전역을 하지 않고, 육사교장을 하고, 전역하였다.[72] 대개 군수사령관을 하고, 전역을 하지만 이봉원 장군은 전역을 하지 않고, 육사교장을 하고, 전역하였다.[73] 정승조 장군과 고향 불알친구로서 중학교(전북 백산중), 고등학교(전북 백산고), 대학교(육사)도 동창이다. 정승조 장군과 소장(사단장)까지는 모두 같이 진급하였으나 장종대 장군은 더 이상 진급하지 못하고, 2009년 12월 소장으로 전역하였다. [74] 정승조 장군과 고향 불알친구로서 중학교(전북 백산중), 고등학교(전북 백산고), 대학교(육사)도 동창이다. 정승조 장군과 소장(사단장)까지는 모두 같이 진급하였으나 장종대 장군은 더 이상 진급하지 못하고, 2009년 12월 소장으로 전역하였다. [75] 사실 이 때부터 정부조직법 개정에 대한 떡밥이 있었고, 국민안전처에 대한 구상과 계획이 어느정도 완료되었기 때문에 이성호 장군을 안전행정부 2차관으로 임명한 듯하다.[76] 사실 이 때부터 정부조직법 개정에 대한 떡밥이 있었고, 국민안전처에 대한 구상과 계획이 어느정도 완료되었기 때문에 이성호 장군을 안전행정부 2차관으로 임명한 듯하다.[77] 윤일병 사건으로 사실상 자진전역 하였다.[78] 윤일병 사건의 지휘책임으로 경질되었다.[79] 윤일병 사건으로 사실상 자진전역 하였다.[80] 윤일병 사건의 지휘책임으로 경질되었다.[81] 최익봉 특전사령관이 여군하사 성군기 문제로 보직해임 당했을 때 특전사 부사령관 윤광섭 장군이 직무대리를 했었다.[82] 최익봉 특전사령관이 여군하사 성군기 문제로 보직해임 당했을 때 특전사 부사령관 윤광섭 장군이 직무대리를 했었다.[83] 육사 6기이자 백골부대장으로 유명했던 박정인 장군의 자서전에서는 육사 6기는 5.16 쿠데타에 참여하지 않았고, 박경원 같은 유능한 장군이 일찍이 공직분야로 차출되는 바람에 대장을 배출하지 못했다고 써져 있다. 또한 육사 5기와 육사 8기가 주축이 된 5.16이기 때문에 낀세대(?)인 육사 6기는 찬밥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84] 특별경계태세 기간 중 음주 논란으로 전역조치됐다.[85] 특별경계태세 기간 중 음주 논란으로 전역조치됐다.[86] 박근혜 정부 시절 역임.[87] 황인무 장군이 32사단장까지는 진급라인을 잘 탔으나 소장 2차보직을 육군대학 총장으로 발령받음으로써 꼬이게 되었다. 또한 중장 1차보직이 육군교육사령관이었는데 이것이 군단장급 야전지휘관을 역임하지 못한게 되어 13년 말 1군사령관 자리를 놓고, 동기생 신현돈 장군과 경합을 벌였으나 대장진급에 실패하고 예편하였다.[88] 여담이지만 2015년 11월 20일 대전광역시 유성구 지족동에 있는 황인무 차관의 자택에서 화재가 나서 소방서 추산 900여 만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당시 자택에 황인무 차관의 사모님이 계셨지만 다행이도 대학병원에서 안정을 취하면 회복될 수준의 부상을 입었었다.[89] 국방부 차관 시절에 사드가 설치되는 성주군에 내려가 상주와 성주를 헷갈리는 말실수를 해서 욕을 먹었다.[90] 독일 보훔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91] 육군사관학교 여생도 성폭행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92] 박근혜 정부 시절 역임.[93] 황인무 장군이 32사단장까지는 진급라인을 잘 탔으나 소장 2차보직을 육군대학 총장으로 발령받음으로써 꼬이게 되었다. 또한 중장 1차보직이 육군교육사령관이었는데 이것이 군단장급 야전지휘관을 역임하지 못한게 되어 13년 말 1군사령관 자리를 놓고, 동기생 신현돈 장군과 경합을 벌였으나 대장진급에 실패하고 예편하였다.[94] 여담이지만 2015년 11월 20일 대전광역시 유성구 지족동에 있는 황인무 차관의 자택에서 화재가 나서 소방서 추산 900여 만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당시 자택에 황인무 차관의 사모님이 계셨지만 다행이도 대학병원에서 안정을 취하면 회복될 수준의 부상을 입었었다.[95] 국방부 차관 시절에 사드가 설치되는 성주군에 내려가 상주와 성주를 헷갈리는 말실수를 해서 욕을 먹었다.[96] 독일 보훔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97] 육군사관학교 여생도 성폭행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98] 1991년에 방공포병이 공군으로 전군함에 따라 공군으로 전군되었다.[99] 1991년에 방공포병이 공군으로 전군함에 따라 공군으로 전군되었다.[100] 참고로 하나회의 마지막 생존자이다. 나머지는 YS때 강제예편 당하기도 하고 정년을 맞아 전역한 경우도 있고....여하튼 김현집 장군을 마지막으로 모두 전역했다.[101] 참고로 하나회의 마지막 생존자이다. 나머지는 YS때 강제예편 당하기도 하고 정년을 맞아 전역한 경우도 있고....여하튼 김현집 장군을 마지막으로 모두 전역했다.[102] 임기제 진급을 2번 한 독특한 이력이 있음.[103] 문재인 정부에서 역임.[104] 문재인 정부에서 역임.[105] 문재인 정부에서 역임.[106] 임기제 진급을 2번 한 독특한 이력이 있음.[107] 문재인 정부에서 역임.[108] 문재인 정부에서 역임.[109] 문재인 정부에서 역임.[110] 인사사령관도 바라봤으나 1기수 후배인 이재수에게 밀려서 한직인 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 조직위원장을 지냈다.[111] 기무사령관을 소장 계급으로 지냈다. 2013년 10월에 취임 6개월 만에 경질되었다고. 장군 인사 당시에 기무사 직원들은 그가 중장으로 정식 진급할 줄 알고 꽃다발까지 준비했는데 한 기수 후임인 이재수 중장의 기무사 보임이 결정되었고 장 소장은 이임식도 하지 않고 전역했다. 참모장이었던 김선일 준장(육사 40기)도 전역했다. 기무사 간부는 거의 대부분이 싹 다 갈려나갔다고. 김관진 안보실장의 사조직 이슈 건 때문에 대통령 독대보고를 하려 하였으나 만나주지 않자(...)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대신 보고를 하였는데, 김기춘이 김관진에게 사실여부를 물어보면서 김관진에게 괘씸죄로 찍힌 것. 그때문에 쌓인것이 어지간히 많은게 아닌지 문재인 후보를 전격적으로 지지하게 된다.[112] 인사사령관도 바라봤으나 1기수 후배인 이재수에게 밀려서 한직인 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 조직위원장을 지냈다.[113] 기무사령관을 소장 계급으로 지냈다. 2013년 10월에 취임 6개월 만에 경질되었다고. 장군 인사 당시에 기무사 직원들은 그가 중장으로 정식 진급할 줄 알고 꽃다발까지 준비했는데 한 기수 후임인 이재수 중장의 기무사 보임이 결정되었고 장 소장은 이임식도 하지 않고 전역했다. 참모장이었던 김선일 준장(육사 40기)도 전역했다. 기무사 간부는 거의 대부분이 싹 다 갈려나갔다고. 김관진 안보실장의 사조직 이슈 건 때문에 대통령 독대보고를 하려 하였으나 만나주지 않자(...)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대신 보고를 하였는데, 김기춘이 김관진에게 사실여부를 물어보면서 김관진에게 괘씸죄로 찍힌 것. 그때문에 쌓인것이 어지간히 많은게 아닌지 문재인 후보를 전격적으로 지지하게 된다.[114] 육사 37기 중 1차로 중장 진급한 2인 중1인. 이후 21대 총선에서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115] 육사 37기 중 1차로 중장 진급한 2인 중1인. 이후 21대 총선에서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116] 육군군수사령관 후보에 올랐으나 낙선되었고, 그 후로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전역을 했거나 전역을 하지 않았다면 한직으로 있을 가능성도 있다.[117] 육군군수사령관 후보에 올랐으나 낙선되었고, 그 후로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전역을 했거나 전역을 하지 않았다면 한직으로 있을 가능성도 있다.[118] 본래는 준장이나 소장이 보임된다.[119] 종전에는 8차 진급이라고 되어있었는데, 육사 37기 동기가 2007년 10월에 최초로 준장으로 진출했으니 굳이 따지자면 13차 진급이 맞다. 1년에 장군인사가 4~5월, 10~11월 두번 있으므로. 육사 37기 신원식은 2006년 10월에 준장 진급이 결정되어 준장(진)을 달았으니까 실제로는... 거의 15차...[120] 본래는 준장이나 소장이 보임된다.[121] 종전에는 8차 진급이라고 되어있었는데, 육사 37기 동기가 2007년 10월에 최초로 준장으로 진출했으니 굳이 따지자면 13차 진급이 맞다. 1년에 장군인사가 4~5월, 10~11월 두번 있으므로. 육사 37기 신원식은 2006년 10월에 준장 진급이 결정되어 준장(진)을 달았으니까 실제로는... 거의 15차...[122] 당시 재수생과 삼수생의 비율이 동기생의 절반을 넘었다.[123] 알자회로서 대장진급후 1년도 안 되어 2기수 후배인 김병주 장군에게 이임하였다.[124] 알자회로서 대장진급후 1년도 안 되어 2기수 후배인 김병주 장군에게 이임하였다.[125] 정권이 바뀌면서 대장진급이 유력했으나, 1기수 후배인 김용우한테 물먹었다.[126] 정권이 바뀌면서 대장진급이 유력했으나, 1기수 후배인 김용우한테 물먹었다.[127] 현역임에도 국방부 정책실장을 맡았었는데, 정권이 바뀌고 THAAD보고 누락에 대한 책임으로 직무배제되고, 얼마 후 전역했다.[128] 전역 후에 2016년 계엄령 모의사건의 책임자로서 미국으로 도주하였고, 현재까지 행방불명이다.[129] 현역임에도 국방부 정책실장을 맡았었는데, 정권이 바뀌고 THAAD보고 누락에 대한 책임으로 직무배제되고, 얼마 후 전역했다.[130] 전역 후에 2016년 계엄령 모의사건의 책임자로서 미국으로 도주하였고, 현재까지 행방불명이다.[131] 육사에서 생도간 성폭행 사건으로 육사교장 박남수 중장이 자진전역하고, 후임으로 육사 교장을 임명하였는데 이례적으로 소장계급의 고성균 장군이 맡게 되었다. 아마도 박근혜 대통령 특유의 기관징계(?)형식의 인사스타일인 듯하다.(참고로 윤일병 사건 때 국방부 조사본부도 이와 같은 징계를 당했다. 당시 조사본부장이었던 백낙종 소장이 전역하고, 이종협 준장(진)이 조사본부장으로 임명되었다.)[132] 네이버 인물검색에서는 현역으로 교육사 교육훈련부장을 맡고 있다고 하지만 육사38기 동기회카페에서 전역했음을 알 수 있다. 전역식은 따로 하지 않고 악기연주로 전역을 기념하는 사진이 올라온적 있다.[133] 광운대에서 2015년 안전분야 박사 학위. '북한에 김정일(!)이 있으면 남한에 오정일이있다.'라는 별명이 있었음. 포병학교장 시절 그 유명한 우레(ULEH) 구호를 만들었다. 이미 28사단장 시절 무적태풍 구호라는 손발이 시공간으로 빨려들어갈정도의 구호를 만들었다. 꽤 원리원칙자 였는지, 현역시절 이분한테 눈밖에 나서 군생활이 꼬인사람도 있었다고함. 부산 가야고 졸업[134] 3사단장까지는 진급코스를 잘 밟았으나 그 다음 보직인 합동참모대학 총장때부터 진급이 꼬이기 시작했으며, 총장 역임 후 육군종합행정학교장으로 발령받음으로써 중장 진급에 완전히 밀리게 되었다.[135] 노크귀순 사건으로 인해 22사단장직에서 보직해임 이후 사이버사령관을 맡았는데, 국정감사 때 김진태 의원에게 '작전에 실패한 군인'이라는 말을 들었다.[136] 육사에서 생도간 성폭행 사건으로 육사교장 박남수 중장이 자진전역하고, 후임으로 육사 교장을 임명하였는데 이례적으로 소장계급의 고성균 장군이 맡게 되었다. 아마도 박근혜 대통령 특유의 기관징계(?)형식의 인사스타일인 듯하다.(참고로 윤일병 사건 때 국방부 조사본부도 이와 같은 징계를 당했다. 당시 조사본부장이었던 백낙종 소장이 전역하고, 이종협 준장(진)이 조사본부장으로 임명되었다.)[137] 네이버 인물검색에서는 현역으로 교육사 교육훈련부장을 맡고 있다고 하지만 육사38기 동기회카페에서 전역했음을 알 수 있다. 전역식은 따로 하지 않고 악기연주로 전역을 기념하는 사진이 올라온적 있다.[138] 광운대에서 2015년 안전분야 박사 학위. '북한에 김정일(!)이 있으면 남한에 오정일이있다.'라는 별명이 있었음. 포병학교장 시절 그 유명한 우레(ULEH) 구호를 만들었다. 이미 28사단장 시절 무적태풍 구호라는 손발이 시공간으로 빨려들어갈정도의 구호를 만들었다. 꽤 원리원칙자 였는지, 현역시절 이분한테 눈밖에 나서 군생활이 꼬인사람도 있었다고함. 부산 가야고 졸업[139] 3사단장까지는 진급코스를 잘 밟았으나 그 다음 보직인 합동참모대학 총장때부터 진급이 꼬이기 시작했으며, 총장 역임 후 육군종합행정학교장으로 발령받음으로써 중장 진급에 완전히 밀리게 되었다.[140] 노크귀순 사건으로 인해 22사단장직에서 보직해임 이후 사이버사령관을 맡았는데, 국정감사 때 김진태 의원에게 '작전에 실패한 군인'이라는 말을 들었다.[141] 육군 內 동명이인으로 3사 24기인 예비역 준장이 있다. 다만 그 박찬웅 준장은 3군지사 사령관과 1군지여단장을 지냈었다.[142] 육군 內 동명이인으로 3사 24기인 예비역 준장이 있다. 다만 그 박찬웅 준장은 3군지사 사령관과 1군지여단장을 지냈었다.[143] 박찬주 갑질사건 때 같이 언급된 바 있음.[144] 박찬주 갑질사건 때 같이 언급된 바 있음.[145] 알자회로서 정권이 바뀌고(문재인 정권) 본보기로 후임자 없이 경질되었다.[146] 알자회로서 정권이 바뀌고(문재인 정권) 본보기로 후임자 없이 경질되었다.[147] 같이 중장진급한 1기수 후배 김운용이 정권이 바뀌고 대장진급과 동시에 3군사령관을 맡으면서 얼마간 지휘를 받았다.[148] 동기 김완태와 같이 진급하였고, 동일하게 1기수 후배인 김운용 장군의 지휘를 받았다.[149] 같이 중장진급한 1기수 후배 김운용이 정권이 바뀌고 대장진급과 동시에 3군사령관을 맡으면서 얼마간 지휘를 받았다.[150] 동기 김완태와 같이 진급하였고, 동일하게 1기수 후배인 김운용 장군의 지휘를 받았다.[151] 전임자가 1기수 후배이자, 당시 중장진급한 김병주 장군이었다. 군인은 어떠한 경우라도 위국헌신이 우선이고, 설령 개인 사생활 및 집안일이라도 군의 임무가 우선이라고 할 정도로 참 군인이었다. 이에 대해 현역 간부들의 호불호가 심했다. 미사일사령관 시절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 군인에게는 가차없이 갈굼을 동반한 비난을 하거나, 심지어 보직해임 시키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현재는 모교인 대전고등학교 운영위원장으로 재직중이다. 동창생으로 최명길이 있다.[152] 인사참모부장 시절 육사 동기인 윤모 (예)소장의 전역지원서 조작을 지시하여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으나 불기소.[153]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시다. 세례명은 스타슬라니오[154] 독실한 불교신자인 듯하다.[155] 이왕근 前 공군참모총장과 고등학교 동창이다.[156] 전임자가 1기수 후배이자, 당시 중장진급한 김병주 장군이었다. 군인은 어떠한 경우라도 위국헌신이 우선이고, 설령 개인 사생활 및 집안일이라도 군의 임무가 우선이라고 할 정도로 참 군인이었다. 이에 대해 현역 간부들의 호불호가 심했다. 미사일사령관 시절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 군인에게는 가차없이 갈굼을 동반한 비난을 하거나, 심지어 보직해임 시키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현재는 모교인 대전고등학교 운영위원장으로 재직중이다. 동창생으로 최명길이 있다.[157] 인사참모부장 시절 육사 동기인 윤모 (예)소장의 전역지원서 조작을 지시하여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으나 불기소.[158]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시다. 세례명은 스타슬라니오[159] 독실한 불교신자인 듯하다.[160] 이왕근 前 공군참모총장과 고등학교 동창이다.[161] 수송병과 출신으로 저서로는 '앱솔류트 리더십'이 있다.[162] 2013년 하반기 임기제 준장으로 진급하여 전투지휘훈련단장 역임 후 전역.[163] 방공병과 출신[164] 수송병과 출신으로 저서로는 '앱솔류트 리더십'이 있다.[165] 2013년 하반기 임기제 준장으로 진급하여 전투지휘훈련단장 역임 후 전역.[166] 방공병과 출신[167] 비례대표는 여자는 홀수, 남자는 짝수 순번이기 때문에 이종명 당선자는 사실상 비례 1번이나 마찬가지였다.[168] 비례대표는 여자는 홀수, 남자는 짝수 순번이기 때문에 이종명 당선자는 사실상 비례 1번이나 마찬가지였다.[169] 여기에 헌병병과 선두주자 선종출 예)준장까지 포함하면 병과별 1차 진급자들 네명이 날아간 셈이다.[170] 참고로 동기인 서상국, 이순광, 송유진이 줄줄이 나가리되면서 영전할 수 있었다.[171] 참고로 동기인 서상국, 이순광, 송유진이 줄줄이 나가리되면서 영전할 수 있었다.[172] 재직 중에 부사관 성추행 혐의로 구속되었다.[173]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 당시의 사단장. 본인은 병영 생활 개선에 상당히 노력을 기울였지만 안타깝게도 사고가 터졌다. 이후 한직인 국군복지단장을 역임 후 전역하였다.[174] 남영신 장군이 특전사령관에서 기무사령관으로 보직을 옮기면서 육군특수전사령관 직무대리를 맡았음. 참고로 병과는 포병임.[175] 공병병과 출신[176] 재직 중에 부사관 성추행 혐의로 구속되었다.[177]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 당시의 사단장. 본인은 병영 생활 개선에 상당히 노력을 기울였지만 안타깝게도 사고가 터졌다. 이후 한직인 국군복지단장을 역임 후 전역하였다.[178] 남영신 장군이 특전사령관에서 기무사령관으로 보직을 옮기면서 육군특수전사령관 직무대리를 맡았음. 참고로 병과는 포병임.[179] 공병병과 출신[180] 대령 때는 육군종합군수학교 전발처장, 국군수송사령부 항만운영단장을 역임하였다.[181] 김선일 장군과는 같은 경기고를 나왔는데 재수생 출신이라 고교는 선배다.[182] 강릉지구 무장공비 작전시 2사단 민심참모[183]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 당시 보고누락으로 경질되었다.[184] 현역 시절 별명이 '염라대왕'이었는데, 별명에 걸맞게 보통이 아니었다고한다. 2포병여단장시절 CNN에서 야외훈련하는 걸 취재한 바 있었는데, 리포터와 통역없이 영어로 대화했다.[185] 경희고등학교(18회) 졸업.[186] 대령 때는 육군종합군수학교 전발처장, 국군수송사령부 항만운영단장을 역임하였다.[187] 김선일 장군과는 같은 경기고를 나왔는데 재수생 출신이라 고교는 선배다.[188] 강릉지구 무장공비 작전시 2사단 민심참모[189]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 당시 보고누락으로 경질되었다.[190] 현역 시절 별명이 '염라대왕'이었는데, 별명에 걸맞게 보통이 아니었다고한다. 2포병여단장시절 CNN에서 야외훈련하는 걸 취재한 바 있었는데, 리포터와 통역없이 영어로 대화했다.[191] 경희고등학교(18회) 졸업.[192] 국군기무사령관 시절 송영무 당시 대한민국 국방부장관과 마찰을 빚다가 보직에서 물러났다.[193] 알자회[194] 국군기무사령관 시절 송영무 당시 대한민국 국방부장관과 마찰을 빚다가 보직에서 물러났다.[195] 알자회[196] 아내인 김귀옥(여군 31기) 대령이 2014년에 준장으로 진급하면서 소장인 본인과 같이 장관급 장교에 오름에 따라 창군 이래 첫 장성 부부가 되었다.[197] 알자회[198] 빠른 63년생으로 국군 통신분야 전문가다.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전기공학석사 학위를 받았다.[199] 아내인 김귀옥(여군 31기) 대령이 2014년에 준장으로 진급하면서 소장인 본인과 같이 장관급 장교에 오름에 따라 창군 이래 첫 장성 부부가 되었다.[200] 알자회[201] 빠른 63년생으로 국군 통신분야 전문가다.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전기공학석사 학위를 받았다.[202] 임기제 준장[203] 임기제 준장[204] 대령 진급을 무려 7차에 성공했다.[205] 대령 진급을 무려 7차에 성공했다.[206] 임관년도는 육사 40기와 같은 1984년이지만 학사학위 위탁교육으로 인해 육사 42기와 임관동기로 간주된다. 중장은 없고 장달수 장군이 소장까지 진급했다. 3사 22기에서는 이진성 장군, 3사 23기에서는 허강수, 정철재 장군이 중장으로 진급했다.[207] 중장은 없고 박신원, 정재학 장군이 소장까지 진급했다. 학군 25기에서는 박상근 장군이, 학군 26기에서는 박양동 장군이 중장으로 진급했다.[208] 중위부터 대장까지 모든 진급을 1차로 했다. 마법의 을지무공훈장...[209] 중위부터 대장까지 모든 진급을 1차로 했다. 마법의 을지무공훈장...[210] 소장 막차 진급이지만 중장은 1차로 진급하였으며 대장 진급의 가장 큰 요직인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영전하였으나 동기인 김승겸, 김정수와 1기수 후배 안준석에게 밀리고 말았다. 인생은 모르는것...[211] 소장 막차 진급이지만 중장은 1차로 진급하였으며 대장 진급의 가장 큰 요직인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영전하였으나 동기인 김승겸, 김정수와 1기수 후배 안준석에게 밀리고 말았다. 인생은 모르는것...[212] 강신명 경찰청장과 고등학교 동창이다.[213] 강신명 경찰청장과 고등학교 동창이다.[214] 동원직능의 육군 장교가 현실적으로 진급 가능한 최종계급이 소장이고, 최종보직이 육본 동원전력실장이나 육군 동원전력사령관이기에 중장으로의 진급 가능성은 낮다.[215] 육군공병학교장과 더불어 공병에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직책이다.[216] 공병병과 진급 상한선이다.[217] 동원직능의 육군 장교가 현실적으로 진급 가능한 최종계급이 소장이고, 최종보직이 육본 동원전력실장이나 육군 동원전력사령관이기에 중장으로의 진급 가능성은 낮다.[218] 육군공병학교장과 더불어 공병에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직책이다.[219] 공병병과 진급 상한선이다.[220] 이 대령은 예산중학교 1학년인 1976년에 캐슬린 스티븐스 씨의 제자이기도 하였다. 참고로 캐슬린 스티븐스 씨는 08~11년에 주한 미국대사로 재직했었다.[221] 이 대령은 예산중학교 1학년인 1976년에 캐슬린 스티븐스 씨의 제자이기도 하였다. 참고로 캐슬린 스티븐스 씨는 08~11년에 주한 미국대사로 재직했었다.[222] 하지만 공관병 폭행으로 보직해임당했다.[223] 하지만 공관병 폭행으로 보직해임당했다.[224] 8군단장 직무대리를 하였다.[225] 8군단장 직무대리를 하였다.[226] 사단장 경험 없이 군단장 직위에 임명되었다.[227] 3차 진급에 사단장을 역임하지 않았지만 중장 2차 진급에 수도방위사령관이 되었다. 인생 모르는 것.[228] 동기들이 소장 1차진급을 할때 준장 진급을 하였다.(대령 진급이 3차다.)[229] 사단장 경험 없이 군단장 직위에 임명되었다.[230] 3차 진급에 사단장을 역임하지 않았지만 중장 2차 진급에 수도방위사령관이 되었다. 인생 모르는 것.[231] 동기들이 소장 1차진급을 할때 준장 진급을 하였다.(대령 진급이 3차다.)[232] 임기제 진급[233] 공병병과에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직책이다.[234] 임기제 진급[235] 공병병과에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직책이다.[236] 사단장 경험 없이 군단장 직위에 임명되었다.[237] 사단장 경험 없이 군단장 직위에 임명되었다.[238] 한미연합사령부 공병부장 겸임[239] 한미연합사령부 공병부장 겸임[240] 군법무관, 군의관 한정. 일반 병과 준장은 2016년에 나왔다.[241] 그러나 취임 한 달 만에 삼척항 목선 귀순 사건이 터져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데다, 23사단 소속 병사 1명이 휴가 중 한강에서 투신자살하는 악재가 거듭 발생하였다.[242] 그러나 취임 한 달 만에 삼척항 목선 귀순 사건이 터져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데다, 23사단 소속 병사 1명이 휴가 중 한강에서 투신자살하는 악재가 거듭 발생하였다.[243] 육사 졸업 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위탁교육으로 군법무관이 됐다. 그 때문에 동기들보다 4~5년 빠른 2012년에 준장으로 진급했다. 준장으로 진급 후 육본 법무실장을 역임하고, 마지막으로 고등군사법원장을 역임했다. 군법무관의 특성상 준장이 계급상한선이므로 준장 위로의 진급은 힘들다.[244] 육사 졸업 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위탁교육으로 군의관이 됐다. 전공은 정형외과다. 그 때문에 동기들보다 4~5년 빠른 2012년에 준장으로 진급했다. 군의관의 특성상 소장이 계급상한선이지만 요즘은 준장에서 전역하는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최종 보직인 국군의무사령관 이임 후 준장에서 전역하였다. 이후 민간인 신분으로 청와대 의무실장을 맡다가 현재는 민간에서 일하고 있다.[245] 육사 졸업 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위탁교육으로 군법무관이 됐다. 그 때문에 동기들보다 4~5년 빠른 2012년에 준장으로 진급했다. 준장으로 진급 후 육본 법무실장을 역임하고, 마지막으로 고등군사법원장을 역임했다. 군법무관의 특성상 준장이 계급상한선이므로 준장 위로의 진급은 힘들다.[246] 육사 졸업 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위탁교육으로 군의관이 됐다. 전공은 정형외과다. 그 때문에 동기들보다 4~5년 빠른 2012년에 준장으로 진급했다. 군의관의 특성상 소장이 계급상한선이지만 요즘은 준장에서 전역하는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최종 보직인 국군의무사령관 이임 후 준장에서 전역하였다. 이후 민간인 신분으로 청와대 의무실장을 맡다가 현재는 민간에서 일하고 있다.[247] 군의관 한정. 일반 병과 준장은 2017년에 나왔다.[248] 대전고등학교(67회) 졸업[249] 대전고등학교(67회) 졸업[250] 생도들이 이런 식으로 대거 전역한 사례는 해외에서 1991년 방위대학교 35기의 임관포기가 있다. 걸프 전쟁 당시 자위대 파견을 두고 일본 사회의 여러 논쟁을 겪으면서 자위대에 실망했다며 떠난 사람이 많았다. 졸업생 494명 가운데 95명이 임관을 포기했다. 관련기사[251] 심대평의 아들이자 본인의 육사동기인 심우찬의 자서전에도 언급되어 있다. 둘은 육사시절 룸메였다고 한다.[252] 심대평의 아들이자 본인의 육사동기인 심우찬의 자서전에도 언급되어 있다. 둘은 육사시절 룸메였다고 한다.[253] 갑종장교 출신으로 대장까지 진급하였고, 새누리당 국회의원(경북 경주시) 겸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254] 갑종장교 출신으로 대장까지 진급하였고, 새누리당 국회의원(경북 경주시) 겸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육사시절] 255.1 255.2 https://youtu.be/D8iP1GDlVkU[257] 언니인 권성이(육사 58기)는 보병장교다.[258] 아버지가 원사, 오빠는 장교[259] 언니인 권성이(육사 58기)는 보병장교다.[260] 아버지가 원사, 오빠는 장교[261] 아버지, 2살 아래의 쌍둥이 동생들 2명도 육사를 졸업했다.[262] 아버지, 2살 아래의 쌍둥이 동생들 2명도 육사를 졸업했다.[263] 아버지, 2살 아래의 쌍둥이 동생들 2명도 육사를 졸업했다.[264] 사실 탈락했는데 가입교 2일 전에 추가합격으로 합격하는 바람에 짐도 제대로 못싼 채 몸뚱이만 가입교훈련 입소를 하러 갔고 그렇게 입학해서 수석으로 임관한 입지전적인 인물. 입학은 꼴찌로 했지만 임관은 수석으로 했다. 양주희의 전례로 인하여 이후 기수부터는 육군사관학교에서 군적성 합격으로 수능을 무시하고 선발하는 티오가 생겼다.[265] 사실 탈락했는데 가입교 2일 전에 추가합격으로 합격하는 바람에 짐도 제대로 못싼 채 몸뚱이만 가입교훈련 입소를 하러 갔고 그렇게 입학해서 수석으로 임관한 입지전적인 인물. 입학은 꼴찌로 했지만 임관은 수석으로 했다. 양주희의 전례로 인하여 이후 기수부터는 육군사관학교에서 군적성 합격으로 수능을 무시하고 선발하는 티오가 생겼다.[266] 외국수탁생 합치면 240명[267] 육사 최초 대통령상 및 대표화랑상 동시 수상[268] 여생도 최초 대통령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