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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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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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 1979년 ~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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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관
| 육군사관학교 3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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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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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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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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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956년 충청북도 옥천군 에서 태어났다. 옥천중학교(20회), 대전고등학교(54회)를 졸업하고 1975년에 육군사관학교 35기로 입교, 1979년 포병 소위로 임관했다.
대령으로 진급하여 수도기계화보병사단 포병여단장,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담당관 등을 지냈고, 준장으로 진급한 후 육군본부 비서실장,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군사보좌관 등을 역임했다. 소장으로 진급하여 제32보병사단장을 지냈고 육군대학 총장 등을 지냈으며, 이후 중장으로 진급하였으나 군단장으로 진출하진 못하고[1] 육군교육사령관, 육군참모차장을 역임하고 2014년 육군중장으로 예편했다.
전역 후 제41대 대한민국 국방부차관을 지냈다.
대령으로 진급하여 수도기계화보병사단 포병여단장,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담당관 등을 지냈고, 준장으로 진급한 후 육군본부 비서실장,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군사보좌관 등을 역임했다. 소장으로 진급하여 제32보병사단장을 지냈고 육군대학 총장 등을 지냈으며, 이후 중장으로 진급하였으나 군단장으로 진출하진 못하고[1] 육군교육사령관, 육군참모차장을 역임하고 2014년 육군중장으로 예편했다.
전역 후 제41대 대한민국 국방부차관을 지냈다.
3. 여담
- 염순덕 상사의 아내가 들었다고 하는 말로는"빨리 치러야지. 공상 심사가 있는데, 거기에다가도 이야기를 잘 해주지 않겠느냐"
침착
- 사드를 성주군에 배치할 당시 주민들의 반발이 크자 직접 국방부 차관 자격으로 성주군에 내려갔는데 거기서 성주군과 상주시를 헷갈리는 실수를 저질러서 주민들에게 현장에서 욕을 먹은 흑역사가 있다.
[1] 중장이 군단장 보직을 받지 못하면 대장 진급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