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규 Cho Han Kyu | |
복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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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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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관
| 육군사관학교 4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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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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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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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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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여담
- 외조부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신 최경호 선생(1898년생, 건국훈장 애족장)이다.
사진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했다. 제30기계화보병사단 사단장 재임시, 사진병의 교육 및 사단홈페이지 동정사진 게시물 관리에 중점을뒀다. (정훈공보부에서 사진촬영 후 결심파일을 만들어서 사단장 승인(결제)을 받고, 사단홈페이지에 항상 게시하였다. 만약 오타 또는 사진순서가 잘못됐을 경우, 정훈공보부에 전화하여 즉시수정을 지시하였다. (덕분에 비서실과 정훈공보부는 사단장 직통전화가 찍힐 땐 일동 기립 및 일동 긴장을...) 당시 근무했던 정훈공보참모는 항상 긴장상태였다.
사단 정훈병의 촬영멘트를 직접 지도, 감독하였으며, 사진병의 사진실력이 탐탁치 않을 경우 정훈공보참모와 사진담당관을 강하게 질책했다.(사진촬영 또는 정훈병의 임무수행의 결과물이 탐탁치 않을 경우, 징계를 논할만큼 사진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했다.) 징계카드가 발효된 이 후 사진병들은 주기적으로 사진연습 및 멘트연습을 밥먹듯이 했었다는 후문이..
아웃포커싱에 대한 사랑은 그 누구보다 남달랐다.
사단장이 직접 사단직할대 간부들 및 여단간부들 가을 사진촬영을 진행했다. (촬영된 사진은 정훈공보부에서 직접 인쇄해서 각 대상자에게 전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이 때 정훈병들은 사단장의 작품을 보며 복습하는(?) 일이 있었다. 아웃포커싱에 중점을 두고 촬영하라는 지시.. (움직이는 것도 아웃포커싱으로 촬영하라는 말에 뇌절이 왔지만 정훈병들의 노고에 다시한번 감사를..)
엄할 땐 엄했고, 온화할 땐 매우 온화했던 사단장이었다. 더불어 격오지 부대시찰시 군기강 확립에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복명복창을 중시하였으며, 사단회의시 항상 웃음체조를 실시하였다. 웃음체조를 할 때마다 사진촬영은 추가옵션..
두발규정과 군기강 확립에 중점을 두었다. 국기게양식 행사를 할 때 부대별로 전방에 힘찬함성(사기)이 마음에 안들어서 국기게양식 행사를 다시했던 적도 있었다는..(아침에 소리지르다가 병사들이 하나 둘씩 넉다운 된 적도 있었다.)
열정적으로 복무하는 장병의 사기에 대해 후하게 포상하였고, 전 장병들의 강한 사기증진을 위해 항상 솔선수범하는 장군이었다.(덕분에 간부들은 항상 기간병에게 정신교육 및 소양교육을 철저히 하였고, 사단장님이 불시 부대방문을 하게되면 엄청난 아우라와 긴장을 선물해주셨다는 후문이..)
[1] 고교 1년 선배인 김종문 장군과 육사에는 동기로 입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