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기
- 장인환 예)준장 : 제11공수특전여단장.
- 이무표 예)대령 : 안케페스의 영웅. 태극무공훈장 수훈.[4]
- 차성도 예)소위 : 수류탄 투척 훈련 중이던 1970년 5월 13일, 육군27사단 78연대에서 훈련 중 병사의 파지부주의로 안전손잡이를 놓치는 것을 발견하고, 소대원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으로 수류탄을 덮쳐 전 소대원을 구하고 자신은 복부파열로 현장에서 장렬하게 산화하였다.
2. 2기
3. 3기
4. 4기
- 최용주 예)중장 : 제3군단장
- 오영안 예)준장: 1996년 육군산악부대 기무부대장 시절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대간첩작전 수행 도중 전사, 대령이었으나 준장 추서
- 강일두 예)중령 : 육사에서 여생도를 처음으로 받아들인 58기의 수석 입학, 차석 졸업자인 강유미 대령(진)의 부친.
- 고우현 예)대위 : 경상북도의회 의장, 경상북도의원
5. 6기
6. 7기
7. 8기
8. 9기
- 김현기 예)소장 : 육군3사관학교장 역임.
- 권영호 예)소장 : 방공포병이 공군으로 전군 후 공군소장으로 예편
9. 10기
10. 11기
- 정경조 예)중장 : 제8군단장과 제3야전군 부사령관을 역임했으며 전역 후 관동대학교 교수로 재직했었다.
11. 12기
- 이권헌 예)소장 : 1952년 평택 출생으로 경북공고를 졸업하였다. 군번이 3개나 있는 특이한 이력을 지녔다. 병시절에는 소총수였고, 하사관 때는 공병특기였고, 장교는 보병 소위로 임관하였으나 대위시절에 화학병과로 전과하였다. 국군화생방방호사령관과 육군화학학교장을 지내고, 2011년 1월에 전역하였다.
- 이진모 예)소장 : 1952년 포천출신이다. 포천중, 의정부공고를 졸업하고 1975년에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부군단장을 2회나 역임했고, 준장과 소장 시절에 각각 1회 역임한 특이한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1군단 부군단장(준장), 50사단장(소장), 6군단 부군단장(소장)을 역임하고, 11년 10월에 소장으로 전역하였다.
12. 13기
13. 14기
- 한동주 예)중장 : 13공수여단장, 육군학생군사학교 교수부장, 9사단장, 육군본부 정보화기획실장, 3군단장, 제3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 단 한번의 진급누락 없이 이순진 합참의장보다 중장을 먼저 달았으나 마지막 대장 진급에서 미끄러졌다.
14. 15기
15. 16기
- 백낙종 예)소장 : 헌병감, 국방부 조사본부장. 미국 헌병연대협회로부터 '마흐쇼세 훈장' 수상. 한미 수사기관의 상호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양국의 혈맹관계를 돈독히 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군 최고 수사기관으로서 국민과 군에 신뢰를 심어주는 데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을 수상하게 되었다.
- 최춘식 예)대위 : 제21대 국회의원(경기 포천 - 가평), 전 경기도의원
16. 17기
17. 18기
18. 19기
19. 20기
20. 21기
21. 22기
22. 23기
23. 24기
24. 25기
25. 26기
26. 27기
27. 28기
- 조우진 준장 : (2019년 11월 준장 진급)
28. 29기
- 박진희 준장 : (2020년 12월 준장 진급)
- 임국기 준장 : (2020년 12월 준장 진급)
29. 30기
30. 35기
31. 46기
32. 관련문서
[1] 3사 출신 첫 대장[2] 3사 출신 첫 대장[3] 생전에는 받을 수 없다는 태극무공훈장을 받았음에도 장성으로 진급하지 못한 이유는 본인의 건강문제(심장병)때문이었다고 한다. 11사단 연대장, 3사14기 훈육대장을 역임했다.[4] 생전에는 받을 수 없다는 태극무공훈장을 받았음에도 장성으로 진급하지 못한 이유는 본인의 건강문제(심장병)때문이었다고 한다. 11사단 연대장, 3사14기 훈육대장을 역임했다.[5] 참고로 양 장군이 사령관으로 있을 때 사령부가 대전으로 이전하였다.[6] 참고로 양 장군이 사령관으로 있을 때 사령부가 대전으로 이전하였다.[7] 배우자의 공직선거법 위반 유죄 판결로 2017년 의원직 상실[8] 배우자의 공직선거법 위반 유죄 판결로 2017년 의원직 상실[9] 그 이유는 육군방공포병사령부가 공군으로 전군하게 되어 유영대 소장도 육군장교에서 공군장교로 소속이 바뀌었다.[10] 그 이유는 육군방공포병사령부가 공군으로 전군하게 되어 유영대 소장도 육군장교에서 공군장교로 소속이 바뀌었다.[11] 3사 출신 2번째 대장[12] 3사 출신 2번째 대장[13] 3사 출신 3번째 대장[14] 3사 출신 3번째 대장[15] 캡틴 김상호가 이 당시 생도였다.[16] 캡틴 김상호가 이 당시 생도였다.[17] 3사 출신 4번째 대장[18] 3사 출신 4번째 대장[19] 모든 진급을 막차에 했다고 전해지며, 이로 인해 노골적으로 진급만 노리는 부하장교들을 싫어했다고 한다.[20] 일과 후 매일 축구하는 것이 일상일 정도로 축구를 좋아했다.[21] 모든 진급을 막차에 했다고 전해지며, 이로 인해 노골적으로 진급만 노리는 부하장교들을 싫어했다고 한다.[22] 일과 후 매일 축구하는 것이 일상일 정도로 축구를 좋아했다.[23] 3사 출신 5번째 대장[24] 3사 출신 5번째 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