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설명
성년이 되지 않은 어린 나이(0~15세)에 황제나 왕 등 군주가 되는 경우는 대체로 선대왕의 폭정 또는 단명, 주변 세력들의 간섭, 왕위 계승에 있어서 직계자손 고집으로 인한 폐해,[1] 혹은 앞의 세 가지 이유가 모두 어우러진 경우 등 이유가 다양하다.
문제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는 것으로 이들의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대개 이러면 왕의 후견인이 섭정이 되어 대신 정치를 맡는데 이러면서 생기는 정치적 폐단과 민심 문란 등으로 하루가 편한 날이 없고 이 상황이 심화되기 시작하면 황실 가족들끼리도 유혈사태가 일어난다. 덕분에 어린 나이에 왕위에 등극한 사람치고 일생이 편안하거나 그 마지막이 정상적인 사람이 드물다.
물론 예외는 있다. 조선 성종은 후세에 성공한 왕으로 평가받으며, 요 성종도 명군이었다. 고구려와 신라의 부흥기를 이끈 정복군주 태조왕과 진흥왕은 고작 7세에 즉위했다.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으로 유명한 후기신라의 명군 성덕왕은 11살 즉위, 그리고 여러모로 유명한 프랑스의 루이 14세도 어릴 때 즉위했다. 광개토태왕 또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2] 그리고 중국 역대 황제 중 끝판왕인 강희제도 8세에 즉위했다.
덧붙여, 시간이 지난 뒤에 어리다고 얕잡아보는 자들을 역관광보내는 경우도 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 조선 숙종[3], 진시황, 이반 뇌제, 루이 14세, 메흐메트 2세, 표트르 대제 등이 그런 경우.
다음 목차에서는 0~15세의 나이로 왕이나 황제가 된 사람들을 다룬다.[4] 국가, 군주, 등극할 당시의 나이, 즉위년일, 퇴위년일, 재위기간, 섭정의 순서이며, 군주와 섭정이 혈연관계인 경우 괄호 안에 명기했고 섭정 없이 친정했을 경우에는 '친정'이라 표기했다.
문제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는 것으로 이들의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대개 이러면 왕의 후견인이 섭정이 되어 대신 정치를 맡는데 이러면서 생기는 정치적 폐단과 민심 문란 등으로 하루가 편한 날이 없고 이 상황이 심화되기 시작하면 황실 가족들끼리도 유혈사태가 일어난다. 덕분에 어린 나이에 왕위에 등극한 사람치고 일생이 편안하거나 그 마지막이 정상적인 사람이 드물다.
물론 예외는 있다. 조선 성종은 후세에 성공한 왕으로 평가받으며, 요 성종도 명군이었다. 고구려와 신라의 부흥기를 이끈 정복군주 태조왕과 진흥왕은 고작 7세에 즉위했다.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으로 유명한 후기신라의 명군 성덕왕은 11살 즉위, 그리고 여러모로 유명한 프랑스의 루이 14세도 어릴 때 즉위했다. 광개토태왕 또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2] 그리고 중국 역대 황제 중 끝판왕인 강희제도 8세에 즉위했다.
덧붙여, 시간이 지난 뒤에 어리다고 얕잡아보는 자들을 역관광보내는 경우도 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 조선 숙종[3], 진시황, 이반 뇌제, 루이 14세, 메흐메트 2세, 표트르 대제 등이 그런 경우.
다음 목차에서는 0~15세의 나이로 왕이나 황제가 된 사람들을 다룬다.[4] 국가, 군주, 등극할 당시의 나이, 즉위년일, 퇴위년일, 재위기간, 섭정의 순서이며, 군주와 섭정이 혈연관계인 경우 괄호 안에 명기했고 섭정 없이 친정했을 경우에는 '친정'이라 표기했다.
2. 실존 인물
2.1. 한국사
고려, 조선 시대의 연대는 양력으로 환산되었다.
한국사 | ||||||
국가
| 군주
| 즉위연령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재위기간
| 섭정/친정
|
15세
| 18.
| 44.
| 26년
| 친정
| ||
7세
| 53.
| 146.
| 93년
| 부여태후(생모)
| ||
13세
| BC57.
| AD4.
| 61년
| 친정, 혹은
| ||
7세
| 540.
| 576.
| 36년
| 법흥왕비 보도부인(백모)
| ||
5세
| 692.
| 702.
| 10년
| 신문왕비 신목왕후(생모)
| ||
11세
| 702.
| 737.
| 35년
| 친정?[8]
| ||
8세
| 765.
| 780.
| 15년
| 경덕왕비 만월부인(생모)
| ||
13세
| 800.
| 809.
| 9년
| 김언승(숙부)
| ||
13세
| 477.
| 479.
| 2년
| 좌평 해구
| ||
생후 15~40일
| 42.
| 199.
| 157년
| 친정[10]
| ||
10세
| 1094.06.17.
| 1095.11.06.
| 1년 142일
| 선종비 사숙왕후(생모)
| ||
14세
| 1122.05.15.
| 1146.04.10.
| 24년
| 예종비 순덕왕후(생모)
| ||
15세
| 1130.
1339. | 1332.
1334. | 2년
5년 | 친정
| ||
8세
| 1344.
| 1348.
| 4년
| |||
11세
| 1348.
| 1351.
| 3년
| 충혜왕비 덕녕공주(적모)[12]
| ||
9세
| 1374.
| 1388.
| 14년
| |||
9세
| 1388.
| 1389.
| 1년
| |||
12세
| 1451.06.01.
| 1455.06.25.
| 3년 24일
| |||
13세
| 1469.12.31.
| 1495.01.20.
| 25년 20일
| 세조비 정희왕후(조모)
| ||
12세
| 1545.08.07.
| 1567.08.02.
| 21년 252일
| |||
14세
| 1674.09.17.
| 1720.07.12.
| 45년 310일
| 친정
| ||
11세
| 1799.07.30.
| 1834.12.13.
| 35년 144일
| |||
8세
| 1834.12.13.
| 1849.07.25.
| 14년 228일
| |||
12세
| 1864.01.16.
| 1907.07.19.
| 43년 194일
| |||
- 광개토대왕은 16세라 아슬아슬하게 빠진다.
2.2. 세계사
2.2.1. 중국
중국 | |||||||
국가
| 군주
| 즉위연령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재위기간
| 섭정/친정
| |
13세?
| BC1042.?
| BC1021.?
| 21년?
| 주공 단(숙부)
| |||
5세?
| BC576.
| BC532.
| 44년
| 화원
| |||
14세
| BC573.
| BC558.
| 15년
| 친정
| |||
13세?
| BC558.
| BC532.
| 26년
| ||||
3세
| BC572.
| BC542.
| 30년
| 계손행보
| |||
5세
| BC565.
| BC530.
| 35년
| ||||
10세
| BC716.
| BC704.
| 12년
| ||||
5세
| BC708.
| BC698.
| 6년
| ||||
13세
| BC247.07.06.
| BC210.08.10.
| 37년
| ||||
8세
| BC87.03.30.
| BC74.06.05.
| 12년 298일
| ||||
8세
| BC74.07.18.
| BC74.08.14.
| 27일
| ||||
9세
| BC1.10.17.
| AD6.02.03.
| 4년 109일
| ||||
1세
| 6.04.17.
| 9.01.10.
| 2년 268일
| ||||
10세
| 88.04.09.
| 106.02.13.
| 17년 310일
| ||||
생후 100일
| 106.02.23
| 106.09.21.
| 6개월 29일
| 화희황후(양모)
| |||
12세
| 106.09.21.
| 125.04.30.
| 18년 221일
| ||||
11세
| 125.12.10.
| 144.09.20.
| 18년 285일
| ||||
2세
| 144.09.20.
| 145.02.15.
| 4개월 26일
| ||||
8세
| 145.03.06.
| 146.07.26.
| 1년 142일
| ||||
15세
| 146.08.01.
| 168.01.25.
| 21년 177일
| ||||
12세
| 168.02.17.
| 189.05.13.
| 21년 91일
| 효인황후 동씨(생모)
| |||
13세
| 189.05.15.
| 189.09.28.
| 4개월 13일
| ||||
9세
| 189.09.28
| 220.12.10
| 31년 81일
| ||||
9세
| 239.01.22.
| 254.10.17.
| 15년 272일
| ||||
14세
| 254.11.01.
| 260.06.02.
| 5년 215일
| ||||
15세
| 260.06.27.
| 266.02.04.
| 5년 223일
| ||||
8세
| 252.05.23.
| 258.11.09.
| 6년 171일
| ||||
남조
| 5세
| 325.10.19.
| 342.07.26.
| 16년 284일
| 명목황후 유씨(생모) → 왕도, 유량
| ||
2세
| 344.11.18.
| 361.07.10.
| 16년 238일
| 강헌황후 저씨(생모)
| |||
10세
| 372.09.12.
| 396.11.06.
| 24년 61일
| ||||
14세
| 396.11.07.
| 419.01.28.
| 22년 87일
| ||||
15세
| 464.07.12.
| 466.01.01.
| 1년 173일
| ||||
10세
| 472.05.11.
| 477.08.01.
| 5년 83일
| ||||
10세
| 477.08.05.
| 479.05.27.
| 1년 295일
| ||||
14세
| 494.09.10.
| 494.11.23.
| 2개월 13일
| ||||
15세
| 498.09.01.
| 501.12.31.
| 3년 122일
| ||||
13세
| 501.04.14.
| 502.04.30.
| 1년 16일
| ||||
12세
| 555.11.01.
| 557.11.16.
| 2년 15일
| 진패선, 왕승변
| |||
12세
| 566.05.31.
| 568.12.27.
| 2년 211일
| ||||
북조
| 12세
| 452.10.31.
| 465.06.20.
| 12년 232일
| |||
11세
| 465.06.21.
| 471.09.20.
| 6년 92일
| 문성문명황후 풍씨(적모)
| |||
4세
| 471.09.20.
| 499.04.26.
| 27년 218일
| 문성문명황후 풍씨(적조모)
| |||
4세
| 515.02.12.
| 528.03.31.
| 13년 45일
| 선무영황후 호씨(생모)
| |||
1세
| 528.04.01.
| 528.04.01.
| 1일[24]
| 선무영황후 호씨(조모)
| |||
3세
| 528.04.02.
| 528.05.17.
| 1개월 15일
| 선무영황후 호씨(조모)
| |||
9세
| 534.11.08.
| 550.06.07.
| 15년 215일
| ||||
14세
| 559.12.04.
| 560.09.08.
| 9개월 4일
| ||||
9세
| 565.06.08.
| 577.02.04.
| 11년 243일
| ||||
7세
| 577.02.04.
| 577.02.24.
| 24일
| ||||
7세
| 579.04.01.
| 581.03.04.
| 1년 338일
| ||||
12세
| 617.12.18.
| 618.06.12.
| 5개월 25일
| ||||
15세
| 710.07.08.
| 710.07.25.
| 17일
| ||||
15세
| 824.02.29.
| 827.01.09.
| 2년 315일
| ||||
11세
| 873.08.16.
| 888.04.20.
| 14년 251일
| ||||
12세
| 904.09.26.
| 907.05.12.
| 2년 228일
| ||||
7세
| 959.08.03.
| 960.02.03.
| 6개월
| ||||
11세
| 982.10.14.
| 1031.06.25.
| 48년 254일
| 예지황후 소씨(생모)
| |||
15세
| 1031.06.25.
| 1055.08.28.
| 24년 64일
| 흠애황후 소씨(생모)
| |||
13세
| 1022.03.23.
| 1063.04.30.
| 41년 37일
| 장헌명숙황후 유씨(적모)
| |||
10세
| 1085.04.01.
| 1100.02.23.
| 14년 331일
| 선인성렬황후 고씨(조모)
| |||
4세
| 1274.08.12.
| 1276.02.04.
| 1년 176일
| 사황후(조모), 전황후(생모)
| |||
9세
| 1276.06.14.
| 1278.05.08.
| 1년 328일
| ||||
8세
| 1278.05.10.
| 1279.03.19.
| 10개월 9일
| ||||
9세
| 1435.02.07.
1457.02.11. | 1449.09.01.
1464.02.23. | 14년 206일
7년 12일 | ||||
6세
| 1643.10.08.
| 1661.02.05.
| 17년 120일
| 예친왕(숙부)
| |||
8세
| 1661.02.05.
| 1722.12.20.
| 61년 318일
| 보정대신 4명
| |||
5세
| 1861.11.11.
| 1875.01.12.
| 13년 62일
| ||||
4세
| 1875.02.25.
| 1908.11.14.
| 33년 263일
| 효흠현황후(백모)
| |||
3세
| 1908.12.02.
| 1912.02.12.
| 3년 72일
| 순친왕(생부)
| |||
- 유선은 16세라 아슬아슬하게 빠진다.
2.2.2. 일본
일본 | ||||||
시대
| 군주
| 즉위연령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재위기간
| 섭정/친정
|
14세
| 697.08.22.
| 707.07.18.
| 9년 332일
| |||
9세
| 858.10.07.
| 876.12.18.
| 18년 107일
| 섭정 후지와라노 요시후사(외조부)
| ||
9세
| 876.12.18.
| 884.03.04.
| 7년 78일
| 섭정 후지와라노 모토츠네(외숙부)
| ||
13세
| 897.08.04.
| 930.10.16.
| 33년 81일
| |||
8세
| 930.10.16.
| 946.05.23.
| 15년 223일
| 섭정 후지와라노 타다히라(외백부)
| ||
11세
| 969.09.27.
| 984.09.24.
| 15년 1일
| 섭정 후지와라노 사네요리(백조부)
섭정 후지와라노 코데타다(외백부) 관백 후지와라노 카네미치(외백부) | ||
8세
| 1016.03.10.
| 1036.05.15.
| 20년 71일
| 섭정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외조부)
섭정 후지와라노 요리미치(외숙부) | ||
8세
| 1087.01.03.
| 1107.08.09.
| 20년 223일
| 섭정·관백 후지와라노 모로자네(처외조부)
관백 후지와라노 모로미치(처외숙부) 관백 후지와라노 타다자네(종형) | ||
5세
| 1107.08.09.
| 1123.02.25.
| 15년 204일
| 섭정·관백 후지와라노 타다자네
관백 후지와라노 타다미치 | ||
5세
| 1123.02.25.
| 1142.01.05.
| 18년 319일
| 섭정·관백 후지와라노 타다미치(장인)
| ||
3세
| 1142.01.05.
| 1155.08.22.
| 13년 232일
| 섭정 후지와라노 타다미치
| ||
15세
| 1158.09.05.
| 1165.08.03.
| 6년 334일
| 관백 코노에 모토자네(처남)
| ||
2세
| 1165.08.03.
| 1168.04.09.
| 2년 250일
| 섭정 코노에 모토자네(처외백부)
섭정 마츠도노 모토후사(처외숙부) | ||
8세
| 1168.04.09.
| 1180.03.18.
| 11년 346일
| 관백 마츠도노 모토후사
관백 코노에 모토미치(처남) | ||
3세
| 1180.03.18.
| 1185.04.25.
| 5년 39일
| 섭정 코노에 모토미치
| ||
4세
| 1183.09.08.
| 1198.02.18.
| 14년 167일
| 섭정·관백 코노에 모토미치
섭정 마츠도노 모로이에 섭정·관백 쿠죠 카네자네(장인) | ||
3세
| 1198.02.18.
| 1210.12.12.
| 12년 310일
| 섭정 코노에 모토미치
섭정 쿠죠 요시츠네 섭정 코노에 이에자네 | ||
14세
| 1210.12.12.
| 1221.05.13.
| 10년 155일
| 관백 코노에 이에자네
| ||
4세
| 1221.05.13.
| 1221.07.29.
| 2개월 16일
| 섭정 쿠죠 미치이에(처숙부)
| ||
10세
| 1221.07.29.
| 1232.11.17.
| 11년 114일
| 섭정·관백 코노에 이에자네(장인)
관백 쿠죠 미치이에(장인) 관백 쿠죠 노리자네(처남) | ||
2세
| 1232.11.17.
| 1242.02.10.
| 9년 87일
| 섭정 쿠죠 노리자네(외숙부)
섭정 쿠죠 미치이에(외조부) 섭정·관백 코노에 카네츠네(외숙부) | ||
4세
| 1246.02.16.
| 1260.01.09.
| 13년 330일
| 섭정 이치죠 사네츠네
섭정 코노에 카네츠네 섭정·관백 타카츠카사 카네히라 | ||
11세
| 1260.01.09.
| 1274.03.06.
| 14년 60일
| 관백 타카츠카사 카네히라
관백 니죠 요시자네 관백 이치죠 사네츠네 관백 코노에 모토히라 관백 타카츠카사 모토타다 관백 쿠죠 타다이에 | ||
8세
| 1274.03.06.
| 1287.11.27.
| 13년 269일
| 섭정 쿠죠 타다이에
섭정 이치죠 이에츠네 섭정·관백 타카츠카사 카네히라 관백 니죠 모로타다 | ||
11세
| 1298.08.30.
| 1301.03.02.
| 2년 185일
| 섭정 타카츠카사 카네타다
섭정 니죠 카네모토 | ||
12세
| 1308.09.11.
| 1318.03.29.
| 9년 201일
| 섭정 쿠죠 모로노리
섭정·관백 타카츠카사 후유히라 관백 코노에 이에히라 관백 니죠 미치히라 | ||
남조
| 12세
| 1339.09.18.
| 1368.03.29.
| 28년 200일
| 관백 니죠 모로모토
관백 코노에 츠네이에 관백 니죠 모리모토 | |
북조
| 15세
| 1336.09.20.
| 1348.11.18.
| 12년 62일
| 관백 코노에 츠데타다
관백 코노에 모토츠구 관백 이치죠 츠네미치 관백 쿠죠 미치노리 관백 타카츠카사 모로히라 관백 니죠 요시모토 | |
15세
| 1348.11.18.
| 1351.11.26.
| 3년 8일
| 관백 니죠 요시모토
| ||
15세
| 1352.09.25.
| 1371.04.09.
| 18년 200일
| 관백 니죠 요시모토
관백 쿠죠 츠네노리 관백 코노에 미치츠구 관백 타카츠카사 후유미치 관백 니죠 모로요시 | ||
13세
| 1371.04.09.
| 1382.05.24.
| 11년 48일
| 관백 니죠 모로요시
관백 쿠죠 타다모토 관백 니죠 모로츠구 | ||
6세
| 1382.05.24.
| 1392.11.19.
| 10년 182일
| 섭정·관백 니죠 요시모토
섭정 코노에 카네츠구 관백 니죠 모로츠구 관백 이치죠 츠네츠구 관백 코노에 타다츠구 관백 니죠 미츠모토 | ||
12세
| 1412.10.05.
| 1428.08.30.
| 15년 333일
| 관백 이치죠 츠네츠구
관백 쿠죠 미츠노리 관백 니죠 모치모토 | ||
10세
| 1428.09.07.
| 1464.08.21.
| 35년 357일
| 섭정·관백 니죠 모치모토
관백 코노에 후사츠구 관백 이치죠 카네요시 관백 니죠 모치미치 관백 타카츠카사 후사히라 관백 이치죠 노리후사 | ||
5세
| 1629.12.22.
| 1643.11.14.
| 13년 330일
| 섭정 이치죠 카네요시(숙부)
섭정 니죠 야스미치 | ||
11세
| 1643.11.14.
| 1654.10.30.
| 10년 353일
| |||
10세
| 1663.03.05.
| 1687.05.02.
| 24년 64일
| 섭정 니죠 미츠히라(종형)
섭정·관백 타카츠카사 후사스케 관백 이치죠 후유츠네 | ||
13세
| 1687.05.06.
| 1709.07.27.
| 22년 88일
| 섭정·관백 이치죠 후유츠네
관백 코노에 모토테루 관백 타카츠카사 카네히로 관백 코노에 이에히로 | ||
9세
| 1709.07.27.
| 1735.04.13.
| 25년 196일
| 섭정 코노에 이에히로
섭정·관백 쿠죠 스케사네 관백 니죠 츠나히라 관백 코노에 이에히사(종형) | ||
7세
| 1747.06.09.
| 1762.08.31.
| 15년 76일
| 섭정·관백 이치죠 미치요시
관백 코노에 우치사키 | ||
13세
| 1770.05.23.
| 1779.12.16.
| 9년 209일
| 관백 코노에 우치사키
관백 쿠죠 나오사네 | ||
9세
| 1780.01.01.
| 1817.05.07.
| 37년 135일
| 섭정·관백 쿠죠 나오사네
관백 타카츠카사 스케히라 관백 이치죠 테루요시 관백 타카츠카사 마사히로(종형) 관백 이치죠 타다요시 | ||
2.2.3. 기타
- 알렉산데르 세베루스(14세, 조모 율리아 마이사) - 로마 제국
- 고르디아누스 3세(13세, 어머니 마키아 파우스티나 → 장인 티메시테우스) - 로마 제국
- 발렌티니아누스 2세(4세, 어머니 유스티나) - 로마 제국
- 발렌티니아누스 3세(6세, 어머니 갈라 플라키디아) - 서로마 제국
- 아흐메트 1세(13세, 친정) - 오스만 제국
- 오스만 2세(14세, 친정) - 오스만 제국
- 알 파이즈 (5세) - 파티마 왕조. 11세에 사망. 동생인 알 아디드에게 이맘위를 물려주었다.
- 알 아디드 (11세) - 파티마 왕조. 알 파이즈의 동생.
- 미하이 1세 (6세, 숙부+대주교+대법원장) - 루마니아 (1921~2017) 조부 페르디난트의 뒤를 이어 즉위했지만, 3년 뒤에 아버지 카롤 2세에게 양위한다. 1940년 19세의 나이로 재즉위. 1947년 12월 30일 루마니아가 공산화되자 폐위되었고 이듬해에 루마니아 시민권도 박탈당했다. 그후 그는 영국을 거쳐 스위스에 망명했으며 1989년에 차우셰스쿠가
처단축출된 후에 1992년 루마니아 정부의 허락을 받고 귀국했다. 그가 귀국했을때 부쿠레슈티 시민 백만여명이 길거리에 쏟아져나와 환영했고 이에 긴장한 이온 일리에스쿠 대통령은 그를 추방하고 귀국을 금지했으나 1997년 에밀 콘스탄티네스쿠 대통령이 당선된 후에 다시 루마니아에 귀국을 허가받았고 시민권도 돌려주었다. 그 후 엘리사베타 궁전에 사는 것을 허가받고 루마니아와 스위스를 오가며 살다가 2017년에 붕어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사망한 전승훈장 수훈자이다.
* 시메온 2세 (6세, 숙부+신하들) - 불가리아 (1937~) 아버지 보리스 3세가 히틀러와의 회견을 마치고 돌아온 뒤 급서하자[45] 왕위에 오른다. 그러나 1946년 불가리아가 공산화되자 폐위. 그래도 1996년 공산당 붕괴 이후 귀국하여 군주제를 부활하기 위해 국왕 임기제까지 제안하며 동분서주했으나 국왕 개인에 대한 지지는 높아도 군주제 지지율이 3%도 나오지 않아 무산됐다. 허나 2001년 6월 17일 총선거에서 대승하여 불가리아의 총리에 올라 2005년까지 집권했으며 이는 동유럽에서 축출된 군주들 중 공화제의 형식으로나마 다시 권좌에 오른 유일한 형태다. 2005년 8월 불가리아 사회당에게 정권을 내주었다.
* 푸아드 2세 (6개월) - 이집트 (1952~) 아버지 파루크 1세가 가말 압델 나세르를 비롯한 자유장교단에게 퇴위당하고 왕위를 이어받았으나 즉위 11개월 만에 폐위되었고, 이집트는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 데이비드 2세 (5세, 신하들) - 스코틀랜드 왕국
* 푸아드 2세 (6개월) - 이집트 (1952~) 아버지 파루크 1세가 가말 압델 나세르를 비롯한 자유장교단에게 퇴위당하고 왕위를 이어받았으나 즉위 11개월 만에 폐위되었고, 이집트는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 데이비드 2세 (5세, 신하들) - 스코틀랜드 왕국
3. 가상 인물
4. 관련 문서
[1] 이게 동아시아에서만 일어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밑에서 볼 수 있듯이 유럽이나 중동은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태아의 계승권을 미리 인정하고 아들로 태어나면 바로 왕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 오히려 동아시아보다 더 보수적이어서, 동아시아에서는 서자라도 왕의 아들이기만 하면 적자보다 우선순위가 밀릴 뿐 계승권을 인정해 주는데 서양에서는 서자에게 계승권이 없다. 정확히는 아예 '첩'과 '서자'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첩'이라는 지위는 '정실에 비해 지위 및 권리가 열등하게 주어지도록 되어 있는 또 다른 공인된 혼인 관계'인데, 서양은 기독교의 영향으로 철저한 일부일처제를 고수하였으므로 '정식으로 결혼한 배우자에 비해 열등한 지위에 있도록 규정된 또 다른 혼인 관계'라는 개념이 존재할 수 없었다. 배우자 한 사람 이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모두 공식적으로는 내연 관계, 불륜이었다. 따라서 그런 관계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서출'이 아니라 '사생아'였으며, 정식 결혼에서 태어난 적자녀들과 달리 상속권도 계승권도 받지 못했다. 생부가 자신의 사생아라고 공식적으로 인지하거나, 호적상 생모의 법적 남편의 자식으로 처리하거나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전부 케바케였고 법적으로 사생아에게 허락되는 권리는 없었다. 대신 적녀에게도 계승권이 인정되는 경우가 있었으나, 살리카 법을 따르는 곳에서는 아예 여계 계승 자체가 금지되고 오로지 적자에게만 계승권이 주어졌다. 이 때문에 동양에서는 대가 끊겨 왕조가 망하는 일은 없었지만(있긴 있었는데 인위적으로 대를 끊어버려서 그렇게 됐다), 서양에서는 합스부르크 가문처럼 편법을 쓰지 않는 이상은(여성이 왕위/작위를 계승한 경우 그 후계자가 어머니의 성을 따르게 해서 왕조의 성씨를 유지하게 하는 등, 현재도 유럽의 몇몇 왕실에서 쓰는 방법이다) 왕조의 수명이 100~300년 정도를 넘는 경우가 잘 없다.[2] 광개토태왕을 제외하고는 어렸을 적 할머니나 어머니, 후견인들이 섭정에 충실하여 왕들이 성인이 된 후의 발판이 되어 주었다는 공통점이 있다.[3] 사실 이쪽은 즉위 직후부터 예송논쟁을 이어받아 환국을 진행시켜버렸다. 또 다음 다음 환국에서는 송시열을 숙청했다.[4] 이 기준에 따라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즉위한 건 20세이므로 제외한다.[5] 6촌이 6부가 되었고, 촌장들의 이름도 다 있으니, 엄밀하게 촌장도 맞다. 그러나 13세가 되니 숙성하여 왕이 되었다고 하니 13세 이후는 친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6] 6촌이 6부가 되었고, 촌장들의 이름도 다 있으니, 엄밀하게 촌장도 맞다. 그러나 13세가 되니 숙성하여 왕이 되었다고 하니 13세 이후는 친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7] 성덕왕의 생모 신목왕후는 성덕왕 즉위 2년 전인 서기 700년에 죽었다.[8] 성덕왕의 생모 신목왕후는 성덕왕 즉위 2년 전인 서기 700년에 죽었다.[9] 가야 건국 설화에 의하면 왕이 알에서 깨어난 뒤부터 계속 자랐다고 하며 다음 달 보름(생후 15~40일 사이)에는 웬만한 성인과 같아졌다고 한다. 프라이마크 물론 신화의 내용이므로, 실제 즉위 나이는 알 수 없다.[10] 가야 건국 설화에 의하면 왕이 알에서 깨어난 뒤부터 계속 자랐다고 하며 다음 달 보름(생후 15~40일 사이)에는 웬만한 성인과 같아졌다고 한다. 프라이마크 물론 신화의 내용이므로, 실제 즉위 나이는 알 수 없다.[11] 충정왕의 생모는 충혜왕의 2비인 희비 윤씨지만 1비인 덕녕공주가 섭정을 했다.[12] 충정왕의 생모는 충혜왕의 2비인 희비 윤씨지만 1비인 덕녕공주가 섭정을 했다.[13] 수렴청정을 맡을 대비가 없었다.[14] 수렴청정을 맡을 대비가 없었다.[15] 이미지와 달리 3년만에 수렴을 거두었다.[16] 이미지와 달리 3년만에 수렴을 거두었다.[17] 장제의 정비. 화제의 생모 양귀인을 죽였다.[18] 장덕황후 두씨의 오빠.[19] 장제의 정비. 화제의 생모 양귀인을 죽였다.[20] 장덕황후 두씨의 오빠.[21] 황제로서 동아시아 최연소 즉위. 황제로 제한하지 않고 모든 동아시아 군주들을 통틀어 보아도 수로왕에 이어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22] 황제로서 동아시아 최연소 즉위. 황제로 제한하지 않고 모든 동아시아 군주들을 통틀어 보아도 수로왕에 이어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23] 즉위하자마자 폐위당했다는 얘기도 있다.[24] 즉위하자마자 폐위당했다는 얘기도 있다.[25] 생모인지 적모인지 불명.[26] 생모인지 적모인지 불명.[27] 일본 역사상 최연소 즉위, 최연소 양위, 최연소 상황.[28] 일본 역사상 최연소 즉위, 최연소 양위, 최연소 상황.[29] 호르미즈드 2세는 임신 중인 아내 이프라의 뱃속에 있는 태아에게 샤푸르 2세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왕위 계승자로 삼은 뒤 죽었다. 남편의 유언을 충실하게 지킨 이프라는 샤푸르 2세의 대관식 때 자신의 배 위에(물론 그 안에 샤푸르가 들어있기 때문) 왕관을 올렸으며, 출산 전까지 왕관을 다리 사이에 둬서 태아가 태어나자마자 즉위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아들이 아니면 어쨌으려고(...) 마기들이 아들이라고 호언장담하긴 했다. 일단 동서양 합쳐서 최연소 황제로 간주.[30] 원래 장인은 아니었고, 이렇게 제위를 찾아준 후 딸을 시집보내고 권신의 행보를 보이다가 마침내 제위에 욕심을 보여서 수도 시민들에게 살해당했다.[31] 유복자였다. 즉, 태어나기 전부터 왕위 계승이 확정되어 있던 것. 비록 생후 5일 만에 숨졌지만.[32] 프랑스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샤를 10세는 손자인 앙리에게 양위한 후 인기가 좋았던 친척 루이 필리프에게 섭정을 맡길 생각이었는데, 7월 혁명 때문에 앙리 5세가 즉위했을 때 혁명의 주도 세력이 루이 필리프를 왕으로 옹립(사실 루이 필리프 자신이 혁명을 일으킨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했다.)하면서 물거품이 되었다.[33] 장 1세와 마찬가지로 유복자였다. 즉, 아들로 태어나면 누나들을 제치고 태어나기 전부터 왕위 계승이 확정되어 있던 것. 장 1세와는 다르게 오래살았지만 공화혁명으로 퇴위당했다.[34] 독살설이 유력함[35] 호르미즈드 2세는 임신 중인 아내 이프라의 뱃속에 있는 태아에게 샤푸르 2세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왕위 계승자로 삼은 뒤 죽었다. 남편의 유언을 충실하게 지킨 이프라는 샤푸르 2세의 대관식 때 자신의 배 위에(물론 그 안에 샤푸르가 들어있기 때문) 왕관을 올렸으며, 출산 전까지 왕관을 다리 사이에 둬서 태아가 태어나자마자 즉위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아들이 아니면 어쨌으려고(...) 마기들이 아들이라고 호언장담하긴 했다. 일단 동서양 합쳐서 최연소 황제로 간주.[36] 원래 장인은 아니었고, 이렇게 제위를 찾아준 후 딸을 시집보내고 권신의 행보를 보이다가 마침내 제위에 욕심을 보여서 수도 시민들에게 살해당했다.[37] 유복자였다. 즉, 태어나기 전부터 왕위 계승이 확정되어 있던 것. 비록 생후 5일 만에 숨졌지만.[38] 프랑스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샤를 10세는 손자인 앙리에게 양위한 후 인기가 좋았던 친척 루이 필리프에게 섭정을 맡길 생각이었는데, 7월 혁명 때문에 앙리 5세가 즉위했을 때 혁명의 주도 세력이 루이 필리프를 왕으로 옹립(사실 루이 필리프 자신이 혁명을 일으킨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했다.)하면서 물거품이 되었다.[39] 장 1세와 마찬가지로 유복자였다. 즉, 아들로 태어나면 누나들을 제치고 태어나기 전부터 왕위 계승이 확정되어 있던 것. 장 1세와는 다르게 오래살았지만 공화혁명으로 퇴위당했다.[40] 호르미즈드 2세는 임신 중인 아내 이프라의 뱃속에 있는 태아에게 샤푸르 2세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왕위 계승자로 삼은 뒤 죽었다. 남편의 유언을 충실하게 지킨 이프라는 샤푸르 2세의 대관식 때 자신의 배 위에(물론 그 안에 샤푸르가 들어있기 때문) 왕관을 올렸으며, 출산 전까지 왕관을 다리 사이에 둬서 태아가 태어나자마자 즉위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아들이 아니면 어쨌으려고(...) 마기들이 아들이라고 호언장담하긴 했다. 일단 동서양 합쳐서 최연소 황제로 간주.[41] 원래 장인은 아니었고, 이렇게 제위를 찾아준 후 딸을 시집보내고 권신의 행보를 보이다가 마침내 제위에 욕심을 보여서 수도 시민들에게 살해당했다.[42] 유복자였다. 즉, 태어나기 전부터 왕위 계승이 확정되어 있던 것. 비록 생후 5일 만에 숨졌지만.[43] 프랑스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샤를 10세는 손자인 앙리에게 양위한 후 인기가 좋았던 친척 루이 필리프에게 섭정을 맡길 생각이었는데, 7월 혁명 때문에 앙리 5세가 즉위했을 때 혁명의 주도 세력이 루이 필리프를 왕으로 옹립(사실 루이 필리프 자신이 혁명을 일으킨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했다.)하면서 물거품이 되었다.[44] 장 1세와 마찬가지로 유복자였다. 즉, 아들로 태어나면 누나들을 제치고 태어나기 전부터 왕위 계승이 확정되어 있던 것. 장 1세와는 다르게 오래살았지만 공화혁명으로 퇴위당했다.[45] 독살설이 유력함[46] 실질적인 왕위에 오른 것은 16세, 대관식 후 정식으로 왕이 된 것은 21세이다.[47] 다만 G16을 끝냈을 경우에만 해당된다.[48] 이쪽은 원래 게치스가 얼굴마담으로 놓은 황제. 그러나 그가 전설의 군주 하르모니아의 후예란 떡밥이 있다.[49] 사실 아카메 세계관의 현 황제는 왕위 계승 순위가 매우 먼 인물이었으나 대신 오네스트의 농간에 휘말려 황제가 된 것.[50] 실질적인 왕위에 오른 것은 16세, 대관식 후 정식으로 왕이 된 것은 21세이다.[51] 다만 G16을 끝냈을 경우에만 해당된다.[52] 이쪽은 원래 게치스가 얼굴마담으로 놓은 황제. 그러나 그가 전설의 군주 하르모니아의 후예란 떡밥이 있다.[53] 사실 아카메 세계관의 현 황제는 왕위 계승 순위가 매우 먼 인물이었으나 대신 오네스트의 농간에 휘말려 황제가 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