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와라노 사네스케(藤原實資)[2]
1. 개요
일본 헤이안 시대의 귀족이자 외척. 섭정. 통칭 미도칸파쿠(御堂關白) 또는 호죠지셋쇼(法成寺攝政). 63대 레이제이 덴노와 64대 엔유 덴노의 처남으로 시조를 기준으로 12세며 후지와라 홋케 미도류(藤原 北家 御堂流)의 파조(派祖)다.
4명의 딸을 황실에 시집보내 삼조(三朝)의 국구(國舅)[3]가 되어, 후지와라노아소미가 외척으로 전횡하는 섭관정치의 절정기를 상징하는 인물로, 헤이안 시대뿐만 아니라 일본사 전체를 통틀어서 막강했던 권력자였다. 또한 미치나가 사후에도 그의 적통인 미도류(御堂流)가 대대로 셋칸직을 독점하면서 자연스럽게 헤이안 시대 이후에도 공가 중 최고위인 셋케(섭가)를 이루게 된다.
한국사로 치면 한 세대 뒤의 인물인 고려시대 경원 이씨 세도 권력자인 이자연(李子淵, 1003~1061)[4]과 이미지가 겹치는 인물. 겐지모노가타리의 주인공 히카루 겐지의 모티브가 된 인물 중 한 명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4명의 딸을 황실에 시집보내 삼조(三朝)의 국구(國舅)[3]가 되어, 후지와라노아소미가 외척으로 전횡하는 섭관정치의 절정기를 상징하는 인물로, 헤이안 시대뿐만 아니라 일본사 전체를 통틀어서 막강했던 권력자였다. 또한 미치나가 사후에도 그의 적통인 미도류(御堂流)가 대대로 셋칸직을 독점하면서 자연스럽게 헤이안 시대 이후에도 공가 중 최고위인 셋케(섭가)를 이루게 된다.
한국사로 치면 한 세대 뒤의 인물인 고려시대 경원 이씨 세도 권력자인 이자연(李子淵, 1003~1061)[4]과 이미지가 겹치는 인물. 겐지모노가타리의 주인공 히카루 겐지의 모티브가 된 인물 중 한 명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2. 약력
3. 가계
4. 와카
この世(よ)をば わが世(よ)とぞ思(おも)ふ 望月(もちづき)の 欠(か)けたることも なしと思(おも)へば
천하가 모두 이 몸의 것이니 저 둥근 달처럼 모자람이 없다네.
5. 대중매체
[1]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재종형이자 정적이었다. 미치나가의 3녀이자 재종질녀인 이시/타케코(威子)가 68대 고이치죠 덴노의 중궁이 되자 <소우기>(小右記) 또는 <야부기>(野府記)로 불리는(단 사네스케 본인은 <역기>(曆記)라고 썼다.) 자신의 일기에 썼던 글이다. 이 '일가립삼후'란 문장도 후술된 와카와 함께 당시 미치나가의 권력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알려져 있다. 재종형제끼리 정적이라는 것에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지만 사네스케의 조부 사네요리는 타다히라의 장남으로 미치나가의 조부 모로요리의 형이었음에도 덴노의 후계자를 낳은 딸을 가진 모로요리에게 후궁에서의 파워게임에 밀려 사실상 적통임에도 주도권을 빼앗긴 과거가 있다. 그런데 그 손자인 미치나가 또한 똑같이 후궁싸움으로 자기 아버지 카네이에가 정한 후계자인 사실상의 장조카 코레치카를 밀어버리는 역사를 반복하고 있으니 저런 반응이 나올 수 밖에.[2]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재종형이자 정적이었다. 미치나가의 3녀이자 재종질녀인 이시/타케코(威子)가 68대 고이치죠 덴노의 중궁이 되자 <소우기>(小右記) 또는 <야부기>(野府記)로 불리는(단 사네스케 본인은 <역기>(曆記)라고 썼다.) 자신의 일기에 썼던 글이다. 이 '일가립삼후'란 문장도 후술된 와카와 함께 당시 미치나가의 권력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알려져 있다. 재종형제끼리 정적이라는 것에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지만 사네스케의 조부 사네요리는 타다히라의 장남으로 미치나가의 조부 모로요리의 형이었음에도 덴노의 후계자를 낳은 딸을 가진 모로요리에게 후궁에서의 파워게임에 밀려 사실상 적통임에도 주도권을 빼앗긴 과거가 있다. 그런데 그 손자인 미치나가 또한 똑같이 후궁싸움으로 자기 아버지 카네이에가 정한 후계자인 사실상의 장조카 코레치카를 밀어버리는 역사를 반복하고 있으니 저런 반응이 나올 수 밖에.[3] 임금의 외할아버지[4] 이자겸의 할아버지다.[5] 호죠지셋쇼기(法成寺摂政記)라고도 한다.[6] 뒷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받았던 직위로 유명하다. 물론 히데요시만 간파쿠가 되었던 것은 아니지만.[7] 그래서 일본사 시험에서 함정문제로 자주 출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