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역대 등번호 목록2. 초창기 등번호 구분3. 주요 등번호
3.1. '''1'''3.2. 33.3. '''5'''3.4. '''[[이종범|7]]'''3.5. '''8'''3.6. 93.7. 103.8. '''11'''3.9. 133.10. '''14'''3.11. 153.12. 163.13. 173.14. '''[[선동열|18]]'''3.15. '''19'''3.16. 203.17. 223.18. 253.19. 263.20. 273.21. 293.22. 323.23. 333.24. 343.25. 373.26. 383.27. '''39'''3.28. 433.29. 473.30. 543.31. 70
1. 역대 등번호 목록
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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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
| 역대 선수 목록
| 현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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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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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심동섭(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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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황윤호(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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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김선빈(20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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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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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김태진(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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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나주환(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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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류지혁(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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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맷 윌리엄스(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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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이진영(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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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이민우(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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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백용환(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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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이창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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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김규성(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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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이준영(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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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최원준(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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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 임기영(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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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범(1983~1984)→선동열(1985~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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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 멩덴(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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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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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 홍상삼(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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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 프레스턴 터커(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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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 최정민(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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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김민식(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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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 박찬호(2019.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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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 남재현(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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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 문선재(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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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김윤동(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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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 나지완(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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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 유민상(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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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 박준표(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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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 이정훈(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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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 장영석(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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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 최형우(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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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 황인준(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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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 애런 브룩스(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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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 이우성(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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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 김현준(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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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 하준영(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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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 권혁경(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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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 최정용(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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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 한승택(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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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 홍원빈(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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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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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 박건우(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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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 박진태(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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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 김명찬(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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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 이의리(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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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 김유신(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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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 장현식(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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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 전상현(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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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 황대인(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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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 김호령(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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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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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 서덕원(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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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 김현수(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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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 박민(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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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 차명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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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 오선우(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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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 고영창(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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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 김재열(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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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 정해영(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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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 변시원(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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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 김영환(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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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 장민기(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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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 김원경(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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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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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 이승재(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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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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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 진갑용(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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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 이범호(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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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 김상훈(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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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 정명원(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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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 김종국(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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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 김민우(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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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 박기남(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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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 마크 위더마이어(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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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 최희섭(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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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 송지만(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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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 이현곤(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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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 윤해진(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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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 방석호(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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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 백인수(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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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 배요한(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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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 오준형(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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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 박지훈(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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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 윤인득(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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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 정성훈(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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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 앤서니 르루(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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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 김선진(2015~)
| |
91
| 서동욱(2020~)
| |
92
| ||
93
| ||
94
| 정상옥(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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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 유재민(2020~)
| |
96
| 곽정철(2019~)
| |
97
| 이상화(2021~)
| |
98
| 서재응(2018~)
| |
99
| 류택현(2019~)
| |
00
| 정윤현→이동수→김준무→이호신(2012~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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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 송후섭(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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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 백현종(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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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 윤중현(2021~)
| |
04
| 장시현(2021~)
| |
05
| 최승주(2020~)
| |
06
| 박정우(2020~)
| |
07
| 김연준(2021~)
| |
08
| 이인한(2020~)
| |
09
| 한준수(2021~)
| |
010
| ||
011
| ||
012
| 이준형(2021~)
| |
013
| 백재엽(2016)
| 김양수(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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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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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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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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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
| 백미카엘(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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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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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
| 김성현(2015~2016)→윤중현(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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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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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
| ||
022
| 오규석(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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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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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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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
| ||
026
| 전은석(2015~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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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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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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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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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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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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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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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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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
| 김종훈(2016)
| |
035
| 최준식(2016~2017)
| |
036
| ||
037
| ||
038
| 손영민(2016)
| |
039
| 이효상(2016)
| |
040
| 윤민섭(2016~2017)
| 장재혁(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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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
| 이경록(2017)
| |
042
| 박효일(2017)
| |
043
| 임기영(2016)
| |
044
| 박경태(2016)
| |
045
| 이진경(2017)
| 양승철(2021~)
|
048
| 민경남(2017)
| |
050
| 최용준(2020~)
| |
100
| 임한용(2012)→오준영(2012~2014)
| |
101
| 김광연(2013)→박세민(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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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 이은총(2014)
| 이진우
|
103
| ||
104
| 신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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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 류기훈(2013)→전우엽(2014)
| 이동건(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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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 이동훈(2013)→우경삼(2014)
| 목고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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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 강하승(2013)→이효상(2014)→손성곤(2014)
| |
108
| 김승현(2013)→이다샘(2014)
| |
109
| 송원호(2013)→최병연(2014)
| |
110
| 박효승(2013~2014)
| |
111
| 유휘봉(2013~2014)
| |
112
| 현천웅(2013~2014)
| |
113
| 박정훈(2013)→정정환(2014)
| |
114
| 서명지(2014)
| |
115
| 이현우(2014)
| |
116
| 오두철(2014)
| |
117
| 장운영(2014)
| |
118
| 최현정(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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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 윤효섭(2014)
| |
2. 초창기 등번호 구분
90년대 초까지만해도 감독인 김응용이 39번을 달고 있었던 관계로 전 코칭스태프가 30번대 등번호를 달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1~29번은 1군급, 40번대 이후는 2군급이 다는 등번호로 구분을 지었다. 그래서 당시 해태는 등번호만으로도 그 선수가 주전급인지 후보인지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예외는 44번을 단 송일섭과 47번을 단 김정수 정도. 90년대 중반 이후 선수단 규모가 커지면서 이러한 구분이 사라졌다.
3. 주요 등번호
이 단락에서는 타이거즈를 대표하는 주요 등번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영구결번이나 주요 계보 선수들에 대한 설명을 이곳에 붙인다.
더 많은 등번호는 위의 '역대 등번호 목록'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더 많은 등번호는 위의 '역대 등번호 목록'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3.1. 1
3.2. 3
원년~1980년대에는 조충열의 등번호였다. 1994년 한대화의 트레이드 상대가 되어 나름 기대를 받고 입단한 김상훈이 이 번호를 달았었지만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008년부터는 주전 유격수로 거듭난 김선빈이 달았다. 김선빈은 2014년까지 이 번호를 사용한 이후 상무에서의 군복무를 수행하게 되는데, 김기태 감독의 지시로 김선빈의 군 복무 공백 기간 동안 아무도 이 번호를 달지 않도록 임시결번 처리를 해 둔 덕분에 김선빈이 타 팀으로 옮기거나 본인 스스로 등번호를 바꿔 달지 않는 한 3번을 그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김선빈이 2016년 9월 상무에서 전역한 이후 다시 이 번호를 달면서 2020년 현재까지 김선빈이 사용하고 있는 번호이다.
2008년부터는 주전 유격수로 거듭난 김선빈이 달았다. 김선빈은 2014년까지 이 번호를 사용한 이후 상무에서의 군복무를 수행하게 되는데, 김기태 감독의 지시로 김선빈의 군 복무 공백 기간 동안 아무도 이 번호를 달지 않도록 임시결번 처리를 해 둔 덕분에 김선빈이 타 팀으로 옮기거나 본인 스스로 등번호를 바꿔 달지 않는 한 3번을 그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김선빈이 2016년 9월 상무에서 전역한 이후 다시 이 번호를 달면서 2020년 현재까지 김선빈이 사용하고 있는 번호이다.
3.3. 5
5번이라는 번호 답게 3루수들이 달았던 번호. 다만 원년에는 2루수 차영화가 달았었다. 90년대에 중심타자로 해태를 4번 정상에 올려놓은먹튀가 된 홍현우가 90년대에 이 번호를 달다가 홍현우의 FA 이적 이후 정성훈이, 정성훈이 이적한 이후에는 김주형이 달았다. 홍현우의 등번호를 줄 정도로 기대가 컸지만 현실은 시궁창. 롯데출신의 백세웅이 달았다가, 2016년 황대인이 이 번호를 달았다가 군에 입대하면서 2017년에는 김지성이 달고 있다. 정성훈이 기아로 돌아오긴 했지만, 56번을 달면서 5번은 홍재호가 가져갔다. 2019년에는 외인타자 해즐베이커가 달았다가 방출되었고, 그 뒤 NC에서 트레이드로 건너온 이우성이 달았고, 2020년에는 황대인이 이 번호를 다시 찾아갔다.
3.4. 7
3.5. 8
이 번호는 OB 베어스에서 해태 타이거즈로 이적한 뒤 활발한 모습을 보였던 '원조 타이거즈 해결사' 3루수 한대화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한대화의 LG 트윈스 이적 후에는 청각장애에도 2차례나 지명타자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박재용이, 박재용의 쌍방울 이적 후에는 양현석이 이 등번호를 달았었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이 번호를 달았던 선수는 2009년 신인으로 들어온 2루수 안치홍. 2014 시즌 이후 군복무에 들어간 뒤에 김광연이 임시로 달기도 했으나 김기태 감독의 지시로 군 복무 공백 기간 동안에 아무도 이 번호를 달지 않도록 지침을 내리면서 안치홍이 타 팀으로 옮기거나 본인 스스로 등번호를 바꿔 달지 않는 한 8번을 그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2019 시즌이 끝난 후 FA 계약으로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두산 베어스의 류지혁이 홍건희와의 1:1 트레이드로 이적해오며 홍건희의 번호인 51번을 임시로 사용하다가[3] 2020년 6월 16일 자로 류지혁이 8번을 차지했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이 번호를 달았던 선수는 2009년 신인으로 들어온 2루수 안치홍. 2014 시즌 이후 군복무에 들어간 뒤에 김광연이 임시로 달기도 했으나 김기태 감독의 지시로 군 복무 공백 기간 동안에 아무도 이 번호를 달지 않도록 지침을 내리면서 안치홍이 타 팀으로 옮기거나 본인 스스로 등번호를 바꿔 달지 않는 한 8번을 그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2019 시즌이 끝난 후 FA 계약으로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두산 베어스의 류지혁이 홍건희와의 1:1 트레이드로 이적해오며 홍건희의 번호인 51번을 임시로 사용하다가[3] 2020년 6월 16일 자로 류지혁이 8번을 차지했다.
3.6. 9
3.7. 10
여러선수가 거쳐간 번호. 80년대에는 김준환이 달았고 김준환의 은퇴 이후 이광우, 1년간 박노준, 3년간 정성룡, 신인때 1년간 장성호, 2년간 최훈재, 1년간 양준혁이 10번을 다는 등 90년대에만 무려 6명의 선수가 10번을 달았다. 역대 안타부문 1,2위에 랭크된 양준혁과 장성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흥미거리.
이후 한기주가주유소 창업 전리즈시절에 이 번호를 달았다.
2015년에는 고졸 신인 황대인이 이 번호를 달게 되었다. 고교 시절에도 10번을 달았는데, 이는 KIA에서 황대인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2016년에는 박진두가 이 번호를 달게 되었다. 2017년-2018년에는 김석환이 이 번호를 달았으나 황대인이 상무에서 전역하며 2019년에 다시 이 번호를 달았다. 2020년 현재는야안갑 외야수 이진영이 이 번호를 달고 있다.
2014년 강한울 이후로 주로 신인급이라고 쓰고 만년유망주라고 읽는 선수들이 달고 있는 번호이다.
이후 한기주가
2015년에는 고졸 신인 황대인이 이 번호를 달게 되었다. 고교 시절에도 10번을 달았는데, 이는 KIA에서 황대인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2016년에는 박진두가 이 번호를 달게 되었다. 2017년-2018년에는 김석환이 이 번호를 달았으나 황대인이 상무에서 전역하며 2019년에 다시 이 번호를 달았다. 2020년 현재는
2014년 강한울 이후로 주로 신인급
3.8. 11
원년에는 '오리궁뎅이' 김성한을 상징하는 대표 번호였고, 그로 인해 아직까지 올드 팬에게는 김성한의 등번호로 기억되고 있다.
김성한의 뒤를 이어 11번을 단 선수는 '아기호랑이'라는 별명으로 차기 에이스감으로 꼽히던 김상진. 헌데 위암으로 요절한 김상진의 비운과 연계되어서인지 비운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그래선지 김상진 이후로 이 번호를 단 투수들은 하나같이 별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맨 처음에는 이대진이 4년간 달았지만 후배에게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며 번호를 바꾸었고, 임준혁은 만년 2군 신세, 문현정은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방출되었다.[4]
2012년부터는 2012년 신인 좌완투수인 임준섭이 이 번호를 달게 되었다가, 2015년에는 임준섭이 트레이드로 팀을 떠나면서 같은 번호를 썼던 반대급부 선수였던 김광수(...)가 이 등번호를 받았다. 2016년에는 한화에서 트레이드 된유창식이 이 등번호를 달게 됐다. 그리고 유창식이 승부조작에 연루되고, 김광수가 2017시즌 부진의 늪에 빠지며 방출을 당하는 등 11번의 저주는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
2017 시즌에는 김진우 선수가 이 등번호를 달게 되었다. 그러나 11번의 저주는 지속되고 있는 듯하다. 2017시즌 연습경기에서 무릎에 강습타구를 맞기도 했고, 시범경기 때는 마운드에 오르기 전 몸을 풀다가 오른쪽 늑골 염좌 진단을 받기도 했다. 부상도 당했고 성적도 좋지 않아 FA 자격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데다가 '짐진우'라는 안 좋은 별명까지 얻었다. 결국 김진우가 2018시즌 육성선수로 전환되면서 한 해 동안 비었다가 2020시즌 이민우가 이 번호를 달게 됐다.
김성한의 뒤를 이어 11번을 단 선수는 '아기호랑이'라는 별명으로 차기 에이스감으로 꼽히던 김상진. 헌데 위암으로 요절한 김상진의 비운과 연계되어서인지 비운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그래선지 김상진 이후로 이 번호를 단 투수들은 하나같이 별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맨 처음에는 이대진이 4년간 달았지만 후배에게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며 번호를 바꾸었고, 임준혁은 만년 2군 신세, 문현정은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방출되었다.[4]
2012년부터는 2012년 신인 좌완투수인 임준섭이 이 번호를 달게 되었다가, 2015년에는 임준섭이 트레이드로 팀을 떠나면서 같은 번호를 썼던 반대급부 선수였던 김광수(...)가 이 등번호를 받았다. 2016년에는 한화에서 트레이드 된
2017 시즌에는 김진우 선수가 이 등번호를 달게 되었다. 그러나 11번의 저주는 지속되고 있는 듯하다. 2017시즌 연습경기에서 무릎에 강습타구를 맞기도 했고, 시범경기 때는 마운드에 오르기 전 몸을 풀다가 오른쪽 늑골 염좌 진단을 받기도 했다. 부상도 당했고 성적도 좋지 않아 FA 자격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데다가 '짐진우'라는 안 좋은 별명까지 얻었다. 결국 김진우가 2018시즌 육성선수로 전환되면서 한 해 동안 비었다가 2020시즌 이민우가 이 번호를 달게 됐다.
3.9. 13
3.10. 14
해태 타이거즈의 테이블 세터였던 라면수비의 원조, 그리고 타이거즈 역사상 첫 신인왕이자 마지막 신인왕 이순철을 대표하는 번호. 이순철이 내쫓기듯이 삼성에 간 이후로는 투수 박진철이 달았었다. 그 후 2004년부터 2008년끼지는 심재학이 달았다. 2008년 심재학이 시즌중 방출된 이후엔 박경태가 달았었다.
2012년부터 군에서 돌아온 진해수소폭탄가 달았으나 2013년 5월 6일에 있었던 트레이드로 송은범이 달게 되었다. 그러나 송은범이 SK 시절에 달던 등번호였던 46번을 찾아가면서 한기주가 달게 되었다. 배번 강탈 결국 송은범은 2013 그가 달았던 14번, 46번 전부 흑역사가 되어 21번을 달았지만 또 흑역사가 된다., 한기주 역시 이 번호를 SK에서 새로 온 김준에게 내주고 다시 17번을 찾았다. 그리고 김준은 아무소식 없이 2군에만 있다가 신고선수가 되더니 방출되었다.
2020년부터는 내야 유망주인 김규성이 이 번호를 차지했다.
2012년부터 군에서 돌아온 진해수
2020년부터는 내야 유망주인 김규성이 이 번호를 차지했다.
3.11. 15
3.12. 16
타이거즈 원년 간판투수였던 이상윤과 고졸 신입으로 입단하여 1986년 한국시리즈 MVP를 거머쥔 문희수가 달았던 번호이지만, 비교적 늦은 시기에 타이거즈 야구를 접한 팬들에게는 1996년부터 타이거즈의 내야를 책임졌던 한 남자의 등번호로 기억되고 있다. 김종국 은퇴이후엔 투수 김희걸이 잠시 달았다. 그 뒤 조영훈이 몇달동안 달았는데, 은근히 김종국 코치를 닮아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2012년 FA 시장에서 KIA에 영입된 김주찬이 이 번호를 달게 되었다.
2020시즌 후 자유계약 선수로 풀려났다가 은퇴그리고 등번호 주인 복귀하게 되면서 이 번호는 21시즌부터 최원준이 달게 되었다.
2012년 FA 시장에서 KIA에 영입된 김주찬이 이 번호를 달게 되었다.
2020시즌 후 자유계약 선수로 풀려났다가 은퇴
3.13. 17
90년대 중후반 선발에이스들이 달았던 번호. 원년부터 강만식이 달던 번호였으며, 조계현은 이번호를 달고 93,94 2년연속 다승왕을 차지했며 팀의 93,96,97우승을 이끌었다. 조계현이 삼성으로 트레이드[5] 된 이후로는 곽현희가 달았다. 99년 11승으로 팀내 유일한 10승투수에 올랐으나 에이스라 부르기에 민망한 방어율(6.15)를 찍기도 했다. 그 이후에 이 번호를 단 선수들은 잊혀지다가 2013시즌 한기주가 이 번호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나, 2013년 7월에 있었던 연쇄 번호이동(...)으로 내야수 홍재호가 달게 된다. 홍재호의 군입대 이후로 다시 한기주가 찾았지만.... 2020시즌부터는 임기영이 사용한다.
3.14. 18
80년대 중반~90년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투수 선동열이 단 번호로 유명하다. 선동열이 주니치 드래곤즈로 임대되어 해태를 떠난 뒤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KIA 타이거즈로 간판이 바뀌었을 2001년 당시, KIA 프런트가 해태 색깔 지우기의 일환으로 영구결번을 해제시키려 했던 병크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프런트는 특급 신인이었던 김진우에게 이 번호를 주려 했지만, 여론의 반발로 무산되었고 18번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이후 선동열이 KIA의 새 감독으로 부임할 때 해당 등번호를 주는 것도 고려했지만, 영구결번의 취지를 보호하기 위해 '감독' 선동열은 90번을 달았다.이제 보니 신의 한 수 한때 선 감독의 유임 소식이 전해지고 안치홍에게 군입대를 만류할 때 '임의탈퇴'라는 말을 꺼낸 것이 문제가 되자 팬들이 선 감독의 영구결번을 빼앗아야 한다는 강경 반응도 있었을 정도였다.
KIA 타이거즈로 간판이 바뀌었을 2001년 당시, KIA 프런트가 해태 색깔 지우기의 일환으로 영구결번을 해제시키려 했던 병크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프런트는 특급 신인이었던 김진우에게 이 번호를 주려 했지만, 여론의 반발로 무산되었고 18번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이후 선동열이 KIA의 새 감독으로 부임할 때 해당 등번호를 주는 것도 고려했지만, 영구결번의 취지를 보호하기 위해 '감독' 선동열은 90번을 달았다.
3.15. 19
언더핸드 투수임에도 강속구로 윽박지르고 선발투수로도 활동했던 이강철이 해태 시절 달았던 이후 타이거즈 내에서는 타이거즈 잠수함의 대표적 번호가 된 듯 하다. 삼성 라이온즈의 원조 라이온킹 박충식이 타이거즈로 이적한 당시 달았던 번호였다 이강철이 돌아오면서 은퇴하기 전까지 이 번호를 달았다.[6] 이강철 이후 신용운-손영민으로 계보가 이어지다 손영민의 불미스런 임의탈퇴 이후 2013년부터 좌완 손동욱이 달게 되면서 그 계보가 끊어졌다.
손영민이 2018년에 이 번호를 다시 달며 계보를 이었고, 2019년 우완투수 이민우가 달면서 계보가 잠시 끊어졌으나 2020년 사이드암 박정수가 이 번호를 달게 되면서 옆구리 계보가 재부활하는 듯했다.
그러나 2020년 이 번호를 달았던 우완 사이드암 투수인 박정수가 시즌 중반 트레이드를 통해 NC 다이노스로 이적하였고, 박정수의 반대급부인 김태진이 해당 번호를 달게 되면서 아예 투수가 아닌 타자가 이 번호를 달게 되었다가 2021년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있는 새 외인 다니엘 멩덴이 이 번호를 달면서 다시 투수의 등번호가 되었다.
손영민이 2018년에 이 번호를 다시 달며 계보를 이었고, 2019년 우완투수 이민우가 달면서 계보가 잠시 끊어졌으나 2020년 사이드암 박정수가 이 번호를 달게 되면서 옆구리 계보가 재부활하는 듯했다.
그러나 2020년 이 번호를 달았던 우완 사이드암 투수인 박정수가 시즌 중반 트레이드를 통해 NC 다이노스로 이적하였고, 박정수의 반대급부인 김태진이 해당 번호를 달게 되면서 아예 투수가 아닌 타자가 이 번호를 달게 되었다가 2021년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있는 새 외인 다니엘 멩덴이 이 번호를 달면서 다시 투수의 등번호가 되었다.
3.16. 20
3.17. 22
3.18. 25
3.19. 26
조계현이 신인 시절 잠시 달았다가 90년대 타이거즈의 또다른 에이스 이대진이 달았던 번호. 그는 97시즌 17승을 거두며 KBO 골든글러브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후 이대진은 김상진을 위해 11번을 달았고 그 번호는 홍세완이 달게 되었다. 홍세완은 03시즌 유격수 최초로 100타점을 달성하며 골든글러브를 차지하였으나, 광주 무등물방개구장의 넘사벽급 인조잔디로 인해 이후 부상에 시달리며 시름시름하다 결국 은퇴하게 된다.
2010년부터 서재응이 달기 시작했으나, 2015년이 끝나고 은퇴를 했고, 제대한 손영민이 2017년부터 이어받게 되었다. 그리고 2018년부터 2020년까지는 임기준 2021시즌에는 남재현이 등번호를 사용하고 있다.
2010년부터 서재응이 달기 시작했으나, 2015년이 끝나고 은퇴를 했고, 제대한 손영민이 2017년부터 이어받게 되었다. 그리고 2018년부터 2020년까지는 임기준 2021시즌에는 남재현이 등번호를 사용하고 있다.
3.20. 27
타이거즈 원년 홈런왕 김봉연이 처음 단 이후 타이거즈의 강타자를 상징하는 등번호가 되었다. 그 이후 김봉연이 매우 아꼈던 후배 이호성에게 27번을 물려주면서[7] 시작되었던 강타자 계보는 투수 강철민과 호세 리마에서 잠시 끊어졌고, LG 트윈스-KIA 타이거즈 간의 트레이드로 타이거즈에 복귀한 김상현이 이 번호를 달게 되면서 다시 이어지게 되었는가 했지만...
2013년 5월 6일 김상현이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 되면서 신승현이 27번을 달게 되었고, 신승현이 1년도 안 되어 팀을 떠난 뒤에는 전 이름 김상현이 달게 된다. 하지만, 27번 강타자계보는 여전히 끊어졌다. 그리고 김태영은 15시즌의 부진으로 인해서 신고선수로 강등되었다. 따라서 주인이 없다.
2013년 5월 6일 김상현이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 되면서 신승현이 27번을 달게 되었고, 신승현이 1년도 안 되어 팀을 떠난 뒤에는 전 이름 김상현이 달게 된다. 하지만, 27번 강타자계보는 여전히 끊어졌다. 그리고 김태영은 15시즌의 부진으로 인해서 신고선수로 강등되었다. 따라서 주인이 없다.
그리고 이 모 선수 이후로 저주를 엄청 받게 되었는지 이 번호를 달은 선수들의 결말이 좋지 못했다. 앞에 언급한 그 선수는 굳이 말 안해도 알거고, 강철민은 만년 유망주 취급받다가 LG로 트레이드 되었지만 사이버 투수로 전락하면서 은퇴, 호세 리마는 방출 이후 심장마비로 돌연사, 김상현은 SK 트레이드 이후 부진하다가 kt로 이적하면서 부활하는듯 싶었지만 음란행위를 저지르면서 임의탈퇴, 김태영은 위에 언급한 것 처럼 부상으로 재활하다 방출되었다.이쯤되면 결번처리 하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2016년 12월 6일 포수 이홍구가 FA로 영입된 외야수 최형우에게 34번을 넘겨주고 공석이 된 27번을 선택하였는데, 바로 트레이드 상대가 되면서 이명기가 달게 되었고, 2019시즌 이명기가 등번호를 변경한 뒤 트레이드로 KIA에 온 문선재가 달게 되었다.
2016년 12월 6일 포수 이홍구가 FA로 영입된 외야수 최형우에게 34번을 넘겨주고 공석이 된 27번을 선택하였는데, 바로 트레이드 상대가 되면서 이명기가 달게 되었고, 2019시즌 이명기가 등번호를 변경한 뒤 트레이드로 KIA에 온 문선재가 달게 되었다.
3.21. 29
3.22. 32
3.23. 33
3.24. 34
2016년 11월 24일 FA로 영입된 외야수 최형우가 12월 6일 포수 이홍구에게 양해를 구한 후 34번을 선택하였고, 2020년 현재까지 이 번호를 사용하고 있다.
3.25. 37
90년대 초반까진 코칭스텝이 쓰다가[8] 이후 임창용이 달게된 번호[9]로서 임창용은 이번호로 창용불패의 신화를 쓰다가 돈 없는 구단 탓에 삼성 라이온즈로 팔려간다. 이후 곽채진과 신동주가 이 번호를 달았다. 신동주는 2000년대부터 야구를 보기 시작한 팬이라면 그저 그런 타자로 인식할 수 있으나 90년대 후반에는 대단한 타자였다. 어느 정도 였나면, 20-20을 하면서 외야수비도 평균이상이었기에 여러모로 가치가 높은 호타준족 외야수였다. 임창용은 삼성 이적 후 등번호를 39번을 달아야했는데, 이는 이미 신동주가 달고 있었기 때문, 결국 신동주가 기아로 이적한 2002년부터 37번으로 등번호를 교체한다. [10][11]
임창용이 18년만에 타이거즈로 돌아온 뒤에도 37번이 아닌 육성선수 번호인 037을 거쳐서 일본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절의 번호인 12번을 쓰게 되었다. 임창용이 12번을 달면서 임창용의 상징과도 같았던 37번은 배힘찬이 달고 본래 37번을 달던 신창호는 44번으로 달았으나, 2016 시즌 후 방출되었다. 현재는 이우성이 달고 있다.
양현종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타이거즈에 입단한 뒤 2년간 달았던 번호가 이 번호였다.
임창용이 18년만에 타이거즈로 돌아온 뒤에도 37번이 아닌 육성선수 번호인 037을 거쳐서 일본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절의 번호인 12번을 쓰게 되었다. 임창용이 12번을 달면서 임창용의 상징과도 같았던 37번은 배힘찬이 달고 본래 37번을 달던 신창호는 44번으로 달았으나, 2016 시즌 후 방출되었다. 현재는 이우성이 달고 있다.
양현종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타이거즈에 입단한 뒤 2년간 달았던 번호가 이 번호였다.
3.26. 38
나름 동렬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던시절의 해태타선을 이끌던 이호준의 번호였다.[12] 이호준과 성영재의 트레이드는 타이거즈 역사상 후회될 트레이드.. 그도 그럴 것이 해태를 인수한 기아시절 초반 2년 연속 정규시즌 2위를 기록하며 나름 잘 나갔는데 이 팀의 약점은 4번타자가 부실했다는 것이었고, 02~04시즌 이호준은 3년 도합 99홈런, 278타점을 기록하며 포텐을 터뜨리고 말았다. 마해영, 양준혁 등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았으며 같은기간 타이거즈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친 선수는 도합 59홈런을 기록한 장성호였다. 이 선수가 계속 해태-기아에 있었다면 우리나라의 야구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일.... 거기에 트레이드상대인 성영재가 병역비리로 수감되었고, 그 후 성적부진으로 인해 2년만에 방출된 것을 생각하면 크게 말아먹은 트레이드였다.
이호준 이후 투수 오우진, 손혁, 소소경이 38번을 달았으며, 2005 시즌 홍현우가 LG에서 돌아와서 달기도 했었지만 그 시즌 끝나고 소리없이 은퇴했다. 그 뒤로 박준표가 이 번호를 달고 뛰다가 2016 시즌이 끝난 뒤 입대했고 현재는 김현준이 38번을 달고 있다.
이호준 이후 투수 오우진, 손혁, 소소경이 38번을 달았으며, 2005 시즌 홍현우가 LG에서 돌아와서 달기도 했었지만 그 시즌 끝나고 소리없이 은퇴했다. 그 뒤로 박준표가 이 번호를 달고 뛰다가 2016 시즌이 끝난 뒤 입대했고 현재는 김현준이 38번을 달고 있다.
3.27. 39
3.28. 43
3.29. 47
3.30. 54
3.31. 70
[1] 프로데뷔는 1996년이나 등번호 1번을 달은 것은 1997년부터다.[2] 김일권과 조충열은 1983년 한정으로 서로 등번호를 맞바꿨다. 1984년부터는 다시 전처럼 돌아갔다.[3] 보통 트레이드된 선수는 시즌 중반에 팀에 합류하기 때문에 이미 시즌 전 등번호 정리가 끝난 상황에서 본인이 원하는 등번호를 바로 얻는 게 쉽지 않다. 또한 트레이드 자원은 트레이드 다음날 경기에 출장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보통은 자신과 트레이드된 선수의 등번호를 받아 당해년도 시즌이 끝날 때까지는 그 번호를 사용하고 시즌이 끝난 후 선수들과의 조정을 통해 바꾸는 경우가 많다. 이적해오자마자 원하는 등번호가 비어 있었던 류지혁의 경우가 특수한 것.[4] 이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지만, 1년 후 KBO 2차 드래프트로 다시 NC 다이노스로 이적했지만 2015시즌중 방출되었다.[5] 1억5천만원에 현금 트레이드되었다. 이 트레이드는 항명파동 연루자인 조계현 털어내기+현금확보의 목적이 있었다.[6] 박충식은 15번으로 등번호를 옮긴다.[7] 그 이유 때문에 이호성이 네 모녀를 살인하고 그 자신도 목숨을 끊었을 때 김봉연 교수가 매우 애통해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8] 김봉연, 정현발 코치가 37번을 달았었다.[9] 신인시절한정 57번[10] 그러나 임창용의 애니콜 이미지는 39번이 여러모로 강하다.[11] 신동주가 마해영의 보상선수가 되어 삼성으로 이적한 후에는 임창용이 37번을 달고 있어서 40번을 달아야했다.[12] 신인시절 한정 29번[13] 유동훈이 병풍사건으로 인해 군문제가 걸리자, 군대 간 동안에는 손영민이 39번을 달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