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철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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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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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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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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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충암초-성남중-성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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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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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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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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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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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
|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6~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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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아마추어 시절
성남고 시절. (출처 : 포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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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고 시절에는 당시 엄청난 우완 파이어볼러였다. 당시 최고투수 대구상고의 이정호와 2000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 맞대결에서 9이닝 3피안타 1실점으로 ‘판정승’을 거두기도 했다.[1][2] 그 청룡기 대회에서는 무려 혼자 5승이나 따냈다. 덤으로 새가슴류도 아닌 엄청난 유망주.
2000년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도 국가대표로 참여했고, 당시에 같이 뛰었던 선수들은 추신수, 이대호, 정근우, 김태균, 이동현, 정상호 등 고교 무대를 내로라 하던 선수들. 물론 그 대회에서 대한민국은 우승을 차지했다.
성남고 시절 엄청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장래성에 의구심을 받아서 이동현-황규택에 밀려 서울권 1차 지명을 받지 못했고, 2차 1라운드로 해태 타이거즈에 해태 역대 팀 내 고졸 최고액인 2억원[3][4]의 ‘귀한 몸’으로 입단하게 된다.[5]
3. 선수 시절
4. 은퇴 후
5.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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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WHIP
|
2001
| 13
| 33
| 1
| 5
| 0
| 0
| 8.73
| 45
| 11
| 24
| 18
| 2.00
| |
2002
| 12
| 18⅓
| 0
| 0
| 0
| 0
| 4.42
| 17
| 1
| 6
| 16
| 1.20
| |
2003
| 3
| 4
| 0
| 0
| 0
| 0
| 6.75
| 7
| 1
| 0
| 3
| 1.75
| |
2004
| 10
| 20
| 1
| 1
| 0
| 0
| 6.30
| 25
| 5
| 18
| 11
| 2.05
| |
2005
| 3
| 5⅓
| 0
| 0
| 0
| 0
| 10.13
| 6
| 2
| 6
| 4
|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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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 1군 기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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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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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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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통산(5시즌)
| 41
| 80⅔
| 2
| 6
| 0
| 0
| 7.14
| 100
| 20
| 54
| 52
|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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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로 전년도 대회에서 대구상고는 우승을 차지했고, 대회 2연패를 대다수가 예상했다.[2] 2000년 청룡기 우승 전 성남고의 마지막 우승은 1970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였다.[3] 계약금 1억 8,000만 원, 연봉 2,000만원. 당시 해태가 1997년 외환 위기로 망해가서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되기 직전이라 돈이 없다는 걸 생각하면, 이 정도 돈을 투자한 것으로 보아 엄청난 유망주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4] 참고로 이해 해태의 1차 지명을 받았던 투수 정원보다도 두 배나 더 많은 계약금을 받았다. 사실 이렇게 된 것은 이 당시 광주, 전남 팜에 눈에 띄는 선수가 딱히 나오지 않았던 것도 있다.[5] 사실 고려대학교에서 스카우팅 제의가 왔으나, 뿌리치고 입단했다고 한다.[6] 이 해를 끝으로 김주철과 같은 해 입단을 한 1차 지명 출신 정원도 임의탈퇴 공시되며 2001년 1차 지명, 2차 1번 지명으로 입단한 선수 둘이 나란히 옷을 벗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