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김성규(金星圭 / Kim Seong-k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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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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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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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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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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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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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타
| 좌투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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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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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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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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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0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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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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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규(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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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조(1994~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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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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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창기(1988~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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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규(1990~1991)
| →
| 이용석(1993~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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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1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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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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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규(1992~1993)
| →
| 허대욱(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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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등번호 9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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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세베 유타카(2014)
| →
| 김성규(2015~2019)
| →
| 서동욱(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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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前 KIA 타이거즈 2군 작전주루코치.
2. 선수 시절
1983년 3관왕을 달성한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의 주장으로 활약한 선수였다. 키는 작은 편이었지만, 리더십이 뛰어나서 팀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던 선수. 호수비나 결정적인 순간에 큰 소리를 내면서 팀원들을 독려하던 선수였다. 그런 리더십이 인정을 받았는지 1983년 봉황대기 MVP 수상자가 되는 등 고교 무대에서 인정을 받았고, 이어 연세대로 진학했다. 그리고 1987년 해태의 지명을 받아 1988년부터 데뷔하였다.
좌타자가 항상 부족해서 애를 먹었던 해태 사정 상 김성규는 데뷔 초반에 제법 많은 기회를 부여 받았으며, 실제로 1988년에는 타율 0.284를 기록하면서 그럭저럭 성공적으로 데뷔하며 신인왕 후보에도 올랐다. 다만, 이 해는 서울 올림픽으로 인해 유능한 선수들이 프로에 바로 데뷔하지 못한 사정도 있는 탓에 실제로는 그리 인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 해 이후로는 잦은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된 활약을 보이지 못하면서 1991년을 끝으로 방출되었고, 새롭게 둥지를 튼 쌍방울에서도 인상적인 활약 없이 단 2년만 뛴 후 은퇴하기에 이른다.
좌타자가 항상 부족해서 애를 먹었던 해태 사정 상 김성규는 데뷔 초반에 제법 많은 기회를 부여 받았으며, 실제로 1988년에는 타율 0.284를 기록하면서 그럭저럭 성공적으로 데뷔하며 신인왕 후보에도 올랐다. 다만, 이 해는 서울 올림픽으로 인해 유능한 선수들이 프로에 바로 데뷔하지 못한 사정도 있는 탓에 실제로는 그리 인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 해 이후로는 잦은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된 활약을 보이지 못하면서 1991년을 끝으로 방출되었고, 새롭게 둥지를 튼 쌍방울에서도 인상적인 활약 없이 단 2년만 뛴 후 은퇴하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