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개요
백제의 인물들의 목록.
고대의 백제에는 여러 방면에서 활약한 수많은 인물들이 존재했을 것이나, 현재 남아있는 기록은 상세하지 않다. 대신 일본서기에 백제인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잘 보면 삼국사기보다 많다.
특히 백제는 고구려나 신라에 비해서 그 기록이 굉장히 부족하다.[1] 덕분에 백제사를 연구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편이다. 그런데 어째 고구려보다 남아있는 인물 숫자가 많은데 그 이유는 일본서기 덕분이다. 일본서기가 없었다면...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실 발해, 가야의 인물 기록도 상당한 비중을 일본의 기록에 할애하고 있는 등 한국 고대사에 있어 일본 사료의 비중은 결코 무시 못한다.
구분기준은 가나다순. 왕은 백제/왕사 참조.
고대의 백제에는 여러 방면에서 활약한 수많은 인물들이 존재했을 것이나, 현재 남아있는 기록은 상세하지 않다. 대신 일본서기에 백제인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잘 보면 삼국사기보다 많다.
특히 백제는 고구려나 신라에 비해서 그 기록이 굉장히 부족하다.[1] 덕분에 백제사를 연구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편이다. 그런데 어째 고구려보다 남아있는 인물 숫자가 많은데 그 이유는 일본서기 덕분이다. 일본서기가 없었다면...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실 발해, 가야의 인물 기록도 상당한 비중을 일본의 기록에 할애하고 있는 등 한국 고대사에 있어 일본 사료의 비중은 결코 무시 못한다.
구분기준은 가나다순. 왕은 백제/왕사 참조.
2. 인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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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ㄱ
이름
| 분류
| 시기
| 확인되는 사료
|
사신
| 6세기
| 일본서기
| |
귀족
| 7세기
| 삼국사기
| |
귀족
| 7세기
| 일본서기
| |
승려
| 7세기
| 일본서기
| |
승려
| 6세기 초반
| 조선불교통사
| |
군인
| 7세기 중반
| ||
사신
| 5세기
| 남제서
| |
대신
| 3세기 중반
| 삼국사기
| |
학자
| 6세기 초반
| 일본서기
| |
반역자
| 5세기 후반
| 삼국사기
| |
학자
| 4세기 중반
| 삼국사기
| |
부흥운동가
| 7세기
| 삼국사기, 일본서기
| |
장군
| 1세기
| 삼국사기
| |
왕족
| 4세기 후반
| 삼국사기, 일본서기
| |
사신
| 6세기 중반
| 일본서기
| |
개국공신
| 1세기
| 전씨세보
| |
승려
| 7세기
| 일본서기
| |
사신
| 4세기
| 일본서기
| |
시조
| ?
| 주서
| |
귀족
| 7세기
| 일본서기
| |
귀족
| 6세기
| 일본서기
| |
사신
| 7세기
| 삼국사기
| |
음악가
| 6세기
| 일본서기
| |
유민, 의사
| 8세기
| 속일본기
| |
망명자
| 5세기
| 일본서기
| |
왕족, 부흥운동가
| 7세기 중반
| 삼국사기
| |
부흥운동가
| 7세기
| 일본서기
| |
의사
| 7세기
| 일본서기
| |
유민
| 7세기
| 일본서기
| |
건축가
| 6세기 후반
| 곤고구미 연혁
| |
망명자
| 2세기 중반
| 삼국사기
|
2.2. ㄴ
2.3. ㄷ
이름
| 분류
| 시기
| 확인되는 사료
|
조각가
| 6세기
| 무령왕릉 출토 은팔찌
| |
승려
| 시기 미상
| 본조고승전
| |
학자
| 6세기
| 일본서기
| |
장군
| 6세기
| 삼국사기
| |
승려
| 6세기
| 조선불교통사
| |
승려
| 6세기
| 일본서기
| |
의원
| 5세기
| 속일본기
| |
유민,의사
| 8세기
| 일본서기
| |
관료
| 7세기
| 일본서기
| |
왕족
| ?
| 일본서기
| |
승려
| 7세기
| 본조고승전
| |
부흥운동가
| 6세기 중반
| 일본서기
| |
승려, 첩자
| 5세기 중반
| 삼국사기
| |
시조(?)[5]
| BC 1세기
| 일본서기
| |
평민
| 2세기
| 삼국사기
| |
승려
| 6세기
| 조선불교통사
| |
승려
| 6세기
| 일본서기
| |
승려
| 7세기
| 일본서기
| |
승려, 부흥운동가
| 6세기 중반
| 삼국사기
| |
승려
| 7세기
| 일본서기
| |
사신
| 6세기
| 일본서기
| |
사신
| 6세기
| 일본서기
| |
사신
| 6세기
| 일본서기
|
2.4. ㄹ
2.5. ㅁ
이름
| 분류
| 시기
| 확인되는 사료
|
장군
| 6세기
| 일본서기
| |
관료
| 6세기
| 일본서기
| |
개국공신
| 1세기
| 삼국사기, 전씨세보
| |
장군
| 6세기
| 일본서기
| |
장군
| 6세기
| 일본서기
| |
왕족
| ?
| 신창성씨록
| |
학자
| 6세기
| 일본서기
| |
사신
| 4세기
| 일본서기
| |
군인
| 4세기 후반
| 삼국사기
| |
?
| ?
| 신창성씨록
| |
사신
| 5세기
| 해동역사
| |
장군
| 5세기
| 남제서
| |
장군
| 5세기
| 해동역사
| |
군인
| 4세기 중반
| ||
사신
| 6세기
| 일본서기
| |
장군
| 6세기
| 일본서기
| |
사신
| 6세기
| 일본서기
| |
관료, 유민
| 7세기
| 일본서기
| |
권신
| 4세기 후반
| 일본서기
| |
귀족
| 7세기
| 삼국사기
| |
기술자
| 6세기
| 일본서기
| |
사신
| 6세기
| 일본서기
| |
사신
| 6세기
| 일본서기
| |
관료
| 6세기
| 일본서기
| |
무용가
| 7세기
| 일본서기
| |
사신
| 4세기
| 일본서기
|
2.6. ㅂ
이름
| 분류
| 시기
| 확인되는 사료
|
의사
| 6세기
| 일본서기
| |
승려
| |||
대신, 반란자
| 5세기 후반
| 삼국사기, 일본서기
| |
장군
| 7세기
| 삼국사기
| |
예술가
| 6세기 후반
| 일본서기
| |
승려
| 7세기
| 일본서기
| |
왕비
| 3세기 후반
| 삼국사기
| |
사신
| 6세기 후반
| 일본서기
| |
왕족, 유민
| 7세기 후반
| 구당서
| |
왕족
| 6세기 중반
| 일본서기
| |
왕족 ,유민
| 7세기
| 삼국사기, 신당서
| |
왕족, 정치가
| 4세기 후반
| 삼국사기
| |
왕족, 유민
| 7세기
| 삼국사기, 구당서
| |
왕족, 부흥운동가
| 7세기
| 구당서
| |
왕족, 부흥운동가
| 7세기
| 삼국사기, 일본서기
| |
왕족
| 2세기 초반
| 삼국사기
| |
왕족, 부흥운동가
| 7세기
| 문헌비고
| |
왕족, 부흥운동가
| 7세기
| 삼국사기
| |
왕족, 부흥운동가
| 7세기
| 삼국사기
| |
왕족
| 7세기
| 삼국사기
| |
왕족
| 7세기
| 삼국사기, 일본서기
| |
왕족, 관료
| 4세기 후반
| 삼국사기
| |
왕족
| 7세기
| 삼국사기, 구당서
| |
왕족
| 4세기 후반
| 삼국사기
| |
왕족
| 1세기
| 삼국사기
| |
관료
| 6세기
| 일본서기
| |
관료
| 5세기 후반
| 삼국사기
|
2.7. ㅅ
이름
| 분류
| 시기
| 확인되는 사료
|
첩자
| 4세기
| 삼국사기
| |
외교관
| 6세기
| 일본서기
| |
무장
| 7세기
| 삼국사기
| |
관료
| 7세기
| 일본서기
| |
왕후
| 7세기
| 금제사리봉안기
| |
관료
| 7세기
| 금제사리봉안기
| |
관료
| 7세기
| 일본서기, 사택지적비
| |
관료
| 7세기
| ||
왕족
| 6세기
| ||
관료
| 6세기 중반
| 삼국사기
| |
왕족
| 1세기
| 삼국사기
| |
왕족
| 6세기
| 삼국사기
| |
2.8. ㅇ
이름
| 분류
| 시기
| 확인되는 사료
|
장인
| 6세기 중반
| 삼국유사
| |
왕족
| 4세기
| 삼국사기
| |
왕족, 예술가
| 6세기 후반
| 일본서기
| |
학자
| 4-5세기
| 일본서기,고사기
| |
외교가
| 6세기
| 일본서기
| |
유민
| 7세기
| 일본서기
| |
외교가
| 7세기
| 수서
| |
반역자
| 5세기
| 삼국사기
| |
승려
| 6세기 말
| 일본서기
| |
7세기
| 삼국사기[7]
| ||
7세기
| 삼국사기
| ||
학자
| 6세기
| 일본서기
| |
외교가
| 6세기 말
| 삼국사기
| |
학자
| 6세기
| 일본서기
| |
학자
| 6세기
| 일본서기
| |
의사
| 6세기
| 일본서기
| |
학자
| 4-5세기
| 일본서기, 고사기
| |
학자
| 6세기
| 일본서기
| |
외교가
| 7세기
| 삼국사기
| |
우두
| 대신
| 3세기 중반
| 삼국사기
|
왕족, 반란자
| 4세기
| 삼국사기
| |
대신
| 5세기
| 송서
| |
우소
| 군인
| 1세기
| 삼국사기
|
왕족, 정치가
| 3세기
| 삼국사기
| |
군인
| 6세기
| 삼국사기
| |
시조
| 기원전 1세기?
| 삼국사기
| |
승려
| 6세기
| 본조고승전
| |
승려
| 6세기
| 본조고승전
| |
대신
| 3세기 중반
| 삼국사기
| |
군인
| 6세기 중반
| 삼국사기
| |
왕족
| 7세기
| 일본서기
| |
군인
| 7세기
| 삼국사기
| |
개국공신
| 1세기
| 삼국사기, 전씨세보
| |
개국공신
| 1세기
| 삼국사기,전씨세보
| |
승려
| 7세기
| 본조고승전
| |
군인
| 6세기 중후반
| 삼국사기
| |
화공
| 5세기
| 일본서기
| |
대신
| 6세기
| 삼국사기
| |
망명인
| 6세기
| 일본서기
| |
간신
| 7세기
| 삼국사기
| |
임성태자(또는 임정태자)
| 망명인[9]
| 7세기
|
2.9. ㅈ
이름
| 분류
| 시기
| 확인되는 사료
|
반역자
| 5세기 후반
| 삼국사기
| |
장군
| 5세기 후반
| 남제서
| |
장군
| 6세기
| 일본서기
| |
개국공신
| 1세기
| 전씨세보
| |
대신
| 5세기
| 삼국사기
| |
반역자
| 1세기
| 삼국사기
| |
왕족
| 4세기
| ||
부흥운동가
| 6세기 중반
| 삼국사기
| |
사신
| 6세기 중반
| 일본서기
| |
사신
| 6세기 중반
| 일본서기
| |
2.10. ㅊ
이름
| 분류
| 시기
| 확인되는 사료
|
문신
| 5세기
| 남제서
| |
유민
| 7세기
| 계유명삼존천불비상
| |
왕족, 유민
| 7세기
| 일본서기
| |
장군
| 6세기
| 일본서기
| |
장군
| 7세기
| 삼국사기
|
2.11. ㅋ
2.12. ㅌ
2.13. ㅍ
2.14. ㅎ
이름
| 분류
| 시기
| 확인되는 사료
|
개국공신
| 1세기
| 전씨세보
| |
대신
| 5세기
| 삼국사기
| |
장수
| 5세기
| 남제서
| |
대신
| 1세기
| 삼국사기
| |
대신
| 5세기
| 삼국사기
| |
대신
| 5세기
| 삼국사기
| |
왕족
| 5세기
| 삼국사기
| |
군인
| 630~6|89
| 삼국사기
흑치상지묘지명 | |
유민
| 676~706
| 흑치준 묘지명
| |
개국공신
| 1세기
| 전씨세보
| |
대신
| 1세기 초반
| 삼국사기
|
3. 테마분류
3.1. 재상
- 내신좌평 역임자
- 상좌평 역임자
3.2. 명장
- 기록에서 얼마 남지 않은 백제의 인물 중 백제의 장수로서 주목할만한 군사적 성과가 기록된 인물
4. 참고 항목
[1] 일례를 들자면 삼국사기 인물 열전의 50여 편 중에서도 백제인의 열전은 고작 3개 정도에 불과하다.[2] 일본서기에는 누리시치케이(ぬりしちけい)라는 훈이 달려있다.[3] 일본서기에는 누리시치케이(ぬりしちけい)라는 훈이 달려있다.[4] 일본서기에서는 백제의 시조를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으로 보며, 근구수왕 이전에 도모왕을 제외하고 1명의 왕이 더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5] 일본서기에서는 백제의 시조를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으로 보며, 근구수왕 이전에 도모왕을 제외하고 1명의 왕이 더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6] 다만 이 인물이 백제인으로 밝혀진 건 묘지명이 발굴되었기 때문이다.[7] 다만 이 인물이 백제인으로 밝혀진 건 묘지명이 발굴되었기 때문이다.[8] 전국시대 다이묘 가문 중 하나인 오우치(大内) 가문이 이 사람의 자손으로 알려져 있다.[9] 전국시대 다이묘 가문 중 하나인 오우치(大内) 가문이 이 사람의 자손으로 알려져 있다.[10] 허나 이후의 기록이 앞당겨진것 이라며 추측되며 근초고왕 시기때 비로소 관등 정비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추정되는데 자세한 내용은고이왕 문서를 참고 바란다.[11] 현대의 장관에 대치되며 중국 6전제의 영향을 받아 6좌평제로 체계화되었다.[12] 왕명 출납을 담당했으며 현대의 대통령 비서실장에 대치된다.[13]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기존의 6좌평과 별개의 존재로 왕이 측근을 임명했다는 견해도 있고, 기존의 내신좌평 동일하게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14] 허나 이후의 기록이 앞당겨진것 이라며 추측되며 근초고왕 시기때 비로소 관등 정비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추정되는데 자세한 내용은고이왕 문서를 참고 바란다.[15] 현대의 장관에 대치되며 중국 6전제의 영향을 받아 6좌평제로 체계화되었다.[16] 왕명 출납을 담당했으며 현대의 대통령 비서실장에 대치된다.[17]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기존의 6좌평과 별개의 존재로 왕이 측근을 임명했다는 견해도 있고, 기존의 내신좌평 동일하게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18] 내신좌평 부여신과 동일인물.[19] 내신좌평 부여신과 동일인물.[20] 충성과 공로를 다하여 국난을 제거해서 사직을 견고하게 지킨 데 대한 논공이 있고 시무를 보좌하는데 무공이 뛰어났다는 공로로 백제로부터 중국 남제에게 관직의 제수가 요청되어 남제로부터 삭녕장군에 임명됐으며 백제의 제후왕으로서 면중왕(面中王),도한왕(都漢王)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아마도 웅진 천도 당시 이탈한 지방세력들을 복속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리라 추측된다.[21] 목간나,사법명,찬수류,혜레곤으로 모두 490년 북위의 침공에 맞서 공을 세운 장수들이다. 이 중 목간나는 유일하게 과거에도 군공이 있고, 선박과 성문을 때려 부수었다는 구체적인 군공의 설명이 있어 북위와의 전쟁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하였고 이전의 다른 전쟁에서도 공을 세웠던 명장으로 추측된다.[22] 충성과 공로를 다하여 국난을 제거해서 사직을 견고하게 지킨 데 대한 논공이 있고 시무를 보좌하는데 무공이 뛰어났다는 공로로 백제로부터 중국 남제에게 관직의 제수가 요청되어 남제로부터 삭녕장군에 임명됐으며 백제의 제후왕으로서 면중왕(面中王),도한왕(都漢王)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아마도 웅진 천도 당시 이탈한 지방세력들을 복속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리라 추측된다.[23] 목간나,사법명,찬수류,혜레곤으로 모두 490년 북위의 침공에 맞서 공을 세운 장수들이다. 이 중 목간나는 유일하게 과거에도 군공이 있고, 선박과 성문을 때려 부수었다는 구체적인 군공의 설명이 있어 북위와의 전쟁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하였고 이전의 다른 전쟁에서도 공을 세웠던 명장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