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기타
단순한 백제인이 아닌 귀족일 가능성이 높다. 백제 출신의 장수인 만큼 고구려의 한성 함락 당시 길앞잪이 노릇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담으로 그의 성은 복성인데, 《일본서기》에서 그와 같은 성을 가진 고이해(古爾解)가 확인된다. 고이씨 가문 출자에 대해선 백제 고이왕과 연관짓기도 하지만 확실치 않다.[3]
여담으로 그의 성은 복성인데, 《일본서기》에서 그와 같은 성을 가진 고이해(古爾解)가 확인된다. 고이씨 가문 출자에 대해선 백제 고이왕과 연관짓기도 하지만 확실치 않다.[3]
[1] 고이만년과 재증걸루에 대해선 개로왕이 추진한 왕권강화 정책에 반발했다가 추방되었다는 설, 개로왕 초반에 일어난걸로 추정되는 정변의 여파로 축출되었다는 설이 있다.[2] 현재의 아차산성[3] 노중국, <백제의 성씨와 귀족가문의 출자>, <<대구사학>> 89,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