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村驛 / Geumchon Station
금촌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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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중앙선 경의선 급행 A | ||
경의·중앙선 경의선 급행 B | ||
다국어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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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umc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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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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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y(金村, ruby=クムチョ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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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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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역 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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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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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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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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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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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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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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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3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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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강장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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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거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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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금 촌 | ||
1. 개요
2. 역 정보
1906년 경의선 개통과 함께 문을 연 유서깊은 역으로서 당시엔 교하군 아동면에 속하는 조그만 촌락에 불과했다. 그러나 역이 들어섬과 동시에 교하군의 중심지 역할을 맡았으며 동시에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허나 그것도 잠시 1914년 일제에 의한 부군면 통폐합 당시 파주군에 강제 통합되면서 천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교하군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데 오랜 기간 동안 금촌역은 구 교하를 상징하는 마지막 남은 유물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파주군청이 옮겨온 문산역 일대에 각종 관공서가 옮겨가면서 문산이 두드러지게 발전하고 중심 기능을 잃은 금촌은 성장을 하기는 했지만 문산에 상대적으로 뒤쳐지며 문산역을 보조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상황이 반전된 것은 6.25 전쟁 이후이다. 초창기 개성역까지 열차가 다닐 당시만 해도 일제강점기와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개성-장단 일대의 군사분계선이 남쪽으로 더 내려오면서 바로 다음 역이자 파주군의 중심지였던 문산역이 종착역이 되었고 임진강 연안인 문산은 휴전선과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파주군청, 파주경찰서, 문산제일고 등등 파주의 모든 주요 시설물이 금촌으로 이사를 왔다.[2] 중심지 기능을 이어받은 이후 서서히 문산과의 격차를 벌려가며 파주의 중심지로 확실히 자리를 굳혔다. 이제는 파주 하면 금촌동 일대가 떠오를 정도가 되었다.
이처럼 금촌은 상업시설과 관공서가 금촌에 몰려있어 파주의 상징으로 되었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문산과 2배 이상으로 인구 격차를 벌리면서 파주의 중심지로 기능을 다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문산과 금촌 모두 전형적인 소도시이며 개성과 파주 사이에는 군사분계선이 지나고 있어서 전방 지역인 파주는 더 이상의 도시 개발을 못하였고 원체 경기도가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에 인접한 지역인 부천, 안양, 안산, 성남, 분당, 용인, 수원, 하남, 구리, 남양주 등과 서남해안을 중심으로 해서 발전했기 때문에 해당되지 못하는 파주는 2000년대까지 경기도의 외곽 지자체들인 현 양평, 가평, 이천, 여주, 연천, 포천 등처럼 발전이 정체되었다.
그러나 일산신도시와 행신/화정 등 신능곡 택지지구가 들어서고 수도권 전철 3호선이 본격적으로 대화역까지 들어오게 된 1995년 이후 서서히 파주도 이웃 일산신도시의 후광을 입기 시작해 2003년 이후 교하신도시 입주가 시작되고 2009년에는 수도권 전철 경의선이 디지털미디어시티역-문산역까지 1단계 개통하여 디엠시에서 서울 지하철 6호선 환승이 가능해졌으며 결국 2010년대에 들어서는 운정신도시의 개발과 수도권 전철 경의선의 디엠시-용산역 간 완전개통[3]으로 파주는 도시 발전을 하고 산업단지도 유치가 되면서 인구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금촌과 문산의 관계가 역전한 데에는 분명 금촌역의 존재가 컸다. 파주역, 운정역을 비롯한 다른 역들은 최소 1960년대 이후에 생겨난 역들로, 당시 파주에는 문산역과 금촌역 외에 다른 철도역은 존재하지 않았던데다가 군사분계선과 가까운 문산의 기능을 옮기는데 마땅한 지역이 금촌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파주의 중심기능이 옮겨온 금촌이 파주의 중심지로 확립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으며, 금촌역은 금촌을 지금처럼 만드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금촌역은 파주에서 문산역과 함께 대표되는 역으로 자리잡았지만, 경의선이 분단의 영향을 받으면서 주요 간선으로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고 단선 상태로 되었으며, 여기에 경의선을 지나는 여객열차들의 긴 배차간격으로 영향까지 받아 금촌과 문산을 비롯한 경의선 연선 일대는 1990년대에 고양시가 일산신도시를 비롯한 여러 택지지구를 개발하기 이전까지 경기도에서 낙후지역으로 대표되는 경기 동부지역들 못지 않게 도시 발전이 정체된 전형적인 농촌 마을들과 소도시로 구성되어 있었다. 현재처럼 고양-파주가 발전한 건 일산신도시 건설 및 신능곡의 화정/행신지구 건설, 수도권 전철 3호선의 일산 연장 등이 이루어진 1995년-1996년 이후 일이다.
금촌역은 경의선의 철도 교통이 별로 좋지 못했기 때문에 이용객 수는 문산역과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던 탓으로 문산역에게 인지도가 밀려나게 되었다. 문산역이 경의선의 종착지라는 타이틀로 수많은 상징성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금촌의 인구가 2배 이상으로 늘어났어도 문산역 수요를 따라잡지 못했고 결국 2009년 경의선이 디엠시-문산 간 복선전철화되면서 수도권 전철 경의선이 개통되었다. 이후 2015년 용산으로 연장되어 완전히 개통되고 수도권 전철 중앙선과 연결이 되고 나서야 금촌역의 수요가 문산역을 앞지르게 된다.
즉 철도역에 있어서만큼은 문산역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고, 지금도 전철의 종착역이 문산인 만큼 여러모로 따라잡기는 힘들어 보인다. 과거 통일호, 비둘기호 시절에는 금촌행 열차가 있었으나 전철화 이후엔 문산까지 모두 연장되었고 서울역 착발 열차만 대곡역, 일산역까지 간다.
한때는 무연탄 화물 도착역으로 지정됐던 적도 있었으나, 1994년에 소화물 취급이 중지되었다. 또한, 2006년 11월 1일부터 다녔었던 소위 임진강라이너라 불리던 5천원짜리단거리 경의선 새마을호가 이 역에 정차한 적이 있었다. 서울-일산-금촌-문산-임진강만 정차했었는데, 그만큼 이용객이 많았기 떄문이다.
파일:attachment/7288215408_3209e08d07.jpg
역 이름 유래가 어처구니없다. 경의선 부설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당시인 1904년 경, 일본인 조사관들이 지명 조사를 하다가 교하군에 속해있던 이 동네의 지명을 묻자 마을 사람들이 새말이라고 대답했는데, 쇠말이라고 잘못 알아들은 것을 그대로 한자화해 금촌(金村)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역시 일본인들은 외국어를 못해 또 다른 어원으로, 금속가공을 많이 하는 지역이라고 해서 금촌이 됐다는 설도 있다. 금촌 뿐만 아니라 인천의 귤현동(원래 굴재) 등 일제강점기와 그 직전 일본의 실수로 인해 원래의 뜻과 무관하게 한자화되어 지명이 바뀐 사례가 종종 있다. 너무 오래 전에 쓴 이름이라 옛 지명을 되돌리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듯. 만약 조사관들이 제대로 알아들었다면 이 역의 이름은 '신촌역'[4]이나 혹은 아동면에서 따온 아동역 등이 되었을 것이다. 만약 다른 의미로 잘못 알아들었다면 조촌역(鳥村)이 되었을 수도.
혹은 파주 사람들 사이에서 금촌이라는 지명이 당시 금촌역의 역장이었다는 카네무라(金村)에서 따왔다고 하는 민간어원설도 있다.
위에 기재된 새말이란 구역은 금촌역 뒤쪽인 금촌3동 구역인 파라다이스 아파트, 팜스프링 아파트, 금신초등학교, 문산제일고 주변을 새말이라고 하고, 금촌1동 구역은 그냥 금촌으로 부른다. 원래 읍이었다가 파주가 시로 승격되자 이 지역은 동 지역으로 다들 바뀌었다.
이 역도 저지대에 자리잡아서 수해에 매우 취약했다. 네임드인 문산에 묻혔지만, 공릉천이 시내를 구비도는 금촌 역시도 매해 홍수로 물바다를 이루는 9시 뉴스 단골현장이었다. 경의선도 예외없이 잠기기 일쑤였고 수없이 운행중단이 되었는데[5] 이는 2000년대 들어서 하천 대정비사업을 거치면서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금촌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금촌역 북쪽으로도 주택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골목길이 생기면서 건널목도 많아졌고 결국 전철화 공사를 하면서 그냥 철로를 고가로 올려버렸다. 최근 건설된 노선 중 흔치 않게 거의 대부분을 지상으로 이동하는 수도권 전철 경의선이지만, 금촌역 전후 약 1.5km 구간은 다른 지역 광역전철처럼 고가로 달린다.
이 역 근처에서 고양시 곡산역에서부터 시작한 경의로와 통일로(1번 국도)가 합쳐진다. 정확히는 금촌역에서 문산 방향으로 약 1km 지나서 나온다. 이 이후 경의선은 통일로와 나란히 달린다. 통일로가 경의선 선로보다 3~5m 정도 밑에 있기 때문에 통일로 타고 드라이브를 가게 되면 경의선 전철이 지나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수도권 전철 경의선을 위한 복선 전철화로 금촌역 일대가 고가로 옮겨짐과 동시에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져 80년을 쓰던 유서 깊은 구역사도 2008년에 허물어졌다. 현재 금촌역 남쪽 광장과 주차장 자리에 구역사가 있었는데, 지금도 남아있는 일산역 구 역사와 상당히 비슷하게 생겼었으며 크기는 2배정도 더 컸다. 초록색 도색에 벽면하며 지붕, 역 간판까지 똑같은 양식이었는데 맞이방 길이가 더 길어서 무려 스토리웨이가 들어와있기도 했었다(!). 1920년대 건축양식 자료로서 가치가 높은 역이었지만 쌍둥이같은 일산역 하나로 충분했는지 도로를 잇는다는 명목으로 2008년 말경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역사 크기로 봐선 의외로 첫 개통 당시부터 비중이 꽤 높은 역이었던 듯. 실제로 서울역과 개성역의 정확히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교행 목적으로 요긴하게 쓰였던 역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2015년까지는 출퇴근과 낮 시간,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대에 앉아갈 수 있는 마지노선 역이었으나 이후 여기서 절대 못 앉는다. 월롱역이나 파주역, 정말 심하면 문산역이 마지노선이다. 수도권 전철 경의선이 개통하고 초창기 몇 년 간은 출퇴근 때만 빼면 공기수송의 대명사였으나, 공덕역 연장 후 일산역으로 자리 착석보장의 마지노선이 생기더니 용산 연장 - 중앙선 연결 이후로는 포텐이 터지면서 이젠 금촌역부터 입석을 세우는데 평일 낮 시간에도 입석을 세운다. 일산역 항목에도 있지만, 경의선은 유독 구간 수요가 적고 물갈이가 안 되는 순수한 광역철도여서 금촌 이후로 타는 이용객은 중간에 앉을 일이 거의 없다. 문산에서 어느 정도 채운 후 파주에서 몇 명 타고, 월롱에서 2/3까지 자리를 채운 다음 금촌에서 우루루 몰려타는 식. 여기서 다 못채워도 운정을 지나기 전에 거의 100% 입석을 세운다고 보면 된다. 탄현 이후 승차하는 승객들은 지못미(...) 당연한 이야기지만 퇴근 시간대나 저녁 시간대에는 반대의 상황이 펼쳐진다. 일평균 승하차객만 보고 '아이고, 겨우 이것밖에 안돼?' 생각했다면 한산한 시간대에 타보면 입이 떡 벌어질지도 모른다. 도시다운 도시가 처음으로 보이는 역에서부터 입석을 세운다.
결국 시간이 조금씩 흐른 지금은 오히려 이 때문에 경의선을 기피하는 사람들도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하고 있다. 물론 천만다행으로 자리 보장이 되는 금촌역에선 해당사항 없는 이야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orail_Gyeongui_line_Geumchon_station_entrance_20060620.jpg
금촌역 구 역사, 1920년대에 지어졌으나, 보존되지 못하고 2008년 10월 19일 철거 되었다.
원래 3호선 계획은 양재역에서 벽제역까지 이은 후 향후 가칭 금촌선이라는 이름으로 관산, 내유, 봉일천, 조리를 거쳐 금촌역에서 종착하려고 했으나 1992년 고양시 승격 후 일산신도시가 개발되자 3호선을 벽제 대신 원당/화정지구와 현 일산신도시인 신일산으로 보내기로 하여 이 계획이 무산되고 대신 일산선과 연결되어 현재의 화정, 일산신도시 방면의 선형이 되었다. 위의 통일로를 따라가는 금촌선은 원흥이나 삼송에서 분기하는 3호선의 지선 형태로 지금도 파주시에서 연장을 추진하고 있으나 벽제-광탄 연선의 인구가 희박해서 가능성은 매우 낮은 편이다.[6]
아이러니하게도 파주여자고등학교와 파주광일중학교의 경우는 월롱면에 속해 있으나, 월롱역보다 이 역에 더 가깝다.
파주군청이 옮겨온 문산역 일대에 각종 관공서가 옮겨가면서 문산이 두드러지게 발전하고 중심 기능을 잃은 금촌은 성장을 하기는 했지만 문산에 상대적으로 뒤쳐지며 문산역을 보조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상황이 반전된 것은 6.25 전쟁 이후이다. 초창기 개성역까지 열차가 다닐 당시만 해도 일제강점기와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개성-장단 일대의 군사분계선이 남쪽으로 더 내려오면서 바로 다음 역이자 파주군의 중심지였던 문산역이 종착역이 되었고 임진강 연안인 문산은 휴전선과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파주군청, 파주경찰서, 문산제일고 등등 파주의 모든 주요 시설물이 금촌으로 이사를 왔다.[2] 중심지 기능을 이어받은 이후 서서히 문산과의 격차를 벌려가며 파주의 중심지로 확실히 자리를 굳혔다. 이제는 파주 하면 금촌동 일대가 떠오를 정도가 되었다.
이처럼 금촌은 상업시설과 관공서가 금촌에 몰려있어 파주의 상징으로 되었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문산과 2배 이상으로 인구 격차를 벌리면서 파주의 중심지로 기능을 다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문산과 금촌 모두 전형적인 소도시이며 개성과 파주 사이에는 군사분계선이 지나고 있어서 전방 지역인 파주는 더 이상의 도시 개발을 못하였고 원체 경기도가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에 인접한 지역인 부천, 안양, 안산, 성남, 분당, 용인, 수원, 하남, 구리, 남양주 등과 서남해안을 중심으로 해서 발전했기 때문에 해당되지 못하는 파주는 2000년대까지 경기도의 외곽 지자체들인 현 양평, 가평, 이천, 여주, 연천, 포천 등처럼 발전이 정체되었다.
그러나 일산신도시와 행신/화정 등 신능곡 택지지구가 들어서고 수도권 전철 3호선이 본격적으로 대화역까지 들어오게 된 1995년 이후 서서히 파주도 이웃 일산신도시의 후광을 입기 시작해 2003년 이후 교하신도시 입주가 시작되고 2009년에는 수도권 전철 경의선이 디지털미디어시티역-문산역까지 1단계 개통하여 디엠시에서 서울 지하철 6호선 환승이 가능해졌으며 결국 2010년대에 들어서는 운정신도시의 개발과 수도권 전철 경의선의 디엠시-용산역 간 완전개통[3]으로 파주는 도시 발전을 하고 산업단지도 유치가 되면서 인구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금촌과 문산의 관계가 역전한 데에는 분명 금촌역의 존재가 컸다. 파주역, 운정역을 비롯한 다른 역들은 최소 1960년대 이후에 생겨난 역들로, 당시 파주에는 문산역과 금촌역 외에 다른 철도역은 존재하지 않았던데다가 군사분계선과 가까운 문산의 기능을 옮기는데 마땅한 지역이 금촌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파주의 중심기능이 옮겨온 금촌이 파주의 중심지로 확립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으며, 금촌역은 금촌을 지금처럼 만드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금촌역은 파주에서 문산역과 함께 대표되는 역으로 자리잡았지만, 경의선이 분단의 영향을 받으면서 주요 간선으로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고 단선 상태로 되었으며, 여기에 경의선을 지나는 여객열차들의 긴 배차간격으로 영향까지 받아 금촌과 문산을 비롯한 경의선 연선 일대는 1990년대에 고양시가 일산신도시를 비롯한 여러 택지지구를 개발하기 이전까지 경기도에서 낙후지역으로 대표되는 경기 동부지역들 못지 않게 도시 발전이 정체된 전형적인 농촌 마을들과 소도시로 구성되어 있었다. 현재처럼 고양-파주가 발전한 건 일산신도시 건설 및 신능곡의 화정/행신지구 건설, 수도권 전철 3호선의 일산 연장 등이 이루어진 1995년-1996년 이후 일이다.
금촌역은 경의선의 철도 교통이 별로 좋지 못했기 때문에 이용객 수는 문산역과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던 탓으로 문산역에게 인지도가 밀려나게 되었다. 문산역이 경의선의 종착지라는 타이틀로 수많은 상징성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금촌의 인구가 2배 이상으로 늘어났어도 문산역 수요를 따라잡지 못했고 결국 2009년 경의선이 디엠시-문산 간 복선전철화되면서 수도권 전철 경의선이 개통되었다. 이후 2015년 용산으로 연장되어 완전히 개통되고 수도권 전철 중앙선과 연결이 되고 나서야 금촌역의 수요가 문산역을 앞지르게 된다.
즉 철도역에 있어서만큼은 문산역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고, 지금도 전철의 종착역이 문산인 만큼 여러모로 따라잡기는 힘들어 보인다. 과거 통일호, 비둘기호 시절에는 금촌행 열차가 있었으나 전철화 이후엔 문산까지 모두 연장되었고 서울역 착발 열차만 대곡역, 일산역까지 간다.
한때는 무연탄 화물 도착역으로 지정됐던 적도 있었으나, 1994년에 소화물 취급이 중지되었다. 또한, 2006년 11월 1일부터 다녔었던 소위 임진강라이너라 불리던 5천원짜리단거리 경의선 새마을호가 이 역에 정차한 적이 있었다. 서울-일산-금촌-문산-임진강만 정차했었는데, 그만큼 이용객이 많았기 떄문이다.
파일:attachment/7288215408_3209e08d07.jpg
역 이름 유래가 어처구니없다. 경의선 부설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당시인 1904년 경, 일본인 조사관들이 지명 조사를 하다가 교하군에 속해있던 이 동네의 지명을 묻자 마을 사람들이 새말이라고 대답했는데, 쇠말이라고 잘못 알아들은 것을 그대로 한자화해 금촌(金村)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혹은 파주 사람들 사이에서 금촌이라는 지명이 당시 금촌역의 역장이었다는 카네무라(金村)에서 따왔다고 하는 민간어원설도 있다.
위에 기재된 새말이란 구역은 금촌역 뒤쪽인 금촌3동 구역인 파라다이스 아파트, 팜스프링 아파트, 금신초등학교, 문산제일고 주변을 새말이라고 하고, 금촌1동 구역은 그냥 금촌으로 부른다. 원래 읍이었다가 파주가 시로 승격되자 이 지역은 동 지역으로 다들 바뀌었다.
이 역도 저지대에 자리잡아서 수해에 매우 취약했다. 네임드인 문산에 묻혔지만, 공릉천이 시내를 구비도는 금촌 역시도 매해 홍수로 물바다를 이루는 9시 뉴스 단골현장이었다. 경의선도 예외없이 잠기기 일쑤였고 수없이 운행중단이 되었는데[5] 이는 2000년대 들어서 하천 대정비사업을 거치면서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금촌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금촌역 북쪽으로도 주택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골목길이 생기면서 건널목도 많아졌고 결국 전철화 공사를 하면서 그냥 철로를 고가로 올려버렸다. 최근 건설된 노선 중 흔치 않게 거의 대부분을 지상으로 이동하는 수도권 전철 경의선이지만, 금촌역 전후 약 1.5km 구간은 다른 지역 광역전철처럼 고가로 달린다.
이 역 근처에서 고양시 곡산역에서부터 시작한 경의로와 통일로(1번 국도)가 합쳐진다. 정확히는 금촌역에서 문산 방향으로 약 1km 지나서 나온다. 이 이후 경의선은 통일로와 나란히 달린다. 통일로가 경의선 선로보다 3~5m 정도 밑에 있기 때문에 통일로 타고 드라이브를 가게 되면 경의선 전철이 지나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수도권 전철 경의선을 위한 복선 전철화로 금촌역 일대가 고가로 옮겨짐과 동시에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져 80년을 쓰던 유서 깊은 구역사도 2008년에 허물어졌다. 현재 금촌역 남쪽 광장과 주차장 자리에 구역사가 있었는데, 지금도 남아있는 일산역 구 역사와 상당히 비슷하게 생겼었으며 크기는 2배정도 더 컸다. 초록색 도색에 벽면하며 지붕, 역 간판까지 똑같은 양식이었는데 맞이방 길이가 더 길어서 무려 스토리웨이가 들어와있기도 했었다(!). 1920년대 건축양식 자료로서 가치가 높은 역이었지만 쌍둥이같은 일산역 하나로 충분했는지 도로를 잇는다는 명목으로 2008년 말경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역사 크기로 봐선 의외로 첫 개통 당시부터 비중이 꽤 높은 역이었던 듯. 실제로 서울역과 개성역의 정확히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교행 목적으로 요긴하게 쓰였던 역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2015년까지는 출퇴근과 낮 시간,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대에 앉아갈 수 있는 마지노선 역이었으나 이후 여기서 절대 못 앉는다. 월롱역이나 파주역, 정말 심하면 문산역이 마지노선이다. 수도권 전철 경의선이 개통하고 초창기 몇 년 간은 출퇴근 때만 빼면 공기수송의 대명사였으나, 공덕역 연장 후 일산역으로 자리 착석보장의 마지노선이 생기더니 용산 연장 - 중앙선 연결 이후로는 포텐이 터지면서 이젠 금촌역부터 입석을 세우는데 평일 낮 시간에도 입석을 세운다. 일산역 항목에도 있지만, 경의선은 유독 구간 수요가 적고 물갈이가 안 되는 순수한 광역철도여서 금촌 이후로 타는 이용객은 중간에 앉을 일이 거의 없다. 문산에서 어느 정도 채운 후 파주에서 몇 명 타고, 월롱에서 2/3까지 자리를 채운 다음 금촌에서 우루루 몰려타는 식. 여기서 다 못채워도 운정을 지나기 전에 거의 100% 입석을 세운다고 보면 된다. 탄현 이후 승차하는 승객들은 지못미(...) 당연한 이야기지만 퇴근 시간대나 저녁 시간대에는 반대의 상황이 펼쳐진다. 일평균 승하차객만 보고 '아이고, 겨우 이것밖에 안돼?' 생각했다면 한산한 시간대에 타보면 입이 떡 벌어질지도 모른다. 도시다운 도시가 처음으로 보이는 역에서부터 입석을 세운다.
결국 시간이 조금씩 흐른 지금은 오히려 이 때문에 경의선을 기피하는 사람들도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하고 있다. 물론 천만다행으로 자리 보장이 되는 금촌역에선 해당사항 없는 이야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orail_Gyeongui_line_Geumchon_station_entrance_20060620.jpg
금촌역 구 역사, 1920년대에 지어졌으나, 보존되지 못하고 2008년 10월 19일 철거 되었다.
원래 3호선 계획은 양재역에서 벽제역까지 이은 후 향후 가칭 금촌선이라는 이름으로 관산, 내유, 봉일천, 조리를 거쳐 금촌역에서 종착하려고 했으나 1992년 고양시 승격 후 일산신도시가 개발되자 3호선을 벽제 대신 원당/화정지구와 현 일산신도시인 신일산으로 보내기로 하여 이 계획이 무산되고 대신 일산선과 연결되어 현재의 화정, 일산신도시 방면의 선형이 되었다. 위의 통일로를 따라가는 금촌선은 원흥이나 삼송에서 분기하는 3호선의 지선 형태로 지금도 파주시에서 연장을 추진하고 있으나 벽제-광탄 연선의 인구가 희박해서 가능성은 매우 낮은 편이다.[6]
아이러니하게도 파주여자고등학교와 파주광일중학교의 경우는 월롱면에 속해 있으나, 월롱역보다 이 역에 더 가깝다.
3. 역 주변 정보
금촌역 주변으로 파주시내가 펼쳐져 있는데 그리 큰 규모는 아닌지라 금촌시내가 한 눈에 보이기도 한다. 강매역 이후로 끊임없이 펼쳐지는 아파트밭의 파노라마를 볼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구간이기도 하다. 능곡-대곡-곡산 구간이 촌동네이긴 하지만 워낙 드넓은 평지를 끼고 있어 시가지가 계속해서 보이고, 일산과 덕양간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아 사실상 연담도시화 되어있다. 그 위로도 일산신도시-탄현지구-덕이지구-운정신도시-금촌을 통해 계속하여 연담도시가 끝없이 나오는 식인데 이 시가지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역이 바로 금촌역이다. 금촌 위로 올라가면 분위기부터가 이전과는 비교를 불가한다.
인근에 파주시청, 금촌동우체국과 붙어있다. 다만 꽤 걸어야 하므로 시내버스나 마을버스 탑승을 추천한다. 구 서부터미널과도 인접해있으며 금촌시장이 있는 번화가와도 연결되어 역세권이 꽤나 발달한 역이다. 시내버스 연계 또한 매우 잘 되어있다.[7]마을버스 역시 마찬가지로, 봉일천이나 문산 행 마을버스는 이 곳이 기점인 경우가 대부분. 실제로 금촌역에서 마을버스로 환승하는 수요가 매우 많다.
청소년수련시설로는 금촌청소년문화의집이 위치하고 있으며, 위치는 시민회관옆에 위치하고 있다. 간혹 봉사활동을 하러 오다가, 혼동해서 시민회관으로 가는 친구들이 있으니, 전화로 위치를 물어보고 찾는게 좋다.
역에서 200m 떨어진 "문화로" 주변은 금촌의 전형적인 원도심 상권이다. 따로 홈페이지도 있다. 금촌통일시장
인근에 파주시청, 금촌동우체국과 붙어있다. 다만 꽤 걸어야 하므로 시내버스나 마을버스 탑승을 추천한다. 구 서부터미널과도 인접해있으며 금촌시장이 있는 번화가와도 연결되어 역세권이 꽤나 발달한 역이다. 시내버스 연계 또한 매우 잘 되어있다.[7]마을버스 역시 마찬가지로, 봉일천이나 문산 행 마을버스는 이 곳이 기점인 경우가 대부분. 실제로 금촌역에서 마을버스로 환승하는 수요가 매우 많다.
청소년수련시설로는 금촌청소년문화의집이 위치하고 있으며, 위치는 시민회관옆에 위치하고 있다. 간혹 봉사활동을 하러 오다가, 혼동해서 시민회관으로 가는 친구들이 있으니, 전화로 위치를 물어보고 찾는게 좋다.
역에서 200m 떨어진 "문화로" 주변은 금촌의 전형적인 원도심 상권이다. 따로 홈페이지도 있다. 금촌통일시장
4. 일평균 이용객
금촌역을 이용하는 광역철도 일일 승객 수이다. 아래 표는 승차객 + 하차객의 총합이다.
2009년
| 2010년
| 2011년
| 2012년
| 2013년
| 2014년
| 2015년
| 2016년
| 2017년
| 2018년
|
5,796명
| 8,011명
| 9,281명
| 9,625명
| 11,426명
| 12,754명
| 13,878명
| 14,428명
| 14,717명
| 14,677명
|
2019년
| 2020년
| ||||||||
14,717명
| 10,55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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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자료는 개통일인 7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184일간의 집계를 반영한 것이다.
- 주 이용객은 금촌 주민들 및 주변의 군인이다. 노선의 특성상 군인 수요가 많은 편이지만, 유독 금촌역부터는 급격하게 군인 수요가 증가한다.
5. 여담
여러모로 옆동네 양주시의 1호선 덕정역과 매우 닮아있다. 수도권 전철화 이전에는 각각 경의선과 경원선의 주요기차역이었고 현재도 금촌역과 덕정역에서 상당한 수요가 나온다. 또한 금촌. 덕정역 각각 파주시와 양주시의 구 시가중심지 역할을 현재도 분담하는 것이 묘하게 닮아있다. 더구나 금촌역 이후 문산역이나 법원읍 방면으로 가는 군인들이 급증하는 것과 양주에서 덕정역 이후 동두천. 연천방면으로 가는 군인들 역시 늘어나는 것도 거울 보듯 닮아있다.
그리고 광역버스들이 대다수 종착하는 것 역시 똑닮았다고 볼 수 있다. 단지 위도만 금촌 쪽이 조금 낮을 뿐이다.
6. 승강장
1·2
| 완행·급행
| ||
3·4
| 완행·급행
|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가동중이다.
7. 연계 교통
7.1. 역 앞 정류소
대부분 중앙로를 따라 시청앞사거리로 내려가서 금촌로터리 방면과 시청 방면으로 나뉘어진다. 시외버스, 공항버스와 150번, 77-5번만 새꽃로를 따라 직진한다.
| † 배차간격 30분 이상 ¶ 평일 운행 ‡ 주말·공휴일 운행 |<-2><tablewidth=100%><bgcolor=#000000> 새꽃로 방면 ||
| † 배차간격 30분 이상 ¶ 평일 운행 ‡ 주말·공휴일 운행 |<-2><tablewidth=100%><bgcolor=#000000> 새꽃로 방면 ||
시외버스
| |||||||||||||||||||||||||||
공항버스
| 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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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유지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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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일반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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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복버스
| 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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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유지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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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촌로터리 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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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일반버스
| |||||||||||||||||||||||||||
[ 경유지 펼치기 · 접기 ]
| |||||||||||||||||||||||||||
따복버스
| |||||||||||||||||||||||||||
[ 경유지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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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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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유지 펼치기 · 접기 ]
| |||||||||||||||||||||||||||
시청 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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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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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일반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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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유지 펼치기 · 접기 ]
| |||||||||||||||||||||||||||
따복버스
| 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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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유지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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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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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유지 펼치기 · 접기 ]
| |||||||||||||||||||||||||||
7.2. 역 건너편 정류소
인근의 금촌차고지에 종착하는 노선들이 정차하고, 시청로·평화로 방면으로 가는 노선들은 대부분 맥금동에 종착하거나 마을버스는 아파트단지에서 회차한다. 통일로 방면으로 가는 노선들은 월롱역 방면으로 올라가거나, 내려가더라도 뇌조리에서 방향을 틀어 다시 북쪽을 향한다. 통일로 방면으로 내려가려면 역 앞 정류소 노선들을 이용해야 한다.
| † 배차간격 30분 이상 ¶ 평일 운행 ‡ 주말·공휴일 운행 |<-2><tablewidth=100%><bgcolor=#000000> 금촌차고지 방면 ||
| † 배차간격 30분 이상 ¶ 평일 운행 ‡ 주말·공휴일 운행 |<-2><tablewidth=100%><bgcolor=#000000> 금촌차고지 방면 ||
시외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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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일반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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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복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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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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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로·평화로 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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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일반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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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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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유지 펼치기 · 접기 ]
| |||||||||||||||||||||||||||
마을버스
| |||||||||||||||||||||||||||
[ 경유지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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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로(북) 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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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외버스
| 5000†
| ||||||||||||||||||||||||||
[ 경유지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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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버스
| 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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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유지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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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일반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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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유지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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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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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유지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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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로(남) 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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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일반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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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유지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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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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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유지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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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금촌고속버스정류소
1번 출구로 나와서 오른편에 위치한 정류소이다. 문산고속버스정류소에서 출발한 시외버스 노선의 경유지이며, 버스타고에서 예매가능하다. 현장의 무인발권기에서 승차권을 구입하거나 예매한 승차권을 발권받을 수 있다. 모든 노선이 문산 ~ 금촌 ~ 운정을 경유하며 구간승차는 불가하다.
2018년 9월 1일 일 1회 운행하던 강릉행 노선이 폐지되었다. 또한, 2019년 11월 25일 부로 광주행 노선이 폐선되었다.
2018년 9월 1일 일 1회 운행하던 강릉행 노선이 폐지되었다. 또한, 2019년 11월 25일 부로 광주행 노선이 폐선되었다.
충청권
| ||
행선지
| 운행횟수
| 운수회사
|
대전
| 일 2회
| |
청주
| 일 3회
| |
영남권
| ||
행선지
| 운행횟수
| 운수회사
|
구미
대구서부 | 일 2회
| |
주말·공휴일에만 감악산출렁다리로 운행하는 7700번, 7701번 2층버스도 이곳에서 양방향 정차한다.
| † 배차간격 30분 이상 ‡ 주말·공휴일 운행 |<tablewidth=100%><width=120px><bgcolor=#ff0000> 직행좌석버스 ||7700†‡, 7701†‡||
[1] 금촌동 329-355번지[2] 파주소방서는 2000년 이후에나 개서했고 그때는 막 남북관계가 호전될 때라 문산역 근처에 개서했다. 그 전까진 고양소방서 문산/금촌/법원파출소와 각종 파견소들이 관할했다. 119구조대는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 원당역 인근 고양소방서 본서에서 그 넓은 지역을 혼자 다 관할해 부담이 컸는지라 왠만하면 금촌/문산소방파출소 119 구급대가 간이구조까지도 담당해야 했다.[3] 이후 우리가 알다시피 경원선 용산역-청량리역 구간과 중앙선에 직결해 경의중앙선으로 합체되어 파주-양평 간 장거리 노선으로 변모한다.[4] 여담으로, 훗날에 같은 경의선상에 신촌역이 생겼다.[5] 장마철에 수해만 나면 경의선은 짤없이 서울역-일산역으로 짤렸다.[6] 당장 벽제-봉일천 일대는 사람들이 벽제화장터나 용미리 공동묘지부터 생각할 정도로 이미지가 좋지도 않다. 그리고 국군고양병원과 제9보병사단 예하 각종 군부대 등이 밀집한 군사지역인지라 봉일천과 광탄 일대는 뭔가를 만들기도 어려워 수요가 너무 처참하게 낮다.[7] 운정 신도시와 교하 신도시에서 보이는 몇몇 버스를 빼면 파주 시내에서 보이는 버스는 죄다 금촌역을 경유한다고 봐도 무방하다.[8] 2020년 8월 기준[9] 2020년 8월 기준[10] 서울, 문산으로 가는 노선이 있었다.[11] 일산, 교하, 탄현으로 가는 노선이 있었다. "탄현버스종점"으로 불리기도 했다.[12] 서울, 문산으로 가는 노선이 있었다.[13] 일산, 교하, 탄현으로 가는 노선이 있었다. "탄현버스종점"으로 불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