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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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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에서 제작한 옥류천 권역의 3D 입체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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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물줄기
2.1. 창경궁의 금천?
3. 역사
조선 초, 중기에도 왕들이 휴식처로 사용한 듯 하나 확실한 기록은 없다. 지금의 모습은 1636년(인조 14년)에 조성한 것이다. 이후 마지막 임금 순종까지 이곳을 휴식 공간으로 활용했다.
《동궐도》의 옥류천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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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구조
- 계곡이 흐르는 곳에 소요암(逍遙巖)이라는 큰 바위를 두었다. 소요암 위에 U자 형 홈을 파서 물길이 바위 한바퀴를 돌게 만든 다음, 물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바위를 수직으로 깎아 폭포처럼 물이 떨어지게 만들었다. 일종의 인공폭포이다. 이 물길을 이용해 임금이 신하들과 같이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하기도 했다. 유상곡수연은 물에 술잔을 띄우고 마시며 술잔이 자기 앞에 오기 전에 시를 짓는 놀이이다.[3]#소요암#
- 옥류천 주변에 여러 정자를 세워 풍류 공간으로 꾸몄다. 소요정, 농산정, 취한정, 청의정, 태극정이 있다. 그리고 옥류천 물줄기 중 창덕궁 발원 지점에 우물을 만들어 어정(御井)으로 사용했다.옥류천 어정#
5. 여담
[1] 서반수천(西泮水川)로도 불렀다. 이 물은 흥인지문 안쪽에서 청계천과 만났다. 현재는 복개되었다.[2] 이 밖의 관련 유적으로는 경주에 신라시대에 유상곡수연을 즐겼던 유적 포석정이 있다.[3] 이 밖의 관련 유적으로는 경주에 신라시대에 유상곡수연을 즐겼던 유적 포석정이 있다.[4] 구 하나 당 글자 5개씩인 4줄의 한시(漢詩).[5] 300척이면 요즘 단위로 대략 97m 정도이다. 당연히 옥류천 폭포가 저 길이일 리는 없고(...) 그만큼 장엄하다는 표현으로 보면 된다.[6] 구 하나 당 글자 5개씩인 4줄의 한시(漢詩).[7] 300척이면 요즘 단위로 대략 97m 정도이다. 당연히 옥류천 폭포가 저 길이일 리는 없고(...) 그만큼 장엄하다는 표현으로 보면 된다.[8] 300척이면 요즘 단위로 대략 97m 정도이다. 당연히 옥류천 폭포가 저 길이일 리는 없고(...) 그만큼 장엄하다는 표현으로 보면 된다.[9] 음력 10월.[10] 관우의 사당. 혜화문 안쪽에 있었으며 창덕궁과 가까웠다.[11] 음력 10월.[12] 관우의 사당. 혜화문 안쪽에 있었으며 창덕궁과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