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1]목조건물로 남향(南向)이다. 칸 수는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총 1칸이다. 기단은 장대석으로 3단을 쌓았으며 그 위에 다시 장대석 1단을 깔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기둥과 주춧돌은 원형이며 기둥 안쪽 가장자리에 문틀을 설치했다. 출입은 남쪽 칸으로만 할 수 있으며 건물로 오르게하는 디딤돌은 2단이다. 기단의 사방 가운데에는 1단짜리 계단이 있다. 남쪽 기단의 계단 앞에는 돌판을 길게 덧대고 그 위에는 전돌을 깔았다.
사방이 트여있다. 그러나 《동궐도》를 보면 원래는 측면에 벽을, 정면에 문을 달아놓았다. 일제강점기에 촬영한 《조선고적도보》를 보면 벽은 사라졌지만 사방에 들문이 달려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제 지금처럼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지붕은 사모지붕, 처마는 겹처마이다. 기둥 사이에 창방을 두고 그 위에 소로를 얹었다. 용마루와 추녀마루는 기와로 쌓았으며 내림마루 끝에는 막새기와를 얹었다. 추녀마루가 만나는 부분에는 절병통을 올렸다. 단청은 모로단청으로 칠했다.
각 칸의 하단부에는 머름을 두었고, 건물 바깥에는 쪽마루를 깐 뒤 그 가장자리에 난간을 설치했다. 다만, 건물로 들어가는 부분에는 머름과 난간을 두지 않았다. 난간은 ‘아(亞)’자 형 교란으로, 그 위에 호리병 형태의 난간기둥과 돌란대를 얹은 형태이다.
역대 임금들이 태극정을 많이 찾고 아꼈다. 숙종은 창덕궁 후원에서 아름다운 정자 3채를 '상림삼정(上林三亭)'으로 불렀는데 태극정도 여기에 포함시켰다.[2] 관련하여 《상림삼정기》를 썼는데 거기서 ‘여산(廬山)[3]과 난정(蘭亭)[4]이 어찌 여기보다 나을까’라며 태극정의 경치를 극찬했다.# 숙종의 증손자 정조는 《태극정시》를 지어 빼어난 풍경을 찬양했다. 정조의 아들 순조는 여기서 신하들을 만나 《심경》을 읽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