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clude(틀:창덕궁)] ---- ||<table width=1000> [[파일:옥류천.png|width=100%]] || || 옥류천[[http://www.k-heritage.tv/brd/board/256/L/CATEGORY/615/menu/254?brdCodeField=CATEGORY&brdCodeValue=615&bbIdx=4549&brdType=R&tab=|#]] || ||[youtube(mfn10s0YPXo)]||[youtube(6KxQLwPMDck)]|| ||<-2>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옥류천 권역의 3D 입체 영상. || [목차] == 개요 == {{{+1 昌德宮 玉流川}}} [[창덕궁#s-5.4.3|창덕궁 후원]]의 가장 안쪽 골짜기에 있는 [[시내]]이자 [[폭포]]이다. == 물줄기 == 옥류천을 흐르는 물은 [[북악산]] 응봉 자락에서 발원한 계곡물과 [[창덕궁]] 안에서 발원한 [[물]]이다. 이 물은 창덕궁 동북쪽으로 빠져나가 [[성균관]]의 서쪽을 흐르는 흥덕동천으로 합류했다.[[https://potter1007.tistory.com/386?category=250914|#]][* 서반수천(西泮水川)로도 불렀다. 이 물은 [[흥인지문]] 안쪽에서 [[청계천]]과 만났다. 현재는 복개되었다.] === 창경궁의 금천? === [[창경궁]]의 금천 역시 이름이 옥류천(玉流川)이다. 이름이 같아 이 옥류천이 창경궁 옥류천과 같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둘은 완전히 다르다.[[https://potter1007.tistory.com/428?category=250914|#]] 창경궁 옥류천은 [[창덕궁]] 후원의 [[창덕궁 연경당|연경당]] 서쪽과[[https://potter1007.tistory.com/433?category=250914|#]] [[창덕궁 부용정#s-4|부용지]][[https://potter1007.tistory.com/431?category=250914|#]], 관람지 권역[[https://potter1007.tistory.com/434?category=250914|#]]에서 발원하여 [[창경궁 춘당지|춘당지]]를 거쳐 창경궁 동남쪽으로 빠져나간다. 이후 계속 남쪽으로 흘러 [[종로구/행정#s-6|종로 5, 6가동]]을 거쳐 지금의 예지동 [[광장시장]] 인근에서 [[청계천]]과 합류한다. 현재는 [[창경궁]] 경내를 제외한 전 구간을 [[복개]]해두었다. == 역사 == 조선 초, 중기에도 [[왕]]들이 휴식처로 사용한 듯 하나 확실한 기록은 없다. 지금의 모습은 1636년([[인조]] 14년)에 조성한 것이다. 이후 마지막 임금 [[순종(대한제국)|순종]]까지 이곳을 [[휴식]] [[공간]]으로 활용했다. ||<table width=662> [[파일:동궐도 옥류천.png|width=100%]] || || 《[[동궐도]]》의 옥류천 구역 || == 구조 == * 계곡이 흐르는 곳에 소요암(逍遙巖)이라는 큰 [[바위]]를 두었다. 소요암 위에 U자 형 홈을 파서 물길이 바위 한바퀴를 돌게 만든 다음, 물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바위를 수직으로 깎아 [[폭포]]처럼 물이 떨어지게 만들었다. 일종의 인공폭포이다. 이 물길을 이용해 임금이 [[신하]]들과 같이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하기도 했다. 유상곡수연은 [[물]]에 [[잔|술잔]]을 띄우고 마시며 술잔이 자기 앞에 오기 전에 [[시]]를 짓는 [[놀이]]이다.[* 이 밖의 관련 유적으로는 [[경주시|경주]]에 [[신라시대]]에 유상곡수연을 즐겼던 유적 [[포석정]]이 있다.][[http://www.heritage.go.kr/heri/gungDetail/gogungDetail.do?serial_number=193&detail_code=107&gung_number=2#|#]] ||<table width=662> [[파일:소요암.png|width=100%]] || || 소요암[[http://www.k-heritage.tv/brd/board/256/L/CATEGORY/615/menu/254?brdCodeField=CATEGORY&brdCodeValue=615&bbIdx=4549&brdType=R&tab=|#]] || * 소요암에 [[인조]]가 옥류천(玉流川)이란 글을 써서 새겼다. 그리고 그 옆에 인조의 증손자 [[숙종(조선)|숙종]]이 오언절구시[* 구 하나 당 글자 5개씩인 4줄의 한시(漢詩).]를 새겼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비류삼천척(飛流三百尺) >날아 흐르는 물이 300척이요 --전하 과장이 심하시옵니다[* 300척이면 요즘 단위로 대략 97m 정도이다. 당연히 옥류천 폭포가 저 길이일 리는 없고(...) 그만큼 장엄하다는 표현으로 보면 된다.]-- > >요락구천래(遙落九天來) >멀리 떨어지는 물은 구천에서 내리네 > >간시백홍기(看時白虹起) >볼 때 흰 무지개 일고 > >번성만학뢰(翻成萬壑雷) >골짜기마다 번개 소리 가득 하네 >[[http://blog.daum.net/mt0047/62|#]] * 옥류천 주변에 여러 [[정자]]를 세워 풍류 [[공간]]으로 꾸몄다. [[창덕궁 소요정|소요정]], [[창덕궁 농산정|농산정]], [[창덕궁 취한정|취한정]], [[창덕궁 청의정|청의정]], [[창덕궁 태극정|태극정]]이 있다. 그리고 옥류천 물줄기 중 창덕궁 발원 지점에 [[우물]]을 만들어 어정(御井)으로 사용했다. ||<table width=662> [[파일:옥류천 어정.png|width=100%]] || || 옥류천 어정[[http://www.k-heritage.tv/brd/board/256/L/CATEGORY/615/menu/254?brdCodeField=CATEGORY&brdCodeValue=615&bbIdx=4549&brdType=R&tab=|#]] || == 여담 == * 1884년(고종 21년) 12월[* 음력 10월.]에 일어난 [[갑신정변]] 당시 [[청나라]] [[군인]]들이 [[창덕궁]]에 침입하자 [[고종(대한제국)|고종]]은 옥류천을 거쳐 북묘[* [[관우]]의 [[사당]]. [[혜화문]] 안쪽에 있었으며 창덕궁과 가까웠다.]로 피신했다. 그때 고종을 모셨던 정변의 주역 [[홍영식]]과 [[박영교]]는 미처 궁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여기서 청나라 군인에게 살해당했다. * [[성균관대학교/인문사회과학캠퍼스#s-2.9|성균관대학교 인문과학캠퍼스 교수회관]] 1층에 있는 옥류천식당이 여기서 이름을 따왔다. ----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1=창덕궁 소요정, version=8, title2=창경궁 옥천교, version2=3, paragraph2=42)] [[분류:창덕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