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농산정
|
1. 개요
2. 이름
3. 역사
창건 시기는 모른다. 다만, 1636년(인조 14년)에 지었다고도 한다.
공식 기록에 처음 나타난 때는 정조 때인 1792년(정조 16년) 3월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정조가 대보단에 참배하기 전에 여기서 여러 번 묵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1795년(정조 19년) 2월에는 현륭원 행차를 대비해 혜경궁 홍씨의 가마를 메는 예행 연습을 후원에서 한 뒤 수고한 신하들에게 여기서 음식을 대접했다.#여기까지 오느라 더 고생했을 듯 하다[1]
순조는 여기서 관리 및 유생들의 학문을 시험하기도 했다. 입직한 음관들에게 시를 짓게 하고[2]##, 성균관 유생의 응강[3]을 행했다.##
이후 큰 변화 없이 오늘에 이른다.
공식 기록에 처음 나타난 때는 정조 때인 1792년(정조 16년) 3월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정조가 대보단에 참배하기 전에 여기서 여러 번 묵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1795년(정조 19년) 2월에는 현륭원 행차를 대비해 혜경궁 홍씨의 가마를 메는 예행 연습을 후원에서 한 뒤 수고한 신하들에게 여기서 음식을 대접했다.#
순조는 여기서 관리 및 유생들의 학문을 시험하기도 했다. 입직한 음관들에게 시를 짓게 하고[2]##, 성균관 유생의 응강[3]을 행했다.##
이후 큰 변화 없이 오늘에 이른다.
왼쪽은 《동궐도》의 농산정(붉은 원 안), 오른쪽은 《조선고적도보》의 농산정
|
4. 구조
[1] 창덕궁 후원에서 옥류천 일대를 가려면 높은 언덕을 올라가야한다.[2] 이를 응제(應製)라고 한다.[3] 應講. 강경과(講經科)에 응(應)하는 것. 강경과는 과거에서 외운 경서를 암송시킨 후 등락 점수를 매기는 시험이다.[4] 보통 전통 건축에선 단층이라고 표현한다.[5] 보통 전통 건축에선 단층이라고 표현한다.[6] 가칠단청 위에 선만 그어 마무리한 단청이다.[7] 가칠단청 위에 선만 그어 마무리한 단청이다.[8] 翠屛. 나무로 뼈대를 세운 뒤 뼈대 사이마다 키 작은 나무나 덩굴 식물을 심어 자라게 하는 형태의 담을 말한다.[9] 翠屛. 나무로 뼈대를 세운 뒤 뼈대 사이마다 키 작은 나무나 덩굴 식물을 심어 자라게 하는 형태의 담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