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상세
매년 고교야구 주말리그, 대통령배 등 전국고교야구대회, 전국 체전 등에서 15경기 이상 출전하고 60타석 이상을 기록한 타자 중에서 가장 높은 타율을 기록한 선수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주말리그 도입 전에는 9개의 전국고교야구대회[1] 중 5개 대회 이상, 15경기 이상, 60타석 이상 출전한 타자 중에서 가장 높은 타율을 기록한 이에게 수여되었다.
고교 야구의 특성상 에이스 투수가 4번 타자까지 함께 맡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하고도 정작 프로에는 투수로 진출하는 사례[2]가 있었지만 지명타자제가 도입되면서 그런 현상은 사라졌다.
주말리그 도입 전에는 9개의 전국고교야구대회[1] 중 5개 대회 이상, 15경기 이상, 60타석 이상 출전한 타자 중에서 가장 높은 타율을 기록한 이에게 수여되었다.
고교 야구의 특성상 에이스 투수가 4번 타자까지 함께 맡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하고도 정작 프로에는 투수로 진출하는 사례[2]가 있었지만 지명타자제가 도입되면서 그런 현상은 사라졌다.
3. 역대 수상자 목록
프로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선수는 굵은 색으로 표시. 이름 뒤는 프로에서 활동했던 연도와 팀.
연도
| 이름
| 당시 소속 학교
| 프로 팀 활동
|
김동주[4]
| |||
경동고
| |||
최관수[6]
| |||
조정일
| 성동고
| ||
정인성
| 광주 사레지오고
| ||
이철화[8]
| |||
김영생
| |||
박용해
| |||
오영복
| |||
김영신[10]
| |||
정장헌
| |||
신중국
| |||
MBC(1982~1985)
| |||
박명선
| |||
이효헌
| |||
삼성 (1982~1997)
| |||
김남수
| |||
김이수
| 삼성 (1984~1986)
| ||
김성범[16]
| |||
한경수
| |||
주은현
| |||
김현철
| |||
김훈
| |||
곽상선
| |||
LG (1995~1996)
| |||
한화 (1997~1998)
| |||
박현철
| |||
LG (2001)
| |||
신민기[24]
| |||
한화 (2003~2009)
| |||
KIA (2005~2006)
| |||
수상 대상자 없음
| |||
롯데 (2006~2015)
| |||
서정[30]
| 한화 (2007~2010)
| ||
SK (2005~)
| |||
김경한[36]
| |||
한화 (2012~)
| |||
KIA (2011~2015)
| |||
NC (2012~)
| |||
넥센 (2015~)
| |||
KIA (2016~)
| |||
넥센 (2017~)
| |||
NC (2019~)
| |||
박정우
| |||
김범진
| |||
4. 학교별 수상 기록
학교
| 횟수
| 연도
|
5회
| 78, 91, 93, 05[44], 09
| |
4회
| 63, 70, 01, 03
| |
4회
| 64, 66, 68, 77
| |
4회
| 71, 81, 86, 17
| |
4회
| 58, 89, 97-98
| |
3회
| 73, 83, 88
| |
3회
| 74, 85, 08
| |
3회
| 84, 95, 02
| |
2회
| 59[46], 96
| |
2회
| 60, 17
| |
2회
| 69, 80
| |
2회
| 75-76
| |
2회
| 87, 94
| |
2회
| 07, 14
| |
2회
| 04, 20
| |
1회
| 61
| |
광주 사레지오고등학교
| 1회
| 62
|
1회
| 65
| |
1회
| 67
| |
1회
| 72
| |
1회
| 79
| |
1회
| 82
| |
1회
| 90
| |
1회
| 92
| |
1회
| 99
| |
1회
| 06
| |
1회
| 10
| |
1회
| 11
| |
1회
| 12
| |
1회
| 13
| |
1회
| 15
| |
1회
| 18
| |
1회
| 19
|
5.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
고교에서 가장 뛰어난 타격을 보인 이에게 수여하는 상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한국프로야구 출범 이후에는 뚜렷한 활약을 보인 수상자를 찾아보기 힘들며, 도리어 그 중에는 비운의 스타들이 더 많다.
1991년 수상자 강혁은 고교 시절 초고교급 천재 타자로 불렸으나 이중등록과 음주운전, 병역비리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끝에 쓸쓸히 은퇴해야 했고, 1993년 수상자이자 '제2의 김재현'이라 불리던 조현은 나무배트에 적응하지 못한 데다 스윙의 약점도 극복하지 못하면서 여러 팀을 전전하다가 결국 방출되었으며, 국제 대회에서 훌륭한 활약을 보이며 국내외의 큰 기대를 모으던 김건덕은 고교시절 혹사로 인해 어깨가 망가져서 은퇴해야 했으며,[47] 고교 시절 이영민 타격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던 신민기는 프로에 와서 통산 타율 1할조차 치지 못한 채 병역비리에 연루되었고 복귀 후 거의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결국 방출되었다.
8,90년대에 이런 일이 반복되자, 항간에는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한 이들은 결국 망가진다는 흉흉한 소문이 퍼졌는데, 이것이 일명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이다.[48]
2000년대 들어 2004,2005년 수상자인 최정, 김현수가[49] 프로야구 정상급 타자로 자리 잡으면서 2000년대에 들어와 드디어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가 풀렸다는 이야기도 나왔으나,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시궁창. 2006년 수상자인 전동수는 프로에 올라와서 단 한 개의 안타도 치지 못한 채 경찰 야구단에 입단했다가 복귀 후 1년만에 방출되어 새 팀을 구해야 했으며, 2007년 수상자인 김경한과 2008년 수상자인 이창진은 프로 지명조차 받지 못하고 대학에 진학해야 했다.[50] 2013년 수상자 조영우의 경우는, 고등학교 때 4번 타자 겸 에이스를 했는데, 한화에 입단한 뒤 타자로 1군에 올라가려면 2-3년이 걸리고 투수로 1군에 올라가기가 더 쉽다는 말을 듣고 아예 투수로 전향한 뒤. 송진우 2군 투수코치에게 체인지업을 전수받아 14시즌 1군에 콜업된 뒤 몇 경기 선발출장 뒤 2군으로 내려갔다...
2000년대 이후 최정-김현수 이외 살아남은 사람은 박근홍(개명 전 박정태)이 쪽은 투수라 타격상의 의미가..과 박민우, 최원준 그리고 2016년 현재 전민수로 개명한 전동수와 송성문, 김혜성 정도다. 2003년도 수상자인 박근홍은 투수로 데뷔해 1군에 좌완 원포인트나 추격조 등으로 자주 비치나 확실한 1군멤버는 아니다. 다행히 2015년에 꽤 쏠쏠한 활약을 하며 미래를 기대하게 했다. 2011년 수상자인 박민우는 2014시즌 주전 2루 자리를 꿰차더니 당해 신인왕을 탔다. 그리고 15, 16시즌에는 각각 0.304, 0.343의 고타율과 46, 20도루를 기록하며 NC의 중심 타자가 되었다. 2015년 수상자인 최원준은 데뷔 후 2년간 1군에서 감초 역할로 기용되어 3할 타율을 기록하면서 출중한 포텐셜을 드러내고 있다. 넥센시절 1군에서 안타 하나도 못 친채로 방출되었었던 전동수도 kt에 재입단하여 2016년 현재 1군에서 제법 쏠쏠한 타격실력을 보여주며 붙박이 준주전 외야수로 활약하고 있으니 기대는 해볼만하다. 하주석도 한화 이글스의 주전 유격수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2019 시즌에 이창진이 드디어 포텐이 터지면서 중견수로 쏠쏠한 활약을 하고 있다. 2020년 들어서 싹수가 보이던 김혜성이 만루홈런을 터트리는 등 2루,유격,좌익수를 오가며 맹활약중이다.
그러다가 2019년과 2020년에 연속으로 프로 미지명 수상자가 나왔다.
1991년 수상자 강혁은 고교 시절 초고교급 천재 타자로 불렸으나 이중등록과 음주운전, 병역비리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끝에 쓸쓸히 은퇴해야 했고, 1993년 수상자이자 '제2의 김재현'이라 불리던 조현은 나무배트에 적응하지 못한 데다 스윙의 약점도 극복하지 못하면서 여러 팀을 전전하다가 결국 방출되었으며, 국제 대회에서 훌륭한 활약을 보이며 국내외의 큰 기대를 모으던 김건덕은 고교시절 혹사로 인해 어깨가 망가져서 은퇴해야 했으며,[47] 고교 시절 이영민 타격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던 신민기는 프로에 와서 통산 타율 1할조차 치지 못한 채 병역비리에 연루되었고 복귀 후 거의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결국 방출되었다.
8,90년대에 이런 일이 반복되자, 항간에는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한 이들은 결국 망가진다는 흉흉한 소문이 퍼졌는데, 이것이 일명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이다.[48]
2000년대 들어 2004,2005년 수상자인 최정, 김현수가[49] 프로야구 정상급 타자로 자리 잡으면서 2000년대에 들어와 드디어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가 풀렸다는 이야기도 나왔으나,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시궁창. 2006년 수상자인 전동수는 프로에 올라와서 단 한 개의 안타도 치지 못한 채 경찰 야구단에 입단했다가 복귀 후 1년만에 방출되어 새 팀을 구해야 했으며, 2007년 수상자인 김경한과 2008년 수상자인 이창진은 프로 지명조차 받지 못하고 대학에 진학해야 했다.[50] 2013년 수상자 조영우의 경우는, 고등학교 때 4번 타자 겸 에이스를 했는데, 한화에 입단한 뒤 타자로 1군에 올라가려면 2-3년이 걸리고 투수로 1군에 올라가기가 더 쉽다는 말을 듣고 아예 투수로 전향한 뒤. 송진우 2군 투수코치에게 체인지업을 전수받아 14시즌 1군에 콜업된 뒤 몇 경기 선발출장 뒤 2군으로 내려갔다...
2000년대 이후 최정-김현수 이외 살아남은 사람은 박근홍(개명 전 박정태)
그러다가 2019년과 2020년에 연속으로 프로 미지명 수상자가 나왔다.
5.1. 프로에서 성공한 사례
5.2. 이영민 타격상의 맹점
운만으로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니만큼 역대 수상자들이 뛰어난 실력과 자질을 갖춘 선수들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겠으나 그것이 곧 고교 최고의 타자를 뜻은 아니란 지적이 줄곧 이어져 왔으며, 이를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가 생긴 원인으로 보는 이들도 많다.
이유인즉슨, 야구 대회의 수가 적고 경기 자체도 많은 편이 아니다 보니 신뢰할 만한 통계치를 만들기 힘들며, 더욱이 투수마다 실력 편차가 큰 고교 야구의 특성상 실력이 떨어지는 투수한테 한껏 몰아쳐서 타율을 높이는 유형의 타자도 무척 많다는 것이다.
이는 프로야구 스카우터들이 고교 타율을 무시하는 경향과 같은 맥락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실제로도 2000년대부터는 고교 시절 아무리 높은 타율을 유지했다고 해도 주력(走力)이나 파워 같은 부분이 부족하면 아예 지명조차 받지 못하는 사례가 종종 나타나고 있다. 다만, 이럴 경우에는 육성선수로 입단할 것을 권유 받는 일이 많다고 한다. 김현수가 대표적. 그나마 고졸 선수들의 육성선수 입단이 사실상 막혀버렸기에......
이유인즉슨, 야구 대회의 수가 적고 경기 자체도 많은 편이 아니다 보니 신뢰할 만한 통계치를 만들기 힘들며, 더욱이 투수마다 실력 편차가 큰 고교 야구의 특성상 실력이 떨어지는 투수한테 한껏 몰아쳐서 타율을 높이는 유형의 타자도 무척 많다는 것이다.
이는 프로야구 스카우터들이 고교 타율을 무시하는 경향과 같은 맥락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실제로도 2000년대부터는 고교 시절 아무리 높은 타율을 유지했다고 해도 주력(走力)이나 파워 같은 부분이 부족하면 아예 지명조차 받지 못하는 사례가 종종 나타나고 있다. 다만, 이럴 경우에는 육성선수로 입단할 것을 권유 받는 일이 많다고 한다. 김현수가 대표적. 그나마 고졸 선수들의 육성선수 입단이 사실상 막혀버렸기에......
5.3. 외국의 경우
사실 프로선수와 고교선수간에 수준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고교시절 타격을 잘했다고 프로에서 못하는건 너무나 흔해서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또한 학창 시절 대회 성적을 정말로 타격 실력이라고 하기에는 샘플이 너무 적어서 나타난 성적이 진짜 실력을 의미하는지도 확실치 않다.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저주라는 말도 옳지 않다. 이건 그냥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비슷한 환경에서 야구를 하는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일본 고교야구인 고시엔은 개인 표창이 없으니 일본의 대학야구대회인 전일본대학야구선수권대회의 역대 수위 타자상 수상자들을 한 번 살펴보자.[51]
연도
| 이름
| 대학 타율
| 프로 출장수[53]
| 프로 타율
|
2001
| 후지와라 도오루
| .545
| 60
| .111
|
2002
| 오니자키 도모치카
| .500
| x
| x
|
2003
| 와키야 료타
| .556
| 850
| .255
|
2004
| 다나카 케이지
| .556
| x
| x
|
2005
| 오사키 유타로
| .647
| 444
| .257
|
2006
| 도미나카 유우야
| .533
| x
| x
|
2007
| 우에모토 히로키
| .583
| 673
| .267
|
2008
| 사사키 다이스케
| .500
| x
| x
|
2009
| 다키 히로후미
| .667
| x
| x
|
2010
| .667
| 448
| .242
| |
2011
| 사토 오미치
| .500
| x
| x
|
2012
| 후루모토 다케루
| .500
| 16
| .167
|
2013
| 이토하라 겐도
| .500
| x
| x
|
2014
| 오시로 다쿠미
| .533
| x
| x
|
2015
| 모기 에이고로
| .615
| 461
| .277
|
2016
| 야마자키 요시타카
| .471
| x
| x
|
2017
| 아카기 리쿠야
| .467
| x
| x
|
2018
| 카와이 다이키
| .636
| x
| x
|
보다시피 고등학생보다 선수로서 완성된 대학 타격왕 출신들도 성공한 프로야구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이며[54], 아예 프로 데뷔조차 하지 못한 타자들이 부지기수다. 대학에서는 5할 타자들이 프로 투수의 공에는 손도 못대는 것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로 NCAA 디비전 1 대학야구리그에서 가장 강한 리그 중 하나로 평가받는 Pac-12에서 날리던 타자들도 프로에서는 마이너리그 싱글 A조차 돌파못하고 은퇴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대학야구 최고의 선수 축에 드는 골든 스파이크 어워드나 자니 벤치 상 수상자들 중에도 프로에서 실패한 선수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점들은 한국 야구라고 다를 바 없다. 때문에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라고 프로에서의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래서 각 구단 스카우트와 단장 들은 학창 시절 성적을 잘 믿지 않는다. 최근 머니볼 이후 아마추어 성적을 보는 경향이 좀 늘어나긴 했지만[55], 그래도 여전히 고교 야구 성적보다 선수의 발전가능성을 더 중시 여기는 것은 이런 점 때문이다.
[1] 청룡기, 황금사자기, 화랑대기, 대통령배, 봉황대기, 대붕기, 무등기, 미추홀기, 전국 체전.[2] 박근홍으로 개명한 박정태가 대표 사례.[3] 두산 베어스의 김동주와는 동명이인.[4] 두산 베어스의 김동주와는 동명이인.[5] 후에 군산상고 초대 감독을 맡으며 군산상고를 고교야구 최고의 팀중 하나로 만든다.[6] 후에 군산상고 초대 감독을 맡으며 군산상고를 고교야구 최고의 팀중 하나로 만든다.[7] 롯데 자이언츠 단장 역임.[8] 롯데 자이언츠 단장 역임.[9]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영구결번 선수이자, 전 OB 베어스 포수였던 고 김영신과 동명이인.[10]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영구결번 선수이자, 전 OB 베어스 포수였던 고 김영신과 동명이인.[11] 사실 김일권은 타격보다 도루로 더 유명했다.[12] 사실 김일권은 타격보다 도루로 더 유명했다.[13] 아마 때는 유명한 선수였지만 프로에서는 무릎인대 부상으로 기량을 잃어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은퇴.[14] 아마 때는 유명한 선수였지만 프로에서는 무릎인대 부상으로 기량을 잃어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은퇴.[15] 당시 2학년.[16] 당시 2학년.[17] 현 NC 다이노스 코치.[18] 현 NC 다이노스 코치.[19] 동국대 졸업 후 LG에 입단했지만 김동수, 김정민 등 기존 포수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은퇴 후 공주중 감독으로 재직 중 교통사고로 사망.[20] 동국대 졸업 후 LG에 입단했지만 김동수, 김정민 등 기존 포수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은퇴 후 공주중 감독으로 재직 중 교통사고로 사망.[21] 그 롯데 박진형과는 다르다.[22] 그 롯데 박진형과는 다르다.[23] 당시 2학년.[24] 당시 2학년.[25] 당시 2학년. 성균관대 졸업 후 입단했으나 프로에서는 별 활약 없이 은퇴. 발은 빨랐다고 한다.[26] 당시 2학년. 성균관대 졸업 후 입단했으나 프로에서는 별 활약 없이 은퇴. 발은 빨랐다고 한다.[27] 부산고 졸업 후 성균관대 입학. 2013시즌 종료 후 황동채로 개명했다.[28] 부산고 졸업 후 성균관대 입학. 2013시즌 종료 후 황동채로 개명했다.[29] 김대우, 고우석, 이대형과 함께 대통령배-청룡기 우승 멤버로 활약했다. 우익수였으며 성균관대로 진학했다.[30] 김대우, 고우석, 이대형과 함께 대통령배-청룡기 우승 멤버로 활약했다. 우익수였으며 성균관대로 진학했다.[31] 롯데 자이언츠의 박정태와는 별개의 동명이인으로 2012년 박근홍으로 개명했다.[32] 롯데 자이언츠의 박정태와는 별개의 동명이인으로 2012년 박근홍으로 개명했다.[33] 당시 2학년. 2012년 말 전민수로 개명[34] 당시 2학년. 2012년 말 전민수로 개명[35] 당시 2학년.[36] 당시 2학년.[37] 당시 2학년. 건국대 졸업 후 롯데 자이언츠 입단. 그리고, 이창진 이후로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한 대졸 야구선수는 2019년 현재까지 없다.[38] 당시 2학년. 건국대 졸업 후 롯데 자이언츠 입단. 그리고, 이창진 이후로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한 대졸 야구선수는 2019년 현재까지 없다.[39] 당시 1학년.[40] 당시 1학년.[41]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와 계약 후 합류할 예정이었으나 불법 계약 건으로 논란이 있었고, 결국 무산되었다. 해당 문서로. [42]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와 계약 후 합류할 예정이었으나 불법 계약 건으로 논란이 있었고, 결국 무산되었다. 해당 문서로. [43] 김현수[44] 김현수[45] 백인천[46] 백인천[47] 실제 보직은 투수였으나 타자로서도 크게 활약했다. 사실 대학 진학 때까지만 해도 그나마 재활이 가능한 수준이었으나(한양대 진학 당시 1년 동안은 마운드에 서지 않기로 되어 있었다.) 재활 중 국가대표로 뽑히면서 다시 공을 던질 수밖에 없었으며 이때 어깨가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다.[48] 1985년(김경기)부터 2004년(최정) 사이 수상자 중 성공한 선수가 없다. 그나마 투수 박근홍이 나은 경우다.[49] 다만, 김현수도 결국 프로 지명은 받지 못했다. 자세한 건 김현수 문서를 참조하자.[50] 김경한은 원광대로 진학했으나 1년만에 야구를 그만두었으며, 건국대로 진학한 이창진은 2014년도 신인드래프트에서 롯데에 2차 6라운드로 지명되어 뒤늦게나마 프로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고 KT를 거쳐 KIA에서 2019년부터 1번타자 중견수로 활약중이다.[51] 한국은 프로 미지명자들이 대학을 가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이나 일본은 군대 문제가 없어서 프로구단에 드래프트 되었어도 대학에 가는 경우가 상당히 흔하다.(정확히 말하면 한국은 고교 선수 거의 전원이 엘리트 선수에 졸업 예정자가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지만 일본은 엘리트 선수의 비중이 높지 않고 그마저도 프로에 갈 생각이 없는 선수들이 절대 다수여서 신청자에 한해서만 드래프트를 진행한다.) 어차피 바로 1군 데뷔를 못하니 2군에서 기량을 쌓아야 하는데 그럴바엔 기왕이면 대학 졸업장을 따고 대학야구리그에서 기량을 쌓는 편이 낫다고 여기기 때문.[52] 프로 기록은 일본프로야구 커리어 통산 1군 기록을 의미. 성적은 2019년 말 기준.[53] 프로 기록은 일본프로야구 커리어 통산 1군 기록을 의미. 성적은 2019년 말 기준.[54] 그나마 라쿠텐에 지명된 모기 에이고로가 유격수로 저 성적을 기록하며 신인왕 후보에 오르는 등 상당히 성공했다. 2016년 프로에 데뷔해 2019년까지 줄곧 라쿠텐의 주전 유격수 겸 1번 타자를 맡고 있다.[55] 실적이 아예 없거나 극히 부족한 경우 선수들의 기량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