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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59년은 목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이 해가 국제연합이 제정한 '국제 기념의 해'의 시작이다. 최초로 정해진 명칭은 '세계 난민의 해'였으며 1960년까지로 설정했다.
또한 한국 영향 태풍 7개를 기록한 년도이다.[1] 그중에서도 태풍 사라의 피해가 매우 컸다. 또한 1월에 서울의 기온이 -19.8 °C를 기록해 광복 이후 역대 최저 2위에 해당한다.[2]
이 해가 국제연합이 제정한 '국제 기념의 해'의 시작이다. 최초로 정해진 명칭은 '세계 난민의 해'였으며 1960년까지로 설정했다.
또한 한국 영향 태풍 7개를 기록한 년도이다.[1] 그중에서도 태풍 사라의 피해가 매우 컸다. 또한 1월에 서울의 기온이 -19.8 °C를 기록해 광복 이후 역대 최저 2위에 해당한다.[2]
2. 사건
2.1. 실제
- 1월 5일 - 신국가보안법 반대 시위가 전국으로 파급되었다.
- 1월 15일 - 개정 국가보안법(신 국가보안법)이 시행되었다.
- 1월 21일 - 평화시장 화재사고로 청계천 판자촌들이 거의 전소되고 말았다.
- 3월 중 - 락희유지공업이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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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노동절 기념식이 서울운동장에서 열렸다. 1994년까지는 대한노총 창립기념일인 3월 10일로 하였다.
- 3월 11일 - 대법원은 강원도 영덕, 인제, 양구 선거결과에 대해 무효 판결을 내렸다.
- 3월 15일: 일본 아사히신문사가 <아사히 저널>을 창간하였다. 이 잡지는 1960년대에 전공투 세대들의 주요 필독서로 자리잡게 되었다.
- 3월 20일 - 육군 군단장급 회의에서는 정군 방침을 결정하였다.
- 5월 15일 - 서울 남산에서 새 국회의사당 기공식이 열렸다. 그러나 2년 뒤 5.16 군사정변으로 건설이 무산되었다.
- 5월 21일 - 이날 재일동포들은 일본 외무성 앞에서 북송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 6월 2일 - 국제언론인협회는 한국의 가입신청을 거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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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와이 근성> 필화사건이 터짐으로써 이를 게재한 잡지 <야화>가 판매금지를 당했다.
- 제1회 운전사의 날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 6월 15일 - 정부는 재일교포 북송에 대항하여 대일교역을 중단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10월 8일까지 지속되었다.
- 6월 18일 - 이날 서울운동장에서 '재일한인 북송반대 전국대회'가 열렸다.
- 6월 24일 - 대법원은 보성지구 선거 결과를 무효 확정하였다.
- 6월 29일 - 이날 열린 자유당 9차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에 이승만을, 부통령 후보에 이기붕을 또다시 내정하였다.
- 7월 7일 - 전 육군 정병감인 김근배 중장이 군수품 횡령혐의로 구속되었다.
- 7월 14일 -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원자로 기공식이 열렸다.
- 7월 17일 - 부산공설운동장에서 열린 국제신보 주최 '시민 위안의 밤'에서 대혼잡으로 인해 관중 67명이 압사당했다.
- 7월 22일 - 대법원은 경남 양산 지역구의 선거결과에 무효 판결을 내렸다.
- 7월 27일 - 국방과학연구소가 우리나라 최초로 인천 고잔동 바닷가에서 3단 로켓을 발사하였다.
- 7월 31일 - 진보당 당수 죽산 조봉암이 간첩이란 누명을 쓴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 8월 12일 - 한일회담이 속개되었다(한국 측 대표는 우양 허정). 그러나 회담 과정에서 양국 간에 어업 문제와 청구권 문제에 관한 이견, 재일교포 북송 문제 등으로 난항을 겪다가 1960년 4.19 혁명으로 중단되었다.
- 8월 13일 - 일본적십자사와 북한의 조선적십자회가 교포 북송 협정에 조인하였다.
- 8월 14일 - 대한노총 분열 사태가 발생하였다.
- 9월 22일 - 서울 필동에서 일가족 몰살 사건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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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성사가 국산 진공관 라디오 A-501을 처음 생산하였다.
- 11월 26일 - 민주당은 정/부통령 후보자 지명대회에서 조병옥 박사를 대통령 후보로, 장면 박사를 부통령 후보로 각각 선출하였다.
- 12월 9일 - 대법원은 경북 영주 지역구 일부 선거결과에 대해 무효 판결을 내렸다.
- 12월 13일 - 한국 정부는 일본측에 재일교포 북송문제의 국제 제소를 제의하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닷새 뒤 이를 거부하였다.
- 12월 14일 - 북송교포 제 1진 975명이 일본 니카타에서 북한 청진으로 향하였다.
2.2. 가상
- 일자불명
3. 탄생
3.1. 실존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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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다 도모미: 일본의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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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쿠라 카즈에: 일본의 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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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시 노부오: 일본의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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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 와드: Jim Ward, 미국의 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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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민(성우): 대한민국의 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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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훈: 대한민국의 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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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희: 대한민국의 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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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운: 한국의 소설가
- 일자불명
- 시노하라 마사토 생일이 늦었다고 하니 12월~ 1월 사이일것이다.
3.2. 가상인물
- 일자불명
4. 사망
4.1. 실존인물
4.2. 가상인물
5. 데뷔
5.1. 가수
5.2. 만화계
- 권영섭 - <우리들의 척척박사>
- 김박 - 평화신문 시사만평
- 방영진 - <투명인간>
- 이정문 - <심술첨지>
- 이행남 - <복동이 형제>
- 조원기 - <백조의 꿈>
- 최귀봉 - <피노키오>
6. 히트작
6.1. 영화
- 십대의 반항
6.2. 가요
- 명국환 - 아리조나 카우보이
- 박경원 - 나폴리 연가
6.3. 베스트셀러
- 비극은 없다 - 홍성유 저.
7. 달력
[1] 이는 같은 기해년인 2019년에도 같은 기록을 세웠다.[2] 1위는 1970년 1월 5일 -20.2 °C로 광복 이후 유일하게 서울의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를 기록했다.[3] 엄석대가 몰락한 해에 4.19 혁명이 일어났고 주인공 또래는 6학년이었다.[4] 엄석대가 몰락한 해에 4.19 혁명이 일어났고 주인공 또래는 6학년이었다.[5]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증지위(曾志偉)의 절친이기도 하며, 주성치와 함께 억지스러운 상황을 더 억지스러운 전개로 돌파하는 난센스 코미디인 우리터우(無厘頭) 개그,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주성치 스타일의 개그의 시초 중 한 사람이다.[6]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증지위(曾志偉)의 절친이기도 하며, 주성치와 함께 억지스러운 상황을 더 억지스러운 전개로 돌파하는 난센스 코미디인 우리터우(無厘頭) 개그,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주성치 스타일의 개그의 시초 중 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