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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우의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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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어본 하이에나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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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No.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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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우(宋津宇 / Jin-Woo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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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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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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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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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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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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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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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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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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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 파일:HanwhaEagles_Brandlogo2.png 한화 이글스 2군 투수코치 (2011~2012)[22]
파일:HanwhaEagles_Brandlogo2.png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2012~2013) 파일:HanwhaEagles_Brandlogo2.png 한화 이글스 2군 투수코치 (2013~2014) 파일:HanwhaEagles_Brandlogo2.png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2018~2019) 파일:HanwhaEagles_Brandlogo2.png 한화 이글스 2군 투수코치 (2019)[23] 파일:HanwhaEagles_Brandlogo2.png 한화 이글스 육성군 투수코치 (2020) 파일:HanwhaEagles_Brandlogo2.png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2020)[24] 파일:스코어본 하이에나들 로고.jpg 스코어본 하이에나들 감독 (2021~) |
해설위원
| 파일:PicsArt_06-06-01.33.55.png 야구 해설위원 (2015~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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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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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1999년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짓고 환호하던 모습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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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우 선배님 같은 분들에 대해 욕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 야구로 최고가 된 사람들에겐 적이 많더라.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선배님 같은 분들은 철저하게 야구를 잘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서운해 하는 사람들도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야구 선수다. 야구 잘 하는 것이 먼저다. 스스로 참고 자제하며 대기록을 세운 선배님이다. 난 정말 송진우 선배를 존경한다.
2.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초기 투구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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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후기 투구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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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완 정통파 투수로, 매우 빼어난 제구로 유명했던 선수. 게다가 빙그레 이글스 시절에는 구속 145 km/h에 가깝게 던져서 좌완 파이어볼러로 정평이 나 있었다.[28] 이상훈과 구대성 등 기라성같은 좌완이 등장하기 전까지 좌완으로는 거의 원톱의 구속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입단 당시부터 선발-중무리를 넘나드는 등 지속된 혹사로 인해 1996년을 정점으로 구속이 감퇴하면서 140 km/h대 직구를 구사하기는 어려워졌다. 그렇게 되자 송진우는 서클체인지업 등의 변화구를 장착하며 기교파 투수로 거듭났고, 선수생활 후반기까지 선발 투수로 롱런하였다.
전성기 시절 공끝이 얼마나 좋았는지, 혹자는 1996시즌 구대성보다 1990~1992시즌 송진우의 공끝이 더 좋았다고 평할 정도였다. 혹사와 노쇠화 등으로 공끝이 무뎌졌다고는 하지만, 은퇴 당시 웬만한 한화 선수들보다도 최고참 송진우의 공끝이 좋았다. 2018년 한화의 투수코치를 역임할 당시는 선수를 은퇴한지 거진 10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런데, 투수 코치를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직접 투구를 하기도 하는데, 이를 보면 은퇴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공끝이 여전히 살아 있다고 한다.
투수 수비의 달인으로 불릴 만큼, 투구 후 타구수비능력이 출중했다. 빨리 수비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폼도 간결한 편이다.
4. 지도자 경력
2010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 근데 선수시절부터 한솥밥을 먹은 적 없던 이승엽과 처음으로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29] 앞으로 코치로 활동하게 될 그를 기대해보자.
2010년 연수 코치를 마친 뒤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조성민과 같이 잠실구장을 방문하였다.
코치연수를 마치고 돌아와서 2010년 12월 7일부로 한화 이글스의 투수코치로 임명되었다. 2군에 있다가 1군으로 복귀한 김혁민이 인터뷰를 하면서 2군 송진우 코치를 말하였는데, 2군 선수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목표를 쓰게 하면서 후배(제자?)들의 마인드를 다잡았다고 한다. 참고로 김혁민은 실수로 목표를 쓴 종이를 숙소에 두고 왔는데 그 날 2시간 동안 러닝만 했다고 한다. 2군에서 올라온 김혁민이 바로 자리를 잡은 걸 보면 호랑이 코치로 2군에서 후배들을 잘 양성한 듯.[30]
김혁민에 이어서 신주영을 2군에서 올려보냈는데 이쪽도 준수한 불펜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수순으로 보이며 하나 둘 투수들을 자리잡게 만들었다.
2010년 연수 코치를 마친 뒤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조성민과 같이 잠실구장을 방문하였다.
코치연수를 마치고 돌아와서 2010년 12월 7일부로 한화 이글스의 투수코치로 임명되었다. 2군에 있다가 1군으로 복귀한 김혁민이 인터뷰를 하면서 2군 송진우 코치를 말하였는데, 2군 선수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목표를 쓰게 하면서 후배(제자?)들의 마인드를 다잡았다고 한다. 참고로 김혁민은 실수로 목표를 쓴 종이를 숙소에 두고 왔는데 그 날 2시간 동안 러닝만 했다고 한다. 2군에서 올라온 김혁민이 바로 자리를 잡은 걸 보면 호랑이 코치로 2군에서 후배들을 잘 양성한 듯.[30]
김혁민에 이어서 신주영을 2군에서 올려보냈는데 이쪽도 준수한 불펜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수순으로 보이며 하나 둘 투수들을 자리잡게 만들었다.
4.1. 2012 시즌
4.2. 2013 시즌
4.3. 2014 시즌
올해에도 그다지 좋은 평가는 많이 받지 못했다. 그리고 10월 27일 한화는 송진우와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해 레전드는 그렇게 씁쓸하게 팀을 떠나는 줄 알았다.
4.4. 2018 시즌
2017년 한국시리즈가 끝나자마자 한용덕 코치가 한화 감독으로 선임되어 장종훈 수석 타격코치, 강인권 배터리코치, 전형도 주루코치와 같이 한화 이글스 투수코치를 맡게 되었다. 이로서 송진우는 4년 만에 현장 복귀 겸 고향팀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등번호를 그의 영구결번인 21번으로 결정하면서 9년 만에 21번을 단다.
그동안 구제불능 취급을 받아온 송은범, 안영명을 승리조로 만들고 제구 난조와 부적응을 겪던 샘슨과 휠러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고 있어 야구계에서 '한화 투수진의 화타'라고 불리고 있다. 특히 구대성-류현진 등으로 이어지면서 이글스 투수들의 필살기로 자리잡은 써클 체인지업을 전수하고, 투수들의 정신 자세 관리에서도 호평을 받는 중.[32]
제이슨 휠러는 송진우에게 직접 체인지업을 전수받으면서 어느 정도 효과를 봤었으나... 이닝 소화 능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방출당했다. 관련기사 제로맨 서균 역시 체인지업을 배웠는데 자신의 그립이 아닌 사이드암 계열 투수용 그립을 따로 알려주었다고 한다.
해설자 전향 이후 처음 인터뷰를 한 한화 선수에게서 "그때 제게 왜 그러셨어요. 매번 저를 볼 때마다 '에휴 답이 없다. 답이'라고 하셨잖아요. 그 말에 많이 좌절했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자신의 코칭 방법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33]
시즌 종료 후, 올해의 코치상을 수상했다.
4.5. 2019 시즌
5월 7일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에서 투수코치가 그라운드 키퍼와 마찰을 일으켜 멱살을 잡고 폭행을 했다가 나중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5월 31일에 전해지면서 유력한 인물로 예상되었지만 당일 상벌위원회 결과 투수코치가 아닌 불펜코치 김해님의 소행이었던 것이 밝혀졌다.
6월 24일, 김해님 코치와 같이 2군으로 내려갔다. 무능한 수석코치인 장종훈은 끝까지 데리고 가면서 전년도 불펜진 강화의 1등 공신 송진우는 2군으로 보내버리냐는 비판이 많았다. 다만 정민태의 코칭이 낫느냐 송진우의 코칭이 낫느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갈리는 편.
6월 24일, 김해님 코치와 같이 2군으로 내려갔다. 무능한 수석코치인 장종훈은 끝까지 데리고 가면서 전년도 불펜진 강화의 1등 공신 송진우는 2군으로 보내버리냐는 비판이 많았다. 다만 정민태의 코칭이 낫느냐 송진우의 코칭이 낫느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갈리는 편.
4.6. 2020 시즌
6월 7일 한용덕 감독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하자 1군 코칭스태프가 대거 바뀌게 됐고[34] 이 과정에서 1군으로 다시 올라오게 됐다.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2018시즌처럼 코치로서 무언가 팀의 변화를 보여줄만한 기간은 아니었기에 별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지만, 코칭과는 별개로 어린 선수들 사이에서 함께 세레모니를 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고 있다. 팬들로부터 ‘왜 송진우가 선수들과 친화적이라는 평가를 받는지 알겠다’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김민우[35]의 선발 안착과 윤대경[36], 강재민[37]의 필승조 진입 등 젊은 투수들이 1군에 안착하며 암울한 팀 성적과는 별개로 투수 파트에서는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송진우에게 배운 체인지업을 주 무기로 1군에서 강력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윤대경은 그의 성과.. 박상원과 김진영, 김종수까지 후반기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며 벌떼야구로 지키는 야구가 가능해져 상위권 팀들에게 매서운 고춧가루를 선사했다.
그러나 11월 6일 구단이 재계약 의사를 밝히지 않음에 따라 결국 한화를 다시 떠나게 되었다.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2018시즌처럼 코치로서 무언가 팀의 변화를 보여줄만한 기간은 아니었기에 별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지만, 코칭과는 별개로 어린 선수들 사이에서 함께 세레모니를 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고 있다. 팬들로부터 ‘왜 송진우가 선수들과 친화적이라는 평가를 받는지 알겠다’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김민우[35]의 선발 안착과 윤대경[36], 강재민[37]의 필승조 진입 등 젊은 투수들이 1군에 안착하며 암울한 팀 성적과는 별개로 투수 파트에서는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송진우에게 배운 체인지업을 주 무기로 1군에서 강력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윤대경은 그의 성과.. 박상원과 김진영, 김종수까지 후반기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며 벌떼야구로 지키는 야구가 가능해져 상위권 팀들에게 매서운 고춧가루를 선사했다.
그러나 11월 6일 구단이 재계약 의사를 밝히지 않음에 따라 결국 한화를 다시 떠나게 되었다.
4.7. 독립야구단 스코어본 하이에나들 감독
5. 해설자 경력
5.1. 2015년
목소리 톤부터가 가래 끓는 소리가 나서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나뉘는 데다 해설 퀄리티도 상당히 아쉬운 수준이다. 흐름 끊는 말들은 물론이고 횡설수설하는 말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 예로 2015년 4월 21일 삼성 라이온즈와 NC 다이노스 간의 경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멘트를 남겼다.
그 예로 2015년 4월 21일 삼성 라이온즈와 NC 다이노스 간의 경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멘트를 남겼다.
맞으면 홈런이고 치면 아웃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어록(?)이 있다.
아무리 봐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을 지경. 이 때문에 한화 이글스 팬들마저 송진우가 해설하면 음소거하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동시에 해설로 데뷔한 정민철과는 180도 다른 행보. 이종범, 조성환 등 2015년 10구단 체제에 급히 합류한 해설위원들이 진통을 겪었지만 송진우는 그 중에서도 평가가 독보적으로 나빴다.
이 날 경기 이후 KBS N SPORTS 게시판에는 "이 분은 대체 뭘 하고 싶으신 건가요?", "해설위원이 아니라 (한화)응원단장 같네요.", "이 분이 나오면 전 그냥 중계방송 안 볼랍니다.", "내가 다른 사람 욕하려고 회원가입하긴 처음입니다.", "하라는 해설은 안 하고 말 끊어먹지를 않나 자기 말만 늘어놓지를 않나, 왜 앉아있는 거죠?", "사장님 그냥 이 분 짜르시라니까요?" 등 악평이 끊이지 않는다.
2015년 8월 13일 삼성 vs 기아 경기에서 1루에서 주루 플레이를 준비 중이었던 나바로가 최형우의 타구에 직격당했는데도 "기아에게 행운이 따라주었습니다." "맞으면 안되죠, 피해야 됩니다." 등 이해할 수 없이 이기적인 해설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아래의 항목에 나와 있는 사건마저 터뜨려 버렸다.
더 큰 문제는 KBS N이 해설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조성환, 안치용보다 이 사람을 적극적으로 밀어준다는 것이다. 심지어 아예 송진우를 단독으로 해설시키는 경우가 점점 많아졌다. 이 사람 덕분에 하일성이 재평가받을 정도로 최악의 해설임을 KBS N은 모르는 듯했다.
그리고 2015년 9월 23일 삼성 vs KT 전에서 타일러 클로이드를 클리대로 호칭해서 삼성 팬들의 공분을 샀다. 류중일 감독의 항목 중 관중일 발언 논란을 보면 알겠지만 사적인 자리와 공적인 자리는 구분을 해야 하는게 맞는데 그것을 망각했다는 처사이다.
아무리 봐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을 지경. 이 때문에 한화 이글스 팬들마저 송진우가 해설하면 음소거하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동시에 해설로 데뷔한 정민철과는 180도 다른 행보. 이종범, 조성환 등 2015년 10구단 체제에 급히 합류한 해설위원들이 진통을 겪었지만 송진우는 그 중에서도 평가가 독보적으로 나빴다.
이 날 경기 이후 KBS N SPORTS 게시판에는 "이 분은 대체 뭘 하고 싶으신 건가요?", "해설위원이 아니라 (한화)응원단장 같네요.", "이 분이 나오면 전 그냥 중계방송 안 볼랍니다.", "내가 다른 사람 욕하려고 회원가입하긴 처음입니다.", "하라는 해설은 안 하고 말 끊어먹지를 않나 자기 말만 늘어놓지를 않나, 왜 앉아있는 거죠?", "사장님 그냥 이 분 짜르시라니까요?" 등 악평이 끊이지 않는다.
2015년 8월 13일 삼성 vs 기아 경기에서 1루에서 주루 플레이를 준비 중이었던 나바로가 최형우의 타구에 직격당했는데도 "기아에게 행운이 따라주었습니다." "맞으면 안되죠, 피해야 됩니다." 등 이해할 수 없이 이기적인 해설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아래의 항목에 나와 있는 사건마저 터뜨려 버렸다.
더 큰 문제는 KBS N이 해설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조성환, 안치용보다 이 사람을 적극적으로 밀어준다는 것이다. 심지어 아예 송진우를 단독으로 해설시키는 경우가 점점 많아졌다. 이 사람 덕분에 하일성이 재평가받을 정도로 최악의 해설임을 KBS N은 모르는 듯했다.
그리고 2015년 9월 23일 삼성 vs KT 전에서 타일러 클로이드를 클리대로 호칭해서 삼성 팬들의 공분을 샀다. 류중일 감독의 항목 중 관중일 발언 논란을 보면 알겠지만 사적인 자리와 공적인 자리는 구분을 해야 하는게 맞는데 그것을 망각했다는 처사이다.
5.2. 2016년
LG 투수들이 신중하게 가는건지, 어렵게 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 지금 정말 어렵게 가네요.
ㅡ 2016년 4월 LG 경기 중계 당시
2016년 4월 17일 한화 vs LG 전에서는 선수 시절 데뷔부터 은퇴할 때까지 뛰었던 팀이라지만 도가 넘은 한화 편파해설을 보여주었다. 특히 후반부엔 한화가 공격을 하든 LG가 공격을 하든 상관없이 한화 이야기만 했다. LG가 6:0으로 이기고 있던 상황에서 한화가 3점차로 따라붙을 때에 나온 말로, "저도 승부산가봐요. 6:0이 될 때까지는 사실 중계하면서 흥미가 없었는데 이런 승부처가 되니까 저도 기분이 좋은데요?"라는, 야구선수, 그것도 KBO에서 손꼽히는 레전드 투수 출신의 야구 해설자가 자신이 현재 중계 중인 경기에 대해 흥미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한화를 우리 구단이라고 언급하는 등, 해설자로서의 기본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4월 24일, 두산 vs 한화 전에서도 명불허전의 편파해설을 보여줬다.[42] 정근우가 호수비를 하자마자 굉장히 큰 목소리로 "역시 정근우네요"라는 소리를 날리는가 하면, 권혁이 1루 베이스 커버 때 베이스에 살짝 스쳐서 세이프가 된 상황.[43] 그러자 바로 투수들은 "베이스 커버시에 끝 부분을 갖다 대는 연습을 한다"라며 열심히 커버쳐 주는가 하면, 모 해설위원이 사랑해 마지 않는 선발 중견수의 내야안타가 나왔을 때는, "맞히기에 급급했는데 안타가 됐네요."라고 하기도. 이 날, 한화가 두산한테 5대 떡으로 개털리고 있다가 9회초, 신성현의 홈런으로 겨우 5대 1이 되었을 때는 그야말로 미쳤다. 경기장 분위기도 좋아지네 어쩌네 하면서.
김광현이 승리투수가 된 날 인터뷰로 김광현한테 호되게 까였다(...). "저를 안 좋게 보는것 같아요"부터 시작해서 "저 힘 많이 뺐거든요?" 등 거의 5분을 송진우에게 극딜을 가하는 김광현의 인터뷰가 재미를 주었다. 송진우는 경기 끝나고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5월 26일 LG vs 롯데의 경기 중계 중, 오지환이 대타로 나와 2루타를 기록하자, 생뚱맞게 오지환 선수같은 엉덩이가 탐이 난다는 이야기를 했다.
6월 22일에는 "김기태 감독이 FA를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지만"이라는 명언이 나왔다. 명색이 선수 출신 야구 해설자에다가 1년차도 아니면서 어느 팀이 FA를 했는 지조차 모르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44]
7월10일 LG와 롯데 전에서 자신의 팀이 우승했을 때 상대 팀 선수였던 조성환[45] 앞에서 대놓고 체력을 다 소모하고 올라와서 우리가 우승했다라고 발언했다.
8월 4일 역시나 한화 vs KIA의 광주 3연전 중 마지막에 배치가 되어[46] KIA 선수들 칭찬은 일시적이지만 한화 편파중계는 영원하다라는 것을 훌륭하게 입증하였다. 이용철과 함께 배치가 되어 이용철과 같이 해설을 했는데, 오죽했으면 8회 이후론[47] 그냥 이용철하고 캐스터만 중계하는 듯한 기분. 그리고 9회초 2아웃 김태균의 헛스윙 삼진이 나왔을 때, 김태균이 파울이라고 주장하자 "잠깐. 지금은 파울인 것 같으니 좀 상황을 파악하라"고 말했다. 합의판정 결과는 헛스윙 삼진으로 끝나긴 했지만 중요한 건 해설자가 파울이라고 단정을 짓고 해설을 했다는 것이다. 만약 그가 "잠깐. 한화 쪽에서 파울이 아니냐고 합의판정을 요청했으니 좀 상황을 파악하라"라고 말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얼마나 심했는지 네이버에서 송진우가 해설한 경기 기사가 나오면 "송진우 해설 듣기 싫다"는 말만 적어도 베댓을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김광현이 승리투수가 된 날 인터뷰로 김광현한테 호되게 까였다(...). "저를 안 좋게 보는것 같아요"부터 시작해서 "저 힘 많이 뺐거든요?" 등 거의 5분을 송진우에게 극딜을 가하는 김광현의 인터뷰가 재미를 주었다. 송진우는 경기 끝나고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5월 26일 LG vs 롯데의 경기 중계 중, 오지환이 대타로 나와 2루타를 기록하자, 생뚱맞게 오지환 선수같은 엉덩이가 탐이 난다는 이야기를 했다.
6월 22일에는 "김기태 감독이 FA를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지만"이라는 명언이 나왔다. 명색이 선수 출신 야구 해설자에다가 1년차도 아니면서 어느 팀이 FA를 했는 지조차 모르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44]
7월10일 LG와 롯데 전에서 자신의 팀이 우승했을 때 상대 팀 선수였던 조성환[45] 앞에서 대놓고 체력을 다 소모하고 올라와서 우리가 우승했다라고 발언했다.
8월 4일 역시나 한화 vs KIA의 광주 3연전 중 마지막에 배치가 되어[46] KIA 선수들 칭찬은 일시적이지만 한화 편파중계는 영원하다라는 것을 훌륭하게 입증하였다. 이용철과 함께 배치가 되어 이용철과 같이 해설을 했는데, 오죽했으면 8회 이후론[47] 그냥 이용철하고 캐스터만 중계하는 듯한 기분. 그리고 9회초 2아웃 김태균의 헛스윙 삼진이 나왔을 때, 김태균이 파울이라고 주장하자 "잠깐. 지금은 파울인 것 같으니 좀 상황을 파악하라"고 말했다. 합의판정 결과는 헛스윙 삼진으로 끝나긴 했지만 중요한 건 해설자가 파울이라고 단정을 짓고 해설을 했다는 것이다. 만약 그가 "잠깐. 한화 쪽에서 파울이 아니냐고 합의판정을 요청했으니 좀 상황을 파악하라"라고 말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얼마나 심했는지 네이버에서 송진우가 해설한 경기 기사가 나오면 "송진우 해설 듣기 싫다"는 말만 적어도 베댓을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의외로 친정 팀 한화의 패배 토템을 맡고 있다. 그가 해설을 맡은 경기의 한화의 통산 성적은 1승 15패.[48]
그리고 2017년 1월 11일, KBS N과 재계약하지 않기로 하면서 해설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2017년 1월 11일, KBS N과 재계약하지 않기로 하면서 해설을 그만두었다.
6. 논란
6.1. 부정투구 고백 논란
(6회초 볼넷으로 출루한 손아섭이 배트 손잡이 부분에 테이핑을 한 것을 보고 송진우가 이것이 일종이 루틴이냐고 묻자 조성환이 타구의 비거리를 좀 더 늘리고 싶다는 생각에 했다고 답변한 이후)
송진우 : 뭐 저 같은 경우는 시합 들어가기 전에 항상 글러브를 거 바셀린으로다가 닦곤 했어요. 어 성적이 좋아서 그런지 계속 했었고. 바셀린으로 닦다 보니까 포수한테 공이 날아올 때 공이 좀 끈적끈적해서 손에 그 달라붙는 느낌이 있었죠. 너무 좋았어요.
조성환 : 부정... 부정 투구 아닙니까?
송진우 : 어, 일단 한번도 안걸렸고. 그 정도 갖고는 부정투구라는 생각은 사실 안 해봤어요.
본인의 말대로 통산 21년의 선수 생활 동안 부정투구가 적발된 적이 없지만, 글러브를 손질할 때 바셀린을 사용하니 달라붙는 느낌이 있었다는 표현은 부정투구에 대한 의심을 사기 충분한 멘션이었다.
현재의 시각으로 볼 때, 글러브는 글러브 전용 오일[49]로 닦는 것이 정석이다. 물론 송진우가 선수생활을 할 시절에는 흔히 구할 수 있는 바셀린으로 글러브 관리를 많이 한 것은 사실이다. 현 사회인 야구 선수들도 가격 등의 이유로 바셀린을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글러브 손질 시 오일이나 바셀린을 듬뿍 퍼서 발라 버리는 게 아니라 천이나 휴지 등에 묻혀서 그걸로 글러브를 닦아줄 경우, 바셀린은 곧 마르고 끈적끈적함이 느껴지지 않기에 끈적끈적함을 느낄 정도라면 글러브 손질 후 바셀린을 제대로 닦아내지 않았다는 의미이고, 이는 고의 여부를 떠나 부정투구가 맞다. 이로 인하여 송셀린이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은 건 덤이다.
6.1.1. 본인의 해명
이 자리에서 이런(해명할) 기회가 있어서 좋다.
나는 한점 부끄러움이 없다.
그 당시 바셀린은 글러브를 청소하는 도구였으며, 어떤 선수도 바셀린을 투구하는 데 사용한 적이 없다.
당시에는 글러브를 닦는 소재가 없었다. 바셀린, 구두약(무광)으로 닦기도 했다.
야구장에는 심판, 기록원, 전력분석원, 카메라를 비롯하여 눈이 한 두개가 아니다.
21년동안 야구를 했는데 (부정투구를 했다면) 심판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단 한번도 바셀린을 투구하는 데 사용한 적이 없으며,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논란 역시 일종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데 바셀린을 손끝에 바르고 공을 잡으면 매우 미끄럽기 때문에 원하는 곳에 절대로 공을 던질 수가 없다.
나는 마운드에서 타자와 열심히 싸웠을 뿐 다른 편법으로 타자와 승부를 한 적이 없다.
다만 방송에서 방송 초보인 지라 전달 과정에서 미스(실수)가 있었다.
내야수의 경우 글러브에 로진백을 터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글러브에 왁스가 묻어 미끄러워 공이 빠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로진백으로 없애고자하는 것이다.
바셀린을 발랐다고 더 잘 던지고 공의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투구에 안 좋을수도 있다. 유리한 것은 없다.
바셀린은 청소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7. 2012년 한-일 레전드 매치
파일:/image/014/2012/07/20/20120720214602905.jpg
2012년 7월 20일, 한-일 레전드 매치에 9회말 마무리 투수로 등판. 아직도 제구가 되는 130km/h이 넘는 공을 뿌리는 모습을 선보였다. 당시 나이가 48세인 것과 은퇴한 상태인 것을 생각하면 몸관리를 꾸준히 한 것을 알 수 있다.
2012년 7월 20일, 한-일 레전드 매치에 9회말 마무리 투수로 등판. 아직도 제구가 되는 130km/h이 넘는 공을 뿌리는 모습을 선보였다. 당시 나이가 48세인 것과 은퇴한 상태인 것을 생각하면 몸관리를 꾸준히 한 것을 알 수 있다.
8. 기록
8.1.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투수)
| ||||||||||||||||
연도
| 소속
| 경기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1989
| 35
| 156⅔
| 9
| 10
| 9
(3위) | -
| 0.474
| 2.81
| 116
| 7
| 93
| 97
| 57
| 49
| 1.30
| |
1990
| 50
(2위) | 128⅓
| 11
| 7
| 27
(1위) | -
| 0.611
| 1.82
(2위) | 80
| 2
| 54
| 102
| 29
| 26
| 1.04
| |
1991
| 36
| 184⅓
| 11
| 10
| 11
| -
| 0.524
| 2.78
| 142
| 13
| 72
| 126
| 67
| 57
| 1.12
| |
1992
| 48
(1위) | 191⅓
| 19
(1위) | 8
| 17
(1위) | -
| 0.704
(5위) | 3.25
| 157
| 17
| 101
| 130
(4위) | 79
| 69
| 1.33
| |
1993
| 25
| 72⅔
| 7
| 7
| 8
| -
| 0.500
| 3.72
| 64
| 8
| 35
| 53
| 40
| 30
| 1.32
| |
1994
| 33
| 133
| 9
| 10
| 10
| -
| 0.474
| 3.92
| 119
| 10
| 64
| 90
| 76
| 58
| 1.34
| |
1995
| 26
| 183
| 13
| 8
| 0
| -
| 0.619
| 3.20
| 165
| 11
| 79
| 121
| 78
| 65
| 1.31
| |
1996
| 31
| 213
(3위) | 15
| 9
| 0
| -
| 0.625
| 3.25
| 185
| 18
| 94
| 160
(4위) | 80
| 77
| 1.26
| |
1997
| 27
| 146⅔
| 6
| 12
| 0
| -
| 0.333
| 4.60
| 156
| 17
| 61
| 73
| 85
| 75
| 1.40
| |
1998
| 24
| 114⅔
| 6
| 10
| 0
| -
| 0.375
| 4.79
| 125
| 19
| 46
| 72
| 66
| 61
| 1.47
| |
1999
| 35
| 186⅔
| 15
(5위) | 5
| 6
| -
| 0.750
(4위) | 4.00
| 180
| 24
| 64
| 132
| 99
| 83
| 1.29
| |
2000
| 28
| 135
| 13
| 2
| 4
| 1
| 0.867
(1위) | 3.40
(5위) | 121
| 19
| 61
| 105
| 60
| 51
| 1.31
| |
2001
| 37
| 185⅓
(3위) | 10
| 8
| 2
| 0
| 0.556
| 3.84
| 181
| 20
| 95
| 139
(3위) | 99
| 79
| 1.44
| |
2002
| 31
| 220
(1위) | 18
(2위) | 7
| 0
| 0
| 0.720
(5위) | 2.99
(2위) | 199
| 16
| 65
| 165
(3위) | 82
| 73
| 1.15
| |
2003
| 42
| 129⅔
| 9
| 7
| 7
| 2
| 0.563
| 3.12
| 111
| 9
| 46
| 93
| 48
| 45
| 1.17
| |
2004
| 28
| 172
(5위) | 11
| 8
| 1
| 0
| 0.579
| 3.61
| 162
| 19
| 51
| 100
| 73
| 69
| 1.20
| |
2005
| 23
| 127⅔
| 11
| 7
| 0
| 0
| 0.611
| 3.81
| 126
| 13
| 49
| 88
| 61
| 54
| 1.32
| |
2006
| 26
| 147⅓
| 8
| 8
| 0
| 0
| 0.500
| 3.60
| 147
| 10
| 56
| 94
| 64
| 59
| 1.32
| |
2007
| 42
| 35⅔
| 2
| 2
| 1
| 10
| 0.500
| 4.54
| 34
| 5
| 11
| 29
| 19
| 18
| 1.23
| |
2008
| 31
| 132⅔
| 6
| 8
| 0
| 2
| 0.429
| 4.48
| 141
| 13
| 68
| 73
| 72
| 66
| 1.53
| |
2009
| 14
| 7⅓
| 1
| 0
| 0
| 2
| 1.000
| 7.36
| 7
| 2
| 7
| 6
| 7
| 6
| 1.91
| |
KBO 통산
(21시즌) | 672
| 3003
(1위) | 210
(1위) | 153
(1위) | 103
| 17
| 0.579
| 3.51
| 2718
(1위) | 272
(1위) | 1272
(1위) | 2048
(1위) | 1341
(1위) | 1170
(1위) | 1.29
| |
역대 기록(타자)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삼진
|
1991
| 1
| 1
| 0.000
| 0
| 0
| 0
| 0
| 0
| 0
| 0
| 1
| |
1992
| 1
| 1
| 0.000
| 0
| 0
| 0
| 0
| 0
| 0
| 0
| 0
| |
1994
| 1
| 1
| 0.000
| 0
| 0
| 0
| 0
| 0
| 0
| 0
| 1
| |
2001
| 2
| 1
| 1.000
| 1
| 0
| 0
| 0
| 1
| 0
| 0
| 0
| |
KBO 통산
(4시즌) | 5
| 4
| 0.250
| 1
| 0
| 0
| 0
| 1
| 0
| 0
| 2
| |
완투, 완봉기록
| ||
연도
| 완투
| 완봉
|
1989년
| 5완투
| 2완봉
|
1991년
| 11완투
(4위) | 1완봉
|
1992년
| 4완투
| 1완봉
|
1994년
| 3완투
| 0완봉
|
1995년
| 7완투
| 1완봉
|
1996년
| 5완투
(4위) | 0완봉
|
1997년
| 5완투
(3위) | 1완봉
(4위) |
1998년
| 1완투
| 0완봉
|
1999년
| 8완투
(1위) | 2완봉
(1위) |
2000년
| 2완투
| 1완봉
(1위) |
2001년
| 1완투
| 0완봉
|
2002년
| 8완투
(1위) | 1완봉
(4위) |
2003년
| 1완투
| 0완봉
|
2004년
| 1완투
(5위) | 0완봉
|
2005년
| 1완투
(5위) | 1완봉
(2위) |
2008년
| 1완투
| 0완봉
|
KBO 통산
| 64완투
(7위) | 11완봉
|
8.2. 그가 쌓은 금자탑
- 210승(1위) - 통산 2위는 정민철의 161승
- 3,003이닝(1위) - 2위는 정민철의 2,394⅔이닝
- 2,048 탈삼진(1위) - 2위는 이강철의 1,749탈삼진
- 153패(1위) - 2위는 김원형의 144패. 통산 최다승에 가려져서 그렇지 통산 최다패도 송진우의 몫이다. 이는 20년 동안 선수 생활을 꾸준히 지속했기에 쌓인 어쩔 수 없는 기록으로 결코 부끄러워할 기록은 아니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최다승 투수인 사이 영도 동시에 최다패 투수이다.[51] 이 때문인지 투수들에게 조언할 때 두려워하지 말 것을 이야기하며 스스로를 최다패 투수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 272피홈런(1위) 2718피안타(1위) 1341실점(1위) 1155볼넷(1위) - 최다패와 마찬가지로 선수 생활을 꾸준히 지속했기에 쌓인 기록이다.
송진우의 통산 기록들은 진짜 깨지기 힘든 대기록들이다. 200승도 힘든데, 200승 100세이브를 한데다가 3,000이닝은 불멸의 기록이 될 듯하다. 피칭 스타일을 바꿔가면서 이렇게 롱런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리고 피네스(제구력 중심)피처라고 해서 롱런하는 것도 아니다. 손민한이 부상으로 신음한 것이나 배영수가 구위를 잃고 나서 어중간한 피칭스타일 때문에 몇 년간 고생하는 걸 보면 더더욱. 통산 다승 2위인 정민철 역시 구위를 잃고 나서 고생하다가, 피칭 스타일을 바꿔 성공하는 듯 했지만 결국 롱런에 실패했다.[52][53][54]
한국프로야구에서 활동했던 좌완투수 중에서는 송진우가 100승을 처음으로 돌파했고, 그 다음으로 100승을 넘긴 선수는 장원삼이다.[55]
그리고, 송진우의 기록들이 깨지기 힘든 또 다른 이유는 이 기록을 위협할 만한 A급 이상의 투수가 나오면 KBO를 떠나 미국이나 일본에서 최소 1년이라도 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국으로 돌아오더라도 공백이 생겨서 송진우의 기록을 넘기 어려워진다.[56]
8.2.1. 최고령 기록
무려 21시즌, 만 43세가 될때까지 현역 생활을 했기에 다수의 최고령 투수 기록을 보유중이다. 참고로 송진우는 호적상으로는 1966년 2월 16일 생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1965년생이다.[57] 사실 송진우는 양준혁(대학졸업 + 방위복무 테크트리로 25살에 데뷔)과 더불어 한국야구 레전드 중 데뷔가 많이 늦어진 걸로 기록손해를 많이 본 선수에 속한다. 1988올림픽 출전 때문에 대학 졸업후에도 1년이나 프로데뷔를 늦추도록 강요받았으니...
이 기록들은 당연히 주민등록상 출생년월일을 기준으로 한다.
이 기록에 근접한 선수로는 2013년 기준 최향남과 류택현선수 밖에 없다. 둘다 1971년생. 실제로 최향남은 2012년에 최고령 세이브 기록을 경신하였고, 2013년에 최고령 승리투수 2위를 기록하였다. 다만 2015년 기준으로 최향남은 다이빙 덕스[58]를 거쳐 현재는 문경에 위치한 대안학교인 글로벌선진학교 야구부 감독이 되었고, 류택현은 은퇴를 한 상황이라서 기록 갱신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최영필이 KIA 타이거즈 소속으로 42살의 나이로 2점대 후반을 찍으면서 기록을 갈아치울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었다. 최영필은 2016년에 이어 2017년에도 현역을 이어가면서, 정말 일부 기록을 갈아 치우게 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2017년 6월 9일 은퇴를 선언하며 다음 후보는 임창용으로 넘어갔다. 임창용은 2018년 시즌까지 뛰었으나 시즌 종료후 방출되며, 사실상 은퇴하게 되었다.
2017 시즌 종료 후, 같은 팀의 투수 박정진이 FA 계약으로 2년 더 현역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2018년은 사실상 거의 쉬며 출전하지 못했고 2019년에 은퇴했다.
이 기록들은 당연히 주민등록상 출생년월일을 기준으로 한다.
이 기록에 근접한 선수로는 2013년 기준 최향남과 류택현선수 밖에 없다. 둘다 1971년생. 실제로 최향남은 2012년에 최고령 세이브 기록을 경신하였고, 2013년에 최고령 승리투수 2위를 기록하였다. 다만 2015년 기준으로 최향남은 다이빙 덕스[58]를 거쳐 현재는 문경에 위치한 대안학교인 글로벌선진학교 야구부 감독이 되었고, 류택현은 은퇴를 한 상황이라서 기록 갱신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최영필이 KIA 타이거즈 소속으로 42살의 나이로 2점대 후반을 찍으면서 기록을 갈아치울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었다. 최영필은 2016년에 이어 2017년에도 현역을 이어가면서, 정말 일부 기록을 갈아 치우게 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2017년 6월 9일 은퇴를 선언하며 다음 후보는 임창용으로 넘어갔다. 임창용은 2018년 시즌까지 뛰었으나 시즌 종료후 방출되며, 사실상 은퇴하게 되었다.
2017 시즌 종료 후, 같은 팀의 투수 박정진이 FA 계약으로 2년 더 현역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2018년은 사실상 거의 쉬며 출전하지 못했고 2019년에 은퇴했다.
8.2.2. KBO 최초로 달성한 기록들
9. 기타
- 별명은 송골매, 송회장님(초대 선수협 회장을 역임), 송덕스(송진우 + 메이저 리그 노장 투수 그레그 매덕스의 합성). 부정투구 고백 사건 이후 송셀린.
- 아들이 두명 있는데 둘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야구 선수로 활동 중이다. 둘다 좌완투수. 유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한 번은 아들을 보러갔을 때 아들이 야구부에서 포수를 보고 있었다고 한다. 보통 도루저지에서의 불리함 때문에 좌투에게는 포수를 시키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아들이 포수를 보고 있어서 감독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홈에서 2루까지 송구가 가능한 사람이 아들밖에 없어서 시켰다고 하는 이야기. 역시 피는 못속이나보다. 장남 송우석은 2012년 드래프트에 참가하였으나 지명받지 못하였으며, 이후 한화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였다. 차남 송우현은 2015년 드래프트에서 6라운드에 넥센 히어로즈에 지명되었다.
- 비단 이런 성적으로뿐만 아니라, 선수권익보호를 위한 선수협 창설의 주역 중 한명으로 참여하여 현재의 선수협을 만들어 내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후 긴급 구조 SOS의 PD는 송진우 코치가 선수로서 은퇴하기 전에 예전 선수협과 관련된 만남에 대한 글을 올리며 경의를 표했다. 회장님의 짜증
협상 테이블에서 입 다물고 앉아 있기만 해도 고액의 연봉이 보장될 그들이 왜 이렇게까지 나서게 되었을까. 저는 뭔가 엄숙한 발언 내지는 숨겨진 속사정을 기대하면서 선수협 회장님 송진우 선수에게 그 이유를 물었는데 송진우 회장님은 갑자기 짜증을 버럭 냈습니다."고액 연봉자들이 왜 이러느냐구요? 그 질문 백번도 더 듣겠네. 아니 당연히 우리가 총대를 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게 그렇게 이해 안돼요? 연봉 천만원 받고도 감사합니다 하는 애들이 이런 거 할 수 있겠어요? 우리한테도 지금 이렇게 대하는데 걔들이 나서 봐요. 어떻게 되나."
- 깨끗하고 점잖은 이미지의 소유자이지만 2006년 한화 vs 현대 전에서 안영명이 빈볼성 투구로 김동수 선수에게 싸대기를 맞아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자 불같이 뛰쳐 나와 이단 옆차기를 작렬해 벌금 100만원의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이는 원래 난투극이 벌어져도 신발에 박힌 스파이크 때문에 선수가 다칠 확률이 높아져서 발차기는 금기시하고 있기 때문.[81][82][83] 덕분에 송진우는 이때 사건 딱 하나로 역대 프로야구 난투극 Best 장면 때마다 항상 등장 한다. 여담이지만 이때 이단옆차기를 맞은 것은 김동수도 아니고 벤치 클리어링 말리러 나간 송지만. 게다가 송지만은 한화에 있다 현대로 트레이드되어 송회장과도 한솥밥을 먹은 사이었기 때문에 조금 억울했다고 한다.
"다른데였으면 참았을 것이다. 그런데 주먹이 얼굴로 갔다. 어떤 언론에서는 나보고 품위 없다고 하던데, 후배가 얼굴에 주먹으로 맞고 있는데 가만 있는 것이 선배로서의 품위인지는 잘 모르겠다."
- 스타리그를 즐겨봤던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게임을 즐기는 편인데, 90년대 중후반~2000년까지 대전 둔산동 게임프라자 매장[99]을 가끔식 방문하여 패키지 게임을 구입하는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있었다. 둔산동 게임프라자 매장의 사장에게 선물로 사인볼을 두개 줬다고 한다.
- 2010년 10월 30일(천하무적 야구단 2010년 11월 20일 방영분) 뇌경색으로 투병 중인 KIA 타이거즈의 김동재 코치의 쾌유를 위한 일구회 올스타와 천하무적 야구단의 자선 경기가 열렸는데, 일구회의 선수로 참가했다. 포지션은 당연히 투수였으며, 마지막 이닝인 7회초 7:7 동점 무사 3루의 위기상황에서 구원 등판하였다. 천무단은 은퇴한지 1년 밖에 안된 현역이나 다를 바 없는 송진우 코치를 투입하는 것은 반칙이나 다름없다고 항의를 하였지만, 항의는 기각되고 그대로 진행되었다. 역시나 3타자를 땅볼, 삼진, 삼진으로 간단히 막으며 건재함을 과시하였다. 경기는 7회말 무사 만루 찬스에서 한대화 감독이 끝내기 안타를 치면서 8:7 로 일구회 올스타가 승리하였다.
- 2014년 4월 10일, 마구마구2014 1주년 기념방송 예고대로 02 송진우(가명:박흥진)의 엘리트 카드가 업데이트되었다.[101]
- 컴퓨터 마구마구에서도 엘리트가 추가됐는데 연도는19승에 17세이브를 거두면서 다승, 구원왕을 동시석권한 92년도로 추가됐다.
-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자로 알려져 있으며 대전 으능정이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의 유세에 참여하기도 했다.
- 현역 시절 아이싱을 받지 않았던 선수였다.
- 용병들이 보는 송진우의 첫 모습은 매우 유쾌한 코치 정도로 생각한다고 한다. 그러나 송진우의 기록을 알려주면 놀라면서 반응이 바뀐다고.
- 논란이 있긴 하다. #
10. 관련 문서
[1]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코치로 이 번호를 사용했다[2]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코치로 이 번호를 사용했다[3]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코치로 이 번호를 사용했다[4]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코치로 이 번호를 사용했다[5] 유일한 다승기록 가입자[6] 유일한 다승기록 가입자[7]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코치로 이 번호를 사용했다[8]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코치로 이 번호를 사용했다[9]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코치로 이 번호를 사용했다[10]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코치로 이 번호를 사용했다[11] 유일한 다승기록 가입자[12] 유일한 다승기록 가입자[13] 호적상으로는 1966년생이나 실제로는 1965년생[14] 호적상으로는 1966년생이나 실제로는 1965년생[15] 현재의 충청북도 증평군. 당시 행정구역상 괴산군 증평읍이었고, 증평읍은 2003년에 괴산군으로부터 분리되어 증평군으로 승격하였다.[16] 현재의 충청북도 증평군. 당시 행정구역상 괴산군 증평읍이었고, 증평읍은 2003년에 괴산군으로부터 분리되어 증평군으로 승격하였다.[17] 서울 올림픽 출전으로 프로 진출이 늦춰져 1년을 실업팀에서 뛰었다.[18] 서울 올림픽 출전으로 프로 진출이 늦춰져 1년을 실업팀에서 뛰었다.[19] 2010년은 요미우리 자이언츠 코치연수기간.[20] 기존의 2군 투수코치였던 정민태와 6월 24일 자리를 맞바꿨다.[21] 6월 8일부터.[22] 2010년은 요미우리 자이언츠 코치연수기간.[23] 기존의 2군 투수코치였던 정민태와 6월 24일 자리를 맞바꿨다.[24] 6월 8일부터.[25]
[26] 파일:99플옵4차전.gif[27] 빙그레 입단 당시에는 1번을 달았다. 2년차이던 1990년부터 21번을 달고 은퇴할 때까지 바꾸지 않았고, 그 후로는 영구결번되었으나 2018년 본인이 코치로 돌아와 다시 해당 번호를 달았다.[28] 최고구속이 147 km/h라는 말이 있다.[29] 거기에 김현욱도 같이 끼어 들었다...[30] 김혁민이 1군에 올라와 선발테스트를 받는다는 소식을 듣자 팬들은 몇 년째 테스트만 하냐며 미덥지 않은 반응이었다. 하지만 지옥에서 돌아온 (최훈 카툰에서도 언급한) 김혁민을 보며 팬들은 감격... 그 이후로도 송진우가 올린 2군 투수는 1군에 올라오자마자 활약하는 기적 같은 모습을 보였고, 그들은 인터뷰에서 한결같이 송진우 코치에게 감사를 표현했다.[31] 심지어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 김응용, 김성한 다음으로 엄청 까이고 있으며, 그의 별명은 돌진우이다.[32] 전임 감독을 따라 당시 2년 연속 7점대의 방어율을 찍은 송은범이 한화로 오자 당시 한화로 유입된 팬들이 전임 감독이 사용설명서를 갖고 있으니 아무 걱정 말라며 기존 팬들을 훈계한 것에서 유래한 듯.[33] 그 말을 한 선수는 허유강이었다.[34] 이미 6월 6일 정민태 1군 투수코치가 육성군으로 강등된 바 있다.[35] 9/10 기준 102.2이닝, ERA 4.12, WAR 2.10을 기록하며 커리어하이 시즌을 달리고 있다.[36] 9/10 기준 31.2이닝, ERA 1.42, WAR 1.12[37] 9/10 기준 21이닝, ERA 2.81, WAR 1.08[38] 실제로 누가 한 말이긴 하지만, 이건 야구가 아닌 축구 단기대회에서나 적용되는 말이다. 당연히 축구도 장기 리그전에서는 수비만으로 이기긴 힘들다.[39] 표현 방법이 서툴렀을지언정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말이다.공격으로 시즌 중 1승,1승을 거둘 수는 있으나 결국은 시즌 우승,포스트 시즌의 우승은 수비가 받침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강팀과 약팀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인데 이 차이가 대부분 수비에서 나온다[40] 실제로 누가 한 말이긴 하지만, 이건 야구가 아닌 축구 단기대회에서나 적용되는 말이다. 당연히 축구도 장기 리그전에서는 수비만으로 이기긴 힘들다.[41] 표현 방법이 서툴렀을지언정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말이다.공격으로 시즌 중 1승,1승을 거둘 수는 있으나 결국은 시즌 우승,포스트 시즌의 우승은 수비가 받침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강팀과 약팀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인데 이 차이가 대부분 수비에서 나온다[42] 여담으로 이 날 경기는 장원준이 고작 몇 시간 차이로 송진우 - 장원삼 - 김광현에 이어 4번째로 좌완 100승 투수가 된 날이었다. 두산이 만약 선데이 나잇 베이스볼이 아니였으면 3번째가 장원준, 4번째가 김광현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야구에 만약은 없다.[43] 흔히 아는 베이스 커버가 아닌, 말 그대로 베이스 끝부분에 발을 들이댔다.[44] 참고로 김기태는 삼성에서 뛰던 2000년 FA가 되어 4년 총 18억에 삼성과 재계약한 바 있다.[45] 조성환은 99년 한국시리즈 당시 엔트리에 없었다.[46] 앞의 두 경기까진 장성호와 안치용이 해설이었다.[47] 이 날은 8회말 2아웃 4:4 상황에 대타로 나온 김주형이 역전 3점 홈런을 날렸다.[48] 저 1승도 겨우 9월 15일에서야 깨진 것이다. 그러니까 그 전까지 14연패를 했다는 뜻.[49] 파일:external/ecx.images-amazon.com/91VTw-aorgL._SY355_.jpg 미즈노 스트롱 오일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 고가의 스쿠알렌 오일 등이 있다.[50] 최다패 2위인 김원형도 선수 생활을 근 20년 가까이 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당시 최약체인 쌍방울 레이더스와 그 쌍방울 선수들을 인수한 SK 와이번스의 초창기를 지낸 탓도 크다.[51] 최다패 2위인 김원형도 선수 생활을 근 20년 가까이 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당시 최약체인 쌍방울 레이더스와 그 쌍방울 선수들을 인수한 SK 와이번스의 초창기를 지낸 탓도 크다.[52] 다만, 미국 MLB에는 송진우 선수의 기록을 무색케할 괴물들이 넘쳐난다. 참고로 MLB에는 300승 투수만 23명이 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도 과거에는 투수 굴려먹기가 심했다는 것과 양 리그간에 경기수 자체가 차이가 난다라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53] 메이저리그 자체가 1시즌 160게임 이상을 치르고, 1980년대엔 거의 사라졌지만 1970년대만 해도 1시즌에 40번 선발등판한 기록이 꽤 나오고, 19세기에는 70번 선발등판에 시즌 50승을 기록한 것도 있다. 초창기, 그러니까 시카고 컵스가 우승하던 시절, 더 쉽게 말해 한반도에 고종, 흥선대원군, 순종 등의 왕들이 살던 시절로 가 보면 장명부의 막장 기록을 능가하는 1시즌 500이닝 초과 기록이 흔하게 나오기까지 한다(총 70여회). 이 기록들은 모두 공식기록으로 인정받고 있다.[54] 그 중에서도 최고 중 최고로 인정되는 기록은 1884년 프로비던스 그레이스팀의 올드 호스라 불리운 신급 투수 찰리 레드번의 기록인 678이닝 73경기 선발출전(구원 2경기까지 총 75경기 출전) 전경기 완투(연장전 경기들도 다 끝까지 완투), 59승 12패 2ND(당시는 무승부 있었음) 1세이브 11완봉승, 441탈삼진, 방어율 1.38(프로야구 역사상 2번째 트리플 크라운). 야구계에서는 앞으로 어느 리그든 이 기록 중 선발출장수, 이닝, 탈삼진, 방어율, 승수 등 단 두개라도 한선수가 동시에 1시즌 기록으로 달성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55] 투구폼 가리지 않고 리그 최초의 100승은 김시진이다. 김시진은 프로 데뷔 5년만에 통산 100승을 넘기면서 역대 최단기 기록도 가지고 있다.[56] 한국에서 평생을 뛰더라도, 송진우처럼 중무리로 뛸 가능성도 없기 때문이며, 코칭 스태프들이 이닝 소화도 제한하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57] 과거에는 고의가 아니라고 해도 출생등록을 잘못하는 경우가 흔히 있었고, 또 유아가 사망률이 완전히 낮아진게 아니라서 출산 후 1년 정도 지켜 본 뒤 호적에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58] 오스트리아의 팀이라고 한다.[59] 투수 타자 모두 포함해서 최고령 기록[60] 참고로 2009년 9월 23일에 은퇴경기를 가지고, 1타자를 상대하였으나, 이는 기록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61] 그리고 지금까지 KBO에선 한국인 노히트노런이 없다.[62] 투수 타자 모두 포함해서 최고령 기록[63] 참고로 2009년 9월 23일에 은퇴경기를 가지고, 1타자를 상대하였으나, 이는 기록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64] 투수 타자 모두 포함해서 최고령 기록[65] 참고로 2009년 9월 23일에 은퇴경기를 가지고, 1타자를 상대하였으나, 이는 기록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66] 그리고 지금까지 KBO에선 한국인 노히트노런이 없다.[67] 그리고 지금까지 KBO에선 한국인 노히트노런이 없다.[68] 2위는 161승, 3위는 152승.[69] 메이저리그에선 존 스몰츠, 일본프로야구에서는 에나츠 유타카만이 달성한 대기록이다.[70] 송진우 이외의 선수들 중에선 구대성(1996년, 한화), 신윤호(2001년, LG)만이 달성한 기록. 김영덕 감독의 밀어주기 논란이 있긴 하지만....[71] 이 기록은 구원승과 세이브를 합쳐서 세이브포인트(SP)로 구원왕 타이틀을 결정했던 2003년도까지만 적용된다. 세이브만으로 최다세이브 수상자를 결정하는 2004년부터는 다승-구원 동시 석권이 사실상 불가능하다.[72] 상대가 당해 투수 골든글러브를 탄 신윤호인데다가 이 해 한화는 0.5경기 차이로 5위 해태-KIA를 제끼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해서 더욱 의미 있는 기록이다. 다만, 덕아웃의 사인을 훔쳐서 친 거라는 의혹이 있다.[73] 2위는 161승, 3위는 152승.[74] 메이저리그에선 존 스몰츠, 일본프로야구에서는 에나츠 유타카만이 달성한 대기록이다.[75] 송진우 이외의 선수들 중에선 구대성(1996년, 한화), 신윤호(2001년, LG)만이 달성한 기록. 김영덕 감독의 밀어주기 논란이 있긴 하지만....[76] 이 기록은 구원승과 세이브를 합쳐서 세이브포인트(SP)로 구원왕 타이틀을 결정했던 2003년도까지만 적용된다. 세이브만으로 최다세이브 수상자를 결정하는 2004년부터는 다승-구원 동시 석권이 사실상 불가능하다.[77] 상대가 당해 투수 골든글러브를 탄 신윤호인데다가 이 해 한화는 0.5경기 차이로 5위 해태-KIA를 제끼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해서 더욱 의미 있는 기록이다. 다만, 덕아웃의 사인을 훔쳐서 친 거라는 의혹이 있다.[78] 이때 금기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발차기를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한국교원대학교에서 강연을 할 때 밝힌 바가 있는데, 본인이 사람 얼굴에 손찌검을 하는 것을 매우 모욕적인 행동이며, 해서는 안 될 행동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너무 흥분을 해서였다고. 당시 강연에서 이 에피소드를 예로 들며 나중에 선생님이 되셔서 절대로 아이들에게 손찌검은 하지 말라는 당부를 하였다. 본인은 차라리 빠따로 엉덩이 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79] 비슷한 예로 NPB의 전설적인 400승 투수인 가네다 마사이치는 롯데 오리온즈 감독을 맡던 시절 긴테츠 버팔로즈의 용병 짐 트레버가 사구를 맞고 벤치 클리어링을 일으키고 덕아웃으로 돌아가다가 화를 못 참고 또 다시 그라운드로 뛰쳐나오다 넘어지자 냅다 발차기를 날린 적이 있다.[80] 참고로 박찬호 또한 발차기 때문에 중징계와 역대 MLB 난투극 Best 10에 올랐다. 다만 송회장님의 경우, 당일 선발투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스파이크 달린 야구화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81] 이때 금기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발차기를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한국교원대학교에서 강연을 할 때 밝힌 바가 있는데, 본인이 사람 얼굴에 손찌검을 하는 것을 매우 모욕적인 행동이며, 해서는 안 될 행동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너무 흥분을 해서였다고. 당시 강연에서 이 에피소드를 예로 들며 나중에 선생님이 되셔서 절대로 아이들에게 손찌검은 하지 말라는 당부를 하였다. 본인은 차라리 빠따로 엉덩이 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82] 비슷한 예로 NPB의 전설적인 400승 투수인 가네다 마사이치는 롯데 오리온즈 감독을 맡던 시절 긴테츠 버팔로즈의 용병 짐 트레버가 사구를 맞고 벤치 클리어링을 일으키고 덕아웃으로 돌아가다가 화를 못 참고 또 다시 그라운드로 뛰쳐나오다 넘어지자 냅다 발차기를 날린 적이 있다.[83] 참고로 박찬호 또한 발차기 때문에 중징계와 역대 MLB 난투극 Best 10에 올랐다. 다만 송회장님의 경우, 당일 선발투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스파이크 달린 야구화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84] 간암 투병 중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생전에 간 기능이 떨어져서 보름 가량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85] 참고로 송진우가 선수 시절 부인과 결혼한 게 1992년 11월이었다고 한다. 부인의 실명 및 자세한 인적사항은 형법 제 307조 및 나무위키:기본방침에 의거하여 작성금지.[86] 간암 투병 중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생전에 간 기능이 떨어져서 보름 가량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87] 참고로 송진우가 선수 시절 부인과 결혼한 게 1992년 11월이었다고 한다. 부인의 실명 및 자세한 인적사항은 형법 제 307조 및 나무위키:기본방침에 의거하여 작성금지.[88] 한식집 이름은 온게임넷 스타 리그 공식 맵인 개마고원에서 따왔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89] 한식집 운영 당시 명의는 송진우의 부인 이름으로 명의를 두었다. 송진우 은퇴 당시 박동희와의 인터뷰에서 은퇴 직전에 고깃집을 그만두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무래도 고기집 경영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인 듯 하다. 가 본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가격이 상당히 비쌌다고 한다. 다만 가격은 그 식당의 위치가 한 몫 한 듯.[90] 물론 입지가 그 식당의 가격의 전부를 결정하지는 않지만.[91] 한식집 이름은 온게임넷 스타 리그 공식 맵인 개마고원에서 따왔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92] 한식집 운영 당시 명의는 송진우의 부인 이름으로 명의를 두었다. 송진우 은퇴 당시 박동희와의 인터뷰에서 은퇴 직전에 고깃집을 그만두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무래도 고기집 경영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인 듯 하다. 가 본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가격이 상당히 비쌌다고 한다. 다만 가격은 그 식당의 위치가 한 몫 한 듯.[93] 물론 입지가 그 식당의 가격의 전부를 결정하지는 않지만.[94] 정작 당사자인 김윤환은 맥심과의 인터뷰에서 본인은 야구에 관심이 없다고 했으며, 심지어 송진우를 보고 농구선수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95] 채널 뷰 드림메이커 별을 쏘다 2 방송 중.[96] 정작 당사자인 김윤환은 맥심과의 인터뷰에서 본인은 야구에 관심이 없다고 했으며, 심지어 송진우를 보고 농구선수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97] 채널 뷰 드림메이커 별을 쏘다 2 방송 중.[98] 2001년에 폐업해서 지금은 없어진지 오래이다.[99] 2001년에 폐업해서 지금은 없어진지 오래이다.[100] 다른 신규 엘리트는 95 전준호(가명:박현석), 06 권오준, 89 박정현(가명:김석연).[101] 다른 신규 엘리트는 95 전준호(가명:박현석), 06 권오준, 89 박정현(가명:김석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