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개요
2. 1차 지명 및 고졸우선 지명
1차 지명은 1995년 10월 25일까지 각 팀에서 팀 별 연고지 내 고교 출신 선수 중 1명을 뽑았다. 고졸우선 지명은 각 팀에서 팀 별 연고지 내 고졸선수 중 3명을 뽑았다.
※표시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볼드체는 통산 WAR이 스탯티즈 기준 2 이상 되는 선수.
※표시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볼드체는 통산 WAR이 스탯티즈 기준 2 이상 되는 선수.
팀
| 1차 지명자
| 고졸우선 지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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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주(경남상고-한양대, 투수)
| ||
전병호(대구상고-영남대, 투수)
| ||
석수철(군산상고-성균관대, 내야수)
| 김형주(군산상고, 투수)
임정현(군산상고, 투수)※ 조병찬(전주고, 외야수) | |
홍원기(공주고-고려대, 내야수)
| ||
김종국(광주일고-고려대, 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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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호(인천고-단국대,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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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길(배재고-연세대, 투수)
| ||
최기문(충암고-원광대, 포수)
|
3. 2차 지명
3.1. 지명방식
지명방식은 매 라운드마다 1995 시즌 성적 역순대로 지명하는 방식이다. 라운드에 제한은 없지만, 지명을 원치 않는 팀의 경우 해당 라운드에서 패스할 수 있다. 꼴찌팀은 1라운드에서 2명을 지명한다.
3.2. 지명 결과
※표시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표시는 고졸로 지명받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거나 대학 진학 후 중도하차한 선수.
볼드체는 통산 WAR이 스탯티즈 기준 2 이상 되는 선수.
@표시는 고졸로 지명받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거나 대학 진학 후 중도하차한 선수.
볼드체는 통산 WAR이 스탯티즈 기준 2 이상 되는 선수.
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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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최정환
(동래고-경성대, 투수) | 허유신
(장충고-경희대, 내야수) | 오중석
(공주고-한양대, 외야수) | 박태순
(춘천고-경희대, 투수) | 김영복
(한서고-원광대, 투수) | 강영수
(마산고-연세대, 외야수) | ||
2
| 황성기
(휘문고, 포수) | 정학수
(북일고, 내야수) | ||||||
3
| 김현민
(인천고-홍익대, 외야수) | 조홍준
(광주상고, 내야수) | 박연수
(신일고-원광대, 외야수) | 박찬협
(중앙고, 투수) | ||||
4
| 엄종수
(경기고-홍익대, 포수) | 정석
(성남고-동국대, 투수) ※ | 이동진
(배재고, 내야수) | 배정훈
(부산고-동아대, 포수) | 임봉수
(동산고-경희대, 투수) ※ | |||
5
| 김선섭
(광주일고-고려대, 내야수) | 한명식
(경동고, 투수) ※@ | 박재형
(배재고, 투수) | 박효순
(부천고, 투수) | 이정주
(대전고, 외야수) ※ | |||
6
| 정원배
(진흥고-인하대, 포수) | 김형남
(경남상고-단국대, 포수) | 김대헌
(대전고-동아대, 외야수) | 최철영
(경북고, 투수) | 박상태
(휘문고, 외야수) ※ | 박상언
(중앙고, 외야수) ※ | ||
7
| 임종수
(경남상고-건국대, 외야수) | 김동현
(신일고, 내야수) | 정영환
(마산고-홍익대, 투수) | 하춘동
(경북고, 외야수) | 김기진
(대구고, 투수) | 차종현
(원주고, 투수) | ||
8
| 이상혁
(고려대-상무, 내야수) | 장재혁
(대전고, 투수) | 임학수
(공주고, 내야수) | 윤형진
(인천고, 투수) | 이승현
(서울고, 내야수) ※ | 김성천
(휘문고, 내야수) ※ | 김규식
(부산공고, 내야수) | |
9
| 정수찬
(경남고-동아대, 투수) | 김태형
(경기고-홍익대, 투수) | 이호균
(배명고, 내야수) | 황선우
(덕수상고, 투수) ※@ | 표성대
(부산고, 포수) | |||
10
| 박봉수
(휘문고, 외야수) ※ | 문진기
(덕수상고, 내야수) ※ | 오진호
(동산고, 투수) ※@ | 이우종
(신일고, 내야수) ※@ | 김재학
(덕수상고, 외야수) | 임성택
(신일고, 외야수) | 이기승
(경남고, 내야수) | |
11
| 오재덕
(부산공고, 투수) | 임노병
(배명고, 내야수) | 송은석
(성남고, 포수) ※@ | 홍재호
(대구상고-계명대, 내야수) | ||||
12
| 박윤성
(춘천고, 투수) | 서도원
(경북고, 투수) | 남기헌
(부산고, 외야수) | 지승준
(부천고, 외야수) | 우석봉
(유신고, 투수) | 편정희
(북일고, 투수) ※@ | 김용혁
(동래고, 내야수) ※ | |
13
| 최용석
(서울고, 투수) ※ | 이재준
(광주일고, 외야수) ※ | 이권철
(한서고, 투수) | 안치성
(부산고, 외야수) ※@ | 유종열
(진흥고, 투수) ※ | 박종욱
(중앙고, 내야수) ※ | 장건희
(성남고-건국대-포스틸, 외야수) | |
14
| 박경호
(성남고-인하대, 내야수) | 조준혁
(경남상고-건국대, 내야수) ※ | 이인식
(동대문상고, 내야수) ※ | 이동욱
(진흥고, 외야수) | 이순국
(배명고, 투수) | 심용운
(대전고, 내야수) ※@ | 윤준호
(서울고-상무, 내야수) | |
15
| 윤인섭
(인천고, 외야수) | 이덕영
(세광고, 포수) ※@ | 강상진
(광주일고, 외야수) ※ | 이주용
(공주고-중앙대, 투수) ※ | 이보현
(대구상고, 내야수) ※ | 패스
| ||
16
| 최정중
(군산상고, 외야수) ※ | 김해녕
(세광고, 내야수) | 박성진
(부산고, 투수) | 김우신
(장충고, 외야수) ※ | 박윤보
(서울고, 외야수) ※ | 박창원
(광주상고, 외야수) | 패스
| |
17
| 박원철
(경남상고-건국대, 외야수) ※ | 최호근
(경주고, 포수) | 김신완
(경남상고, 외야수) ※ | 최희탁
(경동고, 투수) | 박현철
(광주일고, 외야수) ※ | 염규훈
(광주상고, 내야수) ※@ | 최완창
(서울고, 내야수) ※@ | 패스
|
18
| 김성주
(군산상고, 포수) ※@ | 신승국
(춘천고, 투수) | 유진호
(중앙고-고려대, 투수) ※ | 김정대
(동대문상고-계명대, 내야수) | 이정준
(한서고, 내야수) | 박종호
(마산고, 포수) ※ | 패스
| |
19
| 정남수
(전주고, 내야수) ※@ | 강윤철
(춘천고, 내야수) | 이정선
(한서고, 투수) | 김종대
(성균관대, 포수) | 백대산
(원주고-인천전문대, 투수) | 정정필
(장충고, 투수) ※ | 김세종
(공주고, 외야수) | 패스
|
20
| 신주일
(진흥고, 내야수) | 윤상규
(경주고, 내야수) | 주영대
(경남고, 외야수) ※ | 김동수
(경주고, 투수) ※@ | 오주헌
(진흥고, 투수) ※ | 박정진
(동대문상고-성균관대, 투수) ※ | 오승훈
(대구상고, 외야수) ※ | 패스
|
21
| 조성곤
(청주고-계명대, 투수) | 조경수
(인천고, 내야수) | 하수성
(경남고, 외야수) ※@ | 최형근
(동대문상고, 투수) | 이현석
(중앙고, 투수) ※@ | 정진용
(한서고, 투수) ※ | 선성균
(진흥고, 투수) | 패스
|
22
| 이승준
(경동고, 내야수) | 정상국
(부천고, 내야수) | 천용호
(북일고-성균관대, 내야수) | 전석윤
(동대문상고, 외야수) ※ | 조상현
(부산상고, 투수) | 패스
| 패스
| 패스
|
23
| 정경택
(부산고-경성대, 포수) ※ | 박흥신
(덕수상고, 외야수) ※ | 양세규
(대전고, 외야수) | 구민호
(경남상고, 내야수) | 김종남
(광주일고-영남대, 포수) | 패스
| 패스
| 패스
|
24
| 김태균
(동래고-연세대, 내야수) ※ | 김태광
(경동고, 외야수) | 패스
| 장은수
(경북고, 내야수) ※ | 패스
| 패스
| 패스
| 패스
|
25
| 양선직
(선린상고-경남대, 외야수) ※ | 최효선
(춘천고, 포수) | 패스
| 서경상
(동대문상고, 포수) ※ | 패스
| 패스
| 패스
| 패스
|
26
| 이봉우
(포철공고, 내야수) | 패스
| 패스
| 패스
| 패스
| 패스
| 패스
| 패스
|
27
| 조일현
(전주고, 포수) | 패스
| 패스
| 패스
| 패스
| 패스
| 패스
| 패스
|
4. 드래프트 평가
- 2차 지명에서 609명 중 무려 180명이 지명되어 역대 신인 지명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지명되었다. 1997 신인 지명부터 12라운드로 제한이 되는 탓도 있지만, 현대 피닉스같은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한 실업 팀에서 선수를 데려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밥그릇 챙기기술수로 볼 수도 있다.[7] 그러나 현대 피닉스의 창단 1년 만에 현대그룹이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면서 현대 피닉스에 대한 투자가 자연스레 줄었고, 현대 피닉스처럼 거대 모기업을 둔 실업 팀도 생기지 않아, 프로 구단들의 우려는 괜한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지명된 180명 중 1996년에 바로 입단한 선수는 85명이었고 대학 진학 등으로 입단을 미뤘다가 이후에 지명받은 팀에 입단한 선수들은 35명으로, 예년에 비하면 지명 대비 입단한 선수 비율이 떨어지는 편.
- 롯데 자이언츠 : 고졸우선 지명을 받은 이정훈만 가늘고 길게 1군에서 공을 던졌을 뿐[9], 나머지는 망했다. 차명주는 롯데에서 포텐을 터뜨리지 못하고 최기문을 상대로 1998 시즌 후 트레이드된 뒤 두산-한화에서 노예처럼 굴려지다가 만신창이가 됐다. 2차 3라운드에서 경대 외야수 김대익을 지명한 뒤, 김대익의 포텐이 터질 거라 믿으며 전준호를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시키고 김대익의 성장을 지켜봤으나, 결과는 망했어요. 다만 어디까지나 전준호에 비하면이지, 김대익도 주전 1번 타자로 2004년 삼성으로 가기 전까지 그럭저럭 평균 정도 해 주었다.
- 쌍방울 레이더스 : 1차 지명을 포함하여 32명을 쓸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는 채종범 하나뿐이었다. 그것도 SK 와이번스로 지명권이 넘어가서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입단한 후였다. 투수 신영균은 1996 시즌을 마치고 한대화를 상대로 LG 트윈스에 트레이드된 후 묻혔다. 박주언은 SK에서 2002년까지 선수로 있었고, 현재는 SK 와이번스의 전력분석관. 2차 5라운더였던 김선섭은 광주일고 코치와 감독을 역임했다. 2차 4라운더이자 현재 삼성 라이온즈의 수비코치인 박재현은 쌍방울 대신 현대 피닉스에 입단했지만, 결국 프로 무대를 밟지 못했다. 최정환은 처음 2년 간은 중간계투에서 나름 쏠쏠히 활약하지만, 그 뒤 급속도로 쇠퇴한 모습을 보인다. 1차 지명 선수인 내야수 석수철은 첫 시즌에 100경기 넘게 출장하며 가능성을 보였지만 이듬해 고관절 수술을 무려 2차례나 받는 등 갑자기 부상이 악화되어 불과 2년 만에 안타깝게 은퇴했으며, 현재 모교인 군산상고의 감독을 맡고 있다.
- 삼성 라이온즈 : 흑마구의 달인, 국민노예, 강기웅 이후 가장 20-20에 근접했던 2루수, 백업 2루수를 얻었다. 그러나 초반에는 주전 2루수가 된 정경배를 빼면 다들 활약이 미미했던 편. 그리고 박정환은 동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입단했다. 정석은 상무에서 복무한 후 미국 무대로 진출하지만 부상으로 메이저리그에 오르지도 못하고 한국에 복귀하지도 못한 채 은퇴했다. 그리고 1996 드래프트의 숨겨진 화제인 인물은 바로 10여년 후, KBO 리그 심판으로 1판정 8타점 등 각종 오심을 저지르며 팬들의 혈압을 높여 준 분인 박근영이 되겠다.
- 해태 타이거즈 : 선수 기량만 본다면 크게 성공한 해였다. 일단 1차 지명으로 2루를 책임지던 한 남자를 얻었고, 고졸우선 지명에서는 이대진을 이을 차기 에이스감, 국가대표 출신의 선발 투수와 그와 영혼의 배터리를 이룬 해태 말기-KIA의
철밥통주전 포수를 얻었다. 그러나 김상진은 젊은 나이에 위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서재응은 인하대학교에 입학한 후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병역특례를 받자 미국행을 선택하여 뉴욕 메츠에 입단했으며, 현대자동차그룹에 팀이 인수되고도 7년이나 지난 2008년에야 대한민국 복귀를 선언하고 해당 지명권으로 KIA에 입단했다. 2차 지명에서도 스나이퍼 좌타자와 유격수 최초 100타점을 기록한유리몸대리님을 건지는 등, 인재들을 많이 데려왔다.
- 현대 유니콘스 : 고졸우선 지명에서 픽한 박진만이 역대급 유격수가 되는 최고의 수확을 올렸다. 그 외에도 1차 지명자인 최원호는 1998년 포텐이 터지긴 했으나 다음 해 부진하고 2000년 심재학을 상대로 LG 트윈스로 트레이드된 후, 불펜 요원으로 어느 정도 활약을 펼쳤다. 2차 지명은 상위픽 선수들은 기대만큼 못했으나[13] 중위 픽의 전근표와 강병식이 대타로 그럭저럭 해줬고[14] 박준수는 2006년, 2010년 좋은 마무리와 중간계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15] 그리고 넥센 히어로즈의 감독이 되는 장정석도 이 해 입단한 선수다.
5. 이모저모
- 쌍방울에 10라운드 지명된 박봉수는 원래 오사카 태생의 재일교포 3세다. 일본 이름은 아라이 타카히데(新井峰秀).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8살 때 한국으로 왔고, 고교 시절 청소년 대표팀에도 뽑히기도 했으나 일본 프로팀에 입단하려는 꿈을 갖고 있어서 고려대학교로 진학했다가 중퇴해 1998년 주니치 드래곤즈에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이로써 박봉수는 역대 최초로 한일 양국의 신인드래프트에 지명된 선수가 되었다.[25] 그러나 주니치에서는 1군 기록 없이 방출당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삼성에서 뛰었으나, 1시즌 8경기 6타수 무안타를 기록하고 방출되어 은퇴했다.
[1] 주의해야 할 것은 고교, 대학 졸업 예정자들은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다.[2] 2013년 경 프로농구 DB의 금지어 감독과 승부조작을 저질렀다.[3] 2013년 경 프로농구 DB의 금지어 감독과 승부조작을 저질렀다.[4] SK에 지명권 승계. 경희대 96학번으로 진학하여 졸업 후 2000년에 입단.[5] SK에 지명권 승계. 경희대 96학번으로 진학하여 졸업 후 2000년에 입단.[6] 그도 그럴 만한 게, 1995 신인 지명 때는 1차 지명을 포함해 지명된 59명 중 22%인 13명이 현대 피닉스에 입단했다. 게다가 삼성 라이온즈와 김재걸을 두고 법정 공방까지 벌이기도 했다.[7] 그도 그럴 만한 게, 1995 신인 지명 때는 1차 지명을 포함해 지명된 59명 중 22%인 13명이 현대 피닉스에 입단했다. 게다가 삼성 라이온즈와 김재걸을 두고 법정 공방까지 벌이기도 했다.[8] 그마저도 2010년 말 넥센의 고원준을 상대로 트레이드되며 롯데를 떠났다.[9] 그마저도 2010년 말 넥센의 고원준을 상대로 트레이드되며 롯데를 떠났다.[10] 특히 설종진. 다만 설종진의 경우는 고교 시절 보였던 야구천재의 모습을 기억하고 다소 로또성으로 택한 경우였다. 설종진은 중앙대학교 진학 후 잔디 소각 작업을 하던 도중 화상을 입었고 이 때문에 화상을 딛고 재기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11] 전근표와 강병식도 안습인 게, 대학을 졸업하고 입단(강병식은 덧붙여서 상무 복무 후 입단)하니 외야에 자리가 없어서 2군에서만 있었고 결국은 기량 저하로 이어졌다.[12] 하지만 다른 팀이었다면 무조건 주전을 먹었을,거란 소리를 들은 전근표는 정작 주전이 될 기회가 왔을 때 이를 걷어찼다. 강병식은 2010년을 제외하면 준주전급 이상도 되지 못하였고 수비가 너무 안 돼서 그럴 능력도 없었다. 박준수도 거꾸로 2006년, 2010년을 제외하면 팀에 도움이 된 시즌이 2007년 말고는 딱히 없다. 굉장히 아이러니한 픽이다.[13] 특히 설종진. 다만 설종진의 경우는 고교 시절 보였던 야구천재의 모습을 기억하고 다소 로또성으로 택한 경우였다. 설종진은 중앙대학교 진학 후 잔디 소각 작업을 하던 도중 화상을 입었고 이 때문에 화상을 딛고 재기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14] 전근표와 강병식도 안습인 게, 대학을 졸업하고 입단(강병식은 덧붙여서 상무 복무 후 입단)하니 외야에 자리가 없어서 2군에서만 있었고 결국은 기량 저하로 이어졌다.[15] 하지만 다른 팀이었다면 무조건 주전을 먹었을,거란 소리를 들은 전근표는 정작 주전이 될 기회가 왔을 때 이를 걷어찼다. 강병식은 2010년을 제외하면 준주전급 이상도 되지 못하였고 수비가 너무 안 돼서 그럴 능력도 없었다. 박준수도 거꾸로 2006년, 2010년을 제외하면 팀에 도움이 된 시즌이 2007년 말고는 딱히 없다. 굉장히 아이러니한 픽이다.[16] 당시 박진만을 줄기차게 따라다니던 현대 스카우트들을 떼어네겠다고 박진만이 입단 조건으로 3억을 불렀는데 현대 스카우트가 곧바로 자동차 트렁크에서 3억을 꺼내 보여줬다는 일화가 존재한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 고려대학교 감독은 박진만을 포함해 김상훈, 김선우 등을 데려간다고 기자회견을 했다.[17] 1990년대 당시에는 대학과 프로 팀 간 선수 스카우트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대학 쪽에서 선수에게 장학금 지원 및 동기들 몇 명을 데리고 갈 수 있다는 입학 조건을 넣은 뒤 코치 및 선배들을 동원해 지방의 모 여관에 감금(?)시켜 놓으면 이를 프로 팀 스카우터가 뒤를 밟은 뒤 해당 선수를 도로 빼돌려 선수의 부모님에게 연락해 높은 계약금을 제시하든지...[18]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체육특기자 수능 점수 상한선인 40점을 넘지 못해 진학이 좌절된 것으로 발표되었다. 1년 앞서 어느 파란 사자 구단에 지명된 누군가와 똑같다그리고 고려대의 똥군기와 구타는 훗날 수감되신 감옥님 양승호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없앴다.[19] 당시 박진만을 줄기차게 따라다니던 현대 스카우트들을 떼어네겠다고 박진만이 입단 조건으로 3억을 불렀는데 현대 스카우트가 곧바로 자동차 트렁크에서 3억을 꺼내 보여줬다는 일화가 존재한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 고려대학교 감독은 박진만을 포함해 김상훈, 김선우 등을 데려간다고 기자회견을 했다.[20] 1990년대 당시에는 대학과 프로 팀 간 선수 스카우트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대학 쪽에서 선수에게 장학금 지원 및 동기들 몇 명을 데리고 갈 수 있다는 입학 조건을 넣은 뒤 코치 및 선배들을 동원해 지방의 모 여관에 감금(?)시켜 놓으면 이를 프로 팀 스카우터가 뒤를 밟은 뒤 해당 선수를 도로 빼돌려 선수의 부모님에게 연락해 높은 계약금을 제시하든지...[21]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체육특기자 수능 점수 상한선인 40점을 넘지 못해 진학이 좌절된 것으로 발표되었다. 1년 앞서 어느 파란 사자 구단에 지명된 누군가와 똑같다그리고 고려대의 똥군기와 구타는 훗날 수감되신 감옥님 양승호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없앴다.[22] 김선우와 서재응의 경우 '프로 구단을 거치지 않고 해외 진출한 선수가 국내로 돌아올 경우 2년간의 유예 기간을 거쳐야 한다' 는 규정이 생긴 1999년 이전에 해외로 건너갔기 때문에 해당 규정이 적용되지 않았고 덩달아 고교 시절에 지명받은 구단의 지명권이 여전히 유효한 상태였기 때문에 국내 복귀 시 별 탈 없이 지명권을 갖고 있던 두산과 KIA에 입단할 수 있었다.[23] 김선우와 서재응의 경우 '프로 구단을 거치지 않고 해외 진출한 선수가 국내로 돌아올 경우 2년간의 유예 기간을 거쳐야 한다' 는 규정이 생긴 1999년 이전에 해외로 건너갔기 때문에 해당 규정이 적용되지 않았고 덩달아 고교 시절에 지명받은 구단의 지명권이 여전히 유효한 상태였기 때문에 국내 복귀 시 별 탈 없이 지명권을 갖고 있던 두산과 KIA에 입단할 수 있었다.[24] 송상훈(야구)도 양국 신인드래프트에 모두 지명됐다.[25] 송상훈(야구)도 양국 신인드래프트에 모두 지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