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환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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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wiz No.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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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환
朴廷煥 | |
생년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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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
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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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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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타
| |
프로입단
| |
소속팀
| |
지도자
| 파일:SK와이번스 로고.png SK 와이번스 2군 수비코치 (2014~2015)
파일:attachment/lotte_giants.png 롯데 자이언츠 1군 수비코치 (2016) 파일:attachment/lotte_giants.png 롯데 자이언츠 2군 수비코치 (2017) 파일:Lotte_Giants_newlogo.png 롯데 자이언츠 1군 수비코치 (2018) 파일:1024px-KT_Wiz.svg.png kt wiz 1군 수비코치 (2019~) |
프런트
| 파일:SK와이번스 로고.png SK 와이번스 전력분석관 (2012~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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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가
| 원곡 [Ricky Astley 'Together Forever'][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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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 한국시리즈 우승 4회 (2002, 2006, 2008, 2010)
|
1. 소개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2.2. 삼성 라이온즈 시절
파일:external/www.chosun.com/200508040138_00.jpg
동국대 졸업 후 2000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으며, 삼성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 시즌인 2002년 시즌 당시 삼성의 주전 2루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2003년 초 한화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넘어온 재일교포 고지행이 주전 2루수 자리를 차지하며 백업으로 밀렸고,[5] 설상가상으로 2004년 병역비리에 연루되어 시즌 아웃.
이후 2005년에 받은 재검에서 완전 면제 판정을 받고 팀에 복귀하였으나,[6] 팀에는 이미 2004년 FA를 통해 영입된 박종호가 2루를 지키고 있는 상황이라 박정환의 입지는 좁아졌다.
어느 정도 괜찮았던 내야 요원이었으나 팀에서 방출되기 몇 년 전부터는 유독 욕을 많이 먹었다. 선동열 감독이 박정환을 양준혁과 플래툰으로 사용했기 때문.[7] 결정적으로 한화 이글스와 맞붙었던 2007 준플레이오프 3차전, 6회초 1사 1, 2루라는 찬스 상황에서 삼진당하면서 까임은 배로 늘어났고, 준플레이오프가 끝나자마자 30세의 젊은 나이였는데도 불구하고 삼성에서 방출당했다.
동국대 졸업 후 2000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으며, 삼성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 시즌인 2002년 시즌 당시 삼성의 주전 2루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2003년 초 한화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넘어온 재일교포 고지행이 주전 2루수 자리를 차지하며 백업으로 밀렸고,[5] 설상가상으로 2004년 병역비리에 연루되어 시즌 아웃.
이후 2005년에 받은 재검에서 완전 면제 판정을 받고 팀에 복귀하였으나,[6] 팀에는 이미 2004년 FA를 통해 영입된 박종호가 2루를 지키고 있는 상황이라 박정환의 입지는 좁아졌다.
어느 정도 괜찮았던 내야 요원이었으나 팀에서 방출되기 몇 년 전부터는 유독 욕을 많이 먹었다. 선동열 감독이 박정환을 양준혁과 플래툰으로 사용했기 때문.[7] 결정적으로 한화 이글스와 맞붙었던 2007 준플레이오프 3차전, 6회초 1사 1, 2루라는 찬스 상황에서 삼진당하면서 까임은 배로 늘어났고, 준플레이오프가 끝나자마자 30세의 젊은 나이였는데도 불구하고 삼성에서 방출당했다.
2.3. SK 와이번스 시절
파일:external/photo-media.daum-img.net/20100926200111351.jpg
이후 김성근 감독의 부름을 받고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여 주로 대타나 내야 유틸리티 수비요원으로 출장하였다.
2010년 초반 16연승을 내달릴 때 꿋꿋한 밀어치기로 4할의 타율을 넘나들며 팀의 상승세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되었다. 이 16연승은 SK의 페넌트레이스 우승에 큰 버팀목이 되었다. 김성근 감독이 16연승 기간동안 임훈과 함께 그를 최고의 공헌 선수로 꼽았을 정도. 하지만 5월에 타격감이 떨어지면서 실책마저 계속 범하고, 결국 2군으로 내려가기에 이른다. 1군에 올라오긴 했지만 이때와 같은 의미있는 경기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2010년 9월 26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최종전 8회 4:2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세이브 왕 손승락을 상대로 동점을 만드는 적시타를 터뜨려 역전승에 공헌했다.
현역 마지막 시즌이던 2011년 9경기 출장에 그치며 대부분 2군에서 머물렀고, 시즌 후 은퇴하였다.
이후 김성근 감독의 부름을 받고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여 주로 대타나 내야 유틸리티 수비요원으로 출장하였다.
2010년 초반 16연승을 내달릴 때 꿋꿋한 밀어치기로 4할의 타율을 넘나들며 팀의 상승세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되었다. 이 16연승은 SK의 페넌트레이스 우승에 큰 버팀목이 되었다. 김성근 감독이 16연승 기간동안 임훈과 함께 그를 최고의 공헌 선수로 꼽았을 정도. 하지만 5월에 타격감이 떨어지면서 실책마저 계속 범하고, 결국 2군으로 내려가기에 이른다. 1군에 올라오긴 했지만 이때와 같은 의미있는 경기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2010년 9월 26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최종전 8회 4:2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세이브 왕 손승락을 상대로 동점을 만드는 적시타를 터뜨려 역전승에 공헌했다.
현역 마지막 시즌이던 2011년 9경기 출장에 그치며 대부분 2군에서 머물렀고, 시즌 후 은퇴하였다.
3. 지도자 경력
4. 여담
- 풀타임 주전으로 뛴 시즌이 한 시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반지 캡터의 자질을 갖고 있다. 삼성에서 2개(2002년, 2006년), SK에서 2개(2008년, 2010년)를 합해 총 4개의 우승 반지를 얻었다. 리그 정상급 성적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우승반지 하나 껴보지도 못하고 은퇴하는 선수들이 많은 만큼 나름 대단한 기록.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2000
| 47
| 60
| .267
| 16
| 4
| 0
| 2
| 5
| 19
| 0
| 7
| .433
| .343
| |
2001
| 84
| 217
| .263
| 57
| 8
| 3
| 5
| 36
| 30
| 0
| 22
| .396
| .328
| |
2002
| 119
| 316
| .234
| 74
| 12
| 2
| 9
| 36
| 49
| 3
| 41
| .370
| .320
| |
2003
| 81
| 177
| .237
| 42
| 12
| 0
| 1
| 20
| 24
| 0
| 23
| .322
| .320
| |
2004
| 29
| 33
| .121
| 4
| 0
| 0
| 0
| 3
| 3
| 0
| 6
| .121
| .256
| |
2005
| 26
| 38
| .184
| 7
| 1
| 0
| 1
| 7
| 5
| 1
| 4
| .289
| .256
| |
2006
| 43
| 91
| .165
| 15
| 1
| 0
| 0
| 2
| 8
| 1
| 4
| .176
| .200
| |
2007
| 46
| 76
| .224
| 17
| 3
| 1
| 0
| 5
| 7
| 1
| 4
| .289
| .256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2008
| 25
| 50
| .240
| 12
| 4
| 0
| 1
| 6
| 3
| 1
| 9
| .380
| .356
| |
2009
| 45
| 60
| .317
| 19
| 4
| 0
| 1
| 9
| 4
| 2
| 5
| .433
| .369
| |
2010
| 44
| 92
| .304
| 28
| 9
| 0
| 1
| 10
| 15
| 0
| 8
| .435
| .360
| |
2011
| 9
| 9
| .222
| 2
| 1
| 0
| 0
| 2
| 1
| 0
| 2
| .333
| .364
| |
KBO 통산
(12시즌) | 598
| 1219
| .240
| 293
| 59
| 6
| 21
| 141
| 168
| 9
| 135
| .350
| .314
| |
6. 관련 문서
[1] 지명 이후 대학진학, 데뷔는 2000년[2] 지명 이후 대학진학, 데뷔는 2000년[3] 박정환 날려라 날려버려 불!꽃!투!혼! 박!정!환! 박정환 날려라 날려버려 인!천!S!K! 박!정!환!x2[4] 박정환 날려라 날려버려 불!꽃!투!혼! 박!정!환! 박정환 날려라 날려버려 인!천!S!K! 박!정!환!x2[5] 당시 클린업 트리오를 내세워서 공격야구를 하였던 삼성에 타격이 괜찮았던 고지행이 들어오자 타격이 약했던 수비형 선수인 박정환은 당연히 벤치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6] 한쪽 신장의 크기가 작고 정상 신장에 비해 30%밖에 기능을 하지 못하는 '위축신' 이라는 지병을 가지고 있었는데, 위축신의 경우 병역 면제에 해당되는 사항이다.[7] 또한 이때 한대화 수석코치가 1997년부터 2002년까지 동국대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아, 동국대 라인이란 말이 나왔다. 박한이도 한대화의 손을 거쳤다.[8] 현역 때 내야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