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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정 동측면# |
1. 개요[편집]
2. 이름[편집]
3. 역사[편집]
1636년(인조 14년)에 지었다. 첫 이름은 탄서정(歎逝亭)이었다가 나중에 소요정으로 바뀌었다. 1790년(정조 14년)에는 장마로 쓰러져 수리했다.# 이후 큰 변화 없이 오늘에 이른다.
왼쪽은 《동궐도》의 소요정(붉은 원 안), 오른쪽은 《조선고적도보》의 소요정 |
4. 구조[편집]
- 소요정 북쪽과 동쪽으로 옥류천 물이 흐르며 서북쪽엔 옥류천 폭포가 있다. 그래서 지형문제 때문에 각 면마다 기단의 수가 다르다. 서, 남쪽은 1단, 북쪽은 3단, 동쪽은 5단이다.
- 천장은 서까래가 드러나보이지만, 가운데에는 중도리를 설치한 후 그 안에 우물반자를 청판 1장으로 설치했다. 실내 서까래는 전체가 부챗살 모양이다.#
- 《조선고적도보》를 보면 주춧돌 사이에 벽돌을 채워놓은 모습이나, 현재는 뚫려있다. 언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5. 여담[편집]
- 역대 임금들이 소요정을 많이 찾고 아꼈다. 숙종은 창덕궁 후원에서 아름다운 정자 3채를 '상림삼정(上林三亭)'으로 불렀는데 소요정도 여기에 포함시켰다.#[2] 가장 아낀 임금은 숙종의 증손자 정조였다. 위에 썼듯, 1790년(정조 14년)에 수리했는데 그때 《소요정기》를 지었다. 그리고 자신의 저서 《홍재전서》에 실은 시 《상립십경(上林十景)》에서도 소요정을 언급했다. 《상립십경》은 창덕궁 후원에서 경치가 가장 빼어난 곳 10곳을 주제로 쓴 시이며, 소요정은 다섯 번째로 나온다.[3] 제목은 ‘소요유상(逍遙流觴)’이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漱玉淸流曲曲長 (수옥청류곡곡장)
옥 씻은 듯한 푸른 물 굽이굽이 길게 흐르고
近欄山色納新凉 (근난산색납신량)
난산 곁의 산색은 초가을 서늘함을 보내네
濠梁自有觀魚樂 (호량자유관어낙)
다리 위에서 물고기를 보는 낙이 있으니
可但蘭亭遞羽觴 (가단난정체우상)
난정[4]의 술잔에 대신할 만하다
[1] 보통 전통 건축에선 단층이라고 표현한다.[2] 나머지는 청의정, 태극정.[3] 나머지는 ‘관풍춘경(觀豊春耕: 관풍각에서의 봄갈이)’, ‘망춘문앵(望春聞鶯: 망춘정에서 꾀꼬리 소리듣기)’, ‘천향춘만(天香春晩: 천향각의 늦봄 경치)’, ‘어수범주(魚水泛舟: 어수당)’, ‘희우상련(喜雨賞蓮: 희우정에서의 연꽃 구경)’, ‘청심제월(淸心霽月: 청심정에서 보는 개인 날의 맑은 달)’, ‘관덕풍림(觀德楓林: 관덕정의 단풍)’, ‘영화시사(暎花試士: 영화당에서 시험보는 선비들)’, ‘능허모설(凌虛暮雪: 능허정의 저녁 눈)’이다.[4] 왕희지가 놀던 정자.[5] 이 밖의 관련 유적으로는 경주에 신라시대에 유상곡수연을 즐겼던 유적 포석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