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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옥천교
昌慶宮 玉川橋 | |
소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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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유적건조물 / 교통통신 / 교통 / 교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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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
| 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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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연도
| 1963년 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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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시기
| 조선시대, 148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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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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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역사
<동궐도>에 묘사된 옥천교
|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옥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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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금천
옥천교 밑을 흐르던 창경궁의 금천은 '옥류천(玉流川)'이다. 창덕궁 후원의 옥류천과는 이름만 같은 다른 개울이다. 하지만 창경궁 옥류천의 발원지도 창덕궁 후원이다.
연경당 서쪽과 부용정, 관람정 권역에서 발원한 것으로 보이는 세 갈래의 물이 춘당지에서 합류한 뒤# 남쪽으로 흘러 옥천교를 지난다. 원래는 창경궁 동남쪽으로 물이 빠져나온 뒤 계속 남쪽으로 흘러 종로 5, 6가동을 거쳐 지금의 예지동 광장시장 인근에서 청계천과 바로 합류하였으나 현재는 창경궁 경내를 제외한 전 구간이 복개되었다.
발원지가 궁 안이고, 또 경희궁과 달리[5] 궁역 자체에 큰 훼손도 없었기 때문에 현재 궁궐의 금천 중 유일하게 자연수가 흐르고 있다.
연경당 서쪽과 부용정, 관람정 권역에서 발원한 것으로 보이는 세 갈래의 물이 춘당지에서 합류한 뒤# 남쪽으로 흘러 옥천교를 지난다. 원래는 창경궁 동남쪽으로 물이 빠져나온 뒤 계속 남쪽으로 흘러 종로 5, 6가동을 거쳐 지금의 예지동 광장시장 인근에서 청계천과 바로 합류하였으나 현재는 창경궁 경내를 제외한 전 구간이 복개되었다.
발원지가 궁 안이고, 또 경희궁과 달리[5] 궁역 자체에 큰 훼손도 없었기 때문에 현재 궁궐의 금천 중 유일하게 자연수가 흐르고 있다.
4. 구조
홍화문, 명정문, 명정전의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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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론 발음만 같지 전혀 연관이 없다. 그리고 거기는 ‘沃川’이다.[2] 궁궐의 앞쪽에 물을 흐르게 하여 풍수에서 가장 좋다는 배산임수를 구현하였다.[3] 물론 실제 궁궐과 외부의 경계는 문과 담이지만, 잡귀를 쫓아내고 또 외부인이 궁에 들어갈 때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는 의미로 금천을 상징적인 경계로 두었다.[4] 議政府左贊成. 의정부에 속해 3의정(영의정, 우의정, 좌의정)을 보좌하는 직책. 오늘의 국회부의장 격이다.[5] 경희궁의 금천도 궁 안에서 발원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전부 메워졌다. 지금은 복원된 경희궁 금천교 양 옆에 아주 조금 재현 된 것만 볼 수 있다.[6] 전통 건축에선 홍예라고 표현한다.[7] 전통 건축에선 홍예라고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