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개요
2. 지명 유래
3. 역사
1764년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가 죽자 영조는 1786년 의열이라는 시호를 추증하고 사당의 명칭을 선희궁의 전신이 되는 의열묘라고 지었다. 이때 의열묘와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사당인 육상궁을 참배를 편리하게 하기 위해 백운동천에 새 다리를 건설했다. 다리는 1925년 일제강점기 때 복개공사로 소멸된 것으로 추정되며, 청운초등학교 운동장 화단에 난간석 6개가 남아있다. 종로구에서는 터 안내판을 세움과 동시에 복원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 #
한성부 북서 사제감계(사재감상패계) 신교 일대에 속해있었으며, 일제강점기때 신교동,[1] 신교정[2]으로 바뀌었다가 광복 이후 다시 신교동으로 명칭이 바뀌어[3] 오늘날에 이른다. #
한성부 북서 사제감계(사재감상패계) 신교 일대에 속해있었으며, 일제강점기때 신교동,[1] 신교정[2]으로 바뀌었다가 광복 이후 다시 신교동으로 명칭이 바뀌어[3] 오늘날에 이른다. #
4. 지리 및 환경
5. 상권
필운대로 아래쪽에 상가가 몇 개 있다.
6. 주요 시설
6.1. 주거
공동주택은 없고 빌라와 단독주택이 밀집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