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의 왕자
수춘군 壽春君 | ||
수춘군(壽春君)[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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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安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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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全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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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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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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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모
| 혜빈 양씨(惠嬪 楊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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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 영천군부인 연일 정씨(延日 鄭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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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 1남 1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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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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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기간 | ||
1. 개요
2. 생애
3. 사망과 이후
4. 여담
5. 가족과 후손
영천군부인 연일 정씨와 혼인하여 슬하에 1녀를 두었다. 딸은 심온의 증손자인 청안군 심순로와 혼인하였다. 그 사이에 둔 딸 심씨는 성종의 왕자 영산군과 결혼했다.
슬하에 아들이 없어 수춘군의 사후 양자로 이복형 밀성군의 3남인 수안군 이상이 입적되어 대를 이었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수춘군이 수양대군의 반대편에 섰고, 그의 어머니 혜빈 양씨 또한 세조의 정적으로 사형당했기에, 수춘군의 제사를 대놓고 지낼 수 없었다. 그래서 이를 딱하게 여긴 이복형 밀성군이 수춘군의 제사를 몰래 지내주었다. 그리고 밀성군 사후에는 밀성군의 3남인 수안군이 수춘군의 제사를 모셨다. 이후 수춘군이 복권될 때 이런 사연이 왕에게 전달되어 수안군이 정식으로 수춘군의 후사가 된 것이다.
단, 시기는 자료마다 다르다.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에 따르면 중종 때라고 한다.# 하지만 위키백과의 밀성군 항목에 따르면 사육신이 복권된 후인 숙종 시기라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는 관련 자료가 나오지 않는다.
슬하에 아들이 없어 수춘군의 사후 양자로 이복형 밀성군의 3남인 수안군 이상이 입적되어 대를 이었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수춘군이 수양대군의 반대편에 섰고, 그의 어머니 혜빈 양씨 또한 세조의 정적으로 사형당했기에, 수춘군의 제사를 대놓고 지낼 수 없었다. 그래서 이를 딱하게 여긴 이복형 밀성군이 수춘군의 제사를 몰래 지내주었다. 그리고 밀성군 사후에는 밀성군의 3남인 수안군이 수춘군의 제사를 모셨다. 이후 수춘군이 복권될 때 이런 사연이 왕에게 전달되어 수안군이 정식으로 수춘군의 후사가 된 것이다.
단, 시기는 자료마다 다르다.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에 따르면 중종 때라고 한다.# 하지만 위키백과의 밀성군 항목에 따르면 사육신이 복권된 후인 숙종 시기라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는 관련 자료가 나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