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왕자군]][[분류:서출]][[분류:1431년 출생]][[분류:1455년 사망]] [include(틀:조선의 왕자/목조 ~ 연산군)] ||<-3><tablealign=right><table width=400><tablebordercolor=#94153E><#94153E> {{{#gold '''조선 세종의 왕자'''[br]{{{+1 '''수춘군[br] 壽春君'''}}}}}} || ||<-2><width=30%><#94153E> '''[[군호|{{{#gold 군호}}}]]''' ||<(> 수춘군(壽春君)[* 군호는 [[강원도]] [[춘천시|춘천]]의 별호인 수춘(壽春)에서 따왔다] || ||||<:><#94153E> '''[[시호|{{{#gold 시호}}}]]''' ||<(> 안도(安悼) || ||||<:><#94153E> '''[[본관|{{{#gold 본관}}}]]''' ||<(> [[전주 이씨|전주]](全州) || ||||<:><#94153E> '''[[이름|{{{#gold 이름}}}]]''' ||<(> 현(玹) || ||||<:><#94153E> '''{{{#gold 부왕}}}''' ||<(> [[세종(조선)|조선 세종]] || ||||<:><#94153E> '''{{{#gold 생모}}}''' ||<(> [[혜빈 양씨]](惠嬪 楊氏) || ||||<:><#94153E> '''{{{#gold 부인}}}''' ||<(> 영천군부인 [[연일 정씨]](延日 鄭氏)) || ||||<:><#94153E> '''{{{#gold 자녀}}}''' ||<(> 1남 1녀[* 1남은 양자이다.] || ||||<:><#94153E> '''{{{#gold 묘소}}}'''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 ||<|2><:><#94153E> '''{{{#gold 생몰[br]기간}}}''' ||<:><#94153E> '''[[음력|{{{#gold 음력}}}]]''' ||[[1431년]] [[7월 13일]] ~ [[1455년]] [[6월 5일]] || ||<:><#94153E> '''[[태양력|{{{#gold 양력}}}]]''' ||[[1431년]] [[8월 20일]] ~ [[1455년]] [[6월 19일]] ||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 전기의 왕족. [[세종(조선)|세종]]의 13번째 아들이자 서6남으로, 어머니는 [[혜빈 양씨]]이다. 친형제로는 형 [[한남군]]과 남동생 [[영풍군]]이 있고 [[전주 이씨|전주이씨]] 수춘군파의 파시조이다. == 생애 == 1437년(세종 19년) 12월 8일 수춘군(壽春君)으로 봉해졌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912008_001|#]] 1443년에 [[세종(조선)|세종]]이 병에 걸려 [[소헌왕후]]와 함께 [[온양행궁]]에 갔을 때 세종의 명으로 궁궐을 살피고 지키는 일을 맡았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2503001_001|#]] 수춘군은 세종이 먹을 탕약을 손수 관리하고 쾌유 기도를 드리는 등 정성을 다해 사람들이 만고의 효자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단종(조선)|단종]] 즉위 후 [[왕족]]들이 수양대군 편과 반대 편으로 갈릴 때 반대 편에 섰다. [[세종(조선)|아버지]]와 [[문종(조선)|큰형]]에 대한 의리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의 어머니 [[혜빈 양씨]]가 수양대군 대립 세력의 대표격이었기 때문. == 사망과 이후 == 1455년(단종 3년) 6월 19일에[* 음력 6월 5일.] 이복형 [[금성대군]] 사저인 교거에서 사망했다. 향년 23세.[* [[세는나이]] 25세.]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선위하기 한 달 전이었다. [[무덤|묘]]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원당동]]에 있다. == 여담 == == 가족과 후손 == 영천군부인 [[연일 정씨]]와 혼인하여 슬하에 1녀를 두었다. 딸은 [[심온]]의 증손자인 청안군 심순로와 혼인하였다. 그 사이에 둔 딸 심씨는 [[성종(조선)|성종]]의 왕자 영산군과 결혼했다. 슬하에 아들이 없어 수춘군의 사후 양자로 이복형 [[밀성군]]의 3남인 수안군 이상이 입적되어 대를 이었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수춘군이 수양대군의 반대편에 섰고, 그의 어머니 [[혜빈 양씨]] 또한 세조의 정적으로 사형당했기에, 수춘군의 [[제사]]를 대놓고 지낼 수 없었다. 그래서 이를 딱하게 여긴 이복형 밀성군이 수춘군의 제사를 몰래 지내주었다. 그리고 밀성군 사후에는 밀성군의 3남인 수안군이 수춘군의 제사를 모셨다. 이후 수춘군이 복권될 때 이런 사연이 왕에게 전달되어 수안군이 정식으로 수춘군의 후사가 된 것이다. 단, 시기는 자료마다 다르다.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에 따르면 중종 때라고 한다.[[http://www.rfo.co.kr/view_party.php?refnum=059|#]] 하지만 위키백과의 밀성군 항목에 따르면 [[사육신]]이 복권된 후인 [[숙종(조선)|숙종]] 시기라고 한다.[[https://ko.wikipedia.org/wiki/밀성군|#]]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는 관련 자료가 나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