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세계 최초/외국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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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의 상위 문서: 세계 최초

1. 개요[편집]

한국을 제외한 타국이 세계 최초로 이룩한 업적(발명품, 수립된 제도 등)들을 정리해 놓은 문서다.

2. 각국이 세계 최초인 것[편집]

2.1. 미국[편집]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의 대표적인 예. 건국 시기는 늦었지만, 20세기부터 현재도 자본주의 국가를 대표하는 나라인 만큼, 이 시기를 중심으로 세계 최초 또는 현대식 최초를 대표하는 각종 발명품들이 많이 나왔다.

2.2. 일본[편집]

2.3. 중국[편집]

역사가 깊은 만큼 중요한 발명품이 많다. 과거 한나라때의 종이나 송나라때의 나침반, 화약 등은 인류 문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2.4. 러시아[편집]

2.5. 영국[편집]

산업 혁명을 기점으로 만들어진 것이 굉장히 많다.

2.6. 프랑스[편집]

2.7. 독일[편집]

2.8. 이탈리아[편집]

2.9. 네덜란드[편집]

2.10. 캐나다[편집]

2.11. 호주[편집]

2.12. 뉴질랜드[편집]

2.13. 스웨덴[편집]

2.14. 덴마크[편집]

2.15. 그리스[편집]

대부분 고대 그리스 시절 얘기지만, 굵직한 업적들이 굉장히 많다.

2.16. 이집트[편집]

워낙 오래된 나라다 보니 굵직한 업적이 많다.

2.17. 인도[편집]

2.18. 스위스[편집]

2.19. 스페인[편집]

2.20. 오스트리아[편집]

2.21. 폴란드[편집]

2.22. 이라크[편집]

현재까지 밝혀진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이 속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답게 최초 타이틀이 많다.

2.23. 이란[편집]

2.24. 핀란드[편집]

2.25. 남아프리카 공화국[편집]

2.26. 그 외 국가[편집]

문서의 가독성 향상을 위해 세계 최초인 것이 4개 이하인 국가는 이 곳에 서술한다.
[1] 1872년에 옐로스톤 국립공원이 최초로 지정되었다.[2] MBL과 NBA 선수들을 컨텐츠로 삼은 트레이딩 카드 팩 시리즈가 현대적 의미의 랜덤박스의 시초이다. 그 중에서도 1992년에 Topps 사에서 출시한 골드 카드는 이름 부분에 금장이 되어 있어서 팬들의 수집 심리를 부추겼고, 이는 이후의 랜덤박스에서 희귀도가 다른 아이템을 집어넣도록 하는 설계의 기원이 되었다.[3] 딕 루탄 & 지나 예거[4] 이 셋은 무보급 원자력 세계일주 항행을 한 이력까지 있다! 엔터프라이즈 항목 참조.[5] 애플 II용으로 개발된 VisiCalc[6] 위트워스 소총[7] 1962년 IBM 7094 컴퓨터로 Daisy Bell이라는 노래를 부른 것이 최초 #[8] 1947년 1월에 완성된 음극관 놀이장치(Cathode Ray Tube Amusement Device)[9] 1974년부터 1985년까지 발행되었던 크리에이티브 컴퓨팅(Creative Computing)[10] 1979년에 미국의 건축가 필립 존슨이 수상하였다.[11] 단, 런던에서 파리까지 간 열기구는 프랑스인이 몬 것이고, 우편을 전해준 이가 미국인, 수취인도 벤저민 프랭클린으로 미국인이다[12] 1972년에 마그나복스 오디세이용으로 나온 헌티드 하우스[13] 모토로라사의 마틴 쿠퍼 박사가 세계 최초로 개발하였다.[14] 앨런 매클라우드 코맥(Allan MacLeod Cormack)과 고드프리 뉴볼드 하운스필드(Godfrey Newbold Hounsfield)가 개발하였다.[15] 1999년 9월 출시작인 교세라의 VP-210.[16] 건조 자체는 영국의 HMS 허미즈가 먼저였으나, 중간에 설계변경 등의 이런저런 사정으로 취역은 호쇼가 먼저.[17] 파나소닉에서 출시한 DMC-G1.[18] 1990년 소니 출시작.[19] 1981년에 소니에서 출시한 마비카.[20] 1999년에 소니에서 출시한 아이보(AIBO).[21] 단, 이 치료제는 원래 독감 치료를 목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한 것이다.[22] 이론은 필립스가 개발하고 상용화는 소니가 했다.[23] 관련기사[24] 사쿠라 크레파스의 볼사인. 수출용은 '겔리롤'이라는 이름으로 나오지만 최근에 출시된 노크식 버전은 대한민국에서도 구할 수 있다.[25] 이걸로 일본인 학자 3명이 2015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쓸어갔다.[26] 1969년에 SEIKO가 만든 아스트론(Astron)[27] 1983년 세이코 엡손 출시작[28] 1992년 후지쯔 출시작[29] 2008년 소니 출시작[30] 이와테현 가미이시 시의 어느 다리 밑을 덮친 쓰나미를 로봇 카메라로 잡아냈다.[31]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에 NHK가 긴급지진속보를 내자마자 피해 예상 지역들에 방송용 헬기를 보냈는데, 미야기현 나토리시에 파견된 헬기가 육지로 들어오는 쓰나미를 생중계했다.[32] 오시이 마모루달로스[33] 운하의 수위를 조절하는 시설[34]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진나라를 가리켜 강력한 근대국가의 원형이라고 평가하였다.[35] 하계는 2008 베이징 올림픽, 동계는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단, 국가 단위로는 프랑스가 최초로 하계, 동계올림픽을 모두 개최했다.[36] 최초로 천연가스를 사용한 곳은 후한 시기 사천의 암염 광산이었지만 우연적이고 경험적으로 행해지던 천연가스 사용법을 개량, 체계화한 것은 촉한의 재상 제갈량이었다. 화정의 개발과 보수가 성공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촉한은 품질 좋은 소금과 철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유통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기술을 기반으로 역대 중국 왕조들은 염철 전매제도를 시행, 국가수입의 다수를 철과 소금만으로 벌어들였다. 명청대에 들어서는 기술적으로 크게 진보하여 탄력성 강한 대나무 케이블과 주철제 비트로 평균 900미터까지 파내려갔고, 시추탑의 진동을 막는 장치, 풀무를 이용한 바위 이물질 제거, 용도에 따라 천연가스 분출 세기를 조절하는 밸브, 천연가스 및 염수를 멀리 떨어진 작업장과 가정으로 보내는 기술, 휴대용 가스통 등 관련 기술들도 발전했다. 이후 앙베르라는 프랑스인 선교사가 소개한 중국의 천연가스 시추 기술은 1829년 프랑스 과학계에서 화제가 되었고 1834년부터는 소금물 채굴에 이용되었다. 1859년에는 미국의 에드윈 드레이크 대령이 펜실베니아 주 오일 크리크에서, 중국의 케이블 방식으로 석유 채굴을 시작했다. 드레이크나 그밖의 미국 석유 채굴자들은 그 시추 기술을 프랑스로부터가 아니라 19세기 중반의 미국 철도 건설에 동원되었던 다수의 중국인 노동자들에게서 직접 전수받았다.[37] 서기 347년, 240미터를 시추하여 석유를 채굴하였다.#[38] 1972년 중국의 식물화학자 투유유가 개똥쑥에서 발견하였다.[39] 주철을 열처리하여 그 산화 작용에 의하여 가단성(可鍛性)을 부여한 것. 보통 주철보다 점성(粘性)이 강하고 충격에 잘 견디는 재질이 얻어지므로 용도가 넓다. 중국의 경우, 전국시대에 가단주철을 개발함으로써 강철을 직접 생산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게 되었으나 서기 9세기 이후로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서구의 경우, 1670년대 잉글랜드에서 해당 기술의 특허가 등장했고 18세기부터 널리 알려졌다.[40] 전국시대 중국은 암석 또는 철로 제작한 상자에 연철과 목탄을 넣고 가열, 침탄하는 삼탄강을 개발했다. 서구는 16세기 말부터 베세머 전로가 개발되기 전인 19세기 중반까지 암석 또는 철로 제작한 상자에 연철과 목탄을 넣고 가열, 침탄하는 삼탄강 기술을 주로 사용했다. 18세기에 고대 인도의 기술과 동일한 도가니강이 발명되었지만 고비용 때문에 많이 사용되지는 않았다. 삼탄강 전에는 강철을 만들기 위해 불에 달군 연철에 숯가루를 뿌려가며 두들겨서 침탄시키는 방법이 유일했다. 생산량도 적어서 대부분을 무역으로 충당했다.[41] 전국시대의 중국인은 다량의 철광석과 숯을 넣을 수 있고 하부에 송풍구가 있는 용광로를 개발했다. 노를 가열하면 철이 더 많은 탄소를 흡수할 수 있고 대량의 선철을 생산할 수 있었다. 또한 주형에 부어서 쉽게 주철로 가공이 가능했다. 동아시아 외부에서는 14세기 독일의 개발이 최초로 이때부터 선철의 생산이 가능했다. 기술 자체는 전국시대와 동일하지만 노의 크기가 훨씬 컸다.[42] 복동식 피스톤 풀무는 피스톤을 밀고 당길 때, 양쪽 공간의 공기가 번갈아 압축되어 연속적으로 나오는 단순한 도구이지만 야금 기술에 혁명을 일으켰다. 중국은 전국시대에 결정적인 송풍 기술을 개발한 덕분에 16~19세기 서유럽에 역전되기 전까지 다른 문화권들보다 선진적인 야금 기술을 가질 수 있었다.[43] 철을 녹인 용선을 식히면 주철이 된다. 중국에서는 전국시대부터 주철이 생산되었는데 이는 유럽보다 대략 1000년 가까이 이른것 이었다.[44] 초강법은 근대의 베세머 전로법과 유사하게 선철(통상 4wt% 이상의 탄소를 함유)을 녹인 용선에 공기를 불어넣고 금속산화물 등 탈탄제를 넣어 탄소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강철을 생산한다. 한대의《회남자》, 명대의 《천공개물》에 초강법의 탈탄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고고학적으로도 한대의 유물에서 처음 등장한다.[45] 자그마치 기원전 6200년의 고고학적 증거가 있다[46] 2016년 7월 중국 드론 회사 이항이 개발한 이항184[47] 1060년대 황하의 중요한 다리가 홍수로 무너졌는데 승려 회병의 의견에 따라 강물 속에 잠긴 주철제 황소상의 수중인양에 성공했다. 회병은 두 척의 큰배에 흙을 가득 실었고, 잠수부들은 두 척의 배에서 내린 케이블을 강바닥의 황소상에 연결시켰다. 그리고 배에서 조금씩 흙을 버려나가자 배는 점차 높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즉각 배를 강둑으로 향하게 하여 얕은 물로 끌어올렸다. 그들은 그곳에서는 쉽게 황소상을 회수할 수 있었다. 후일 명나라 군대에게 격침당한 포르투갈 군함 또한 비슷한 방식으로 인양되었으며 방법은 현재까지도 원형이 유지되고 있다.[48] 중국 남부에서는 오늘날에도 감귤을 재배할 때 육식성의 베짜기개미를 이용해 병충해를 막는데, 이는 3~4세기부터 쓰였던 생물학적 방제의 전통이다. 304년에 계함(稽含)이 저술한 《남방초목상》에 이용법이 기록되어 있다. 이후 기록에는 전문적으로 개미를 채집하는 상인의 활동, 개미를 농장 전체에 퍼뜨리는 방법 등이 등장한다. 서구에서는 1870년대부터 생물학적 방제의 개념이 등장하여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졌다.[49] 중국인은 기원전 2세기에 인간의 소변에서 성 호르몬을 추출하는 법을 발견했다. 가열을 통한 승화법과 석고 등의 화학물질을 통한 침전법이 쓰였는데, 조제 목적에 따라 성별, 연령의 혼합비율을 바꿨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정은 현대의 기준에서 보면 순수한 결정체는 아니지만 농도가 진한 호르몬 물질로서 성기능 저하 치료, 성전환 등의 효과가 있었다. 인간의 소변은 20세기 이후의 현대의학에서도 성 호르몬 추출에 보변적으로 쓰이는 원료다.[50] 남송시대에 만들어진 순우천문도(淳祐天文圖, 1247)[51] 이집트와 논쟁거리가 있으나 한국에서는 중국발명으로 쳐준다[52] 그리스와 논쟁거리가 있음[53] 흑역사인 듯하다.#[54] 목활자, 금속활자 한정. 금속활자, 목판활자 둘 다 중국이 원조인 것으로 보이나, 남은 게 없어서 남아있는 것으론 한국이 최초다.[55] 바빌로니아, 로마 등에서도 인구조사를 실시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전인구를 상대로 실시한 인구조사의 결과가 현재까지 전해지는건 중국의 기록이 가장 오래되었다.[56] 1961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에 세계 최초의 안전문이 설치되었다.[57] 원자로에서 최초로 전기를 만들어낸 원자력 발전소인 오보닌스크 원자력 발전소를 최초로 본다.[58] 1937년에 블라디미르 데미코프가 개발하였다. 그러나 이는 개에게 이식되었고 사람에게는 쓸 수 없었다.[59] 다만 개발자는 프랑스인이다.[60] 러시아인 블라디미르 레브코프가 1939년에 개발하였다. 하지만 호버크래프트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영국의 공학자 크리스토퍼 코크렐이 새로운 호버크래프트를 개발한 이후였다.[61] 영국 공군이 막 생긴 1918년 당시에는 프랑스, 미국 등에 공군이 독립된 편제가 아니었다. 모두 육군 항공대가 공군으로 독립한 것. [62] 앨프리드 마셜이 창시했다.[63] 2018년이 되어서야 나온 것이다. 그 전까지는 자기 피부색에 맞는 파운데이션을 발라야 했다고.[64] 1841년에 설립된 토마스 쿡[65] 영국에서 발행된 페니 블랙(Penny Black). 세계 최초의 접착식 우표다.[66] Thrust 시리즈[67] 프랭크 휘틀 발명[68] 초음파 검사 기술을 더욱 실용적으로 개발하여 실시한 것으로는 최초다. 초음파 검사 기술 개발은 1940년대 미국에서 최초로 이루어졌다.[69] 말 그대로 최초의 낙하산이며, 실용성은 없었다. 현대적 의미의 낙하산은 러시아인에 의해 세계 최초로 개발되었다.[70] 1924 샤모니 동계올림픽[71] 프랑스의 기상학자 Léon Teisserenc de Bort가 독일의 기상학자 Richard Assmann과 공동 발견함[72] 파리 대학에서 프랑스인 오귀스탱 무쇼가 태양열 증기 엔진을 이용해 얼음을 만들 수 있는 냉각 시스템을 개발하였다.[73] 1900 파리 올림픽,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74] 조르주 멜리에스달 세계 여행이 SF 영화의 시초로 보고 있다.[75] 벨기에 전쟁(1940)[76] 세계 최초 여부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기관단총 문서 참조.[77] 놀랍게도 나치 독일 시절에 제정되었다.[78] 독일의 기상학자 Richard Assmann이 프랑스의 기상학자 Léon Teisserenc de Bort와 함께 열기구를 타고 공동 발견함[79] 나치 독일의 선전부장관 파울 요제프 괴벨스이 고안해냈다.[80] 다만 여러 색을 조합해서 위장무늬를 만든다는 개념은 1차대전 당시에도 있었고, 세계 최초의 위장무늬는 1929년에 이탈리아에서 발명된 Telo mimetico다. 다만 초기에는 telo tenta라고 하는 1인용 텐트에만 사용되었고, 1942년에 공수부대의 군복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독일군도 2년후인 1931년에 Splittertarnmuster(Buntfarbenmuster)를 발명했지만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zeltbahn이라고 하는 1인용 텐트에 사용했다가 1941년부터 공수부대의 군복에 사용되었다. 무장친위대에서는 1935년부터 위장무늬 군복을 사용했다. 하지만 위장무늬 군복이 무장친위대에서 사용된 것 때문에, 서독군에서는 일부를 제외하면 민무늬 군복을 사용했고, 다른 국가에서도 위장무늬 군복의 채용이 미루어졌다. 1976년에 독일에서 플레크타른을 발명했지만 이게 무장친위대에서 사용된 위장무늬인 Eichenlaubmuster와 Erbsenmuster와 유사해서 1980년대에 방탄모 덮개와 방탄복에만 적용되었고, 독일이 통일된 1990년에서야 군복에도 적용되었다.[81] 활자가 아니다.[82] 독일인 교황 보니파시오 2세가 제정한 달력기년법.[83] 종종 오스트리아의 지크프리트 마르크스와 최초논쟁 시비가 일어나지만 공식적으로는 칼 벤츠를 최초로 인정하고 있다.[84] 세계 최초로 발명되었던 곳은 독일인데 특허는 미국에서 3개월 먼저 나왔다.[85] 이탈리아의 화학자인 아스카니오 소브레로가 처음으로 합성했다.[86] 타종시계[87] 1차대전 당시에도 비행기나 전차에 위장무늬를 칠하는 경우가 있었고, 몇몇 병사들이 위장무늬가 그려진 군복을 입기도 했으며, 개인적으로 헬멧에 위장무늬를 칠하기도 했지만, 세계 최초로 대량생산된 위장무늬는 이탈리아의 Telo mimetico가 최초다. 다만 초기에는 telo tenta라고 하는 1인용 텐트에 사용되었고, 최초로 군복에 위장무늬를 사용한 군대는 나치 독일의 무장친위대다.[88] 그레고리오 13세가 제정한 달력, 보니파시오 2세의 서력이랑 매우 유사.[89]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90] 네덜란드의 지리학자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가 최초로 주장하였다.[91] 갈릴레이가 먼저 발명한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아니다. 망원경을 세계 최초로 고안하고 발명해낸 사람은 네덜란드인 한스 리퍼세이이다.[92] 일본의 소니하고 공동개발을 하였으나, 사실 개발 주체는 네덜란드의 필립스였다.[93] 캐나다인 Donald Hings가 1937년에 제작한 packset[94] 단 레일 자체는 피카티니 레일과 마찬가지로 미국인이 만들었으며 제식 이전부터 미군의 특수부대에서 M656등에 도입해 극소수로 운용한 적이 있다.[95] 캐나다 출신 레지날드 페슨든이 1901년에 세계최초로 라디오 전파에 목소리를 실어 전달하는 기술을 개발했다.[96] 스웨덴의 화학자 칼 빌헬름 셸레가 영국의 화학자 조지프 프리스틀리보다 1년 먼저 발견하였다.[97] 발드마르 파울센 발명[98] 기하학 이론의 시작 자체는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등에서 먼저 있었지만 연역적인 학문으로 발전한 것은 그리스이다.[99] 다만 근대 올림픽을 만든 사람은 프랑스인이다.[100] 물론 현대식 증기기관을 말하는 건 아니고, 헤론이 구상한 아에올리스의 공을 말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최초는 최초이므로[101] 히파르코스월식 때의 그림자를 이용해 해와 달까지의 거리 비를 알아냈다. 이미 지구의 둘레 및 지구:달의 크기 비를 에라토스테네스가 측정했으므로 해와 달까지의 실측 거리까지 나온 셈.[102] 단 목활자나 금속활자가 아니라 진흙판에 찍어내는 활자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찍어낸 인쇄물이 바로 파에스토스 원반[103] 이에 대해서는 수메르의 이라크와 경쟁이 된다.[104] 윤년이 없는 고대이집트력[105] 기원전 424년에 저술된 헤로도토스의 기록에서 이집트인들이 그물로 모기를 막는다는 언급이 있었고 또한 클레오파트라역시 방충망을 애용했다고 알려졌다.[106] 피라미드 건설노동자의 유골에서 두개골의 절개 흔적이 발견되었다.[107] 1928, 1948 생모리츠 동계올림픽[108] 그런데 발견한 곳은 체코이고, 멘델 자신은 독일계 오스트리아인이다.[109] 다만 지동설 자체는 이미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타르코스가 본격적으로 제안했다.[110] 1988년에 야르코 오이카리넨(Jarkko Oikarinen)이 개발하였다.[111] 노키아에서 출시한 노키아 6650[112]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직전 대회까지는 하계올림픽이 열리는 해(즉, 연도의 숫자가 4의 배수가 되는 해)에 동계올림픽을 치렀다.[113] 대만의 '홍려'라는 사람이 발명했다고 알려졌다. #[114] 룩셈부르크의 건축가 Léon Krier[115] 1970, 1986. 여기에 미국, 캐나다와 공동개최하는 2026년 대회를 포함하면 통산 3회인데, 이것 역시 세계 최초이다.[116] 최근 들어서 이 유래에 대한 설은 부정하고 있는 추세이다.[117] 비날론 개발당시가 일제강점기였기도 하거니와 개발도 교토제국대학에서 이루어졌다. 게다가 개발자인 리승기조차도 원래 남한 국민이었다가 월북한 것이다.[118] 아르헨티나의 스포츠 저널리스트 파블로 실바가 발명했다.[119] 이전까지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가 유력했으나 이스라엘에서 최초의 맥주 양조 증거가 발견되었다. #[120] 1966, 1970, 1978, 1998[121] 항공기를 사용해 전투에 참여하는 육군 소속 항공대는 그 전에 다른 나라에도 이미 존재했지만 현대적인 의미의 진짜 공군을 따로 분리하여 창설한것은 오스만 제국 시절의 터키가 세계 최초이다.[122] 리스본 대지진을 계기로 제창되었다.[123] 옌드러시크 죄르지가 설계한 Jendrassik Cs-1[124] 2클래스 A380. 이 괴물의 주인은 다름 아닌 에미레이트 항공이다. [125] 에티하드 항공A380에 설치되는 '더 레지던스'. 거실과 더블 베드 침실, 그리고 화장실 겸용 샤워실이 있다.[126] 석빙고 같은 얼음 저장창고. 기원전 1780년경의 수메르의 도시 마리에서 기록으로 남겨짐[127] 알비 형제가 제작한 브레인 바이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