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고대의 번영
사산 왕조 치세 초기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은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의 발흐가 조로아스터의 무덤이 있는 조로아스터교의 성지이므로, 사산 왕조가 호라산 지역으로 팽창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에 귀를 기울인 샤푸르 1세는 동쪽으로 진출할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서, 서쪽 변경에서 사로잡은 로마군 포로들을 동원하여 준디샤푸르라는 신도시를 건설한 것이 기원이다. 사마르칸트 - 부하라 - 메르브 로 이어지는 실크로드의 주요 도시로 번성하다가 이슬람 정복 이후에는 도시의 중요성이 메르프에 밀리게 되었다.
다만 압바시야 혁명의 선봉장 아부 무슬림이 니샤푸르를 호라산의 치소로 만들며 부흥의 단초를 마련하였다.
다만 압바시야 혁명의 선봉장 아부 무슬림이 니샤푸르를 호라산의 치소로 만들며 부흥의 단초를 마련하였다.
3. 중세의 대번영
그 후 9세기에 이란의 반 자치 왕조인 타히르 왕조의 후원으로 터키석 (코발트) 광산 개발이 진전되고 공예품 산업이 발전하여 다시 번영하였다. 이에 타히르 조는 수도를 메르브에서 니샤푸르로 옮겼다. 타히르 조를 전복시킨 사파르 왕조도 니샤푸르에 수도를 두고 궁전을 확장하였다.
하디스 편집본 중에서 높은 신뢰성으로 유명한 사힛 무슬림 하디스 모음집이 니샤푸르 출신 학자에 의해 편찬되었다.
10세기의 사만 왕조의 치하에서, 니샤푸르는 수도는 아니었지만 무역의 중심지 기능을 유지하였고 페르시아, 아랍, 소그드, 인도, 튀르크 상인과 심지어 러시아와 이집트에서도 상인이 오는 국제 도시가 되었다.
하디스 편집본 중에서 높은 신뢰성으로 유명한 사힛 무슬림 하디스 모음집이 니샤푸르 출신 학자에 의해 편찬되었다.
10세기의 사만 왕조의 치하에서, 니샤푸르는 수도는 아니었지만 무역의 중심지 기능을 유지하였고 페르시아, 아랍, 소그드, 인도, 튀르크 상인과 심지어 러시아와 이집트에서도 상인이 오는 국제 도시가 되었다.
4. 세계 5대 도시
5. 대도시에서 유적으로
그리고 운명적인 1221년, 몽골 제국군은 니샤푸르를 함락한 후 수십만에 달하는 시민을 학살,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 해골 피라미드를 쌓았다. 이 학살에서 페르시아의 시인 아타르도 잔혹히 희생당하였다. 이후, 대지진까지 겹치며 도시는 완전히 쇠락하게 된다.
6. 현재의 니샤푸르
16세기에 사파비 왕조는 이전 도시의 북쪽에 도시를 일부 재건하였고 역시 니샤푸르라고 이름 붙였다. 이때에 시인 아타르의 영묘가 조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