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نیشابور }}} [* 페르시아어] Nīshāpūr [* 로마화 됨. Nišâpur, Nişapur, Nīshābūr, Neyshābūr, Neeshapoor 등으로도 표기된다.] [목차] == 개요 == 이란 동부 [[호라산]] 주의 도시. [[마슈하드]] 근처에 위치. 도시의 명칭은 창건자인 3세기 중반 [[사산 왕조]]의 샤한샤 [[샤푸르 1세]]에서 유래하였다. 페르시아 어로는 '샤푸르의 신도시' 라는 뜻이다. (니 = New) == 고대의 번영 == 사산 왕조 치세 초기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은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의 [[발흐]]가 조로아스터의 무덤이 있는 조로아스터교의 성지이므로, 사산 왕조가 호라산 지역으로 팽창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에 귀를 기울인 [[샤푸르 1세]]는 동쪽으로 진출할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서, 서쪽 변경에서 사로잡은 로마군 포로들을 동원하여 준디샤푸르라는 신도시를 건설한 것이 기원이다. [[사마르칸트]] - [[부하라]] - [[메르브]] 로 이어지는 [[실크로드]]의 주요 도시로 번성하다가 [[라쉬둔 왕조|이슬람 정복]] 이후에는 도시의 중요성이 메르프에 밀리게 되었다. 다만 압바시야 혁명의 선봉장 [[아부 무슬림]]이 니샤푸르를 호라산의 치소로 만들며 부흥의 단초를 마련하였다. == 중세의 대번영 == 그 후 9세기에 이란의 반 자치 왕조인 [[타히르 왕조]]의 후원으로 터키석 (코발트) 광산 개발이 진전되고 공예품 산업이 발전하여 다시 번영하였다. 이에 타히르 조는 수도를 [[메르브]]에서 [[니샤푸르]]로 옮겼다. 타히르 조를 전복시킨 [[사파르 왕조]]도 니샤푸르에 수도를 두고 궁전을 확장하였다. 하디스 편집본 중에서 높은 신뢰성으로 유명한 사힛 무슬림 하디스 모음집이 니샤푸르 출신 학자에 의해 편찬되었다. 10세기의 [[사만 왕조]]의 치하에서, 니샤푸르는 수도는 아니었지만 무역의 중심지 기능을 유지하였고 페르시아, 아랍, 소그드, 인도, 튀르크 상인과 심지어 러시아와 이집트에서도 상인이 오는 국제 도시가 되었다. == 세계 5대 도시 == 994년부터 이어진 [[가즈니 왕조]]의 지배에서, 서기 1000년 경에 [[니샤푸르]]는 [[바그다드]], [[카이로]], [[콘스탄티노플]], [[카이펑]]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다. 1037년, 니샤푸르는 [[셀주크 제국]]에게 점령당한 후 그의 수도가 되었고, [[토그릴]]은 그 곳에서 술탄을 선포하였다. 다만 제국이 서진하며 1043년에 이란 중북부의 [[라이]]에게 수도 지위를 빼앗겼다. 셀주크 제국 와해 이후인 12세기 말, 도시는 [[구르 왕조]]와 [[호라즘 왕조]]의 전쟁의 와중에 침체기를 겪었다. 그래도 도자기 산업의 발전으로 백만 이상의 인구를 유지하였다고 한다. == 대도시에서 유적으로 == 그리고 운명적인 1221년, [[몽골 제국]]군은 니샤푸르를 함락한 후 수십만에 달하는 시민을 학살,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 해골 피라미드를 쌓았다. 이 학살에서 페르시아의 시인 아타르도 잔혹히 희생당하였다. 이후, 대지진까지 겹치며 도시는 완전히 쇠락하게 된다. == 현재의 니샤푸르 == 16세기에 [[사파비 왕조]]는 이전 도시의 북쪽에 도시를 일부 재건하였고 역시 니샤푸르라고 이름 붙였다. 이때에 시인 아타르의 영묘가 조성되었다. [[분류:이란의 도시]][[분류:옛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