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발굴조사와 연구를 통해 복원한 자정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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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역사
1620년(광해군 12년) 경희궁 창건 때 지었다. 처음 지은 후 화재 한 번 겪지 않고 260년 간 별 탈 없이 존재하다 1865년(고종 2년) 경복궁 중건 시 경희궁을 헐어 경복궁 공사의 자재로 쓸 때 헐렸다. 흔히 일제가 없앴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근거는 아래 기록이다.
《경복궁 중건일기》
그리고 대한제국 시기 1901년(광무 5년)에 숭정전을 찍은 사진을 보면, 자정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자정문이 없다. 이로 보아 아무리 늦어도 그 이전에 이미 철거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일제는 자정문 터에 경성중학교 교사를 세웠다. 8.15 광복 후에는 서울고등학교가 사용하다가 1990년대 경희궁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교사를 철거하였다. 그 뒤 발굴 조사를 거쳐 1998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복원 공사 중인 자정전의 사진을 보아 자정문 공사가 자정전보다 먼저 끝난 듯 하다.
복원 공사 중인 자정전. 왼쪽 사진은 북쪽에서, 오른쪽 사진은 남쪽에서 바라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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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특징
《서궐도안》을 채색한 《서궐도》에서 묘사한 자정문과 자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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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진엽서 전체의 모습. [2] 사진엽서 전체의 모습. [3] 梓宮. 임금의 관.[4] 梓宮. 임금의 관.[5] 부재 끝부분에만 문양을 넣고 가운데는 긋기로 마무리한 단청이다.[6] 가칠단청 위에 선만을 그어 마무리한 단청으로, 가칠단청은 무늬없이 단색으로만 칠한 단청이다.[7] 부재 끝부분에만 문양을 넣고 가운데는 긋기로 마무리한 단청이다.[8] 가칠단청 위에 선만을 그어 마무리한 단청으로, 가칠단청은 무늬없이 단색으로만 칠한 단청이다.[9] 魂殿. 임금이나 왕비의 국장 뒤 3년 동안 신위(神位)를 모시던 전각.[10] 殯殿. 국상 때, 상여가 나갈 때까지 임금이나 왕비의 관을 모시던 전각.[11] 魂殿. 임금이나 왕비의 국장 뒤 3년 동안 신위(神位)를 모시던 전각.[12] 殯殿. 국상 때, 상여가 나갈 때까지 임금이나 왕비의 관을 모시던 전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