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공통점
3. 차이점
- 가마쿠라 막부 이후 일본에선 덴노가 거주하는 교토와 쇼군이 거주하는 도시는 서로 중심기능이 나눠져있었지만 신라에선 전제 왕국이던 경주가 신라의 수도로서 당대 모든 기능을 담당했다.
- 정치적으로 교토는 대표적인 진보 지지 지역이고, 경주는 보수 지지 지역이다.
- 영사관의 존재 유무에만 차이가 있다. 경주시에는 영사관이 하나도 없고 교토에는 프랑스 총영사관이 존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4. 관련 문서
[1] 실제로 경주와 나라는 자매결연을 맺은 도시이다. 하지만 나라시는 부여군과도 자매결연을..[2] 경주는 기원전 57년부터 935년까지, 교토는 794년부터 1869년까지 공식적인 수도였다.[3] 다만 교토는 불교 못지 않게 신토와 관련된 문화재의 비중이 높다.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오히려 나라시에 더 집중된 편.[4] 참고로 나라에도 나라국립박물관이 위치해있다.[5] 그래서 경주와 교토를 비교할 때 시안(장안)까지 넣어서 세 도시를 함께 비교하기도 한다.[6] 교토는 교토타워가 예외적. 이것도 스카이라인 망친다고 교토 사람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다.[7] 다만 교토시 자체는 바다와 접해있지 않다. 교토부 마이즈루시 등은 접해있지만, 교토시와는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많이 다른 지역이다.[8] 교토에는 하나오레단층(花折断層帯)과 나라분지 토엔단층(奈良盆地東縁断層帯), 경주에는 양산단층이 지나고 있다. 역사 기록에 보면 신라 혜공왕때 경주에 지진이 발생해 100여명이 죽었다는 등의 기록이 나온다.[9] 다만 여기에는 차이점도 있는데, 두 도시 근처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중 경주의 월성 원전은 행정구역상 경주시 소재이고, 교토 인근의 타카하마 원전과 오오이 원전은 후쿠이현에 있다.[10] 경주는 기원전 57년부터 935년까지, 교토는 794년부터 1869년까지 공식적인 수도였다.[11] 다만 교토는 불교 못지 않게 신토와 관련된 문화재의 비중이 높다.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오히려 나라시에 더 집중된 편.[12] 참고로 나라에도 나라국립박물관이 위치해있다.[13] 그래서 경주와 교토를 비교할 때 시안(장안)까지 넣어서 세 도시를 함께 비교하기도 한다.[14] 교토는 교토타워가 예외적. 이것도 스카이라인 망친다고 교토 사람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다.[15] 다만 교토시 자체는 바다와 접해있지 않다. 교토부 마이즈루시 등은 접해있지만, 교토시와는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많이 다른 지역이다.[16] 교토에는 하나오레단층(花折断層帯)과 나라분지 토엔단층(奈良盆地東縁断層帯), 경주에는 양산단층이 지나고 있다. 역사 기록에 보면 신라 혜공왕때 경주에 지진이 발생해 100여명이 죽었다는 등의 기록이 나온다.[17] 다만 여기에는 차이점도 있는데, 두 도시 근처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중 경주의 월성 원전은 행정구역상 경주시 소재이고, 교토 인근의 타카하마 원전과 오오이 원전은 후쿠이현에 있다.[18] 재밌게도 신라시대에 대구는 천도 논의가 꽤 진지하게 나온 바가 있었다. 만일 이 때 천도가 되었다면 우리는 대구 vs 교토, 경주 vs 나라 비교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19] 재밌게도 신라시대에 대구는 천도 논의가 꽤 진지하게 나온 바가 있었다. 만일 이 때 천도가 되었다면 우리는 대구 vs 교토, 경주 vs 나라 비교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20] 분단되기 전만 해도 조선 시기 제2의 도시였던 평양 일대가 그나마 한양과 경쟁심을 갖긴 했다. 경평축구대항전이라고 경성을 대표하는 경성 축구단과 평양을 대표하는 평양 축구단이 친선 경기를 갖기도 할만큼 이쪽은 경쟁심리가 꽤 있었다.[21] 분단되기 전만 해도 조선 시기 제2의 도시였던 평양 일대가 그나마 한양과 경쟁심을 갖긴 했다. 경평축구대항전이라고 경성을 대표하는 경성 축구단과 평양을 대표하는 평양 축구단이 친선 경기를 갖기도 할만큼 이쪽은 경쟁심리가 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