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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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호
콘스탄디노스 1세[1] (Κωνσταντίνος Αʹ)
출생
사망
재위
1차
2차
배우자
프로이센의 조피 (1889년 결혼)
자녀
요르요스 2세, 알렉산드로스, 엘레니, 파블로스, 이리니, 에카테리니
아버지
어머니
러시아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형제
요르요스, 알렉산드라, 니콜라오스, 마리아, 올가, 안드레아스, 크리스토폴로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onstantine_I_of_Greece.jpg

그리스어: Κωνσταντίνος Αʹ
덴마크어: Konstantin 1.
영어: Constantine I

1. 소개2. 가족

1. 소개[편집]

콘스탄티노스 1세는 그리스의 국왕으로 1868년 요르요스 1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날 왕궁 앞으로 군중들이 몰려와 왕자의 이름을 "콘스탄티노스"로 하라고 외쳤는데, 그의 외할아버지인 러시아의 콘스탄틴 대공의 이름일 뿐만 아니라, 당시 인기있는 전설 중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다시 점령하는 자는 동로마 제국 최후의 황제인 콘스탄티노스 11세의 이름을 이은 콘스탄티노스 12세'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군사교육을 받고 그리스-터키 전쟁(1897년)과 1912~13년의 발칸 전쟁 총사령관으로 활약하였다. 1896 아테네 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1913년 3월 18일 부왕 요르요스 1세가 암살되자 즉위하였다. 그러나 친독적 인물이었던 콘스탄티노스 1세는 대외정책을 둘러싸고 총리대신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와 엄청난 갈등을 빚은 끝에 1917년 차남 알렉산드로스 1세[2]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퇴위하였다.

그러다가 알렉산드로스 1세가 급서하고, 베니젤로스가 총선거에서 패배하자 反베니젤로스파가 주도한 국민투표에서 99%의 지지를 받아 1920년 12월 19일 재즉위하였다. 그러나 그리스가 터키 독립전쟁에 패하면서 좋았던 인기를 다 까먹고, 결국 책임을 지고 장남인 요르요스 2세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4개월 뒤 망명지인 이탈리아 왕국 팔레르모에서 서거한다.

2. 가족[편집]

[1] 현대 그리스어에서는 ντ(nt)가 붙어 있을 경우 τ에서 d 발음이 남[2] 연합국에 참전을 주장했던 베니젤로스의 압력으로 양위한 건데, 장남인 요르요스 2세독일 제국에서 군사훈련을 받는 중이었기 때문에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도 분위기상 주기가 어려웠다.[3] 이탈리아 사보이 왕가의 방계인 사보이-아오스타 가문의 아이모네 공작(1900~1948)과 결혼, 슬하 1남(아마데오 공작, 1943~)[4] 1947년에 영국의 젠트리 가문 출신인 리처드 브랜드햄(Richard Brandram, 1911~1994)과 결혼, 슬하 1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