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갈등/국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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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2.1. 아시아2.2. 오세아니아2.3. 유럽2.4. 유라시아
2.4.1. 러시아
2.4.1.1. 유럽 러시아(우랄산맥을 경계로 서부지역) VS 시베리아 혹은 북아시아 지역(우랄산맥을 경계로 동부지역)2.4.1.2. 러시아 본토 VS 체첸, 다게스탄, 잉구시 등 북카프카스※2.4.1.3. 러시아 본토 VS 칼리닌그라드
2.4.2. 아르메니아2.4.3. 아제르바이잔2.4.4. 조지아2.4.5. 카자흐스탄2.4.6. 터키
2.4.6.1. 이스탄불 or 흑해 지방 VS 다른 동네들2.4.6.2. 유럽 이스탄불 VS 아나돌루 이스탄불2.4.6.3. 서부(발칸 반도, 아나돌루 해안) VS 동부(아나돌루 내륙)
2.4.6.3.1. 터키 본토 VS 터키 쿠르디스탄
2.4.6.4. 이스탄불 VS 앙카라2.4.6.5. 가지안텝 VS 샨르우르파 VS 카흐라만마라쉬2.4.6.6. 디야르바크르 VS 을 비롯한 기타 동부도시들2.4.6.7. 콘야 vs 아피욘카라히사르2.4.6.8. 아다나 vs 나머지 터키(...)2.4.6.9. 중부 마의 삼각지대 vs 나머지 터키(...)2.4.6.10. 초룸 vs 나머지 터키(...)2.4.6.11. 카이세리 vs 나머지 터키(...)
2.5. 아메리카2.6. 아프리카

1. 개요[편집]

  • ※표는 민족, 인종간 갈등 사례다.
  • ★표는 제1의도시 VS 제2의도시 간 갈등이다.
  • 해외 사례는 이웃나라/한지붕 두가족 문서와 관련이 깊다.

2. 상세[편집]

2.1. 아시아[편집]

2.2. 오세아니아[편집]

2.2.1. 호주[편집]

  • 시드니 VS 멜버른
    이 문서의 다른 경우와는 달리 진짜로 서로를 미워하는 지역감정은 아니다. 그런데 시드니와 멜버른은 호주를 대표하는 두 도시이고 그 규모도 거의 비슷하다보니(시드니-480만명, 멜버른-440만명) 서로 경쟁의식이 장난이 아니다. 요컨대 시드니 사람과 멜버른 사람은 서로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자기네 도시가 낫다고 유치하게 싸운다. 예를 들자면,
    • "너넨 오페라 하우스 없지?" vs "너넨 오스트레일리아 수도가 된 적이 한번도 없지?"(멜버른은 한 때 호주의 수도였다. 과거 시드니와 멜버른이 서로 수도하겠다고 다투다 다투다 지쳐서 만든게 캔버라)
    • "호주 수상 관저는 시드니에 있어." vs "우리는 시드니보다 올림픽을 40년이나 일찍 개최했어."
    • "시드니는 호주에서 외국인 관광객 1위인데? ㅋ" vs "정작 호주 사람들이 많이 찾는 도시는 멜버른이 1위인데?ㅋ"
    • "시드니에는 더 세련된 경전철이 있어요." vs "멜버른에는 예쁜 트램이 있어요."[1]
    • "우중충한 멜버른 말고 시드니에 놀러오세요."vs"물가 비싼 시드니 말고 멜버른에 놀러오세요."[2]
    뭐 이런 식으로 시시콜콜 유치하게 다툰다. 가끔 캔버라[3], 브리즈번, 애들레이드 같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 끼어들지만 쪽수가 밀려서 사뿐히 무시당한다. 이 논쟁이 호주에서 워낙 유명하다보니 호주의 TV쇼나 유머에서 줄기차게 등장하는 소재이다.
    만약 이 논쟁을 종식시키고 싶다면 "그럼 오클랜드와 비교하면 어때?" 하고 물으면 된다. 잠시 쳐다보다 사이좋게 오클랜드를 깔 것이다. (이웃나라/안 좋은 사이의 오세아니아 문단에 나와있듯이 호주사람들은 대동단결로 뉴질랜드를 놀린다. 물론 뉴질랜드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2.2.2. 솔로몬 제도[편집]

  • 과달카날 VS 말라이타
    미국이 비행장 건설을 위해 말라이타 섬 주민을 과달카날 섬으로 이주시킨 이래 두 섬 사이는 엄청난 대립이 이어졌으며, 내전과 폭동으로까지 치달았고, 결과적으로 지역감정이 국가에 엄청난 피해를 줬다.

2.2.3. 미국령[편집]

2.2.4. 파푸아뉴기니[편집]

  • 부건빌 VS 부건빌을 제외한 파푸아뉴기니 본토※
    부건빌 사태가 일어났었던 곳이기도 하며, 1988년에서 2001년까지 유혈사태 및 내분이 일어났던 곳이다. 부건빌 섬은 파푸아뉴기니로부터 자원 착취, 분리독립 탄압, 여러가지 차별들을 당했고 대우가 좋지 않았던 부건빌 지역 사람들은 결국 내전을 일으켜서 13년까지 내전을 일으켰다. 사실 부건빌 섬은 파푸아뉴기니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도 차이가 났으며, 문화적으로도 솔로몬 제도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부건빌 전쟁 당시 솔로몬 제도는 부건빌 독립군들을 도와주기도 했다고 한다. 2001년 전쟁 이후 파푸아뉴기니는 부건빌 자치권을 인정했다. 2019년에 부건빌 독립투표가 실시되어 독립 찬성이 많았지만 효력이 바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서 파푸아뉴기니 협상을 거쳐야한다.

2.3. 유럽[편집]

2.4. 유라시아[편집]

2.4.1. 러시아[편집]

2.4.1.1. 유럽 러시아(우랄산맥을 경계로 서부지역) VS 시베리아 혹은 북아시아 지역(우랄산맥을 경계로 동부지역)[편집]
러시아의 경우 땅이 워낙 넓긴 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지역들이 많고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많이 발전한 곳과 발전하지 않은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유럽 러시아(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는 유럽과 가깝기도 하고 대도시들이 몰려 있으며, 중심지도 유럽에 속하는 지역에 있다보니 이곳이 조금더 잘 산다. 하지만 시베리아, 우랄 지역 및 극동 지역에는 중심지와 거리가 멀거나 소도시 및 농촌 등으로 이루어진 곳이 많다보니 대표적인 도시 정도를 제외하면(하바롭스크, 블라디보스토크, 이르쿠츠크, 크라스노야르스크, 첼랴빈스크 등) 경제적으로는 확실한 차이가 나타난다. 그리고 몇몇 시베리아 출신 사람들은 시베리아 지역주의 운동이라는 분리독립을 원하는 사람들도 약간 있다고 한다. 물론 그래봤자 극소수인데다가 많지 않아서 독립을 원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시베리아 지역주의는 19세기 때 나타났으며 역사적으로도 죄수들의 유배지이기도 했고, 여러가지 이유로 차별이 심했던 곳이기도 했다. 이는 적백내전 때도 그 성격이 나타나기도 했으며, 특히 적백내전 때는 몇몇 백군들이 시베리아에서 분리 독립을 시도하려고 하기도 했었으나 결국 공산주의자들에게 지면서 1918년 분리독립은 실패로 끝났다. https://en.wikipedia.org/wiki/Siberian_regionalism. 유럽 러시아 VS 러시아령 북아시아 지역 주민들의 감정은 소련시절에도 달라진 점은 없었으며 이는 현대 러시아에서도 비슷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2.4.1.2. 러시아 본토 VS 체첸, 다게스탄, 잉구시 등 북카프카스※[편집]
소수민족 분리주의 및 러시아의 지역감정 중 최악으로 좋지 않은 곳. 체첸 등을 포함한 북카프카스의 여러 지역의 소수민족들은 러시아 정교를 믿는 러시아인과 다르게 이슬람교를 믿어서 반러 감정이 심하기로 유명하다. 역사적으로도 반러 항쟁이 2000년 이전에도 있었으며, 그래서인지 북카프카스 지역은 탄압을 하면서 다스렸고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 못지 않게 대우가 안 좋았고 차별도 심했다. 지금은 치안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분쟁이 끝나지 않았고 위험이 없는 것도 아닌데다가 지금도 가끔 폭발사고가 일어나는 만큼 위험한 곳 중 하나이다.
2.4.1.3. 러시아 본토 VS 칼리닌그라드[편집]
칼리닌그라드는 본래 러시아로 대표되는 동슬라브 문화권이 아니었다. 고대에는 발트족이 살고 있었으며 이후에는 동방식민운동의 영향으로 독일인이 이주해오거나 발트족이 독일화되는 일이 일어나 독일문화권으로 완전히 편입되어 쾨니히스베르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훗날 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로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수많은 독일계 주민들이 학살 내지는 추방되고 그 빈자리를 러시아계 이주민들과 일부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이 메우게 되었다. 그렇게 소련 영토가 된 쾨니히스베르크는 처음에는 러시아식 발음인 쿄니그스베르크로 불리다가 나중에 미하일 칼리닌의 성을 딴 칼리닌그라드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소련 영토일 당시에는 러시아 본토와 육로로 이어져 있어서 문제가 없었지만, 소련 해체의 영향으로 월경지가 됨에 따라 러시아 본토와의 육로가 막혀버리면서 본격적으로 러시아 본토와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무려 러시아계 주민들이 프로이센의 상징인 독수리 문양(러시아의 쌍두 독수리와 달리 머리가 1개만 있음)을 쓸 정도다. 물론 나치 독일 시절 독일의 원죄와 러시아의 국익을 감안하면 러시아가 칼리닌그라드를 독립하거나 독일령이 되게 놔둘 가능성은 매우 낮다.

2.4.2. 아르메니아[편집]

  • 예레반 및 수도권 vs 수도권 제외한 곳
    아르메니아는 카프카스 지방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인데, 그래도 수도인 예레반 및 인근 도시들은 그나마 잘 발전했지만 다른 곳은 여전히 상황이 좋지 못하다보니 이로 인한 불만도 있다. 또한 주요 도시들조차 북부 지방에 집중되어 있고 남부는 도시가 많지 않은데다가 국경 지대가 터키, 아제르바이잔 등 관계가 좋지 않는 나라들과 접하다 보니 분위기도 산엄하거나 험악하고 그로 인해 더욱 도시가 나타나기 어려운 이유도 있다. 다만 이란과는 사이가 좋다보니 이란과 접하는 곳은 예외이다.

2.4.3. 아제르바이잔[편집]

  • 아제르바이잔 본토 VS 나흐츠반
    본래 나흐츠반은 아제르바이잔 본토와 육로로 연결되어 있었으나, 아르메니아의 침공으로 1920년대에 월경지가 되었다가 1990년대에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상실하는 바람에 사실상 월경지 신세가 되었다. 나흐츠반이 터키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보니 나흐츠반 주민들 중에서는 나흐츠반이 터키령이 되길 바라는 이들도 있으며, 마침 터키는 아제르바이잔의 우방국이기도 하지만, 정작 아제르바이잔 본토인들은 나흐츠반이 다른 나라의 영토가 되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는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아르메니아의 침공으로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상실한 역사 때문에 자국 영토가 외세에 넘어가는 것 자체에 엄청난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제르바이잔은 수니파가 주류인 터키와 달리 시아파가 주류라서 양국의 보수적인 무슬림들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데, 오스만 제국 말기에는 시아파의 분파인 알레비파가 극심한 박해를 받기까지 했다. 그리고 나흐츠반이 아제르바이잔의 전임 대통령 헤이다르 알리예프의 고향인지라 아들인 일함 알리예프가 이끄는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기를 쓰고 나흐츠반을 지키려 하는 상황이다.

2.4.4. 조지아[편집]

  • 조지아 본토 VS 아자리야
    조지아 국민들 대다수가 반러 성향이 강한 것과 달리 아자리야 주민들은 친러 성향이 강해서 이 점에서 갈등이 있다. 그리고 혈통상으로만 놓고 보면 양쪽 모두 조지아계이지만 조지아 본토인들이 그냥 조지아인인 반면 아자리야 주민들은 조지아 제민족 중 하나인 아자르인이 대다수다. 그래서 내전까지 일어난 끝에 아자리야가 자치 공화국 지위를 얻어낼 수 있었다.
  • 조지아 서부 VS 조지아 동부
    전자가 동유럽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반면 후자는 페르시아의 지배에 따른 영향으로 페르시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러한 문화적 차이로 인해 지역감정이 있다.

2.4.5. 카자흐스탄[편집]

  • 카자흐스탄 남부 VS 카자흐스탄 북부※
    카자흐스탄의 백인들 대다수는 러시아 제국이나 소련 시절에 이주해온 러시아인[4]의 후손인데, 특히 소련의 대기근으로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카자흐인 인구가 급감하자 러시아인들이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카자흐스탄으로 대거 이주되면서 카자흐스탄은 한때 러시아인 인구가 카자흐인 인구를 추월하기도 했다. 카자흐스탄이 독립한 현재도 카자흐스탄 북부는 카자흐스탄 남부에 비해 러시아인 인구가 많으며, 이것이 카자흐스탄 남부와 북부의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오죽하면 카자흐스탄의 수도가 카자흐스탄 남부의 알마티에서 카자흐스탄 중앙의 아스타나(지금의 누르술탄)로 천도될 정도.

2.4.6. 터키[편집]

2.4.6.1. 이스탄불 or 흑해 지방 VS 다른 동네들[편집]
전통적으로 이스탄불 사람들은 그리스인이 많았다.[5]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비무슬림 인구가 50%에 육박하는 국제도시인데다가 메흐메트 2세가 이 곳을 정복했을 때에도 기존 동로마(그리스) 주민들을 쫓아내기는커녕 정복한 날과 그 다음 이틀을 합쳐 3일간은 약탈(학살, 강간도 당연히 어느 정도 포함. 단 방화는 안됨)을 허용했긴 하지만 어쨌든 이들을 더 육성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곳의 문화는 기존의 아나톨리아 지방과는 문화나 풍습이 달랐고 -외국인들은 거의 구분해낼 수 없지만, 이스탄불에는 고유 터키어 사투리까지 있다- 꽤 오랫동안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 기능한지라 다른 지방 사람들을 촌놈취급하는 바람에 다른 지방 사람들이 이스탄불 출신들을 보면 "저런 깍쟁이들" 취급을 한다. 어째 한국의 서울 촌놈이 떠오른다. 흑해 출신 사람들의 경우 특유의 벽창호같은 고집쟁이로 통한다.
2.4.6.2. 유럽 이스탄불 VS 아나돌루 이스탄불[편집]
전통적으로 이스탄불은 현재의 파티흐 구(Fatih belediyesi), 즉 테오도시우스 성벽 안쪽만을 의미했다. 그 외의 갈라타, 카드쾨이, 위스퀴다르 같은 현재는 이스탄불 광역시에 속하는 지역들은 과거에는 다른 도시로 여겨졌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 최후기인 1912년 발칸 전쟁 이후 이스탄불로 몰려든 발칸 피난민들과, 공화국 수립 이후 산업화로 인한 이촌향도가 이어지면서 이스탄불의 인구비율은 역전되었고, 여전히 이스탄불에서 살고 있는 토박이들과 이후 이스탄불로 유입한 이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있다. 특히 이스탄불 토박이들은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이스탄불의 인구 40% 정도가 비무슬림이었던 점도 있어서 비무슬림도 있고, 일찍이 서구화된 상류층이 많은데 이들을 (이슬람 관점으로) 부도덕적이라고 걸고 넘어지는게 1980-90년대 터키 영화, 드라마의 주된 클리셰였을 정도. 현재도 이스탄불 토박이들의 상류층 문화는 선망의 대상이자 한편으로는 경멸의 대상이기도 하며, 이스탄불 토박이들이 이주민들을 무시하는 풍조도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2.4.6.3. 서부(발칸 반도, 아나돌루 해안) VS 동부(아나돌루 내륙)[편집]
터키 서부는 근현대까지 그리스인들이 거주해왔고, 오늘날의 주민들 또한 해당 지역에 살던 그리스인들의 생물학적 후손이며, 문화적인 연결고리도 발칸 반도남유럽에 훨씬 가깝다. 반면에 동부 지방은 쿠르드족, 아랍인을 비롯한 민족들과 부대끼며 살다 보니 혈통적, 문화적 연결고리는 아랍과 이란에 훨씬 더 가깝다. 특히 터키 독립전쟁 이후 성립된 터키 공화국에서 적극적으로 서구화정책을 펼치다 보니 도시지역은 다른 유럽국가들과 별반 다를 바 없게 되었지만 농촌이 많은 동부는 여전히 전통적인 대가족, 가부장 사회에서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또 터키는 남미에 버금가는 민족의 용광로인데다가 지리적으로 상이한 문화권과 맞닿아 있는 영향 때문에 서쪽과 동쪽은 아예 사람들 생김새부터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스와 발칸과 가까운 서부에 사는 터키인은 유럽 백인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많고 이슬람 문화권과 접한 동부는 아랍인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더 나아가 이스탄불오스만 제국 시기부터 오랫동안 터키의 중심으로 기능했기 때문에 새로 수도가 된 앙카라사람들을 영 껄끄럽게 여기는 경향도 없잖아 있고... 때문에 서부에서는 동부사람들이 여전히 비문명화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동부지방 독실독실한 사람들은 서부사람들이 돈가지고 자신들을 무시하는데다가 무슬림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동부지방 사람들중에서도 대도시에 거주하는 서양물 먹은 사람들은 마찬가지 이유로 동부의 시골주민들에 대해 무시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특히 동부지방 사람들의 이런 경향은 오르한 파묵의 소설 ""에 잘 묘사되어 있으므로 추천한다. 소설에 보면 카르스의 부자나 공무원들 그리고 의사나 경찰 같은 사회지도층 계층과 가난한 빈민들과의 갈등이 잘 나타나 있다.특히 빈민들은 전기를 도둑질 해서 쓰고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하는것으로 묘사되어 터키의 지역불균형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런 빈민들이 훗날 정의개발당의 열렬한 지지자가 된다. 사실 동부지방의 부자들은 이미 서부로 많이 갔다. 동부는 깡촌에다가 서부에 비해 낙후되었고 PKK 테러도 있고 1970년대에는 공산당이 설쳐서 더 했다. 게다가 동부는 최근 에르도안에 의해 PKK 시리아와 전쟁으로 황폐화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부자가 남아있을 매력이 없다. 독일이나 터키 서부로 많이 갔다.

터키 서부, 동부의 갈등의 단적인 예로 Doğulu (도울루, 동쪽사람)이라는 단어가 있다. 원래는 순전히 동부지역 출신이라는 뜻으로 쓰던 말이지만 2000년대 이후 Doğulu 라는 단어는 쿠르드인을 뜻하는 우회적인 표현이나 촌뜨기라는 의미의 경멸적인, 차별적인 어휘로 쓰이고 있다. 실제 터키 동부 출신인 사람한테도 이 말을 사용하면 상대방이 잘 모르는 사람일 경우 초면에 무례한 짓이라고 발끈할 정도.

이러한 갈등의 또다른 예는 터키 서부와 동부 사이의 인적교류가 흔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동부에서 서부로 학업, 취직등의 이유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서부에서 동부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터키 서부 사람들이 흔히 하는 편견이 '동부에 사는 사람들은 죄다 쿠르드인이고 낙후되어있고 종교적으로도 원리주의적이다'라는 것이다. 터키 정부에서도 이러한 동부와 서부 사이의 갈등을 조율하기 위해 군대징집, 공무원 임용 등에 있어 지역에 따른 배치를 하고 있는 중인데, 가령 서부 출신의 터키인은 동부에 위치한 군부대, 관공서, 학교로 발령시키고, 동부 출신의 터키인은 서부에 위치한 군부대, 관공서, 학교로 우선 발령시키는 식이다. 때문에 쿠르드인이 도시, 마을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동네에서도 공무원, 경찰, 군인, 교사는 서부출신의 터키인들이 대다수인걸 볼 수 있으며, 반대로 에디르네같이 동부 출신의 이주민이 별로 없는 서부의 소도시들의 공무원, 경찰, 군인, 교사들은 동부출신이 많다.
2.4.6.3.1. 터키 본토 VS 터키 쿠르디스탄[편집]
터키 서부와 동부의 지역감정 문제점을 극한으로 압축해놓은 곳이라 할 수 있다.
2.4.6.4. 이스탄불 VS 앙카라[편집]
터키 공화국 시기 아타튀르크에 의해 수도를 앙카라로 옮기게 되었다. 이스탄불은 옛 오스만 왕조 구체제의 수도이고 외세의 침입에 대항하기 어렵다는 이유이다. 이렇게 하루 아침만에 수도를 옮기게 되니 이스탄불 사람들이 박탈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후로 앙카라 사람들을 촌놈취급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스탄불 사람들은 앙카라 사람들을 졸부취급하고, 앙카라 사람들은 이스탄불 사람들을 가진거 없이 허세만 가득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2.4.6.5. 가지안텝 VS 샨르우르파 VS 카흐라만마라쉬[편집]
터키 남동부에 위치한 이 세 지방은 서로 라이벌관계이다. 마치 터키와 그리스와 불가리아가 케밥가지고 원조논쟁하듯이 이 지방들도 터키에서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지방 향토요리들(가지케밥, 양파케밥, 치으쾨프테 등등)이 서로 자기네가 원조라고 주장한다. 이 세 지방의 라이벌관계는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있던 일인데, 세 지방 모두 주로 교역에 종사하면서 먹고살던 지방이고 지금도 샨르우르파에는 아랍, 쿠르드 계열이 다수고, 가지안텝은 튀르크멘이 다수이고, 카흐라만마라쉬에는 현재는 많이 줄거나 튀르크화 되었지만 아르메니아 계열이 다수였던 지역이었다. 덕분에 인접한 지방임에도 사투리나 문화가 눈에 띄일정도로 다른걸 볼 수 있다.
2.4.6.6. 디야르바크르 VS 을 비롯한 기타 동부도시들[편집]
디야르바크르는 쿠르드족의 수도라 불릴만큼 쿠르드 인구가 많은 곳이다. 또한 쿠르드 인구가 도시의 90%를 차지할 만큼 쿠르드 비중이 높은 지역이다. 그런데 이 두 지역은 서로 원수지간이다. 외부의 시선으로 봤을땐 둘 다 쿠르드족이고, 인민민주당을 지지하는 등 딱히 갈등의 요소가 보이지 않지만, 이들이 대립하는 이유는 부족이 다르기 때문. 심지어 이들이 사용하는 쿠르드어는 서로 의미조차 통하지 않을만큼 사투리 차이가 심하다. 특히 반을 비롯한 동북부 지방의 쿠르드인들은 PKK를 극도로 혐오하는 입장인데, PKK가 처음 일어난 지역이 디야르바크르 도의 리제 군이기 때문에 "디야르바크르 놈들이 우리한테까지 피해를 끼치고 있다." 라고 생각한다. 디야르바크르 북서쪽에 위치한 엘라즈으(Elazığ)의 경우 극렬 튀르크 민족주의자 비중이 높은 지역이라 쿠르드와는 극단적으로 사이가 나쁘며, 마르딘의 경우 애초에 인구 다수가 시리아 정교회를 믿는 아랍계 주민들이고, 그곳의 쿠르드들도 디야르바크르의 쿠르드와는 부족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있다.
2.4.6.7. 콘야 vs 아피욘카라히사르[편집]
양 도가 모두 행정구역상으로는 중부 아나톨리아 지방에 속하며 기후조건이나 문화도 동일하다. 하지만 아피욘카라히사르는 터키 독립전쟁당시의 격전지였고 일찌감치 세속화 된 지역임에 반해 콘야는 터키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으로 유명하다. 콘야에서는 아피욘카라히사르 사람들을 "우리 종교에서 금지하는 술이나 처먹고 꽐라되는 놈들"이라고 까고, 아피욘카라히사르 사람들은 콘야사람들한테 "그러는 니들이 터키에서 가장 많이 라크 마시는데요?"라고 깐다. 그리고 실제로 콘야가 터키에서 가장 많이 라크를 소비하는 동네로 유명하다. 참고로 라임을 활용해서 만든 유명한 말이 있다. "아피욘의 크림, 콘야의 미친놈"(Afyon'un kaymağı, Konya'nın manyağı) 아피욘의 특산품인 카이막이라는 걸쭉한 크림과 콘야의 종교꼴통들을 빗댄 말이다.
2.4.6.8. 아다나 vs 나머지 터키(...)[편집]
아다나 출신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 터키에서 아다나 출신이라고 하면 으례 갖는 이미지가 사기꾼, 범죄자, 양아치라는 이미지. 유독 이상하게 아다나에서 각종 흉악, 엽기 범죄가 터진다든가 다른 지역 범죄도 해당 범죄자 신상을 파고 보니 아다나 출신이라는 게 많이 나온 지라 갖게 된 이미지다. 오죽하면 아다나로 오는 타지 사람이나 여행자에게 아다나 시민 스스로 "여기서 제일 조심해야하는 건 나를 포함한 아다나 사람 그 자체다"란 자학드립이 낀 주의점을 알려줄 정도. 요즘은 아다나와 인접한 메르신 도 출신들도 까이고 있는데, 외즈게잔 아슬란(Özgecan Aslan) 강간살인사건이 벌어진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 외에도 흉악범죄가 심심하다 하면 벌어지는 곳이라 아다나와 함께 까이는 중. 두 곳 다 여름철엔 무지막지하게 덥고 푹푹 찌는 곳이라[6] "저놈들 더위 때문에 대가리가 익어버린게야.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의 탈을 쓰고 저런 흉악한 짓을 하겠어?" 라고 깐다. 한편 아다나를 비롯한 가지안텝, 카흐라만마라쉬, 메르신이 포함되는 추쿠르오바(Çukurova) 평야 지방 사람들은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욕잘하고 상남자같은 기질로 유명한데, 특히 아다나 사람들 하면 그새끼들은 에 대고도 욕할 수 있는 새끼들이야. 라며 까는 사람들도 있다. 아다나인 양아치 기질은 전통이었다 유튜브에 보면 날씨가 덥다고 태양에다 산탄총을 쏘는 아다나인이라는 유머도 있다보러가기
2.4.6.9. 중부 마의 삼각지대 vs 나머지 터키(...)[편집]
대체로 터키 중부지역은 앙카라를 제외하곤 종교색이 강한 편인데, 그 중에서도 앙카라와 인접한 3개 도인 찬크르(Çankırı), 초룸(Çorum), 요즈갓(Yozgat)은 정도가 심해서 심심하다 싶으면 명예살인, 신부 보쌈같은 흉흉한 소식이 들려오는 지역이라 마의 삼각지대(Şeytan Üçgeni)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까인다. 특히 세속주의 성향이 강한 서부지방에선 "어휴 저 무식한 촌것들은 별 수 없다." 라고 까며, 쿠르드가 많은 동부지방에서도 극렬 튀르크 민족주의자들이 많은 이 지방에 대해 "저새끼들은 무슬림은커녕 사람도 아니다!" 라고 까는 중. 여담이지만 찬크르, 초룸, 요즈갓 마의 삼각지대는 전부 산 아니면 숲으로 이루어진 시골뿐이라 도 인구가 눈물나게 적다. 가장 인구가 많은 초룸이 28만, 찬크르가 18만3500, 요즈갓 인구는 10만이 채 안 되는 98,248명이다. 왠지 일본의 군마현기믹도 있다. 세 도 모두 종교적으로 꼴통스러운 곳이라 꼴통 삼각지대(Yobaz Üçgeni)라고도 불린다(...).
2.4.6.10. 초룸 vs 나머지 터키(...)[편집]
꼴통 삼각지대(Yobaz Üçgeni)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지역(...)으로 일반적으로 초룸 사람 하면 굉장히 교활하고 고집스럽다는 편견이 있다. 터키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 중에 "Senin yaptığını Çorumlu (bile) yapmaz!" (네놈이 한 짓은 초룸사람 (조차)도 하지 않는다!) 라는 관용어가 있을 정도. 물론 이 말을 들은 상대방은 거의 백프로 노발대발한다. 상대방이 초룸사람이라면 싸움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2.4.6.11. 카이세리 vs 나머지 터키(...)[편집]
카이세리 사람들은 해당 항목에서도 보면 알 수 있지만 노랭이+악질 장사치 편견이 있다. 말도 안되는 액수로 가격을 후려치는 행위를 "kayserililik yapmak" (카이세리 사람 짓을 한다) 라고 부를 정도. 오스만 제국의 위대한 건축가중 하나인 미마르 시난의 고향이 카이세리인데, 이곳은 예전부터 아르메니아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지역이라 카이세리 사람 = 아르메니아인 = 악질 장사치라는 편견도 있다.

2.5. 아메리카[편집]

2.5.1. 미국[편집]

미국은 각 주가 국가 크기로 큰 경우도 많기 때문에 국가별 지역감정 외에 주 안에서도 지역감정이 있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도시와 농촌간의 정치성향이 달라서 갈등이 있는 경우가 있고 정치적 갈등때문에 주가 분열한 사례도 있다. 대표적으로 웨스트 버지니아주가 있으며 캘리포니아주도 남북갈등이 있다. 캘리포니아 북부와 오리건 주 남부 카운티를 합쳐서 51번째 주를 만들자는 주장도 있었다.
2.5.1.1. (동)북부 VS 남부[편집]
독립하기 이전부터 먼저 상륙한 사람들(버지니아 제임스타운 계열/남부)과 나중에 상륙한 사람들(메이플라워호 계열/북부)간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후 남북전쟁의 영향과 경제적 격차 때문에 본격화되었다. 남부 사람을 놀리는 말로 레드넥이 있다. 반대로 남부사람들은 북부사람을 양키라고 부르면서 경멸한다. 대체적으로 북부 + 서부는 진보 성향의 민주당을 찍어주는 반면 남부는 거의 항상 공화당을 지지한다.[7] 특히 서부의 캘리포니아 주는 아예 민주당이 거저먹는 주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편 공화당에게는 텍사스가 그 역할을 해주고 있다. 따라서 캘리포니아랑 텍사스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데, 인구도 미국 내 1, 2위다. 문서 참고. 결정적으로 남부는 바이블벨트가 많아서인지 북부를 물질만능주의자,무신론자들이 득시글거리는 마굴 취급하며, 반대로 북부는 남부를 같은 공화당 지지자들조차도 사촌과 근친상간하는 가난한 광신도 촌놈들만 사는 곳으로 취급한다.
2.5.1.2. 동부 VS 서부[편집]
서로 최강 논쟁을 벌이고 있다. 동부는 뉴욕을 위시한 메갈로폴리스로 인해 우리가 최고다! 라고 말하고 있고 서부는 동부 퇴물 놈들의 시대는 갔고 이제 서부의 시대라고 드립을 치고 있다. NCR 또한 1932년과 1984년 서부의 로스엔젤레스에서 두 차례 하계 올림픽이 열린 점이나 영화 터미네이터의 흥행[8]까지 강조하면서 올림픽 개최로 서부 지역이 발전하였다고 주장한다. 심지어는 힙합계에서도 동서부 갈등이 심했던 때도 있었고, Notorious B.I.G.2Pac의 사망도 이때문이다.[9] 중부? 그거 밀밭 아닌가? 공대 최고의 라이벌이라고 일컬어지는 MIT칼텍의 관계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고.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스포츠도 동부 서부 나눠서 붙을 때가 있기 때문에 이런 스포츠 시즌에는 서로가 서로를 못잡아먹어서 안달이지만 어디까지나 라이벌 경쟁이란 의미로 서로를 비방하고 있기는 하나 그 본질은 순수하기 때문에 이쪽은 그나마 양반이다. 서부의 LA 레이커스와 동부 보스턴 셀틱스가 결승전에라도 올라 오면, 농담 보태 국가내전이라도 벌일듯이 분위기가 고조된다고. 30년동안 일어나지 않았지만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뉴욕 양키스가 월드 시리즈에서 만난다면 양쪽의 열기는 실로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2.5.1.3. 뉴욕 vs 로스앤젤레스 vs 시카고[편집]
위의 동서부 갈등의 범위를 좁혀 최대 도시들의 갈등만을 이야기한다면 여기에 시카고가 추가로 끼어든다.(...) 모두 세계구급 대도시들인데다 서로의 특색도 독특하다보니 자존심이 강하다. 시카고 vs 뉴욕은 중서부가 발전한 이래 전통적으로 있었던 라이벌 감정[10]에 뉴욕과 LA는 상술한 동서부 갈등, 거기에다 LA와 시카고는 서로 자기네가 미국 제 2의 도시라고 우기는[11] 완전 콩가루 집안 수준의 난장판을 보여준다.
2.5.1.4. 뉴저지 vs 나머지[편집]
뉴저지 사람들은 뭔가 재수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실제 차별의 정도는 거의 없으며 농담따먹기의 소재로 차용될 뿐.
2.5.1.5. 캘리포니아 vs 텍사스[편집]
종교, 정치, 문화 등의 면에서 극과 극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다, 인구 및 경제력이 미국에서 가장 크고 빠른 규모로 성장하는 주가 두 주라서 미국 내 1등 주란 타이틀을 걸고 라이벌 의식이 강하다.
2.5.1.6. 캘리포니아 vs 플로리다[편집]
두 지역 모두 미국산 오렌지 최대 생산지라 오렌지 생산을 두고 지역간 경쟁이 심한 편이다. 국내에서도 미국산 오렌지 중 캘리포니아산과 플로리다산이 수입되기도 하는데 오렌지 재배와 생산을 두고 서로간의 경쟁이 심하다. 세계적으로는 오렌지 생산국인 브라질과도 경쟁한다.
2.5.1.7. 뉴욕 VS 보스턴[편집]
2.5.1.8. 도시 VS 농촌[편집]

2.5.2. 캐나다[편집]

2.5.2.1. 퀘벡 주 VS 나머지※[편집]
캐나다 백과사전 - 캐나다의 분리주의
쉽게 설명해서 영어권 캐나다 VS 프랑스어권 캐나다 되시겠다. 캐나다 퀘벡 주는 본래 프랑스의 북미 식민지였으나 7년 전쟁(프렌치-인디언 전쟁)의 결과 영국에 양도되었다. 이 때문에 퀘벡에는 프랑스계 주민이 많고,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쓰일 정도로 캐나다 다른 지역과 차별성이 강하다. 심지어 분리독립 투표까지 진행되었으나 간발의 차이로 부결된 사례도 있을 정도. 자세한 것은 퀘벡 주 항목 참조.

고등학교 세계지리 단골 출제 유형이므로 알아두면 좋다.
2.5.2.2. 토론토 VS 몬트리올[편집]
위의 '퀘벡 주 vs 나머지' 지역감정의 축소버전. 각각 캐나다를 대표하는 두 도시이며, 규모도 비슷한 수준[12]인데다가, 토론토는 영국계, 몬트리올은 프랑스계의 최대도시인 점에서 경쟁의식이 심하다.[13]
2.5.2.3. 퀘벡 + 오타와/토론토 VS 알버타[편집]
알버타에서 기름 뽑아 판 돈으로 정작 알버타인들의 복지는 개판인데 캐나다라는 정체성조차 부정하는 퀘벡놈들이 지들 산업 돌리는데 쓰는 기름은 잘만 가져다 쓰고 또 기름뽑아 번 돈을 연방차원에서 빼앗아다가 퀘벡것들이 프랑스 정체성 어쩌구하는데 쓰는 행정비용으로 낭비된다는 사실에 굉장히 분개하는 일이 많다.

또 알버타는 캐나다 보수의 성지인데, 여기에 겹쳐 좌파계열 환경보호나 녹색주의자들이 딴지도 걸겸 심심하면 알버타가 추진하는 원유 판매용 파이프라인을 두고 "그거 지으면 환경오염된다~ 그거 기름새면 그 지나가는 지역마다 다 오염되는거 아니냐~" 해가며 온갖 방해를 두고 있기 때문에 알버타인들은 정말 이를 간다.

2014년 이후로 알버타주는 더 이상 부자 주가 아니며, 원유 약세와 미국의 셰일가스 추출 열풍에 이은 미국의 자원 자주독립에 정말 처참히 박살이 나고 있는데 오바마가 환경주의자들과 합세해서 키스톤 XL등의 원유 파이프라인 개설에 반대하다가 이번 트럼프 대통령은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은 다 개구라(!!!) 라며 석탄발전과 원유 파이프라인 건설을 옹호하고 있기 때문에 빨리 트럼프 임기가 지나기 전에 파이프라인을 지어야 하는데 자꾸 토론토와 오타와의 자유당 좌파들이 딴지를 놓으니까 돌아버리겠는 상황이다.

근데 여담으로 트럼프가 바보라서 환경오염이 구라라는 폭탄발언을 한건 절대 아니고, USMCA 협상과 일자리 증진을 위해 다 철저히 계산을 하고 한 발언이며, 실제로 키스톤 파이프라인을 짓도록 해준다면서 캐나다 목축과 소고기의 성지인 알버타주에 미국 소고기와 유제품을 무관세로 팔아도 되도록 무역협상을 때렸기 때문에 알버타주는 진짜 파이프라인 못 지으면 고사하기 일보직전이다.
2.5.2.4. 토론토 VS 밴쿠버[편집]
상술한 캐나다 동부 VS 서부 지역감정이 가장 자주 나오는 형태 되시겠다.
2.5.2.5. 에드먼턴 + 북부 앨버타 주 VS 캘거리 + 남부 앨버타[편집]
캐나다의 석유 공장 앨버타 주의 두 핵심 도시의 지역감정 되시겠다. 캐나다 안에서의 가장 큰 두 도시인 상술한 토론토 VS 몬트리올 이랑도 비슷하고, 한국으로 비교하자면 경북 VS 경남과 비슷하다. 정부 중심지이자 전통의 중심지 에드먼튼[14] VS 경제, 산업의 중심지이자 부상중인 신흥 중심지 캘거리[15] 등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규모도 비슷비슷하기에 더 두드러지게 경쟁심이 나타나는 경우이다.[16] 이것도 스포츠로 이어져서 캘거리 VS 에드먼턴을 앨버타 대전이라 부른다. 대표적인 예가 NHL에드먼턴 오일러스 VS 캘거리 플레임스

2.5.3. 브라질[편집]

  • 상파울루 VS 리우데자네이루
    두 도시 모두 브라질의 유명 대도시라 라이벌적 지역감정으로 대립하고 있다. 결국 브라질이 브라질리아로 천도했을 지경.
  • 리우데자네이루 VS 브라질리아
    옛 수도와 현 수도라는 점에서 지역감정이 있다.
  • 북동부 VS 남부※
    원래는 브라질 북동부 지역이 먼저 개발되었으며 이 지역 주민은 주로 노예무역을 통해 강제 이주당한 흑인과 브라질 원주민 및 백인 농장주간의 혼혈이다. 이후 19세기 노예무역이 국제적으로 금지당하면서 브라질 정부는 새로 브라질 남부 지방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유럽 출신 이민자[17]들을 받기 시작하였는데, 이로 인해 브라질 남부 지방은 백인이 주를 차지하게 된다.
    19세기 브라질 북동부에 대규모 기근이 발생한 상황에서 브라질 정부는 새로 개발한 남부 지역에 북동부 주민들을 이주시켜 기근을 완화시킬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흑인들에 대한 구호 활동은 형식적인 수준으로만 하고 유럽계 백인 이민을 받는데만 집중하였다. 오늘날 브라질 북동부와 남부 간의 감정은 지역 감정과 인종 간 대립 두 가지 성격을 띄고 있다 할 수 있다.

2.5.4. 아르헨티나[편집]

2.5.5. 멕시코[편집]

  • 멕시코 북중부 VS 멕시코 남부※
    같은 멕시코에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았지만 북중부 지역은 아즈텍 문명권, 남부 지역은 마야 문명권에 속해 있어서 두 지역간의 정서적 괴리감이 존재하고 있다.
  • 멕시코 시티 VS 틀락스칼라 주※
    각 지역의 전신인 테노치티틀란틀락스칼텍의 역사적 악연 때문에 사이가 매우 나쁘다. 테노치티틀란의 정복전쟁으로 형성된 아즈텍 제국인신공양으로 악명을 떨쳤는데, 대표적인 피해자가 바로 틀락스칼텍인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틀락스칼텍인들은 에르난 코르테스가 이끄는 스페인군에 투항한 다른 멕시코 원주민들보다도 더욱 적극적으로 테노치티틀란에 복수했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도 멕시코 시티 주민들은 틀락스칼라 주민들을 아즈텍 제국을 스페인에 팔아먹은 매국노들의 후손이라고 까며, 반대로 틀락스칼라 주민들은 멕시코 시티 주민들을 인신공양에 미친 인간말종들을 위인으로 추앙하는 정신나간 놈들이라고 깐다. 게다가 최근에는 틀락스칼라 주의 인프라가 멕시코 중부의 다른 지역들(수도인 멕시코 시티 포함)에 비해 뒤떨어지다 보니 그런 면에서 갈등이 있기도 하다.
  • 멕시코 시티 VS 미초아칸 주※
    위의 멕시코 시티 VS 틀락스칼라 주만큼은 아니어도 사이가 영 좋지 않다. 각 지역의 전신인 테노치티틀란과 타라스칸은 서로 적대관계였기 때문이다.

2.6. 아프리카[편집]

2.6.1. 수단[편집]

종교, 인종, 영국의 갈등 조장으로 독립 직후부터 내전이 일어난 끝에 결국 남수단과 분리되고 만다.

2.6.2. 탄자니아[편집]

  • 탕가니카 VS 잔지바르
    탄자니아를 구성하는 지역중 본토인 탕가니카와 인도양의 잔지바르 섬은 제국주의 시대 탕가니카는 독일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잔지바르는 영국의 지배를 받을 정도였으며 역사적인 배경등이 서로 다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두 지역이 독립하고 얼마 뒤 두 합병하여 탄자니아[18] 연합 공화국을 세웠지만 잔지바르는 비자를 따로 받아 입국해 들어가야 했을 정도로 탄자니아 본토인 탕가니카와는 완전히 딴 판이다.

2.6.3. 리비아[편집]

  • 서부(트리폴리타니아) VS 동부(키레나이카)
    사실 트리폴리타니아와 키레나이카는 서로 딴판이라고 인식되어 서로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 약 2년 먼저 독립했던 키레나이카의 키레나이카 토후국의 왕인 이드리스 1세가 연합왕국이었던 리비아 왕국의 왕이 되었고 18년간 강압적으로 독재하면서 모든 정당을 해산시키고 많은 정치범들을 수용하였다. 리비아 왕국의 수도는 트리폴리, 벵가지, 알바이다 총 3곳이었으나 정작 이드리스 1세는 트리폴리를 전혀 신경쓰지 않고 키레나이카에만 혜택을 부여했다. 왕정이 붕괴된 이후 분권 통치가 중심인 자마히리야를 통해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지역 감정이 종식되었다는 것이 입증되었고 리비아는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분권 통치가 사라지고 통합 과도정부가 세워진 이후 반발로 생겨난 1차 리비아 내전 이후 더욱 더 심해졌다. 키레나이카 지방은 2012년에 분리독립을 주장했으며, 2013년 후반에는 본격적으로 반정부 성향의 여덟 부족들은 키레나이카에 바르카(리비아에서 키레나이카를 가리키는 단어)라는 정권을 세워서 2014년까지 리비아 과도정부와 싸우기도 했다. 물론 리비아 당국은 괴뢰 정권이라며 비난했다. 2014년 이후에도 여전히 지역감정이 심했고, 결국 2차 리비아 내전이 발발했다.

2.6.4. 에티오피아[편집]

  • 동부 오가덴 지방 VS 에티오피아 나머지 지방
    소말리인이 주가 되는 오가덴 지방과 에티오피아 나머지 지방 간의 대립이다. 오가덴 전쟁을 꼬투리잡아 틈만 나면 조롱한다.

2.6.5. 중앙아프리카공화국[편집]

  • 서부 VS 동부 - 주로 서부와 동부 지역의 차이로 인해 내전이 발발했다.

2.6.6. 소말리아[편집]

  • 소말릴란드 vs 푼틀란드 및 소말리아 연방과도정부 지역 - 소말리아 내전으로 부족 분쟁 다음으로 지역감정도 심화되었다. 소말릴란드와 푼틀란드 두곳 모두 내분을 해결하여 조금씩 안정화되었으나, 푼틀란드는 소말리아 연방에 가입해 강한 자치권을 부여받은 것과 다르게 소말릴란드는 아예 독립 선언을 해버렸다. 푼틀란드는 소말릴란드를 발전이 느린 무지한 땅이라고 조롱하고 소말릴란드는 푼틀란드를 해적의 집이라고 조롱한다.

2.6.7. 카메룬[편집]

  • 북부 VS 남부 - 1884년부터 1919년까지 독일의 지배를 받았고, 1차 세계대전 이후 카메룬은 프랑스와 영국의 지배를 받아 북부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고 남부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는다. 카메룬은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되었고 1961년 영국으로부터 북쪽 영토를 찾았다. 하지만 카메룬은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곳을 중심으로 움직이다보니 영어를 많이 쓰던 북부 지역의 불만은 심했고, 이는 내전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암바조니아 문서 참조.
[1] 시드니의 라이트 레일도 일부구간이 노면에 오픈되어 있으나 멜버른의 노면전차는 세계 최장거리(250km)로 유명하다.[2] 멜버른은 호주에서 날씨 안좋다고 허구한 날 까이지만(구름낀날 년간 180일, 시드니는 120일) 런던이나 시애틀(둘 다 구름낀날 년간 300일+) 같은 진짜 우중충한 외국도시들에 비하면 화창하기 그지없다. 멜버른에서는 시드니 물가가 비싸다고 자주 까지만 사실은 조금밖에 차이 안난다.[3] 이곳은 아예 시드니-멜버른 지역감정의 결과물로 건설된 곳이다. 처음 호주의 수도를 정할 때 두 도시가 치열하게 대립하다가 결국 양 측의 중간 지역에다 수도를 세우기로 타협했는데, 이 중간 지역이 바로 캔버라.[4] 물론 러시아인 뿐만 아니라 독일계 러시아인, 폴란드계 러시아인, 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 타타르인 등 다른 백인 민족들도 이주해왔다.[5]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지금의 이스탄불 지역이 그리스화되기 전에는 트라키아인이 살고 있었다.[6] 터키에선 낮에 55도까지 치솟는 샨르우르파조차도 에어컨 쓰는 가정이 거의 없는데, 이 지방은 여름이 건조한 다른 터키 지방들과 달리 습하고 더운 지역이라(정확히 말하면 강수량은 낮은데 바닷가라 습기가 바로 밀려온다) 어디서든 에어컨을 볼 수 있다.[7] 재밌게도 과거에는 오히려 남부가 민주당을 지지했다. 1960년대 이후 공화당이 남부의 보수적인 주를 공략하는 ''남부전략"으로 형세가 뒤집어진 것[8] 터미네이터 배경도시가 로스엔젤레스였고 미래세계 역시 서기 2029년 로스엔젤레스이기 때문이다.[9] 사실 동부힙합VS서부힙합보단 레이블간의 힘자랑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10] 마이클 조던뉴욕 닉스를 좋지 않게 만들던 시절에 절정이었다.[11] 사실 도시 자체로만 보자면 이미 시카고보다 LA의 도시권 인구가 2배 가까이 많은 상황에 왜 이것이 논란거리인지는 시카고 문서 참조.[12] 사실은 토론토가 훨씬 크다. 토론토는 해밀턴, 키치너/워털루, 오샤와(오타와랑은 다른 도시다)등의 인접한 쟁쟁한 도시들(해밀턴은 철강 산업으로 유명한 도시이고, 키치너/워털루는 캐나다의 대표 테크 허브로 아주 유명한 곳이다)과 합쳐서 900만 명에 육박하는 광역권을 가지고 있는걸 감안하면 몬트리올의 사실상 2배의 규모인 셈이다.[13] 특히 몬트리올 사람들은 자기들의 도시가 캐나다 최고라는 자부심이 은근 많다.[14] 앨버타 주 주도가 여기다.[15] 참고로 앨버자 주의 유일한 예대인 앨버타 예대가 캘거리에 있다.[16] 2016년 기준으로 캐나다 광역권 인구 순위를 살펴본다면 캘거리가 4위, 에드먼튼이 6위다. 원래는 2011년만 해도 캘거리가 5위, 에드먼튼이 6위여서 두 도시가 바로 붙어있었는데 그새 캘거리가 4위였던 오타와를 역전했다.[17] 19세기 당시 유럽에는 잘 사는 집도 일주일에 고기 한 번 먹는 정도였으나 미국과 아르헨티나의 백인들은 고기를 맨날 먹었다. 당시 유럽 내 열악한 노동환경과 겹쳐서 많은 유럽인들이 "신대륙 이민"을 희망하던 상황이다.[18] 탕가니카의 Tan, 잔지바르의 Zan에다 라틴어 어미 -ia를 덧붙인 게 탄자니아(Tanzania)라는 이름의 유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