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솔로몬 제도 국장.svg 솔로몬 제도 관련 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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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제도 Solomon Islands | ||
국기 | 국장 | |
To Lead is To Serve 이끌어 주는 것은 봉사하는 것이다 | ||
면적 | 28,400㎢ | |
인구 | 703,995명(2021년) | 세계 165위 | |
GDP | 14억 4000만$(2019) | |
1인당 GDP | 2,247$(2019) | |
민족구성 | 멜라네시아인 94.5% | |
수도 | ||
정치체제 | ||
군주 | ||
총독 | 프랭크 카부이(Frank Kabui) | |
총리 | 마나세 소가바레(Manasseh Sogavare) | |
공용어 | ||
화폐단위 | ||
위치 |
1. 개요[편집]
2. 주민[편집]
3. 언어와 종교[편집]
4. 역사[편집]
원래 70여 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멜라네시아인들이 살고 있었다. 1568년 스페인의 항해가인 알바로 데 멘다냐(Álvaro de Mendaña)가 이 섬에서 사금이 많은 것을 보고 보물섬이라고 믿었고 성서에 나오는 풍요의 왕인 솔로몬의 이름을 따 솔로몬 제도(Islas Salomón)라는 이름을 지었다. 1850년대에 영국인이 여기에서 선교를 했으며 이후 사탕수수 농장을 만들고 섬 사람들을 농장으로 끌고 가 사실상 노예처럼 착취했다. 1885년과 1899년 두 차례, 영국인과 독일인이 분리 통치했다. 하지만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솔로몬 제도 안의 독일 영역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관리를 받았다. 그 후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일본이 점령했고 일본과 미국의 치열한 전쟁 후에는 미국이 점령했다. 당시 미국은 솔로몬 제도를 점령함으로써 태평양 전쟁의 판도를 유리하게 이끌 수 있었다.
2차대전 때에는 과달카날 전투[2]가 벌어졌으며 대규모 전투 총 5번, 소규모 교전은 수백 번이 벌어졌다. 덕분에 솔로몬 제도 사이의 종달새 해협에는 46척이나 되는 군함이 가라앉았으며 이 때문에 바닥이 쇠로 되어있다 하여 종달새 해협은 아이언 바텀 사운드로 불리고 있다. 영국은 가장 인구가 많은 말라이타 섬 주민들을 과달카날 섬의 수도 호니아라로 이주시켰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다시 한번 수천명의 말라이타섬 주민들은 이웃 섬으로 옮겨가야 했다.
1978년 솔로몬 제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으나 과달카날과 말라이타 두 섬 주민간 대립은 극심해졌다. 말라이타 섬 주민들은 과달카날 섬 주민들과 여러 갈등을 빚었으며 말라이타 섬 주민들이 경제권을 쥐자 이사타부 자유운동(IFM) 같은 과달카날 민병대들이 말라이타 주민들의 부동산 등을 몰수했다. 바르톨로메오 울루파알루 총리가 미온적인 대처를 보이자 말라이타 주민들은 말라이타 독수리 부대(MEF)를 세우고 울루파알루 총리를 쫓아냈다. 이어 마나세 소가바레 총리가 새 총리가 되었다. 이 내전 상황에서 수천 명이 사망했다. 이 내전과는 별도로 파푸아뉴기니의 부건빌 섬에서 발생한 부건빌 내전에서 반군을 지원하기도 했다.
2002년 호주군이 결국 솔로몬 제도에 개입해서 2003년 내전을 끝냈다. 그럼에도 민족 갈등은 여전하고 정치적 혼란도 끝나지 않아 거의 1~2년에 한 번씩 총리가 축출당하며 아직도 호주가 아주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006년 과달카날인이 총리가 되자 말라이타인들이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대만과의 단교 문제를 들어 말라이타 섬이 독립 주민투표 제안했다. 하지만 중앙정부는 불법이라고 공언했다.#
2차대전 때에는 과달카날 전투[2]가 벌어졌으며 대규모 전투 총 5번, 소규모 교전은 수백 번이 벌어졌다. 덕분에 솔로몬 제도 사이의 종달새 해협에는 46척이나 되는 군함이 가라앉았으며 이 때문에 바닥이 쇠로 되어있다 하여 종달새 해협은 아이언 바텀 사운드로 불리고 있다. 영국은 가장 인구가 많은 말라이타 섬 주민들을 과달카날 섬의 수도 호니아라로 이주시켰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다시 한번 수천명의 말라이타섬 주민들은 이웃 섬으로 옮겨가야 했다.
1978년 솔로몬 제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으나 과달카날과 말라이타 두 섬 주민간 대립은 극심해졌다. 말라이타 섬 주민들은 과달카날 섬 주민들과 여러 갈등을 빚었으며 말라이타 섬 주민들이 경제권을 쥐자 이사타부 자유운동(IFM) 같은 과달카날 민병대들이 말라이타 주민들의 부동산 등을 몰수했다. 바르톨로메오 울루파알루 총리가 미온적인 대처를 보이자 말라이타 주민들은 말라이타 독수리 부대(MEF)를 세우고 울루파알루 총리를 쫓아냈다. 이어 마나세 소가바레 총리가 새 총리가 되었다. 이 내전 상황에서 수천 명이 사망했다. 이 내전과는 별도로 파푸아뉴기니의 부건빌 섬에서 발생한 부건빌 내전에서 반군을 지원하기도 했다.
2002년 호주군이 결국 솔로몬 제도에 개입해서 2003년 내전을 끝냈다. 그럼에도 민족 갈등은 여전하고 정치적 혼란도 끝나지 않아 거의 1~2년에 한 번씩 총리가 축출당하며 아직도 호주가 아주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006년 과달카날인이 총리가 되자 말라이타인들이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대만과의 단교 문제를 들어 말라이타 섬이 독립 주민투표 제안했다. 하지만 중앙정부는 불법이라고 공언했다.#
5. 경제[편집]
6. 군사[편집]
7. 사회[편집]
8. 외교[편집]
9. 스포츠[편집]
10. 한글 보급[편집]
2012년 10월 8일 솔로몬 제도의 과달카날주와 말라이타주가 한글을 표기문자로 도입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유엔 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와 서울대 인문정보연구소의 주관으로 한글 모어 교육 사업을 시행하는 것이다. 과달카날주 1만6천여명이 사용하는 카리어와 말라이타주 5만여명이 사용하는 꽈라아에어의 한글 교과서를 제작하고 현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한글 토착어 교육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쪽은 찌아찌아쪽과는 상황이 많이 다른데, 일단 찌아찌아어는 기존에 이미 로마자를 사용하고 있는데다가 로마자를 사용하는 인도네시아어까지 배울 필요가 있고, r과 l 발음에 구분을 두고 있던 상황이라 한글이 적합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반면에 솔로몬 제도의 경우는 이때까지 문자 교육이 전부 실패했었고 이에 대안으로 한글을 선택했다. 당국 정부도 매우 협조적인 태도로 지원한다고 한다.
2013년 10월 보도(#)에 의하면 예산 부족으로 한글 교육이 일시 중단됐다는 소식이 떴다. 이후 보급 사업이 재개되었다고 한다.
이쪽은 찌아찌아쪽과는 상황이 많이 다른데, 일단 찌아찌아어는 기존에 이미 로마자를 사용하고 있는데다가 로마자를 사용하는 인도네시아어까지 배울 필요가 있고, r과 l 발음에 구분을 두고 있던 상황이라 한글이 적합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반면에 솔로몬 제도의 경우는 이때까지 문자 교육이 전부 실패했었고 이에 대안으로 한글을 선택했다. 당국 정부도 매우 협조적인 태도로 지원한다고 한다.
2013년 10월 보도(#)에 의하면 예산 부족으로 한글 교육이 일시 중단됐다는 소식이 떴다. 이후 보급 사업이 재개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