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 3대조 翼祖 | 익조 | ||
묘호
| 익조(翼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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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 익왕(翼王) → 강혜성익대왕(康惠聖翼大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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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전주(全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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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 행리(行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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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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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연도 미상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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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호
| 지릉(智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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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
| 정숙왕후(貞淑王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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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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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후
| 효공왕후(孝恭王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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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목조 이안사와 효공왕후 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네번째 아들로 목조가 죽은 다음 해인 1275년 3월에 천호 벼슬을 물려받았고 이후 쌍성 등지의 고려 군민(軍民)을 다스리는 다루가치의 일을 맡았다.
하지만 여진족 천호들에게 쫓겨나는데 당시 두만강 주변의 천호들은 모두 여진족이었지만 이행리만 유일하게 고려 출신이었다. 그래서 두만강 북쪽에 있던 동족들과 이행리를 습격해 죽이기로 하고 이를 모르는 이행리에게 사냥간다는 핑계로 거사를 하면 도망갈 도주로를 차단하려고 했다. 그런 줄도 모르는 이행리는 돌아오는 길에 한 노파를 만났는데 이 사실을 전해 듣고 두만강 하류에 있는 적도라는 섬에서 가솔들과 만나기로 하고 도주로를 찾았다.
하지만 이미 여진족으로 가득차 있었고 겨우 적도 기슭에 다다랐지만 두만강 물이 깊고 강폭이 넓어 건널 수가 없었다. 추격병까지 쫓아왔지만 그 때 갑자기 썰물 덕분에 물이 빠져 물이 얕아졌고 건널 수가 있었다. 나중에 추격병들이 왔을 때는 밀물이 밀려와 다시 수심이 깊어 건널 수가 없었다. 이행리는 적도에서 움집을 짓고 잠시 살다가 배를 10척 정도 만들어 가솔과 남아 있던 고려인들과 함께 의주, 즉 원산으로 향했다. 의주는 아버지 목조가 병마사로 선정을 베풀던 곳이라 그를 따르는 무리가 많았고 경흥에 살던 고려인들도 대거 오는 바람에 쉽게 세력이 다시 커졌다.
이행리는 얼마 후에 원나라의 일본 원정에 참가했는데 이 때 충렬왕을 만났다. 충렬왕은 접견 자리에서
하지만 여진족 천호들에게 쫓겨나는데 당시 두만강 주변의 천호들은 모두 여진족이었지만 이행리만 유일하게 고려 출신이었다. 그래서 두만강 북쪽에 있던 동족들과 이행리를 습격해 죽이기로 하고 이를 모르는 이행리에게 사냥간다는 핑계로 거사를 하면 도망갈 도주로를 차단하려고 했다. 그런 줄도 모르는 이행리는 돌아오는 길에 한 노파를 만났는데 이 사실을 전해 듣고 두만강 하류에 있는 적도라는 섬에서 가솔들과 만나기로 하고 도주로를 찾았다.
하지만 이미 여진족으로 가득차 있었고 겨우 적도 기슭에 다다랐지만 두만강 물이 깊고 강폭이 넓어 건널 수가 없었다. 추격병까지 쫓아왔지만 그 때 갑자기 썰물 덕분에 물이 빠져 물이 얕아졌고 건널 수가 있었다. 나중에 추격병들이 왔을 때는 밀물이 밀려와 다시 수심이 깊어 건널 수가 없었다. 이행리는 적도에서 움집을 짓고 잠시 살다가 배를 10척 정도 만들어 가솔과 남아 있던 고려인들과 함께 의주, 즉 원산으로 향했다. 의주는 아버지 목조가 병마사로 선정을 베풀던 곳이라 그를 따르는 무리가 많았고 경흥에 살던 고려인들도 대거 오는 바람에 쉽게 세력이 다시 커졌다.
이행리는 얼마 후에 원나라의 일본 원정에 참가했는데 이 때 충렬왕을 만났다. 충렬왕은 접견 자리에서
그대는 본국(고려) 벼슬을 하던 집안이니 어찌 근본을 잊을 것인가? 지금 그대의 거동을 보니 마음이 본국에 있음을 알겠다.
3. 가계
- 아버지: 조선 추존국왕 목조 이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