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이름 | 아미우카르 바르부이 (Amílcar Barbuy) |
생년월일 | |
사망년월일 | |
국적 | |
출신지 | |
포지션 | 센터 하프 |
신체조건 | 178cm / 72kg |
등번호 | -[1] |
소속팀 | |
국가대표 | 19경기 / 5골 (1916-1924) |
감독 | SS 라치오 (1931-1932) 상파울루 FC (1939) 파울리스트라 이탈리아 (?) SC 코린치안스 (?) 포르투게자 (?) 포르투게자 산치스타 (?) 클루비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 |
1. 생애[편집]
1.1. 선수 생활[편집]
아미우카르는 이탈리아계로 1913년부터 코린치안스에서 활동하였다. 첫 코파 아메리카에서부터 브라질 대표팀으로 활약하였다. 원래 포지션은 센터 포워드였으나 1917년 코파 아메리카부터 센터 하프로 뛰었다.
1923년에는 파울리스트라 이탈리아로 트레이드되었고 1930년까지 선수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세리에 A의 SS 라치오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선수로서 총 208경기를 뛰고 89골을 기록하였다.
1923년에는 파울리스트라 이탈리아로 트레이드되었고 1930년까지 선수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세리에 A의 SS 라치오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선수로서 총 208경기를 뛰고 89골을 기록하였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편집]
지휘 능력, 정확한 태클, 게임을 읽는 능력, 강력한 슈팅에 정확한 롱패스까지 갖춘 토탈 패키지 수준의 선수였다고 전해진다. 특히 기술은 후대의 축구황제 펠레와 비견될 정도로 뛰어났다고 한다.
첫 소속팀 SC 코린치안스에서는 팀의 주장이자 네쿠의 뒤를 이은 아이돌이었다. 그리고 이후 소속팀인 파울리스트라 이탈리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첫 소속팀 SC 코린치안스에서는 팀의 주장이자 네쿠의 뒤를 이은 아이돌이었다. 그리고 이후 소속팀인 파울리스트라 이탈리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3. 뒷이야기[편집]
- 아미우카르의 형 헤르모지니스는 석판공으로 일하면서 여러 상징들을 디자인했다.
- 선수 생활의 후반기에는 파우메이라스에서 뛰었지만 그는 항상 코린치안스를 그리워했다. 아들의 회고에 의하면 아미우카르는 파우메이라스 유니폼 안에 항상 코린치안스 셔츠를 입었다고.
- 죽은 지 25년 후인 1990년. 그의 이름이 상파울루시 북서부의 아니안게라 고속도로 근처 산토도밍고 공원 근처의 길에 명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