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개요[편집]
2. 경기장[편집]
도시 | 경기장 이름 | 수용인원 |
20,000명[1] |
3. 진행 방식[편집]
- 5개국이 출전한 풀리그 방식이었다. 각 팀은 한 번씩 경기를 치렀으며 순위가 가장 높은 팀이 우승팀이 되었다.
- 승점은 승리팀에게 2점, 무승부시에는 1점씩, 패배팀에게 0점이 주어졌다.
4. 결과[편집]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
1 | 4 | 1 | 3 | 0 | 4 | 2 | +2 | 5 | ||
2 | 4 | 2 | 1 | 1 | 5 | 3 | +2 | 5 | ||
3 | 4 | 2 | 1 | 1 | 3 | 1 | +2 | 5 | ||
4 | 4 | 2 | 0 | 2 | 6 | 3 | +3 | 4 | ||
5 | 4 | 0 | 1 | 3 | 1 | 10 | -9 | 1 | ||
경기장 | ||
경기일 | 1922년 9월 17일 | |
국 가 | ||
득 점 | 1 | 1 |
득점자 | 타투 (9') | 마누엘 브라보 (41') |
경기장 | ||
경기일 | 1922년 9월 23일 | |
국 가 | ||
득 점 | 0 | 2 |
득점자 | 후안 카를로스 에기 (10') 안토니오 우르디나란 (19')(PK) | |
경기장 | ||
경기일 | 1922년 9월 24일 | |
국 가 | ||
득 점 | 1 | 1 |
득점자 | 아미우카르 바르부이 (71') | 헤라르도 리바스 (14') |
경기장 | ||
경기일 | 1922년 9월 28일 | |
국 가 | ||
득 점 | 4 | 0 |
득점자 | 앙헬 치에사 (10') 훌리오 프란시아 (36') 훌리오 프란시아 (41') 호세 가슬리니 (41') | |
경기장 | ||
경기일 | 1922년 10월 1일 | |
국 가 | ||
득 점 | 0 | 0 |
득점자 | - | - |
경기장 | ||
경기일 | 1922년 10월 5일 | |
국 가 | ||
득 점 | 3 | 0 |
득점자 | 훌리오 라미레스 (23') 일데폰소 로페스 (38') 루이스 프레테스 (54') | |
경기장 | ||
경기일 | 1922년 10월 8일 | |
국 가 | ||
득 점 | 1 | 0 |
득점자 | 펠리페 부포니 (43') | |
경기장 | ||
경기일 | 1922년 10월 12일 | |
국 가 | ||
득 점 | 0 | 1 |
득점자 | 카를로스 엘리세체 (7') | |
경기장 | ||
경기일 | 1922년 10월 15일 | |
국 가 | ||
득 점 | 2 | 0 |
득점자 | ||
경기장 | ||
경기일 | 1922년 10월 18일 | |
국 가 | ||
득 점 | 0 | 2 |
득점자 | 훌리오 프란시아 (63') 훌리오 프란시아 (79')(PK) | |
경기장 | ||
경기일 | 1922년 10월 22일 | |
국 가 | ||
득 점 | 3 | 0 |
득점자 | ||
1922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 |
두 번째 우승 |
5. 기록실[편집]
11경기에서 22골이 터지면서 경기당 평균 2골을 기록하였다.
6. 수상[편집]
6.1. MVP[편집]
6.2. 득점 순위[편집]
7. 뒷이야기[편집]
- 마지막 시합인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의 경기에서 후반 34분 페널티 킥 판정이 나왔다. 파라과이 선수들은 이 시합에서 비기기만 해도 우승이 확정되기 때문에 1대0으로 지고 있었어도 끈기있게 시합을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페널티 킥 판정은 파라과이 선수들을 크게 자극하였고, 이에 반발하여 골키퍼를 제외한 선수들 전원이 경기장 밖으로 나가버리는 등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골키퍼 데니스만이 경기장에 남아 페널티 킥에 대비하였지만 결국 실점하고 말았다. 이 경기에서 2대0으로 패배하는 바람에 개최국 브라질과 최종전을 치러야했고 파라과이는 최종전에서 3대0으로 패배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