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대 이시다 가쓰유키 | → | 제42대 신도 요시타카 | → | 제43대 이시다 가쓰유키 |
제43대 이시다 가쓰유키 | → | 제44대 신도 요시타카 | → | 제45대 이시다 가쓰유키 |
제45대 이시다 가쓰유키 | → | 제46~48대 신도 요시타카 | → | 현직 |
일본 제17대 총무대신 新藤義孝 신도 요시타카 | |
이름 | 신도 요시타카 (新藤義孝) |
출생 | |
학력 | 메이지대학 문학부 일본문학과 졸업 |
가족 | |
정당 | |
의원 선수 | 7 (중) |
의원 대수 | |
지역구 | |
현직 | |
약력 | |
1. 개요
2. 생애
사이타마현 카와구치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카와구치시립 마에카와 소학교, 우라와시립[7] 키시 중학교, 메이지대학 부속 나카노 고등학교를 거쳐 메이지대학 문학부 일본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카와구치시 시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1991년 카와구치시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현의원을 목표로 했으나 소선거구 개편으로 중의원을 목표로 하여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사이타마현 제2구에 출마해 석패율제로 당선되면서 원내에 진출한다. 2009년 9월 28일에 치러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는 1996년 당선 동기인 오무라 히데아키·스가 요시히데·마츠모토 준 등과 함께 고노 다로를 총재 후보로 추천하였으며, 아베 신조 2차 내각 출범 이후 다루토코 신지의 후임으로 총무대신 및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등을 역임한다. 후임은 다카이치 사나에.
2015년 10월 자민당 정책조사회장 대리에 취임하고 2019년 오노 모토히로에게 사이타마현지사 선거에 패배한 책임으로 자민당 사이타마현 연합회 회장 직을 퇴임했다.
대학 졸업 후 카와구치시 시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1991년 카와구치시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현의원을 목표로 했으나 소선거구 개편으로 중의원을 목표로 하여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사이타마현 제2구에 출마해 석패율제로 당선되면서 원내에 진출한다. 2009년 9월 28일에 치러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는 1996년 당선 동기인 오무라 히데아키·스가 요시히데·마츠모토 준 등과 함께 고노 다로를 총재 후보로 추천하였으며, 아베 신조 2차 내각 출범 이후 다루토코 신지의 후임으로 총무대신 및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등을 역임한다. 후임은 다카이치 사나에.
2015년 10월 자민당 정책조사회장 대리에 취임하고 2019년 오노 모토히로에게 사이타마현지사 선거에 패배한 책임으로 자민당 사이타마현 연합회 회장 직을 퇴임했다.
3. 성향
전형적인 우파 정치인이다. 매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고 있으며, ‘다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에 가입되어 있다.
또한 2011년 경, 대한항공 A380 독도 시범비행을 비롯한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한 항의로 같은 당 소속의 극우 정치인인 이나다 도모미, 사토 마사히사 그리고 유신정당 신풍 대표 스즈키 노부유키와 함께 김포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입국하여 울릉도를 방문하려고 했으나 입국을 거부당했다. 그리고 2012년 경에는 미국 뉴저지주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를 철거하라고 요구하는 등, 여러모로 한국 입장에선 매우 달갑지 않은 인물이다.
또한 2011년 경, 대한항공 A380 독도 시범비행을 비롯한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한 항의로 같은 당 소속의 극우 정치인인 이나다 도모미, 사토 마사히사 그리고 유신정당 신풍 대표 스즈키 노부유키와 함께 김포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입국하여 울릉도를 방문하려고 했으나 입국을 거부당했다. 그리고 2012년 경에는 미국 뉴저지주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를 철거하라고 요구하는 등, 여러모로 한국 입장에선 매우 달갑지 않은 인물이다.
4.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1991 - | 정계 입문 |
5.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락 | 비고 |
1996 |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75,642표(36.3%) | 당선(석패율제) | 초선 | ||
2000 |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82,581표(35.3%) | 당선(1위) | 재선 | ||
2003 | 91,095표(40.6%) | 낙선(2위) | ||||
2005 | 138,376표(51.8%) | 당선(1위) | 3선 | |||
2009 | 112,920표(40.1%) | 당선(석패율제) | 4선 | |||
2012 | 112,484표(46.6%) | 당선(1위) | 5선 | |||
2014 | 128,938표(64.8%) | 당선(1위) | 6선 | |||
2017 | 110,072표(52.5%) | 당선(1위) | 7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