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TV쇼 진품명품-출장감정/방영 목록/2016~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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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6년]]2. [[2017년]]

1. 2016년

회차
방송일
지역
감정위원
감정품
연대
최종감정가
1031
이상문
토기 목긴항아리[2]
1800년 정도
200만원
양의숙
양산 반닫이[6]
100년 이하[7]
100년 이상[8]
100만원
김영복
내방가사
약 70년 전 [10]
50만원
진동만
석하(石下) 김우범(金禹範)[12]의 <금강산 영원도>
150만원
1032
이상문
백자 매병
약 450년 전
50만원
양의숙
손화로(유기)
약 102년 전
80만원
김영복
정입 선생 문집
30만원
진동만
한북문(漢北門)도[14]
150만원
1033
이상문
청자흑백 상감국화 문잔과 잔받침
약 700년 전
150만원[16]
진동만
단오풍경 방(倣)작
5만원[18]
김영복
방윤명의 교지[20]
50만원
1034
이상문
청화백자 대나무 사각연적
?
200만원
양의숙
실첩[22]
약 100년 전
80만원
진동만
우후(雨後) 금강도
200만원
김영복
설정집 3권
60만원[24]
1035
이상문
음양각꽃무늬청자대접
약 900년 전
300만원
양의숙
나주 반닫이
약 200년 전
350만원
진동만
의제(毅齊) 허백련(許百鍊)의 <기명절지도>
150만원
김영복
무이구곡시 10폭 병풍
500만원
1037
이상문
청자 흑백상감 연꽃문 소병[26]
약 600년 전
(조선시대 초기)
100만원
양의숙
백동 화로[28]
약 100년 전
200만원
진동만
청전 이상범의 <춘경산수도>[30]
450만원
김영복
예조 입안[32]
200만원
1038
이상문
청화진사 개구리 양각면적
약 120년 전
300만원
양의숙
물허벅
1894년
(광서 20년)
30만원
진동만
의제(毅齊) 허백련(許百鍊)의 <춘경산수도>[34]
130만원
1039
양의숙
다식판[36]
약 100년 전
50만원
진동만
의제(毅齊) 허백련(許百鍊)의 <석죽도>
100만원
김영복
초등대한지지 [38]
30만원
1040
이상문
청화백자용무늬주병
200만원
양의숙
통영 2층농
약 100년~
120년
400만원
진동만
소정 변관식의 <추경산수화>
250만원[40]
1041
이상문
청자흑백상삼딸기국화문발[42]
약 800년 전
200만원
양의숙
고이댕기 2점
50만원
진동만
규당(葵塘) 한유동(韓維東)의 <설경산수도> [44]
50만원
1042
이상문
청화백자모란문항아리
약 180년 전
100만원
양의숙
먹줄통
년대
40만원
진동만
청전 이상범의 <풍죽도>
150만원
김영복
땅 매매문서
50만원
1043
이상문
녹청자광구편병
약 900년 전
50만원
양의숙
고창 받닫이
약 200년 전
150만원
김영복
논어+논어언해 9권
300만원
1044
이상문
철화백자탕기
약 400년 전
100만원
김영복
최남선의 <시조유취>
50만원
1045
이상문
청화백자국화나비문항아리
400만원
양의숙
방짜 대야와 주물 양푼 2점
80만원[46]
진동만
석연(石蓮) 이공우(李公愚)의 묵매도 [48]
18세기
150만원
1046
이상문
청화백상감국화문8각접시[51]
약 800년 전
5만원[52]
양의숙
전라도 반닫이
약 200년 전
350만원
김영복
설주(雪舟) 송운회(宋運會)의 글씨[54]
20만원
진동만
최북(崔北)의 하경산수화(위작) [57]
0원(위작)[58]
1047
이상문
순청자 잔과 잔대
약 700년 ~ 800년 전(잔)
약 900년 전(잔대)
150만원[60]
양의숙
3단 목침
약 50~ 60년
40만원
김영복
창암 이삼만의 <글씨 체본(體本)> [62]
200만원
1048
이상문
청자 매병
약 900년 전
500만원
진동만
취장(翠堂) 장덕(張德)의 <효금도(孝禽圖)>[64]
35만원
김영복
원교 이광사(李匡師)의 글씨[66]
200만원
1049
이상문
청화백자용문주병
약 150년 전
300만원
양의숙
남방위
약 130년 전
100만원
진동만
춘초 지성채의 <관폭도> [68]
35만원
김영복
성재 김태석의 글씨 [70]
18세기
100만원
1050
이상문
청자백상감인화문발
약 600년
100만원
양의숙
교의와 위패함
약 120년 ~
130년 전
100만원
진동만
중광 선학도[72]
년대
150만원
김영복
상설고문진보[74]
1700년대 말
50만원
1051
이상문
분청인화문주병
약 500년 전
200만원
양의숙
빗접
약 200년 전
300만원
진동만
소정 변관식의 <추경산수화>(관폭도)
300만원
김영복
번암 채재공의 <글씨>
1,000만원
1052
이상문
청자발(靑磁鉢) 4점[77]
100만원[78]
양의숙
놋새 약제 도구
약 200년 전
40만원
진동만
미산 허형의 청해전경(凊海全景) [80]
3,000만원
김영복
김평묵(金平默)의 <중암선생별집>[82]
100만원
(권당 20만원)
1053
이상문
청화백자 용무늬 주병
약 150~160년 전
80만원
양의숙
(먹간나무로 만든) 2층 농
약 200년 전
500만원
진동만
의도인 허백련(許白鍊)의 <노안도(蘆安圖)>[84]
150만원
김영복
국조시산(國朝詩刪) [86]
약 200년~250년 전
500만원
1054
이상문
순백자 제사용 주병
약 150년 전
70만원
김영복
윤제술(尹濟述)의 글씨[90][91]
100만원[92]
1055
이상문
분청귀얄문항아리[94]
약 500년 전
70만원
양의숙
호패[96]
약 250년 전
100만원
진동만
청전 이상범의 <풍경화>
1940년대 전후
700만원
김영복
설송(雪松) 최규상(崔圭祥)의 <10폭 병풍>[99][100]
1940년대 전후
500만원
1056
이상문
옹기 연적
약 100년 전
5만원
양의숙
우각 빗치게[104], 어피 안경집[105]
년대
65만원[106]
진동만
남농 허건의 <추경산수화(秋景山水畵)>
300만원
김영복
동리 김시종의 글씨
100만원
1057
이상문
청화백자 용준(용항아리 약 170년) [115] [116]
청화백자 모란 무늬호(모란문 항아리)[117][118] [119]
약 170년[120]
약 200년 전[121]
400만원 [122]
양의숙
호패술 2점(무관:짙은 색+문관:밝은 색) [126] [127] [128]
약 150 ~ 200년
100만원
진동만
미산(米産) 허형(許瀅)의 하경산수화 [131][132]
년대
30만원
1058
이상문
분청자 마상배[134]
약 600년 전
200만원
양의숙
풀무(궤풀무) [136]
약 50년 ~ 60년 전
150만원
김영복
위창 오세창(吳世昌)의 글씨 [138]
150만원
진동만
동방삭도(東方朔圖) [140]
35만원
1059
이상문
청자 퇴화문 유병[144][145] [146]
12세기
300만원
진동만
기로세련계도 모작[149] [150]
100만원
김영복
황익한의 교지[152]
200만원
1060
이상문
백자음각철화새무늬연적
청화백자산수죽무늬사각연적[159][160][161][162][163]
450년 ~ 500년[164]
0원(위조품)
양의숙
약 180~200년 전
180만원
진동만
책가도(柵袈圖)[185][186][187][188][189][190]
250만원
김영복
1986년
500만원
1061
이상문
청자주전자형 연적[210][211][212]
900년 전
500만원
양의숙
경상도 반닫이[217][218][219][220]
약 200년 전
200만원
김영복
무과 중시 교지[227][228][229][230][231][232]
1886년
(광서 12년)
200만원
진동만
오원 장승업(吾園 張承業)의 풍속화[239][240][241][242][243][244]
0원(위작)
1062
양의숙
찬합
약 100년 전
150만원
진동만
미산 허형의 10폭 묵화[252][253][254][255][256][257][258]
300만원
김영복
김노양의 교지[264][265][266][267][268]
200만원
1063
이상문
청화백자 칠보문필세연적
년대
800만원
양의숙
전통 혼례품 일습
년대
200만원
김영복
설송 최규상의 10폭 전서 병풍
년대
100만원
1064
이상문
분청 인화문 발[274]
15세기 말 ~
16세기
250만원
양의숙
방짜양푼과 방짜요강
약 200년 전
100만원
진동만
화조도 10폭 병풍
300만원
1067
이상문
청화백자운학죽문주병[287][288][289][290][291][292] [293]
약 180년 전 [294]
1,000만원
양의숙
조선 시대
400만원
진동만
춘곡 고희동(春谷 高義東)의 산수화(山水畵)[330][331][332][333][334][335][336][337][338]
150만원
김상환[347]
예조입안(禮曹立案)[348][349][350][351][352][353][354]
200만원
1068
대구광역시
교육청 (2편)
년대
만원
년대
만원
년대
만원
1069
년대
만원
년대
만원
년대
만원
1070
년대
만원
년대
만원
년대
만원
1071
년대
만원
년대
만원
년대
만원
1072
년대
만원
년대
만원
년대
만원
1073
년대
만원
년대
만원
년대
만원
1074
년대
만원
년대
만원
년대
만원
1075
년대
만원
년대
만원
년대
만원
1076
년대
만원
년대
만원
년대
만원
1077
년대
만원
년대
만원
년대
만원

2. 2017년

회차
방영일
감정 의뢰 지역
감정위원
감정품
연대
최종감정가
1079
이상문
청자흑백상감유문주병[356]
14세기
500만원
진동만
청전 이상범의 추경산수화 위작[358]
연대 미상
0원
양의숙
말과 부손
연대 미상
50만원
1080
년대
만원
년대
만원
년대
만원
1081
년대
만원
년대
만원
년대
만원
1083
년대
만원
년대
만원
년대
만원
1083
년대
만원
년대
만원
년대
만원
1084
년대
만원
년대
만원
년대
만원
1085
년대
만원
년대
만원
년대
만원
1086
년대
만원
년대
만원
년대
만원
1087
년대
만원
년대
만원
년대
만원
1088
년대
만원
년대
만원
년대
만원
1089
년대
만원
년대
만원
년대
만원
1090
년대
만원
년대
만원
년대
만원
1091
년대
만원
년대
만원
년대
만원
1093
년대
만원
년대
만원
년대
만원
1094
년대
만원
년대
만원
년대
만원
[1] 주둥이 부분이 깨져 다시 붙임[2] 주둥이 부분이 깨져 다시 붙임[3] 느티나무로 제작, 서랍에는 장서 문서 보관[4] 서랍과 장식[5] 반닫이 몸통[6] 느티나무로 제작, 서랍에는 장서 문서 보관[7] 서랍과 장식[8] 반닫이 몸통[9] 일제강점기 말 ~ 해방 직후 작품[10] 일제강점기 말 ~ 해방 직후 작품[11] 1880년~1930년대 근대 문인화가[12] 1880년~1930년대 근대 문인화가[13] 유형문화재 제33호 홍지문(弘知門)의 다른 이름.[14] 유형문화재 제33호 홍지문(弘知門)의 다른 이름.[15] 잔받침 100만원 + 잔 50만원[16] 잔받침 100만원 + 잔 50만원[17] 신윤복의 도장도 없고, 크기나 구도가 진품과 다르다.[18] 신윤복의 도장도 없고, 크기나 구도가 진품과 다르다.[19] 방씨 집안의 교지[20] 방씨 집안의 교지[21] 북한에서 쓰던 실책[22] 북한에서 쓰던 실책[23] 한권에 20만원씩 총 3권[24] 한권에 20만원씩 총 3권[25] 조선 초기 상강기법이 쇠퇴해가던 시기에 만든 청자[26] 조선 초기 상강기법이 쇠퇴해가던 시기에 만든 청자[27] 손잡이의 박쥐 문양은 복을 상징[28] 손잡이의 박쥐 문양은 복을 상징[29] 청전 이상범의 40대 때 작품으로, 10년전에 방송되어 감정가 50만원정도 였다고 한다.[30] 청전 이상범의 40대 때 작품으로, 10년전에 방송되어 감정가 50만원정도 였다고 한다.[31] 친정어머니가 주신 문서. 아버지의 대변 맛을 보며 아버지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돌아가신 후 3년 동안 시묘(侍墓)룰 극진히 했다.[32] 친정어머니가 주신 문서. 아버지의 대변 맛을 보며 아버지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돌아가신 후 3년 동안 시묘(侍墓)룰 극진히 했다.[33] 의제 허백련(1891~1977) - 근대 한국화가로 전형적 남종화(南宗畵) 풍을 그렸던 상징적 인물[34] 의제 허백련(1891~1977) - 근대 한국화가로 전형적 남종화(南宗畵) 풍을 그렸던 상징적 인물[35] 남편이 수집한 의뢰품이다.[36] 남편이 수집한 의뢰품이다.[37] 경주시에서 온 의뢰품으로, 증조부가 남긴 책이다.[38] 경주시에서 온 의뢰품으로, 증조부가 남긴 책이다.[39] 해당 작가의 작품이 많이 남아있기에 감정가 하락[40] 해당 작가의 작품이 많이 남아있기에 감정가 하락[41] 바깥쪽은 흑백상감+역상감 기법을 사용[42] 바깥쪽은 흑백상감+역상감 기법을 사용[43] 규당 한유동(1913~1992) - 인물화와 화조화에 뛰어난 근현대 화가[44] 규당 한유동(1913~1992) - 인물화와 화조화에 뛰어난 근현대 화가[45] 방짜 대야(60만원), 주물 양푼(20만원)[46] 방짜 대야(60만원), 주물 양푼(20만원)[47] 석연 이공우(1805 ~ ?)[48] 석연 이공우(1805 ~ ?)[49] 40년전 아버지로부터 받은 도자기[50] 이가 빠져서 감정가 하락[51] 40년전 아버지로부터 받은 도자기[52] 이가 빠져서 감정가 하락[53] 설주 송운회(1874 ~ 1935) - 전라남도 보성군 태생으로 중국의 서체와 동국전체를 섭렵해 설주체라는 독특한 필체를 만들었다.[54] 설주 송운회(1874 ~ 1935) - 전라남도 보성군 태생으로 중국의 서체와 동국전체를 섭렵해 설주체라는 독특한 필체를 만들었다.[55] 최북 (생년 미상) - 조선 후기의 화가 산수화와 메추라기를 특히 잘 그렸음. 1747년~1947년 통신사 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기록이 있다.[56] 최북(崔北)사라는 글씨도 위작. 1985년에 80만원을 주고 구매했다고 하는데, 최북의 진품은 약 8,000만원 ~ 1억원의 가치라 한다.[57] 최북 (생년 미상) - 조선 후기의 화가 산수화와 메추라기를 특히 잘 그렸음. 1747년~1947년 통신사 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기록이 있다.[58] 최북(崔北)사라는 글씨도 위작. 1985년에 80만원을 주고 구매했다고 하는데, 최북의 진품은 약 8,000만원 ~ 1억원의 가치라 한다.[59] 잔 : 100만원, 잔대 : 50만원[60] 잔 : 100만원, 잔대 : 50만원[61] 창암 이삼만(1770~1947) - 조선 후기의 서예가. 초서를 잘 썼으며 그의 서체를 창암체라 함.[62] 창암 이삼만(1770~1947) - 조선 후기의 서예가. 초서를 잘 썼으며 그의 서체를 창암체라 함.[63] 취당 장덕(1907~1976) - 화조도와 매화를 잘 그렸음. 1927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 경력이 있다.[64] 취당 장덕(1907~1976) - 화조도와 매화를 잘 그렸음. 1927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 경력이 있다.[65] 이광사(1705~1777)[66] 이광사(1705~1777)[67] 춘초 지성채(1899 ~1980)[68] 춘초 지성채(1899 ~1980)[69] 청채 김태석(1985~미상)[70] 청채 김태석(1985~미상)[71] 중광 스님(1934~2002)[72] 중광 스님(1934~2002)[73] 과거 시험때 참고하던 책[74] 과거 시험때 참고하던 책[75] 해무리굽(그릇을 굽을 깍아내 모양이 햇무리 같은 굽) 청자로 고흥과 강진에서 주로 생산되어 남은 수가 많은 편이라 한다.[76] 도자기(접시) 1점당 25만원[77] 해무리굽(그릇을 굽을 깍아내 모양이 햇무리 같은 굽) 청자로 고흥과 강진에서 주로 생산되어 남은 수가 많은 편이라 한다.[78] 도자기(접시) 1점당 25만원[79] 25년 지인이 산 그림으로, 을해년(乙亥年)인 1935년에 완도의 실제 경치를 그린 그림. 지역을 한정해 그린 병풍은 아주 귀한 편이라 한다.[80] 25년 지인이 산 그림으로, 을해년(乙亥年)인 1935년에 완도의 실제 경치를 그린 그림. 지역을 한정해 그린 병풍은 아주 귀한 편이라 한다.[81] 김평묵(1819~1891) – 조선 말기의 학자. 이향로의 제자로 유생들의 위정척사운동을 후원함. 돌아가신 후 1906년 서울에서 제자들이 문집을 발행했고, 본 별집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제자들도 중암 선생의 글과 출판비를 모아 1912년 발행한 것이다.[82] 김평묵(1819~1891) – 조선 말기의 학자. 이향로의 제자로 유생들의 위정척사운동을 후원함. 돌아가신 후 1906년 서울에서 제자들이 문집을 발행했고, 본 별집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제자들도 중암 선생의 글과 출판비를 모아 1912년 발행한 것이다.[83] 노안도(蘆安圖/蘆雁圖) - 갈대와 기러기가 그려져 있는데, 갈대 노(蘆)자와 기러기 안(雁)자와 소리가 노안(老安)과 같아 노후의 편안한 삶을 기원하는 그림[84] 노안도(蘆安圖/蘆雁圖) - 갈대와 기러기가 그려져 있는데, 갈대 노(蘆)자와 기러기 안(雁)자와 소리가 노안(老安)과 같아 노후의 편안한 삶을 기원하는 그림[85] 국조시산 - 허균(許均)이 엮은 시선집으로 정도전부터 퇴계 이황,송강 정철,석주 권필까지 조선 초 중기에 활동한 234명이 시 877수가 실려있음. 의뢰품은 필사본으로 총 9권 중 6권이 들어있음[86] 국조시산 - 허균(許均)이 엮은 시선집으로 정도전부터 퇴계 이황,송강 정철,석주 권필까지 조선 초 중기에 활동한 234명이 시 877수가 실려있음. 의뢰품은 필사본으로 총 9권 중 6권이 들어있음[87] 윤제술(1904~1986) - 교육자이자 정치가,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제자였으며 정계에서 은퇴한 뒤 서예로 말년을 보냄. 퇴계 이황의 시 퇴계(退溪)를 적었다.[88] 신퇴안우분(身退安愚分) - 벼슬에서 물러나니 어리석은 분수에 편안하데, 계상시정거(溪上始定居) - 시냇가 위에 비로소 자기 거처를 정하고, 임류일유성(臨流日有省) - 흐르는 물을 굽어보며 날마다 반성하네[89] 좋은 글씨이지만 남은 작품수가 많아 감정가 하락[90] 윤제술(1904~1986) - 교육자이자 정치가,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제자였으며 정계에서 은퇴한 뒤 서예로 말년을 보냄. 퇴계 이황의 시 퇴계(退溪)를 적었다.[91] 신퇴안우분(身退安愚分) - 벼슬에서 물러나니 어리석은 분수에 편안하데, 계상시정거(溪上始定居) - 시냇가 위에 비로소 자기 거처를 정하고, 임류일유성(臨流日有省) - 흐르는 물을 굽어보며 날마다 반성하네[92] 좋은 글씨이지만 남은 작품수가 많아 감정가 하락[93] 청자 위에 백토로 분을 발라 구워낸 '분청자기'로, 생활도자기로 대량 생산한 물건이다.[94] 청자 위에 백토로 분을 발라 구워낸 '분청자기'로, 생활도자기로 대량 생산한 물건이다.[95] 신분과 품계에 따라 재질이 다른데, 의뢰품은 '소뼈'로 제작된 호패로 바깥 부분은 비단으로 제작되었다.참고로 신분이 낮은 사람은 나무를 사용했다고 한다.[96] 신분과 품계에 따라 재질이 다른데, 의뢰품은 '소뼈'로 제작된 호패로 바깥 부분은 비단으로 제작되었다.참고로 신분이 낮은 사람은 나무를 사용했다고 한다.[97] 설송 최규상(1891~1956) - 전서(箭書)와 예서(豫書), 전각에 능했던 근대 서예가.[98] 중국의 시 중에서 좋은 구절만 골라 쓴 병풍이다. 愛看春山疑讀畵(애간춘산의독화) - 봄 산을 사랑스럽게 보니 마치 그림을 보는 듯 하고 / 靜淵古默似聽香(정연고묵사청향) 고요히 먹을 갈다 보면 마치 향기를 듣는 것 같네.[99] 설송 최규상(1891~1956) - 전서(箭書)와 예서(豫書), 전각에 능했던 근대 서예가.[100] 중국의 시 중에서 좋은 구절만 골라 쓴 병풍이다. 愛看春山疑讀畵(애간춘산의독화) - 봄 산을 사랑스럽게 보니 마치 그림을 보는 듯 하고 / 靜淵古默似聽香(정연고묵사청향) 고요히 먹을 갈다 보면 마치 향기를 듣는 것 같네.[101] 빛치개 빗살 틈에 낀 때를 빼거나 머리에 가르마를 타는 데 사용한 물건으로 우각(소뿔)으로 만든 빗치개는 고급품임[102] 상어 껍질을 붙여서 만든 안경집으로, 어피(魚皮)는 고급 물건에 주로 사용하며 작은 크기로 보아 여성용 돋보기를 담았던 것으로 추정됨.[103] 빛치개 35만원 + 안경집 30만원으로 최종감정가 총 65만원 책정[104] 빛치개 빗살 틈에 낀 때를 빼거나 머리에 가르마를 타는 데 사용한 물건으로 우각(소뿔)으로 만든 빗치개는 고급품임[105] 상어 껍질을 붙여서 만든 안경집으로, 어피(魚皮)는 고급 물건에 주로 사용하며 작은 크기로 보아 여성용 돋보기를 담았던 것으로 추정됨.[106] 빛치개 35만원 + 안경집 30만원으로 최종감정가 총 65만원 책정[107] 용준(龍樽) : 용문의 항아리[108] 을 담기엔 크기가 작은 편[109] 아말감으로 입술 부분을 수리[110] 꿀이나 약을 넣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됨.[111] 모란문 항아리는 최종 감정가가 300만원인데 흠이 나서 최종감정가 150만원 평가함[112] 용항아리[113] 청화백자 모란 무늬호(모란문 항아리)[114] 250만원 (청화백자 용준) + 150만원(청화백자 모란 무늬호(모란문 항아리)) 도자기 2점 최종감정가 책정[115] 용준(龍樽) : 용문의 항아리[116] 을 담기엔 크기가 작은 편[117] 아말감으로 입술 부분을 수리[118] 꿀이나 약을 넣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됨.[119] 모란문 항아리는 최종 감정가가 300만원인데 흠이 나서 최종감정가 150만원 평가함[120] 용항아리[121] 청화백자 모란 무늬호(모란문 항아리)[122] 250만원 (청화백자 용준) + 150만원(청화백자 모란 무늬호(모란문 항아리)) 도자기 2점 최종감정가 책정[123] 호패술은 명주를 꼬아서 만든 것으로 호패를 장식하는데 사용됨. 높은 신분의 인물이 주로 사용[124] 무관의 호패술은 짙은 색이고 문관의 호패술은 밝은색임[125] 호패는 호대에 만든 것[126] 호패술은 명주를 꼬아서 만든 것으로 호패를 장식하는데 사용됨. 높은 신분의 인물이 주로 사용[127] 무관의 호패술은 짙은 색이고 문관의 호패술은 밝은색임[128] 호패는 호대에 만든 것[129] 미산(米産) 허형(許瀅) / 1862년 ~ 1938년 : 19세기 호남 지역에서 활동한 남종문인화의 대가[130] 남아있는 작품 수가 많은 편임. 화격이 떨어지기 때문에 30만원 평가함[131] 미산(米産) 허형(許瀅) / 1862년 ~ 1938년 : 19세기 호남 지역에서 활동한 남종문인화의 대가[132] 남아있는 작품 수가 많은 편임. 화격이 떨어지기 때문에 30만원 평가함[133] 계속 들고 마셔야 하는 찻잔. 약 600년 전 분청사기 보안이 하나로 없다. 청자 빛깔이 흐린 편. 마상배(馬上杯)는 말 위에서 사용하는 술잔으로 전쟁터에서 군인들이 주로 사용했다.[134] 계속 들고 마셔야 하는 찻잔. 약 600년 전 분청사기 보안이 하나로 없다. 청자 빛깔이 흐린 편. 마상배(馬上杯)는 말 위에서 사용하는 술잔으로 전쟁터에서 군인들이 주로 사용했다.[135] 풀무(궤풀무) :화덕에 공기를 불어 불 온도를 조절하는 기구로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흡입구를 통하여 공기가 들어가고 밀면 압축된 공기가 풍로를 따라 화덕으로 들어감[136] 풀무(궤풀무) :화덕에 공기를 불어 불 온도를 조절하는 기구로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흡입구를 통하여 공기가 들어가고 밀면 압축된 공기가 풍로를 따라 화덕으로 들어감[137] 심정창해월(心靜創海月) - 마음이 고요해야만 푸른 바다의 달을 볼수 있다.[138] 심정창해월(心靜創海月) - 마음이 고요해야만 푸른 바다의 달을 볼수 있다.[139] 동방삭(東方朔) - 중국 한(漢)나라의 저명한 문학가로 한무제(漢武帝)의 총애를 받은 관리로 서양모의 복숭아를 훔쳐먹고 삼천갑자(18만 년)를 살았따는 설화 속 인물[140] 동방삭(東方朔) - 중국 한(漢)나라의 저명한 문학가로 한무제(漢武帝)의 총애를 받은 관리로 서양모의 복숭아를 훔쳐먹고 삼천갑자(18만 년)를 살았따는 설화 속 인물[141] 분을 갤 대 필요한 물이나 기름을 담아두던 병으로 호리병박 모양, 잎이 붙어있는 연꽃 문양이 있음[142] 퇴화문(堆花文)은 도자기 몸체에 물감을 두껍게 올려서 표한한 문양 무냥이 튀어나와 보이는 것이 특징[143] 완전한 경우 1,000만원 이상이나 입 부분이 보수되어 감정가 하락[144] 분을 갤 대 필요한 물이나 기름을 담아두던 병으로 호리병박 모양, 잎이 붙어있는 연꽃 문양이 있음[145] 퇴화문(堆花文)은 도자기 몸체에 물감을 두껍게 올려서 표한한 문양 무냥이 튀어나와 보이는 것이 특징[146] 완전한 경우 1,000만원 이상이나 입 부분이 보수되어 감정가 하락[147] 기로소(耆老所) - 조선 시대 70세기 넘는 정이품(正二品) 이상의 문관들으 예우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148] 기로세련계도(耆老世聯稽圖) - 1804년 계성 만월대에서 열린 기로연(耆老宴)을 그린 그림으로 원본은 단원 김홍도의 작품이다. 의뢰품은 후대에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이며, 김홍도의 서명까지 똑같이 베꼇다면 위작(僞作)이지만 의로품은 서명 없이 그림만 그렸기 때문에 모작(模作)이다.[149] 기로소(耆老所) - 조선 시대 70세기 넘는 정이품(正二品) 이상의 문관들으 예우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150] 기로세련계도(耆老世聯稽圖) - 1804년 계성 만월대에서 열린 기로연(耆老宴)을 그린 그림으로 원본은 단원 김홍도의 작품이다. 의뢰품은 후대에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이며, 김홍도의 서명까지 똑같이 베꼇다면 위작(僞作)이지만 의로품은 서명 없이 그림만 그렸기 때문에 모작(模作)이다.[151] 정부에서 감사의 의미로 내린 교지. 1732년(영조 8년)에 재해로 나라가 어려워지자 태인아 사는 황익한(黃益漢)이 돈 18냥을 기부하여 그에 대한 감사의미로 종2품(從二品)의 벼슬을 내린다는 내용이다.[152] 정부에서 감사의 의미로 내린 교지. 1732년(영조 8년)에 재해로 나라가 어려워지자 태인아 사는 황익한(黃益漢)이 돈 18냥을 기부하여 그에 대한 감사의미로 종2품(從二品)의 벼슬을 내린다는 내용이다.[153] 연적 구멍 2개 - 1, 원하는 만큼 물이 나오도록 공기를 조절하는 구명,2, 물이 나오는 구멍[154] 청화백자산수죽무늬사각연적이 진품미 아닌 이유 - 공기조저 구멍에 손때가 전혀 없음[155] 백자음각철화새무늬연적은 후에 문양을 파서 철화를 넣었음[156] 진품은 유약이 번져있지 않음[157] 그림을 나중에 인위적으로 넣어 가치를 평가할수 없다![158] 백자음각철화새무늬연적[159] 연적 구멍 2개 - 1, 원하는 만큼 물이 나오도록 공기를 조절하는 구명,2, 물이 나오는 구멍[160] 청화백자산수죽무늬사각연적이 진품미 아닌 이유 - 공기조저 구멍에 손때가 전혀 없음[161] 백자음각철화새무늬연적은 후에 문양을 파서 철화를 넣었음[162] 진품은 유약이 번져있지 않음[163] 그림을 나중에 인위적으로 넣어 가치를 평가할수 없다![164] 백자음각철화새무늬연적[165] 은행나무로 만든 함[166] 장식은 놋쇠[167] 꽃 모양 거멀보다 일자모양 거멀이 더 오래된 장식[168] 얹혀 있던 선반은 사라진 상태[169] 중요한 문서나 지필묵 등을 보관했던 문서함[170] 원형 그래도 보존[171] 120만원에 구입[172] 은행나무로 만든 함[173] 장식은 놋쇠[174] 꽃 모양 거멀보다 일자모양 거멀이 더 오래된 장식[175] 얹혀 있던 선반은 사라진 상태[176] 중요한 문서나 지필묵 등을 보관했던 문서함[177] 원형 그래도 보존[178] 120만원에 구입[179] 책가도(柵袈圖) - 민화의 하나로 책,부채,향로,.도자기 등을 그린 그림[180] 중국의 책을 그렸음[181] 정조 이후 - 중국 그림의 영향을 받아서 많이 그렸음[182] 원근법이 뒤바뀐 역원근법의 그림[183] 석류의 의미 - 자손 번창[184] 원래 8폭 이상의 병풍에 있던 그림[185] 책가도(柵袈圖) - 민화의 하나로 책,부채,향로,.도자기 등을 그린 그림[186] 중국의 책을 그렸음[187] 정조 이후 - 중국 그림의 영향을 받아서 많이 그렸음[188] 원근법이 뒤바뀐 역원근법의 그림[189] 석류의 의미 - 자손 번창[190] 원래 8폭 이상의 병풍에 있던 그림[191] 우동기 대구광역시교육청 교육감 의뢰[192] 1896년 근대교육이 시작되면서 발간한 교과서 "심상소학(尋常小學)으로 알고 있습니다."[193] 신정심상소학(新訂尋常小學) - 1896년 초등학교용 국어과 교과서로 발행한 책으로 총 3권으로 구성[194] 국한문이 혼용된 책[195] 국민소학독본에 이어 근대 교과서 중 2번째로 나온 책으로 자연,사회,역사,일상생활등 -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음[196] 한글이 제일 처음 등장[197] 그림과 내용이 함께 있어 교육 계묭에 많은 영향을 미침[198] 3권이 모두 있지 않아 감정가 하락[199] 우동기 대구광역시교육청 교육감 의뢰[200] 1896년 근대교육이 시작되면서 발간한 교과서 "심상소학(尋常小學)으로 알고 있습니다."[201] 신정심상소학(新訂尋常小學) - 1896년 초등학교용 국어과 교과서로 발행한 책으로 총 3권으로 구성[202] 국한문이 혼용된 책[203] 국민소학독본에 이어 근대 교과서 중 2번째로 나온 책으로 자연,사회,역사,일상생활등 -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음[204] 한글이 제일 처음 등장[205] 그림과 내용이 함께 있어 교육 계묭에 많은 영향을 미침[206] 3권이 모두 있지 않아 감정가 하락[207] 상감기법이 나오기 이전에 만든 것으로 용도는 연적[208] 주전자 형태이므로 "청자 주전자형 연적"[209] 뚜껑이 있었다면 평가 가격의 2배![210] 상감기법이 나오기 이전에 만든 것으로 용도는 연적[211] 주전자 형태이므로 "청자 주전자형 연적"[212] 뚜껑이 있었다면 평가 가격의 2배![213] 문이 반쪽만 열린다 해서 반닫이[214] 책이나 옷을 보관[215] 앞판 가운데 달린 들쇠가 경상도반닫이의 특징[216] 경첩은 진주반당이의 특징을 보임[217] 문이 반쪽만 열린다 해서 반닫이[218] 책이나 옷을 보관[219] 앞판 가운데 달린 들쇠가 경상도반닫이의 특징[220] 경첩은 진주반당이의 특징을 보임[221] 백패(白牌) - 소과(小科) 합격 교지,홍패(紅牌) -대과(大科) 합격 교지[222] 김영옥(金榮玉) 무과중시[223] 중시(重試)- 조선 시대 당하관(堂下官)들을 대상으로 10년에 한 번씩 보던 과거시험 함격하면 더 높은 벼슬로 진급됨[224] 무과(武科) 중시 교지는 흔치 않아~[225] 20,30대에 과거에 합격해 벼슬을 하던 중 40,50대에 다시 중시에 합격[226] 문과(文科) 교지였으면 감정가 20~30만원[227] 백패(白牌) - 소과(小科) 합격 교지,홍패(紅牌) -대과(大科) 합격 교지[228] 김영옥(金榮玉) 무과중시[229] 중시(重試)- 조선 시대 당하관(堂下官)들을 대상으로 10년에 한 번씩 보던 과거시험 함격하면 더 높은 벼슬로 진급됨[230] 무과(武科) 중시 교지는 흔치 않아~[231] 20,30대에 과거에 합격해 벼슬을 하던 중 40,50대에 다시 중시에 합격[232] 문과(文科) 교지였으면 감정가 20~30만원[233] 남편이 중국 출장 중에 구입한 그림[234] 우리나라 화가의 그림이라 샀대요[235] 오원 장승업(吾園 張承業, 1843년 ~ 1897년) - 조선 말기의 화가,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과 함께 조선의 3원 화가로 불림[236] 천과 종이 모두 인위적[237] 소 그림 역시 이 당시에 물소가 아니라 한국소를 그렸음[238] 어디서든 좋은 그림을 제값으 줘야 살수 있어 싸다고 구입하는 것은 금물[239] 남편이 중국 출장 중에 구입한 그림[240] 우리나라 화가의 그림이라 샀대요[241] 오원 장승업(吾園 張承業, 1843년 ~ 1897년) - 조선 말기의 화가,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과 함께 조선의 3원 화가로 불림[242] 천과 종이 모두 인위적[243] 소 그림 역시 이 당시에 물소가 아니라 한국소를 그렸음[244] 어디서든 좋은 그림을 제값으 줘야 살수 있어 싸다고 구입하는 것은 금물[245] 구한말을 거쳐 활동한 삼대(三代) 화가로 아버지가 소치,아들이 남농으로 알고 있습니다[246] 사군자를 곁들인 수묵화를 많이 그림[247] 나이 들어서 그려 완숙미가 느껴짐[248] 연,오동나무,소나무 등을 더 그려 10폭을 완성[249] 아버지 소치 허련과 아들 남농 허건 사이에서 교량 역할을 한 미산 허형[250] 3대가 남종화현대화로 이어주는 역할을 함[251] 산수화,사군자 등 남긴 작품많은 편[252] 구한말을 거쳐 활동한 삼대(三代) 화가로 아버지가 소치,아들이 남농으로 알고 있습니다[253] 사군자를 곁들인 수묵화를 많이 그림[254] 나이 들어서 그려 완숙미가 느껴짐[255] 연,오동나무,소나무 등을 더 그려 10폭을 완성[256] 아버지 소치 허련과 아들 남농 허건 사이에서 교량 역할을 한 미산 허형[257] 3대가 남종화현대화로 이어주는 역할을 함[258] 산수화,사군자 등 남긴 작품많은 편[259] 철종 때 통정대부 김노양의 벼슬을 숭정대부로 올려준 교지?[260] 통정대부(通政大夫) - 조선 신대 문신 정3품 당상관(堂山官)의 품계명[261] 숭정대부(崇政大夫) - 조선 시대 종1품 하계 문신의 품계명[262] 함풍(咸豊) 9년- 1869년[263] 100세가 되어 특별히 숭정대부로 벼슬을 올려준다는 교지 조선 시대에 보기 어려운 특별한 교지[264] 철종 때 통정대부 김노양의 벼슬을 숭정대부로 올려준 교지?[265] 통정대부(通政大夫) - 조선 신대 문신 정3품 당상관(堂山官)의 품계명[266] 숭정대부(崇政大夫) - 조선 시대 종1품 하계 문신의 품계명[267] 함풍(咸豊) 9년- 1869년[268] 100세가 되어 특별히 숭정대부로 벼슬을 올려준다는 교지 조선 시대에 보기 어려운 특별한 교지[269] 2016년 8월9일 서천군 문예의전당 소강당에서 촬영[270] 2016년 8월9일 서천군 문예의전당 소강당에서 촬영[271] 광주광역시
서구청에서 촬영
[272] 장재성(서구 상무대로) 가 광주광역시 서구을의 구의원님이 의뢰했다. 고미술품에 관심을 많은 의뢰인이다.[273] 광주광역시
서구청에서 촬영
[274] 장재성(서구 상무대로) 가 광주광역시 서구을의 구의원님이 의뢰했다. 고미술품에 관심을 많은 의뢰인이다.[275] 경상남도 함안군 3층 회의실에서 촬영[276] 출장감정-경남 의령군의 의뢰인 4명은 노인(할아버지3명,할머니3명)이 감정 의뢰했다.[277] 옛날에 아버지가 사용했던 주병[278] "일흔 살(70세) 넘어 막걸리 담아 마셔봤어요~"[279] 아무나 사용할수 없었던 도자기[280] 학,대나무,구름 모두 십장생[281] 장수를 의마하는 문양[282] 의뢰인의 감정 추정 예상가는 "200만원 예상해봅니다~"[283] 보관상태가 좋은 편[284] 약 180년 정도 된 작품[285] 경상남도 함안군 3층 회의실에서 촬영[286] 출장감정-경남 의령군의 의뢰인 4명은 노인(할아버지3명,할머니3명)이 감정 의뢰했다.[287] 옛날에 아버지가 사용했던 주병[288] "일흔 살(70세) 넘어 막걸리 담아 마셔봤어요~"[289] 아무나 사용할수 없었던 도자기[290] 학,대나무,구름 모두 십장생[291] 장수를 의마하는 문양[292] 의뢰인의 감정 추정 예상가는 "200만원 예상해봅니다~"[293] 보관상태가 좋은 편[294] 약 180년 정도 된 작품[295] 깔끔해 보이는 소반 등장[296] "회사일로 바빠서 대신 왔어요~"[297] 친정 식구 소장품이에요~[298] 전체 크기:다리 높이/비율이 좋은[299] 조선 시대에 만든 전형적인 나주반(羅州盤)[300] 전라남도 나주시에 지역에서 만들어서 나주반이라고 한다.[301] 나주반의 특징 - 1. 상다리르 대나무 마디(竹節-죽절)모양으로 깎음[302] 2 전을 따로 만들어 붙이지 않고 통나무를 파서 만듦[303] 옷칠 대신 합성도료인 "캐슈도로"로 칠은 한 상태[304] 캐슈칠을 한 점이 가장 큰 감정가 하락 요인![305] "나주반이 훨씬 더 예뻐요~"[306] 의뢰인은 "이게 예쁩니다"라고 말했다.[307] 조형미가 아름다운 작품[308] 깔끔해 보이는 소반 등장[309] "회사일로 바빠서 대신 왔어요~"[310] 친정 식구 소장품이에요~[311] 전체 크기:다리 높이/비율이 좋은[312] 조선 시대에 만든 전형적인 나주반(羅州盤)[313] 전라남도 나주시에 지역에서 만들어서 나주반이라고 한다.[314] 나주반의 특징 - 1. 상다리르 대나무 마디(竹節-죽절)모양으로 깎음[315] 2 전을 따로 만들어 붙이지 않고 통나무를 파서 만듦[316] 옷칠 대신 합성도료인 "캐슈도로"로 칠은 한 상태[317] 캐슈칠을 한 점이 가장 큰 감정가 하락 요인![318] "나주반이 훨씬 더 예뻐요~"[319] 의뢰인은 "이게 예쁩니다"라고 말했다.[320] 조형미가 아름다운 작품[321] 집에 있으니까 가지고 있었지!![322] 6,25전쟁 때 굴 안에 숨겨서 보관하던 그림[323] 감정을 해봐야 좋은지 아닌지 알지~[324] 춘곡 고희동(春谷 高義東)/1886~1985 - 근대 화가이자 우리나나 최초의 서양화가/전통적 회화를 서양화와 절충해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325] 1927년 3월 그믐에 그려 남전여사(藍田女史)에게 선물한 그림[326] 남젼여사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라~[327] 남전여사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328] 절벽 아래에서 뱃놀이하는 모습[329] 중국의 화풍이 엿보이는 그림[330] 집에 있으니까 가지고 있었지!![331] 6,25전쟁 때 굴 안에 숨겨서 보관하던 그림[332] 감정을 해봐야 좋은지 아닌지 알지~[333] 춘곡 고희동(春谷 高義東)/1886~1985 - 근대 화가이자 우리나나 최초의 서양화가/전통적 회화를 서양화와 절충해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334] 1927년 3월 그믐에 그려 남전여사(藍田女史)에게 선물한 그림[335] 남젼여사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라~[336] 남전여사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337] 절벽 아래에서 뱃놀이하는 모습[338] 중국의 화풍이 엿보이는 그림[339] 새 감정위원의 글씨,고서 전문 감정위원인 김상환 감정위원[340] 이인좌의 난에서 공을 세워 사후에 받은 문서[341] 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戊申亂)=이인좌의 난)[342] 당시 공을 세운 박중로,박동로,박시로 3형제[343] 세 사람 사후인 1822년에 내린 문서로 공신의 후손들에게 부역을 면제해주는 내용[344] 조선 시대 관청 중 하나인 예조(禮曹)에서 발급한 문서[345] 정식 명칭은 예조입안(禮曹立案)[346] 예조판서의 수결(手決)도 찍혀있음[347] 새 감정위원의 글씨,고서 전문 감정위원인 김상환 감정위원[348] 이인좌의 난에서 공을 세워 사후에 받은 문서[349] 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戊申亂)=이인좌의 난)[350] 당시 공을 세운 박중로,박동로,박시로 3형제[351] 세 사람 사후인 1822년에 내린 문서로 공신의 후손들에게 부역을 면제해주는 내용[352] 조선 시대 관청 중 하나인 예조(禮曹)에서 발급한 문서[353] 정식 명칭은 예조입안(禮曹立案)[354] 예조판서의 수결(手決)도 찍혀있음[355] 목이 부러져 감정가 하락. 만약 목이 부러지지 않았다면 감정가는 1,000만원[356] 목이 부러져 감정가 하락. 만약 목이 부러지지 않았다면 감정가는 1,000만원[357] 만약 진품이었다면 감정가는 400만원[358] 만약 진품이었다면 감정가는 40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