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2016년
회차
| 방송일
| 지역
| 감정위원
| 감정품
| 연대
| 최종감정가
|
1031
| 이상문
| 토기 목긴항아리[2]
| 1800년 정도
| 200만원
| ||
양의숙
| 양산 반닫이[6]
| 100만원
| ||||
김영복
| 내방가사
| 약 70년 전 [10]
| 50만원
| |||
진동만
| 석하(石下) 김우범(金禹範)[12]의 <금강산 영원도>
| 150만원
| ||||
1032
| 이상문
| 백자 매병
| 약 450년 전
| 50만원
| ||
양의숙
| 손화로(유기)
| 약 102년 전
| 80만원
| |||
김영복
| 정입 선생 문집
| 30만원
| ||||
진동만
| 한북문(漢北門)도[14]
| 150만원
| ||||
1033
| 이상문
| 청자흑백 상감국화 문잔과 잔받침
| 약 700년 전
| 150만원[16]
| ||
진동만
| 단오풍경 방(倣)작
| 5만원[18]
| ||||
김영복
| 방윤명의 교지[20]
| 50만원
| ||||
1034
| 이상문
| 청화백자 대나무 사각연적
| ?
| 200만원
| ||
양의숙
| 실첩[22]
| 약 100년 전
| 80만원
| |||
진동만
| 우후(雨後) 금강도
| 200만원
| ||||
김영복
| 설정집 3권
| 60만원[24]
| ||||
1035
| 이상문
| 음양각꽃무늬청자대접
| 약 900년 전
| 300만원
| ||
양의숙
| 나주 반닫이
| 약 200년 전
| 350만원
| |||
진동만
| 의제(毅齊) 허백련(許百鍊)의 <기명절지도>
| 150만원
| ||||
김영복
| 무이구곡시 10폭 병풍
| 500만원
| ||||
1037
| 이상문
| 청자 흑백상감 연꽃문 소병[26]
| 약 600년 전
(조선시대 초기) | 100만원
| ||
양의숙
| 백동 화로[28]
| 약 100년 전
| 200만원
| |||
진동만
| 450만원
| |||||
김영복
| 예조 입안[32]
| 200만원
| ||||
1038
| 이상문
| 청화진사 개구리 양각면적
| 약 120년 전
| 300만원
| ||
양의숙
| 물허벅
| 1894년
(광서 20년) | 30만원
| |||
진동만
| 130만원
| |||||
1039
| 양의숙
| 다식판[36]
| 약 100년 전
| 50만원
| ||
진동만
| 의제(毅齊) 허백련(許百鍊)의 <석죽도>
| 100만원
| ||||
김영복
| 초등대한지지 [38]
| 30만원
| ||||
1040
| 이상문
| 청화백자용무늬주병
| 200만원
| |||
양의숙
| 통영 2층농
| 약 100년~
120년 | 400만원
| |||
진동만
| 소정 변관식의 <추경산수화>
| 250만원[40]
| ||||
1041
| 이상문
| 청자흑백상삼딸기국화문발[42]
| 약 800년 전
| 200만원
| ||
양의숙
| 고이댕기 2점
| 50만원
| ||||
진동만
| 규당(葵塘) 한유동(韓維東)의 <설경산수도> [44]
| 50만원
| ||||
1042
| 이상문
| 청화백자모란문항아리
| 약 180년 전
| 100만원
| ||
양의숙
| 먹줄통
| 년대
| 40만원
| |||
진동만
| 청전 이상범의 <풍죽도>
| 150만원
| ||||
김영복
| 땅 매매문서
| 50만원
| ||||
1043
| 이상문
| 녹청자광구편병
| 약 900년 전
| 50만원
| ||
양의숙
| 고창 받닫이
| 약 200년 전
| 150만원
| |||
김영복
| 논어+논어언해 9권
| 300만원
| ||||
1044
| 이상문
| 철화백자탕기
| 약 400년 전
| 100만원
| ||
김영복
| 최남선의 <시조유취>
| 50만원
| ||||
1045
| 이상문
| 청화백자국화나비문항아리
| 400만원
| |||
양의숙
| 방짜 대야와 주물 양푼 2점
| 80만원[46]
| ||||
진동만
| 석연(石蓮) 이공우(李公愚)의 묵매도 [48]
| 18세기
| 150만원
| |||
1046
| 이상문
| 청화백상감국화문8각접시[51]
| 약 800년 전
| 5만원[52]
| ||
양의숙
| 전라도 반닫이
| 약 200년 전
| 350만원
| |||
김영복
| 설주(雪舟) 송운회(宋運會)의 글씨[54]
| 20만원
| ||||
진동만
| 0원(위작)[58]
| |||||
1047
| 이상문
| 순청자 잔과 잔대
| 약 700년 ~ 800년 전(잔)
약 900년 전(잔대) | 150만원[60]
| ||
양의숙
| 3단 목침
| 약 50~ 60년
| 40만원
| |||
김영복
| 창암 이삼만의 <글씨 체본(體本)> [62]
| 200만원
| ||||
1048
| 이상문
| 청자 매병
| 약 900년 전
| 500만원
| ||
진동만
| 취장(翠堂) 장덕(張德)의 <효금도(孝禽圖)>[64]
| 35만원
| ||||
김영복
| 원교 이광사(李匡師)의 글씨[66]
| 200만원
| ||||
1049
| 이상문
| 청화백자용문주병
| 약 150년 전
| 300만원
| ||
양의숙
| 남방위
| 약 130년 전
| 100만원
| |||
진동만
| 춘초 지성채의 <관폭도> [68]
| 35만원
| ||||
김영복
| 성재 김태석의 글씨 [70]
| 18세기
| 100만원
| |||
1050
| 이상문
| 청자백상감인화문발
| 약 600년
| 100만원
| ||
양의숙
| 교의와 위패함
| 약 120년 ~
130년 전 | 100만원
| |||
진동만
| 중광 선학도[72]
| 년대
| 150만원
| |||
김영복
| 상설고문진보[74]
| 1700년대 말
| 50만원
| |||
1051
| 이상문
| 분청인화문주병
| 약 500년 전
| 200만원
| ||
양의숙
| 빗접
| 약 200년 전
| 300만원
| |||
진동만
| 소정 변관식의 <추경산수화>(관폭도)
| 300만원
| ||||
김영복
| 번암 채재공의 <글씨>
| 1,000만원
| ||||
1052
| 이상문
| 청자발(靑磁鉢) 4점[77]
| 100만원[78]
| |||
양의숙
| 놋새 약제 도구
| 약 200년 전
| 40만원
| |||
진동만
| 미산 허형의 청해전경(凊海全景) [80]
| 3,000만원
| ||||
김영복
| 김평묵(金平默)의 <중암선생별집>[82]
| 100만원
(권당 20만원) | ||||
1053
| 이상문
| 청화백자 용무늬 주병
| 약 150~160년 전
| 80만원
| ||
양의숙
| (먹간나무로 만든) 2층 농
| 약 200년 전
| 500만원
| |||
진동만
| 의도인 허백련(許白鍊)의 <노안도(蘆安圖)>[84]
| 150만원
| ||||
김영복
| 국조시산(國朝詩刪) [86]
| 약 200년~250년 전
| 500만원
| |||
1054
| 이상문
| 순백자 제사용 주병
| 약 150년 전
| 70만원
| ||
김영복
| 100만원[92]
| |||||
1055
| 이상문
| 분청귀얄문항아리[94]
| 약 500년 전
| 70만원
| ||
양의숙
| 호패[96]
| 약 250년 전
| 100만원
| |||
진동만
| 청전 이상범의 <풍경화>
| 1940년대 전후
| 700만원
| |||
김영복
| 1940년대 전후
| 500만원
| ||||
1056
| 이상문
| 옹기 연적
| 약 100년 전
| 5만원
| ||
양의숙
| 년대
| 65만원[106]
| ||||
진동만
| 남농 허건의 <추경산수화(秋景山水畵)>
| 300만원
| ||||
김영복
| 동리 김시종의 글씨
| 100만원
| ||||
1057
| 이상문
| 400만원 [122]
| ||||
양의숙
| 약 150 ~ 200년
| 100만원
| ||||
진동만
| 년대
| 30만원
| ||||
1058
| 이상문
| 분청자 마상배[134]
| 약 600년 전
| 200만원
| ||
양의숙
| 풀무(궤풀무) [136]
| 약 50년 ~ 60년 전
| 150만원
| |||
김영복
| 위창 오세창(吳世昌)의 글씨 [138]
| 150만원
| ||||
진동만
| 동방삭도(東方朔圖) [140]
| 35만원
| ||||
1059
| 이상문
| 12세기
| 300만원
| |||
진동만
| 100만원
| |||||
김영복
| 황익한의 교지[152]
| 200만원
| ||||
1060
| 대구광역시교육청
1편 | 이상문
| 450년 ~ 500년[164]
| 0원(위조품)
| ||
양의숙
| 약 180~200년 전
| 180만원
| ||||
진동만
| 250만원
| |||||
김영복
| 1986년
| 500만원
| ||||
1061
| 이상문
| 900년 전
| 500만원
| |||
양의숙
| 약 200년 전
| 200만원
| ||||
김영복
| 1886년
(광서 12년) | 200만원
| ||||
진동만
| 0원(위작)
| |||||
1062
| 양의숙
| 찬합
| 약 100년 전
| 150만원
| ||
진동만
| 300만원
| |||||
김영복
| 200만원
| |||||
1063
| 이상문
| 청화백자 칠보문필세연적
| 년대
| 800만원
| ||
양의숙
| 전통 혼례품 일습
| 년대
| 200만원
| |||
김영복
| 설송 최규상의 10폭 전서 병풍
| 년대
| 100만원
| |||
1064
| 이상문
| 분청 인화문 발[274]
| 250만원
| |||
양의숙
| 방짜양푼과 방짜요강
| 약 200년 전
| 100만원
| |||
진동만
| 화조도 10폭 병풍
| 300만원
| ||||
1067
| 이상문
| 약 180년 전 [294]
| 1,000만원
| |||
양의숙
| 조선 시대
| 400만원
| ||||
진동만
| 150만원
| |||||
김상환[347]
| 200만원
| |||||
1068
| 대구광역시
교육청 (2편)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69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70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71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72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73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74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75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76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77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2. 2017년
회차
| 방영일
| 감정 의뢰 지역
| 감정위원
| 감정품
| 연대
| 최종감정가
|
1079
| 이상문
| 청자흑백상감유문주병[356]
| 14세기
| 500만원
| ||
진동만
| 청전 이상범의 추경산수화 위작[358]
| 연대 미상
| 0원
| |||
양의숙
| 말과 부손
| 연대 미상
| 50만원
| |||
1080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81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83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83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84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85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86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87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88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89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90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91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93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1094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 |||||
년대
| 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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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둥이 부분이 깨져 다시 붙임[2] 주둥이 부분이 깨져 다시 붙임[3] 느티나무로 제작, 서랍에는 장서 문서 보관[4] 서랍과 장식[5] 반닫이 몸통[6] 느티나무로 제작, 서랍에는 장서 문서 보관[7] 서랍과 장식[8] 반닫이 몸통[9] 일제강점기 말 ~ 해방 직후 작품[10] 일제강점기 말 ~ 해방 직후 작품[11] 1880년~1930년대 근대 문인화가[12] 1880년~1930년대 근대 문인화가[13] 유형문화재 제33호 홍지문(弘知門)의 다른 이름.[14] 유형문화재 제33호 홍지문(弘知門)의 다른 이름.[15] 잔받침 100만원 + 잔 50만원[16] 잔받침 100만원 + 잔 50만원[17] 신윤복의 도장도 없고, 크기나 구도가 진품과 다르다.[18] 신윤복의 도장도 없고, 크기나 구도가 진품과 다르다.[19] 방씨 집안의 교지[20] 방씨 집안의 교지[21] 북한에서 쓰던 실책[22] 북한에서 쓰던 실책[23] 한권에 20만원씩 총 3권[24] 한권에 20만원씩 총 3권[25] 조선 초기 상강기법이 쇠퇴해가던 시기에 만든 청자[26] 조선 초기 상강기법이 쇠퇴해가던 시기에 만든 청자[27] 손잡이의 박쥐 문양은 복을 상징[28] 손잡이의 박쥐 문양은 복을 상징[29] 청전 이상범의 40대 때 작품으로, 10년전에 방송되어 감정가 50만원정도 였다고 한다.[30] 청전 이상범의 40대 때 작품으로, 10년전에 방송되어 감정가 50만원정도 였다고 한다.[31] 친정어머니가 주신 문서. 아버지의 대변 맛을 보며 아버지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돌아가신 후 3년 동안 시묘(侍墓)룰 극진히 했다.[32] 친정어머니가 주신 문서. 아버지의 대변 맛을 보며 아버지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돌아가신 후 3년 동안 시묘(侍墓)룰 극진히 했다.[33] 의제 허백련(1891~1977) - 근대 한국화가로 전형적 남종화(南宗畵) 풍을 그렸던 상징적 인물[34] 의제 허백련(1891~1977) - 근대 한국화가로 전형적 남종화(南宗畵) 풍을 그렸던 상징적 인물[35] 남편이 수집한 의뢰품이다.[36] 남편이 수집한 의뢰품이다.[37] 경주시에서 온 의뢰품으로, 증조부가 남긴 책이다.[38] 경주시에서 온 의뢰품으로, 증조부가 남긴 책이다.[39] 해당 작가의 작품이 많이 남아있기에 감정가 하락[40] 해당 작가의 작품이 많이 남아있기에 감정가 하락[41] 바깥쪽은 흑백상감+역상감 기법을 사용[42] 바깥쪽은 흑백상감+역상감 기법을 사용[43] 규당 한유동(1913~1992) - 인물화와 화조화에 뛰어난 근현대 화가[44] 규당 한유동(1913~1992) - 인물화와 화조화에 뛰어난 근현대 화가[45] 방짜 대야(60만원), 주물 양푼(20만원)[46] 방짜 대야(60만원), 주물 양푼(20만원)[47] 석연 이공우(1805 ~ ?)[48] 석연 이공우(1805 ~ ?)[49] 40년전 아버지로부터 받은 도자기[50] 이가 빠져서 감정가 하락[51] 40년전 아버지로부터 받은 도자기[52] 이가 빠져서 감정가 하락[53] 설주 송운회(1874 ~ 1935) - 전라남도 보성군 태생으로 중국의 서체와 동국전체를 섭렵해 설주체라는 독특한 필체를 만들었다.[54] 설주 송운회(1874 ~ 1935) - 전라남도 보성군 태생으로 중국의 서체와 동국전체를 섭렵해 설주체라는 독특한 필체를 만들었다.[55] 최북 (생년 미상) - 조선 후기의 화가 산수화와 메추라기를 특히 잘 그렸음. 1747년~1947년 통신사 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기록이 있다.[56] 최북(崔北)사라는 글씨도 위작. 1985년에 80만원을 주고 구매했다고 하는데, 최북의 진품은 약 8,000만원 ~ 1억원의 가치라 한다.[57] 최북 (생년 미상) - 조선 후기의 화가 산수화와 메추라기를 특히 잘 그렸음. 1747년~1947년 통신사 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기록이 있다.[58] 최북(崔北)사라는 글씨도 위작. 1985년에 80만원을 주고 구매했다고 하는데, 최북의 진품은 약 8,000만원 ~ 1억원의 가치라 한다.[59] 잔 : 100만원, 잔대 : 50만원[60] 잔 : 100만원, 잔대 : 50만원[61] 창암 이삼만(1770~1947) - 조선 후기의 서예가. 초서를 잘 썼으며 그의 서체를 창암체라 함.[62] 창암 이삼만(1770~1947) - 조선 후기의 서예가. 초서를 잘 썼으며 그의 서체를 창암체라 함.[63] 취당 장덕(1907~1976) - 화조도와 매화를 잘 그렸음. 1927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 경력이 있다.[64] 취당 장덕(1907~1976) - 화조도와 매화를 잘 그렸음. 1927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 경력이 있다.[65] 이광사(1705~1777)[66] 이광사(1705~1777)[67] 춘초 지성채(1899 ~1980)[68] 춘초 지성채(1899 ~1980)[69] 청채 김태석(1985~미상)[70] 청채 김태석(1985~미상)[71] 중광 스님(1934~2002)[72] 중광 스님(1934~2002)[73] 과거 시험때 참고하던 책[74] 과거 시험때 참고하던 책[75] 해무리굽(그릇을 굽을 깍아내 모양이 햇무리 같은 굽) 청자로 고흥과 강진에서 주로 생산되어 남은 수가 많은 편이라 한다.[76] 도자기(접시) 1점당 25만원[77] 해무리굽(그릇을 굽을 깍아내 모양이 햇무리 같은 굽) 청자로 고흥과 강진에서 주로 생산되어 남은 수가 많은 편이라 한다.[78] 도자기(접시) 1점당 25만원[79] 25년 지인이 산 그림으로, 을해년(乙亥年)인 1935년에 완도의 실제 경치를 그린 그림. 지역을 한정해 그린 병풍은 아주 귀한 편이라 한다.[80] 25년 지인이 산 그림으로, 을해년(乙亥年)인 1935년에 완도의 실제 경치를 그린 그림. 지역을 한정해 그린 병풍은 아주 귀한 편이라 한다.[81] 김평묵(1819~1891) – 조선 말기의 학자. 이향로의 제자로 유생들의 위정척사운동을 후원함. 돌아가신 후 1906년 서울에서 제자들이 문집을 발행했고, 본 별집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제자들도 중암 선생의 글과 출판비를 모아 1912년 발행한 것이다.[82] 김평묵(1819~1891) – 조선 말기의 학자. 이향로의 제자로 유생들의 위정척사운동을 후원함. 돌아가신 후 1906년 서울에서 제자들이 문집을 발행했고, 본 별집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제자들도 중암 선생의 글과 출판비를 모아 1912년 발행한 것이다.[83] 노안도(蘆安圖/蘆雁圖) - 갈대와 기러기가 그려져 있는데, 갈대 노(蘆)자와 기러기 안(雁)자와 소리가 노안(老安)과 같아 노후의 편안한 삶을 기원하는 그림[84] 노안도(蘆安圖/蘆雁圖) - 갈대와 기러기가 그려져 있는데, 갈대 노(蘆)자와 기러기 안(雁)자와 소리가 노안(老安)과 같아 노후의 편안한 삶을 기원하는 그림[85] 국조시산 - 허균(許均)이 엮은 시선집으로 정도전부터 퇴계 이황,송강 정철,석주 권필까지 조선 초 중기에 활동한 234명이 시 877수가 실려있음. 의뢰품은 필사본으로 총 9권 중 6권이 들어있음[86] 국조시산 - 허균(許均)이 엮은 시선집으로 정도전부터 퇴계 이황,송강 정철,석주 권필까지 조선 초 중기에 활동한 234명이 시 877수가 실려있음. 의뢰품은 필사본으로 총 9권 중 6권이 들어있음[87] 윤제술(1904~1986) - 교육자이자 정치가,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제자였으며 정계에서 은퇴한 뒤 서예로 말년을 보냄. 퇴계 이황의 시 퇴계(退溪)를 적었다.[88] 신퇴안우분(身退安愚分) - 벼슬에서 물러나니 어리석은 분수에 편안하데, 계상시정거(溪上始定居) - 시냇가 위에 비로소 자기 거처를 정하고, 임류일유성(臨流日有省) - 흐르는 물을 굽어보며 날마다 반성하네[89] 좋은 글씨이지만 남은 작품수가 많아 감정가 하락[90] 윤제술(1904~1986) - 교육자이자 정치가,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제자였으며 정계에서 은퇴한 뒤 서예로 말년을 보냄. 퇴계 이황의 시 퇴계(退溪)를 적었다.[91] 신퇴안우분(身退安愚分) - 벼슬에서 물러나니 어리석은 분수에 편안하데, 계상시정거(溪上始定居) - 시냇가 위에 비로소 자기 거처를 정하고, 임류일유성(臨流日有省) - 흐르는 물을 굽어보며 날마다 반성하네[92] 좋은 글씨이지만 남은 작품수가 많아 감정가 하락[93] 청자 위에 백토로 분을 발라 구워낸 '분청자기'로, 생활도자기로 대량 생산한 물건이다.[94] 청자 위에 백토로 분을 발라 구워낸 '분청자기'로, 생활도자기로 대량 생산한 물건이다.[95] 신분과 품계에 따라 재질이 다른데, 의뢰품은 '소뼈'로 제작된 호패로 바깥 부분은 비단으로 제작되었다.참고로 신분이 낮은 사람은 나무를 사용했다고 한다.[96] 신분과 품계에 따라 재질이 다른데, 의뢰품은 '소뼈'로 제작된 호패로 바깥 부분은 비단으로 제작되었다.참고로 신분이 낮은 사람은 나무를 사용했다고 한다.[97] 설송 최규상(1891~1956) - 전서(箭書)와 예서(豫書), 전각에 능했던 근대 서예가.[98] 중국의 시 중에서 좋은 구절만 골라 쓴 병풍이다. 愛看春山疑讀畵(애간춘산의독화) - 봄 산을 사랑스럽게 보니 마치 그림을 보는 듯 하고 / 靜淵古默似聽香(정연고묵사청향) 고요히 먹을 갈다 보면 마치 향기를 듣는 것 같네.[99] 설송 최규상(1891~1956) - 전서(箭書)와 예서(豫書), 전각에 능했던 근대 서예가.[100] 중국의 시 중에서 좋은 구절만 골라 쓴 병풍이다. 愛看春山疑讀畵(애간춘산의독화) - 봄 산을 사랑스럽게 보니 마치 그림을 보는 듯 하고 / 靜淵古默似聽香(정연고묵사청향) 고요히 먹을 갈다 보면 마치 향기를 듣는 것 같네.[101] 빛치개 빗살 틈에 낀 때를 빼거나 머리에 가르마를 타는 데 사용한 물건으로 우각(소뿔)으로 만든 빗치개는 고급품임[102] 상어 껍질을 붙여서 만든 안경집으로, 어피(魚皮)는 고급 물건에 주로 사용하며 작은 크기로 보아 여성용 돋보기를 담았던 것으로 추정됨.[103] 빛치개 35만원 + 안경집 30만원으로 최종감정가 총 65만원 책정[104] 빛치개 빗살 틈에 낀 때를 빼거나 머리에 가르마를 타는 데 사용한 물건으로 우각(소뿔)으로 만든 빗치개는 고급품임[105] 상어 껍질을 붙여서 만든 안경집으로, 어피(魚皮)는 고급 물건에 주로 사용하며 작은 크기로 보아 여성용 돋보기를 담았던 것으로 추정됨.[106] 빛치개 35만원 + 안경집 30만원으로 최종감정가 총 65만원 책정[107] 용준(龍樽) : 용문의 항아리[108] 술을 담기엔 크기가 작은 편[109] 아말감으로 입술 부분을 수리[110] 꿀이나 약을 넣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됨.[111] 모란문 항아리는 최종 감정가가 300만원인데 흠이 나서 최종감정가 150만원 평가함[112] 용항아리[113] 청화백자 모란 무늬호(모란문 항아리)[114] 250만원 (청화백자 용준) + 150만원(청화백자 모란 무늬호(모란문 항아리)) 도자기 2점 최종감정가 책정[115] 용준(龍樽) : 용문의 항아리[116] 술을 담기엔 크기가 작은 편[117] 아말감으로 입술 부분을 수리[118] 꿀이나 약을 넣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됨.[119] 모란문 항아리는 최종 감정가가 300만원인데 흠이 나서 최종감정가 150만원 평가함[120] 용항아리[121] 청화백자 모란 무늬호(모란문 항아리)[122] 250만원 (청화백자 용준) + 150만원(청화백자 모란 무늬호(모란문 항아리)) 도자기 2점 최종감정가 책정[123] 호패술은 명주를 꼬아서 만든 것으로 호패를 장식하는데 사용됨. 높은 신분의 인물이 주로 사용[124] 무관의 호패술은 짙은 색이고 문관의 호패술은 밝은색임[125] 호패는 호대에 만든 것[126] 호패술은 명주를 꼬아서 만든 것으로 호패를 장식하는데 사용됨. 높은 신분의 인물이 주로 사용[127] 무관의 호패술은 짙은 색이고 문관의 호패술은 밝은색임[128] 호패는 호대에 만든 것[129] 미산(米産) 허형(許瀅) / 1862년 ~ 1938년 : 19세기 호남 지역에서 활동한 남종문인화의 대가[130] 남아있는 작품 수가 많은 편임. 화격이 떨어지기 때문에 30만원 평가함[131] 미산(米産) 허형(許瀅) / 1862년 ~ 1938년 : 19세기 호남 지역에서 활동한 남종문인화의 대가[132] 남아있는 작품 수가 많은 편임. 화격이 떨어지기 때문에 30만원 평가함[133] 계속 들고 마셔야 하는 찻잔. 약 600년 전 분청사기 보안이 하나로 없다. 청자 빛깔이 흐린 편. 마상배(馬上杯)는 말 위에서 사용하는 술잔으로 전쟁터에서 군인들이 주로 사용했다.[134] 계속 들고 마셔야 하는 찻잔. 약 600년 전 분청사기 보안이 하나로 없다. 청자 빛깔이 흐린 편. 마상배(馬上杯)는 말 위에서 사용하는 술잔으로 전쟁터에서 군인들이 주로 사용했다.[135] 풀무(궤풀무) :화덕에 공기를 불어 불 온도를 조절하는 기구로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흡입구를 통하여 공기가 들어가고 밀면 압축된 공기가 풍로를 따라 화덕으로 들어감[136] 풀무(궤풀무) :화덕에 공기를 불어 불 온도를 조절하는 기구로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흡입구를 통하여 공기가 들어가고 밀면 압축된 공기가 풍로를 따라 화덕으로 들어감[137] 심정창해월(心靜創海月) - 마음이 고요해야만 푸른 바다의 달을 볼수 있다.[138] 심정창해월(心靜創海月) - 마음이 고요해야만 푸른 바다의 달을 볼수 있다.[139] 동방삭(東方朔) - 중국 한(漢)나라의 저명한 문학가로 한무제(漢武帝)의 총애를 받은 관리로 서양모의 복숭아를 훔쳐먹고 삼천갑자(18만 년)를 살았따는 설화 속 인물[140] 동방삭(東方朔) - 중국 한(漢)나라의 저명한 문학가로 한무제(漢武帝)의 총애를 받은 관리로 서양모의 복숭아를 훔쳐먹고 삼천갑자(18만 년)를 살았따는 설화 속 인물[141] 분을 갤 대 필요한 물이나 기름을 담아두던 병으로 호리병박 모양, 잎이 붙어있는 연꽃 문양이 있음[142] 퇴화문(堆花文)은 도자기 몸체에 물감을 두껍게 올려서 표한한 문양 무냥이 튀어나와 보이는 것이 특징[143] 완전한 경우 1,000만원 이상이나 입 부분이 보수되어 감정가 하락[144] 분을 갤 대 필요한 물이나 기름을 담아두던 병으로 호리병박 모양, 잎이 붙어있는 연꽃 문양이 있음[145] 퇴화문(堆花文)은 도자기 몸체에 물감을 두껍게 올려서 표한한 문양 무냥이 튀어나와 보이는 것이 특징[146] 완전한 경우 1,000만원 이상이나 입 부분이 보수되어 감정가 하락[147] 기로소(耆老所) - 조선 시대 70세기 넘는 정이품(正二品) 이상의 문관들으 예우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148] 기로세련계도(耆老世聯稽圖) - 1804년 계성 만월대에서 열린 기로연(耆老宴)을 그린 그림으로 원본은 단원 김홍도의 작품이다. 의뢰품은 후대에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이며, 김홍도의 서명까지 똑같이 베꼇다면 위작(僞作)이지만 의로품은 서명 없이 그림만 그렸기 때문에 모작(模作)이다.[149] 기로소(耆老所) - 조선 시대 70세기 넘는 정이품(正二品) 이상의 문관들으 예우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150] 기로세련계도(耆老世聯稽圖) - 1804년 계성 만월대에서 열린 기로연(耆老宴)을 그린 그림으로 원본은 단원 김홍도의 작품이다. 의뢰품은 후대에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이며, 김홍도의 서명까지 똑같이 베꼇다면 위작(僞作)이지만 의로품은 서명 없이 그림만 그렸기 때문에 모작(模作)이다.[151] 정부에서 감사의 의미로 내린 교지. 1732년(영조 8년)에 재해로 나라가 어려워지자 태인아 사는 황익한(黃益漢)이 돈 18냥을 기부하여 그에 대한 감사의미로 종2품(從二品)의 벼슬을 내린다는 내용이다.[152] 정부에서 감사의 의미로 내린 교지. 1732년(영조 8년)에 재해로 나라가 어려워지자 태인아 사는 황익한(黃益漢)이 돈 18냥을 기부하여 그에 대한 감사의미로 종2품(從二品)의 벼슬을 내린다는 내용이다.[153] 연적 구멍 2개 - 1, 원하는 만큼 물이 나오도록 공기를 조절하는 구명,2, 물이 나오는 구멍[154] 청화백자산수죽무늬사각연적이 진품미 아닌 이유 - 공기조저 구멍에 손때가 전혀 없음[155] 백자음각철화새무늬연적은 후에 문양을 파서 철화를 넣었음[156] 진품은 유약이 번져있지 않음[157] 그림을 나중에 인위적으로 넣어 가치를 평가할수 없다![158] 백자음각철화새무늬연적[159] 연적 구멍 2개 - 1, 원하는 만큼 물이 나오도록 공기를 조절하는 구명,2, 물이 나오는 구멍[160] 청화백자산수죽무늬사각연적이 진품미 아닌 이유 - 공기조저 구멍에 손때가 전혀 없음[161] 백자음각철화새무늬연적은 후에 문양을 파서 철화를 넣었음[162] 진품은 유약이 번져있지 않음[163] 그림을 나중에 인위적으로 넣어 가치를 평가할수 없다![164] 백자음각철화새무늬연적[165] 은행나무로 만든 함[166] 장식은 놋쇠[167] 꽃 모양 거멀보다 일자모양 거멀이 더 오래된 장식[168] 얹혀 있던 선반은 사라진 상태[169] 중요한 문서나 지필묵 등을 보관했던 문서함[170] 원형 그래도 보존[171] 120만원에 구입[172] 은행나무로 만든 함[173] 장식은 놋쇠[174] 꽃 모양 거멀보다 일자모양 거멀이 더 오래된 장식[175] 얹혀 있던 선반은 사라진 상태[176] 중요한 문서나 지필묵 등을 보관했던 문서함[177] 원형 그래도 보존[178] 120만원에 구입[179] 책가도(柵袈圖) - 민화의 하나로 책,부채,향로,.도자기 등을 그린 그림[180] 중국의 책을 그렸음[181] 정조 이후 - 중국 그림의 영향을 받아서 많이 그렸음[182] 원근법이 뒤바뀐 역원근법의 그림[183] 석류의 의미 - 자손 번창[184] 원래 8폭 이상의 병풍에 있던 그림[185] 책가도(柵袈圖) - 민화의 하나로 책,부채,향로,.도자기 등을 그린 그림[186] 중국의 책을 그렸음[187] 정조 이후 - 중국 그림의 영향을 받아서 많이 그렸음[188] 원근법이 뒤바뀐 역원근법의 그림[189] 석류의 의미 - 자손 번창[190] 원래 8폭 이상의 병풍에 있던 그림[191] 우동기 대구광역시교육청 교육감 의뢰[192] 1896년 근대교육이 시작되면서 발간한 교과서 "심상소학(尋常小學)으로 알고 있습니다."[193] 신정심상소학(新訂尋常小學) - 1896년 초등학교용 국어과 교과서로 발행한 책으로 총 3권으로 구성[194] 국한문이 혼용된 책[195] 국민소학독본에 이어 근대 교과서 중 2번째로 나온 책으로 자연,사회,역사,일상생활등 -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음[196] 한글이 제일 처음 등장[197] 그림과 내용이 함께 있어 교육 계묭에 많은 영향을 미침[198] 3권이 모두 있지 않아 감정가 하락[199] 우동기 대구광역시교육청 교육감 의뢰[200] 1896년 근대교육이 시작되면서 발간한 교과서 "심상소학(尋常小學)으로 알고 있습니다."[201] 신정심상소학(新訂尋常小學) - 1896년 초등학교용 국어과 교과서로 발행한 책으로 총 3권으로 구성[202] 국한문이 혼용된 책[203] 국민소학독본에 이어 근대 교과서 중 2번째로 나온 책으로 자연,사회,역사,일상생활등 -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음[204] 한글이 제일 처음 등장[205] 그림과 내용이 함께 있어 교육 계묭에 많은 영향을 미침[206] 3권이 모두 있지 않아 감정가 하락[207] 상감기법이 나오기 이전에 만든 것으로 용도는 연적[208] 주전자 형태이므로 "청자 주전자형 연적"[209] 뚜껑이 있었다면 평가 가격의 2배![210] 상감기법이 나오기 이전에 만든 것으로 용도는 연적[211] 주전자 형태이므로 "청자 주전자형 연적"[212] 뚜껑이 있었다면 평가 가격의 2배![213] 문이 반쪽만 열린다 해서 반닫이[214] 책이나 옷을 보관[215] 앞판 가운데 달린 들쇠가 경상도반닫이의 특징[216] 경첩은 진주반당이의 특징을 보임[217] 문이 반쪽만 열린다 해서 반닫이[218] 책이나 옷을 보관[219] 앞판 가운데 달린 들쇠가 경상도반닫이의 특징[220] 경첩은 진주반당이의 특징을 보임[221] 백패(白牌) - 소과(小科) 합격 교지,홍패(紅牌) -대과(大科) 합격 교지[222] 김영옥(金榮玉) 무과중시[223] 중시(重試)- 조선 시대 당하관(堂下官)들을 대상으로 10년에 한 번씩 보던 과거시험 함격하면 더 높은 벼슬로 진급됨[224] 무과(武科) 중시 교지는 흔치 않아~[225] 20,30대에 과거에 합격해 벼슬을 하던 중 40,50대에 다시 중시에 합격[226] 문과(文科) 교지였으면 감정가 20~30만원[227] 백패(白牌) - 소과(小科) 합격 교지,홍패(紅牌) -대과(大科) 합격 교지[228] 김영옥(金榮玉) 무과중시[229] 중시(重試)- 조선 시대 당하관(堂下官)들을 대상으로 10년에 한 번씩 보던 과거시험 함격하면 더 높은 벼슬로 진급됨[230] 무과(武科) 중시 교지는 흔치 않아~[231] 20,30대에 과거에 합격해 벼슬을 하던 중 40,50대에 다시 중시에 합격[232] 문과(文科) 교지였으면 감정가 20~30만원[233] 남편이 중국 출장 중에 구입한 그림[234] 우리나라 화가의 그림이라 샀대요[235] 오원 장승업(吾園 張承業, 1843년 ~ 1897년) - 조선 말기의 화가,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과 함께 조선의 3원 화가로 불림[236] 천과 종이 모두 인위적[237] 소 그림 역시 이 당시에 물소가 아니라 한국소를 그렸음[238] 어디서든 좋은 그림을 제값으 줘야 살수 있어 싸다고 구입하는 것은 금물[239] 남편이 중국 출장 중에 구입한 그림[240] 우리나라 화가의 그림이라 샀대요[241] 오원 장승업(吾園 張承業, 1843년 ~ 1897년) - 조선 말기의 화가,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과 함께 조선의 3원 화가로 불림[242] 천과 종이 모두 인위적[243] 소 그림 역시 이 당시에 물소가 아니라 한국소를 그렸음[244] 어디서든 좋은 그림을 제값으 줘야 살수 있어 싸다고 구입하는 것은 금물[245] 구한말을 거쳐 활동한 삼대(三代) 화가로 아버지가 소치,아들이 남농으로 알고 있습니다[246] 사군자를 곁들인 수묵화를 많이 그림[247] 나이 들어서 그려 완숙미가 느껴짐[248] 연,오동나무,소나무 등을 더 그려 10폭을 완성[249] 아버지 소치 허련과 아들 남농 허건 사이에서 교량 역할을 한 미산 허형[250] 3대가 남종화를 현대화로 이어주는 역할을 함[251] 산수화,사군자 등 남긴 작품이 많은 편[252] 구한말을 거쳐 활동한 삼대(三代) 화가로 아버지가 소치,아들이 남농으로 알고 있습니다[253] 사군자를 곁들인 수묵화를 많이 그림[254] 나이 들어서 그려 완숙미가 느껴짐[255] 연,오동나무,소나무 등을 더 그려 10폭을 완성[256] 아버지 소치 허련과 아들 남농 허건 사이에서 교량 역할을 한 미산 허형[257] 3대가 남종화를 현대화로 이어주는 역할을 함[258] 산수화,사군자 등 남긴 작품이 많은 편[259] 철종 때 통정대부 김노양의 벼슬을 숭정대부로 올려준 교지?[260] 통정대부(通政大夫) - 조선 신대 문신 정3품 당상관(堂山官)의 품계명[261] 숭정대부(崇政大夫) - 조선 시대 종1품 하계 문신의 품계명[262] 함풍(咸豊) 9년- 1869년[263] 100세가 되어 특별히 숭정대부로 벼슬을 올려준다는 교지 조선 시대에 보기 어려운 특별한 교지[264] 철종 때 통정대부 김노양의 벼슬을 숭정대부로 올려준 교지?[265] 통정대부(通政大夫) - 조선 신대 문신 정3품 당상관(堂山官)의 품계명[266] 숭정대부(崇政大夫) - 조선 시대 종1품 하계 문신의 품계명[267] 함풍(咸豊) 9년- 1869년[268] 100세가 되어 특별히 숭정대부로 벼슬을 올려준다는 교지 조선 시대에 보기 어려운 특별한 교지[269] 2016년 8월9일 서천군 문예의전당 소강당에서 촬영[270] 2016년 8월9일 서천군 문예의전당 소강당에서 촬영[271] 광주광역시
서구청에서 촬영[272] 장재성(서구 상무대로) 가 광주광역시 서구을의 구의원님이 의뢰했다. 고미술품에 관심을 많은 의뢰인이다.[273] 광주광역시
서구청에서 촬영[274] 장재성(서구 상무대로) 가 광주광역시 서구을의 구의원님이 의뢰했다. 고미술품에 관심을 많은 의뢰인이다.[275] 경상남도 함안군 3층 회의실에서 촬영[276] 출장감정-경남 의령군의 의뢰인 4명은 노인(할아버지3명,할머니3명)이 감정 의뢰했다.[277] 옛날에 아버지가 사용했던 주병[278] "일흔 살(70세) 넘어 막걸리 담아 마셔봤어요~"[279] 아무나 사용할수 없었던 도자기[280] 학,대나무,구름 모두 십장생[281] 장수를 의마하는 문양[282] 의뢰인의 감정 추정 예상가는 "200만원 예상해봅니다~"[283] 보관상태가 좋은 편[284] 약 180년 정도 된 작품[285] 경상남도 함안군 3층 회의실에서 촬영[286] 출장감정-경남 의령군의 의뢰인 4명은 노인(할아버지3명,할머니3명)이 감정 의뢰했다.[287] 옛날에 아버지가 사용했던 주병[288] "일흔 살(70세) 넘어 막걸리 담아 마셔봤어요~"[289] 아무나 사용할수 없었던 도자기[290] 학,대나무,구름 모두 십장생[291] 장수를 의마하는 문양[292] 의뢰인의 감정 추정 예상가는 "200만원 예상해봅니다~"[293] 보관상태가 좋은 편[294] 약 180년 정도 된 작품[295] 깔끔해 보이는 소반 등장[296] "회사일로 바빠서 대신 왔어요~"[297] 친정 식구 소장품이에요~[298] 전체 크기:다리 높이/비율이 좋은[299] 조선 시대에 만든 전형적인 나주반(羅州盤)[300] 전라남도 나주시에 지역에서 만들어서 나주반이라고 한다.[301] 나주반의 특징 - 1. 상다리르 대나무 마디(竹節-죽절)모양으로 깎음[302] 2 전을 따로 만들어 붙이지 않고 통나무를 파서 만듦[303] 옷칠 대신 합성도료인 "캐슈도로"로 칠은 한 상태[304] 캐슈칠을 한 점이 가장 큰 감정가 하락 요인![305] "나주반이 훨씬 더 예뻐요~"[306] 의뢰인은 "이게 예쁩니다"라고 말했다.[307] 조형미가 아름다운 작품[308] 깔끔해 보이는 소반 등장[309] "회사일로 바빠서 대신 왔어요~"[310] 친정 식구 소장품이에요~[311] 전체 크기:다리 높이/비율이 좋은[312] 조선 시대에 만든 전형적인 나주반(羅州盤)[313] 전라남도 나주시에 지역에서 만들어서 나주반이라고 한다.[314] 나주반의 특징 - 1. 상다리르 대나무 마디(竹節-죽절)모양으로 깎음[315] 2 전을 따로 만들어 붙이지 않고 통나무를 파서 만듦[316] 옷칠 대신 합성도료인 "캐슈도로"로 칠은 한 상태[317] 캐슈칠을 한 점이 가장 큰 감정가 하락 요인![318] "나주반이 훨씬 더 예뻐요~"[319] 의뢰인은 "이게 예쁩니다"라고 말했다.[320] 조형미가 아름다운 작품[321] 집에 있으니까 가지고 있었지!![322] 6,25전쟁 때 굴 안에 숨겨서 보관하던 그림[323] 감정을 해봐야 좋은지 아닌지 알지~[324] 춘곡 고희동(春谷 高義東)/1886~1985 - 근대 화가이자 우리나나 최초의 서양화가/전통적 회화를 서양화와 절충해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325] 1927년 3월 그믐에 그려 남전여사(藍田女史)에게 선물한 그림[326] 남젼여사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라~[327] 남전여사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328] 절벽 아래에서 뱃놀이하는 모습[329] 중국의 화풍이 엿보이는 그림[330] 집에 있으니까 가지고 있었지!![331] 6,25전쟁 때 굴 안에 숨겨서 보관하던 그림[332] 감정을 해봐야 좋은지 아닌지 알지~[333] 춘곡 고희동(春谷 高義東)/1886~1985 - 근대 화가이자 우리나나 최초의 서양화가/전통적 회화를 서양화와 절충해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334] 1927년 3월 그믐에 그려 남전여사(藍田女史)에게 선물한 그림[335] 남젼여사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라~[336] 남전여사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337] 절벽 아래에서 뱃놀이하는 모습[338] 중국의 화풍이 엿보이는 그림[339] 새 감정위원의 글씨,고서 전문 감정위원인 김상환 감정위원[340] 이인좌의 난에서 공을 세워 사후에 받은 문서[341] 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戊申亂)=이인좌의 난)[342] 당시 공을 세운 박중로,박동로,박시로 3형제[343] 세 사람 사후인 1822년에 내린 문서로 공신의 후손들에게 부역을 면제해주는 내용[344] 조선 시대 관청 중 하나인 예조(禮曹)에서 발급한 문서[345] 정식 명칭은 예조입안(禮曹立案)[346] 예조판서의 수결(手決)도 찍혀있음[347] 새 감정위원의 글씨,고서 전문 감정위원인 김상환 감정위원[348] 이인좌의 난에서 공을 세워 사후에 받은 문서[349] 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戊申亂)=이인좌의 난)[350] 당시 공을 세운 박중로,박동로,박시로 3형제[351] 세 사람 사후인 1822년에 내린 문서로 공신의 후손들에게 부역을 면제해주는 내용[352] 조선 시대 관청 중 하나인 예조(禮曹)에서 발급한 문서[353] 정식 명칭은 예조입안(禮曹立案)[354] 예조판서의 수결(手決)도 찍혀있음[355] 목이 부러져 감정가 하락. 만약 목이 부러지지 않았다면 감정가는 1,000만원[356] 목이 부러져 감정가 하락. 만약 목이 부러지지 않았다면 감정가는 1,000만원[357] 만약 진품이었다면 감정가는 400만원[358] 만약 진품이었다면 감정가는 400만원
서구청에서 촬영[272] 장재성(서구 상무대로) 가 광주광역시 서구을의 구의원님이 의뢰했다. 고미술품에 관심을 많은 의뢰인이다.[273] 광주광역시
서구청에서 촬영[274] 장재성(서구 상무대로) 가 광주광역시 서구을의 구의원님이 의뢰했다. 고미술품에 관심을 많은 의뢰인이다.[275] 경상남도 함안군 3층 회의실에서 촬영[276] 출장감정-경남 의령군의 의뢰인 4명은 노인(할아버지3명,할머니3명)이 감정 의뢰했다.[277] 옛날에 아버지가 사용했던 주병[278] "일흔 살(70세) 넘어 막걸리 담아 마셔봤어요~"[279] 아무나 사용할수 없었던 도자기[280] 학,대나무,구름 모두 십장생[281] 장수를 의마하는 문양[282] 의뢰인의 감정 추정 예상가는 "200만원 예상해봅니다~"[283] 보관상태가 좋은 편[284] 약 180년 정도 된 작품[285] 경상남도 함안군 3층 회의실에서 촬영[286] 출장감정-경남 의령군의 의뢰인 4명은 노인(할아버지3명,할머니3명)이 감정 의뢰했다.[287] 옛날에 아버지가 사용했던 주병[288] "일흔 살(70세) 넘어 막걸리 담아 마셔봤어요~"[289] 아무나 사용할수 없었던 도자기[290] 학,대나무,구름 모두 십장생[291] 장수를 의마하는 문양[292] 의뢰인의 감정 추정 예상가는 "200만원 예상해봅니다~"[293] 보관상태가 좋은 편[294] 약 180년 정도 된 작품[295] 깔끔해 보이는 소반 등장[296] "회사일로 바빠서 대신 왔어요~"[297] 친정 식구 소장품이에요~[298] 전체 크기:다리 높이/비율이 좋은[299] 조선 시대에 만든 전형적인 나주반(羅州盤)[300] 전라남도 나주시에 지역에서 만들어서 나주반이라고 한다.[301] 나주반의 특징 - 1. 상다리르 대나무 마디(竹節-죽절)모양으로 깎음[302] 2 전을 따로 만들어 붙이지 않고 통나무를 파서 만듦[303] 옷칠 대신 합성도료인 "캐슈도로"로 칠은 한 상태[304] 캐슈칠을 한 점이 가장 큰 감정가 하락 요인![305] "나주반이 훨씬 더 예뻐요~"[306] 의뢰인은 "이게 예쁩니다"라고 말했다.[307] 조형미가 아름다운 작품[308] 깔끔해 보이는 소반 등장[309] "회사일로 바빠서 대신 왔어요~"[310] 친정 식구 소장품이에요~[311] 전체 크기:다리 높이/비율이 좋은[312] 조선 시대에 만든 전형적인 나주반(羅州盤)[313] 전라남도 나주시에 지역에서 만들어서 나주반이라고 한다.[314] 나주반의 특징 - 1. 상다리르 대나무 마디(竹節-죽절)모양으로 깎음[315] 2 전을 따로 만들어 붙이지 않고 통나무를 파서 만듦[316] 옷칠 대신 합성도료인 "캐슈도로"로 칠은 한 상태[317] 캐슈칠을 한 점이 가장 큰 감정가 하락 요인![318] "나주반이 훨씬 더 예뻐요~"[319] 의뢰인은 "이게 예쁩니다"라고 말했다.[320] 조형미가 아름다운 작품[321] 집에 있으니까 가지고 있었지!![322] 6,25전쟁 때 굴 안에 숨겨서 보관하던 그림[323] 감정을 해봐야 좋은지 아닌지 알지~[324] 춘곡 고희동(春谷 高義東)/1886~1985 - 근대 화가이자 우리나나 최초의 서양화가/전통적 회화를 서양화와 절충해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325] 1927년 3월 그믐에 그려 남전여사(藍田女史)에게 선물한 그림[326] 남젼여사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라~[327] 남전여사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328] 절벽 아래에서 뱃놀이하는 모습[329] 중국의 화풍이 엿보이는 그림[330] 집에 있으니까 가지고 있었지!![331] 6,25전쟁 때 굴 안에 숨겨서 보관하던 그림[332] 감정을 해봐야 좋은지 아닌지 알지~[333] 춘곡 고희동(春谷 高義東)/1886~1985 - 근대 화가이자 우리나나 최초의 서양화가/전통적 회화를 서양화와 절충해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334] 1927년 3월 그믐에 그려 남전여사(藍田女史)에게 선물한 그림[335] 남젼여사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라~[336] 남전여사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337] 절벽 아래에서 뱃놀이하는 모습[338] 중국의 화풍이 엿보이는 그림[339] 새 감정위원의 글씨,고서 전문 감정위원인 김상환 감정위원[340] 이인좌의 난에서 공을 세워 사후에 받은 문서[341] 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戊申亂)=이인좌의 난)[342] 당시 공을 세운 박중로,박동로,박시로 3형제[343] 세 사람 사후인 1822년에 내린 문서로 공신의 후손들에게 부역을 면제해주는 내용[344] 조선 시대 관청 중 하나인 예조(禮曹)에서 발급한 문서[345] 정식 명칭은 예조입안(禮曹立案)[346] 예조판서의 수결(手決)도 찍혀있음[347] 새 감정위원의 글씨,고서 전문 감정위원인 김상환 감정위원[348] 이인좌의 난에서 공을 세워 사후에 받은 문서[349] 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戊申亂)=이인좌의 난)[350] 당시 공을 세운 박중로,박동로,박시로 3형제[351] 세 사람 사후인 1822년에 내린 문서로 공신의 후손들에게 부역을 면제해주는 내용[352] 조선 시대 관청 중 하나인 예조(禮曹)에서 발급한 문서[353] 정식 명칭은 예조입안(禮曹立案)[354] 예조판서의 수결(手決)도 찍혀있음[355] 목이 부러져 감정가 하락. 만약 목이 부러지지 않았다면 감정가는 1,000만원[356] 목이 부러져 감정가 하락. 만약 목이 부러지지 않았다면 감정가는 1,000만원[357] 만약 진품이었다면 감정가는 400만원[358] 만약 진품이었다면 감정가는 40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