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개요
2. 운동에 대한 역설(Paradox of Motion)
2.1. 사람은 결승점을 통과할 수 없다
올림피우스가 달리기를 할 때, 결승점에 도달하기 전에 1/2 지점에 도달해야 한다. 이후 중간점과 결승점의 1/2이 되는 지점에 도달한다. 이후 또 다시 중간점과 결승점의 중간에 해당하는 지점과 결승점의 1/2이 되는 지점에 도달한다.
결국 무한히 계속되는 중간점에 의해 결승점에 무한히 가까워지지만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각각의 절반지점을 통과할 때마다 1분씩 걸린다고 가정할 경우, 끊임없이 가까워지지만 도달하지는 않는다.
물론 이것은 역설이다. 각각의 절반 지점을 통과할 때는 그전의 통과점을 통과할 때의 1/2의 시간밖에는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한등비급수인데 공식인 a/(1-r)로 할 수 있다. 이를 계산하면 2가 나온다. 따라서 무수히 많은 중간점을 지나게 되더라도 2분 만에 결승점에 도달하게 된다.
결국 무한히 계속되는 중간점에 의해 결승점에 무한히 가까워지지만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각각의 절반지점을 통과할 때마다 1분씩 걸린다고 가정할 경우, 끊임없이 가까워지지만 도달하지는 않는다.
물론 이것은 역설이다. 각각의 절반 지점을 통과할 때는 그전의 통과점을 통과할 때의 1/2의 시간밖에는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한등비급수인데 공식인 a/(1-r)로 할 수 있다. 이를 계산하면 2가 나온다. 따라서 무수히 많은 중간점을 지나게 되더라도 2분 만에 결승점에 도달하게 된다.
2.2. 아킬레우스와 거북이
가장 유명한 역설이다. 아킬레우스가 발이 빠른 영웅의 대표였기 때문에 그를 예시로 들었다.[1]
아킬레우스가 100m 가는 동안 거북이가 10m을 간다고 가정하고, 거북이가 아킬레우스보다 100m 앞에 있다고 가정할 때, 아킬레우스가 100m 앞으로 갈 때 거북이는 10m를 나아간다. 다시 아킬레우스가 10m를 나아가면 거북이는 1m 이동하여 그 자리에 없게 된다. 마찬가지로 아킬레우스가 다시 1m를 가면 거북이는 0.1m 나아간다. 따라서 아킬레우스는 아주 미세한 거리만큼 뒤처지게 되며, 아무리 가까워져도 거북이를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다.
물론 이것 역시 역설이다. 제논이 피타고라스의 정수론을 공격하기 위해 던진 논제였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당연히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았지만, 이것을 논리적으로 파해하는 것은 당시의 수학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역설'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논리적으로 파해하지 못한 것은 당시의 시대엔 '무한'의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며 무한의 개념은 무려 19세기 가서야 정립된다.
실제로는 100+10+1+0.1+0.01+..... 하면 111.11...이며, 0.111....은 무슨 알 수 없는 미지의 숫자가 아니고 그냥 정확히 <math>displaystyle frac{1}{9}</math>이기 때문에 아킬레우스는 <math>displaystyle frac{1000}{9}</math>m에서 확정적으로 거북이를 따라잡는다.
아킬레우스가 100m 가는 동안 거북이가 10m을 간다고 가정하고, 거북이가 아킬레우스보다 100m 앞에 있다고 가정할 때, 아킬레우스가 100m 앞으로 갈 때 거북이는 10m를 나아간다. 다시 아킬레우스가 10m를 나아가면 거북이는 1m 이동하여 그 자리에 없게 된다. 마찬가지로 아킬레우스가 다시 1m를 가면 거북이는 0.1m 나아간다. 따라서 아킬레우스는 아주 미세한 거리만큼 뒤처지게 되며, 아무리 가까워져도 거북이를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다.
물론 이것 역시 역설이다. 제논이 피타고라스의 정수론을 공격하기 위해 던진 논제였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당연히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았지만, 이것을 논리적으로 파해하는 것은 당시의 수학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역설'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논리적으로 파해하지 못한 것은 당시의 시대엔 '무한'의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며 무한의 개념은 무려 19세기 가서야 정립된다.
실제로는 100+10+1+0.1+0.01+..... 하면 111.11...이며, 0.111....은 무슨 알 수 없는 미지의 숫자가 아니고 그냥 정확히 <math>displaystyle frac{1}{9}</math>이기 때문에 아킬레우스는 <math>displaystyle frac{1000}{9}</math>m에서 확정적으로 거북이를 따라잡는다.
2.3. 화살의 패러독스
화살을 쏘았다. 날아가는 화살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어느 점을 지나게 될 것이다. 한 순간 동안에라도 화살은 어떤 한 점에 머무르게 되고 그 다음 순간에도 어떤 한 점에 머무르게 된다. 화살은 항상 머물러 있으니 결국 움직이지 않은 것이 된다. 역시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개념을 이용한 낚시. 만화책 "캠퍼스 러브스토리"에서 재미있게 표현되기도 했다.
2008년에 나온 김진경 작가의 소설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에서도 이에 대한 묘사가 있다. 이 책에서는 '시간은 쪼갤 수 없다'라며 이 논리의 모순점을 지적한다.
2008년에 나온 김진경 작가의 소설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에서도 이에 대한 묘사가 있다. 이 책에서는 '시간은 쪼갤 수 없다'라며 이 논리의 모순점을 지적한다.
3. 다수에 대한 역설(Paradox of Plurality)
"사물은 복수(Plurality)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제논이 제시한 역설들이다.
3.1. 유한 길이에 대한 주장
3.2. 조밀함에 대한 주장
3.3. 완전한 나눗셈에 대한 주장
4. 문제 해결
문제는 아킬레우스가 거북을 따라잡기 위해서 무한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데 있다. 무한히 많은 과정을 유한의 시간 내에 끝낼 수 있는가, 이를 정량적으로 표현하면 무한히 많은 숫자의 양을 더했을 때 과연 그 결과가 유한한 양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무한급수를 살펴보면 무한히 많은 항을 더해서 유한의 결과가 나오므로 가능하다.
버트런드 러셀에 따르면 무한집합으로 유명한 게오르그 칸토어가 해답을 내놓았고 그는 직선의 어떤 부분에 존재하는 점 또는 유한의 시간을 구성하는 한 순간은 셀 수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한다. 만약 셀 수 있는 경계가 있다면 그것들은 끝없이 추가되기 때문에 결국 도달할수 없게 되나 [2], 실제로는 그러한 셀 수 있는 경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
아르키메데스 대에는 무한급수를 사용하여 포물선과 그에 내접하는 삼각형의 넓이의 관계를 밝혀냈지만, 무한급수는 엄밀하게 정의된 것이 아니여서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였다.
19세기 초에 코시가 무한급수의 특성을 명확하게 규명했을 때에 이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다.
이 문제에 대한 다른 대답을 내놓은 것이 19세기 말에 나온 칸토어의 무한집합론이고, 칸토어 본인도 제논의 패러독스를 자기 논문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게오르크 칸토어는 선분, 혹은 직선 위의 점의 숫자는 '하나씩 셀 수 있는 무한대'[3]보다 많다는 것을 증명했다. 자연수라면 하나씩 무한대로 세어 나가면 자연수 전체를 셀 수 있지만, 선분 위의 점의 숫자는 그렇게 '셀 수 있는 무한대'보다 많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
전자를 셀 수 있는 집합(countable set), 후자를 셀 수 없는 집합(uncountable set)이라고 한다. 즉, 자연수나 유리수의 집합은 셀 수 있는 집합이며 실수나 복소수의 집합은 셀 수 없는 집합이다. 이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킨 것이 측도론(measure theory)인데, 측도론에서는 셀수있는 집합은 항상 잴 수 있으며(measurable) 그의 측도는 항상 0이다.
비슷한 것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바퀴 역설이 있다. 이것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부분적으로 해결했고, 게오르그 칸토어에 의해 완전히 해결되었다.
프랑스 철학자 베르크손은 복잡한 수학적 개념을 동원하지 않고 이를 쉽게 반박해냈다. 그에 따르면 '운동'은 비연장적인 '순수한 지속(duree pure)'속에서 진행되는 것이므로, 운동을 연장적인 것으로 환원해 분석할 수는 없다. 제논의 역설은 아킬레스의 운동을 그것이 연장적인 것이라 여기고 분할하여 분석하다 보니 생긴 문제라는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에 따르면 무한집합으로 유명한 게오르그 칸토어가 해답을 내놓았고 그는 직선의 어떤 부분에 존재하는 점 또는 유한의 시간을 구성하는 한 순간은 셀 수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한다. 만약 셀 수 있는 경계가 있다면 그것들은 끝없이 추가되기 때문에 결국 도달할수 없게 되나 [2], 실제로는 그러한 셀 수 있는 경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
아르키메데스 대에는 무한급수를 사용하여 포물선과 그에 내접하는 삼각형의 넓이의 관계를 밝혀냈지만, 무한급수는 엄밀하게 정의된 것이 아니여서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였다.
19세기 초에 코시가 무한급수의 특성을 명확하게 규명했을 때에 이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다.
이 문제에 대한 다른 대답을 내놓은 것이 19세기 말에 나온 칸토어의 무한집합론이고, 칸토어 본인도 제논의 패러독스를 자기 논문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게오르크 칸토어는 선분, 혹은 직선 위의 점의 숫자는 '하나씩 셀 수 있는 무한대'[3]보다 많다는 것을 증명했다. 자연수라면 하나씩 무한대로 세어 나가면 자연수 전체를 셀 수 있지만, 선분 위의 점의 숫자는 그렇게 '셀 수 있는 무한대'보다 많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
전자를 셀 수 있는 집합(countable set), 후자를 셀 수 없는 집합(uncountable set)이라고 한다. 즉, 자연수나 유리수의 집합은 셀 수 있는 집합이며 실수나 복소수의 집합은 셀 수 없는 집합이다. 이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킨 것이 측도론(measure theory)인데, 측도론에서는 셀수있는 집합은 항상 잴 수 있으며(measurable) 그의 측도는 항상 0이다.
비슷한 것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바퀴 역설이 있다. 이것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부분적으로 해결했고, 게오르그 칸토어에 의해 완전히 해결되었다.
프랑스 철학자 베르크손은 복잡한 수학적 개념을 동원하지 않고 이를 쉽게 반박해냈다. 그에 따르면 '운동'은 비연장적인 '순수한 지속(duree pure)'속에서 진행되는 것이므로, 운동을 연장적인 것으로 환원해 분석할 수는 없다. 제논의 역설은 아킬레스의 운동을 그것이 연장적인 것이라 여기고 분할하여 분석하다 보니 생긴 문제라는 것이다.
5. 현대 물리학에서
6. 매체에서
- 스즈미야 하루히의 경악에서는 쿠니키다가 쿈과 대화 중 츠루야에 대하여 위 역설을 연상케 하는 발언을 하였다.
-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서도 등장한다. 녹색의 아기의 스탠드, 그린 그린 그래스 오브 홈에 의해 가까이 갈수록 다가가는 사람의 신장이 거리에 비례해서 줄어들기 때문에 절대로 도달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