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
(#) | 이름
(Governor) | 취임일
(Took office) | 퇴직일
(Left office) | 정당
(Party) |
초대
| 니컬러스 쿡
(Nicholas Cooke) | 없음
(None)[2] | ||
2대
| 윌리엄 그린
(William Greene) | 없음
| ||
3대[4]
| 존 콜린스
(John Collins) | 없음
| ||
4대
| 아서 페너
(Arthur Fenner) | |||
5대
| 헨리 스미스
(Henry Smith) | |||
6대
| 아이작 윌버
(Isaac Wilbour) | |||
7대
| 제임스 페너
(James Fenner) | |||
8대
| 윌리엄 존스
(William Jones) | 연방주의자
(Federalist) | ||
9대
| 니어마이아 R. 나이트
(Nehemiah R. Knight) | |||
10대
| 윌리엄 C. 깁스
(William C. Gibbs) | |||
11대
| 제임스 페너
(James Fenner) | |||
12대
| 레뮤얼 H. 아널드
(Lemuel H. Arnold) | 휘그당
(Whig) | ||
13대
| 존 브라운 프랜시스
(John B. Francis) | 민주당
(Democratic) | ||
14대
| 윌리엄 스프레이그 3세
(William Sprague III) | |||
15대
| 새뮤얼 워드 킹
(Samuel Ward King) | 로드 아일랜드당
(Rhode Island Party) | ||
16대
| 토머스 윌슨 도어
(Thomas Wilson Dorr) | |||
17대
| 제임스 페너
(James Fenner) | |||
18대
| 찰스 잭슨
(Charles Jackson) | |||
19대
| 바이런 다이먼
(Byron Diman) | |||
20대
| 엘리샤 해리스
(Elisha Harris) | |||
21대
| 헨리 B. 앤서니
(Henry B. Anthony) | |||
22대
| 필립 앨런
(Philip Allen) | |||
23대
| 프랜시스 M. 다이몬드
(Francis M. Dimond) | |||
24대
| 윌리엄 W. 호핀
(William W. Hoppin) | |||
25대
| 엘리샤 다이어
(Elisha Dyer) | 공화당
(Republican) | ||
26대
| 토머스 G. 터너
(Thomas G. Turner) | |||
27대
| 윌리엄 스프레이그 4세
(William Sprague IV) | |||
28대
| 윌리엄 C. 커즌스
(William C. Cozzens) | |||
29대
| 제임스 Y. 스미스
(James Y. Smith) | |||
30대
| 앰브로스 에버렛 번사이드
(Ambrose Everett Burnside) | |||
31대
| 세스 패들퍼드
(Seth Padelford) | |||
32대
| 헨리 하워드
(Henry Howard) | |||
33대
| 헨리 리핏
(Henry Lippitt) | |||
34대
| 찰스 C. 밴잰트
(Charles C. Van Zandt) | |||
35대
| 앨프리드 H. 리틀필드
(Alfred H. Littlefield) | |||
36대
| 오거스터스 O. 본
(Augustus O. Bourn) | |||
37대
| 조지 P. 웨트모어
(George P. Wetmore) | |||
38대
| 존 W. 데이비스
(John W. Davis) | |||
39대
| 로얼 C. 태프트
(Royal C. Taft) | |||
40대
| 허버트 W. 래드
(Herbert W. Ladd) | |||
41대
| 존 W. 데이비스
(John W. Davis) | |||
42대
| 허버트 W. 래드
(Herbert W. Ladd) | |||
43대
| D. 러셀 브라운
(D. Russell Brown) | |||
44대
| 찰스 W. 리핏
(Charles W. Lippitt) | |||
45대
| 엘리샤 다이어 주니어
(Elisha Dyer, Jr.) | |||
46대
| 윌리엄 그레고리
(William Gregory) | |||
47대
| 찰스 D. 킴볼
(Charles D. Kimball) | |||
48대
| 루시어스 F. C. 가빈
(Lucius F. C. Garvin) | |||
49대
| 조지 H. 어터
(George H. Utter) | |||
50대
| 제임스 H. 히긴스
(James H. Higgins) | |||
51대
| 아람 J. 포티에
(Aram J. Pothier) | |||
52대
| R. 리빙스턴 베크먼
(R. Livingston Beeckman) | |||
53대
| 에머리 J. 샌수시
(Emery J. San Souci) | |||
54대
| 윌리엄 S. 플린
(William S. Flynn) | |||
55대
| 아람 J. 포티에
(Aram J. Pothier) | |||
56대
| 노먼 S. 케이스
(Norman S. Case) | |||
57대
| 시어도어 프랜시스 그린
(Theodore Francis Green) | |||
58대
| 로버트 E. 퀸
(Robert E. Quinn) | |||
59대
| 윌리엄 헨리 밴더빌트 3세
(William Henry Vanderbilt III) | |||
60대
| J. 하워드 맥그래스
(J. Howard McGrath) | |||
61대
| 존 올랜도 파스토레
(John Orlando Pastore) | |||
62대
| 존 S. 매키어넌
(John S. McKiernan) | |||
63대
| 데니스 J. 로버츠
(Dennis J. Roberts) | |||
64대
| 크리스토퍼 델세스토
(Christopher Del Sesto) | |||
65대
| 존 A. 놋 주니어
(John A. Notte, Jr.) | |||
66대
| 존 허버드 체이피
(John Hubbard Chafee) | |||
67대
| 프랭크 릭트
(Frank Licht) | |||
68대
| 필립 W. 노엘
(Philip W. Noel) | |||
69대
| J. 조지프 개러히
(J. Joseph Garrahy) | |||
70대
| 에드워드 D. 디프렛
(Edward D. DiPrete) | |||
71대
| 브루스 선들런
(Bruce Sundlun) | |||
72대
| 링컨 C. 앨먼드
(Lincoln C. Almond) | |||
73대
| 도널드 카시어리
(Donald Carcieri) | |||
74대
| 링컨 체이피
(Lincoln Chafee) | 무소속
(Independent) | ||
75대
| 지나 레이몬도
(Gina Raimondo) | 현재 재임 중
(Incumbent) |
[1] 로드아일랜드가 아직 정식적으로 미합중국 정부에 가입하기 이전이라 정당은 존재하지 않았다.[2] 로드아일랜드가 아직 정식적으로 미합중국 정부에 가입하기 이전이라 정당은 존재하지 않았다.[3] 로드아일랜드가 미합중국 정부에 가입한 이래로 첫 번째 주지사이다.[4] 로드아일랜드가 미합중국 정부에 가입한 이래로 첫 번째 주지사이다.[5] 혹은 지방당[6] 혹은 지방당[7] 마저리 켈리 작가의 저서 '주식회사 이데올로기 - 21세기 경제 귀족주의의 탄생' 이라는 책에서는 도어의 반란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도어는 로드아일랜드에서 백인 남성의 참정권을 놓고 벌어진 투쟁의 영웅이었다. 로드 아일랜드에서는 한 때 재산 요건 때문에 성인 남성의 절반 이상이 투표권을 갖지 못했다. 1842년 투표권이 없는 이들이 봉기해 도어 반란(Dorr Rebellion)을 일으켰다. 그들은 모든 백인 남성에게 참정권을 줄 것을 요구하는 그들만의 '인민 헌법(People's Constitution)을 만들고 도어를 주지사로 선출했다. 이로써 로드아일랜드에는 주지사가 두 명인 이상한 사태가 연출되었고, 결국 존 타일러 미합중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반란을 진압했다. 그이후로, 도어는 재판에 회부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결국 1년만 복역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내세웠던 대의가 승리를 거두었다. 1843년 로드아일랜드의 참정권 조항이 개정된 것이다. 1850년대에 이르러서는 투표권의 재산 요건이 거의 모든 주에서 폐지되었다. 토머스 윌슨 도어는 엘리자베스 스탠턴만큼 알려졌어야 할 인물이다. 하지만 도어는 그리 유명하지 않다. 집단적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린 듯 빈부 차별의 역사가 고스란히 잊혔기 때문이다. [8] 마저리 켈리 작가의 저서 '주식회사 이데올로기 - 21세기 경제 귀족주의의 탄생' 이라는 책에서는 도어의 반란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도어는 로드아일랜드에서 백인 남성의 참정권을 놓고 벌어진 투쟁의 영웅이었다. 로드 아일랜드에서는 한 때 재산 요건 때문에 성인 남성의 절반 이상이 투표권을 갖지 못했다. 1842년 투표권이 없는 이들이 봉기해 도어 반란(Dorr Rebellion)을 일으켰다. 그들은 모든 백인 남성에게 참정권을 줄 것을 요구하는 그들만의 '인민 헌법(People's Constitution)을 만들고 도어를 주지사로 선출했다. 이로써 로드아일랜드에는 주지사가 두 명인 이상한 사태가 연출되었고, 결국 존 타일러 미합중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반란을 진압했다. 그이후로, 도어는 재판에 회부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결국 1년만 복역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내세웠던 대의가 승리를 거두었다. 1843년 로드아일랜드의 참정권 조항이 개정된 것이다. 1850년대에 이르러서는 투표권의 재산 요건이 거의 모든 주에서 폐지되었다. 토머스 윌슨 도어는 엘리자베스 스탠턴만큼 알려졌어야 할 인물이다. 하지만 도어는 그리 유명하지 않다. 집단적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린 듯 빈부 차별의 역사가 고스란히 잊혔기 때문이다. [9] 또는 해방당[10] 또는 해방당[11] 퇴임 후, 부패 혐의로 수감되었다.[12] 퇴임 후, 부패 혐의로 수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