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 6주(江東 六州)의 위치.
|
1. 개요
2. 상세
고려 성종 12년인 993년, 소손녕이 이끄는 거란의 80만 대군이 고려를 침공하였다. 이에 성종은 상중하 3군을 편성하고 시중 박양유를 상군사로, 내사시랑 서희를 중군사로, 문하시랑 최량을 하군사로 삼아 대비하게 하였다. 또한 성종은 친히 서경을 거쳐 안북부까지 나아가 적극적으로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봉산 전투에서 고려군이 패배하자 항복하자는 의견과 서경 이북의 영토를 떼어주자는 의견이 득세하였다. 그럼에도 안융진 전투에서 대도수의 활약으로 전선이 고착화되자 성종은 서희 및 이지백의 건의를 받아들여 협상 노선을 채택하였다.
고려 측 협상자로서 거란 진영으로 간 서희가 뻔뻔한 태도로 침대에 누워버리며 소손녕의 기선을 제압하고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하였고 평양에 도읍하였으므로 오히려 거란이 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희는 조공 문제를 따지는 소손녕에게 여진이 길을 막고 있으니 그들을 쫓아내고 압록강 하구 일대의 통제권을 주면 거란과 친하게 지내겠다는 말로 압록강 동쪽의 영토를 얻어내었다.
이렇게 고려는 거란에게 조공하는 대가로 안북부부터 압록강에 이르는 280리의 땅을 얻고 흥화진, 용주, 철주, 통주, 곽주, 귀주를[3] 설치하니 이것이 실리 외교의 대명사인 강동6주인 것이다.
하지만 봉산 전투에서 고려군이 패배하자 항복하자는 의견과 서경 이북의 영토를 떼어주자는 의견이 득세하였다. 그럼에도 안융진 전투에서 대도수의 활약으로 전선이 고착화되자 성종은 서희 및 이지백의 건의를 받아들여 협상 노선을 채택하였다.
고려 측 협상자로서 거란 진영으로 간 서희가 뻔뻔한 태도로 침대에 누워버리며 소손녕의 기선을 제압하고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하였고 평양에 도읍하였으므로 오히려 거란이 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희는 조공 문제를 따지는 소손녕에게 여진이 길을 막고 있으니 그들을 쫓아내고 압록강 하구 일대의 통제권을 주면 거란과 친하게 지내겠다는 말로 압록강 동쪽의 영토를 얻어내었다.
이렇게 고려는 거란에게 조공하는 대가로 안북부부터 압록강에 이르는 280리의 땅을 얻고 흥화진, 용주, 철주, 통주, 곽주, 귀주를[3] 설치하니 이것이 실리 외교의 대명사인 강동6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