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생애
여요전쟁 거란의 1차 침입 때 중랑장의 직위로 안융진에서 부관 낭장 유방과 함께 소손녕의 거란군을 무너뜨리는 공을 세웠다.
봉산군에서 고려군을 제압하며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했던 소손녕은 예기치 않게 안융진에서 대도수에게 패한 이후 소극적으로 변했고 고려의 서희가 소손녕과 담판을 짓게 된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여요전쟁 거란의 2차 침입 때는 직위가 두 단계 오른 대장군의 직위에 있었는데 지금의 평양인 서경에서 지채문, 탁사정 등과 거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하였으나 전세가 불리해진 상황에서 탁사정[1]이 배신을 저지르고는 튀는 바람에 결국 거란에게 포로로 붙잡혔고 그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봉산군에서 고려군을 제압하며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했던 소손녕은 예기치 않게 안융진에서 대도수에게 패한 이후 소극적으로 변했고 고려의 서희가 소손녕과 담판을 짓게 된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여요전쟁 거란의 2차 침입 때는 직위가 두 단계 오른 대장군의 직위에 있었는데 지금의 평양인 서경에서 지채문, 탁사정 등과 거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하였으나 전세가 불리해진 상황에서 탁사정[1]이 배신을 저지르고는 튀는 바람에 결국 거란에게 포로로 붙잡혔고 그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3. 창작물에서
4. 관련 문서
[1] 목종을 숙위하다가 강조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에 합세해 공을 세웠다. 그러나 자신의 빽이었던 강조가 죽은 이후 1011년 8월에 그의 당여라는 명분으로 유배형에 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