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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7년[편집]
2. 1988년[편집]
"제 목숨 다할 때까지 웃기겠습니다." (심형래)
3. 1989년[편집]
"기꺼이 고맙다는 뜻으로 달게 받겠습니다" (임하룡)
4. 1990년[편집]
"고맙습니다. 생각을 못했어요." (김미화)
MC는 특이하게 KBS 코미디언들이 돌아가며 맡았다. 메인 진행은 송해와 이성미가 맡았고, 최양락-김미화, 김학래-김혜정, 이상해-이경애가 코너별 진행을 맡았다.
대상은 쓰리랑 부부의 김미화가 받았다. 이 기록은 약 27년간 깨지지 않았다가 이영자가 수상하며 깨졌다.
그리고 남자 연기상은 심형래, 여자 연기상은 이경애가 수상했고, 신인상은 남자 이창훈, 여자 서현선이 받았는데 2년뒤 이창훈은 맹구로 엄청난 히트를 치며 대상을 수상했다.
또한 이 해 한정으로 조연상 부문도 시상했는데, 남자 조연상은 이봉원, 여자 조연상은 지영옥이 수상했다.
5. 1991년[편집]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노력하는 연기자로 남겠습니다." (임하룡)
MC는 허참, 오미영
대상은 1989년에 이어 임하룡이 수상하면서 코미디대상 최초 2회 수상을 달성하였다. 사실 이 때는 한 해 내내 부채도사로 맹활약한 장두석이나 봉숭아 학당의 맹구 역으로 맹활약한 이창훈 정도가 가장 유력한 대상 후보였지만, 장두석은 남자 연기상에 그쳤고, 이창훈은 다음 해에서야 대상의 영예를 안게 된다. 이 해의 임하룡은 <추억의 책가방>의 주연 해롱이 역으로 맹활약하여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정작 당시는 <추억의 책가방>이 시작한지 겨우 3개월 정도에 지나지 않았고, 유머 1번지가 종영되는 1992년 10월까지 방영했기 때문에 <추억의 책가방> 코너 방영일은 1992년이 더 길었다. 이 때문인지 임하룡은 첫 수상했던 1989년과는 다르게 이때는 수상자 호명 당시 다소 당황하고 얼떨떨한 기색이 역력했다. 수상 소감에서도 본인은 자신보다는 다른 연기자들의 활약이 더 출중했기에 축하하러 시상식에 참여했는데 생각지 못하게 큰 상을 받게 되었다고 술회하였다.
이 해 남자 신인상은 서인석, 여자 신인상은 <추억의 책가방>에서 해롱이를 짝사랑하는 오달자 역의 김현영이 수상했다. 남자 연기상은 상술했듯 부채도사 역의 장두석이, 여자 연기상은 원로 코미디언 최용순이 수상했다.
보기 드물게 유재석, 박수홍, 김용만 등 신인 개그맨들도 영상에 나왔던 해로 기억되고 있다.
6. 1992년[편집]
"무슨 말씀을 어떻게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창훈)
7. 1993년[편집]
8. 1994년[편집]
9. 1995년[편집]
"본업은 코미디언이죠. 죽어도 코미디언입니다." (서세원)
10. 2002년[편집]
"글쎄, 오늘은 저에게 굉장히 의미있는 날인 것 같습니다." (신동엽)
'KBS 연예대상'이라는 이름으로 치러진 첫 번째 시상식. MC는 신동엽, 이효리가 진행했다. 대상은 쟁반노래방의 신동엽, 코미디 부문 최우수상은 박준형과 강성범, MC 부문 최우수상은 이경규에게 돌아갔다.
이 시상식이 이른바 '스타밸리 사태'의 직접적인 도화선이었다. 개콘의 개국 공신이자 스타밸리의 에이스였던 심현섭이 대상은 고사하고 최우수상 수상에도 실패하자[4] 이에 화가 난 당시 스타밸리 대표가 심현섭, 이병진, 이태식, 김숙, 김대희, 김준호 등 소속 개그맨들에게 개콘 하차를 지시하면서 개콘에서는 반강제적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진다. 하지만 개그콘서트는 오히려 더 큰 성공을 거두며 이듬해 박준형의 대상으로 이어진 반면, 개콘을 떠나 웃찾사로 이동한 스타밸리 소속 개그맨들은 일부 인원[5]을 제외하고 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개콘으로 복귀하거나[6] 조용히 코미디 경력을 마감했으며, 스타밸리 회사 자체도 얼마 못 가 공중분해되었다.
또 당시 MC 부문 신인상 후보로 비, 이혁재, 이효리, 장나라가 올랐는데, 이들 모두 2년 안에 KBS에서 대상을 받았다.[7] 당시 신인상은 이효리와 장나라가 공동 수상했다.
11. 2003년[편집]
"개그 콘서트 앞으로도 많이 사랑해 주세요. 여러분, 감사합니다." (박준형)
12. 2004년[편집]
"제가 사실 KBS 출신은 아닌데... 받아준 KBS에 정말 감사하고요." (이혁재)
13. 2005년[편집]
"가진 능력에 비해서 너무나 많은 걸 누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재석)
14. 2006년[편집]
"참 오래 보기 힘든 얼굴인데 봐 주신 시청자 여러분께 가장 먼저 감사 드립니다." (김제동)
MC는 이휘재, 김경란, 백승주가 맡았다.
이 해에는 이례적으로 대상 후보가 공개되지 않았는데, 앞서 나온 것처럼 원래 이휘재의 수상이 유력했으나, 상상플러스에서의 손가락 욕 논란으로 사실상 대상 후보에서 제외되고 최우수상 수상에 그쳤으며, 대상은 스타 골든벨, 연예가 중계, 쾌남시대의 김제동에게 돌아갔다. 언론에서 예상한 대상 후보로는 김제동, 이휘재 외에 마빡이의 정종철, 여걸 식스의 지석진 정도가 있었고, 이 중 정종철은 코미디 부문 최우수상을 받고 펑펑 울면서 감동적인데 이상하게 웃긴 장면을 연출했다.
이 해부터 HD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또, 그래픽과 CG도 이전과 다른 느낌을 주었다.
15. 2007년[편집]
MC는 신동엽, 이효리가 진행했다. 이는 지난 2003년 이후 4년 만이다.
상상플러스, 불후의 명곡의 탁재훈이 대상을 수상했는데 다소 의외라는 평이 있었다. 이 해 KBS 연예대상 후보가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던 1박 2일의 강호동, 월요일 11시대에 야심만만을 제친 미수다의 남희석, 초반의 난맥상을 딛고 시즌 3 안착에 성공한 해피투게더의 유재석, 전통의 강자 상상플러스, 스펀지의 이휘재라는 역대급 라인업이기도 했고, 탁재훈 본인의 퍼포먼스도 유행어를 양산하던 2005년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이 있었기 때문에[11] 그간 KBS 예능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한 것으로 풀이되었다. 하지만 이 상을 기점으로 탁재훈의 커리어는 본격적으로 내리막을 타기 시작한다.[12]
16. 2008년[편집]
"재석아, 이거 내가 받아도 되나?" (강호동)
MC는 신동엽, 김성은, 이지애가 진행했다.
모두의 예상대로 1박 2일의 강호동이 대상을 수상했다. 수상자로 호명되자마자 라이벌이자 동료인 유재석과 진한 포옹을 나누었고 무대로 올라와서 말한 위의 첫 마디가 더욱 인상적이었다. 1박 2일을 제외하면 KBS에서 히트작이 나오지 않아서 그런지 수상 부문이 다소 축소되었는데, 베스트 엔터테이너상과 인기상이 최고 인기상으로 통합되었고,[13] 쇼오락 부문 우수상[14]과 최우수상[15]도 남/녀 구분 없이 수여되었다. 개그콘서트 팀의 히트곡 메들리 무대가 이 해 시작되었는데, 그 중 비의 Rainism을 패러디한 한민관의 뼈다귀즘 무대가 큰 화제를 모았다. 늘 야생에서 촬영하다 보니 카메라 신경 전혀 안 쓰게 된 1박 2일 팀은 덤.
17. 2009년[편집]
"다시는 돌려주지 않겠습니다!" (이경규)
18. 2010년[편집]
"MBC, SBS 사장님, 코미디에 투자해 주십시오!" (김병만)
"그러나, 상은 운이 있어야 타는 겁니다!" (이경규)
[1] 세상에 이런일이에 나오는 MC 맞다.[2] 국회의원 임미숙과는 동명이인이다.[3] 이 다섯명은 모두 80년대를 휩쓸던 당대 인기 스타들 이었다.[4] 이 날 심현섭은 시상식에 불참했다.[5] 강성범, 김숙, 이병진 등.[6] 박성호, 김대희, 김준호 등.[7] 장나라 - 2002년 KBS 가요대상, 이효리 - 2003년 KBS 가요대상, 이혁재 - 2004년 KBS 연예대상, 비 - 2004년 KBS 가요대상.[8] 이제는 개그 콘서트가 종영을 했기에 불가능하다.[9] 이 해부터 2013년 백상예술대상을 포함하여 2016년까지 연예대상이나 백상 대상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수상하였다.[10] 이 방식은 2013년까지 이어졌으며, 우수상/최우수상 시상 때마다 시상자들이 직접 설명했다.[11] 상상플러스는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고, 불후의 명곡은 해피 선데이를 캐리하다가 점차 1박 2일에 밀리는 감이 있었다.[12] 라디오 스타에 출연했을 때 대상을 받은 이후 개그감이 예전만 못하다는 질문을 받자, 그럼 대상 반납할테니 내 개그감 좀 돌려달라고 받아쳤다. 그 뒤 여러 구설수와 논란이 겹치면서 평가가 나락으로 떨어졌다.[13] 이승기가 수상.[14] 신봉선이 수상.[15] 정은아가 수상.[16] KBS 연예대상에서 최초이자 유일한 대상 2연패 수상자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