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Hearts of Iron IV/카이저라이히/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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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7대 열강 국가
2.1. [[독일 제국]]2.2. 프랑스 코뮌2.3. 브리튼 연방2.4. [[캐나다|캐나다 자치령]]
2.4.1. 대영제국
2.5. [[러시아 공화국]]
2.5.1. 러시아 사회주의 공화국
2.6. [[미국|미합중국 연방정부]](USA)
2.6.1. 미노조연맹(CSA)2.6.2. 미연합국(AUS)[* 게임상 태그는 [[텍사스 공화국|TEX]]이다. 모순적이게도 텍사스 일부 지역은 내전 시작시 미연합국 소속이 아니다.]2.6.3. 미태평양합중국(PSA)[* 게임상 tag는 [[캘리포니아|CAL]]이다.]2.6.4. 뉴잉글랜드(NEE)2.6.5. [[하와이 주|하와이]](HAW)
2.7. [[일본 제국]]
3. Heia Safari
3.1. [[에티오피아 제국|에티오피아]]3.2. [[라이베리아]]3.3. 독일령 중앙아프리카3.4. [[포르투갈 왕국|포르투갈]]3.5. 소말리아
4. Garibaldi's Nightmare
4.1. 오스트랄라시아 연방4.2. [[불가리아 왕국|불가리아]]4.3. [[이집트 왕국|이집트 술탄국]]4.4. [[네덜란드]]4.5. 페르시아4.6. 독일령 동아시아
5. [[엘 콘도 파사|El Cóndor Pasa]]
5.1. [[아르헨티나]]5.2. [[브라질]]5.3. [[칠레]]5.4. [[파라과이]]5.5. 페루5.6. 베네수엘라5.7. 네덜란드령 동인도5.8. 그리스
6. Divided states
6.1. [[코스타리카]]6.2. [[쿠바]]6.3. [[도미니카 공화국]]6.4. [[과테말라]]6.5. [[온두라스]]6.6. [[니카라과]]6.7. 서인도제도 연방
7. [[북극광|Aurora Borealis]]
7.1. [[스웨덴]]7.2. [[노르웨이]]7.3. [[핀란드]]7.4. [[덴마크]]7.5. [[아이슬란드]]
8. Blood on the [[장강|Yangtze]]
8.1. [[청나라]]8.2. 팔성연합8.3. [[봉천군벌|봉천정부]]8.4. [[운남군벌]]8.5. 마가군벌8.6. 산동군벌8.7. [[산서군벌]]8.8. 사천군벌
9. The Long Road Home
9.1. 이탈리아 사회주의 공화국9.2. 이탈리아 공화국9.3. 양시칠리아9.4. [[교황령]]9.5. [[사르데냐 왕국|사르데냐]]
10. [[사회적 거리두기|Stay at Home]]
10.1. 파타고니아 노동자전선
11. [[카롤 2세|A King]] and [[코르넬리우 젤레아 코드레아누|His Captain]]
11.1. [[루마니아 왕국|루마니아]]11.2. [[세르비아 왕국#s-2|세르비아]]
12. The Duke and the Hertzog
12.1. [[발트 연합 공국]]12.2. [[남아프리카 연방]]
13. [[프랑스 제2제국|Leaving for Syria]]
13.1. 프랑스 공화국13.2. [[오스만 제국]]13.3. 자발 샴마르13.4. 키레나이카 에미르국13.5. 조지아 공화국
14. [[Marching Through Georgia|Hindsight Is 2020]]15. 고유 국가 중점을 가지는 국가
15.1. 유럽
15.1.1. 폴란드 왕국15.1.2. 오스트리아 제국
15.2. 아프리카15.3. 북아메리카15.4. 남아메리카15.5. 아시아 & 오세아니아
15.5.1. 서아시아15.5.2. 남아시아15.5.3. 동남아시아15.5.4. 동아시아
16. 기타
16.1. 아시아16.2. 아프리카16.3. 유럽16.4. 아메리카

1. 개요

파일:KR_0.15.2.png
0.15.2 기준 카이저라이히 지도

HOI4용 카이저라이히의 주요 국가를 소개하는 문서. 대부분의 국가가 클론 초상화와 공용 연구 기관, 공용 국가 중점을 사용하는 바닐라와 달리 많은 나라가 고유의 초상화, 연구 기관, 국가 중점, 이벤트를 가지고 있다.

매 업데이트마다 특정 지역의 국가들이 대규모로 리워크된다.

유튜브 채널인 Kaiser Cat Cinema에서 카이저라이히의 세계(World of Kaiserreich)라는 이름으로 소개 영상을 올린다. 해당 국가의 일원이 현재 상황에 대해 독백하는 형태의 영상인데 뉴잉글랜드 같은거 빼면 뽕 채우기 좋은 편.

물론 이 영상의 내용이 모드 세계관 정사인 건 아니다. 캐나다 자치령 영상에서 브리튼 연방에 최대주의자가 집권했다고 나와도 그게 정식 스토리는 아니라는 얘기.

2. 7대 열강 국가

2.1. 독일 제국


독일 제국 헌법 The Constitution of the German Kaiserreich

북독일 연방에 의해 프랑스 제2제국이 패배한 이후, 북독일 연방의 대표자들과 남부 독일의 4개 주가 1871년 헌법에 서명했습니다. 이 헌법은 남부 독일의 주들을 북독일 연방의 영향 하에 두었고, '도이체스 라이히'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했습니다.

헌법에 따르면, 제국은 25개의 독일 주가 연합한 국가입니다. 독일 황제의 칭호를 가진 프로이센 왕에 의해 연방회의가 열렸습니다. 황제는 독일의 국가 대표 위원회인 연방 참의원의 의장, 정부 수반인 재상을 임명했습니다. 법은 연방 참의원과 25세 이상의 독일 남성이 선출한 제국의회에 의해 제정되었습니다.

하지만 독일 제국에서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은 연방 참의원이나 제국의회가 아닌 황제입니다. 독일 제국의 주요 정치 권력이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제국의회가 아닌, 변덕으로 제국의회를 해산할 수 있는 선출되지 않은 황제의 손에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또 다른 이슈는 1849년 이래로 변화가 없었던 프로이센의 3계급 투표 제도[2]입니다.

카이저라이히가 설립된 지 60년이 지난 지금, 자유주의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점점 더 이런 상황에 불만을 품고 있고, 우리 헌법은 다음 몇년 안에 크게 개정될지도 모릅니다.

"최소한, 헌법은 안정을 보장한다."
독일 제국 소개 (펴기/접기)

세계대전에서 예상치 못한 독일의 승리는 세계를 영원히 바꿀 연쇄 작용을 시작시켰다. 포위되고 숫적으로 열세였던 독일 제국군은 전략적 유능과 유연한 회복력으로 적을 마비시켰다. 함락된 파리에서 진군하는 독일군의 군화는 프랑스 제3공화국의 의지를 꺾어 버렸고 기아와 경제적 붕괴는 그들에게 혁명과 내전을 선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영제국도 붕괴되고 러시아의 구체제 역시 독일의 간섭으로 간신히 버텨내었다. 독일 제국과 동맹국은 승리를 거두며 제국의 경쟁자들을 격퇴하고 광활한 식민지와 영토를 얻었다.

그러나 독일 국민들의 생각처럼 승리의 평화가 오진 않았다. 세계대전으로 인해 확장한 독일 제국은 지치고, 만신창이가 된 국가였으며, 후반에는 경제 문제까지 겹쳐졌다. 제국의 동맹국들은 계속해서 유럽의 골칫거리로 파산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존재가 되었고, 붕괴 직전까지 몰리게 되었다. 티르피츠 재상은 전후 독일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투쟁했고 제국은 계속해서 보수파 장군들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다. 독일의 개혁에 대한 부름은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으며, 국내의 불만은 계속해서 자라났다.

국경을 가로질러, 새로운 진홍색 깃발 아래에서 세계 혁명을 약속하는 제국의 옛 적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독일은 자신의 세계제국을 유지해야 할 투쟁에 있음을 스스로 깨달았다.

독일에게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오로지 카이저께서만 아실 것이다. #

  • 정부
    1% 적군 민병대
    2% 인터내셔널 독일 지부/생디칼리스트당
    3% 무장노동조합총연맹
    22%독일 사회민주당
    6% 진보인민당
    3% 국가자유당
    12% 중앙당
    42%독일 보수당
    7% 독일 조국당
    2% 전독일연맹

  • 국가 정신
    • 세계대전의 승리자 Victors of the Weltkrieg
      독일은 명백히 세계대전의 승리자이며, 그 위치는 확고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20년 전 일이고, 그때부터 우리는 오만에 사로잡힌 것일지도 모릅니다.
      육군 교리/해군 교리/공군 교리 연구 시간 +70%/+50%/+70%
      국가적 중점 새로운 교재로 제거됨
    • 사그라든 군국주의 Quenched Militarism
      승리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르지만, 세계대전의 대가는 그 전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독일은 분명 승리했지만, 수많은 병사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독일의 가족들은 여전히 그 고통을 기억하고 있고, 다시는 경험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징병 가능 인구 -0.70%, 징병 가능 인구 보정 -25% 사단 회복률 -20%, 전쟁 지지도 -30%
    • 제국의 긍지 Imperial Pride
      독일 제국은 세계의 위계 질서의 최고위에 올라와 있으며 이는 세계대전 종결 이후부터 누려왔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다가올 전쟁에서 패배를 인정하는 것은 아주 큰 일일 것 입니다...... 독일의 회복력은 보기보다 더 취약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말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서 베를린이 함락되거나 독일이 주요 도시의 통제권을 잃어도 대다수의 지역이 실제로 점령되기 전까지는 항복하기에 오래 걸릴 것입니다.
      항복 한계치 +10%
    • 문호개방의 과실 [A]
      우리가 AOG에서 한 투자는 중국에서 공사관 도시를 통해 들어오는 막대한 자유무역의 혜택을 안겨주었습니다. 불법 무역과 합법 무역 모두 우리 국가에 건전한 배당금을 안겨줍니다.
      소비재 공장 -5%

  • 괴뢰국
    • 독일령 중앙아프리카 (식민지 정부)
    • 독일령 동아시아 (식민지 정부)
    • 모로코 (자치 괴뢰국)
    • 플란데런-왈로니 (괴뢰국)
    • 리투아니아 (괴뢰국)
    • 발트 연합공국 (괴뢰국)
    • 백루테니아 (괴뢰국)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해 초강대국이 된 독일이다. 대전쟁의 승리로 엄청난 괴뢰국과 식민지를 획득하고 떵떵거리며 살던 독일이 생디칼리슴이라는 새 경쟁자와 경제 위기라는 내부적 문제와 직면하는 것이 이 모드의 시작이다.

게임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검은 월요일이 터진다. 세계를 주도하던 독일 경제가 파탄나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이벤트인데 정치력이 200이나 날아가고 공장 건설 시간 및 효율도 대폭 떨어진다. 국가 중점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는데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빌헬름 그뢰너의 의견을 따라 제국을 구조조정하는 것으로 해외 식민지 실론 섬을 토후 연맹에 판매하고, 민간공장 5개를 철거한다. 대신 밑에 있는 루트보다는 검은 월요일 디버프를 빨리 떼는 편이다.

다른 하나는 얄마르 샤흐트의 의견을 따라 당장의 피해를 감수하면서 제국을 그대로 유지하는 방법이다. 위와는 달리 경제 지원 및 구호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방법이다.

이와 별개로 이벤트를 통해 독일령 중앙아프리카와 유럽 라이히스팍트 구성국들의 경제 지원 및 구호 요청에 답을 할 수 있는데 이를 '일단 독일부터 살고 보자'는 식으로 묵살하거나 구호 요청을 들어줄 수 있다. 묵살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빠른 경제 회복과 안정도 상승에 조금은 도움이 되나, 그 대가로 미텔오이로파 구성국들의 반발 및 독립[9], 심하면 생디칼리슴화[10]나 아예 멸망하는[11] 일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일이 동시에 일어나지는 않고, 모든 도움을 거절하더라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수도 있다. 모든 요청을 수락하더라도 붕괴가 될 국가는 붕괴할 수도 있지만, 도움을 주는 패널티는 곧 회복할 수 있으니 선택은 플레이어의 몫이다.

그리고 검은 월요일 이벤트 중 독일자유노동조합(FAUD)의 처리에 관한 이벤트가 뜨기도 하는데, 운영을 계속 허가하되 생디칼리슴 운동을 일으키지 못하게 감시하는 선택지나 지하조직으로 만들어 버리는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검은 월요일에서 회복하고 나면 선거를 할 수 있게 되는데 독일 사민당을 주축으로 민주주의 개혁을 이루거나 기존 독일과 같이 중앙집권에 치중, 또는 제 3의 선택지로 슐라이허의 군사 쿠데타를 통한 융커들의 지배 체제[12]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만약 FAUD를 지하조직으로 만들어 버리고 선거에서 보수당이 재집권에 성공했다면 '기독교노동조합' 중점을 찍을 수 있고, 운영을 허가하고 선거에서 사민당이 당선되었다면 '독일자유노동조합 승인' 중점을 찍을 수 있다. 기독교노동조합과 FAUD 중점을 비교해 보면 FAUD는 획득 가능한 정치력을 깎아먹는 대신 공장 생산력이 기독교노동조합보다 더 높다.

주적은 프랑스 코뮌. 프랑스 코뮌의 이벤트가 전반적으로 독일 제국에 시비를 거는 이벤트가 많기 때문이다. 주적은 아니지만 제3 인터내셔널 다음으로 위험한 것이 일본으로, 제3 인터내셔널이든 러시아든 간에 2차 대전이 일어나 독일이 혼란한 틈을 타 일본이 높은 확률로 독일령 동아시아로 확장하기 때문이다. 독일령 중앙아프리카는 프랑스 공화국이 존재해서 완충지대가 있기에 비교적 안전하지만, 독일령 동아시아는 완충지대 그런 거 없이 일본의 위협에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

프랑스가 툭하면 외교적인 시비를 거는 이벤트를 걸어오는데 이를 제대로 거부하면 전쟁이 발생하여 2차 세계대전이 발생한다. 그나마 국경을 거쳐 3단계 정도의 요새 루덴도르프 선이 있기 때문에 프랑스군의 공세를 버티다 역으로 밀어붙이기는 쉽다.

이탈리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영토를 모두 점령했을 시 점령지와 관련한 이벤트가 뜨는데, 이 때 점령지를 사르데냐에 넘겨주면서 라이히스팍트에 가입하게 할 수 있다. 다만 확률은 랜덤이라 사르데냐가 제안을 거절할 수도 있다. 그리고 프랑스 공화국이 코뮌을 멸망시켰다면 불가침 조약을 요구할 텐데 엘자스-로트링겐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협상에 응해주고 조약을 체결하는 게 좋다.

영국 해협을 반드시 지나야 외국에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데 거대한 해군을 굴리려면 석유가 매우 많이 필요하다. 바닐라의 나치처럼 합성 기술을 찍어서 건설할 산업력이 있지만 이외에 선택으로 외국의 산유국에서 외교로 석유를 편하게 확보할 수 있다. 대부분의 석유를 외국에서 수입하면 '석유는 흘러야 한다' 중점을 시작으로 하는 석유 관련 중점을 찍을 수 있다. 이때 선택은 캅카스, 중동, 베네수엘라가 있다.[13]
  • 캅카스는 라이히스팍트에 가입하지 않은 돈-쿠반 연합에 외교적으로 접근하는 이벤트가 나오고 이를 돈-쿠반이 수락하면 다음으로 라이히스팍트에 가입하는 이벤트가 발생한다. 중간에 아르제바이잔 석유 루트 안정화를 위한 조지아 합병 중점이 있는데 선택은 자유.
  • 중동은 카이로 협약과 오스만이 전쟁을 벌이면 결정할 수 있다.
  • 베네수엘라는 가장 무난하지만 해로에 거리가 멀다.

수많은 식민지들과 연계하고 원작의 독일과 다르게 강화된 해군을 가져 영국의 느낌이 나는 진영이다. 모항이 인 북해 함대(노르트세플로테, Nordseeflotte)가 있는 대신 게임 시작 당시 지중해에 위치하고 있는 독일의 동맹국이 없기 때문에 지중해 제해권 장악이 곤란하다.

미국 내전이 발생하면 미연합국을 지원한다. 특이하게 한국의 독립 전쟁에 지원을 보내는 이벤트도 존재한다. 의외라면 의외게도 빌헬름 2세대한제국의 빠였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의 칭제 이후 당시 독일 제국이 지지성명을 내기도 했다. 물론 독일이나 한국 양국에 아무 영향이 없는 일이었지만.

0.16 패치 이후 난치히를 상실했다.

2.2. 프랑스 코뮌

프랑스 코뮌 The Commune of France

제3공화국은 독일에게 패배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맞이하면서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1919년 11월 노동총동맹에 의해 일어난 혁명적인 총파업은 국가를 마비시키고 부르주아 정권을 무너뜨렸습니다. '질서당'은 상황을 안정시키기엔 역부족이었고, 그 후 여러 달 동안, 좌파 세력의 연립 정부에 의한 짧지만 잔혹한 내전 통에 '기득권층'은 프랑스 바깥으로 추방당했습니다.

지난 15년 동안, 자칭 '프랑스 코뮌'은 공안위원회Comité de Salut Public가 주도한, 생디칼리슴-사회주의 합의의 공동강령 아래 단결해왔습니다. 히지만 1936년, 무너진 나라를 재건하고 외세의 위협으로부터 혁명의 과실을 지키고자 결심한 이 합의는 고리타분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더욱 급진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자기 안보와 사명에 대해서는 점점 확신을 얻고 있지만, 프랑스의 혁명전통은 다양하기에, 어떤 혁명 분파가 다가오는 해에 주도권을 잡을지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무기를 들어라, 시민들이여!"

  • 정부
    12%자코뱅과 소렐리안들
    52%노동파
    28%아나키스트
    6% 사회민주주의자
    2% 사회자유주의자
    0% 자유주의자
    0% 보수주의자
    0% 반동주의자
    0% 군주주의자
    0% 대중주의자

  • 국가 정신
    • 파리 코뮌의 영혼 Communard Spirit
      우리는 파리 코뮌의 유산이며, 파리 코뮌은 공화국 반동분자들에 의해 박해받고 잔인하게 탄압된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1920년, 노동자들은 마침내 복수에 성공했고 '질서당'의 군정을 무너뜨렸습니다. 우리 코뮌의 자손들은 우리의 조국과 영혼을 보호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폭군에게 명령받지 않을 것입니다!
      사단 조직력 -5%, 사단 회복률 +5%, 보병 사단 공격 +3%
    • 비효율적인 정보부 Inefficient Intelligence
      질서당이 프랑스에서 노동자들의 폭동을 억누르기 위해 노력한 이후로, 중앙정보부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세계대전 이후 사회 운동에 대한 반동적 탄압의 상징으로 간주되어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코뮌이 가진 정보 관련 부서는 이런 일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단히 작은 규모로 편성된 정보위원회로 국한됩니다.
      암호화 -10%, 암호 해독 -10%
      국가적 중점 일반 정보부로 제거됨


제3인터내셔널의 수장국으로 브리튼 연방과 동맹을 맺고 있다. 원본의 나치 독일에 가까운 국가로 사회 재건, 세계적 생디칼리슴 혁명, 독일에 대한 복수전이 주요 목표이다. 복수심으로 똘똘 뭉쳐 있어 안정도와 전쟁 지지도가 높은 편이며 초반 국가 집중만 적절히 정하면 빠르게 5 연구슬롯으로 시작할 수 있다.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국가원수 피베르가 실각하며 선거 이벤트가 시작된다. 군사, 정보부, 내무부, 외무부 장관이 선출되며 이때 고른 선택지에 따라 노동파(생디칼리슴), 자코뱅(전체주의), 소렐리안(전체주의), 아나키스트(급진사회주의)가 집권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정치력이 쭉쭉 깎이지만 곧이어 제1차 인터내셔널 회의가 열리면서 깎인 것 이상으로 정치력을 벌 수 있다. 회의에서는 최대한 각국에 지원을 해줘야 한다.

그 이후로는 자본주의 국가들이 검은 월요일로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국토를 개발시키고 독일에 대한 복수를 위해 육해공군을 양성하고 있으면 된다. 그러다 보면 여러 나라에서 내전이 터지는데 그때는 국가 중점, 이벤트, 직접적인 자원병 파견과 무기지원, 주재무관 파병으로 생디칼리슴 측에 충분히 지원을 해주자. 특히 코뮌과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는 스페인, 이탈리아와 강대국인 미국에서는 각각 전국노동연맹, 이탈리아 사회주의 공화국, 미노조연맹이 승리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다른 나라들은 AI 특성상 민병이나 수비군을 보내고 기껏해야 보병이나 기병을 보내니 기갑부대를 보내서 적극적으로 컨트롤 해주고 무기지원으로 항공기를 보내주면 육군, 공군 점수벌이도 되면서 내전도 승리할 수 있다.

독일 노동자 대규모 파업, 벨기에에서의 봉기 등등 외교 분쟁 이벤트에서 선택지로 독일에 강제로 선전포고 할 수 있는데 전쟁 타이밍은 늦게 시작하는 쪽이 쉽다. 전쟁을 너무 일찍 시작하면 코뮌과 독일의 교리 연구, 생산력 등의 격차가 크지않아 역으로 밀려버리지만 AI는 멍청하기 때문에 독일에 걸린 디버프들을 제대로 제거하지 못하고 극단적으로 늦어지지만 않는다면 이런저런 버프를 몽땅 받을 수 있는 코뮌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AI가 잡을 경우 높은 확률로 바닐라의 독일처럼 39년에 전쟁을 건다. 그 시점에서 독일에 알자스-로렌 반환요구와 함께 전쟁을 걸 수 있는 국가 중점이 해금되기 때문이다. 독일이 접경지대에 상당히 두꺼운 요새를 깔아놓았기 때문에 전쟁이 벌어져도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나가기는 조금 힘들다. 공군과 기갑부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국가집중으로 맞요새를 깔아버린 다음 적이 먼저 오게 유도하고 힘이 빠졌을 때 역습을 들어가거나 벨기에쪽으로 진입후 동진하면 된다. 독일이 항복하면 라이히스팍트는 해체되고 카이저는 독일령 중앙아프리카에 망명정부를 세운다. 나머지 국가들(발트 연합공국, 리투아니아, 모로코 왕국 등)은 별 힘도 없으니 하나씩 정복해서 합병해주면 된다.

독일 이외의 주적은 알제리 지방으로 쫓겨난 프랑스 공화국이 속한 협상국이 있는데 프랑스 공화국과는 브리튼 연방과 캐나다 자치령의 전쟁이 확대되면서 개전을 할 확률이 높다. 독일이 본토가 털리고 중앙아프리카에 망명정부를 세우면 가입하기도한다. 육군이 중심이 되는 독일 방면에서의 전투와는 다르게 이쪽은 해군과 상륙전이 중심이 된다. 브리튼 -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 뉴펀들랜드 - 몬트리올 순으로 징검다리 뛰듯이 상륙해서 캐나다 본토에 다다르면 육군이 빈약한 캐나다는 쭉쭉 밀리고 그대로 보급만 신경쓰면서 태평양까지 달려가면 된다. 더 쉬운 방법으로는 미국 내전에서 CSA가 집권하고 미국이 내전에서 회복돼서 제3인터내셔널에 가입하면 귀찮은 상륙전 없이도 털어버릴 수도 있다. 프랑스 아프리카 망명정부는 거리가 가까워 바로 상륙할 수 있다. 골치아픈 케이스는 인도 자치령이 바라티야 코뮌, 마드라스, 토후 연맹을 전부 집어삼키고 강대국이 되는 케이스인데 이때는 인도까지 상륙해야 전쟁을 끝낼 수 있지만 해군의 작전 거리가 인도까지 닿지 않기 때문에 추가적인 상륙이나 정복이 필요하다.

전반적으로 국가 집중 자체가 원판의 독일과 유사하게 전쟁 경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원판 프랑스와는 비교도 안되는 안정도와 공업력을 가지고 있어 플레이어가 최적화 플레이를 할 경우 체급 차이를 무시하고 라이히스팍트를 해체할 수 있다.

0.16 패치 이후 낭시를 처음부터 가지고 있다.

2.3. 브리튼 연방



새로운 브리튼 The New Britain

프랑스의 패배 이후, 독일과 연합왕국의 전쟁은 끝나지 못하고 2년간 질질 끌렸습니다. 1921년, 로이드-조지가 독일이 제안한 "명예로운 평화"를 승낙하면서 교착 상태는 끝났습니다. 영국의 해외 영토는 대체로 온전히 남아있었지만, 본토민들의 신뢰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1925년,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남웨일스 탄전에서 일어난 작은 노동 분규가 빠르게 확산했고, 장장 6주에 걸친 폭동, 약탈, 선동 이후 왕실을 포함한 대부분의 '기득권층'이 캐나다로 피난 갔습니다. 혁명단체의 임시정부는 거의 남아있지도 않은 의회를 해산시키고, 새로운 "브리튼 연방"을 선언했습니다.

1936년, 노동조합총회Trade Union Congress는 여전히 민주적인 연방 정치의 중심을 맡고 있습니다. 브리튼 인민들은 본토에서 안정을 확보했으며, 기꺼이 고립된 사회주의를 건설해나가려 합니다. 이들은 강력한 공화국 공군과 해군의 보호를 받으며, 각 자치주에선 예비군 및 경찰 역할을 하는 대중적인 민병대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이 혼란스러워져 가 보임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브리튼에게 이전 식민 영토에 혁명을 퍼트릴 의무가 있지 않은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쨌든, 캐나다의 군주주의자들이 계속해서 연방에 대한 음모를 꾸미는 것을 좌시할 순 없습니다.

"매력적이군."
브리튼 연방 소개 (펴기/접기)

빅토리아 시대의 황금기는 영국인들에게 세계가 보지 못한 패권을 보여주었다. 20세기의 여명기, 영국은 식민지의 광활한 영토와 인구,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자원과 칠대양을 누비는 대함대로 보호를 받는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자만심에 영국인들은 세계 대전을 건방진 독일 놈들을 굴복시킬 빠른 전쟁이라고 보고 그들의 자식들이 크리스마스에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역사는 동의하지 않았다. 4년 간의 참혹한 참호전에서 영국은 대륙의 동맹들이 독일군의 맹공에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미국의 지원 없이 경제적 붕괴는 불가피 했고 전쟁에 지친 민중들은 국가적 기아의 벼랑에 서있음을 깨달았다. 심지어 치욕스러운 1921년의 '명예로운 평화'도 영국 본토로 몰려오는 끝나지 않는 관들을 막을순 없었다. 아들과 아버지, 어른과 소년들은 영국의 상류층들의 탐욕과 욕망으로 인해 일어난 제국주의의 전쟁으로 인해 의미없이 죽어나갔고, 1925년 석탄 광부들의 파업에 대한 강경 진압은 마지막 인내를 넘어버렸다. 제국을 가로질러, 빈자와 나락으로 떨어진 자들이 일어났고, 왕가와 충성파들은 캐나다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뱀의 머리를 자르게 되자 부서진 제국은 와해되었다. 한 조각 한 조각, 식민지들은 독립운동으로 인해 사라졌고 최악의 경우 카이저와 그의 제국의 수중에 떨어졌다. 한 때 세계의 침범받을 수 없었던 지배자인 대영제국은 사라졌다.

부서진 세계 제국의 잿더미에서 브리튼 연방은 일어났다. 운명의 빈정거림에서, 이 새로운 국가는 반동분자들에 의해서 둘러싸여 있고 오로지 프랑스의 동지들만이 카이저의 제국에 저항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방은 두려워 하지 않으리라. 폭군 카이저와 그의 부패한 정치인들은 국경으로 몰아치는 붉은 파도에 편히 잠을 자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움집과 검댕이 뭍은 공장에 속삭여지리라. 이 경종은 우울한 작업장에서 보이는 불법 신문에 나오는 시와 노래에서 들릴 지이니, 이것은 밤에 사라지는 반달들이 벽에 적은 것이라.

그것은 평등을 위한 찬가이자, 인민의 깃발, 생디칼리슴의 붉은 호출이니. 카이저를 무너뜨려라! 사슬을 깨라! #

  • 정부
    22%노동조합총회 최대주의파
    51%노동조합총회 연방주의/회중주의파
    15% 노동조합총회 자치주의파
    10% 사회민주주의
    2% 사회자유주의
    0% 시장자유주의
    0% 사회보수주의
    0% 권위민주주의
    0% 세습전제주의
    0% 국민대중주의

  • 국가 정신
    • 민병대 Militias
      브리튼 군의 대부분은 여전히 1925년에 만들어진 임시 노동자 민병대가 조직하고 있습니다. 지역 민병대의 사기는 높지만, 병참의 필요함 같은 전쟁에 필요한 정교한 개념에는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그들의 '사슬을 부수어라! 사슬을 부수어라!'하는 귀청이 터질 것 같은 고함 때문에 우리 장교들은 정신적 장애로 인해 일상적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징병 가능 인구 보정 +2%, 사단 회복률 +10%, 사단 조직력 -20%, 계획 수립 속도 -50%, 핵심영토 공격력/방어력 +5%
      국가적 중점 민병대 해산으로 제거됨
      국가적 중점 민병대 개혁을 통해 민병대 개혁으로 대치됨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영국 본토만을 가진 채 시작한다. 본토 핵심 인구가 4100만이나 나오고 해군도 열강급이라고 할 정도는 있는 편이지만 그래도 해가 지지 않았던 바닐라의 대영제국에 비해선 초라할 따름.

군의 상황은 영 시원치 않다. 설정상 영국 왕실이 도주할 때 해군중 일부가 따라갔기 때문이다. 다만 국가 집중으로 차근 차근 발전시키면 R.A.F를[14] 형성하고 군을 옛 대영제국 시절로 부활시킬 기본을 마련한다.
육군은 국가 정신으로 달려있는 민병대를 아예 폐지하고 새로 편성하거나 제도는 유지하되 조금씩 개선하는 방안 중 하나를 선택해야한다. 전자는 극단주의자들이 지지하고, 후자는 자치주의자들이 지지한다. 연방주의자는 양측 중 하나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첫번째 국가 집중을 통해 4명의 지도자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최대주의자(전체주의) 집권시 오스왈드 모슬리가 의장직에 오르며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준다. 모슬리가 의장직과 총서기를 겸하며 독재를 휘두르고 스코틀랜드, 웨일스의 자치 요구는 묵살되며 민병대는 해체되어 정규군으로 재편된다. 외교적으로도 아일랜드 문제에서도 가장 강경한 선택지를 고르게 된다. 하지만 이런 막나가는 행보를 보다못한 또다른 최대주의자 에릭 블레어가 그를 암살할 수도 있다. 가장 이벤트가 다양하고 성능적으로도 뛰어나지만 안정도, 정치력을 가장 많이 소모하는 루트이다.

생디칼리슴 집권시에는 아서 호너, 애니 케니 중 한명을 택일해서 의장직에 세우게 된다. 아서 호너 집권시 정당명은 연방주의자이며 상대적으로 중도적인 정책을 펼치게 된다. 애니 케니 집권시에는 정당명이 회중주의자이며 성능은 아서 호너와 동일하다. 세 정당을 골고루 뽑을 경우 생디칼리스트 주도의 연립정권이 생성되며 이때는 톰 만이 의장직에 오른다.

자치주의자(급진사회주의)가 정권을 잡을 경우 니콜라스 이 글라이시가 의장직에 오르며 스코틀랜드, 웨일스의 자치권을 높이다 못해 아예 독립시키게 된다.

외교 상황은 다른 여러 나라들에 생디칼리슴 혁명을 지원하여 잠재적 동맹을 만들 수 있다. 노르웨이, 아일랜드, 오스트랄라시아 등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주요 적성 세력은 영국 왕실이 있는 캐나다와 독일 제국으로 캐나다의 경우는 국가 중점 자체에 브리튼 연방을 공격한다가 있어 독일과의 2차대전을 틈타 무조건 침공하고 프랑스 코뮌이 독일 제국에 거는 복수전에 끌려 들어간다.

기본적으로 해군의 재건에 집중해야 하는데 독일의 경우 카라 세계관에서 가장 해군력이 강한 국가고 캐나다의 경우도 영국 해군을 일부 가져가면서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브리튼 연방은 캐나다의 본토 상륙 작전을 막아야 하고 지형, 요새로 지지부진한 싸움을 하고 있는 프랑스 코뮌을 대신해[15] 독일에 상륙해서 독일의 전선을 넓혀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 역시 해군이 필요하다.

AI 프랑스 코뮌의 경우 프랑스 공화국의 뒷치기와 이탈리아 사회주의 공화국을 지원하느라 바덴-벨기에 라인을 못뚫고 폭사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브리튼 연방이 적극적인 행보를 통해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2.4. 캐나다 자치령

1/2 귀향
2/2 영국 망명자

현재 상황 The Current Situation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1926년, 연합왕국은 붕괴되었습니다. 이때 구 영국의 유산인 국왕, 그리고 최고의 엘리트(와 최고의 부자)들을 포함해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캐나다로 도망쳤습니다... 머지않아 침공이 개시되어 건방진 생디칼리스트들로부터 본토를 되찾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면서요. 하지만 생디칼리스트들의 입지가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은 금방 명백해졌습니다. 결국 이들은 섣불리 세웠던 침공 계획을 미뤄둔 채로, 지난 10년간 브리튼 연방의 수립과 고착화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캐나다에서 '망명자'라고 불려지는 이 영국인들은 조국을 되찾고야 말겠다고 단단히 결심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정치적 현실에 직면한 채로 캐나다에서 살아왔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카이저라이히의 세계: 캐나다 자치령 1부 (펴기/접기)

"폐하, 부르셨습니까?"
"마이어스.... 자네는 진정한 애국자이자 제국의 충성스러운 하인이었네. 자네의 성과에는... 흠집 하나 없어. 자네가 영국 장교로써 가진 기량과 기술은... 따라올 이가 없다네. 베르됭부터 아프리카에서 계속된 전쟁까지... 중동과 아시아에서도... 자네가 제국을 위해 가진 용기나 의무가 흔들린 적은 한번도 없었어."
"폐하,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는 임무에 실패했습니다. 저희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패배해 제국이 무너졌습니다."
"마이어스, 자네는 스스로를 너무 하찮게 여겨.... 자네는 30여년 동안 왕실에 충직하게 봉사했네. 우리는 우리 제국의 제일 어두운 순간을 함께 살고 있어. 패배와... 재앙 밖에 없는 20여년을. 우리는 조국을 잃었지만 아직 끝나지는 않았어. 자네는 계속 싸울 거야. 자네는 계속 희망을 가질 거고. 제국은 우리 안에 살아있어."
"폐하, 저는-."
"변명은 됐네. 아시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게. 이제 우리는 미래를 보고있어. 장군들에게...조국 탈환을 준비하라고 했네. 특수 임무 부대가 조직될거야. 그 부대는... 보트 특전단이라 불릴 걸세. 붉은 함대가 패배하는 순간 자네는 첫번째로 브리튼에 가는 거야. 밤을 틈타 적 부대 뒤로.... 마이어스, 나는 그 날을 살아서 보지 못하겠지. 하지만 그 날이 오면 자네는 내 칼이 될거야. 제국 사람들을 위한 최후의 행군이 될걸세."
"폐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마이어스, 원하는 대로 하게나."
"제가 보트에서 제일 먼저 내리도록 해주십시오. 제가 브리튼에 처음 발을 디딘 사람이 되도록 해주십시오."
"알비온에 우리 깃발을 꽂을 사람이 자네 외에 누가 있겠나. 그렇게 될 거야..."

"세상은 미쳐 돌아가지만 우리가 다시 바로잡을 수 있다. 우리는 다시 집에 돌아갈 수 있다." #[17]
카이저라이히의 세계: 캐나다 자치령 2부 (펴기/접기)

"저는 니콜라스 페어크레스트이며 지금 듣고 계신 방송은 왕당파 라디오입니다. 오늘은 중요한 발표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모든 정규 방송은 중단됩니다. 우리의 전 국왕 조지 5세께서는 탈환 작전 전날 밤에 이 테이프를 틀어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 날입니다.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신이여, 국왕 폐하를 지켜주소서."

"기억해라 애들아. 빠르고, 조용하게 움직인다. 보트 숨기고 장비 챙겨라. 좀 걸어야겠다."
"그 개자식이 안 오면 어떡합니까? 보지도 못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그는 와. 맥키넌. 이거나 입어라."
"이거요? 지금 놀리시는 겁니까?"

"영연방 시민 여러분, 옛날에 살던 집을 기억하십니까? 그 집들은 멋지고 호화로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을 보십시오. 그 집은 역겨운 흉물이 되었습니다. 지긋지긋한 붉은 깃발이 우리의 옛 도시 위에서 휘날리고 우리 시민들은 거리를 행진하는 검은 부츠의 발소리에 떨고 있습니다. 이들은 공포 속에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 문을 두들기는 것에. 헤드라이트를 끈 채 별 없는 하늘 밑에 멈춰서는 검은 차에. 영국 사람들, 우리 사람들은 십자가상을 숨기고 최대주의자의 위협에서 구원해달라며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우리는 쓰러졌지만 패배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아직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작전은 아침 5시 정각에 시작한다. 우리 임무는 스완지 전역에서의 적 작전을 교란해 상륙 지점을 준비하는 거다."

"제국 시민 여러분.... 제가 원하는 것은 이 기록을 상서롭고도 중요한 날에 들려드리는 겁니다. 저는 그 날이 올거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 영국 역사상 가장 용감한 이들이 본토에 상륙해 최종 공세를 위해 적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우리 중 수백만 명은 크고 추운 대양 너머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돌아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계가...영연방이라는 꿈을...계속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방 내 충성파와 합류한다. 충성파가 우리 부대가 상륙할 수 있도록 공격을 도와줄거다. 우리는 안팎에서 공격한다. 빨갱이놈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를 거야."
"그 놈들이 우리에게 이런 사제 천쪼가리를 입힐 줄은 몰랐습니다."
"닥치고 입어. 멍청아."

"영국인의 결심은 깨지지 않습니다. 어둠과 패배 속에서도 왕실은 계속 버티고 있습니다. 제국 시민 여러분, 이 녹음을 듣고 계신다면 대서양 전투가 끝나고 영국 전투가 곧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제도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와 대양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감과 힘을 길러 하늘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의 섬을 탈환할 것입니다."

"우리는 해변에서 싸우고, 우리는 비행장에서 싸울 것이다. 우리는 들판과 거리에서 싸울 거야. 우리는 언덕에서도 싸울 것이고. 우리는 존나 무슨 일이 있어도 항복하지 않을 거야. 아이들이 이 날을 되돌아 볼 때-."

"미래의 세대는 우리가 이곳에서 한 일을 되돌아보며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 때야말로 우리 최고의 순간이었노라. 브리타니아의 시민 여러분, 더 이상 생디칼리스트 거짓말의 폭정에 고통 받지 마십시오. 더 이상 공포 속에 숨지 마십시오. 브리튼, 웨일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사람들이여. 당신들의 국왕이 바랍니다.... 자유를 위해 일어서십시오! 오늘은 탈환의 날입니다."

"계속 검은 부츠놈들의 명령에 따를 건가? 계속 굽신거리며 모슬리에게 제발 빵 한 조각 던져달라 빌텐가? 이 땅은 너희들의 땅이다. 되찾아라! 제국을 되찾아라!"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제국 위에 뜬 해는 계속 지지 않습니다. 지구 사람들의 통합, 저의 문제는 여러분의 문제입니다. 당신의 것입니다...."

"이건 너의 거야. 이것은 네가 날 때부터 가진 권리라고!"

"제국 시민 여러분...."

"영국인들이여..."

"생득권을 되찾으십시오...."
"생득권을 되찾아라."[19]

"국왕 폐하 만세! 국왕 폐하 만세!"#

  • 정부
    1% 캐나다 전체주의당
    1% 단일거대노조
    1% 캐나다 무역업자 & 노동자 회의
    2% 연방협동조합당
    10% 캐나다 자유당
    42%캐나다 자유당 조지 5세
    30%캐나다 보수당
    1% 캐나다 보수당
    2% 군사정부
    10%캐나다 국민당

  • 국가 정신
    • 영국계와 프랑스계의 대치 Anglo-French Tensions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은 대부분이 퀘벡 주 동부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 '퀘벡인'들과 영국계 캐나다인들 사이의 전통적인 불신은 징병 논란으로 인해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모든 캐나다인들 중에서 징병제에 가장 격렬히 반발하는 퀘벡인들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군주를 위해 먼 유럽까지 가서 목숨을 바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일일 정치력 -0.3, 안정도 -5%
    • 대공황 the Great Depression
      캐나다는 미국보다 대공황으로부터의 회복이 훨씬 더 빨랐지만, 그들의 경제는 여러 면에서 남쪽의 무역에 묶여 있기 때문에 미국이 회복되기 전까지는 경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상황은 빠르게 개선되고 있으며, 경제학자들은 완전한 회복이 코앞에 닥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소비재 공장 20%, 건설 속도 -20%, 공장 생산량 -20%


영국 없는 영연방의 수장이자 협상국의 수장. 영국 혁명 당시 피난해온 영국 왕실이 있다. 동맹국으로는 아프리카에 망명한 프랑스 공화국, 인도 자치령, 오스트랄라시아 연방 등이 있지만 인도의 경우 3국으로 쪼개져 내전을 준비하는 중이고 프랑스 공화국의 경우 알제쪽 해안가만 코어가 박혀있어 핵심 인구가 830만밖에 안되는 처참한 상황이다. 그나마 캐나다의 경우 기득권층이 대피를 많이 간건지 현실 캐나다에 비해 약 300만정도 인구가 더 많은 핵심 인구가 약 1300만으로 이것도 열강치고 매우 부족한 편이긴 하지만 동맹국들의 상태가 워낙 메롱하다 보니 캐나다가 그나마 나은 상황. 안타깝게도 중점으로 얻는 징집 비율이 없고 브리튼 연방에 코어가 전부 사라져 있기 때문에 인력난은 캐나다를 언제나 괴롭힌다.

국가 중점으로 브리튼 연방에 전쟁을 걸지 독일 제국에 복수전을 할지 정할 수 있다. 브리튼 연방에 전쟁을 걸 경우 라이히스팍트와 협상을 통해 협상국 본토 땅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군사 협력을 할 수 있다.

게임을 시작한지 한 달 내에 조지 5세가 죽고 에드워드 8세가 즉위한다. 에드워드 8세가 연설과 영연방 위정자들의 회의를 통해 방향을 정하는 "킹스 스피치" 국가 중점과 징병법 등을 새로 만드는 "C-7 법안" 국가 중점을 찍으며 캐나다 플레이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제2차 미국 내전이 발발하면 미노조연맹을 견제하기 위해 뉴잉글랜드 지역을 점령할 수 있다. 이 경우 뉴잉글랜드를 괴뢰국으로 만들거나 아예 캐나다 영토로 만들 수 있다. 또한 국가 중점으로 미국 내전에 개입 할 수 있다. 유럽으로의 귀환을 위한 산업과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되도록이면 적극적으로 참전하는 것이 좋다.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땅을 동맹인 뉴잉글랜드가 먹게 해서 본토 수복을 수월하게 하는 것이다. 생디칼리슴 세력과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미노조연맹(CSA)이 미국을 통일하면 높은 확률로 미노조연맹이 제3인터내셔널에 가입해 캐나다 본토가 공격받는다. 또 미연합국은 캐나다 본토를 공격하거나 장차 적이 될 수도 있는 라이히스팍트에 가입하니 미합중국 연방정부나 미태평양합중국을 돕는 것을 추천한다.

브리튼 섬을 수복하기 위해서는 교두보가 필요하다. 외교 포커스 트리로 아일랜드와 동맹을 맺는 방법이 정석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아이슬란드를 끌어들이는 것인데, 아이슬란드를 두고 브리튼 연방과 충돌을 하는 이벤트가 발생한다. 아이슬란드를 협상국에 끌어들이거나 브리튼 연방의 편이 된 아이슬란드를 침공하여 점령하면 교두보가 확보된다.

병력을 동원해 브리튼 연방을 붕괴시키고 브리튼 섬 전체를 점령한다면 영국을 성립할 수 있다. 영국 설립 이후 새로운 영국으로 플레이할지, 아니면 계속해서 캐나다를 할 지 결정할 수 있다. 영국을 선택한 경우 캐나다는 ai가 플레이 한다. 만약 왕정에 대한 인기가 약한 상태에서 본토로 돌아갈 경우 캐나다 공화국을 설립할 수 있게 된다.

0.11 패치로 중점과 이벤트가 바뀌었다

2.4.1. 대영제국

캐나다로 브리튼을 점령할 경우 대영제국을 부활시킬 수 있지만 이전의 전 세계를 호령하던 대영제국에 비하면 조금 약해진 상태이다. 브리튼 연방은 멸망했으며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토와 아직까지 잔존중인 생디칼리스트들이 사회, 경제, 군사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생디칼리스트들의 영향력을 줄이고 국가를 재건하는 이벤트와 디시전들로 점점 회복하게 된다. 플레이어가 선택을 잘못할 경우 재건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정치 부분에서 생디칼리스트들의 개입을 막기 위해 자유선거를 시행할지, 선거를 연기할지 고를 수 있다.

재건이 완료되면 경제, 군사, 외교 정책을 고를 수 있는데 외교 부분에서는 협상국과 경제개발기구의 주도국 자리를 가지고 오는 것과 옛 영토(아일랜드, 포클랜드, 서인도 제도 등)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2.5. 러시아 공화국

골치 아픈 역사 A Troubled History

2월 혁명이 수백년간 계속된 차르정 전제주의를 종식시켰지만, 그 성과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1917년 10월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가 겨울 궁전으로 들어닥쳐 러시아의 지배권을 장악했고,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 국가 소비에트 러시아 건국을 선언했습니다. 군주주의자, 공화주의자, 중도 사회주의자의 광범위한 연합 전선이 들고 일어섰고 외세도 소비에트에 저항하기 위해 개입을 개시했습니다. 볼셰비키 혁명은 결국 실패로 끝났습니다. 1918년 9월 불만을 품은 좌파 사회주의혁명당 당원이던 파니 카플란이 레닌을 암살했고, 볼셰비키는 해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독일에서 보낸 보급품이 내전 과정 전체에 걸쳐 백군 운동에 지원을 보냈고, 마침내 1920년대에는 혁명이 완전히 진압되기에 이릅니다.

1922년 백군 장군들이 새로운 러시아 공화국을 위한 헌법을 작성했습니다. 이 헌법은 민주적이기는 했지만 여러 문제를 품고 있었고 모두를 만족시키는데 실패했습니다. 나약한 얼굴마담을 원했던 백군은 10월 쿠데타 이전 임시 정부를 이끌었던 알렉산드르 케렌스키를 러시아 공화국 초대 대통령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케렌스키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며 1925년 콜차크 음모에서 살아남았고 신경제정책을 펼쳐 경제를 재건해냈으며 최근 15년간 국가를 통치해왔습니다. 그는 중요한 정치적 반대파가 없다는 점과 광범위한 선거 조작을 통해 장기 집권을 그럭저럭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1936년까지 케렌스키 대통령은 정부 내 마지막 동맹 세력을 약화시켰고, 신경제정책은 더 이상 어떤 이익도 내놓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민족주의자들은 그가 독일에 굽실거린다고 바라보며, 민주주의자들은 그를 독재자라고 믿고, 사회주의자들은 단순히 이 체제 전체가 전복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공유하는 믿음이 단 하나 있습니다. 러시아가 여전히 세계에서 그 위치를 주장할 만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지요...

"하나이자 나눌 수 없는 러시아여, 영원하라!"

1922년 러시아 헌법

2월 혁명이 끝난 지 5년이 지나고 러시아 내전이 끝날 무렵인 1922년 서명된 러시아 공화국 헌법은 헌법을 만들어낸 백군 운동이 분열하면서 남은 흉터입니다. 헌법은 러시아를 민주주의 연방 공화국으로 정의했고, 공화국의 모든 시민에게 보편적인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 주며, 헌법이 통과된 이후로 국가 정치 체제가 어떤 형태로 구성될지 결정한 문서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이번 헌법은 1906년 차르정 헌법을 갱신한 것에 불과합니다. 대표적으로 의회 내에서 상원의 존재가 그런 권위주의의 유산을 보여주지요. 상원은 원로 정치인과 귀족, 대학 교수, 사업 관계자를 위시한 상류층 대표자로 구성된 선거로 뽑지 않는 기관입니다. 하원인 국가두마는 선거로 뽑히는 국내 입법권 대부분을 손에 쥔 기관입니다. 하지만 선출되지 않는 기관인 상원의 존재로 인해 국가의 민주적 절차가 제한됩니다.

대통령은 상원에서 선출하지만 대통령 권력과 의무는 1906년 헌법에서 정한 차르의 위치와 거의 유사합니다. 따라서 그는 엄청난 행정적 힘을 가지며 내각을 임명할 수 있고 상하원 양측 모두를 승인할 권한을 가집니다. 대통령은 법안 시행 과정에서 주요 행위자이며 외교적으로 공화국을 대표합니다. 그는 또한 두마의 승인 없이 긴급조치를 발동할 수 있다고 정한 악명높은 헌법 48조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알렉산드르 케렌스키 대통령은 날이 갈수록 분열을 거듭하는 입법부를 우회해 법령과 법률을 통과시키는 방향으로 자신의 권력을 활용하는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백군 장군진의 지도 하에 작성된 이 헌법이 민주주의를 수호한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조항이 적용되지 않을 때 뿐입니다.

"최소한 헌법이 안정은 보장하고 있다!"

신경제정책

러시아 내전은 공화국 경제를 측은한 처지에 놓이도록 만들었습니다. 충돌은 국가를 황폐화시켰고 수백만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볼가 지역에서는 기근이 발생했고 무정부상태가 전국에 걸쳐 벌어졌습니다. 알렉산드르 케렌스키의 정부는 상당한 정치적 자본을 가지고 있었고 "신경제정책"(노바야 에코노미체스카야 폴리티카, 네프)으로 이름붙인 일련의 경제 부양 프로그램에 투입했습니다.

네프는 재정 안정성과 진보 운동을 섞은 정책입니다. 금본위제에 기반한 체르보네츠 루블이라는 새 통화가 도입되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인플레이션을 끝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농업 효율성을 복구하기 위해 시골 지역에서 사실상의 토지 재분배를 인정했고 추가적인 토지 개혁안을 발표했습니다. 회복된 농업 부문은 러시아를 수출국가이자 수출 이익을 수입에 투입하는 국가로 만들었고 미국과 독일에서 흘러들어온 엄청난 투자금은 산업 부문과 철도망을 개선했습니다. 1920년대 말 러시아는 돈-쿠반 체르노젬 지역 통제권을 잃었지만, 지구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와 엄청난 잠재력을 품은 국가가 되었습니다.

경제 기적은 1933년부터 서서히 늦춰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 터진 대공황으로 인해 러시아에 들어오던 투자금이 줄어들었고, 농업 효율성은 기계화 부족으로 인해 성장을 멈추었으며, 금본위제는 경제를 안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재정을 불안정하게 만들었습니다. 1936년에 이르자 러시아는 완전한 불경기 상태에 돌입했습니다.

일부는 번영하는 독일 시장이 러시아를 살려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있지만, 신경제정책은 제 할 일을 충분히 해냈으니 새로운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모두가 동의합니다. 하지만 러시아가 회복하고 경제가 활기를 되찾기만 한다면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잠재력이 러시아를 거대 산업 국가 반열에 올려놓을 것입니다.

"우리는 경제를 강화해야 한다."

  • 정부
    1% 인민해방당
    3% 전러시아 공산당
    2% 인민사회당
    5%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20%사회혁명당
    6% 입헌민주당
    8% 러시아 연맹
    10% 10월당
    13% 러시아 군사연합
    32%러시아 인민공화당

  • 국가 정신
    • 분열된 육군 장교진 Divided Millitary Staff
      우리의 군사적 전략은 내전의 종식 이후 많은 발전과 이론적 혁신을 보였지만, 정부의 만성적인 불안정함과 정치적 부족으로 인해 육군은 현대적인 단일 교리를 채택하지 못했고, 이는 우리 군대의 발전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육군 교리 연구 시간 +75%
    • 분열된 해군 장교진 Divided Naval Staff
      내전이 종식되고서, 해군의 영향력은 작고 약해졌고 국가의 우선순위 중 가장 낮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고위 해군 참모들은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답변을 받지 못하는 논쟁에 빠지고는 합니다. 우리 장교들 중 일부는 고전적인 현존함대 교리를 고수하기를 원하는 반면, 다른 장교들은 잠수함이나 항공모함을 활용하는 다른 혁신적인 교리를 시험하고 싶어합니다.
      해군 교리 연구 시간 +75%
    • 정치적 불안정 Political Instability
      매일 정치력 비용 +0.25, 안정도 -10%, 주간 안정도 -0.5%, 전쟁 지지도 -10%

  • 괴뢰국
    • 알라시 자치국 (괴뢰국)[25]


러시아 내전에서 레닌이 암살당하고 코르닐로프는 포격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는 등 몇가지 과정이 달라진 덕에 백군이 승리했다. 내전 중 콜차크의 쿠데타는 보리스 사빈코프[26]의 덕으로 중재되었고 러시아 공화국의 체제는 유지되었다. 케렌스키는 내전에서의 회복과 경제 성장, 미국과의 친선이라는 업적과 함께 좌우간의 갈등을 잘 이용하며 장기집권하지만 군과 보수파의 불안을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하며 돈 쿠반 연합, 트란스아무르, 투르키스탄을 상실했고 독일과의 친선을 위해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인정했다가 사빈코프의 극우 민족주의 정당인 인민공화당의 성장을 볼 수 밖에 없게 된다. 우파에게 권력을 내주며 어찌어찌 정권은 유지했지만 사회주의자, 자유주의자, 보수주의자, 군주주의자, 군부, 사빈코프까지 모두가 케렌스키를 싫어하지만 더 나은 대안은 없는 관계로 가만히 있는 교착상태로 들어간다.

게임이 시작되면 대통령인 알렉산드르 케렌스키가 의회에 가다가 총에 맞아 죽으면서 드디어 공화국의 체제가 붕괴된다. 심지어 이 이벤트는 게임의 첫 뉴스 이벤트이기 때문에 어떤 나라로 플레이하건 케렌스키가 죽는 장면은 제일 처음으로 보게 된다.

케렌스키 사후 첫 이벤트로 케렌스키의 후임을 정하게 되는데 두마의 선출로 대통령 지명, 상원의장 드미트리 로마노프의 집권, 브란겔의 쿠데타, 코르닐로프의 쿠데타 중 하나가 일어나게 된다. 이 이벤트 하나로 이후 어느 루트를 밟게 될지 대략적인 길은 정해지게 된다. 크게 보면 7개의 루트가 있다.

  • 입헌군주국으로 키릴 로마노프 집권
  • 전제군주국으로 키릴 로마노프 집권
  • 전제군주국으로 드미트리 로마노프 집권
  • 드미트리 로마노프 주도하의 귀족공화국 성립
  • 두마 주도의 민주공화국 유지
  • 데니킨/브란겔 주도의 군사독재정 형성
  • 브란겔의 독재정 형성 후 차르 즉위
  • 사빈코프 주도하의 파시즘 국가 건설

사빈코프 주도하의 국가를 건설하지 않으면 사빈코프는 무조건 몰락한다.

정교회 처우 문제도 있는데, 선택지로 세속 국가를 표방한 공화국 헌법 제5조를 그대로 둘지, 제5조를 폐지해서 정교회를 국교로 재지정할지, 아예 정교회에 많은 이권을 제공하며 국교로 재지정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한쪽의 불만은 반드시 나오며 나올 때마다 약간의 안정도가 깎이는 페널티가 있다. 다만 징병 가능한 인구를 늘려주는 '국가정교회' 국민정신을 위해서는 정교회를 국교로 재지정해야 한다.

초기 혼란 상태를 정리하고 정부 타입을 다 골랐으면 이제 외부로 눈을 돌려야 한다. 러시아는 국가 중점 트리가 방대하며 그 중 외교 트리는 그 중에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일단 외부 정책을 골라야 하는데 팽창주의와 현실정치(Realpolitik)가 있다. 팽창주의를 고를 경우 후의 이벤트 선택지에서 더 공격적인 선택지를 고를 수 있게 된다. 국가 중점 트리에선 중앙아시아, 캅카스 지역과 극동 그리고 유럽에 대한 확장이 가능한데 플레이어는 평화적으로 해결하거나 군대를 이끌고 침공할 수도 있다.

국가 중점 중 경제 트리는 당신이 어떤 이념과 정부 체제를 골랐는지에 따라 총 4개의 선택지- VES 설립, 젬스토보, 협동자본주의, 관료제 중 하나가 강제된다. 당신이 이 4가지의 선택지 중 하나를 골랐다면 향후 전쟁 시 다양한 보너스를 주게 되므로 참고하자.

2.5.1. 러시아 사회주의 공화국

0.11.2버전에서 소비에트 연방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메꾸었다. 이전처럼 안정도가 낮다고 무조건 등장하는게 아니라 특수한 조건하에서만 등장한다. 케렌스키가 암살당하고 "멘셰비키와 사회주의자들이 좌파 연합을 이루었다."를 선택하면 권한 대행을 누구로 선택하는지 뜨는데, "알렉산드르 실랴프니코프가 모든 사회주의 정당의 인민전선을 결성한다!"를 선택하면 모든 민주주의 정당과 사회주의 정당이 알렉산드르 실랴프니코프의 주도하에 인민전선을 결성할 수 있다. 그러나 인민전선에는 사회주의 인사들이 많이 포진해 있었고 이를 탐탁치 않게 여긴 코르닐로프는 쿠데타를 감행해 정권을 잡고 실랴프니코프를 처형한다.

러시아 서부의 노동자들은 이에 분노하며 전직 볼셰비키들의 주도로 봉기가 시작된다. 러시아와 러시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2차 러시아 내전이 끝나면 카를 라데크(전체주의),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생디칼리슴), 니콜라이 부하린(급진사회주의)[27] 중 한명을 대표로 선출하고 국가를 재건해 제3인터내셔널에 가입하고 혁명을 전파하게 된다.

내전 승리 이후에는 순응도를 올려 기존 러시아 영토를 코어로 만드는 것에 집중해야하는데, 모두 끝나면 상당한 산업 기반을 갖출 수 있게 된다. 특히 콜론타이의 생디칼리슴이 생산량에 보너스를 많이 준다. 다만 지금으로선 내전 승리 이후 딱히 할 게 없다는 것이 함정.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다고 해도 제3인터내셔널에 가입한다거나 할 수는 없고, 열강이 된 이후 혁명 전파 중점을 찍은 다음 팽창하는 수 밖에 없다.

2.6. 미합중국 연방정부(USA)



1936년 미합중국 America in 1936

1936년의 미국은 끊임없는 위기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1차대전의 공포를 피해 1920년대까지 번영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독일의 1차대전 승리와 이에 뒤따른 프랑스와 영국에서의 혁명은 1925년 월가 주식시장의 붕괴를 초래했습니다. 이것은 미국을 대공황으로 몰아 넣었고 베를린 증권 시장이 세계 경제의 최전선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습니다.

1928년 당선된 허버트 후버는 당초에 했던 공약과는 달리 미국 경제의 하향세을 완전히 뒤집는데 실패했고, 최악의 경제 위기 사태는 1936년까지 무려 10년 이상이나 지속되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사태들은 미국에서 극좌 사회당과 극우 제일당이라는 양대 급진정당이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32년 하원에 의한 후버 대통령의 재선 논란과 계속되는 대공황은 이러한 문제들이 조만간 해결될 것 같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전국민들은 극단적인 정당들 중 하나가 집권하거나 대공황이 계속 진정되지 않으면 초래될 수 있는 사변적 상황을 두려워합니다.

"신이시여, 미국을 구하소서!"
미국 2차내전 - 미국 연방 정부 소개 (펴기/접기)

과거의 미합중국은 방대한 기회와 약속의 땅이었다. 세계가 대전의 불길에 의해 타면서, 미국 시민들은 비교를 할 수 없는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지내왔지만, 의견 방해와 시간 끌기, 필리버스터로 인해 미국의 세계대전 참전 가능성은 완벽히 사라져버렸다. 1919년이 지나면서, 시민들은 뉴스를 통해 독일군의 파리 함락을 보게 된다. 비록 유럽의 세계대전은 끝났지만, 미국의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지. 먼지가 걷히고 난 후, 동유럽은 독일 제국의 군홧발에 휩쓸려버렸고, 서유럽은 복수주의에 빠진 생디칼리스트들의 성채가 되어버렸다. 세계에 몇 안되는 민주주의 국가로써, 미국은 진정 홀로 서있게 되었다.

끔찍한 가난이 자유의 땅을 지나면서, 절망에 빠진 젊은 극단주의자들이 해외의 내전에 자원했다. 그들이 혼란스러운 고향에 돌아오면서, 그들은 국내 소요라는 불씨를 모든 걸 삼켜버리는 혁명의 불로 만들어 내었다. 계속되는 경제 폭락 후 불만스러웠던 노동자들의 생디칼리슴 봉기가 일어나자 정체 상태에 빠져있던 의회는 "미국의 카이사르"인 맥아더에게 지휘권을 주고 국가의 질서를 되찾으라 명령했으나, 이 결정은 몰락하는 국가의 마지막 발악이 돼버리고 만다. 한 해가 지난 후 루이지애나 주지사 휴이 롱은 라디오를 통해 미국이 죽은 국가라고 국민들에게 연설했고, 그의 이상에 동조한 몇몇 남부 주들이 워싱턴의 새 통치자를 거부하고 이 나라를 무덤으로 이끈 부패한 연방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미연합국을 건국했다. 북부의 생디칼리슴 세력은 시카고오대호 지역을 점령한 후 미노조연맹을 만들게 되고, 내전이 서부로 퍼지게 될까 두려워한 태평양 주들은 미국과 분리한 후 국경 방어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산하의 병력들을 동부로 보냈다. 하룻밤 사이에, 미국은 얼마 안 남아있던 민주주의 국가에서 10년 전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를 휩쓴 혁명의 혼돈 속에 빠진 국가가 되었다. 형과 동생은 서로 전투를 벌였고, 주요 대도시들은 전장이 되었다. 제2차 미국 내전이 일어난 것이다.

남아있는 연방정부는 몇몇 포위된 파르티잔과 맥아더와 의회에 충성스러운 군 병력들로 전락해 버렸다. 모든 곳에서 포위된 우리 연방주의자들은 충성스러운 중서부 주들의 보급로를 보호하기 위해 절망적인 후퇴를 하고 있다. 잿더미가 된 도시들을 지나면서, 우리들의 이상은 이미 사라졌다 생각할 수 있겠지. 그래도 1776년을 다시 돌아봐라. 워싱턴의 군대가 뉴욕과 뉴저지에서 레드코트들한테 패배했지 않은가? 하지만 그는 차가운 델라웨어 강을 건너 모든 역경을 넘고 트렌튼에서 영광스러운 승리를 거머쥐었다. 우리들의 아버지들은 싸워 나갔고, 우리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단결해 이 반군 놈들과 싸우고 이 위대한 나라에 법치주의를 돌려줄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싸울 것이다! 자. 결집하라, 국민들이여! 우리들의 가족과 집, 미래를 위해 싸워라! 우리 아버지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도 신성한 맹세를 할지니, 반란자를 타도하고, 성조기를 드높여라!

반란자를 타도하고, 성조기를 드높여라!

  • 정부
    2% 미국 사회당
    10% 미국 사회당
    13% 미국 사회당
    8% 진보당
    18% 공화당
    12% 민주당(중도)
    12% 민주당(보수)
    13% 미국 제일당
    2% 미국 제일당
    10% 미국 제일당


  • 국가 정신
    • 대공황 The Great Depression
      1925년 뉴욕 주식 시장이 붕괴된 이후 미국은 대공황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계속되는 대공황은 미국을 괴롭히는 엄청난 경제적 고통을 주는 것 외에도, 서로 못잡아먹어서 안달인 롱과 리드 모두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소비재 공장 40%, 생산 효율성 한계 보정 -15%, 공장 생산량 -35%, 건설 속도 -25%, 주력함 생산 비용 +50%
    • 정치적 위기 Political Crisis
      미국이 위기에 처했습니다. 10년 넘게 나라를 황폐화시키고 있는 대공황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중의 절박함은 최근 몇년동안 극좌 사회당과 극우 제일당이 지지를 얻도록 만들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맥아더와 군을 경기침체와 정치적 과격파 모두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여깁니다. 많은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이 한시바삐 해결되지 않거나 1936년 선거에서 급진적인 대통령 후보가 승리할 경우 미국이 내전으로 빠져들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매일 정치력 비용 +0.05, 주간 안정도 -1%, 주간 전쟁 지지도 -1%
    • 문호개방의 과실 [A]
      소비재 공장 -5%

  • 괴뢰국
    • 필리핀 (괴뢰국)
    • 라이베리아 (괴뢰국)


미국은 1차대전의 전화는 피해갔지만 그 이후에 찾아 온 불황은 피할 수 없었다. 1925년 영국 혁명의 여파로 찾아온 불황에서 민주당의 윌리엄 맥아두[34] 정부는 무능을 입증했고 1928년 선거에서는 공화당의 허버트 후버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하지만 후버도 불황을 타개하지 못하자 공화당도 인기를 잃게 된다. 그 틈새로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에서의 혁명의 성공에 고무된 노동조합들은 잭 리드의 거대 통합노조인 CSA과 그 동맹정당인 사회당에 힘을 보탰고, 포퓰리즘 정책과 자신의 카리스마로 인기를 얻은 휴이 롱은 민주당에서 탈당해 제일당을 창당한다. 1932년 선거에서는 기존 양당의 기반이 붕괴하고 3, 4당의 성장으로 그 어떤 정당도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자 하원에서의 선거를 통해 후버가 재선되었지만 지지는 더욱 떨어지고 경제 상황에서의 개선은 나타나지 않았다.

게임 시작부터 1936년 말의 대통령 선거까지는 이벤트와 중점으로 내전까지 가는 길을 준비하게 된다. 이벤트와 중점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미국사회당, 미국제일당의 영향력과 캐나다와의 관계를 조율하게 된다. 예를 들면 게임 극초반의 이벤트로 사회당과 제일당의 성장에 최악의 사태를 상정한 공화당, 민주당, 진보당의 의원들이 한데 모여 진보당의 플로이드 올슨을 단일 후보로 하기 위해 협상하는 이벤트가 있는데 협상이 실패하거나 성공한 이후에라도 각 정당간에 불화가 생겨서 단일화에 파토가 나면 유권자들이 기존 정당에 더욱 실망하면서 사회당과 제일당의 영향력이 상승한다.

1936년의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었는가에 따라서 이후의 전쟁의 판도가 달라진다. 기존 정당들의 단일화가 성공해 플로이드 올슨이 당선되거나 단일화가 실패해 민주당의 존 낸스 가너나 공화당의 알프 랜든이 당선되면 사회당과 제일당이 선거 결과에 불복한다. 이후 국가 중점으로 화해를 조성하고 연정을 위한 협상장을 만들지만 협상에 실패하는 유화루트와 존 에드거 후버 FBI 국장의 제안으로 잭 리드 암살, 휴이 롱 암살, 아무도 암살하지 않는 3가지 선택 중 하나를 고르게 되는 강경 루트로 나뉜다.

강경 루트로 갈 시 70% 확률로 암살에 성공하면 암살된 진영은 와해되는 대신 다른 진영이 혼란을 이용해 정부를 살인죄로 고발하며 분리, 2파전으로 가고, 30% 확률로 암살에 실패하거나 아무도 암살하지 않으면 3파전으로 간다. 제일당의 휴이 롱이나 사회당의 잭 리드가 당선되거나 기존 정당들의 당선자들이 제대로 대처해내지 못한다면 맥아더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4파전이 된다. 떨어져 나가는 정당은 국회에서 없어지기 때문에 암살후 2파전으로 갈 예정이라면 내전을 할 국가 위주로 손을 들어준다음 털어내면 여당의 지지도를 꽤 많이 사수할 수 있다.
예전에는 어떻게든 내전을 회피하는 루트가 있었지만 업데이트 되면서 최선을 다해도 2파전이다.

미국 내전이 벌어지면 미국 영토는 다음과 같은 세력으로 분할된다. 이 세력들 모두 국가 중점이 존재한다.
  •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 원조 미국. 휴이 롱이나 잭 리드가 당선되거나 공황에 대한 대처가 지지부진할 경우 더글러스 맥아더가 쿠데타로 권력을 잡는다. 미국 중부와 뉴잉글랜드 지역, 그리고 동부 지역 중간의 얇은 지대를 가지고 시작한다.
  • 미연합국(American Union State): 휴이 롱이 이끄는 우익 권위민주주의 세력. 휴이 롱 지지자들과 우익 자본가들, KKK나 은색 군단 같은 극우주의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연합체다. 루이지애나, 플로리다 등 동남부를 가지고 시작한다.
  • 미노조연맹(Combined Syndicates of America): 잭 리드가 이끄는 좌익 생디칼리슴 세력. 미국 내 노동조합들의 연합체다. 시카고와 디트로이트 등 오대호 일대를 가지고 시작한다.
  • 태평양합중국(Pacific States of America): 맥아더의 쿠데타에 반발한 서부 주지사들이 독립한 세력. 맥아더의 쿠데타가 없다면 미합중국에 계속 남는다. 캘리포니아부터 워싱턴까지 서해안을 가지고 시작한다.
  • 뉴잉글랜드(New England): 미노조연맹에 위기감을 느낀 캐나다가 보호를 선언하며 점령한 지역. 당연히 캐나다의 괴뢰국이다.
  • 하와이(Hawaii): 본국에서의 혼란으로 독립한 지역. 왕정복고가 이루어 지거나 미국의 가치와 기업의 횡포를 이어받은 공화국이 되거나 생디칼리슴 국가가 된다.
뉴잉글랜드, 파나마 운하 등은 캐나다가 접수할 것을 제안해오는데 이를 거부하면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알래스카의 경우 캐나다가 들고 가거나 태평양합중국에 포함되고 괌 등의 태평양 섬들은 일본이 가져간다.

일단 내전 시작시 각 국가별로 정규군이 거의 없어 이벤트로 스폰되는 민병대 중심으로 전쟁이 진행되는데 이들의 능력치가 심히 떨어져 전쟁이 지지부진해진다. 이로 인해 지원군으로 온 타국 정규군들을 처리하는데 애로사항이 꽃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내전을 진행할때 각 정부 부처 장관이나 장군들도 진영에 따라 다른데 장성진의 경우 조지 C. 마셜,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오마 브래들리, 어니스트 킹,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등은 미합중국에, 스메들리 버틀러, 모리스 로즈[35], 하이먼 리코버 등은 미노조연맹에, 조지 패튼, 매튜 리지웨이, 윌리엄 홀시, 존 매케인 1세[36] 등은 미연합국에, 헨리 아놀드, 제임스 둘리틀, 체스터 니미츠 등은 태평양합중국에 충성하게 된다. 암살등으로 국가가 분리되지 않았다면 합중국에 그대로 남아있다. 이 장군/제독들의 경우 중점으로 재기용이 가능하니 너무 걱정하지 말 것.

미합중국의 경우 협상이 지지부진해지거나 잭 리드, 휴이 롱 같이 극단주의 성향일 경우 맥아더가 쿠데타로 군사정권을 설립하고 권위주의 패권국으로 가는 루트가 존재한다. 맥아더가 쿠데타로 집권하지 않았을 때 40년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이 가능한데 이 경우 평화적으로 맥아더의 집권이 가능해진다.

미합중국은 일단 민주주의 유지 상태에서 내전을 시작하는 경우에는 태평양합중국이 연방으로부터 독립하지 않고, 반대로 멕아더의 군부 독재로 시작하는 경우에는 캘리포니아가 맥아더 군부 체제를 불법으로 간주하여 떨어져 나가고 바로 미국 정부를 공격한다.
일단 연방정부는 가지고 있는 것만이라도 제대로 건지자는 마인드로 가야 한다. 캐나다가 뉴잉글랜드를 요구하면 어차피 지키지도 못할 곳 줘버리자. 그리고 워싱턴 DC 등 미노조연맹과 미연합국 사이의 영토에 스폰되는 군대는 남북으로 샌드위치 되기전에 빨리 중부로 빼주고 미노조연맹과 미연합국을 동해안으로 밀어넣는다는 느낌으로 진군시키면 된다.
다만 정예 사단들이 주로 워싱턴 인근에 스폰되기 때문에 상황의 여의치 않으면 오히려 서부를 포기하고 워싱턴 인근에서 버티는 쪽이 나을 수도 있다. 특히 태평양 연안과 필연적으로 싸워서 양면전선이 되는 맥아더 군사독재라면 더더욱 그렇다.
전후에는 민주주의를 유지하거나 복구하는 루트와 맥아더 주도의 군사독재의 영구화로 나뉘어진다. 외교적으로는 내전 때 잃은 땅을 되찾으면서 미국 주도의 신대륙 고립주의적 동맹 체제를 만들거나 협상국이나 라이히스팍트 혹은 러시아 영향권에 가입 할 수도 있다.

내전을 끝내고 국가를 재건하면 워낙 공업 포텐셜이 좋은 미국이라 원하는 방향으로 게임을 진행해도 무리가 없다. 제2차 세계대전에 개입하거나 먼로주의를 채택하여 미주 내의 패권국가가 되거나. 일본을 공격하거나. 특정 세력에 가입해서 민주주의/반공주의/사회주의의 병기창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타 진영 국가라면 자신이 지원해준 미국의 승리가 장기적으로는 필요하다. 특히 재건을 시작한 미국이 해당 세력을 돕기 시작하면 균형이 미친듯이 붕괴된다. 특히 석유가 부족하기 일쑤고 캐나다를 상대하는 인터내셔널은 미국 석유를 확보하고 캐나다를 정복하기 위해서 미노조연맹의 승리가 절실하다. 캐나다의 경우에도 미국이 승리해 협상국에 가입한다면 그 강력한 산업력을 기반으로 본토 탈환이 쉬워지기 때문에 미국의 승리가 필요하다.

v0.7.2부터 미합중국의 항복 진행도가 40%가 되면 캐나다가 디시전으로 미노조연맹에 전쟁을 건다. CSA가 북동부의 공업능력을 바탕으로 늘 승리를 쟁취하던 이전 버전들과는 달리 캐나다가 뒤통수를 때려서 미노조연맹을 항복시키고 이미 망하기 직전인 미합중국은 그새를 못 버티고 항복하기 때문에 캐나다와 미연합국이 미국을 양분하는 케이스가 많아졌다. 미노조연맹 입장에서는 항복 진행도를 예의주시하면서 미합중국보다는 미연합국 쪽을 빠르게 밀고 캐나다 국경에도 어느 정도의 수비군을 배치해둘 필요가 있다.

내전 승리 직후 주 방위군/민병대는 해체되고 내전 휴유증이라는 무시무시한 디버프에 잔존세력의 저항의 디버프가 추가되어서 내전 직후에 힘을 영 쓰지 못한다. 이 디버프를 해체하려면 38~39년도에 내전이 끝나면 적어도 1942년까지는 포커스만 찍어야 할 정도다.

2.6.1. 미노조연맹(CSA)



미국 2차내전 - 미노조연맹 소개 (펴기/접기)

과거의 미합중국은 방대한 기회와 약속의 땅이다. 기회는 신탁 자금이 있는 엘리트의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고 약속은 소공작으로 행세하는 부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동지들, 나는 또 다른 미국을 보았다. 나는 비참한 처지의 빈민들이 불결한 곳에서 사며 이름만 다른 노예로 사는 것을 보았다. 나는 끝 없는 식탐이 한때 자랑스러웠던 이 나라의 토대에 스며드는 것을 보았다. 그 토대를 자본주의의 검은 먹물 자국으로 천천히 더럽히는 것을 보았다. 한때 시장에 깃들었던 연민과 인류애는 탐욕으로 바뀌었고 친절은 의심으로 바뀌었다.

1905년 노동계급 대륙회의를 만들었을 때 우리는 이 미국의 진짜 얼굴을 보았다. 나는 미국의 노동자들이, 누군가의 아버지와 아들들이 록펠러가 고용한 깡패들에게 거리에서 살해당하는 것을 보았다. 미국의 노동자들은 배신당하고, 족쇄가 채워지고, 노예가 되었다. 놈들은 자신들이 미국 노동자와의 전쟁에서 이겼다고 믿었다. 하지만 하나의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리드 의장이 해외 혁명에서 자랑스럽게 돌아왔을 때, 우리는 우리의 시간이 왔다는 것을 알았다. 계엄령 선포가 이 나라의 하층계급에게 보내는 마지막 모욕이 될 것임을. 우리는 봉기한다. 시카고의 태양은 십만명의 무장한 동지들이 휘날리는 혁명의 붉은 기를 비추리라!

가서 시저에게 전해라. 가서 부시리에게도 전해라. 혁명이 조국에 찾아온다고.

사슬을 깨라.
(지상에서나, 하늘에서나, 해상에서나 우리의 합창은 강력하고도 가혹하다.)

사슬을 깨라!
(소비에트의 전 인민 하나하나가 무도한 적들을 쓰러뜨릴 것이다!) #


일명 CSA. 미국 내전으로 갈라지는 나라 중 하나. 잭 리드가 노동자들이 몰려있는 공업 지대 러스트 벨트를 중심으로 북부 주에서 결성하는 사회주의 국가다.

우선 남쪽으로 진군해 미연합국과 국경을 맞닿도록 한다. 사이에 있는 연방정부군은 포위해서 보급을 끊은 후 궤멸 시키자. 만약 뉴잉글랜드가 캐나다 손에 넘어가지 않았다면 이쪽으로 별동대를 편성해서 최대한 빨리 점령해주면 된다. 미연합국과는 거의 일직선상으로 민병대가 늘어서서 싸우게 될텐데 민병대를 모루로 세우고 정규군으로 된 돌파부대를 망치 역할로 따로 편성해서 포위해나가면 된다. 미연합국이 멸망했으면 이제는 중부로 뻗어가면서 미합중국까지 멸망시키면 된다. 민병대 국가정신과 장성진의 레벨이 다른 곳에 비해 약간 처지지만[37] 북동부가 공업 능력이 좋다보니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다만 패치 이후에는 다른 진영들보다 좀 더 빡세졌는데, CSA가 내전에서 승기를 잡게 되면 캐나다가 내전에 개입을 시작한다. 캐나다 노동자 파업 유발 디시전으로 시기를 좀 늦출 수는 있지만, 그 사이에 내전이 끝나지 않는다면 협상국 전체가 CSA를 공격한다. 캐나다의 육군은 별로 무섭진 않지만 다른 협상국들이 후방에 드랍십 테러를 해대므로 어쩔 수 없이 병력 일부가 동해안으로 빠져야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전후에는 카라 특유의 좌파적 민주주의 체제냐 아니면 현실 소련과 유사한 공산 독재체제냐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며, 내전 이후 복구가 어느 정도 끝나면 디시전을 통해 이웃 국가에게 사회주의를 전파하면서 이웃 국가를 공격하거나 인터내셔널에 가입할 수도 있다.

2.6.2. 미연합국(AUS)[38]


미국 2차내전 - 미연합국 소개 (펴기/접기)

과거의 미합중국은 방대한 기회와 약속의 땅이었다. 내가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던 땅이었지. 하지만 그건 과거의 이야기일 뿐. 이 아비가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알려주려고 이 편지를 쓴다. 이 전쟁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우리는 영웅이나 반역자로 귀향하겠지. 어찌 되든, 난 받아들이겠지만 난 네가 아빠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헤인즈빌 근처에 농장이 있었단다. 아름다운 곳이었어. 난 내 형과 함께 개 로버를 데리고 코니 호수로 갔었다. 어느날은 야구를 했는데 네 삼촌이 실수로 로버를 쳤어. 로버는 언제나 착한 개였지. 우린 로버가 아빠의 형을 그렇게 물 줄은 몰랐단다. 의사는 팔뚝뼈가 부서져서 팔을 다시는 쓰지 못할 거라고 했어. 우리가 피를 흘리고 울면서 터덜터덜 돌아온 걸 본 할아버지는 망설이지 않으셨단다. 할아버지는 우리 로버, 사랑스러운 로버를 헛간 뒤로 끌고 간 다음 윈체스터로 모든 걸 바로잡으셨어. 우릴 믿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로버를 사랑했어. 로버의 곁을 떠난 적도 없었지. 하지만 로버와 내 형제를 본 할아버지의 눈에는 망설임이 없었단다. 난 훗날 할아버지께 물었어. "왜 로버를 쏘셨어요? 나쁜 개가 아닌걸 아셨잖아요. 그건 그저 사고였어요." 할아버지가 그때 한 말은 아직도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단다. "개가 한 번 나쁜 짓을 하면 다신 돌아오지 못해. 걘 이제 사람을 무는 개가 된 게다." 할아버지는 로버를 사랑하셨지만, 자기 가족을 그보다 더 사랑하셨어. 그 일은 이미 한참 전의 일이란다. 이제는 농장도 없어. 대공황 때 은행이 우리 땅을 압류해 내몰았거든. 그 일로 네 할아버지는 넋이 나가 버렸다. 몇 년 뒤에 서재에서 목을 매셨지. 그 일은 그 할아버지의 자존심이 견디기엔 너무나 큰 것이었으니까.

너도 알겠지만 우리가 다른 누구와 싸운다고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라는 건 아니란다. 내가 보기에는 많은 이들이 우리가 왜 싸우는지도 모를 거야. 내가 잘 나가는 대학 교수나 워싱턴 정치인은 아니야. 하지만 이 늙은 아비는 전쟁을 봤단다. 나가 아직 어렸을 때 우린 러시아에 자원병으로 갔어. 난 생디칼리스트가 주도권을 잡으려고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똑똑히 봤단다. 자신이 항상 옳은 일을 한다는 이들의 뒤틀린 이상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을 파괴했어. 이들에게 대항하던 일명 '민주 백군'은 얼마 못 가 야망찬 장군들만을 위한 껍데기로 전락했다. 영도자 동지 콜차크, 미국의 카이사르 맥아더. 난 그 꼴을 페트로그라드에서도 봤고 고향에서도 봤다. 시카고와 워싱턴의 문제를 막는 건 우리에게 달렸어. 우린 미국 제일당의 롱 상원의원을 믿기로 했다. 연방놈들은 월가 자본가들의 방패고 생디칼리스트는 이 나라를 갈갈이 찢으려 드는 급진주의자들이고 미친 개들이지. 우리 시민들의 권리를 지킬만한 사람은 휴이 롱 의원뿐이야.

미연합국은 최선의 선택지가 아니다. 유일한 선택지지. 우린 마지막 한 사람이 쓰러질 때까지 싸울 거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린 이 나라에 미래를 주기 위해 싸울 거야. 난 미국을 사랑하지만, 그보다 너를 사랑한단다. 나는 네가 월가의 농노가 아닌 헌법에 보호받는 시민이 되는 미국을 위해 싸울 거란다!

우리는 반역자로써 북진하지만 왕으로써 귀향하리니! #[41][42]


American Union State, 줄여서 AUS. 미주연합이라고도 한다. 미국 내전으로 갈라지는 나라 중 하나. 휴이 롱루이지애나를 중심으로 남부 주에서 결성하며 권위주의 성향을 띈다. 휴이 롱 외의 주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기업가들: 헨리 포드, 코크 형제의 아버지인 프레드 코크, 텍사스 석유 재벌 H. L. 헌트 등. 휴이 롱 지지자인 찰스 린드버그가 다리를 놓아준 인물들로 휴이 롱의 부의 공유 정책[45]에서 자신들을 면제해주면 미국 내전에서 도와주겠다고 한다.
  • 극우 정치가들: 찰스 커글린 신부[46]윌리엄 더들리 펠리 등. 휴이 롱이 말하지도 않은 참전자 연금 지급을 홍보하며 자원병들을 끌어모은다. 실제 역사에서 휴이 롱이 제럴드 L. K. 스미스, 커글린 신부와 같은 반유대주의자와 손을 잡은 것을 반영했다.

공략은 미노조연맹과 비슷하지만 좀 더 어려운 것이 들고 시작하는 땅이 자원도 공장도 넉넉치가 못하다. 일단 미노조연맹과 국경을 맞닿게 하고 민병대로 전선만 유지시키고 정규군으로 돌파부대를 편성해 노퍽 - 델마바 반도 - 필라델피아 - 뉴욕 순으로 가는길에 백악관에 미연합국 국기도 꼽으면서 동해안을 점령하고 서쪽으로 진군하자. 미노조연맹이 무너지면 미노조연맹의 공략대로 서쪽으로 진군하면 된다.

전후에는 휴이 롱의 독재가 시작된다. 이후 분기는 셋으로 나뉜다. CSA 지지자 스메들리 버틀러 장군이 맡던 미국 재향군인회(American Legion) 회장을 새로 고르는게 이 분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 휴이 롱의 독재: 밑의 두 반란을 막으면 나오는 분기. 부의 공유 정책이 시행되며 국민들은 휴이 롱과 휴이 롱 중에 원하는 이를 골라 투표할 수 있다. 그나마 민주적이며 그나마 정상적이다. 물론 AUS에서 그나마 민주적이고 정상적이라는 뜻이다.
  • 비즈니스 플롯: 기업가들의 모략으로 휴이 롱이 실종되는 루트. 기업가들과 같이 일하던 반 홈 모즐리 장군은 대통령 유고시 비상 권한을 받아 휴이 롱 암살범을 찾기 위해 국가를 감시한다. 미국은 기업가들이 움직이는 나라가 된다.
  • 짐 크로의 미국: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집권하는 루트. 윌리엄 더들리 펠리가 쿠데타로 집권한 다음 휴이 롱이 생디칼리슴 사상을 가지고 있다며 처형한다. 이후 휴이 롱을 지지하는 육군 장교단이 반기를 드는데 조지 패튼 장군이 이를 진압하게 하거나 반란 장교단 내에 프락치를 심는 리처드 버틀러의 제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전자를 선택하면 패튼이 장교단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흑백분리법이 전미로 확장되고 쿠 클럭스 클랜이 받아들여지며 미국이 기독교 신정국가로 변모한다. 이렇게 막나가는 점 때문에 디시인사이드의 관련 갤러리에서는 펠리를 애국중년 펠리라고 부른다.

2.6.3. 미태평양합중국(PSA)[47]



미국 2차내전 - 미태평양합중국 소개 (펴기/접기)

과거의 미합중국은 방대한 기회와 약속의 땅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미국은 아직 살아있으니까. 미국의 자유 도시들은 로키 산맥 너머에서 버텨내고 있다. 유타의 꽃 피는 사막부터 쌀쌀한 태평양 북서부까지. 서부를 만든 사람들은 동부의 폭군들에게 대항했다. 그렇게 미국이란 꿈은 계속되었다.

나는 이 일이 있기 전에 작가였다. 워싱턴 D.C.에서 명망있는 신문사의 정치면 해설가였다. 나는 이제 차가운 산 속에 앉아 중서부 평야의 지평선을 바라본다. 작가였던 시절이 먼 옛날처럼 느껴진다. 눈 위에 그어진 가상의 선이 문명을 혼란과 죽음에서 갈라놓는다는게 재밌지 않은가? 지금은 조용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역사는 우릴 불러낼 것이다.

서부에 있는 맥아더의 실력자들은 자신들을 충성파라 부른다. 하지만 심장이 뛰고 헌법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이라면 놈들이 춤추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놈들은 성조기를 갈갈이 찢겨진 정통성의 한 조각처럼 몸에 두른다. 망신스러운 일이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이걸 보신다면 무덤 속으로 다시 들어가실 거다. 그 후손들이 공화국의 기반이 된 자유를 버리다니. 뭘 위해서? 안보를 위해서? 공화국을 지킨다는 핑계를 위해서? 그걸 박살낸 건 놈들이었다.

, 리드, 맥아더.... 이름은 다르지만 놈들의 충성은 똑같다. 이 선 뒤의 우리는 놈들 정치 사상과 얄팍한 정당화에 속지 않을 것이다. 놈들은 그냥 군벌이다. 생각할 필요도 없다. 나는 그걸 직접 본 사람이기에 알고있다. 자칭 시저가 의회를 장악한 뒤, 우리는 그놈 애완견의 첫 표적이 되었다. 도망칠 수 있는 사람들은 민주정부의 생존자와 함께 서부로 떠났다. 도망치지 못한 사람들은 감금당하거나 입을 틀어막히거나 그보다 더 심한 일을 당했다....

묻고 싶은 것이 있다. 한 시민의 머리에 박힌 총알이 생디칼리스트 민병대의 소총에서 나왔든, 연합국 은빛 셔츠단의 권총에서 나왔든, 카이사르의 암살자에게서 나왔든, 그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자신의 형제를 쏘고는 신념에 따라 올바른 일을 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산맥의 동쪽에서는 이성이 사상의 광기에 져버린 것 같다.

나는 이곳의 내 형제들을 되돌아본다. 우리는 제 때 탈출한 이들이다. 우리는 대초원을 지나고 로키 산맥을 넘어 힘들게 목숨을 건졌다. 우리는 모든 것이 끝나기를 빌었다. 시카고뉴올리언스에서 새로운 혁명이 터졌을 때 우리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우리에게 남은 것이라도 지키기 위해 산악사단에 지원했다. 우리 검문소를 지나가는 난민들은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는 모두의 얼굴을 보았다. 서부로 떠나는 슬픔에 잠긴 차들을 보았다. 우리는 굶주림과 절망의 오리건 산길을 봤다. 미국의 죽음을 맨 앞자리에서 봤다.

시카고가 불탔을 때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뉴올리언스가 폭군의 깃발 아래 북진할 때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놈들은 우리가 겁먹었다고 했다. 우리는 겁먹지 않았다. 우리는 인내했다. 우리의 수가 줄어들고 우리의 총알이 떨어져가도 우리는 계속 보초를 선다. 동부가 약해질수록 광기에 지친 이들이 서부로 도망쳐와 우리에게 합류한다. 우리를 통해 미국은 인내한다. 우리를 통해 미국은 살아남는다!

놈들은 우릴 태평양 주라고 부른다. 우리는 스스로를 미합중국이라고 부른다. 킨키나투스처럼, 우리는 역사가 우릴 부를 때 일어날 것이니. 전쟁이 끝난다면 기쁘게 무기를 내리고 들판으로 돌아가리라. 킨키나투스처럼, 우리는 권력을 바라지 않으리라. 삶, 자유, 행복 추구를 바라리라! 이 말들은 이 대륙의 서쪽에서 의미를 잃지 않았노라.

미국의 자유인들이여! 진정한 미국의 자유인들이여! 우리는 서부에서 보초를 선다. 모두가 이를 알게 하라. 동부의 늑대들이 서로의 목을 물어뜯고 나면 우리는 행군할 것이다. 다시 한번 진정한 미 공화국을 확장시킬 것이다.

바다에서 빛나는 바다까지![49]
#


일명 PSA. 1936년 대선에서 휴이 롱이나 잭 리드가 당선되었을 시 미국 내전으로 갈라지는 나라 중 하나. 수도는 당연히 새크라멘토이다. 맥아더가 군사 쿠데타로 미합중국에 군사독재를 수립하면 캘리포니아를 주축으로 한 서부의 정치인(캘리포니아 주지사 프랭크 메리엄, 워싱턴 주지사 존 아서 겔레틀리, 캘리포니아 상원의원 하이럼 존슨)들이 자신들이 미국 민주주의의 마지막 희망이라며 독립하여 탄생하는 국가다. 당연하게도 민주적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시에는 분리되지 않고, 독립했더라도 서부의 부족한 인력과 공장으로 인하여 내전에 참전하는 네 세력 중에서는 가장 약한 편이다.

내전 공략은 무조건 최대한 동진이다. 미태평양합중국이 등장했다는 것은 이는 4조각으로 갈라졌다는 것인데 이는 적이 하나 늘어났다는 그 자체의 효과 외에도 전선이 더 늘어나고 인구와 산업이 어느정도 있는 서부를 잃는다는 점까지 미합중국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미합중국을 상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미합중국을 삼킨다해도 그렇게 강해지지는 않는다. 미합중국의 잔해 중 미태평양합중국에 배당되는 곳은 와이오밍, 몬태나, 유타 정도인데 이 주들은 인구나 산업이나 최하위권이라 먹어봤자 티가 안난다. 그덕에 미노조연맹이나 미연합국과 국경을 맞대고 본격적으로 싸워보려고 해도 도리어 밀리는 경우가 자주 나타난다. 미노조연맹과 미연합국의 3파전으로 들어갔다면 세 솥발의 균형을 잘 유지하며 두 세력이 서로 싸우는 동안 동쪽으로 더 파고들되 강한 쪽을 공격해서 둘의 싸움이 더 오래 지속되도록 만들어야한다.

내전에서 다른 둘이 탈락하고 미태평양합중국과 동부의 다른 하나의 세력만 남았다면 휴전조약을 맺을 수 있다. 태평양이 동진한 위치에 따라서 로키 산맥, 그레이트플레인스, 미시시피 강을 기준으로 휴전선이 세워지며 선거를 개최하고 영토에 코어를 박는 등 이런저런 일처리를 한 후 다시 전쟁을 재개하게 된다. 동부의 국가가 미합중국이고 맥아더 외의 정치인이 대통령에 오른다면 맥아더를 재판에 세우는 조건으로 평화롭게 미합중국에 합병될 수도 있으며, 동부의 국가가 미노조연맹이고 집권정당이 전체주의가 아닐 때, 미태평양합중국의 집권정당이 사민주의인 경우에도 유사하게 합병될 수 있다.

전후 미태평양합중국은 민주주의 미국 트리와 거의 유사하다. 애시당초 맥아더 군사독재에 반대하며 민주주의를 유지한 자신들이 진짜 미국이라고 하면서 봉기한 세력이기 때문이다. 외교적으로는 협상국, 혹은 공영권에 가입할 수 있다.

2.6.4. 뉴잉글랜드(NEE)


미국 2차내전 - 뉴잉글랜드 소개 (펴기/접기)

과거의 미합중국은 방대한 기회와 약속의 땅이다. 미국은 멋진 배였지만 그게 배와 함께 가라앉아 죽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야. 영국이 국경 지방을 지키기 위해 남진했을 때, 우리는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우리는 실용적인 것 빼면 시체니까. 그리고 나는 맥아더와 생디칼리스트가 우리 아름답고 푸른 동네를 갈갈이 찢는 것 보다는 차라리 캐나다에게 보호받는게 낫다고 여겼고, 우리는 이 곳에 오랫 동안 정착해 국경을 보수했다.

이 내전은 저들의 전쟁이지 우리의 전쟁이 아니다. 매일 밤 오대호 위로 포성이 울리고 공중전의 불빛이 비춘다. 이건 우리가 이 의미없는 전쟁에 앞장서서 뛰어들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알려줄 뿐이다. 생디칼리스트, 연합주의자, 맥아더주의자, 연방주의자. 이제 온갖 곳의 온갖 놈들이 형제를 쏘고 그걸 혁명이라 부를 이유를 찾은 것 같다, 이 아이러니가 이렇게 비극적이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미국이 무너졌을 때 나는 내 아버지와 형제들처럼 곶에서 일하는 어부였다, 젊고 감명에 찼던 그들은 곧장 남쪽으로 가 연합국에 합류하였다, 그 놈들은 매 걸음마다 "모든 사람이 왕이다"를 외쳤다. 죽으러 가는 매 걸음마다, 그 불쌍한 놈들은 첫번째 전투에서 살아남지도 못 했다. 이걸로 기분이 나아질지는 모르겠는데 노퍽은 함락되고 몇 주 동안 약탈당했다고 한다. 미국 도시들이 불탈 때 맥아더와 롱이 발 뻗고 자기를 바랄 뿐이다.

당신은 영혼 없이 죽음으로 행진하는 짓을 옹호해보려 할 것이다. 동포였던 많은 이들이 오늘날 맹세하는 자살 욕구 따위는 나에게 없다. 내가 곶에서 낚시를 할 때 징집관들이 내 번호를 뽑았다. 나는 그 후로 사우스 마운틴에서 망원경으로 밑을 내려다본다. 당신이 전쟁을 원하지 않더라도 전쟁은 당신에게 찾아 오는 것 같다.

어쩌면 이 광기가 끝난 어느 날, 우리는 위대한 연방에 복귀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뉴잉글랜드는 북아메리카에서 우리만의 새 길을 개척할지도 모른다. 오직 시간만이 말해 줄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은 우리는 법 아래 자유인이라는 것 뿐이다. 주들의 야망에 얽매이지 않은 우리는 공통점이 없다. 뱀은 가만히 있지만 다른 주들은 이 선 위로 올라오지 않는게 좋을 것이다. 우리는 저 밑에 있는 광견병 미친개들과 싸우고 싶지 않다. 하지만 싸워야 할 때는 우리 고향을 열렬히 지켜낼 것이다. 당신이 뉴잉글랜드를 건드리지 않는다면 뉴잉글랜드도 당신을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독립 전쟁 이후 쓰이지 않았던 신조가 떠올랐다. 그 시절 우리는 영국군이 빼앗으려던 모든 땅에 각자의 대가를 치르게 했다. 나를 밟지 마라Don't tread on me[52].

이 새로운 세계에서 뉴잉글랜드는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낼 것이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53]


내전이 일어났을 때 캐나다가 뉴잉글랜드 지방과 CSA가 차지한 뉴욕시를 제외한 뉴욕 주를 강탈하여 세울 수 있는 괴뢰국. 캐나다가 이 나라를 세운 이유는 생디칼리슴 국가인 CSA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국가가 세워진 배경이 배경인지라 미승인국 국민 정신으로 정치력 획득에 막대한 디버프를 받으며, 국가 중점을 통하여 이를 타개해야 한다. 국가 정통성이 낮은 문제를 해결하면 디시전을 통하여 미국 전역에 영유권을 주장할 수도 있다.

딴에 미국의 일부라고 인구는 미태평양합중국을 능가하며 산업력은 국민 프랑스 정도로 그렇게 낮지는 않은 편이니 그렇게까지 어려운 국가는 아니지만, 문제는 콘솔 없이는 훨씬 강력한 캐나다에서 갈아타는 방법으로밖에 플레이할 수 없기 때문에 어지간해선 잡을 일이 없다...

2.6.5. 하와이(HAW)


하와이 - "미소짓는" 잭 말론의 이야기 (펴기/접기)

하아아.... 그래, 뻔하지? 그래 그래. 난 하와이 사람도 아냐. 난 잭 말론 크로포드야. 텍사스 오스틴에서 태어나 자랐지. 사기꾼에 자선가에 삶의 좋은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야. 친구들은 날 "미소짓는" 말론이라고 부르지. 이 보잘 것 없는 말론이 어떻게 이 아름다운 흰 해변에 오게 되었는지 말할테니 애들이나 모아봐.

난 어떤 성조기를 따라갈 사람도 아냐. 미국 상황이 나빠지자 구호들이 튀어나왔지. "모든 사람이 왕이다!" "사슬을 깨라!" "반란자를 타도하라!" 모든 청년들이 손에 총 좀 쥐어보려고 입대 신청 넣으러 가더라. 높으신 분들 몇몇의 정치 이론을 위해 죽으러 행진하는거야. 난 리드도 좀 좋아했어. 그래도 모자는 좀 멋졌잖아. 그래도 잭 말론은 누굴 위해 죽을 사람은 아니었어. 절대 아니었지. 상황이 돌아가는걸 알고 바로 양심적 병역거부 하는 종교 순례자 흉내를 내며 신생 미연합국에서 뛰쳐나왔어. 그것 만으로도 말할게 좀 있는데 얘기를 짧게 해야하니 안 말할게.

텍사스 서쪽 경계를 넘으려고 하다가 미닛맨에게 바로 걸렸어. 무리에서 날 바로 끌어내더라. 뭐 때문에 들켰는지는 모르겠어. 간통을 하도 많이 해서 걸렸는지도 모르지. 후회는 없어. 좀 심하게 두들겨 맞고 가슴에 큰 L자가 붙은 멋진 친구들과 만났는데 이때쯤 평범한 감옥에 가지는 않겠구나 생각했어. 그놈들이 날 심문실에 넣었는데 볼만하더라. 전등 하나 있고, 의자 하나 있고, 벽에는 핏자국 있고. 그런 곳이었거든. 선택지는 두 개였어. 군대에 가느냐, 수용소에서 고된 일을 하느냐. 난 진정한 미국 애국자로써 당연히...탈옥했지. 이제 한 손에는 숟가락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자유를 들고, 뒤에는 미연합국 군대 절반이 쫓아다니게 된거야. 북쪽 경계를 넘어 덴버에서 사랑스러운 데이브를 만났어. 그 친구가 날 화창한 캘리포니아까지 데려다줬지. 거기서 하와이로 가는 첫번째 배에 올라탔어. 정말 멋지고 익살스러운 여정이었어.

오면서 좀 이상한 사람들도 봤어. 콜로라도 국경을 넘을 때 만난 녀석이 그런 친구였지. 못 믿을걸. 해발 1500m에서 사람만한 총을 들고 야구 모자 쓰고 소매를 걷어올렸다니까.[57] 다른 친구는 연합국 서쪽 변두리에서 순찰 돌던데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도 될 것 처럼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있더라.[58] (따르르르릉)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8살이라니 무슨 말이야?! 그래, 그럼 뭐라고 할까? 황야의 결투? 그건 1946년이라고?! 아오 진짜. 그렇게 할게. 연합국 서쪽 변두리에서 순찰 돌던 다른 친구는 헨리 폰다라도 될 것 처럼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있더라. 그 동네는 밖에 있는 너희들을 위해 40년대에 서부극을 찍고 있는거야.

하아아.... 있잖아, 너희는 너희 내전을 벌여도 돼. 난 이 해변에서 코코넛이나 홀짝이며 파도타기나 할거야. 국기를 위해 죽진 않을거야.

이 난장판이 끝나면 불러. 파도 타자 미국아.

파도 타자. #[59]


미국 내전 시 미국령 태평양 섬들을 가지고 떨어져 나오는 국가. 긴급 이사회를 거쳐서 하와이 왕국을 재건할 수도 있고, 공화국을 수립하거나, 혹은 생디칼리슴 국가를 건국할 수 있으며, 미합중국이나 태평양합중국에 재가입할 수도 있다. 슬프게도(?) 플레이 국가가 전환되지는 않으며, 유저가 타국에 편입 선택지를 누르면 그냥 게임 오버다.

컴퓨터가 잡을 시 일본에게 점령당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무엇보다도 전체 인구가 42만에 불과하여 인력 문제가 극심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해보기는 어려운 국가.

2.7. 일본 제국

잃어버린 10년에서의 회복 Recovering from the Lost Decade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1920년대는 일본의 경기 침체와 정치적 불안정으로 얼룩졌습니다. 이는 특히 농업 부문에서 심각했습니다. 농민들이 침체된 시골을 떠나 도시와 노동 시장에 몰려들면서 대규모 인구통계학적 변화가 일어났고, 이로 인해 임금은 떨어졌습니다.

헌정회가 '입헌주의 연정'을 이끌고 정부에 변화를 일으킨 후, 이누카이와 그의 내각은 일본의 영향권을 만주와 극동 시베리아로 성공적으로 넓히며 일본 경제의 주요 수출 시장을 얻었지만, 만주에서 수입된 값싼 농산물이 시골로 흘러들어가면서 농업 사정은 계속 악화되었습니다. 1936년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재무장과 국가의 투자로 산업 경제는 완전히 재건되었지만, 농촌의 빈곤 문제는 여전히 고질적이며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겨내는 수밖에."

  • 정부
    0% 일본 노동총동맹
    2% 일본 노동총동맹
    0% 일본 공산당
    3% 사회대중당
    5% 혁신당
    27%입헌민주당
    51%입헌정우회
    8% 쇼와회
    3% 국민동맹
    1% 동방회


  • 국가 정신
    • 분열된 군대 No Army Focus
      일본군은 방향성이 부족하고, 최고사령부에서는 내분이 일어나고 있으며, 단일화된 군사 교리도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해결할 때까지 어떠한 전쟁 수행이든지 방해할 것입니다.
      계획 수립 속도 -50%
    • 협궤철도 Kyōki Railways
      일본의 철도는 메이지 시대 동안 대영 제국으로부터 전승된 이례적으로 좁은 궤간을 사용하여 건설되었습니다. 일본의 산악 지역에서의 건설은 쉬웠지만 그 속도 제한은 우리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교체하는 데에 정부의 시간을 할애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자원 생산량 -10%, 기반시설 건설 속도 +10%
    • 열악한 토지이용 Bad Land
      일본의 토지이용은 매우 비효율적입니다. 과잉규제와 과소규제의 환장의 조합으로 기존 농지의 소작료는 지나치게 높고, 새로운 농지를 개간하는 데는 장애물이 너무 많습니다.
      안정도 -30%, 전쟁 지지도 -30%
    • 문호개방의 과실 [A]
      소비재 -2%
    • 만철로부터의 이익 Mantetsu Profits
      남만주철도주식회사, 흔히 '만철'이라 불리는 이 회사는 러일전쟁 말기에 설립되었습니다. 현재 만철은 만주 전역에 걸쳐 운영되고 있으며, 성장하는 일본 산업과 경제의 핵심부입니다. 만철은 제국의 나머지 식민지에서 산출되는 수익을 전부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총 수익을 일본 정부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자원 채집 효율 +, 공장 생산량 + 민간 공장 +[71]


실제 역사의 일본 제국보단 독기가 빠진 방향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

대륙에 트란스아무르와 봉천 정부를 독립 보장한 상태로 시작한다.[72] 시작시 국가 중점은 군사 부분만 고를수 있으며 6월부터 내정 중점, 37년부터 외치 중점을 정할 수 있다.

유럽과 미국이 분열과 내분, 국가 불안정과 억압 그리고 검은 월요일로 신음하는 반면 일본은 빨갱이들을 미리 때려잡은 덕분에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로 시작하며 민주주의를 수호하거나 도조 없는 통제파의 집권 아니면 대정익찬회의 집권 중 하나를 택할수 있다. 국가보안법(National Security Act)를 통과시키면 민주주의 루트나 추후 이벤트를 통해 실제 역사처럼 통제파 통치 루트를 탈 수 있다. 반대의 경우에는 쿠데타에 쿠테타가 일어나며 쇼와 유신 루트로 들어서서, 대정익찬회가 여당이 된다. 이후 익정파(요쿠세이하)[73], 황도파(코도하), 혁신파(가쿠신하)의 3개의 파벌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어느 파벌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후 경제 루트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익정파를 선택하면 재벌을 통한 경제개발이 가능하나 국유화 루트는 잠긴다.

정치 중점 중 성능이 가장 좋은건 통제파 루트로 군사와 산업에 보너스를 골고루 준다. 과거 소비재 0%도 가능했으나 소비재 감소가 -2.5%로 너프 먹어서 이젠 불가능하다. 연구 속도 5%와 안정도를 퍼주는 민주주의 루트도 좋은 편이다.

위의 정치 중점을 끝내면 토지개혁을 시작으로 경제 산업 개혁을 3가지 루트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산업 개혁까지 끝내면 주요 식민지를 내지화하여 코어를 박을 수 있다! 이걸 끝내면 총인구 1억이란 막대한 맨파워를 확보 가능하다.

경제 산업 개혁 루트의 재벌 지원과 관료주의는 둘 다 괜찮은 성능이니 취향껏 고르자. 국유화 루트는 안정도를 10%씩 까먹으면서 공장 6개만 주고 끝나는 수준이기에 컨셉플이 아니면 가지 않는게 좋다.

0.16 패치에서 새로운 군사 중점을 받았는데 그야말로 일뽕 넘치는 성능을 자랑한다. 예로 해군의 대가 없이 함선 비용 할인 혹은 생산 비용 5% 증가로 모든 함선 성능 향상 중 양자택일[74]이나 육군의 기술뽕 루트의 모든 육군 장비 연구 속도 10%와 무슨 루트로 가든 가득 받을 수 있는 연구 보너스들. 이 정도 보너스를 받는 열강은 일본 뿐이다.

이로써 산업, 군사, 맨파워 어느 하나 부족한 게 없는 일뽕제국이 탄생했지만 이래도 재미가 없다는 게 문제다. 재미를 대가로 성능을 받았다.

대외 중점은 태평양 장악과 독일 제국에 대한 도전, 그리고 인도 진출인 남진론, 중국에 개입하는 서진론, 마지막으로 공영권 확장있다. 모든 진출은 태평양과 연관된 백인 국가들이 싫어한다.

"남진론"은 일본의 자원 확보를 위한 팽창을 다루며, 필리핀 → 시암 → 인도차이나 → 인도네시아 순으로 정복 명분을 주며 마지막에는 인도에 대한 전쟁명분을 받을 수 있다. 공영권 확장으로 필리핀과 시암, 인도네시아를 공영권에 가입시켰으면 이 국가들에 대한 디시전은 통과되어 시간 절약이 가능하다. 독일 제국에 도전 할 때 독일 세력권의 동남아시아 식민지들을 점거하면 이벤트로 평화 조약을 잽싸게 맺거나 계속해서 전쟁을 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서진론"은 중국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을 다루며, 공사관 도시 해체, 각 군벌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을 증가시켜 괴뢰국으로 만들거나 군벌 동맹들에게 지원 중 선택할 수 있고, 봉천군벌을 침공해 원 역사대로 만주국으로 만들 수도 있다.

공영권 확장은 아시아의 독립적이고 동맹이 없으며 적화되지 않은 국가들과 회담을 가지고 공영권으로 초청한다. 이를 수락한 국가는 독일과의 관계가 악화된다. 또 경제 공동체를 형성하여, 상호간에 버프를 받을 수도 있게 되었다.[75] 일본은 공영권에 가입한 국가들에 대한 투자를 촉진시켜 영향력을 증가 시키고 최후엔 괴뢰화 할 수도 있다. 공영권 확장 이후엔 호주 금수조치와 인도로의 특사를 파견할수 있는데 금수조치는 호주에게 일본의 금수 조치[76]라는 국가 정신을 달아주고 대호주 선전포고가 가능하게 해준다. 호주가 항의할 수도 침묵할 수도 있지만 변하는건 없다. 인도로의 특사는 토후 연맹에게 공영권 가입을 권유한다. 받아들여 진다면 토후 연맹은 일본인 조언단[77] 국가 정신을 얻고 공영권에 경제부문만 합류한다. 세력 가입은 하지 않는다. 투자로 영향력을 증가시키려 하면 바로 탈주하니 주의.

미국 내전이 발생하면 태평양합중국, 미연합국, 미합중국 중 하나를 골라 지원 할 수 있고 괌을 점거하고 다른 섬의 영유권까지 주장할 수 있다.
내전을 틈타 독립한 필리핀이 경제 원조를 요청하는데 수락하면 소비재 공장 +2% 국민정신이 30일간 달린다. 그런데 이 이벤트 이게 끝이다. 필리핀과의 관계가 개선되는것 말고는 아무 의미가 없다. 필리핀에 공장도 안늘어난다!

중국에서 세력이 가장 큰 군벌과 일본이 전쟁을 할 경우, 북경, 남경 등 대도시가 일본 혹은 동맹국(괴뢰국)의 손에 들어간 상태라면 중화연합전선이 형성되는데, 중국의 모든 세력(몽골, 쿠물칸국 등 분리주의자 제외)들이 가입해 일본에게 대항하게 된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안정도와 전쟁지지도가 깍이며 점령을 하지 못한 대도시들이 많을수록 그 패널티는 심해진다. 지역을 점령한다고 해도 점령된 도시만큼 중화연합전선의 국가들이 공방 보너스를 받기 때문에 전쟁이 더 힘들어진다.

3. Heia Safari

v0.5부터 그 버전에서 새로 생성된 혹은 개편된 국가들이 7대 열강의 아래에 소개된다. 그 이전에는 2선급 강대국들[78]이 소개되어 있었다.

3.1. 에티오피아

교차로에 선 제국, 에티오피아 Ethiopia, an empire at Crossroads

현지 지명으로는 에티오피아라고 부르는 아비시니아는 19세기 동안 독립을 유지하는데 성공한 유일한 아프리카 국가로 1896년 이탈리아의 침공을 성공적으로 막아냈습니다. 이 승리는 경제·군사·행정 면에서 유럽에 발맞추어 나라를 현대화시키고자 하던 아비시니아 제국 내의 현대화 과정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918년 저우디투 여제 치하의 아비시니아는 세계대전에 독일의 편으로 참전해 이탈리아의 식민지인 에리트레아를 성공적으로 합병했고 제위 요구자 이야수를 처리했습니다. 그러나 군대는 이탈리아의 주둔군을 상대할 때나 협상국 군의 제국 내로의 습격을 막을 때 더 한심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분쟁지역이었던 하라르에 대한 영유권은 지역 대다수를 점령한 소말리아 군을 몰아내지 못하며 주장할 수 없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고령의 저우디투 여제가 살아있는 아이 없이 사망하자 그녀의 사촌이자, 섭정이며, 오랫동안 대립해왔던 러스 터퍼리 머콘는이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로 제위에 올랐습니다. 반동적인 파벌의 지도자였던 그의 전임자의 색채를 지우고 아비시니아를 서구화하기 위해 새로운 개혁들을 실시하려는 그의 의도에 따라 새로운 왕조가 선포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저우디투를 호의적으로 바라보았던 소 왕이나 공작 등의 국가의 보수적인 귀족들에게는 거센 반대를 맞았습니다. 근거리에 있는 지부티의 새로운 주인이 된 독일과의 연계는 해군 기지와 아디스 아바바, 케냐를 연결하는 철도가 (독일 자본의 힘으로) 완공되며 더 강해졌습니다. 그 이후로 신임 중앙아프리카 총독의 기이한 행동에 대한 보고가 들어왔지만 독일과의 관계는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소말리아와 그들의 후원자인 오스만과의 관계는 계속해서 최고조의 긴장을 유지하고 있으며 분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황제는 하나의 깃발과 대의 아래에 통일된 제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야심찬 공작들의 권력을 제한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적의 편에 설 수도 있기 때문에 국내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린 강하게 서 있다!"
  • 정부
    0% 에티오피아 인민위원회의
    0% 전에티오피아 생디칼리슴 운동
    1% 에티오피아 노동당
    2% 에티오피아 인민민주전선
    0% 통일과 민주주의 연합
    2% 통합에티오피아민주권
    23%민주동맹
    35%솔로몬 왕조 충성파
    36%귀족평의회
    1% 대중주의 장교단

  • 국가 정신
    • 주체 불가능한 채무 Crippling Dept
      우리의 채무는 치명적인 수준에 달했고 국가의 어깨 위에서 주체못할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채무가 우리를 너무나도 구속하기에 사람들은 에티오피아의 독립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생산 효율성 한도 -5%, 매일 정치력 비용 +0.2
    • 귀족들의 군대 Aristocratic Military
      우리의 군대에서의 직위는 출생으로 결정되고 모든 최고위직은 세계 대전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그 능력이 의심스러운 귀족들의 것입니다.
      사단 조직력 -5%, 최대 계획 수립 -5%
    • 노예제 Slavery
      노예제는 에티오피아에서 매우 만연한 관습입니다. 메넬리크 2세 이후 전임 황제들의 노력은 사실상 상징적인 것 뿐이었고 노예제와 노예의 후손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열심히 일하지만 그들의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합니다. 노예제의 실행은 그 어떠한 문명국에서도 부도덕적인 것으로 간주되기에 이 제도는 비효율적이며 에티오피아의 수치의 원천입니다.
      매일 정치력 비용 +0.05, 안정도 -10%, 소비재 공장 -5%
    • 소집군 Army of Levies
      에티오피아는 근대의 강대국들과는 달리 통일되고 조직화된 군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에티오피아의 '군대'는 귀족들 개개인의 소유이며 사람들은 귀족들에게 충성하며 오직 그들에게만 충성합니다.
      사단 조직력 -30%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에 이탈리아령 에리트레아를 공격해서 뜯어냈지만 오가덴 지방을 소말리아에 뜯겨 아프리카의 뿔 지역을 양분한 상태로 시작하게 된다. 최근에 점령했기 때문인지 에리트레아 지역에는 코어가 박혀있지 않다. 경제 트리를 타면서 코어를 박을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봉건국가나 다름 없는 나라를 서구식으로 개조하기 위해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주도로 다방면의 개혁을 하게된다. 다만 에리트레아에 코어가 박혀있지 않다면 개혁에 반발하는 보수파가 에리트레아를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킨다. 개혁은 노예제, 세금, 행정, 군사, 토지의 5개 부문에 걸쳐서 이루어지며 각 개혁을 마칠 때마다 나오는 선택지를 어떻게 선택했는지에 따라 모든 개혁을 마친 후에 서구식 의회민주주의 국가, 황제에게 권력이 집중된 중앙집권국가, 지금까지와 동일한 봉건국가 중 하나로 변모하게 된다.

개혁을 끝마치면 소말리아에 전쟁을 걸어 오가덴 지방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이 외에 이집트가 중점으로 전쟁을 걸어서 방어해야 할 수도 있으니 주의.

3.2. 라이베리아

라이베리아 소개 Liberian Introduction

대략 버지니아 크기인 라이베리아는 미합중국의 보호 하에 있는 서아프리카의 독립국입니다. 사회 상류층은 진휘그당True Whig Party이라는 굳건한 의원연합에 속해있으며, 이 당은 1870년대 이래로 매 주요 선거마다 승리해왔습니다. 미국 출신의 라이베리아인들에겐 기독교를 원주민들에게 전파할 의무가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서아프리카의 전통을 몇몇 수용했습니다. 하층 계급을 위한 포로Poro, 라이베리아 상류층의 프리메이슨 같은 비밀 결사는, 부자는 계속 부유하게, 빈자는 비밀스럽게 스스로를 관리하게끔 만들었습니다. 세계대전은 라이베리아에겐 어둡고 음모스런 때였습니다. 몬로비아에서 프랑스 소유 청음초소의 존재가 거의 드러났고, 독일 대사는 수상쩍은 정황으로 사라졌으며, 국경도 변했습니다. 영국에서 혁명이 일어나는 동안, 시에라리온은 프랑스에게 점령 및 합병을 당했습니다. 나중에 온 코트디부아르 난민들은 시에라리온 난민들의 물결을 초과할 정도였습니다. 독일령 동아프리카가 프랑스 혁명의 혼란 와중에 프랑스령 식민지인 코르디부아르를 공략하면서, 긴장감을 오히려 더 고조시켰던 겁니다. 이제 라이베리아는 실패한 계획들의 부채에 시달리며, 그 경제는 파이어스톤 내츄럴 러버Firestone Natural Rubber의 손에 달려있어, 국가의 미래가 불확실합니다. 진휘그당의 정통주의자 에드윈 바클레이Edwin Barclay 대통령이 라이베리아를 재앙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을까요?

"라이베리아 만세, 만세!"

  • 정부
    7% 라이베리아 운명당
    2% 생디칼리슴
    11% 인민당
    5% 사회민주주의
    15% 진휘그당(혁신)
    15% 진휘그당(중도)
    40%진휘그당(보수)
    1% 진휘그당(강경)
    0% 군사 정권
    4% 라이베리아 프리메이슨 그랜드 롯지

  • 국가 정신
    • 심각한 부채 위기 Crippling Debt Crisis
      라이베리아는 최근 수 년간의 수많은 실패한 프로젝트로 인한 빚에 빠져버렸고 현재 이런 노력의 성과는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고생만 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파산의 위기에 몰려있으며, 스스로가 판 구덩이에서 올라올 희망이 전혀 없다면 구제금융 요청을 고려해야할지도 모릅니다.
      건설 속도 -10%, 안정도 -20%, 매일 정치력 비용 +0.2


카이저라이히에서 최고의 난이도를 가진 국가 중 하나. 미국의 속국으로 시작하지만 2차 미국 내전이 일어나거나 중점을 밟다 보면 독립할 수 있게 된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국가가 지고 있는 채무와 더불어 검은 월요일의 영향에서 회복해야 한다. 독일, 일본, 파이어스톤 사 중 하나의 지원을 받아 이를 해결할 수 있다. 집권 정당은 1939년의 선거를 통해 교체 할 수도 있지만 전체주의 정당이나 프리메이슨이 쿠데타를 벌여 정권을 잡는 경우도 있다.

외교적으로는 아프리카의 해방을 외치며 인접하고 있는 양국에 전쟁을 걸 수 있는데 하필이면 그 양국이 협상국 소속인 국민 프랑스와 라이히스팍트 소속인 독일령 중앙아프리카... 양측 다 라이베리아 국경에 군사를 배치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존재하니 타이밍을 잘 노려서 요구하는 지역만 급습해서 점령하고 이벤트로 종전을 노리거나 아예 제3인터내셔널에 가입하자.

3.3. 독일령 중앙아프리카

아프리카의 심장에서 In the heart of Africa

프랑스와 벨기에의 식민지를 흡수한 후에 태어난 독일령 중앙아프리카는 도시, 군장국가, 왕국, 농지, 정글, 사바나, 사막 등으로 구성된 거대한 땅이며 검은 대륙의 절반을 뒤덮고 있습니다. 식민지는 복잡하고 거미줄처럼 얽힌 조약과 협정, 묵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안정적이지만 수익성은 놀랄 정도로 없습니다. 새 총독인 헤르만 폰 괴링Hermann von Göring과 그의 부하들은 이를 어떤 비용을 들여서라도 바꾸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 비용은 독일령 중앙아프리카가 지불하기에는 너무 크지 않을까요? 그리고 카이저께서 괴링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허락할까요?"

"흥미로운 소리군!"

  • 정부
    0% 아프리카 적위군
    1% 아프리카 생디칼리스트당
    1% 사회주의자-자유회의
    3% 자유회의
    10% 콩고식민협회
    5% 왕립퇴역군인협회
    14% 개혁파
    29%독일식민협회
    33%신식민정부
    0% 독립주의자

  • 국가 정신
    • 영국계 정착민 British settlers
      우리 영토 내의 영국계 정착민들은 그들의 사회적 계급에 비해 많은 비중의 대전기 고참병의 비율 덕에 대전기 이전의 영향력을 대부분 보존하고 있습니다. 현재 그들의 영향력이 조국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으므로, 우리는 근시일 내에 이들을 다뤄야 합니다.
      일일 시장자유주의 지지 +0.01
    • 플란데런-왈롱의 투자자들 Flandro-Wallonian Investors
      우리 영토 내의 벨기에 투자자들은 대전 이전의 높은 비율의 벨기에 연관 사업과 산업시설 덕에 대전기 이전의 영향력을 대부분 보존하고 있습니다. 현재 그들의 영향력이 조국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으므로, 우리는 근시일 내에 이들을 다뤄야 합니다.
      일일 사회자유주의 지지 +0.01


헤르만 폰 괴링이 총독으로 통치하고 있다. 뭔가 꿍꿍이가 있긴 하지만 마약에 빠지지 않아 정신도 멀쩡하고 몸도 돼지가 아니다. 시작하면 검은 월요일이 터지면서 경제가 순식간에 악화된다. 공장 하나 짓는데 50년이 넘게 걸릴 정도로... 여러 이벤트들이 일어나 정치력과 안정도를 엄청나게 잡아먹고 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본국에 요청하는 이벤트가 뜨는데 이때 독일의 선택지에 따라 또 안정도, 정치력이 감소하고 이런 식으로 가다가 안정도가 -40% 이하로 내려가면 아프리카 국가들이 일제봉기하며 아예 멸망해버릴 수도 있다.

경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국가 중점으로 예산안을 짜고 집행해야 한다. 예산안 관련 중점은 매 해마다 자동으로 찍히고 민간 경제 위주로 갈지 전시 경제 위주로 갈지 선택해서 서로다른 효과를 받게 된다. 전시 경제에 맞춰져있는 1939년 예산안 쯤되면 경제는 거의 정상화된다.

식민지 내부에서는 영국계와 플란데런-왈로니계 주민들이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는데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들을 탄압하는 선택지로 가면 각각 소비재와 인력에 패널티를 받지만 정치력과 지지도를 얻을 수 있고 수용하는 선택지로 가면 정당 지지도를 내주는 대신 자원과 인력을 얻을 수 있다. 다만 영국계는 시장자유주의, 플란데런-왈로니계는 사회자유주의 지지도가 25%, 35%, 45%가 넘을 때마다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벤트와 함께 소비재 공장 사용률 추가 등의 디버프 국가 중점을 받으니 유의해야 한다.

정치적으로는 괴링으로 대표되는 방금 막 부임한 신정부 계열과 이전까지의 관료들이 지지하는 계열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 여기에 괴링 개인은 독일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단적인 통치를 하려는 야망을 품고 국민대중주의 계열로 기울고 관료들 중 자유주의적인 파벌은 아프리카에서도 선거제를 이식하고 싶어한다. 1938년에 괴링의 비리로 촉발되는 위기상황에서 독일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중점이 달라진다. 1차적으로 식민지 정부 자체적으로 비리 수사를 통제하거나 괴링을 억류시킬 수 있으며, 괴링을 억류시키면 바로 독일의 선택에 의해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지만 비리 수사를 통제하면 이후 체포 영장 이벤트가 발생한다. 여기서는 괴링이 체포에 응하거나 거절하고 국민대중주의 정당을 집권시키는 선택지가 있는데, 체포에 응하면 마찬가지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며 거절한다면 독일이 넘어가 주거나 반역으로 선언할 수 있다. 독일이 눈감아 주면 중점을 통하여 영국 식민지를 합병하면서 명목상 괴뢰국으로 자치도를 높일 수 있지만, 반역으로 선언당하면 안정도가 무려 100%나 깎인다. -40% 이하일 때 식민지가 붕괴되는 것을 감안하면 무조건 붕괴라 봐도 좋을 정도. 다행히 유저가 잡을 때는 AI 독일이 반역으로 선언하는 선택지가 나오지 않도록 설정되어 있으니 안심해도 된다.

주적은 포르투갈. 포르투갈 식민지에서 여러 공작을 벌여 경찰관이 총에 맞거나 무기고가 털려서 육군 경험치가 하락하거나 민간 공장이 파괴되거나 심지어는 요인이 암살되기까지 한다. 모두 정치력을 엄청나게 잡아먹는 이벤트들이다. 이에 대해 독일 본국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에티오피아, 남아프리카와 연계해 포르투갈을 압박할 수 있다. 독일에 도움을 요청해서 포르투갈과 협상해 외교적으로 문제가 해결되면 괜찮지만 협상이 언제나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요청을 거절하면 또 정치력이 떨어진다. 남아프리카와 연계하는 이벤트는 남아프리카의 내전 결과에 따라 달라지고 이를 위해 유리한 진영에 지원을 보낼 수 있다. 포르투갈과 대립이 격해지다가 전쟁이 일어난다면 식민지들만 접수해주면 포르투갈이 식민지를 할양하고 평화조약을 맺는다.

그외에 라이베리아가 미국 내전으로 독립하면 정치력을 떨어뜨리고 선전포고해서 집어먹을 수 있다. 또한 베를린이 점령당하면 독일에서 망명정부 수립을 요구하는데, 수락한다면 독일 망명정부로 플레이하게 되며 거부한다면 자유국으로 독립하게 된다.

3.4. 포르투갈

포르투갈 왕국 The Kingdom of Portugal

세계대전의 재앙과 모잠비크와 프랑스에서의 우리 군대의 몰락 이후로 포르투갈의 찬탈자인 공화국의 체면과 군대의 지지는 땅에 떨어졌고 영광스러운 복위에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마누엘 2세Manuel II는 왕좌로 돌아왔고 한때 그와 경쟁하는 계승자이던 두아르트 누노Duarte Nuno를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전쟁의 종전 잠깐 후에 일어난 복위는 경제 회복의 시작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포르투갈이 1925년의 폭풍우에 잘 대처하기에는 영국의 수입 수출에 의존도가 너무나 컸습니다. 우리는 대영제국의 몰락 이후 우리의 땅을 통합하는 것 조차 하지 못했고 독일은 침략 행위를 벌여 그 땅들을 점유했습니다. 거대한 정치적 위기를 책임지게 되자 총리 파비아 코세이로Pavia Couçeiro는 선거를 요구했습니다. 승리한 통일주의자들은 막대한 의제를 가져왔고 공격적인 반공화주의적 정책은 가장 확고한 군주주의자 사이에서도 여론의 양극화를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현재 왕에 충성을 다하고 있고 영원히 그러할 것이라 주장합니다. 스페인의 병은 끝나지 않을것 같아보이고 이에 따라 더한 혼란이 세계를 닥칠 듯 하고 포르투갈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헤르만 괴링과 그의 야만적인 폭력배들이 우리의 노력을 방해해 우리 손으로 보복하게 하며 긴장도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우리는 포르투갈이 굳게 설 것을 신뢰합니다.

"전진하라! Avante!"

  • 정부
    0% 포르투갈 최대주의자 연합
    0% 노동총연맹
    1% 포르투갈 아나키스트 연합
    6% 민주좌파공화당
    4% 민주당
    4% 자유공화당
    12% 국민공화당
    14% 누누 알바레스 십자군
    19% 포르투갈 현실주의 행동당
    40%루시탄 통일주의

  • 국가 정신
    • 불명예로운 평화 Paz sem Honra
      대전쟁 때는 무시받았지만, 다시금 전쟁이 벌어지려 하는 지금 세계는 포르투갈을 영토 방위의 잠재력이 충분한 중견국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의견은 우리 정부의 늙은 고위급 인사들에게는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AI 보정 (공격 중점 +50%), 전쟁 목표를 정당화하는데 걸리는 시간 -5%


정치 관련 선택지가 있는 나라 중 가장 수구적인 국가이다. 선택지가 국민대중주의와 후견전제주의의 2가지.
원래는 다른 루트가 있었을 예정이나 담당 제작자가 도주하면서 두가지 루트 밖에 없다

외교적으로는 아프리카의 식민지에 주력하며 각종 공작으로 중앙아프리카를 노리다가 문제가 어떻게든 해결되면 이벤트로 이전의 동맹이었던 협상국에 다시 접촉하게 된다. 협상국에 가입해도 유럽내의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보다는 독일 식민지가 몰락해 탄생한 아프리카 소국들을 침략하거나 식민지 지역에 투자해 이득을 얻는 등의 활동을 하게 된다. 그 외에 스페인 내전이 발발할 시 개입해서 갈리시아를 얻을 수도 있다.[79]

군사적으로는 상대적으로 해군이 강한 편. 인력도 적고 공장도 적어서 육군은 매우 빈약하다. 유럽 내에서는 스페인이라는 장벽이 있어서 괜찮지만 스페인 내전에서 CNT가 승리해 제3인터내셔널에 가입하거나 스페인이 프랑스 코뮌에 털려서 육상전을 치뤄야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 주의.

스페인에서 이베리아 연방이 수립되었다면 두아르트가 암살당하기도 하는데, 암살 이벤트 이후 선택지로 마리아 3세가 뒤를 잇게 할 수 있다.

3.5. 소말리아

뭉치면 산다! United We Stand!

소말리아의 여러 국가들은 식민주의자들의 먹잇감이 되었고 국제 사회의 눈에는 우리가 약해보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무너졌고 동족간의 관계는 분열되었습니다. 하지만 압둘라 하산Abdullah Hassan이 세계대전 동안 이탈리아인들을 상대로 거둔 놀라운 승리 이후 이탈리아는 소말리아에서 완전히 후퇴했으며 와르산갈리Warsangali의 술탄, 알리 시레Ali Shire는 영국이 독일과의 싸움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이름뿐이나마 영국의 지배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공식적으로 세계대전을 종결한 명예로운 평화는 역설적이게도 소말리아를 자유롭게 하는 동시에 알리 시레의 조약에 의해 영국의 보호령은 그대로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양측에 모두 이익이 된 이 현상유지책은 대영제국이 몰락하며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와르산갈리의 군은 노린 듯이 잽싸게 남아있는 영국령 소말릴란드를 점령했고 영주들은 그를 보코르Boqor, 즉 소말리아의 황제로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동맹국의 군주들의 환심을 사는 동시에 칼리프의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하는 의미에서 서방에는 그 자신을 왕으로 칭했습니다. 소말리아에는 번영이 찾아왔고 우리의 토지는 비옥해졌으며 우리의 도시는 거대해졌습니다. 게다가 에티오피아로부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가덴을 점유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우리의 도로, 서적, 대학은 통칭 소말리 르네상스로 칭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여주는 지표들입니다. 그러나 거대한 위협이 도사리고 있을 수도 있으니 현명한 이들은 좋은 시간이 영원히 이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야합니다. 하일레 셀라시에는 우리의 나라를 질투심을 가지고 주시하고 있으며 중앙아프리카의 신임 총독은 외교적으로 접근하기가 어렵습니다. 미래가 어떻든 간에, 우리가 우리에게 제시된 가능한 모든 기회를 잡았고, 하나가 되어 소말리아를 더 좋고 밝은 미래로 이끌었다는 사실에는 만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섰다!"

  • 정부
    1% 공동협의회 모가디슈지부
    5% 소말리 연맹
    0% 자문 위원회
    2% 정의당
    5% 진보당
    5% 자유당
    10% 소말리 청년단
    47%부족 의회
    11% 와르산갈리 술탄정
    14% 신 소말리 운동

  • 국가 정신
    • 와르산갈리의 철권통치 Iron Fist of Warsangali
      와르산갈리는 소말리아 연방의 지도국으로, 오스만,독일 같은 외세와는 그 유래가 세계대전 때까지 이어지는 관계를 가지고 있어, 권력 기반이 튼튼합니다. 소말리아의 수도가 명목상으론 모가디슈긴 하지만, 실제 결정은 라스코레이에서 내려지며, 이에 반항하는 이들은 빠르게 입다물게 됩니다.
      매일 정치력 비용 +0.3
    • 식량난 Food Shortages
      소말리아는 도시화, 외국의 투자, 문화적 르네상스같은 번영을 경험했지만, 부정적인 측면이 다소 없잖습니다. 성장하는 인구와 군대, 농장 노동력의 감소는 식량난을 일으켰고, 다소 드문 일이지만 여전히 소말리아의 농촌 생활에 영향을 미칩니다.
      소비재 공장 10%


이탈리아와 영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것도 모자라 오가덴 지방까지 확보한 모습이다. 주요 컨텐츠론 연방 왕국/중앙집권 왕국 중 하나를 선택하는 정치 개혁과 에티오피아와의 전쟁이 있다. 이 이외에 뭔갈 해보기는 어려운데, 부족한 자원·인력·공장이라는 마이너 국가들의 삼중고를 제대로 달고 있으며, 국가 중점도 딱히 이를 해결해주진 못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연구 쪽으로는 빠르게 슬롯을 올릴 수 있으며, 장비 생산비용과 소비재 비율을 줄이고 전투력 보너스를 받는 국가 정신이 많아 효율과 질 측면에서는 꽤 좋은 모습을 보인다.

4. Garibaldi's Nightmare

제목이 가리발디의 악몽인 만큼, 전작들까지 남북으로만 분단되었던 이탈리아가 훨씬 더 혼잡해졌다.

이탈리아 5개국들은 아래 문단의 항목 참고.

4.1. 오스트랄라시아 연방

연방의 현황 Status of Federation

1924년 자원 보존법의 결과로 형성된 오스트랄라시아 연방은 영국령 오스트랄라시아 자치령과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영국령 피지,뉴기니 섬의 결합체입니다. 대전쟁이 큰 변화와 고난을 가져온 지도 십수년이 지났습니다. 전쟁은 사회와 경제 모두에 악영향을 미쳤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멜버른 코뮌이 짧지만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들은 비록 당시 여당이었던 노동당 정부의 오스트레일리아군에 의해 진압되었지만, 이 사태는 비상 계엄령, 선거 중단, 그리고 윌리엄 버드우드 총독의 임명이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 후 1925년의 영국 혁명이 대영제국을 뼛속까지 뒤흔들었고, 오스트랄라시아는 독일이 영토를 강탈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경제는 여전히 침체되어 있고 나라를 거의 단결시키지 못하는 버드우드와 그의 동맹 빌리 휴즈의 국민당에 대한 국내의 불만은 계속해서 커져가며 상황은 여전히 불안정합니다.

''오스트랄라시아여 전진하라, 앞으로!"

  • 정부
    3% 오스트랄라시아 최대주의당
    12% 오스트랄라시아 생디칼리스트당
    0% 오스트랄라시아 사회당
    1% 오스트랄라시아 노동당
    2% 오스트랄라시아 노동당 (반생디칼리스트)
    12% 오스트랄라시아 국가당
    35%오스트랄라시아 연합당
    25%오스트랄라시아 국민당
    4% 오스트랄라시아 제일 운동
    6% 중앙당

  • 국가 정신
    • 비대한 함대 Oversized Fleet
      영국의 몰락의 혼란스러운 여파로, 많은 함선이 피난처를 찾기 위해 호주로 도망쳐왔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영구적인 것이 되었으며, 현재의 경제 상황으로는 상황을 개선하기가 어렵습니다. 해결책을 곧 찾아내야만 합니다.
      함대 협조성 -10%, 조선소 생산량 -25%, 소비재 공장 5%
    • 경제 불황 Economic Depression
      오스트랄라시아의 경제는 결코 튼튼하다 할 수 없었으며, 대전의 여파는 경제를 훨씬 더 악화시켰을 뿐입니다. 기회는 존재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직업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보다 극단적인 해결책이 고려되기 시작함에 따라 극단주의자들이 전국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정치력 비용 +0.25, 생산효율성 한도 -20%, 공장 생산량 -20%, 건설 속도 -20%, 시장으로 가는 자원량 -10%, 안정도 -10%
    • 너무도 많은 피를 흘리다 Bled Dry
      우리는 대전기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고, 결판이 났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결국엔 아무 의미 없이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죽어나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는 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다시는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20%, 전쟁 지지도 -25%, 항복 한계치 -10%
    • ANZAC의 정신 ANZAC Spirit
      대전기에,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출신들은 가장 공격적이었으며, 의심스러운 규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조직을 유지했습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들은 도를 넘을 정도로 다루기 어려웠지만, 그들은 막상 전투를 즐겼습니다. 그들은 강인함과 감정적임의 흥미로운 조화였습니다.
      사단 회복률 +10%, 사단 공격/방어 +5%, 사단 조직력 -2%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가 통합되어 형성된 오스트랄라시아이다. 협상국에 가입해 있고 시작 시에는 군정체제가 들어서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선거가 재개된다. 1936년과 39년의 선거의 결과에 따라 정치 체제가 변화한다. 36년의 선거에서는 민주주의 정당만 선택할 수 있고 39년의 선거에서는 국민대중주의 정당과 후견전제주의 정당을 선출할 수 있다. 또 후속 이벤트에 따라 국민대중주의나 후견전제주의, 생디칼리슴 정당이 집권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협상국 소속으로 활동하게 되나 생디칼리슴 집권시 제3인터내셔널에, 후견전제주의 집권시 대동아공영권이나 독자 생존을 선택하게 된다. 경제적으로는 여분의 함선을 스크랩해서 관리비를 아끼거나 함선을 다시 함대에 편입해 전쟁을 대비할 수 있다. 그외에 디시전으로 태평양의 여러 섬들에 영유권을 주장할 수도 있다.

4.2. 불가리아

불가리아 차르국 Tsardom of Bulgaria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불가리아는 승리를 거두었고 발칸에서 불가리아 헤게모니를 성공적으로 이룩하며 갑작스러운 황금기에 들어선 자신을 보았습니다.

1927년 바실 라도슬라포프Vasil Radoslavov 총리가 사망하자 알렉산다르 말리노프Aleksandar Malinov가 권력을 잡게 되었습니다. 반독파로 유명한 말리노프와 그의 동맹들은 불가리아를 장기말 이상으로 보지 않는 독일을 위협적인 존재로 보았기에 그들의 황금기의 오만함에 빠진 와중에 독일로부터 멀어지고자 했고 두 옛 동맹의 관계는 냉각되었습니다.

이제 불가리아는 자신이 지역 내의 우월한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발칸에 동맹이 거의 없고 불가리아의 위치를 약화시키는 병든 경제의 위험한 상태의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동안 옛 적들의 포위망은 독수리와 같이 간절하고도 탐욕스럽게 그들의 옛 영토를 재주장할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불가리아와 차르에게 영광을!"

  • 정부
    0% 불가리아 사회민주노동자당
    4% 불가리아 사회민주노동자당
    4% 불가리아 아나키스트 연맹
    6% 불가리아 사회민주노동자당
    3% 인민당
    11% 급진민주당
    21%불가리아 농민연합
    40%자유당
    8% 절대주의자 파벌
    3% 즈베다

  • 국가 정신
    • 군인 연금 Military Pensions
      세계대전 동안 불가리아는 가능한 모든 병력을 보냈고 인구의 상당한 비율이 징집되어 전선으로 배치되었습니다. 이는 전쟁 중에는 상당히 요긴한 것이었지만 연금을 받아야할 병사의 수가 운용할 수 있는 기금을 웃돌면서 세계대전이 결판난 이후로는 우리들을 괴롭혀왔습니다.
      소비재 공장 10%
    • 병든 경제 Ailing Economy
      마닐로프 총리가 독일과의 관계를 단절하기로 한 이후 동시에 우리의 모든 이웃들과의 냉각된 관계로 우리는 우리의 경제가 파산에 이르지 않게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와 우리와 거래하고자 하는 거의 얼마 없는 국가들에게 의존하게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우리의 위험한 경제적 상태는 가장 모험심 넘치는 투자자조차 쫓아내는 우리의 보호무역 정책에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산 효율성 한도 -5%, 공장 생산량 -5%


1차 대전에 줄을 잘서서 루마니아, 그리스, 세르비아로부터 영토를 한입씩 집어삼키며 지역강국이 되었다. 차르는 아직도 페르디난트 1세. 당연히 다른 국가들은 빼앗긴 땅을 되찾으려고 칼을 갈고 있고 1938년 세르비아의 주도로 베오그라드 협약이 결성되면서 잃어버린 땅에 대해 불가리아에 반환을 요구한다.
이 요구에 불응할 시 전쟁에 돌입하는데 불가리아가 각각의 국가들보다는 국력이 높지만 3국이 동시에 들어와 전장이 매우 넓은데다가 불가리아의 주요 승점 지역이 평지에 분포되어 있어 전략적 후퇴후 유리한 지형에서 농성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쳐들어 가자니 루마니아는 강을 넘어야 하고 세르비아와 그리스의 경우 국경이 산지다. 이와중에 오스만 제국이 땅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당연히 거절할 경우 쳐들어오기 때문에 승리하기 매우 힘들다.
어느 정도 밀리면 항복 이벤트가 뜨며 영토를 어느 정도 할양하는 조건으로 평화 조약이 맺어지게 된다. 물론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끝까지 전쟁이 이어지고 완전히 합병되어 버릴 수도 있다. 전쟁을 하기 싫다면 그냥 조약에 굴복하고 나중에 복수의 칼날을 가는 것도 가능하다.

전쟁에서 승리하기가 매우 힘들지만 팁을 주자면 이 전쟁에서 불가리아가 제일 힘든 점은 전장이 매우 넓고 쳐들어가기 불리하다는 점인데 가지고 있는 보병 부대만 모조리 해산하고 보병 장비를 모아 민병대로 재편할 경우 넓은 지역에 부대를 배치하는게 가능하다. 민병대의 경우 공격력은 -50%지만 방어력은 -30%이므로 루마니아의 경우 강, 세르비아, 그리스의 경우 산을 방패삼아 참호를 파고 수비가 어느정도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해산하지 않은 일부 기병이나 기갑같은 기동부대의 경우 전쟁전에 그리스 승점 지역 쪽으로 미리 수송 준비를 해놓고 전쟁 발발후 상륙을 하면 빠르게 그리스가 항복할 것이다.[80]
이후 그리스 전역의 부대를 루마니아던 세르비아던 수비가 부족한 곳에 보강해주고 다시 기동부대를 루마니아쪽으로 수송을 해서 승점 지역을 먹으면 루마니아까지 함락된다. 이후 세르비아의 경우 불가리아가 단독으로 상대가 가능하므로 밀어버리면 그만. 불가리아가 3국을 합친것보다 해군이 강하고 민병대가 보병 장비를 적게 먹는다는게 포인트다.
전쟁 중간에 오스만이 개입하려고 한다면 땅을 떼어줘도 된다. 뼈아프긴 하지만 오스만이 대부분 이란, 이집트와 전쟁을 하는데 이때를 잘 활용하면 내준 것 이상으로 취하는게 가능하니까.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페르디난트 1세가 퇴위하지 않고 정권이 유지되지만 영토 할양으로 전쟁이 끝났다면 페르디난트 1세는 퇴위하고 내각이 교체되면서 불가리아 정치 지형에 변동이 일어난다. 의회에 더 많은 권한을 허용해 시장자유주의나 사회민주주의 계열의 입헌군주국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고 보리스 3세의 친위 쿠데타로 더 권위적인 후견전제주의 국가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아예 왕정이 폐지되고 농민연합이 공화국을 건국해 알렉산다르 스탐볼리스키를 집권시키는 경우도 있으며 생디칼리슴 혁명이 일어나 게오르기 디미트로프가 집권하는 경우도 있다.

경제는 시작 시점에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검은 월요일이 터지면 완전히 붕괴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농업과 공업 중 한 곳에 집중해서 발전을 시켜야 하고 각 중점은 서로 배타적이다. 그리고 1차대전 참전용사들과 퇴역 군인, 현역 군인들에게 지지받지만 재정을 좀먹는 정책인 군인 연금을 삭감할지 유지할지도 선택 가능한데, 유지하게 되면 나중에 육군 중점에서 재조정 중점으로 완화가 가능하며 삭감하면 군의 반감을 사서 전쟁 지지도가 떨어진다.

외교적으로는 페르디난트 1세는 모스크바 협약에, 보리스 3세는 라이히스팍트에, 게오르기 디미트로프는 제3인터내셔널에, 알렉산다르 스탐볼리스키는 베오그라드 협약에 가입하려 하고 조건에 따라 도나우-아드리아 연맹에 가입할 수도 있다. 세력 가입은 중점이 아니라 디시전을 통해 이루어진다.

베오그라드 협약이 결성되지 않거나 너무 늦게 성립된다면 공격을 막기 위해 루마니아, 세르비아, 그리스에 선제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 또 발칸 국가들을 전부 제압한 이후에는 오스만 제국을 압박해 콘스탄티니예겔리볼루를 뜯어내서 보스포루스 해협다르다넬스 해협의 통행권을 독점할 수 있다.

4.3. 이집트 술탄국

이집트 술탄국The Sultanate of Egypt

근대 이집트의 역사는 전통적으로 1882년 이집트가 오스만 제국의 영토의 일부라고 여겨지던 이집트의 법률적 지위를 놓고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영국의 지역내의 영향권에 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914년 보호령은 공식적인 것이 되었고 1867년 파샤에서 케디브로 바뀐 국가수반의 명칭은 술탄으로 다시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콘스탄티노플의 오스만의 술탄의 잔류한 영유권을 공식적으로 절연한 것이었습니다. 아바스 2세는 영국에 의해 폐위되었고 그의 삼촌 후세인 카밀이 그를 대체하여 술탄이 되었습니다. 1917년 그가 사망하고 그의 외아들 카말 알 딘 후세인이 상속을 거부하자 후세인 카밀의 동생 아흐메드 푸아드가 푸아드 1세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명예로운 평화가 맺어지며 이집트는 이제 약화된 영국 영향권의 일부로 남았습니다. 이는 이집트 대중의 분노를 고조시켰고 1925년 대영제국의 몰락의 와중에 폭력사태로 터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는 이집트 혁명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푸아드 1세는 혁명에서 사람들을 지휘하며 그의 정통성을 입증했습니다. 혁명은 다분히 민족주의적인 것이었고 자연스레 모든 계층, 신앙, 직업의 이집트인들을 연합시켜서 영국계 외국인들을 한번에 몽땅 몰아냈습니다. 혁명은 또한 이집트가 독일의 것을 모델로 하는 의회를 구성하게 했습니다.혁명의 혼란 가운데 독일수에즈 운하를 접수했고 이집트는 독일 제국과의 분쟁을 피하기 위해 마지못해 이를 승인했습니다.

혁명 이래로 현재 이상으로 나가서 군주제를 진정한 입헌군주제로 만드려는 자유주의자들과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보수주의자 가운데 갈등이 있어왔습니다. 게다가 1936년이 오면서 왕위를 위해 양육된 계승자 젊은 파루크에게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오스만 제국이 위축되면서 모든 정치적 정당의 구성원들은 이집트의 패권의 부활과 오스만으로부터 자유로운 중동이라는 꿈에 주목하고 계획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운명의 주인이 될 것이다!"

  • 정부
    0% 이집트 마르크스주의기구
    0% 이집트 사회당
    0% 전국노동자해방위원회
    3% 이집트 사회민주당
    12% 자유입헌당
    25%와프드당
    35%와타니당
    15% 이티하드당
    10% 알라위야 왕조
    0% 국민이슬람당

  • 국가 정신
    • 농업 경제
      이집트의 경제는 다소 저개발 된 상태이고 대부분 농업 위주입니다. 일부분에서 공업화가 시작되었지만 아직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습니다. 이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러 개혁들이 필요합니다.
      소비재 공장 10%, 생산 효율성 한도 -20%, 공장 생산량 -10%
    • 만연한 문맹
      이집트 농촌 인구의 대부분은 문맹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 개혁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2, 연구 속도 -16.7%
    • 경험 없는 군대
      이집트 장교단은 그들이 강력하게 성장하지 않기를 바랐던 영국과 오스만의 의도대로 다소 경험이 부족합니다. 많은 장교들이 세계대전 이전의 전투 방식에 익숙하고, 이는 군대의 향상에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집트를 근대 국가로 만드려면 군대에도 역시 알맞은 개혁이 필요합니다.
      사단 조직력 -5%, 사단 공격/방어 -10%, 계획 수립 속도 -10%
    • 엘리트층의 토지 소유 Land Owning Elites
      이집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65%의 토지는 겨우 6%에 불과한 엘리트 계층과 귀족들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토지들의 상당수는 과거의 이크타Iqta 제도에서 기인합니다.
      매일 정치력 비용 -0.10, 자원 획득 효율 -5%, 소비재 공장 5%, 안정도 -3%


인구는 어느 정도 있으나 건설 슬롯과 자원은 석유를 제외하면 부족하다. 검은 목요일 극복과 개혁 중점에서는 토지개혁 방법/세속주의vs이슬람주의/아랍어나 콥트어 교육에 투자/영미법vs대륙법vs전제정 등 완료한 중점에 따라 입헌군주국/현상유지/전제군주국으로 갈리며 세속주의에서 국가 정체성을 고대 이집트로 잡았다면 알렉산드리아로 천도하는 이벤트가 뜬다. 1937년 6월 이후 카이로 회담 이벤트가 완료되면 카이로 협약 세력의 맹주가 되어 하위 중점 2개를 마치면 오스만과 전쟁을 벌이게 된다.

오스만의 중동 영토를 이집트와 동맹군이 점령하면 승리하며, 이벤트 선택에 따라 차지한 영토를 아랍 국가[81]와 나누거나 이란과 분할한 뒤에는 에티오피아를 병합하는 중점이 열린다. 만약에 중앙아프리카가 분해됐다면 사리 토후국[82]/하우사[83]/잔지바르[84]를 카이로 협약에 초대할 수 있다. 오스만과 싸우는 중 시리아 반란을 획책할 수 있다.

패배하면 오스만에게 재통합될 수도 있고, 토후국이 될 수도 있는데 토후국이 되면 파루크 1세의 46살 차이나는 사촌형 압바스 2세가 복위한다.[85]

4.4. 네덜란드

1936년의 네덜란드 The Netherlands in 1936

네덜란드는 세계대전 동안 독일 편에 붙자는 논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립을 유지한 유럽의 몇 안되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세계대전이 끝난 후 네덜란드는 경제 호황의 혜택을 맛보았지만, 경제의 상당 부분이 독일 회사의 대규모 투자와 함께 독일인의 손에 놓여 있습니다. 게다가 1920년대에 프랑스가 무너지고 영국이 생디칼리슴에 물들어버리면서 좌익 사상이 네덜란드에서 크게 관심을 끌고 있으며 반동적인 사상에도 점점 탄력이 붙고 있습니다. 국제적 긴장도가 높아지고 경제 번영이 끝나면서 네덜란드의 민주주의는 확실히 시험받을 것입니다.

"여왕 폐하 만세! Leve de Koningin!"

  • 정부
    2% 애국당
    1% 전국노동사무국
    6% 혁명사회노동당
    20%사회민주노동당
    6% 자유민주연맹
    4% 자유국가당
    54%반혁명당
    2% 군사평의회
    5% 국가재건연합
    0% 국가재건연합 극단주의자

  • 국가 정신
    • 공무원 규제령
      공무원 규제령은 민주주의 가치에 반하는 사상의 성장을 중단하려는 의도로 계획되었으며, 정부 관리들이 어떠한 극좌 또는 극우 성향의 단체에도 가입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안정도 -5%, 전체주의 수용 -15, 생디칼리슴 수용 -15, 급진사회주의 수용 -15, 국민대중주의 수용 -5


1차 대전 동안 중립을 유지해 남쪽의 플란데런-왈로니처럼 독일의 속국이 되진 않았다. 다만 주변국이 모두 독일과 그 속국에 둘러싸여 있다.

v0.6에서 전면적 개편을 받았는데 10개의 정치 사상에 더불어 각 사상이 연립하는 경우까지 중점이 만들어져 가장 방대한 국가 중점을 가지고 있는 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 중점 창이 너무 넓어서 정치 관련 트리는 3개씩 분리해놨을 정도이다. 이러한 방대한 국가중점 트리를 해결한 방법은 Dynamic Focus Tree. 이벤트 등의 디시전 등에 따라 정치관련 포커스 트리가 바뀐다! 즉, 처음에 시작 할 때는 어떠한 디시전도 선택되지 않았으므로 정치트리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이는 미래의 디시전을 미리 맵핑하며 큰 그림을 그리는 플레이가 어렵다는 말도 된다.

사민주의 루트로 갈 경우에는 국왕인 빌헬미나가 새로운 정부를 부정하며, 이에 대한 대답으로 네덜란드의 왕실을 폐지하고 공화국으로 만들 수 있다. 공화국으로 바꾼다고 딱히 큰 단점이 있는 것은 아닌지라 해볼만 하다. 오히려 안정도를 더 준다! 다만 국민대중주의나 후견전제주의 정당들의 캠페인을 가만히 놔두면 안정도나 정당 지지도에 손해가 가므로 유의해야 한다.

사민주의 루트 중간에 생디칼리슴 루트로 빠질 수 있다. 다만 이렇게 되면 정치트리를 모두 끝내는데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리게 되며, 외교 트리를 언락하는데 지나치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오죽하면 프랑스 코뮌 vs 독일 제국의 2차 대전이 터진 이후에야 겨우 외교 트리의 첫번째 중점을 찍는 경우가 허다하다.

4.5. 페르시아

이란 소개 Introduction of Iran

지난 수십 년간, 이란은 끊임없는 변화와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러시아와 영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쟁취했고,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자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변방의 작은 시골에서 테헤란과 같은 대도시까지 국가 전역의 민중들의 생각은 각기 다릅니다. 불과 몇 년 전, 한 사회주의자가 샤를 저격했습니다. 비록 샤는 목숨을 건졌지만, 그의 건강은 날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샤의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고 국가가 휘청거리고 있으며, 국가 내의 이념의 골이 분쟁으로 번지려 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자들은 공화국을 세우려 하고 있으며, 군주주의자들은 샤의 형제인 하산 미르자를 왕위에 올리려 하고 있으며, 사회주의자들은 중동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려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되든 평화롭게만 되길 기원합니다...

우리 군대의 상태 또한 난장판이며, 우리나라는 수백만을 죽인 기근에서 아직 회복하는 중입니다. 그뿐 아니라, 부패한 귀족들이 정치계를 주름잡고 있으며, 정치계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나, 우리가 성공적으로 그 문제들을 해결하면 우리는 중동에서 가장 위대한 제국이 될 것입니다.

"페르시아는 강해질 것이다!"

  • 정부
    0% 이란 사회주의당
    0% 이란 생디칼리스트당
    9% 에달라트당
    41%민주당
    2% Hezab Eetedaliun
    2% 타자도드당
    4% Hezb Eslah Talaban
    26%칸데인 카자르
    14% 칸데인 카자르
    2% 범이란주의당

  • 국가 정신
    • 정치적 위기
      정치적으로 우리나라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모든 파벌들이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국적으로 사회주의 위협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큰 비극이 일어난다면, 현 통치에 도전하는 많은 파벌들이 생겨날 것이고, 내전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안정도 -20%
    • 비체계적인 군대
      우리 군이 사용하는 구식의 전략과 전술은 군의 조직 붕괴와 혁신 부족의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사단 조직력 -15%, 계획 수립 속도 -10%, 육군 교리 연구 속도 -40%
    • 오래된 기근
      이란의 많은 지역들에서 식량 부족 현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40%, 소비재 공장 5%, 건설 속도 -10%
    • 부패한 귀족
      우리 정치체계는 부패로 점철되어 있고, 권력은 소수의 부유한 귀족들이 잡고 있습니다.
      일일 정치력 -0.3
    • 통제할 수 없는 칸
      우리 땅에는 많은 칸과 부족장들이 있으며, 주민들을 강도처럼 통치하고 있습니다.
      소비재 공장 5%, 전쟁 지지도 -10%
    • 문맹인 대중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어떤 형태의 교육도 받지 못했고, 대중은 무지하고 무식합니다.
      연구 속도 -16.70%


1차 대전과 영국 혁명으로 페르시아를 압박하던 영국과 러시아가 동시에 망하면서 카자르 왕조가 입헌군주정의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샤가 사망하면 샤의 동생인 하산 미르자 카자르가 집권해 의회를 폐지하고 전제군주정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여기서 미르자와 그 충성파의 선택에 따라 전제군주정, 입헌군주정, 자유주의 공화정, 사회주의 공화정 중 하나의 체제로 결정된다.

선택에 따라 이벤트로 내전이 일어나는데 공장을 망가뜨리거나 안정도 정치력을 빼앗는다.

내전없이 원하는 루트를 가는 방법이 있으니 참고.

  1. 전제군주정: 미르자가 페르시아에서 도망가는 선택지를 고르고, 국회로 충성파가 몰려간다면 형성할 수 있다.

2.입헌군주정: 3가지 방법이 있는데 샤의 동생인 하산 미르자 카자르를 옹립하는 방법 2가지, 하산의 아들 하미르 미르자 카자르를 옹립하는 방법 1가지이다. 3가지 방법 모두 미르자가 페르시아에 남아야 한다.
2-1. 미르자가 남고 충성파가 요중치를 확보하는 선택지를 고르면, 안전을 확보하는 행동을 할지 묻는다. 안전을 확보하는 선택지를 고르면 된다
2-2. 미르자가 남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지를 고르면 된다
2-3. 미르자의 아들 하미르 미르자 카자르를 옹립하려면 미르자가 페르시아에 남고 국회에 충성파를 보낸 뒤 암살을 결정하는 이벤트에서 미르자를 암살하고 반대파와 협상하면 된다.

3.혁명루트 샤를 쫓아내면 민주주의 공화정으로 갈지 사회주의 공화정으로 갈지 결정한다
3-1. 미르자가 남은상태에서 충성파를 요중치로 보내고 안전확보 선택지를 무시한다
3-2. 미르자가 도망가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충성파가 자멸하고 공화정이 된다

4.6. 독일령 동아시아

동방의 진주 Pearl of the Orient

1926년 대영제국의 붕괴 이후, 황립해군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태평양의 주인, 그리고 동양의 지배자이자 서양의 수호자가 되었습니다. 본국의 혁명을 결정적으로 중국의 영국령 식민지 당국이 오스트랄라시아로 철수한 이후, 남은 이들은 오로지 독일의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되면서, 수에즈부터 칭타오까지 이어지는 방대한 식민지 세력권이 비로소 형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위대한 업적은 대가가 있었습니다.

동양에서 우리는 본국에서 분리되어버린 타국 식민지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매우 갑작스럽고 크게 확장하게 되었기에; 우리의 지배권을 순순히 인정하도록 그들의 행정 체계를 복구하거나 완전히 재편성하기에는 너무나 혼란스러웠으며, 되려 우리의 행정 체계까지 위협받을 지경이었습니다. 때문에 독일령 동아시아는 식민지가 아니라, 해당 영토의 개발, 통치, 방어권을 한 명의 대리인에게 위임한 관할령으로 편성되었고 현재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지배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우리를 동양에서 밀어내고 본인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로 굳게 마음먹은 지금, 우리의 용감한 군인들은 공사관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고, 우리의 영광스러운 전함들은 바다를 가로지르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내부적인 문제로 가득 찼던 과거는 아직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위험이 남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으며, 바로 그 때가 되면, 우리가 준비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하는 것이 바로 우리 해군의 의무입니다.

"멋지군! Sehr Gut!"

  • 정부
    0% 동아시아 전체주의당
    0% 인도차이나 생디칼리스트당
    0% 사이공 급진사회주의 결사
    5% 독일 사회민주당
    5% 진보인민당
    5% 국가자유당
    10% 술탄 연맹
    10% 헬무트 파벌
    60%헬무트 파벌
    5% 말라야 국가연맹

  • 국가 정신
    • 식민지 문제
      우리가 지상군으로 모집할 수 있는 인력은 상당히 제한되어있습니다. 외국인 모집은 엄격한 규제와 원주민들의 의지부족으로 인해 우리가 병력을 더 크게 증강시키려는 데 크게 지장을 주고 있습니다.
      징병 가능 인구 5%,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85%
    • 대제독
      독일령 동아시아의 총독이자 동아시아 함대의 대제독인 헬무트 폰 뮈케는 이 지역 내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해군에서의 그의 경험을 이용해 그는 독일 식민지 사업의 선봉이 되었고 막대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해군 교리 연구 속도 +10%
    • 동아시아 일반행정 감사회
      최대 의용군 사단 +3, 소비재 공장 -??%[91]


동남아시아와 태평양 섬들, 중국 조계지를 관리하는 독일의 괴뢰국으로 매우 강한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다. 지도자는 SMS 엠덴의 갑판사관 헬무트 폰 뮈케.

검은 월요일 이후 1년이 채 되지 않아 인도차이나에서 사이공 지역을 중심으로 생디칼리스트들의 반란이 터진다. 이 전쟁은 사실상 카이저라이히 버전 베트남 전쟁으로 독일령 동아시아의 무장 수준이 더 우월하지만 장악한 지역에 각종 사보타주가 일어나고 공격하기에 불리한 지형과 보급 부족에 허덕이며 고생하게 된다. 통킹만까지 빼앗기면 이벤트가 일어나 독일이 결국 발을 빼며 인도차이나 연합이 독립하고 만다.

0.10 Blood on the Yangtze 패치에서 중국과 관련된 컨텐츠가 대거 추가되었다. 중국에 독일 자본이 대거 투자되어있다는 점을 반영해서 친독한간인 팔성연합(남경군벌)을 적극 보호하려고하고 팔성연합이 소유한 영토와 AOG의 지지율에 비례해서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된다.

인도차이나와의 전쟁이 어떻게든 마무리된 이후에는 일본이 이 지역으로 눈독을 들이게 된다. 독일은 본토에서 프랑스를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으니 육지에서는 청나라가 잘 싸워주기를 기대하며 스스로 각 섬을 방어하며 프랑스가 무너져 독일의 지원이 오기를 기다리거나 일본이 무너지거나 청이 무너지며 종전 이벤트가 발생하길 기도해야 한다.

5. El Cóndor Pasa

남미를 중심으로 한 패치. 남미 국가들에 총체적 리워크가 시행되었다.

5.1.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의 지위 Status of Argentina

20세기 초까지 아르헨티나는 육류와 곡물 수출을 바탕으로 급성장하는 경제력을 누렸습니다. 유럽 전역에서 온 이민자들이 공화국으로 몰려들었고, 활발한 기업가 정신과 초기 산업이 아르헨티나를 가장 번영한 국가 중 하나로 빠르게 나아가게 했습니다. 무역 관계는 안정적이었고 영국과 독일로의 수출은 계속해서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세계대전이 들이닥쳤을 때 아르헨티나는 가장 중요한 경제 동맹국인 영국이나 두 번째로 중요한 독일 편을 들지 않으려 하다가 중립국이 되었습니다. 두 나라 사이를 중재하였으나, 영국은 독일과의 무역을 금지하는 제재를 가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제3국을 통해 판매함으로써 이를 우회하려 했지만, 판매 실적은 같지 않았고 세계대전 이전의 기적은 둔화되었습니다.

세계대전의 마지막 해가 다가오면서, 영국은 패전 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 졌고, 아르헨티나 정부와 기업들에게 생산을 늘리고 나라를 최대한 활용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늘어나는 수요와 영국의 착취에 대한 불만으로 노동자들은 조직화하고 저항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무장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상황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었던 아르헨티나 정부의 봉기 통제는 더욱 악화되었고 20세기 중반 아르헨티나는 새롭게 형성된 파타고니아 노동자 전선Frente Obrero Patagonico에 산타 크루스, 추부트, 리오 네그로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했습니다.

뒤이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세 정부는 위기를 해결하는 임무를 맡았지만 연이어 실패했습니다. 통치에 대한 무능력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부루 장군은 1930년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일어섰습니다. 사회주의자와 생디칼리스트 동조자들이 대량 학살당하고 남쪽으로 밀려 가면서 공포의 시대가 전국에 퍼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독재정권은 그가 2년 후 암으로 사망함으로써 권력 공백을 초래하고 다시 한번 남부로의 대규모 개입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선거가 조작되고, 부정 선거를 통해, 로카의 국민자치당이 성공적으로 정권을 잡으면서 우리부루 독재 정권으로부터의 느린 회복과 FOP에 대한 변화된 태도를 유발했습니다. FOP 지역으로의 작은 교전이 시작되고 해군은 성공적으로 티에라델푸에고 섬을 다시 탈환했습니다. 그러나 칠레로부터의 개입은 정부가 승리를 거두는 것을 막고 FOP와의 갈등을 일시적으로 종식시켰습니다.

1935년에 로카가 분쟁을 끝내고 FOP를 남겨두려 한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자, 전국에 걸친 분노가 폭발하면서 마누엘 카를레스 산하의 애국당은 크리스마스 쿠데타로 절정에 이르는데 필요로 하는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해군과 다양한 군사 요소들의 지원을 받은 카를레스는 1935년 크리스마스에 정부를 해체하고 수도권을 장악하고 자신의 국가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1936년 1월 1일의 첫번째 날이 나라에 밝았으나, 카를레스는 여전히 아직 확실한 성공을 하지 못한 채 쿠데타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수도권과 작은 내륙 지방을 제외하고, 그의 통제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ARA 또는 '아르헨티나 무적함대'의 지원은 보장되지만, 군대의 많은 사령관들은 카를레스의 잠재력을 의심하며 쿠데타를 진압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주 좋아."

  • 정부
    0% 전체주의, 노동, 절제
    0% 인터내셔널
    4% 사회당
    7% 민주진보당
    15% 급진시민연합
    12% 민주국민당
    9% 반개인주의적 급진시민연합
    18% 6월의 해방자들
    8% 정의당
    27%애국당

  • 국가 정신
    • 군부 경쟁 - 해군 지배
      어느 한쪽에 너무 많은 영향력을 갖게 하는 것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고 심지어 군사 쿠데타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공장 생산량 -5%, 조선소 생산량 +10%, 계획 수립 속도 -10%, 군수공장 건설 속도 -20%, 조선소 건설 속도 +20%, 육군 교리 연구 속도 -10%, 해군 교리 연구 속도 +10%
      국가적 중점과 이벤트를 통해 육군이나 해군을 강화시킬 수 있다.
    • 군대 파벌
      사단 조직력 -10%, 사단 회복률 -10%, 육군 교리 연구 속도 -10%
      국가적 중점 군대 파벌 근절로 제거됨
    • 크리스마스 쿠데타의 문제
      작년 크리스마스 기념 행사 직후 마누엘 카를레스와 애국당에 의해 혼란에 빠진 아르헨티나는 대통령직을 장악하기 위해 경쟁하는 여러 군대와 함께 무정부 상태에 빠져 들었습니다.
      사단 조직력 -90%,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60% 사단 회복률 -90%
      국가적 중점 완전한 정치적 지배로 제거됨


영국계 기업들의 지나친 착취로 국가의 남쪽 절반에서 생디칼리스트 반란이 일어나 파타고니아 노동자전선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해버렸다. 서쪽의 칠레 역시 생디칼리스트 국가로 변모해 파타고니아 노동전선을 적극 후원하고 있다. 그와중에 북쪽의 파라과이와 페루는 영토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외교적으로도 고립무원인 상황인데 내부적으로도 1935년 크리스마스, 즉 게임 시작 6일전에 해군 주도의 쿠데타가 일어났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만을 장악했을 뿐이다.

게임을 시작하면 대중주의 계열의 마누엘 카를레스의 쿠데타로 나라가 엉망이다. 초기의 이벤트에서의 선택에 따라 정권을 확고하게 하거나 이를 역으로 뒤집어 버릴 수도 있다. 해군의 쿠데타를 엎은 뒤에는 페드로 파블로 라미레스의 육군이 군정을 유지하거나 민정으로 이양할 수도 있다. 정치가 안정되면 검은 월요일로 엉망이 된 경제를 회복해야 한다.

외교적으로는 우선 남쪽과 서쪽의 사회주의자들이 첫번째 목표다. 37년 12월까지 이쪽 트리를 전혀 밟지 않으면 정권이 다시 무너지게 되고 정치가 다시 어지러워지게 된다. 중점으로 파타고니아 노동자전선과 칠레에 전쟁을 걸면 북쪽의 파라과이가 뒤를 찌른다. 여기서 중점으로 볼리비아를 전쟁에 끌어들여 칠레와 파라과이를 견제할 수 있다. 다만 민주주의가 재건된 상태라면 평화적인 통일이 가능하다.

어찌어찌 삼면전쟁을 끝마치고 남부를 완전히 통합시키면 이제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트리가 열린다. 여기서는 협상국이나 라이히스팍트에 가입할 수도 있고 외부와 완전히 관심 끊고 페루와 '부에노스아이레스-리마 협약'을 결성해 남미의 맹주가 될 수도 있다. 초반에 카를레스가 집권했다면 주변 온 나라들에 전쟁 목표를 생성할 수도 있다.

특이하게도 바닐라의 일본처럼 육군과 해군이 반목하고 있고 중점과 이벤트에 따라 어느 쪽에 집중할지를 결정할 수 있다. 육군이든 해군이든 어느 쪽에 치우쳐 있으면 좋지 못한 이벤트가 나오니 주의.

여담으로 후견전제주의 계열 국가 지도자가 후안 페론인데 권위주의 계열인데 선거로 집권하고 그런 주제에 고유 정치트리는 존재하지 않고 휘하 장관들은 사회주의 계열 소속으로 나오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5.2. 브라질

브라질 연방 공화국 United States of Brazil

영국 혁명과 주요 무역 상대국들의 위기 이후 경제가 붕괴될 때까지 세계대전에서 브라질의 중립성은 나라를 평화롭고 안정되게 유지시켰습니다. 상파울루미나스제라이스 둘 다 1926년 선거 후보들을 각각 창당한 후 선거의 균형이 깨지면서 혼란의 시대는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이후 사건은 큰 위기를 맞이하여, 내전이라고도 불리는 주간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상파울루는 연방 정부에 대항한 전쟁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주앙 페소아 주와 히우그란지두술 주를 주도하는 북부 및 동부 주지사였습니다. 그들은 역사적인 국경 지대로 불균형적으로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지원으로, 제조업과 금전적 이득을 얻었고 연방 해군의 반란과 함께, 전쟁 종식은 반군들의 승리로 끝났고 페르난두 지멜루는 잠시 공화국을 통치하고 현행 헌법으로 개정한 보르게스 지메데이로스의 편을 들어 사임했습니다. 그 이후로, 공화국은 여러 가지 면에서, 특히 경제적으로 변화해 왔고, 두 대통령이 민주적으로 선출됨에 따라 여러 가지 면에서 번영해 왔습니다. 그러나 1936년 선거가 다가옴에 따라 생디칼리스트, 아나키스트, 통일주의자들이 계속해서 거리 싸움에 참여하고 정치인들의 미사여구가 분열되고 선동적이 되면서 정치적 급진주의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지배와 진보에는 대가가 따른다."

  • 정부
    3% 국민최대주의 운동
    3% 브라질 생디칼리스트당
    4% 노동총연맹-브라질 아나키스트 연맹
    13% 좌익민주당
    13% 자유당
    8% 자유민주당
    33%공화당
    7% 연방의회당
    3% 국가노동당
    13% 브라질 통일주의 행동당

  • 국가 정신
    • 선거 연도의 긴장감
      아마도 브라질 역사상 가장 폭력적이고 논쟁이 많은 선거를 준비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대화는 열띤 논쟁과 거의 동의어이며 이념적 극단주의의 분위기가 국가의 대중을 둘러싸고 나타나고 있습니다.
      매일 정치력 비용 +0.20
    • 극단적인 지방 분권화
      브라질 연방 공화국은 자국의 자치권을 항상 소중히 여겨왔습니다. 각자가 자신의 대통령, 자신의 정당, 그리고 자신의 군대를 가지고 있으며, 국민들은 이러한 지역 권리를 위해 기꺼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약하고 이빨 빠진 중앙 정부로 귀결되는데, 이것은 필요할 때 결단력 있게 행동하게 할 수 없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05, 안정도 -20%
    • 전쟁의 흔적
      내전만큼 회복에 오래 걸리는 상처는 거의 없습니다. 미나스 제라이스의 군대가 상파울루에 침입한 후 정치적 과두 정부와 지역 정체성 사이의 긴장이 마침내 전쟁터로 쏟아져 나감에 따라, 전쟁은 수천 명의 사망자와 더 많은 고아와 노숙자를 남겼습니다. 중앙 정부가 하려고 하는 어떤 행동들은 현재 엄청난 불신으로 보여지고 있고, 리우와 상파울루 사이의 국경에 야기된 완전한 피해는 아직 완전히 복구되지 않았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05, 항복 한계치 -30%, 전쟁 지지도 -15%, 전쟁 목표를 정당화하는 시간 +50%
    • 분열된 군대
      브라질의 군대는, 간단히 말해서,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소위 '연방군'으로 불리는 26개 주의 민병대로 이루어진 군집단이고, 브라질의 해군이 실제 연방 정부 산하의 군대의 거의 유일한 무기입니다. 이 거대하며 고풍스럽게 조직된 병력은 훈련과 장비 모두에서 질적으로 매우 다르며, 어떤 면에서도 현대 전투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사단 조직력 -20%, 계획 수립 속도 -10%


세계대전에서 끝까지 중립을 지켰지만 이후 미국발 불황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져서 내전까지 일어났다. 내전은 금방 끝났지만 내전에서 회복하는 과정에서 분권화가 너무 심하게 되어 연방정부의 권한이 약화되어 여러 부작용들을 겪고 있다.

1936년의 대선에서는 사회보수주의, 사회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 국민대중주의 중에 대통령이 결정된다. 이중 사회자유주의를 제외하면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이벤트가 발생할 수 있다.

사회보수주의에서는 제툴리우 바르가스가 집권하게 된다. 집권 초반에는 무난한 모습을 보이지만 여러 이벤트에서의 선택지에 따라 후견전제주의로 전환하며 독재정권이 수립된다. 선거는 일어나지만 후보는 제툴리우 바르가스 한 명 뿐이다.

사회민주주의에서는 칠레인들과 관련된 이벤트가 일어나며 선택지에 따라 생디칼리스트들이 집권하게 된다. 후속 이벤트에 따라 전체주의, 생디칼리슴, 급진사회주의의 3가지 사상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국민대중주의 계열로 가면 구스타보 도트 바로소가 페드루 3세를 데려와 제정을 복고하며 브라질 제국이 부활하게 된다. 이때는 문화적, 인종적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포르투갈이나 아프리카 국가들과 친선관계를 맺게 된다.

독재정권이건 사회주의건 제정복고건 어떤 식으로든 민주주의가 무너지면 휘하의 주 정부에서 이에 반발해 내전이 일으키기도 한다. 내전이 연방정부의 승리로 끝나면 정권이 유지되지만 반군이 승리한다면 민주주의 체제로 복귀하게 된다. 내전이 한 지방에서 일어나는게 아니라 두세 지방이 동시다발적으로 봉기하기 때문에 금방 진압하기는 힘든편. 다른 남미 국가들은 밥먹듯이 쿠데타가 일어나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반면 브라질은 이런 거름망이 있어서 나중에 가면 남미의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도 한다.

외교적으로는 디시전으로 협상국, 라이히스팍트, 인터내셔널에 가입할 수 있고 아르헨티나가 파타고니아 노동자전선에 무너져 적화되어 아르헨티나 코뮌이 설립되면 이에 예방전쟁을 실행할 수도 있다.

다른 국가가 브라질을 정복하면 브라질에 통째로 괴뢰 정권을 세울 수도 있고 연방을 해체하고 각 주 정부를 7개국으로 분할시킬 수도 있다.

5.3. 칠레

1936년 칠레 Chile in 1936

1879년부터 1883년까지의 초석 전쟁으로 칠레는 페루에서 타라파카와 아리카 지역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볼리비아의 해안지역인 안토파가스타를 획득하였으며, 그 후 거대한 구리 광산을 지배하고 초석의 세계 무역을 독점했습니다. 경제 번영이 시작되었으며, 이는 세계 대전 초기에 초석의 수요가 높았기에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쟁 동안 인공적으로 초석을 생산하기 위해 고안된 화학 공정으로 칠레의 퇴적물은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인구 증가와 함께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사회 위기가 증가했습니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특히 1931년 칠레가 파산한 후 카를로스 이바녜스 델 캄포의 비참한 통치 하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얻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바녜스는 물러났고 해군과 대부분의 육군이 반란을 일으켰으며, 인민들의 지지와 오랜기간 동안 망명했던 마르마두케 그로베가 브리튼 연방에서 이끌어 온 증원의 도착과 함께, 칠레 생디칼리슴 공화국이 선언되었습니다. 최소한 명목상으로는 아르투로 푸가가 이끈 1대 의회 하에서의 5년간의 재건 후, 공화국 경제는 크게 회복되었고, 군사적인 축적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수사가 점점 공격적으로 바뀌면서, 대양을 가로지르면서 두 혁명을 경험한 베테랑 군인이자 존경받는 마르마두케 그로베가 공화국을 재건하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칠레 국민들이 생디칼리슴 지도자들만큼 미래에 대해 희망적이지는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간에 생디칼리슴의 빛이 우리를 미래로 이끌 것이다."

  • 정부
    10% 영구혁명당
    47%칠레 생디칼리슴당
    12% 국민사회주의연합
    8% 칼레 협약
    2% 자유당
    0% 급진당
    2% 민중해방연합
    5% 공화운동
    5% 급진공화당
    9% 무신론자와 배신자에 대한 장교위원회

  • 국가 정신
    • 남아메리카 생디칼리슴의 본고장
      1931년 혁명 이후, 산티아고는 남아메리카에서 생디칼리슴의 중심지로 남아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반동분자들에 대항하여 그들의 이념을 옹호하며 기꺼이 죽을 것입니다.
      징병 가능 인구 1%, 사단의 핵심 영토 공격/방어력 +5%/+10%

  • 괴뢰국
    • 파타고니아 노동자전선 (자치 괴뢰국)


남미 생디칼리슴 국가의 맹주. 아르헨티나에서 분리된 파타고니아를 속국으로 두고 있다. 1938년 이전에 아르헨티나에서 선전포고를 해오게 된다. 이때 볼리비아는 칠레 측으로, 파라과이는 아르헨티나 측으로 전쟁에 참가한다.

칠레-아르헨티나 전쟁에서 이기면 파타고니아가 아르헨티나의 영토를 모두 점령하고 아르헨티나 코뮌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해 나간다. 독립을 거부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되면 당연히 전쟁. 이후에는 1940년쯤에 선거를 치르고 나서 인터내셔널에 가입하게 된다.

칠레-아르헨티나 전쟁에서 밀리거나 1940년의 선거에서 전체주의가 집권하면 보수적인 장군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부가 뒤집힌다. 전쟁중이었다면 전쟁은 아르헨티나의 승리로 처리되고 파타고니아는 아르헨티나의 손으로 넘어간다. 이후에는 민정으로 이행할 수도 있고 군정을 유지할 수도 있다.

5.4. 파라과이

파라과이 공화국

3국 동맹의 파괴적인 전쟁 후에, 파라과이는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지고 깨졌습니다. 파라과이는 대부분의 남성 인구가 죽고 고아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모두 과라니 공화국의 영토를 빼앗았으나 양국 간의 완충국으로서의 주권을 효과적으로 유지했기 때문에 극심한 인구 및 경제적 피해가 피해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그 재난을 복구하고 회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정치적 불안은 여전히 나라를 부식시켰습니다. 1904년, 콜로라도당의 통치에 반대하는 자유주의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자유당 통치는 1922년 경쟁 관계에 있는 정당간의 내전으로 정점을 찍은 정치적 불안의 시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29년 말에, 전쟁은 다시 볼리비아와 손을 잡고 파라과이에 왔습니다. 차코 지역의 유정을 확보하라는 경제적인 압력을 받고 있는 그 나라는 분쟁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차코 전쟁은 4년이 걸렸고, 1933년까지 파라과이는 볼리비아 군대를 완전히 격파하고 그들의 땅을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늘어나는 부채와 군비가 정부에게 계속 부담이 되고 있기 때문에, 전쟁의 승리는 비용 없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볼리비아군은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전투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사기도 낮아 파라과이의 사상자는 훨씬 적었습니다. 그러나 정국은 나아지지 않았고 자유주의 통치는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라파엘 프랑코와 다른 급진 지도자들은 1934년 좌파 권위주의 원칙에 따라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차코 전쟁의 영웅 호세 펠릭스 에스티가리비아에 의해 3개월이라는 짧은 통치로 물러났습니다. 이제, 자유주의 혼란의 시대는 끝났고, 호세 펠릭스의 통치는 위대한 평화로써의 하나입니다. 그가 '생디칼리스트' 프랑코와 볼리비아의 침략자들에 대한 그의 행동은, 거의 만장일치로 국가 구세주이자 영웅으로 칭송 받고 있기 때문에,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아르헨티나 애국당의 부상과 함께, 에스티가리비아와 그의 내각은 다시 초긴장 상태에 빠졌습니다. 마누엘 카를레스가 그 나라의 지도부에 오르자 그의 팽창주의 목표를 숨기려 하지 않기 때문에, 곧 파라과이에 다시 한번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새로운 공화국에 평화와 정의를 가져다주었다."

  • 정부
    1% 파라과이 아브릴스타당
    6% 파라과이 생디칼리스트당
    8% 파라과이 아나코-사회주의 연합
    2% 국민독립연맹
    10% 푸른당
    6% 국민정통자유당
    5% 콜로라도당
    56%에스티가리비아 국민자유당
    2% 파라과이당
    4% 독립수비대연맹

  • 국가 정신
    • 군인 연금
      공장 생산량 -5%
    • 군부 영향력
      징병 가능 인구 5%, 사단 회복률 +5%, 공장 생산량 -5%


차코전쟁에서 승리했으며 그 전리품으로 배상금과 영토를 얻어냈다. 현 대통령은 차코전쟁의 영웅 호세 펠릭스 에스티가리비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시작하자마자 검은 월요일이 터지고 이를 회복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1937년 중반쯤 아르헨티나가 통일을 외치며 칠레, 파타고니아에 선전포고하며 전쟁이 벌어지는데 이때 아르헨티나의 뒤통수를 칠지 가만히 있을지를 결정하게 된다. 아르헨티나에 전쟁을 걸게 된다면 볼리비아가 차코 전쟁의 복수를 외치며 남하하기도 한다. 아르헨티나가 병력의 수와 질에서 모두 앞서지만 상대해야하는 전선의 너비가 매우 넓으니 지형을 이용해 방어하다가 AI의 빈틈을 찔러 사단을 포위 섬멸하는 방식으로 나가야 한다. 파라과이가 함께 전쟁을 걸어 양면전선이 되었다면 난이도는 더욱 상승한다. 칠레와 파타고니아가 아르헨티나를 잘 싸우기를 기도하자.

나라가 망하지 않고 1941년이 되었다면 선거가 개최되고 에스티가리비아 대통령이 연임할지(권위민주주의), 정권이 교체될지(사회보수주의) 선택하게 된다. 매우 맞추기 어려운 조건으로 1938년에 평화상태이고 검은 월요일 해결 중점 중에 붙는 디버프 국가정신을 떼지 못한다면 감소된 연금에 불만을 품은 군부에서 쿠데타를 일으킨다. 우파 군인들이 일으킬 경우 국민대중주의, 좌파 군인들이 일으킬 경우 전체주의 정권이 세워지게 된다.

5.5. 페루

1936년의 페루

페루는 1821년부터 사실상 독립상태였지만 스페인 정부는 1871년 친차제도를 둘러싼 충돌로 인해 양국간 평화상태가 깨진 이후에야 식민지의 자치권을 인정했습니다. 이후 페루는 볼리비아와 동맹을 맺은 이유로 1879년부터 1883년까지 이어진 아타카마 사막에서 벌어진 볼리비아와 칠레간 국경분쟁에 참전했습니다. 이 전쟁으로 페루는 타라파카, 아리카, 타크나 지역을 잃었습니다. 때를 틈타 영국과 미국의 자본가들이 페루의 채무를 없애주는 조건으로 약화된 페루 국영 철도를 가져갔습니다. 세계대전 이후, 1919년 아우구스토 레기아의 쿠데타가 페루의 민주주의를 공격했습니다. 1924년 멕시코에서 아메리카 혁명인민동맹이 결성되었을 때쯤, 레기아 정권은 1925년 월 스트리트 대폭락이라는 거대한 위협에 직면했습니다. 11개월동안 계속된 개혁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APRA의 지원을 받은 노동자들의 폭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폭동이 사회주의 혁명으로 연결될 것을 우려한 군대가 사태에 개입하였고, 루이스 산체스 세로 중령이 레기아 정권을 전복시켰습니다. 4개월 후 레기아는 페루 국가에 대한 각종 범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사형당했습니다. 처음에는 세로 정권의 지지율이 낮았으나, 1929년에서 1930년 사이에 있던 사건으로 인해 인기가 크게 올랐습니다. 폭동을 진압하고 콜롬비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슬프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연설을 하던 세로를 한 폭도가 총으로 쏘아 죽였습니다. 동시에 그가 이끌던 혁명연맹이 혼란에 빠졌고 온건파였던 오스카 베나비데스가 페루 안정을 위해 연합 정부를 구성하기 시작했습니다. 혁명연맹이 재기를 준비하는 한편, 민주 정당이 끊임없이 선거 로비를 벌이고 APRA 세력이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페루에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어떤 미래가 다가오든, 우리는 준비되어 있다."

  • 정부
    4% 혁명인민동맹 투팍주의파
    7% 아메리카 혁명인민동맹
    1% 혁명인민동맹 급진파
    4% 사회민주당
    6% 민주운동
    8% 민주운동
    12% 신국민협약
    40%헌법회의
    10% 군 강경파
    8% 혁명연맹

  • 국가 정신
    • 몰락한 카우디요
      레티시아 전투의 승리를 이끈 자이자 사회주의로부터 우리를 지켜낸 구원자인 산체스 세로가 우리의 남부 고토를 되찾기도 전에 APRA에 의해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의 기억과 이상은 그가 몸담았던 혁명연맹이 이어받을 것입니다.
      전쟁 지지도 +10%
    • 급진화된 APRA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20%, 안정도 -10%
    • 몬토네라 경비대
      칠레가 생디칼리스트 혁명으로 몰락한 이후 태평양전쟁의 아레키파인 참전용사와 그 아들들이 생디칼리스트의 침입을 막고 난민을 돕기 위해 무장 국경 순찰대를 설립했습니다.
      칠레 : 타국에 대한 방어 혜택 +15%


5.6. 베네수엘라

세계에서의 베네수엘라의 위치

1830년 베네수엘라가 그란 콜롬비아에서 분리된 후, 베네수엘라는 1864년 이 나라가 연방화되기 전까지 보수와 진보 사이의 수많은 내전으로 흔들렸습니다. 베네수엘라는 여러 간헐적인 군사 정부와 민간 정부를 통해 계속해서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이것을 변화시킨 것은 1908년 석유 매장지 발견과 후안 비센테 '메기' 고메스 장군의 쿠데타입니다. 고메스 정권 하에서 석유 산업은 국가의 경제적 토대가 되었고, 비록 석유에 완전히 의존하게 되었지만, 세계대전 속에서 중립을 지키고 국가의 부채를 줄이는 등,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유지하였기에 메기 정권은 오래 지속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미국의 개입으로 대영제국은 베네수엘라에서 물러났으나 베네수엘라는 에세키보 강 주장의 추진을 실패하였고, 그는 1928년 영국에 대한 '배상금' 문제로 물의를 일으켜 사임했고, 선거 이후 1926년 세대의 민주 정부를 구성했습니다. 하지만 1936년까지, 26세대 정부는 3당 사이에서 심하게 분열되었습니다. 민주운동당은 현재 정권을 잡고 있지만, 민주공화연합에 있는 이전의 자유주의 동맹들이 힘을 얻고 있으며 인터내셔널을 지지하고 있는 베네수엘라 사회당은 반자본주의 의견을 계속하여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는 이 지역에서 비교적 안정적이고 민주적인 몇 안 되는 나라들 중 하나이지만, 전 세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이 나라의 초기 민주주의를 쉽게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흥미로운 시대에 살고 있군."

  • 정부
    0% 좌익혁명사회전체주의운동
    8% 베네수엘라 사회당
    2% 좌익혁명조합
    33%민주운동당
    24%민주공화연합
    12% 기독교 사회당
    9% 독립선거관리위원회
    5% 임시정부
    5% 베네수엘라 국가회의
    2% 국가해방운동

  • 국가 정신
    • 석유 중독
      베네수엘라는 절망적으로 검은 황금, 석유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석유는 이 나라 경제의 중심이자 부의 원천입니다. 다른 산업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에게 이익은 거의 없기 때문에, 국가는 네덜란드병에 취약합니다.
      군수 공장/민간 공장 건설 속도 -10%
    • 외국 석유 회사의 지배
      국내 유정의 대부분은 스탠더드 오일과 로열 더치 쉘의 후임자들인 외국 회사들의 손아귀에 있습니다. 그들이 창출하는 재산의 일부분은 결코 우리 국민들의 손에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력 획득 -20%, 시장으로 가는 자원량 +10%


5.7. 네덜란드령 동인도

1936년 동인도 제도

1925년 생디칼리슴 폭동이 없었다면 네덜란드 제국이 가진 '왕관의 보석'은 안정의 횃불이 되었을 것이고, 네덜란드가 새로운 시장에 상품 (설탕, 커피, 석유)를 판매하기 위해 미텔오이로파와 가까워진 덕에 이익을 보았을 것입니다. 현재 제대로 다시 강화된 독일의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제 성장은 그럭저럭 이어졌으며 안정도 같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뿐만은 아닙니다. 네덜란드 정부는 동쪽의 땅de oost 없이는 네덜란드가 살아남을 수 없다 믿으며 어떠한 독립에 관한 요구도 묵살했고, 사람들의 독립 열망은 점점 거세지고 있습니다. 식민지 정부의 많은 사람들은 경제가 침체된다면 1925년이 반복되거나 더 나빠질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뭐, 불경기가 올 것 같지는 않군!"

  • 정부
    0% 전체주의
    0% 생디칼리슴
    0% 급진사회주의
    0% 사민노동당
    3% 자유민주연합
    7% 자유당
    4% 기독국민동맹
    57%네덜란드 동인도 협의회
    29%국가통일위원회
    0% 국민대중주의

  • 국가 정신
    • 식민 정부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90%, 네덜란드 : 목표 국가의 민간 산업 +50%
    • 독립 열망 단결도: 낮음
    • 독립 운동 수준: 매우 낮음


5.8. 그리스

헬레닉 제4공화국 The Fourth Hellenic Republic

세계 대전에서 그리스가 패배한 이래로 대변동과 고난이 닥쳐왔습니다. 마케도니아를 테살로니카 조약으로 상실함과 동시에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인한 엄청난 전쟁 채무에 의해서 알렉산도로스 왕은 망명을 떠나야했고, 그 뒤에 제 3공화국이 수립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실패로 인하여 1925년 요르요스 콘딜리스의 쿠데타가 일어났고, 그는 왕이 망명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영구적인 그리스 왕국의 섭정으로 선언했습니다. 콘딜리스는 1931년에 최종적으로 권좌에서 쫓겨나 처형당했습니다. 그리고 제 4공화국이 수립되었고, 요르요스 파판드레우가 이끄는 연정이 일단 첫 번째 선거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잡은 상태입니다.

"빌어먹을!"

  • 정부
    2% 그리스 민족해방전선
    0% 그리스 사회노동당
    5% 농민민주전선
    14% 민족통일당
    36%신자유연맹
    10% 자유당
    21%인민당
    6% 신국가운동
    5% 자유사상가당
    1% 그리스 국민연합

  • 국가 정신
    • 독일에 의해 장악된 산업
      처참한 1차 대전의 종료 이후 만들어진 믿겨지지 않는 전쟁 부채 덕분에, 콘스탄티노스 왕은 독일인 투자자들이 규제 없이 그리스 경제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 산업의 절반 정도를 외국인 투자자와 은행의 소유로 넘어갔으며, 그들에게는 그리스의 이익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매일 정치력 비용 +0.15, 소비재 공장 10%, 독일 제국 : 종주국과의 추가 무역 +30%, 독일 제국 : 목표 국가 무역비용 -50%
    • 오스트리아에 의해 장악된 산업
      처참한 1차 대전의 종료 이후 만들어진 믿겨지지 않는 전쟁 부채 덕분에, 콘스탄티노스 왕은 독일인 투자자들이 규제 없이 그리스 경제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 산업의 절반 정도를 외국인 투자자와 은행의 소유로 넘어갔으며, 그들에게는 그리스의 이익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매일 정치력 비용 +0.10, 소비재 공장 5%, 오스트리아 제국 : 종주국과의 추가 무역 +20%, 오스트리아 제국 : 목표 국가 무역비용 -40%
    • 왕에 대한 기억
      그리스 왕정이 10년간의 군부 독재가 종식된 이후 폐지되었지만, 우리 국민 사이에서는 군주제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며, 이들이 우리 국가의 불안을 유발 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안정도 -10%
    • 알렉산드로스의 유산
      그리스 시민들은 전쟁에 익숙합니다. 그리고 그 어떠한 것도 그들이 힘들게 이룩한 독립을 다시 뒤집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10%, 사단의 핵심 영토 방어력 +10%, 충원률 +5%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국왕 알렉산드로스 2세가 퇴위하고 왕정이 붕괴한 후, 차례대로 공화정, 군사정권, 공화정이 들어서 게임 시작 시점에서는 그리스 공화국인 상태로 시작한다.

초반에는 크게 신경써야 할 부분이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유럽 국가가 다 그렇듯 검은 월요일을 회복하는 것이고, 둘째는 베오그라드 조약, 셋째는 정치 체제를 결정하는 것이다.

검은 월요일은 중점을 찍다 보면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자산을 몰수하는 이벤트가 뜬다. 아예 몰수하고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침묵하는 선택지를 고르면 좋겠지만 확률은 랜덤이다. 몰수를 단행하면 라이히스팍트는 들어갈 수 없고, 오스트리아가 제재를 단행하지 않았으면 도나우-아드리아 연맹에 가입할 수 있다.
37년이 되면 세르비아가 베오그라드 협약을 창설한다. 베오그라드 협약은 가능한 가입해 불가리아와 알바니아로부터 영유권 지역들을 되찾아야 한다. 전쟁이 끝나면 곧바로 조약을 탈퇴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을 피할 수도 있다. 정치 체제는 왕정복고 트리와 공화정 유지 트리로 나뉜다. 게임 시작부터 여러 개의 이벤트가 나오는데, 이벤트 선택지에 따라 왕정복고파의 지지율을 올리거나 낮출 수 있다. 계속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1938년 선거로 왕정 복고와 공화정 유지를 결정할 수 있다. 왕정을 복고할 시에는 입헌군주스러운 알렉산드로스 2세를 다시 왕위에 올릴지, 보다 전제군주스러운 요르요스 2세를 올릴지 결정해야 한다. 공화정을 유지할 시에는 생디칼리슴, 대중주의, 민주주의 등의 성향을 가진 정당 중 한 정당을 여당으로 선택할 수 있다. 참고로 38년 국민 투표에서 투표조작을 할 수도 있는데, 일정 확률로 부정선거가 발각되어서 그로 인해 내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리고 독재체제를 유지하거나 사회주의 정당을 금지하면 생디칼리스트들이 내전을 일으키고, 반대로 생디칼리스트 세력이 집권을 하게 되면 우파 세력이 내전을 이르키게 된다. 무난한 방법은 착하게 부정선거를 하지 말고, 왕정 트리에서는 독재로 가지 말며, 생디칼리스트 정당을 금지시키지 않으면서 선거에서는 무난한 중도 자유주의/보수주의/사민주의 정당을 선택하는 것이다.

중반, 대략 불가리아와의 전쟁을 시작할 때쯤 되면 고토를 수복할 기회가 주어진다. 전쟁 포커스 트리가 열리는 것인데, 이 중점을 따라가다 보면 바로 트라키와 콘스탄티노플, 서부 아나톨리아를 수복한다는 메갈리 이데아 트리가 열린다. 메갈리 이데아와 배타적인 오스만과 친하게 지내는 트리도 있지만 플레이어로서는 이점이 거의 없다. 메갈리 이데아 트리를 찍고 오스만 제국을 공격하는 방향으로 계속 포커스를 찍으면 오스만 제국을 공격할 수 있는 디시전이 활성화된다. 디시전을 누르고 60일을 기다리면 선전포고가 되는데 대략 1938년인 이 시기면 오스만 제국이 카이로 조약과 한창 치고 박고 있으므로 아나톨리아와 콘스탄티노플은 빈집상태나 다름 없다. 빈집털이 후 카이로 조약과 오스만 제국을 분할하고 평화조약을 맺으면 구 오스만 영토와 관련된 디시전이 또 다시 활성화된다. 콘스탄티노플, 트라키, 프루사, 스미르니, 에게 해 군도, 키프로스 섬만 점령하고 나머지는 종속국 터키로 해방하거나 터키 영토 전체를 군사점령하는 선택지가 있다. 이후 디시전을 통해 클레임 지역인 마케도니아, 콘스탄티노플, 남부 알바니아 등지에 코어를 박을 수 있다. (마케도니아 같은 구 불가리아령 영토는 오스만과의 전쟁 이전에도 코어 박기 디시전이 활성화되어있다) 코어 박기도 그렇고 그리스 자체가 정치력이 상당히 많이 필요한 국가지만 포커스로 정치력을 왕창 퍼주니 혹시 코어를 못 박을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와 동시에 협상국, 라이히스팍트, 인터내셔널 진영에 참여하는 디시전도 있는데, 웬만하면 협상국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 지중해 제해권을 대개 협상국이 잡기 때문. 협상국이 아닌 다른 진영을 했다가 그리스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을 맞닥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간혹 러시아가 기껏 터키로부터 되찾은 콘스탄티노플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면서 선전포고 날리는 경우도 있어서, 이런 경우에 대비해 유일하게 러시아와 육군으로 대결할 수 있는 라이히스팍트도 나쁜 선택만은 아니다. 맨파워가 아쉽긴 하지만 비열강 국가 중에선 꽤나 쉬운 편이다. 다만 비잔티움 제국 재건 트리가 없고, 아나톨리아 지역에는 코어를 박을 수 없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메갈리 이데아가 궁극적으로 비잔티움 제국의 실질적인 재건을 표방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많이 아쉬운 부분.

메갈리 이데아 트리를 열면 세력가입이 불가하니 세력가입을 하고 트리를 타야한다.

6. Divided states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아메리카 국가들에 총체적 리워크가 이루어졌다. 메인 테마는 남북전쟁 시기 미국 군가인 When Johnny comes marching home.

6.1. 코스타리카

코스타리카: 중앙아메리카 성공의 이야기

중앙아메리카 정글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우리의 작지만 자랑스러운 국가는 심지어 일부 유럽 국가들보다도 낮은 문맹률과 바나나와 커피 무역에 기반을 둔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하는 경제로 인해 수십년간 번영을 구가해 왔습니다.

1917년 있었던 티치노의 독재 시도가 독재를 용납하지 않는 국민 전체의 압력에 힘입어 채 몇 달도 버티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 이후로는 모든 정당이 엄격히 헌정을 준수하고 있기 때문에 군사적 개입이나 정치적 쿠데타는 전혀 없습니다. 이후로 줄곧 성장하는 독일 경제의 과실과 양국간의 밀접한 유대의 결실을 누렸던 평등주의적인 정치인들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국민공화당 소속이었던 리카르도 히메네즈 대통령 치세는 미국발 침체가 원인이 된 경제공황과 대서양노동자의회가 마침내 일어서서 더 나은 권리를 요구한 것에 영향을 받아 고조된 사회주의 운동 모두를 성공적으로 다뤄낸 괜찮았던 시대로 평가받습니다. 비록 그들이 어느 정도 목표를 이루는데 성공했고 정부가 노동조건 법안을 입안하도록 해냈지만, 법안은 아직 통과되려면 오랜 시간이 남았습니다. 떠오르는 인기인 마누엘 모라 발베르데 아래에서 사업자와 노동자 사이의 갈등은 풀릴 기미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미텔유로파와 관계의 결실이 문화교류 프로그램과 과학 원조, 플란데런-왈로니의 뢰번 가톨릭 대학교와 코스타리카 상류층 사이의 관계와 같은 강력한 대학 연대로 흘러감에 따라 번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코스타리카에 또 다시 햇살이 비치는군."

  • 정부
    0% 인민전위당
    5% 인민전위당
    0% 인민전위당
    4% 국민공화당
    21% 중도파
    12%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
    53%국민공화당
    5% 중앙아메리카 커피 회사
    0% 군사정부
    0% 카리브 군단

  • 국가 정신
    • 먼로 독트린
      미국이 주장한 먼로 독트린은 우리나라가 가진 군사력 대부분과 다른 아메리카 국가와 전쟁이 발발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거세해 버렸습니다. 먼로 독트린이 국가 안보를 보장해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확장 가능성을 완전히 봉쇄하기도 했습니다.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25%, 안정도 +5%, 전쟁 목표를 정당화하는 시간 +100%, 우리에게 전쟁 목표 정당화 하는 시간 +100%
    • 민주주의의 등대
      지난 수십년간 이어져온 강력한 민주주의 전통과 진보적인 개혁을 통해 코스타리카는 중앙아메리카 민주주의의 빛나는 등대로 세계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안정도 +15%, 최대 의용군 사단 +1
    • 과일 회사 노동 쟁의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는 우리나라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정부 내에서도 깊은 유대를 맺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미국의 공황으로 인해 해외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줄고 독일 무역이 증가했지만, 과일 회사와 끔찍한 노동 조건은 정치판에 긴장감을 증가시켰습니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사회주의가 중앙아메리카 전역에 침투한 현재, 정부가 적절히 개입하지 않는다면 긴장은 더욱 확대될 겁니다.
      정치력 획득 -15%, 생산 효율성 한도 +10%


중앙아메리카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 중앙아메리카의 다른 국가들은 독재나 사회주의로 빠지는 일이 많지만 코스타리카만은 그런 가능성 자체가 낮고 설사 독재정권이 들어서도 호세 피게레스 페레르가 반란을 일으켜 민주주의를 구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페레르 집권시 중미, 남미 북부의 민주주의 국가들끼리 별도의 세력을 창설하기도한다. 심지어는 주변 국가중 독재정권이 들어선 국가의 민주주의 반군과 연계해 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

6.2. 쿠바

쿠바의 간략한 역사

1902년이 돼서야 독립을 한 쿠바는 젊은 국가입니다. 미국의 많은 사람들이 이 섬이 언젠가는 또 다른 미국의 주가 될 것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는 반면, 쿠바인들은 본인들의 국가 정체성을 마음 깊숙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쿠바는 처음 자치가 시작된 25년이란 기간 내내 미국의 내정 간섭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1928년 9월 20일이 되자, 점점 더 독재적이 되어가는 제라도 마차도 대통령과 그 꼭두각시의 주인인 미국인들에 대한 쿠바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아침이 밝자, 쿠바는 온건파와 민족주의자, 사회주의자로 구성된 새 정부를 새 정부를 가지게 되었고, 미래에 대해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이 임시정부의 지도자가 젊고 경험이 없는 라파엘 트레호를 대통령으로 임명하도록 압력을 받을때도 쿠바인들은 계속 조심스럽게 낙관론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이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새 정권은 미합중국에 분개하면서도 대공황의 영향속에서 통치를 이어가려 몸부림쳤고, 권력과 명목상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미국이 지원하는 군부대에게 양보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935년이 되었을 때, 마차도를 무너뜨린 혁명가 연합은 붕괴 직전이었고, 선거일에는 정통주의와 사회주의 정당 지지자들 사이의 긴장이 폭발했습니다. 아바나의 거리가 붉게 뒤덮혔던 그 악명높은 날의 여파로써, 사회주의자들과 정통주의자들은 모두 의회에서 쫒겨났고, 집권 중인 연합당의 온건파들은 군대의 영향력과, 잔존한 '충성파', 자유당의 지지자들과, 쿠바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보단 권력 확보에만 더 관심있는 보다 보수적인 동맹들에 대해 오직 자신들만이 진정한 반대파임을 깨달았습니다. 1936년 1월 28일에 의회와 대통령을 선출할 새로운 선거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이 닥쳐옴에 따라, 언뜻봐도 그날에 쿠바의 운명이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흥미롭군."

  • 정부
    2% 사회주의 운동-공산주의자
    12% 사회주의 운동-노동자
    5% 사회주의 운동-혁명가
    40%연합당
    13% 신자유당
    12% 공화당
    10% 국가민주연합
    4% 진보당
    0% 군부
    2% 국가혁명군단

  • 국가 정신
    • 부분적인 암울함 회복
      젊은 대통령 라파엘 트레호와 연합당의 정책은 대공황의 영향을 부분적으로 완화시켰습니다.
      소비재 공장 40%
    • 만연한 미국의 영향력
      미국은 쿠바 사회와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미국인들은 쿠바의 정치적 발전을 면밀히 관찰하고 때로는 직접적인 원인이 됩니다. 어떠한 종류의 실질적인 상태 변화도 미국의 반응을 자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5, 소비재 공장 5%, 시장으로 가는 자원량 +10%, 미합중국 : 종주국과의 추가 무역 +25%, 미합중국 : 목표 국가 무역비용 -40%
    • 혼합된 정권
      쿠바 군대는 보장된 의회 의석을 포함한 많은 정치적 권력을 가지고 있고 민간 정부에게 완전히 양보하지 않고 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5,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5%


6.3. 도미니카 공화국

  • 정부
    0% 전체주의당
    2% 생디칼리스트당
    0% 사회주의당
    7% 독립당
    3% 누에보 아줄당
    22% 공화당
    41%로호당
    12% 애국자 연합
    13% 군부
    0% 대중주의당

  • 국가 정신
    • 대공황
      미국을 휩쓴 대공황은 도미니카 공화국의 경제도 파괴했으며, 무능한 전임 대통령은 문제를 더 악화시켰습니다. 경제가 점차 나아지고는 있지만, 계속 복구될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소비재 공장 40%, 건설 속도 -10%, 생산 효율성 한도 -10%, 공장 생산량 -10%
    • 적대적인 상류층
      마르티네스 대통령의 정책과 주요 정치 조직의 대중지향화, 그리고 군부의 견제되지 않은 영향력으로 고립된 상류층은 분개하고 있습니다. 이 분노가 정치적인 위협으로 바로 변하지는 않겠지만, 나라에는 매우 해롭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8, 주간 안정도 -0.4%


아이티 공화국과 분쟁 중이고 전쟁을 벌여서 이를 타개할 수 있다.

6.4. 과테말라

과테말라 소개

1898년 마누엘 드스트라다 카브레라가 정권을 잡으면서 과테말라에 정치적 혼란이 시작했습니다. 카브레라의 "자유"당은 1920년까지 실시된 모든 선거들을 카브레라와 자유당에 유리하도록 조작하는 등 광범위하게 정부를 통제했습니다. 자유당 시대 동안 미국인 사업가가 운영하며 더 싼 가격에 미국으로 수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기업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의 영향력도 엄청나게 넓어졌습니다.

1918년 지진이 카브레라가 설치한 산업 시설을 완전히 파괴한 이후로 자유당은 거센 반발에 시달리게 되었고, 1920년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습니다. 카브레라의 대처 능력 부족으로 인해 호세 아스미티아, 타시토 몰리나, 에두아르도 카마초, 훌리오 비앙키, 에밀리오 에스카미야를 중심으로 국내 보수주의자들이 뭉쳐 과테말라 가톨릭 교회의 지원을 받으면서 통일당을 조직했습니다.

통일당은 정당 창립 강령으로 "삼중법"을 준비하였고 1920년 새해가 다가오자 과테말라 시에 이를 배포했습니다. 1920년 3월 11일 수도 외곽에서 일어난 시위대에게 발포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삼중법에 영향을 받은 통일주의자들을 격앙시켰고 대중은 여태껏 느낀적 없었던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결국 1920년 아드리안 비다우레 국회의장이 카브레라가 통치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주장하며 여전히 카브레라 지지자들이 저항을 이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을 퇴진시키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카를로스 에레라를 과테말라 대통령직에 앉혔습니다.

에레라는 자유당과 같은 관점을 가진 이들과 통일당을 대표하는 이들 사이에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줄타기를 하면서 균형을 맞추었습니다. 하지만 1921년 에레라가 과일 회사에 추가적인 양보를 제공하는 사안을 거부함으로써 자유당이 크게 분노하면서 줄타기는 끝나버렸고, 호세 마리아 오렐라나가 이끄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다음 해, 오렐라나는 과일 회사에 양보를 제공하는 등 자유당의 요구와 이익을 대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이후로 오렐라나가 좌우 양쪽의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한편으로 정권을 장악하면서 정치판은 완전히 정체되었습니다. 과테말라는 지금 완전히 얼어붙어 있습니다...

"오렐라나는 영원하리."

  • 정부
    1% 과테말라 혁명당
    3% 혁명당
    15% 혁명행동당
    12% 국민진보당
    1% 자유당(사회주의)
    1% 자유당(조합주의)
    18% 통일당
    30%자유당(군부)
    19% 과테말라 국군
    0% 대중당

  • 국가 정신
    • 먼로 독트린
      미국이 주장한 먼로 독트린은 우리나라가 가진 군사력 대부분과 다른 아메리카 국가와 전쟁이 발발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거세해 버렸습니다. 먼로 독트린이 국가 안보를 보장해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확장 가능성을 완전히 봉쇄하기도 했습니다.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25%, 안정도 +5%, 전쟁 목표를 정당화하는 시간 +100%, 우리에게 전쟁 목표 정당화 하는 시간 +100%
    • 사회주의자에게 보상
      과테말라 내 사회주의자들은 조선소와 철도 파업 이래로 계속해서 멕시코의 자금 지원을 받으면서 시위를 벌여왔습니다. 이로 인해 정부는 가끔 의미 없는 개혁과 변화를 통해 사회주의자들과 타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안정도 -10%, 전쟁 지지도 -10%, 생산 효율성 한도/성장 -10%
    • 문맹
      문맹이 과테말라에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오레야나 정권 초기 문맹률은 96%에 달했으나 개혁에 착수한 이후로는 75%까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이정도도 충분히 문제가 되는 수준이며, 혹독한 개혁을 실시할 때 까지는 계속 우리를 괴롭힐 겁니다.
      연구 속도 -25%
    •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
      1898년 카브레라 독재정권 이후,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는 과테말라의 정치와 경제를 꽉 잡고 있습니다. 이는 과테말라가 유의미한 경제 발전을 이루게 되었지만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가 과테말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현재,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는 우리 토지의 50% 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일일 정치력 -0.2, 건설속도 +15%, 소비재 공장 -5%, 전쟁 지지도 -30%


센트로아메리카를 형성할 수 있는 4개국 중 하나.

6.5. 온두라스

원조 바나나 공화국

온두라스는 여러 미국 과일 업체들에게 지배당하면서 경제적인 식민지로 전락했지만, 1933년 불만이 폭발하게 됩니다. 소작농들이 일으킨 봉기가 수도를 휩쓸었고 현직 대통령은 자살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태가 지나가고 혁명이 성공한 이후에도 정부는 여전히 미국의 이익과 소수 지식인 집단의 지배 하에 놓여 있습니다. 이제 온두라스 국가기구는 완전히 난장판입니다. 반대파를 숙청하고 철도와 항구를 연결시키기 위해 군사력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보잘것 없는 국가지만, 그래도 우리의 고향이다."

  • 정부
    12% 국민혁명운동
    2% 온두라스 생디칼리스트당
    4% 온두라스 민주혁명당
    3% 혁신단결 사회민주당
    2% 온두라스 자유당
    11% 민주연합당
    13% 온두라스 국민당
    40%반부패당
    2% 온두라스 애국동맹당
    11% 온두라스 국민구원위원회

  • 국가 정신
    • 먼로 독트린
      미국이 주장한 먼로 독트린은 우리나라가 가진 군사력 대부분과 다른 아메리카 국가와 전쟁이 발발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거세해 버렸습니다. 먼로 독트린이 국가 안보를 보장해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확장 가능성을 완전히 봉쇄하기도 했습니다.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25%, 안정도 +5%, 전쟁 목표를 정당화하는 시간 +100%, 우리에게 전쟁 목표 정당화 하는 시간 +100%
    • 농민 공화국
      농민의 이름으로 평의회를 개최하는 온두라스는 '농민 공화국'이며, 정식 명칭은 온두라스 농민 노동자 공화국입니다. 하지만 사실 정부는 빈사상태에 놓여 있고, 국민을 대표하는 역할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0, 안정도 -15%, 전쟁 지지도 -5%, 공장 생산량 +10%
    • 12월 혁명
      1932년 농민들이 수도를 점령하고 여러 집단들의 느슨한 연대체가 "온두라스 농민 평의회"라는 이름으로 집권하면서 12월 혁명이 터졌습니다. 누군가는 혁명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이들은 충분히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20, 안정도 -20%
    • 대숙청
      대숙청은 주로 미국과 연관된 온두라스군 인사에게 가해진 대규모 박해였습니다. 경제적으로 미국의 영향력이 돌아오고 먼로 독트린이 되찾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이로서 온두라스군이 굉장히 약해졌는데... 아마도 결과는 모두가 추측할 수 있을 겁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02, 사단 조직력/회복률 -10%/9%


센트로아메리카를 형성할 수 있는 4개국 중 하나.

6.6. 니카라과

니카라과의 새로운 공화국

미국의 니카라과 점령과 아돌포 디아즈의 복권은 니카라과를 미국의 꼭두각시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국의 자유주의자들이 미국의 괴뢰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무장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수도를 함락시키고 아돌포 디아즈가 미국으로 도망치면서 혁명은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진보정권은 변화를 거의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 자유 혁명가 호세 마리아 몬카다의 밑에서 미국에 계속하여 부역하였습니다. 미국 해병대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의 '국가 방위군' 으로 알려져 있는 무장 국가 경찰력의 창설은 그러한 정국의 현상유지를 더욱 확고히 하였습니다.

신정부의 방침에 실망한 후안 보티스타 사카사와 같은 이전의 자유주의 혁명가들은 나라를 떠났습니다. 다른 이들은 무장 봉기를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젊은 프란시스코 세키라 모레노가 온두라스와의 국경 근처 북쪽에서 저항군을 조직하는 동안 아우구스토 세자르 산디노는 남쪽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정권에 충성하는 세력들의 거듭되는 공격에 의해, 모레노의 북부 저항군 400명은 남쪽을 떠나 산디노의 300인 연대와 합류하였습니다. 이 새로운 통합군은 게릴라전에 통달해가면서 남쪽 정글로 천천히 후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었습니다. 갈수록 더 절박해졌던 산디노는 외세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멕시코로 도망쳤습니다. 모레노는 투쟁을 계속하였습니다. 산디노는 멕시코에 있는 동안 에밀리아노 사파타를 만났습니다. 둘은 서로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금세 절친한 친우가 되었습니다. 프랑스 코뮌과 브리튼 연방의 물질적 지원에 힘입은 사파타는 사적으로 산디노를 소수의 멕시코 지원병들과 함께 니카라과로 돌려보냅니다.

그의 입지가 개선됨에 따라, 산디노의 국내 지지는 급격하게 증가하였습니다. 그의 혁명가들은 북쪽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번 쇠약해졌던 사기가 산디노의 새로운 성공에 의해 고조되자, 생디칼리슴 시위가 수도에서 일어났고, 혁명군의 접근은 미 해병대가 니카라과 동부로 후퇴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미국은 낙후된 국가 방위군과 해병대가 수도를 계속해서 방위하는데 드는 엄청나게 높은 비용 때문에 가망이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합니다. 곧 '자유주의자' 들과 그들의 국가 방위견들은 수도를 산디노의 마지막 진격에 훤히 열어둔 채 온두라스로 탈출했습니다. 이와 함께 전 정부에 대한 증오로 멕시코로 후퇴한 사카사는 혁명 정부 구성을 돕기 위하여 니카라과로 돌아왔습니다.

"혁명을 위하여!"

  • 정부
    2% 국가혁명당
    7% 니카라과 사회당
    36%국민주권전선
    19% 니카라과 농민당
    22%자유혁명당
    0% 자유헌정당
    8% 보수당
    0% 자유국민당
    6% 국가야당연합
    0% 공화연합

  • 국가 정신
    • 먼로 독트린
      미국이 주장한 먼로 독트린은 우리나라가 가진 군사력 대부분과 다른 아메리카 국가와 전쟁이 발발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거세해 버렸습니다. 먼로 독트린이 국가 안보를 보장해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확장 가능성을 완전히 봉쇄하기도 했습니다.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25%, 안정도 +5%, 전쟁 목표를 정당화하는 시간 +100%, 우리에게 전쟁 목표 정당화 하는 시간 +100%
    • 중미 혁명의 고향
      니카라과는 중앙아메리카 혁명이 시작된 곳으로, 중앙아메리카 인민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해외로 영향력을 확대하려 노력할 겁니다.
      사단의 핵심 영토 공격력/방어력 +10%/15%
    • 미국의 오랜 영향력
      산디노가 미국의 영향력을 뿌리치기 위해 수행한 수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여전히 매처럼 우리 주변을 돌고 있는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의 힘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영향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지켜보고 있는 한, 우리는 영원히 이 족쇄를 풀 수 없습니다.
      정치력 획득 -10%, 전쟁 지지도 -5%, 생산 효율성 한도 -10%


센트로아메리카를 형성할 수 있는 4개국 중 하나. 현 대통령은 혁명의 영웅 산디노. 미군을 몰아내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 영향은 남아있어서 동부는 명목상으로만 니카라과의 영토고 실질적인 행정은 미치고 있지 못한다. 미국에 내전이 일어나면 디시전으로 이 상황을 타개하고 온두라스를 공격해 혁명이 일어나게 할 수 있다. 과테말라, 엘 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의 4개국 모두가 같은 사상의 국가가 되면 디시전으로 센트로아메리카를 형성하고 4개의 국가를 통합시킬 수 있다.

6.7. 서인도제도 연방

*
정부
2% 혁명전선
12% 국민레지스탕스
8% 자유연맹
7% 자치당(사회주의자)
10% 자치당(연방주의자)
30%단일당
21%국민통합당
8% 애국연합
2% 군사정부
0% 통일당

  • 국가 정신
    • 카옌 협약
      1931년 체결된 카옌 협약은 프랑스 영토의 지위에 관해 영국과 프랑스 정치인들 사이에 체결된 협약입니다. 이 협약은 프랑스 식민지에 영국인들 보다 더 높은 자치권을 보장하며, 당시부터 지금까지 대협상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17%, 안정도 +5%, 전쟁 지지도 -10%
    • 풋내기 육군
      영국인 참모들이 우리 군의 양성에 도움을 줬을지라도 결국 서인도제도군은 풋내기일 뿐입니다. 우리 군인들은 어리고 경험과 전문지식이 부족합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이는 훈련과 실전 경험을 통해 자연스레 해결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육군 경험치 획득량 +20%, 사단 조직력/회복률 -15%/10%, 최대 계획 수립 -10%
    • 경제 붕괴
    안정도 -4%, 전쟁 지지도 -10%, 건설 속도 -5%, 생산 효율성 한도/성장 -10/5%, 시장으로 가는 자원량 -15%


협상국이 중남미에 가지고 있던 수많은 식민지를 하나로 뭉쳐서 탄생한 국가이다. 일단은 협상국 소속인데다 영국계 주민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만큼 민주주의 국가로 시작하나 프랑스계나 특히 흑인 주민들은 사회주의 계열에 경도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전 버전들에서 서인도 연방이 단지 협상국에 속한 국가 중 하나였던 것에 비해, Divided states에서 캐나다의 식민지 속국으로 변경되었다.

7. Aurora Borealis



북유럽 국가들을 중점적으로 다룬 업데이트. 메인 테마는 제1차 슐레스비히 전쟁 당시 덴마크 노래인 Dengang jeg drog afsted.

7.1. 스웨덴

1936년 스웨덴 Sweden in 1936

독일이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이후, 스웨덴은 새로운 세계 질서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스웨덴 정부가 스웨덴이 독일의 조직인 미텔오이로파에 가입할 것이라고 발표했을 때, 이에 놀라워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미텔오이로파를 통해 많은 이익을 얻은 아비드 린드만과 그의 보수당은 선거에서 승리하여 집권하려는 사민당을 가까스로 막아내며, 스웨덴을 스칸다나비아의 보수주의 방벽으로 확고히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2년전, 린드만이 은퇴하면서 상황은 바뀔지도 모릅니다. 올해에는 린드만의 뒤를 이어 총리로 취임한 새로운 당수 괴스타 바게가 첫 총선에 나서게 됐습니다. 바게는 자신의 적수인 야당의 페르 알빈 한손을 막아낼 수 있을까요?

"스웨덴을 위하여! För Sverige!"

  • 정부
    0% 좌파 전체주의자
    0% 스웨덴 노동자중앙위원회
    1% 스웨덴 사회민주좌파당
    32%사회민주노동당
    14% 농민연합
    12% 자유당
    39%총선동맹
    0% 애국재단
    2% 육군전우회
    0% 스베아 리케 국민대중당

  • 국가 정신
    • 보수적인 육군 수뇌부
      스웨덴 육군은 급변하는 전투전술을 따라잡지 못 하고, 약간의 교리 침체에 빠졌습니다. 전술 발전을 가속시키는 것은 정부의 몫이 될 것입니다.
      지휘관 경험치 얻음 -10%, 육군 교리 연구 속도 -20%
    • 스타타레
      스타타레는 스웨덴 사회에서 최하위 계층인 연간계약직 노동자들입니다. 이들은 돈 대신에 음식으로 값을 지불하고 있으며, 이들은 전근대시대의 유물로서 계속해서 존재하게 되었고, 이들의 열악한 환경은 다소 국가적인 골칫거리가 되었습니다.
      소비재 공장 5%, 안정도 -10%
    • 정치적 불안정
      인기 있는 총리인 아비드 린드만이 은퇴하고, 그닥 카리스마 없는 괴스타 바게가 자리를 이어받게 되어, 야당 당수인 페르 알빈 한손이 더 선거에서 유력해보이는 반면, 총선동맹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지 못 하고 있습니다. 물론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사회민주주의의 선거승리 전망에 대해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안정도 -10%


실 역사에서는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이 집권해 대공황에 대한 대처로 계획경제와 복지정책 등 사민주의 정책을 실행하고 있을 때지만 카라에서는 프랑스와 영국 혁명의 여파로 레드 컴플렉스가 더 심해지고 독일 주도의 관세 동맹인 미텔오이로파 체제에 참여해 경제가 안정되면서 총선동맹이 장기집권을 이어나가고 있다.

물론 독일과 경제적으로 연관이 깊다는 말은 검은 월요일의 여파를 아주 강하게 맞는다는 뜻이다. 검은 월요일의 회복을 위한 정부의 조치를 금본위제 폐지, 차관 도입, 기업 국유화 등등 수많은 디시전 형식으로 구현했고 이를 통해 자산, 부채, 실업률, 인플레이션을 서로 조정해나가며 검은 월요일의 악영향에서 차츰차츰 회복되는 독특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시작시에는 총선동맹과 사회민주노동당이 선거에서 주로 경쟁하고 있지만 그 외의 다른 여러 정당들도 어느정도의 경쟁력이 있어서 여러 경우의 수로 연정이 이루어진다. 다른 경우는 상관없지만 사회민주노동당과 좌파당이 연립할 경우 왕정 폐지를 연립 정부 구성 조건으로 내세우고 실제로 왕정을 폐지할 수 있는 중점이 열린다. 그 중점을 타면 구스타프 5세를 퇴위시키고 평범하게 공화정으로 변모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강제적으로 후속 이벤트가 일어나 군대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페르 알빈 한손을 몰아내고 군사 정부를 세운다. 이후 생디칼리슴 계열 민병대가 군에 저항하는 이벤트가 발생하는데 군이 굴복해 스웨덴 코뮌을 성립시킬 수도 있지만 AI는 높은 확률로 민병대를 학살하고 군부 독재를 더욱 확고히 하는 쪽을 선택한다. 군부 독재 루트를 타면 구스타프 6세 아돌프 왕세손을 모셔와 왕정을 복고할지, 군정을 유지할지 선택할 수 있다.원역사의 구스타프 6세 아돌프는 건너뛰고 계승한다

외교적으로는 친독 국가이기 때문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거나 노르웨이에 생디칼리슴 정권이 들어서면 라이히스팍트에 가입하게 된다. 스웨덴 코뮌의 경우에는 당연하게도 제3인터내셔널에 가입한다. 특수한 케이스로 스웨덴과 덴마크가 모두 민주주의일 때 노르웨이도 민주주의이거나 스웨덴이 노르웨이를 합병했다면 스톡홀름 조약 이벤트가 발생해 스칸디나비아 연방을 세울 수 있다.

7.2. 노르웨이

노르웨이의 상태 The state of Norway

노르웨이는 역사의 교차로에 서 있습니다. 국가는 비교적 호황을 누리는 반면에 시민 사회는 정치적 내분과 불경기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좌파는 한때 여당이었던 노동당Labour Party의 분파 난립 결과 분열되어 있습니다. 1921년 온건파가 이탈하여 사회민주노동당Social Democratic Labour Party을 창당한 이래로 급진 생디칼리스트 또한 1923년 탈당하여 노르웨이 생디칼리스트 연합Norwegian Syndicalist Federation을 결성하였습니다. 게다가 노르웨이 공산당Norwegian Communist Party이 고전하고 있으며 국민생디칼리슴의 원리에 입각하여 극좌파의 새로운 선봉당을 결성하려 한다는 소문도 돌고 있습니다. 정치적 스펙트럼의 반대쪽 끝에서는 여러 국민주의 단체들이 권력과 영향력을 놓고 다투고 있습니다. 사회주의에 대한 반대라는 기본적 논조는 같지만, 이들의 수단과 목표는 각기 다릅니다. 정치적 내분이 폭력적 결과를 낳지는 않았지만 집권당인 자유당Liberal Party 정권은 소수당 정권이기 때문에 긴급한 현안을 처리할 힘이 없습니다. 유럽 전역에 먹구름이 다시 한번 몰려들면서 국민들은 1936년 10월 선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브레 산이 무너질 때까지 단결과 충성을. Enig og tro til Dovre faller"

  • 정부
    9% 노르웨이 노동당
    5% 노르웨이 생디칼리스트 연합
    27%노르웨이 노동당
    8% 노르웨이 사회민주노동당
    9% 좌파당
    13% 보수당
    11% 농민당
    8% 조국회
    5% 사회수비대
    1% 사회수비대

  • 국가 정신
    • 분열된 공군 Dividend Airforce
      현대 노르웨이 공군 조직은 구식입니다. 1912년에 창설된 노르웨이 육군 항공국과 1916년에 창설된 해군 항공국은 공군력을 단지 각 군의 임무를 완수하는데 지원하는 존재로만 보고 있습니다.
      공군 교리 연구 속도 -30%
    • 침체된 경기 Weak Economy
      세계대전 이후 노르웨이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영국의 세력권에 잔존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1925년 영국의 혁명은 노르웨이의 수출지향적 경제에 재앙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후 독일의 '제국 협정' 출범에 따라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유럽 시장에서 소외되었습니다. 부족한 국제 무역은 우리 경제를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소비재 공장 20%, 건설 속도 -20%, 생산 효율성 한계 보정 -20%, 공장/조선소 생산량 -25%


특이하게도 다른 나라가 36년 2월에 독일발 검은 월요일이 터지면서 경제가 망가지는 반면 노르웨이는 이미 시작부터 경제가 망가져 있다. 불행중 다행으로 미국처럼 경제 위기가 두번 터지는 대참사는 발생하지 않는다.

정치적 방향은 3가지로 36년 10월의 선거와 후속 이벤트에 따라 정치 성향이 결정된다. 선거의 선택지는 3가지로 사회민주노동당(사회민주주의)이나 우파(시장자유주의)를 고르면 민주주의가 유지되고 노동당을 고르면 우익 계열이 정부 참여를 거부하며 국가가 혼란에 빠진다. 이 때 쿠데타가 일어나 호콘 7세는 망명하고 생디칼리슴 혹은 권위주의 정부를 설립할 수 있게 된다.

생디칼리슴 루트에서는 다른 생디칼리슴 국가와 같이 제3인터내셔널에 가입하게 된다. 스웨덴이나 덴마크의 노동조합에 지원을 보내 생디칼리슴의 힘을 키울 수도 있다.

민주주의 루트에서는 다른 루트에서와 달리 경제 회복에 좀더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된다. 다른 루트에서는 중점 하나만 찍으면 바로 경제 위기에서 회복되지만 민주주의 루트에서는 중점을 여러번 찍어야 하고 집권당의 성향에 따라 그 방안들도 조금씩 차이가 나게 된다. 외교적으로는 현재의 고립을 유지하거나 협상국에 가입하거나 스칸디나비아 국가끼리 노르딕 연방을 결성하는 방향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권위주의 루트에서는 비드쿤 크비슬링이 집권하게 되며 온 스칸디나비아에 영유권을 주장하며 전쟁명분을 얻을 수 있다.

7.3. 핀란드

핀란드 왕국 The Kingdom of Finland

1917년 12월 4일, 페르 에빈드 스빈후부드의 원로원이 핀란드 독립선언을 발표하고, 동년 12월 6일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직후, 핀란드 사회는 완전히 두쪽이 났습니다. 한 쪽은 알리 알토넨이 이끄는 적위대였고, 다른 쪽은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이 이끄는 백위대였습니다.

핀란드 사회민주당원들로 주로 이루어진 적핀란드와 스빈후부드 원로원 및 독일에서 훈련받은 엽병부대 중심의 백핀란드 사이에 내전이 일어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3개월간의 잔혹한 전쟁 끝에 독일을 등에 업은 백핀란드가 적핀란드 내각 인민대표단을 헬싱키에서 쫓아냈고, 포위된 적위대 병력들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핀란드 내전의 잿더미 속에서 피어난 핀란드 왕국은 광신적인 반공국가가 되었습니다. 그 지도자의 이름은 프리드리히 카를 폰 헤센 방백작영식, 또는 핀란드 국왕 대관식 이후 얻은 이름으로는 핀란드 국왕 프레드릭 카를레 1세라고 하였습니다.

독일 제국의 비공식적 보호국으로서 평화와 보호의 세월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독일군 장교들과 독일 기업들로 대표되는 독일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침투한 사실은 핀란드 민중들 사이에 불온한 정치적 기류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으며 국왕과 여당 국민연합당이 무관심했던 수 년의 세월 동안 좌우 급진파들이 서서히 세력을 재규합하기 시작했습니다...

"난관을 뚫고 승리하리라. Vaikeuksien Kautta voittoon"

  • 정부
    0% 적위대
    3% 핀란드 인민대표단
    0% 핀란드 사회주의 노동당
    29%핀란드 사회민주당
    7% 농업동맹
    1% 국민진보당
    14% 국민연합당
    4% 만네르헤임 군벌
    30%국민연합당
    12% 라푸아 운동

  • 국가 정신
    • 커져가는 불화
      핀란드 국민들은 러시아 내전에서 백군의 승리에 이어 1918년에 핀란드 왕국이 건국된 이후, 전국적으로 독일의 영향력이 빠르게 전파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 조약들, 민간부문의 독일계 기업들, 독일제 무기, 그리고 독일계 혈통인 우리나라의 국왕을 통해 독일의 영향력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결과, 핀란드 국민들은 독일의 막강한 힘이 핀란드를 더욱 잠식해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서서히 분개하였으며, 언젠가는 이 분노가 끓어넘치게 될 것입니다.
      매일 정치력 비용 +0.40, 안정도 -20%
    • 우크라이나산 곡식 수입
      핀란드의 땅은 특정 종류의 작물을 재배하기에는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식량난 문제를 직면하지 않도록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소위 '유럽의 빵바구니'라고 불릴정도로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다가올 미래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곡물 수송이 지연되거나 중단되면 곤경에 처할 수 있기에 우리가 우크라이나 곡물에 의존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불확실해지고 있습니다.
      소비재 공장 4%, 안정도 +10%


7.4. 덴마크

1936년의 덴마크 Denmark in 1936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에서 덴마크는 중립을 지켰지만 막대한 손해를 봤습니다. 이웃 나라 독일이 영해를 삭감하라고 요구했을 때 굴복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미텔유로파 경제 체제가 설립된 순간에 이미 덴마크가 편입된 것만 보아도 사회와 정부에 대한 독일의 영향력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920년대 독일이 호황을 누리던 시대에 덴마크가 상당한 이득을 보는 동안, 급진좌파당은 카리스마있는 토르발 스타우닝이 이끄는 사회민주당에게 밀려났습니다. 토르발은 1926년 12월과 1929년 4월 사이에 잠깐 권력을 빼앗겼을 때를 제외하고는 1924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총리직을 지켜왔습니다. 스타우닝이 목표로 했던 복지국가 덴마크의 꿈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보수주의 정당이 상원을 지배했기 때문이고, 이들이 토르발의 복지 정책에 반대표를 던졌기 때문입니다. 덴마크의 미래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덴마크는 독일의 실질적인 괴뢰국으로 전락하게 될까요? 아니면 이 작은 게르만 국가가 현 국제 정세에 도전하려는 새로운 세력이 부상하는 때를 틈타 스스로 미래를 개척해 나갈 수 있을까요?

"지금 덴마크는 굳건하게 서있다."

  • 정부
    0% 노동조합 (최대주의파)
    2% 노동조합 (정통파)
    0% 노동조합 (혁명파)
    43%사회민주당
    10% 급진좌파당
    25%좌파당
    8% 보수인민당 (입헌파)
    11% 보수인민당 (독재파)
    1% 통일 덴마크
    0% 덴마크 인민공화당

  • 국가 정신
    • 여소야대
      덴마크 상원은 야당이 장악하여 정부의 입법 추진에 타격을 입히고 있습니다.
      정치력 획득 -25%

  • 괴뢰국
    • 아이슬란드 (자치 괴뢰국)


시작 시 국왕은 크리스티안 10세이며 의회에서는 사회민주당의 토르발 스타우닝 총리가 재직중이다.

선거에서 스타우닝이 유임되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 국왕은 독일의 편을 들어 참전하고 싶어하지만 내각과 국민들의 반대를 맞게 된다. 억지로 내각을 해산하고 참전하면 제국조약에 가입하면서 권위민주주의로 사상이 전환된다. 그러나 여기서 국민들의 반대가 더 거세지면 크리스티안 10세는 퇴위당하고 다시 사민주의 정권이 세워지며 프레데리크 9세가 즉위하거나, 공화정으로 전환된다.

공화정으로 전환시 모든 전쟁을 중단하고 다시 중립국으로 돌아가지만 배신당한 독일이 역으로 공격해들어오게 된다. 이때 프랑스 코뮌과 협상해서 인터내셔널에 가입하고 생디칼리슴과 사민주의의 혼합 정권을 세울 수 있다.

7.5. 아이슬란드

1922년 아이슬란드

1874년에 탄생한 아이슬란드는 덴마크가 식민지에게 자치와 헌법을 부여했을 때 처음으로 독립을 맛보았습니다. 덴마크의 일부로서, 아이슬란드는 세계대전 기간 동안 중립을 지켰습니다. 종전 이후 아이슬란드는 종주국 덴마크와 함께 미텔오이로파 경제블록과 합류했습니다. 이것은 아이슬란드가 주요 수출품인 어류로 두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섬나라에 번영의 시기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영국은 두 섬 사이의 거리 때문에 아이슬란드에서 수익성이 좋은 생선 수입을 계속했습니다. 한편, 아이슬란드 대구의 유럽 시장 진출은 아이슬란드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적은 추가 자금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1925년 아이슬란드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번영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1925년 영국 혁명은 종전 후 아이슬란드가 겪고 있던 기적을 산산조각 냈습니다. 충성파가 제국 구석구석까지 달아나자 영국-아이슬란드 무역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대구 무역이 가능할 유일한 나라는 왕족들이 도망간 캐나다였지만 그들은 아이슬란드 무역 재개보다 더 시급한 경제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미텔오이로파 경제 정책이 생디칼리슴 국가들과 어떤 무역도 할 수 없다고 명령한 이후 아이슬란드는 영국 혁명의 여파로 비틀거리고 있었습니다.

1932년 아이슬란드

이 나라에서 증가하기 시작한 대규모 실업률에 미봉책을 마련하기 위해, 국회는 사람들이 육체 노동 건설 프로젝트에 종사하도록 하기 위해 도시 일자리 증가 계획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한동안 효과가 있었지만 결국 정부 내 정당들 사이에서 불화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1932년 11월 9일 시의회 회의에서 시의회는 그 사업의 추진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경제 불황이 여전히 아이슬란드를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 계획이 그대로 유지될 것을 요구하며 건물 앞에서 폭동을 일으키기 위해 집단으로 도착한 사람들에게 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 폭동은 구토우슬라구린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도시 일자리 증가 계획이 가까운 미래에 효력을 발휘하도록 했습니다.

1936년 아이슬란드

지난 10년은 아이슬란드 사람들에게 재앙이었지만, 여전히 지평선 너머로 더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남아 있습니다. 유망한 정부 관리들은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관광 산업을 일으키거나 심지어 우리 섬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지열과 수력 발전 자원을 활용하는 것을 검토하기 위해 대규모 공공 사업 계획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덴마크의 약간의 도움을 받으면, 우리는 이러한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끝이 머지 않았다!"

  • 정부
    0% 인민동맹
    8% 인민통일당
    6% 농부당
    19% 사회민주당
    25%진보당
    0% 독립당
    41%독립당
    1% 입헌주의 통치
    0% 의회당
    0% 국민주의당

  • 국가 정신
    • 덴마크-아이슬란드 동군연합
    매일 정치력 획득 -0.05
    • 병든 경제
    소비재 공장 20%, 주간 안정도 -1%, 건설 속도 -10%, 생산 효율성 한도 -10%, 공장 생산량 -10%
    • 도시 노동-창조 계획
    건설 속도 +5%
    • 구토우슬라구린 폭동 Gúttóslagurinn Riot
    매일 정치력 -0.10


보수당이 집권하면 덴마크로부터 독립하고 사민당이 집권하면 잔류한다. 캐나다에 붙는 선택지도 있다.

8. Blood on the Yangtze

중국 국가들을 중심으로 다룬 업데이트. 메인 테마는 20세기 초중반 중국에서 활동했던 맹인 음악가 아빙이천영월(二泉映月).

이 패치로 카이저라이히가 베타 버전이 되었다. 이전까지 카이저라이히 알파 0.9.3이었다면, 이후부터는 카이저라이히 베타 0.10이 된 것.

8.1. 청나라


대청국

1928년, 국제적 중재에 의해 직봉전쟁이 막을 내렸습니다. 전쟁이 초래한 4년간의 혼란과 불안정은 1911년 신해혁명 이후로 유지되었던 평화의 종식을 의미했습니다. 우페이푸와 그의 직예군벌은 만주족 황실의 복고를 수용했지만, 독일에 대한 이권 제공은 거부했으며, 독일과의 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독일은 청 정부에 대한 지원을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독일의 대중국 전략인 '분할 및 정복'의 일환으로써 난징 계열 군벌들의 팽창을 억제하는 한편, 점진적으로 중국 내에 보루를 구축해 일본을 견제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기인한 것입니다.

일본의 마수가 화베이와 화둥을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청은 동북부의 반항적인 봉천 정부에서부터 중국의 나머지 지역에 걸친 다양한 표면상의 우방에 이르기까지 중원 전역에 자국의 권위를 관철시켜 마땅하다고 여기지만, 정작 제국의 구성원들은 지리적 요소와 지역주의 정서를 기반으로 각각 독립해 있습니다. 그 결과 청은 사실상 화베이 평원에 국한된 채로, 또한 흔들리고 있는 국가 질서의 선두에 선 채로 1936년에 들어섰습니다.

정치적 현황

1936년, 무력한 의회는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5개 파벌이 의회를 구성하고 있고, 모두가 거의 권력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배후에서 지원하는 세력들은 무시할 수 있을만큼 사소하진 않습니다. 이들중 가장 강력한 파벌은 차오쿤 의장이 명목상으로 이끌고 있는 화합회입니다. 화합회를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사람은 우울증에 시달리는 알코올 중독자 차오쿤이 아닌 우페이푸로, 화합회는 그가 의회에서 직예군벌의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설립한 파벌입니다. 명목상 독립 정당이지만, 모두가 전 직예 장군들인 화합회 의원들,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재선된 것이 아닌것이 확실해보이는 차오쿤 의장 등의 여러 증거들이 화합회가 우페이푸의 국가 통치 수단에 불과하다는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번영연맹 역시 비슷한 파벌로, 스스로가 정당이라고 주장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베이징에 대한 독일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주는 로비 단체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둘에 이어, 이들에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는 3개 정당이 있습니다. 청나라 황족들과 전직 황실 관료들로 구성된 만주당, 중국의 청년 튀르크당이 되려고 하는 보정군관학교 출신들의 중국 청년당, 그리고 친황제파이자 동시에 중국 촌락들의 전통적 이상에 따른 개편과 군벌 타도를 부르짖고 있는 신보황회입니다. 이 세 파벌은 우페이푸에 반대하고 있지만, 우페이푸는 그의 인기 없는 정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그들이 유명무실한 의회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카이저라이히의 세계 - 청 제국 (펴기/접기)

신해혁명으로 인해 중국은 약 20년간 내전의 혼란을 겪었다. 군벌 간 권력투쟁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고, 폭력은 가라앉힐 수 없을 것 같았다. 사회 구조가 뒤집히고 산산조각 나는 것만 같았다. 이 내전 속에서 "옥수(玉帥)" 우페이푸가 주목 받았다. 우한에서 북벌을 막아내고 상하이 산길에서 장쭤린의 봉천군을 두 번이나 격퇴하자 우페이푸는 중국을 하나의 깃발 밑에 놓을 수 있는 이가 되었다.

하지만 우페이푸는 카이저에게서 큰 지원을 받았고,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도 못했다. 독일의 지원은 우페이푸가 막강한 군대를 만들게 해주었으며 국내, 심지어는 국외의 위협에도 통치를 계속 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독일인들은 수 십 년간 실패하고 부패한 민국 정부가 중국에 군주제가 필요한 증거라고 여겼다. 선통제 아이신기오로 푸이의 복벽은 자만심에 쩔은 독일이 우페이푸에게 제시한 모욕의 정점이었다. 중원을 되찾기를 원하던 옥수는 황제를 복벽시켰지만 더이상의 양보는 거절하였다. 독일은 불평등조약을 서명할 새로운 상대를 찾아야 했다.

무역이 장강 하류에 흐르고 상하이의 양지가 세계의 이목을 끌었지만 청 정부는 전의 북양정부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권력은 제국 내각에 집중되었다. 여전히 직계 군벌의 우두머리인 황제의 군사적 근간 우페이푸가 내각을 쥐고 있었다. 민국 정부에서 이어져온 입법원의 힘은 작았고 복벽된 황제는 자금성의 꼭두각시로 남았다. 우페이푸의 군사력은 베이징 정치에서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였다.

하지만 중국의 다른 곳에서는 오랜 속담이 여전히 통했다. 天高皇帝远, 하늘은 높고 황제는 멀리 떨어졌다.[93] 동쪽의 장강 하류에서는 우페이푸의 옛 후배인 "웃는 호랑이" 쑨촨팡이 전 주인에 대항해 힘을 키우고 있었다. 남쪽의 해안 도시와 푸젠의 깊은 산 속에서는 오랜 적이 아직 숨어있었다. 국민당 선동가들은 서서히 도시에 스며들어 새로운 혁명을 떠들어댔다. 북쪽의 만주 국경지대에서는 장쭤린의 봉천 정부가 재정복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었다. 청 정부의 권위는 어디에서나 의심받았고 산만했다. 한편 황해 너머에서는 욱일이 떠오르고 있었다. 한때 밀접했던 독일과의 관계는 천천히 악화되었다.

나라가 분열되고 중앙정부의 권력이 화베이 평원으로 제한되며 중국은 다시 혼란에 빠져들 것인가? 다시 잔혹하고 무정한 해외 열강의 장기말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이 위험을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인가? 제국이 다시 천명을 받아 영원히 버텨낼 수 있을 것인가?#

  • 정부
    0% 중국 생디칼리슴당
    0% 중국 생디칼리슴당
    0% 국민당
    10% 신보황회
    5% 중국 청년당
    15% 번영연맹
    10% 만주당
    48%화합회
    10% 직예군벌
    2% 일관도 영항력

  • 국가 정신
    • 산산이 조각난 제국
      청 제국은 이론적으로 만주, 티베트, 몽골 이외의 모든 중국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황제의 권력은 자금성 밖으로 간신히 뻗어나가는 반면, 차오쿤 총리는 관저를 벗어나지 못하는 대체로 무력한 상태입니다. 왕위 이면의 실질적인 권력자인 우페이푸는 어떤 의미 있는 방법으로 나라를 발전시키는 것보다 뤄양에 있는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고 군벌 간의 균형을 맞추는 데 더 관심이 있습니다.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0.10%, 소비재 공장 15%
    • 막대한 국채
      중국의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한 노력은 베이징 정부가 주도하는 막대한 무역 부채를 초래했습니다. 산업용 기계는 엄청난 비용으로 수입되고 있으며, 국내 제조업이 거의 존재하지 않아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상품의 품질과 양이 부족합니다. 따라서 중국의 주요 수출품은 대부분 농업이며, 심지어 생계보다 상품성이 짙은 현금작물도 담배나 라디오 같은 수입된 외국 사치품에 비해 낮은 가격에 팔리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널리 퍼진 제도화된 부패와 번창하는 아편 거래로 인해 악화될 뿐입니다.
      건설 속도 -20%, 무역 거래 평판 획득치 -50%
    • 직예 지도부의 위기
      많은 직예 군벌의 지도부의 고령화는 청군이 전적으로 노장들에 의해 통제되지 않도록 곧 개혁해야 할 염려스러운 현상입니다.
      사단 조직력 -10%
    • 베이징위원회 영향력
      일일 정치력 감소, 생산 효율성 한도 감소
      시장자유주의 정당인 번영연맹의 지지도에 따라 수치가 변동함.


국민혁명과 3차, 4차 직봉전쟁에서 독일 제국의 도움을 받아 승리한 우페이푸카이저의 강압에 의해 청 제국를 복원하게 된다. 청나라는 입헌군주국으로 황제 선통제와 총리 차오쿤이 있지만 모두 허수아비일 뿐 실권은 모두 우페이푸직예군벌이 쥐고있다.

우페이푸와 차오쿤의 정당인 화합회(권위민주주의)가 뇌물과 부정선거의 힘으로 집권하고 있고 황족들과 만주인 귀족들을 중심으로 하는 종사당(사회보수주의), 도시의 지식인들의 정당 중국 청년당(사회자유주의), 농촌 개혁가들과 캉유웨이의 후예들을 주축으로 하는 신보황회(사회민주주의)가 야당으로 존재하고 있다. 독일의 강압으로 세워진 국가이니만큼 독일의 경제적 침탈이 존재하고 친독 기업가와 학자들의 번영연맹(시장자유주의)의 지지도와 국민정신으로 표현된다.

시작 시에는 봉천군벌 정도를 제외하면 중국의 모든 군벌들이 청나라의 종주권을 인정하기에 청 제국이라는 세력의 리더로 존재하지만 게임 시작 후 한 달도 안되어 팔성연합(남부 직예군벌)이 붕괴하며 직예의 나약함이 드러나면서 다른 군벌들도 청과 직예군벌을 떠나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간다.

팔성연합의 붕괴 과정에서 남직예군벌은 독일 타도를 들고 일어난 천댜오위안의 안경군벌과 쑨촨팡을 계승한 친독파 치셰위안의 남경군벌로 나뉘고 두 세력은 전쟁의 와중에 우페이푸에게 자신을 지원해줄 것을 각각 요청한다. 여기서 앞으로의 루트가 갈리게 된다.

천댜오위안을 지원할 경우 이는 독일을 손절하는 것으로 비춰지고 앞으로 다가올 일본의 위협에 독일의 지원 없이 버텨야 한다. 대신 외세를 배척하는 모습에 우페이푸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매우 확고해지게 되고 안정도, 국민정신, 정당 지지율 등에서 이익을 볼 수 있다.

반대로 치셰위안을 지원할 경우 이는 독일의 영향권에 계속 남는 것으로 비춰지고 국민들과 야당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천댜오위안은 봉천과 손을 잡게 된다. 그러나 독일이 뒤를 봐주기 때문에 연구나 산업 등에서 얻는 이득은 제일 확실하다.

한편 두 사람의 지원 요청을 모두 무시하는 방법도 있는데 이 경우 위의 두 루트에서의 리스크를 모두 떠안을 뿐 아니라 같은 직예군벌을 배신한 것으로 비치기에 우페이푸는 리더십에 큰 손상을 입게 된다. 결국 우페이푸에 실망한 직예 장령, 군주주의자, 야당 인사, 선통제와 만주 귀족들이 모두 모여 우페이푸를 축출할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의 군사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외부에 지원을 요청하게 된다. 산서의 옌시산, 산동의 쑹저위안, 혹은 장톈란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며 이들의 도움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하면 음모가 실행된다.

음모가 성공할 경우 우페이푸와 차오쿤은 암살, 음모에 참여하지 않은 여타 직예 장령들은 다른 군벌들에게로 망명하고 순친왕 짜이펑, 선통제의 동생 푸제 등이 장군으로 등장한다. 이후에는 음모 과정에서 도움을 준 군벌들에게 보상을 하고 찌그러져 있었던 야당들을 새로운 여당으로 삼아 국가를 안정화해나가게 된다. 새 여당으로 장톈란은 신보황회를, 옌시산은 만주당을, 쑹저위안은 중국 청년당을 추천하며 도우미가 추천하지 않은 정당을 여당으로 선택할 경우 정치력을 지불해야 한다.

음모가 실패할 경우 우페이푸는 음모가들에 대한 피의 복수를 단행한다. 제국은 다시 공화국이 되고 야당은 금지되며 황실 인사들은 추방당한다. 이 경우에도 우페이푸가 직접 총통직에 오르지는 않고 후스구웨이쥔을 얼굴마담으로 삼아 총통으로 올리고 북양정부를 부활시키게 된다.

정치적인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건 가장 시급한 위협은 만주의 장쭤린과 봉천 정부이며 팔성연합의 잔해에서 발흥하는 중국 국민당 역시 위험한 적이다. 양광의 천중밍도 만만치않게 세력을 불리고 있다. 더군다나 몽골이나 티베트도 중국쪽으로 야금야금 진출하기도 한다. 청나라가 시작 시에 중국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사방이 포위당한 형세이기에 천하 통일의 길은 험난하다. 중국의 각 세력들은 디시전으로 선전포고를 하기 때문에 적대적인 세력과 국경을 맞대고 있을 때는 전쟁 중이 아니더라도 민병대 약간이라도 방어용으로 배치해야하고 선전포고 알림이 들어오는 것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봉천은 전쟁에서 밀리면 일본을 호출하는데 이 경우 청나라, 국민당, 연성주의 등등 지금까지 싸우던 모든 중국의 세력들이 한데 뭉쳐 청나라를 중심으로 중벤져스중화연합전선을 결성한다. 연합전선이 형성되어도 적극적으로 나와서 싸워주는 건 아니고 최소한 뒤에서 방해하는 짓만 안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결국 가장 덩치가 큰 청나라가 직접 항일 전쟁을 지휘해야 한다. 봉천을 항복시키고 연해주와 한반도까지 진출하면 평화 이벤트가 뜨면서 일본이 대륙 영토를 모조리 내놓으니 굳이 상륙전을 감행할 필요는 없다.

8.2. 팔성연합

황실의 초석

지난 10년간의 전쟁 속에서 형성된, 북벌군의 패배로 현재의 규모까지 확대된 쑨촨팡의 연합은 난징에 있는 그의 거점을 중심으로 한 성 정부들의 느슨한 연합체입니다. 비록 중앙정부의 통제에 대한 회원들의 두려움으로 하나로 뭉쳐졌지만, 연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초석으로써, 공유된 유산 덕분에 외부로부터의 위협과 내부로부터의 위협으로부터 베이징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보잘 것 없는 협정은 수년간의 평화와 비교적인 번영을 가져왔습니다. 외국의 산업 방식은 변혁을 입증했으며, 쑨촨팡의 군대는 이제 독일에게 훈련과 장비를 받은 여러 사단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연합 지도자는 기반에 나타나기 시작한 균열에도 불구하고 그가 유지하기에는 벅찬 관료 피라미드의 위에 앉았고, 그 자리를 지키는 것에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 베이징과 연합의 골칫거리인 남부 회원국들의 압력을 상쇄하기 위해 필요한 독일의 물질적 지원은 단독으로는 힘의 원천적 역할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독일의 화폐는 연합의 모든 계층으로 흘러들어와 횡령에서부터 도난품 거래에 이르기까지 공무원들과 함께 부패에 뿌리를 내리고 건강을 해치고 있습니다.

이는 점차적으로 국민들의 불만의 불을 지폈고, 점점 많은 민족주의적 선동가들에 의해 이용되어 갔으며, 국민당의 잔당들에 의해 힘을 얻었습니다. 분열된 연합을 한데 모으려는 쑨촨팡 원수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더 멀리 표류해가고만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국내에서의 말다툼은 동쪽에서 크게 비치는 떠오르는 태양에 의해 사라졌습니다. 내부 갈등 외에도, 연합은 이 도전에 직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전멸의 위험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중앙정부

쑨촨팡은 그의 옛 스승인 우페이푸와 함께 국민당의 북벌을 멈추고, 북방 평야로 진출하려는 봉천을 몰아냈습니다. 그들은 함께 중국의 모든 것을 적절히 통제하게 되었지만, 그 뒤에 온 평화는 곧 새로운 딜레마를 가져왔습니다. 과연 쑨촨팡은 북부에 있는 그의 옛 스승에게 계속 절을 할지, 또 우페이푸는 그의 옛 제자가 그의 권위를 무시하도록 놔둘까요?

우페이푸의 베이징 정부와 쑨촨팡의 연합은 봉천 정부와 일본이라는 북부와 동부의 공동의 적들에 의해 보장되는 어색한 위치에 있습니다. 쑨촨팡은 격식을 차리고 통일된 국가의 모습을 유지시키는 한에는 연합 내에서 그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지속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요.

독일

1927년 북벌군의 전멸에 대한 독일의 중요한 역할은 베를린이 중국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1928년 국제 상하이 회의에서 모든 국가들이 중국 시장에 동등한 접근을 할 권리가 있다는 선언과 함께 약간은 누그러졌습니다. 이러한 '제한'에도 불구하고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독일의 관리들은 연합 지도자 쑨촨팡 및 우리 성장들과 일련의 협정을 제안했습니다. 국제 협정과 중국의 권위를 피해감으로써, 독일의 힘은 우페이푸의 북직예로부터 연합의 자치권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 대가로 독일의 영향력이 점점 더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 협정은 점차 빛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독일의 통제가 커져가고 국민들이 그들의 노동의 결실보다 더 큰 돈을 장군들과 외국인들의 주머니에 있는 것을 지켜보며, 많은 이들이 독일의 필요성에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연합과 독일의 관계의 본질은 앞으로 다시 고려되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내부 문제

독일의 영향력과 연합의 분권적 성격은 종종 지역의 불안을 야기시켰고, 이는 빠르게 처리되었음에도 여전히 큰 문제였습니다. 연합은 수많은 전복 세력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며, 비록 그들이 아무런 위협도 끼치지 못하더라도, 그들이 통제에서 벗어나도록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1926년의 실패한 북벌의 잔재이자 1932년 두번째 소규모 봉기의 잔재인 국민당 저항군은 우리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푸젠의 산악과 주요 해안 조계지에 남아 있습니다. 일관도의 추종자들은 외국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중국을 오랜 전통으로 되돌리기 위해 전념하고 있으며 산둥에서 남부로 이동해 동부 지방들 사이에 침투하고 있습니다. 후난뿐만 아니라 양광이라고 불리는 광둥과 광시는 사실상 자주적으로 운영되며 독립이라는 야망을 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을 면밀히 주시해야만 합니다.

"연합은 견뎌낼 것이다!"

  • 정부
    0% 중국 생디칼리슴당
    0% 중국 생디칼리슴당
    0% 국민당
    0% 국민당
    5% 주색협회
    19% 동아시아 총괄행정감사이사회
    7% 장난 협령단
    15% 안경군벌
    54%남경군벌
    0% 일관도 영향력

  • 국가 정신
    • 두드러진 도둑 정치
      지난 10년 이후, 쑨촨팡은 독점적인 독일의 경제 개발을 위해 중국 동부와 남부의 광대한 구역을 개방했습니다. 이미 부패한 거의 모든 군인과 관리들은 무기 밀반입부터 도난품 거래까지 모든 일에 연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연합 전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일일 정치력 -10%, 사단 회복률 -5%, 안정도 -15%, 전쟁 지지도 -5%
    • 난징위원회
      베를린을 대표해 연합의 지도에 대해 조언하는 난징위원회에는 독일군을 따라 중국군 사단을 개편시키기 위한 장교단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은 원수의 개인 사단을 무장시키고 훈련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세계대전의 교훈을 장교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사단 조직력 +5%, 최대 계획 수립 +5%
    • 칭다오와의 협업: 보통
      AOG에 의해 촉진된, 연합과 독일 간의 비공식적인 협정은 많은 이익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비용을 들여 왔습니다. 독일 기업들은 여러 해안 도시에서 특권을 받아 정식 명칭과 국법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양보를 받았습니다. 이제는 AOG의 영향력이 해안을 넘어 내륙 깊숙히까지 확산될 위험이 있습니다.
      기반시설 건설 속도 +5%, 민간 공장 건설 속도 +5%, 독일령 동아시아와의 무역 비용 -25%


쑨촨팡의 오성연합의 확장 버전. 저장, 장쑤, 장시, 안후이, 푸젠의 기존의 다섯 성에 더불어 국민당이 장악했던 후난, 광둥, 광시까지 손에 넣었다. 독일군은 국민혁명을 진압하고 직예군벌을 돕기는 했지만 우페이푸가 선통제를 복벽하는 것 이외에는 추가적인 요구를 들어주는 것을 거부하여 별로 이득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직예의 또다른 실력자로 떠오른 쑨촨팡은 독일의 요구를 승낙했고 자금과 무기, 병력을 지원받는 대가로 해안도시들을 마음대로 조계로 내주고 독일 기업의 경제적 이권만을 보장하는 등 매국행위를 저지른다.

이는 당연히 주민들에게는 인기가 없는 정책이었고 국민혁명 패배 이후 숨죽이고 있던 국민당과, 종말론을 추종하는 종교단체 일관도가 세를 불리고 심지어는 쑨촨팡의 부하들 사이에서도 반발이 나타난다. 결국 게임 시작 이후 독일 회사가 중국에 건설된 철도를 매입하려는 방침을 발표하자 쌓여있던 불만이 폭발하며 대규모 봉기가 일어난다. 게다가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독일에서 검은 월요일이 터지고 쑨촨팡 자신은 스젠차오에게 저격당하며 사망하며 상황은 통제 불능이 된다. 팔성연합 체제는 붕괴되고 쑨촨팡의 부하 천댜오위안은 안후이를 차지해 팔성연합 붕괴를 외치며 안경군벌을 이루고 푸젠 남쪽 끝에서는 국민당이 봉기하며, 북쪽의 산둥성에서는 승냥이같은 장쭝창이나 일관도의 교주 장톈란이 집권해 침공을 시작한다. 원래부터 팔성연합의 지배력이 약했던 광시, 광둥, 후난은 각각 루룽팅, 천중밍, 자오헝티가 차지하며 양광군벌과 후난군벌의 이름으로 독립하게 된다. 쑨촨팡의 부하들의 잔당은 치셰위안이 접수해 난징군벌이 된다.

초반부터 안경군벌, 국민당 좌파, 산동군벌[94]과 3면전쟁이 일어난다. 병력 수도, 공장도, 시작시 지배하고 있는 지역도 다른 적들 하나하나와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더 부패한 군벌이라는 특성상 디버프가 강하게 걸려있고 전선이 멀리 퍼져있어서 AI의 경우 3면전쟁 시점에서 광탈하기 십상이다. 적이 진군하면서 생기는 전선의 틈을 파고들어 병력을 하나하나 각개격파 하는 전략으로 나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강을 끼고 상대적으로 쉽게 막아낼 수 있는 산동군벌은 후순위로 하고 수도 난징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안경군벌이나 코어박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국민당을 먼저 처리하는 쪽이 더 효율이 좋다. 초반의 삼면 전쟁을 끝마치면 남경군벌에서 다시 오성연합(산둥성에 코어를 박을 경우 육성연합)을 선포할 수 있다.

친독 군벌이니만큼 독일 & 독일령 동아시아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건설 속도, 무기 생산량을 올리고 질 좋은 설계사를 고용하며 군사력에도 버프를 더하는 등 좋은 버프가 많이 있지만 중점, 디시전, 이벤트 등으로 이런 버프를 마구마구 뽑아먹다보면 AOG(시장자유주의)의 지지율이 상승하고 독일령 동아시아에 완전히 종속되어 역으로 공장을 상납하는 수준까지 가게 된다.

독일에 중국의 자원을 팔아먹고 국민당과 일관도를 탄압하는 등 한간짓을 열심히 해서 오성연합의 내부 재건이 어느정도 끝나면 후난과 양광에 전쟁 목표를 생성하고 코어를 박을 수 있다. 이 경우 이름을 다시 팔성연합 (산둥성에 코어를 박을 경우 구성연합)으로 바꿀 수 있다.

스스로 세력을 만들거나 천하 통일을 주도하거나 할 수는 없고 우페이푸가 친 남경 루트를 선택하면 친 직예로 분류되어 청나라와 같은 세력에 가입하게 되고 그외의 루트(친 안경, 만주 유신, 푸이 축출)를 선택하면 비동맹으로 분류되어 다른 세력에 가입하지 않는다.

8.3. 봉천정부


북방의 요새

1936년은 밝아오고, 봉천정부는 중국의 민국화라는 꿈의 최후의 보루로서 동북 지역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여러 다른 비밀들처럼, 이 꿈 역시 불편한 진실을 숨기고 있습니다. 중화민국의 봉천정부는 직예의 정통성에 이의를 제기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민주주의도 겉치레이며, 과거부터 그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지도 모를 권위주의적 독재국가입니다.

선양에 있는 의회는 부패했고, 권력은 독재적인 장군들, 부도덕한 철도 귀족들, 그리고 범아시아 이념을 주창하지만, 실제 속내는 검은 세력들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 가운데에 대원수 장쭤린이 있는데, 그의 야망은 크지만 직예의 힘과 일본의 영향력이 이를 막고 있으며, 지금은 이 둘 사이에서 정치적인 외줄타기를 강요받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분열된 정부 안에서 벌어지는 각종 권모술수 역시 방해요소입니다. 이 상황이 영원히 지속되진 않겠지만, 적당한 때가 왔을 때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다신 이루지 못할 겁니다.

남쪽과의 전쟁, 그리고 경제적 교류의 단절로 만들어진 막대한 비용으로 봉천은 휘청였고, 지난 몇년간을 재건을 위해 보냈지만, 아직도 재건하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군대 역시 예산부족으로 등한시되어 빈약하며, 개편되어야 합니다. 한편 날이 갈수록 영향력이 커져가는 일본은 우리에게 큰 위협임과 동시에 기회이기도 합니다. 우리 앞의 해로는 험하며, 국가라는 배를 생존으로 이끎은 물론 중국 전체를 재수복하기 위해선, 훌륭한 조타수가 필요합니다.

봉천의 특수한 사항들, 일본과의 관계, 그리고 내부 정치에 관한 설명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정치에 대한 설명

봉천은 4개의 주요 정치 파벌이 있습니다.

1. 광복회
퇴역 장성, 관료, 정치인 등이 어떠한 정치적 이념 없이 묶인 느슨한 연합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봉천에만 머무르는데, 이는 봉천을 제외한 곳에서는 어떠한 권력도 없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뇌물과 유혹이 오고가며, 누구든 간에 그들은 돈을 받은 사람의 뒤편에 서줍니다. 결과적으로 '광복회'는 의회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정치적 결정력도 없으며, 분열되어 있습니다.

2. 장씨군벌
충성파와 장군들의 집합체인 장씨군벌은 대원수의 정치력의 증가 이외의 특정한 이념은 없습니다. 겉으론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 장씨군벌의 지지자들은 공화국적인 이상에 관심도 없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이를 이용할 뿐입니다.

3. 교통계
북양정부 시절부터 존재하여 유일하게 정치적인 일관성을 유지한 교통계는 사리사욕을 좇는 철도와 전신 귀족들의 집합인데, 국가의 인프라를 두고 만철과 협화회와 경쟁 중에 있습니다.

4. 협화회
각각의 이익에 따라 모인 정치인과 로비스트들로 구성된 협화회는 만철의 이익을 대변하고, 때로는 다른 일본 자이바츠들의 의회 내 이익을 대변합니다. 각 구성원들의 이념과 사상은 다양합니다. 일본인과 공조해 장쭤린의 권력에 대항하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범아시아주의적 원칙을 지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특수한 사항들에 대한 설명

봉천정부는 불안정하고, 안팎으로 압박을 받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공통된 목표가 아니라면- 모순된 요인들의 융합입니다. 정당들, 정확히는 파벌들은, 국민들의 호응을 받는 대신 정부 기관을 장악함으로써 그들의 지지도를 증가시키는데, 이처럼 정당의 '지지도'는 정부와 여타 기관들을 장악한 수준을 나타내는 것이며, 장관들의 정책(능력)보다는 각 소속 파벌의 영향력을 늘이고 줄이는 선택, 포커스, 그리고 사건들을 통해 결정을 해야 합니다.

그 결과로, 플레이어의 최우선 목표는 각 파벌들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으로, 파벌들은 모두 권력이 너무 강해지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를 남용할 것입니다. 파벌들은 지지도가 높아지면 장관을 추천하는데, 장관들은 자기 자신의 신념이나, 소속 파벌, 혹은 나라를 위해 일할 것이지만, 때론 단기적이든 장기적이든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중요한 것은 협화회입니다. 정치에 대한 설명에 적혀있듯, 그들의 지지도는 일본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간접적 지표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영향력이 증가하면, 생산에서 보너스를 받지만, 정치력과 자치권에서 일정 부분 패널티가 있습니다. 협화회의 영향력 증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불가피해지므로, 주의깊게 살펴야 합니다.

일본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

일본은 봉천과 맺은 일련의 조약들을 통해 그들의 힘을 행사하며, 치외법권뿐만이 아니라 봉천 시민들과 동일한 거주권과 일할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대원수를 포함한 여러 중국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일본을 불편하게 하고 있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필수적이고, 영향력의 증대는 불가피합니다. 이러한 영향력 증대의 주역은 남만주 철도회사, 줄여서 주로 '만철'이라 불리는 기업으로, 그들의 최근 몇 년간의 수익은 일본 정부 예산의 4분의 1에 해당합니다.

동시에, 일본은 봉천과 그 부수이익 -봉천이 원하는 것- 을 원하는데, 봉천과의 협력과 봉천이 남부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일본에게 있어 시간과 돈 모두를 아낄 일석이조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일본은 더 많은 이익과 권력을 원하긴 하지만, 너무 밀어붙이면 장쭤린의 정치적 입지를 위태하게 할 수 있고, 그가 실각하면 그간 해왔던 세심한 노력들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그 결과 미약한 균형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장쭤린은 때우기식의 정책을 유지해 왔습니다. 일본과의 범아시아적 유대를 증진하면서도, 간간히 일본의 주장이 너무 나갔을 때는 이를 거절하고, 개인적으로는 일본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는 식으로요. 어떻게 플레이할지는 플레이어의 선택에 달렸지만, 주의깊게 살펴야 합니다.

"시작!"
카이저라이히의 세계 - 봉천 (펴기/접기)

세계대전이 시작될 때 사람들은 장쭤린마적이라고 했다. 별 볼일 없는 출신을 가진 별 볼일 없을 사람이라고.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을 등쳐먹을 하이에나라고. 그가 봉천성장이 되자 사람들은 단순한 기회주의자라고 했다. 운명의 장난으로 권력을 잡은 사람이라고. 그가 동북 3성을 지배하게 되자 사람들은 그의 군대가 산해관을 뚫을 수 없을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만주는 더 이상 변방이 아니었다. 도시들은 거대한 상업 중심지로 변해있었다. 시베리아부터 보하이해까지 이어진 철로에서 새로운 번영이 피어났다. 장쭤린은 봉천에 중국 최대 산업체를 세웠다. 소총, 기관총, 천둥과 같은 대포로 무기고를 채웠다. 바람 부는 만주 벌판에 중국에서 제일 돈 잘 받고, 제일 잘 먹고, 제일 잘 규율잡히고, 제일 근대화된 군대를 만들었다. 그가 베이징을 점령하고 그의 군대가 화베이 평원을 가로지르자 사람들은 그를 호랑이라고 불렀다. 묵던의 덕망있는 원수라고. 봉천의 대원수라고. 옥수의 경쟁자라 자칭한 장쭤린은 중국에서 제일 권력있는 자들 중 하나가 되었고 오랫동안 그를 비난하던 이들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 승리의 순간과 모처럼 찾아온 기회는 우페이푸와 독일 카이저가 단번에 빼앗아버렸다. 베이징 주변의 장쭤린 군대는 박살나 만리장성 너머로 밀려났다. 최고의 군대라도 패배할 수 있었다. 전세를 역전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했다.

그후 1년 동안 장쭤린은 동북 3성의 봉천정부를 중국 공화주의라는 꿈의 마지막 보루로 만들었다. 독일의 제국주의와 만주족 폭군의 손아귀에서 중국 전토를 탈환할 수 있는 곳. 하지만 그가 가진 선양의 의회는 부패하고 분열되어 있었다. 그의 리더쉽은 대총통이라기에는 너무 독재적이었다. 베이징은 도쿄가 봉천 경제를 쥐려 하는 것을 보고 장쭤린을 일본의 괴뢰라고 불렀다. 청은 북동부를 보강하고 장쭤린의 부하들이 제 무덤을 파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게 익숙한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장쭤린은 야망이 넘치는 인물이다. 청의 국력과 일본의 힘도 그의 목표를 흔들리게 할 수 없다.

언젠가 베이징은 다시 한 번 그의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중국 전역이 그의 것이 될 것이다.#

  • 정부
    0% 동북 생디칼리슴당
    0% 동북 생디칼리슴당
    0% 국민당
    0% 중국 사회당
    0% 민주입헌당
    14% 협화회
    18% 교통계
    40%광복회
    28%장씨군벌
    0% 한황실 계열

  • 국가 정신
    • 낙후된 산업
      봉천은 동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산업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 뒤에는 구식 설비, 비효율적인 관행, 그리고 심각한 수준의 경영적 무능이 감춰져 있습니다. 막대한 투자와 지원을 업은 광범위한 개혁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소비재 공장 2.0%, 건설 속도 -2.00%, 생산 효율성 한도 -5.00%, 공장 생산량 -10.00%
    • 부도덕한 통치 방식
      봉천정부는 풍토적인 부패와 무능, 권력 남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중국사에서 이례적인 일은 아니지만, 이러한 통치 방식은 정부의 적절한 기능을 방해하고, 정권에 대한 지지를 저해하고 있습니다.
      정치력 획득 -10%,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3%, 안정도 -20.00%, 전쟁 지지도 -20.00%
    • 부족한 투자
      직봉전쟁으로 초래된 봉천의 경제 붕괴가 재정적 기반과 신뢰도를 심각하게 저해했습니다. 정부는 채권자를 대부분 상실했고, 민간기업은 옵션이 심각하게 제한되었습니다. 국내외를 가릴 것 없이 봉천에 투자할 배짱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소비재 공장 2.5%, 건설 속도 -2.50%
    • 관동군
      관동군은 수십 년간 만주에 주둔해왔지만, 그 영향력을 결정적으로 확립한 것은 1925년 궈쑹링의 반란 당시 선양으로 본거지를 옮기면서였습니다. 현재 사실상의 점령군으로서 기능하는 관동군은 철도를 보호하고, 물자를 원조하며, 우리 정부에 '자문'을 제공합니다. 불행하게도, 무시했을 땐 끔찍한 결과가 기다리는 자문을요.
      사단 조직력 -5.0%, 사단 회복률 -5.0%, 계획 수립 속도 +5.0%, 최대 계획 수립 +5.0%
    • 만철 영향력
      만철의 경제적 영향력은 봉천 전체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가끔 이로울 때도 있지만, 보통은 다른 사람들에게만 이로운데다가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를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봉천정부는 일본의 영향력에 저항하고자 최선을 다하지만, 영원히 저항할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건설 속도 +7.00%, 생산 효율성 한도 +7.00%
    • 지역주의자들의 불만
      우리 정부의 중국 통일이라는 목표는 항상 지역주의 이념과 충돌해왔는데, 정치에 무관심한 대다수 국민들은 통일된 중화민국이라는 이상보다도 봉천 지역이 우선이라는 지역주의를 더 선호합니다. 비록 장쭤린이 지도자가 되기 위해 지역주의자들의 논리에 편승하긴 했었으나 지금, 지역주의로 인해 만리장성 남부로 진출하여 베이징을 수복하고 중국을 재통일하는 원대한 계획이 틀어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전쟁 지지도 -15.00%


1927년 직예군벌과 독일에 의해 세워진 청나라에 의해 봉천군벌이 만주로 도망친 상태다. 청 정부의 적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중화민국의 정통성을 계승했다고 주장하는 정권이나 실상 일본과 트란스아무르 정부에게만 인정 받을 뿐이며 일본에게 상당히 의존하는 형편. 심지어 양쯔강 패치 이전까지는 일본의 속국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패치 이후에는 일본의 독립보장을 받고 있다.

시작시 장쭤린의 관제정당 광복회(권위민주주의)가 여당으로 집권해 있고 야당으로는 장쉐량과 만주의 군벌들로 구성되어 마적, 군벌이라는 출신을 상징하는 장씨군벌(후견전제주의), 옛 북양정부의 요인들로 구성되어 자칭 중화민국의 후계자로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교통계(사회보수주의), 친일 자본가로 구성되어 일본의 자본 잠식과 친일적인 성향을 상징하는 협화회(시장자유주의)가 공존하고 있다. 이들은 게임 시스템상 야당이라고 표시되지만 이는 국민들의 지지도나 국회에서의 의석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내부 파벌로서의 영향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어느정도 선까지는 무해하거나 보너스를 주지만 너무 과도하면 큰 디버프가 걸리기 때문에[95] 각각의 영향력을 잘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시장자유주의로 나와있는 협화회(Concordia Association)로 만철을 비롯한 일본 자본의 만주 침투를 나타낸다. 협화회의 지지도가 너무 낮으면 일본이 원조를 중단해 버리며[96] 반대로 협화회의 지지도가 높아질 경우 안정도와 정치력이 깎이지만 공장 생산량, 건설 속도 등 높은 산업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97] 그렇다고 일본이 주는 꿀에 너무 취해 있으면 종국에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고 디시전을 이용해 전쟁 지지도를 충분히 높이면 청에 선전포고 할 수 있다. 청에게서 베이징을 점령했다면 천하의 판세가 봉천에게 기울면서 이후 어떤 방침으로 통일을 할지 결정할 수 있다.

장쭤린 자신이 총통에 오르기에는 동북 마적 출신에 정치적 경력도 일천한지라 평판이 부족하기 때문에 선양에서 회의를 개최해 다른 세력, 특히 천중밍과의 제휴를 통해 평판을 올리려고 한다. 친 청/친 직예, 친 국민당 좌파/우파, 티베트, 몽골을 제외한 중국의 모든 국가들이 참여할 수 있지만 AI의 경우 친봉천이 아니라면 잘 참여하지 않는다. 회의를 성공시키고 싶다면 천중밍과 쑹칭링[98]의 요구를 잘 따라서 일본과 손절하고 개혁을 약속하는 쪽이 좋다. 어차피 다른 군벌들은 땅 달라거나 지지해 줄 테니 자치권을 달라는 말밖에 안한다. 그런 놈들까지 안고 갈 수 있다면 좋지만 필요하다면 과감히 손절해야 한다.

회의가 성공하면 협상 통일 루트가 열리면서 세력 '안국군'을 창설할 수 있는데 회의에 끝까지 남은 군벌들이 다함께 안국군에 가입한다. 양광군벌의 경우 회의장에 끝까지 남아 있으면 아예 합병도 이루어진다. 이후 회의에 참여하지 않은 국가들을 공격하고 세력에 남아있는 국가도 하나하나 흡수하며 최종적으로 일본을 손절하고 중국을 통일하면 된다. 이상적이고 쉽게 통일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성공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특히 협화회 지지율이 높다면 천중밍과 다른 군벌들이 합작을 거부하기 때문에 초대장도 못 보내고 무력 통일 루트가 열릴 수도 있고, 패치가 계속 진행되면서 협상 루트를 밟아도 연성주의자들의 지지를 얻기 힘들어졌다. 연성주의자들의 지지를 얻으려면 0.16 패치 기준으로 양광에 계속 천중밍이 집권해 있어야 하며 사천은 슝커우나 뤼차오가 집권해 있어야 한다. 협상 통일 루트를 완료하면 장쭤린은 퇴진하고 장쉐량이 지도자가 되는데, 0.16 패치 이후 '1923년 헌법의 복원' 중점만 완료하면 장쭤린이 퇴진한다. 그리고 협상 루트를 타면 다른 군벌들의 장군, 제독, 원수 중 일부를 영입할 수 있다.

회의가 실패하면 무력 통일 루트가 열린다. 이 경우 봉천의 막강한 무력으로 강제로 중국을 통일하려 시도한다. 그러나 정통성은 무력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마적 출신인 장쭤린은 은퇴하고 유학파 엘리트인 아들 장쉐량을 지도자로 세우려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봉천에 주둔한 관동군과 장쉐량의 라이벌 양위팅이 서로 동맹을 맺고 장쭤린 납치를 시도한다. 협화회의 지지율이 낮다면 이 음모는 실패하고 장쉐량이 집권해 일본과 적대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일본의 꿀을 빠느라 협화회의 지지율이 높아진 상태였다면 장쭤린은 강제로 하야하거나 사망하고 양위팅이 협화회의 대표로 취임해 일본에 간도 쓸개도 다 빼주다가 결국에는 일본의 속국으로 들어가 버린다.[99]

국민당 좌파가 살아남았다면 국민당 좌파와 협상을 해서 국민당의 북벌 중 협공을 할 수도 있고 가만히 있을 수도 있다. 이후 재협상에서 국민당의 요구를 들어주면 국민당의 괴뢰국인 북동 자치령으로 바뀌고 장쉐량이 지도자가 된다. 다만 괴뢰국이 되어도 급진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집권하는 건 아니다.

8.4. 운남군벌

운남군벌의 상황

1909년 운남 사관학교를 설립하면서 운남군벌이 탄생했습니다. 1911년 신해혁명이 터진 이래로 운남 지역은 정예병과 중국 공화주의에 대한 충성심으로 유명해졌습니다. 1915년 운남은 홀로 위안스카이에게 저항해 호국전쟁을 선포하고 제정을 무너뜨렸습니다. 승리를 거둔 운남은 팽창주의 정책을 추진하며 주변 지역에 통제권을 행사했습니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던 운남의 패권은 윈난 바깥에 주둔한 수많은 부대의 통제권을 상실하면서 그 대가를 치렀습니다. 사천을 향한 군사적 모험은 실패로 끝났고 이로 인해 운남군벌 내에서 내분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구핀전 장군이 일시적으로 탕지야오를 권좌에서 끌어내는데 성공했지만, 충성파 군대를 다시 모은 탕지야오가 힘겹게 승리를 거두고 구핀전을 격파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래로 운남군은 더 이상 하나로 뭉친 군대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학우이자 형제였던 이들이 서로 경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북벌 동안 운남을 통치하던 군벌 탕지야오는 광저우 국민당 정부와 거리를 뒀습니다. 한편 주페이더 장군이 이끄는 망명 운남군은 국민혁명의 기치 아래에서 집결해 쑨원 선생의 군사주의 파벌이 되었습니다. 북벌이 비극적으로 끝난 이후 자포자기한 국민혁명군 장군들은 남쪽 운남으로 돌아가겠다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어마어마한 소모를 입은 그들 중 많은 이가 최근 탕지야오가 정복한 땅인 구이저우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탕지야오는 거기서 오랜 적수를 무너뜨리고자 했지만, 룽윈을 위시로 한 장군진은 두들겨 맞은 국민혁명군에게 은신처를 제공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받아들여졌습니다. 과거에 경쟁관계였던 이들이 공존하는 것이 별로 쉽지는 않았지만, 그들 모두가 중국의 새로운 지배자가 누군지 눈치챘습니다. 직예군벌과 그 뒤를 봐주는 독일 후원자들은 운남 자치권을 가만히 놔두려 하지 않았고, 운남의 여러 세력들은 살아남기 위해 협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운남군은 유능한 야전 지휘관들과 정예병을 갖췄지만 통일된 지휘구조가 없었기 때문에 4차 직봉전쟁에 대담하게 참전했을 때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새로운 한 해가 남부 지역에도 찾아온 이 시점에 탕지야오의 군벌 지배력은 강력하다고 말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입니다. 탕지야오가 고수하는 전제주의와 무능한 형제 탕지위에 대한 노골적인 호감으로 인해 룽윈을 포함한 고위 장교 중 다수가 그와 거리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청에 복종한 일도 그의 위신을 손상시켰고, 결국 탕지야오는 전 국민혁명군 부대에 명목상의 통제권밖에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운남 장교들 사이에서 정치적 긴장이 날로 고조되고만 있는 가운데 탕지야오가 한번만 실수한다면 그것이 마지막 행보가 될 지도 모릅니다.

"정말 신나는구만!"

  • 정부
    1% 국민당 운남 특별지부
    1% 신운남사회당
    1% 국민당
    4% 중국 농공민주당
    16% 운남 건국전군
    6% 서남 산업단
    12% 운남 건국전군
    15% 신광서군벌
    43%당씨군벌
    1% 소수민족주의자들

  • 국가 정신
    • 탕지야오의 통치
      탕지야오는 1913년 차이어가 위안스카이에 의해 제거된 이래로 윈난성을 통치해왔지만, 그런데도 그는 지난 20년간 대륙 전역에 걸친 수많은 공화주의자의 원정을 지원해왔습니다. 이러한 원정들은 대가를 치러야만 했는데, 탕지야오는 이를 아편 무역의 확대와 농민에게 매겨진 높은 세금으로 기꺼이 지급했습니다. 이는 느리지만 점차 성 내의 시민소요를 확산시켜나갔으며, 동시에 한때 충성스럽던 장군들과 새로이 등장한 경쟁자들이 협력해 탕지야오에 맞서려 계획을 세웠고, 기습하기에 최적의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운남의 국경을 확장하는 데 관심을 둔 그와 중국의 사건에 통제력이 약해진 독일 정부의 모습은 탕지야오에게 이 산지투성이의 성을 위한 더 큰 야망을 품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05, 안정도 -15.00%, 전쟁 지지도 -15.00%
    • 운남 수출경제
      윈난 성은 농업과 광업 양쪽으로 막대한 양의 자원이 매장된 곳으로, 이는 우리 성을 버마와 인도차이나 양쪽을 통하는 주요 수출지대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성은 팔성연합의 철도와 북베트남의 전월철도를 모두 거치는 독일 철도망의 운송권 독점에 종속되었기도 합니다. 독일에 대한 의존을 바꿀 명분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현재 우리는 아편이나 주석 같은 많은 상품을 독일제 제품 및 라이선스 비용으로 교환하고 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20, 자원 획득 효율 -20.00%, 사단 회복률 -5.0%, 생산 효율성 한도 -10.00%, 공장 생산량 -10.00%, 무역 거래에의 평판 획득치 -20.00%
    • 너무 큰 군대
      사단 훈련 시간 +20.0%, 소비재 공장 5.0%, 공장 생산량 -15.00%, 계획 수립 속도 -25.0%, 최대 계획 수립 -25.0%, 사단 한계 +5
    • 독일 경제의 거주 주석 통제
      주로 윈난성 거주 마을에 집중된 주석 생산은 중국 전체를 통틀어 가장 높은 품질의 하나로, 프랑스가 그랬듯 이제는 독일이 전월(쿤밍-하이퐁) 철도를 생기있고 활발하게 만드는 것에 특별히 관심을 보입니다. 주석 무역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높은 수익을 보여주지만, 우리가 그로 받는 주석 상품의 실이익은 크게 줄어드는 중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 중심엔 우리 주석의 순도를 우리가 가진 장비로는 해결할 수 없어 결국 우리가 독일인에게 말도 안 될 정도로 헐값에 팔도록 강요받습니다. 이 값싼 주석은 동아시아 일반행정 감사회로 보내져 재련 과정을 거치며 순도를 높이고, 그 다음엔 국제 시장에 높은 가격으로 전매됩니다. 만일 우리가 언제라도 독일의 독과점으로부터 이익을 되찾길 바란다면 거대한 개혁에 착수해야만 하며, 우리의 경제는 그런 노력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독일령 동아시아)목표국의 민간산업 +60.00%


탕지야오가 실각하지 않고 지도자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원 역사대로는 국민혁명 중 우페이푸와 동맹했다가 도리어 국민당에게 토벌당하지만 카라에서는 국민당이 패배하면서 후퇴하던 국민당 우파 장군들과 병력을 흡수하면서 오히려 더 세력이 강해졌다. 그러나 삽시간에 중국의 1인자가 된 우페이푸에게는 미치지 못했고 우페이푸 견제를 위해 4차 직봉전쟁에서는 봉천의 편으로 참전하지만 아무것도 못하고 전쟁이 끝나버린다. 우페이푸와 청나라에 고개를 숙이면서 자존심을 구긴 것을 제외하면 딱히 손해본것은 없었지만 이 과정에서 탕지야오의 리더십은 많이 손상되었고 세력 확장을 위해 끌어들인 국민당 장성들은 도리어 부담이 되는 상황.

팔성연합이 붕괴되면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할 수 있다. 구이저우성은 탕지야오의 영역이나 동쪽 끝의 전위안 현은 호남군벌이 소유하고 있어서 분쟁이 있어왔지만 팔성연합이 무서워서 대놓고 넘보지는 못하던 차에 팔성연합이 붕괴되고 호남군벌이 단독으로 남게되며 침공을 준비하게 된다. 탕지야오는 당장 침공할 것을 명령하지만 부하들은 공격을 재고하고 내실을 다질 것을 요구한다. 여기가 첫 분기점으로 당장 침공을 명령하면 부하 장성들과 병력들에게서 불온한 움직임이 일어나는데 이를 잘 해결하면 탕지야오는 살아남지만 시간을 끄느라 다른 주변 세력의 어그로를 사고 고립주의에 빠지는 탕지야오 독자 루트로 들어가게 된다. 반대로 부하들의 말을 듣고 내실을 다지기로 한다면 불온은 일어나지 않고 천중밍의 연성주의론을 받아들여 서로 협력관계를 구축한다. 이 경우 친 연방 루트로 들어가게 된다.

독자 루트나 친 연방 루트에서는 중국의 서남쪽 끝에 고립되어 있다는 특성상 중원 국가들과의 전쟁에 끼어들기보다는 티베트, 독일령 동아시아, 시암, 버마 등 중국 외부의 국가들을 공격해서 영토를 한입씩 집어먹도록 플레이하게 된다. 친 연방 루트에서는 여기에 천중밍의 양광군벌과 협력해 호남군벌, 사천군벌, 최종적으로는 청나라까지 멸망시켜 천중밍이 연성주의로 중국을 통일하도록 돕는 길이 추가된다.

그러나 장성들의 불온을 진압하지 못하거나 장성들의 권력을 빼앗으려고 하면 룽윈이 탕지야오를 암살하고 운남 내전이 시작된다. 룽윈, 주페이더, 후뤄위, 루한이 내전에 뛰어들며 내전이 장기화되면 이 참상을 보다 못한 주더까지 중립을 깨고 참여한다. 내전에서 승리할 수 있는 세력은 룽윈, 주페이더, 주더인데 주더는 자신이 정권을 잡으려고 내전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참여한 것이기 때문에 친구인 주페이더나 장보쥔에게 정권을 넘겨준다.

룽윈 루트는 탕지야오 독자루트와 유사하다. 동남아시아를 휘저을 뿐 중원의 전쟁에는 거의 개입하지 않고 방어에 집중한다.

주페이더가 승리하면 국민당 우파 루트로 들어서게 되며 스스로를 쑨원과 국민당의 정당한 계승자로 선언하고 전 중국 정복에 매진한다. 양광의 리쭝런 정도를 제외하면 국민당 우파의 편을 고정적으로 들어주는 국가는 거의 없기 때문에 혼자서 전 중국을 다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게 편하다. 대신 국민정신이나 이벤트 등으로 얻을 수 있는 성능 면에서는 중국의 모든 국가를 통틀어서 수위권에 든다.

장보쥔이 정권을 잡으면 국민당 좌파 루트로 들어가고 동부 해안에서 발흥하는 국민당 좌파에 복종하게 된다. 나중에 가면 국민당 좌파의 속국으로 들어가고 이름을 남조 자치구로 바뀐다.[100]

8.5. 마가군벌

마가군벌 소개

마가군벌은 1880년대 이래로 청나라 아래에서 일했던 수많은 중국인 총독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씨 가문부터가 하나의 거대한 가문이 아니라 지배 지역에서 권력을 나누어 가진 세 가족들의 통합체일 뿐입니다. 첫 번째 가족은 1918년 가주 마안링이 죽은 이후부터 그늘에 가려진 상태입니다. 지금은 주로 두 번째와 세 번째 가족이 군벌을 주도하고 있으며, 이후 군벌은 여기서 번창하는 중입니다.

신해혁명이 일어났을 때 마안링이 이끌던 마가군벌은 처음에는 청나라의 편을 들었지만, 패배가 명백해지자 청을 배신하고 공화국 편을 들었습니다. 이후 마가군벌은 북쪽의 몽골과 남쪽의 티베트 양쪽 모두에게 공화국이 정당한 정부라는 사실을 강제로 인정받으며 서북부 중국 내에서 안정을 다졌습니다. 조만간 1918년 마안링이 사망하자 마가군벌은 크게 두 파벌로 갈라졌습니다. 간쑤와 닝샤를 지배하는 마부팡이 주도하는 일파와 조만간 칭하이의 지배권을 손에 넣게 될 마치가 주도하는 일파가 바로 그들입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군이 남부 간쑤를 점령하자 군벌 구성원들은 한 편으로 모일 수 밖에 없었고 펑위샹 아래로 집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국민군의 패배가 점점 더 가시화 되자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군벌들은 편을 바꾸어 직예군벌 편으로 돌아섰습니다.

직예군벌이 청 황조를 복원하는 동안에도 충성을 지킨 마씨 일가는 비록 모든 파벌들이 중국 영토를 지키기 위해 목숨걸지는 않을지라도 대체로 신뢰할 수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항상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청 황조의 중요한 일원으로 발돋움한 지금은 쑤이위안까지도 지배합니다.

"세 가족은 번창할 것이다."

  • 정부
    0% 혁명위원회
    0% 국민통합전선
    0% 노동자농민연합당
    0% 서북 민주사회당
    0% 서북 민주주의 동맹
    0% 서북 민주자치연맹
    23%시닝 민정
    17% 닝샤 민방위기구
    45%텐수이 군정
    15% 시닝 군정

  • 국가 정신
    • 간쑤 초토화
      반봉천전쟁 때 마가군벌이 국민군 편에 들어간 이후, 하부 간쑤와 칭하이 북부 그리고 닝샤 일부가 국민군에게 합병당했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군벌의 주요 무기생산창인 텐슈이 공창이 가장 피해입은 곳이 되었습니다. 국민군은 그들이 쥐고있는 몇몇 안되는 지방을 전쟁 자금 확보를 위해 얼마 안되는 자원마저 쥐어짜야만 했고, 그 결과 이 지역의 민간 산업과 무기공창은 황폐화되었습니다. 1926년 마가군벌의 배신으로 간신히 피해를 제한할 수 있었던 반면에, 마푸샹이 간쑤보다 닝샤와 쑤이위안 내부의 문제에 전력을 쏟고있어 간쑤는 오늘날까지 복구가 완료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0, 생산 효율성 한도 -10.00%, 생산 효율성 성장 -10.00%, 공장 생산량 +10.00%
    • 분산된 사회
      중국의 북서쪽은 일반적으로 동쪽 지역보다 인구가 적습니다. 닝샤와 칭하이 그리고 간쑤 북부 같은 지역은 거의 유목민이 살며 인구가 집중된 도시같은 곳이 거의 없습니다. 단 한가지 장점은 우리 사람들이 말을 잘 타게 해준다는 것과 사보타주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단점으로, 기꺼이 정착하려는 사람들이 부족해 우리의 기술 역량을 더욱 후퇴시키고 있습니다.
      기병 공격 +5.0%, 기병 방어 +5.0%, 연구 속도 -5.00%, 공장 폭격 취약도 -20.00%, 사단 한계 +5
    • 한족회족의 분리
      유교적 이상과 이슬람적 이상을 통합하려는 마푸샹의 노력으로 가까스로 회족들을 북서쪽의 한족으로 동화시키고 있지만, 대부분의 회족들은 여전히 짐승으로 멸시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진실되게 불식시키려면 훨씬 더 많은 조율이 필요할 것이므로, 지금으로써는 그들과의 협상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안정도 -5.00%, 전쟁 지지도 -5.00%, 무역 거래에의 평판 획득치 -25.00%


겉으로는 마가군벌로 묶여서 표시되지만 내부적으로는 남부의 청해군벌과 북부의 감숙, 영하군벌로 나뉜다. 시작시 지도자는 간쑤의 마푸샹이나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사망하고 칭하이의 마린이 지도자에 오른다.

남부에서는 일단 마린(사회보수주의)이 주도권을 잡았지만 그의 조카 마부팡(국민대중주의)은 삼촌을 비난하며 정권을 탈취하려한다. 북부는 닝샤의 마훙빈(권위민주주의)과 간쑤의 마훙쿠이(후견전제주의)사이에서 분열되어서 서로 싸우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남부의 마린과 마부팡 사이에서 권력투쟁이 주로 일어나지만 북부에서의 집안싸움이 한쪽으로 결판 나면 남부에서 주도권을 빼앗아온다.

마린은 국민당, 연성주의, 봉천과 동맹할 수 있고 마린을 제외한 셋은 친 직예로 분류되나 중원의 전쟁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고 주로는 위수 지역을 놓고 티베트와의 전쟁에 집중한다. 위수 지역의 분쟁은 디시전으로 결정되며 분쟁이 고조되다가 결국에는 티베트와의 전쟁으로 이어진다. 전쟁이 시작되면 몽골은 마가군벌을, 사천군벌은 티베트를 각각 공격한다.

마가군벌의 지도자가 마훙쿠이가 아니고 국민당 좌파가 살아서 북벌을 성공했으면 협상으로 괴뢰국 휘장 자치령이 될 수도 있다.

8.6. 산동군벌


1936년, 산동의 전환점

산둥성은 독일과 공사관 도시에게 가장 중요한 도시들을 빼았겼습니다. 한때 일본과 독일의 전쟁으로 황폐화되었던 칭다오 항구는 이제 독일 제국해군과 동아시아 총괄행정 감사이사회의 민간 무역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항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지난은 산동의 실권자인 장쭝창의 완벽한 본거지가 되었습니다. 장쭝창은 1911년 표면적으로는 산동혁명군을 이끌기 위해 산둥에 오기는 했지만 얼마 안가 도박과 여색이 그의 주요 활동이 되었습니다. 지난은 마치 '개고기 장군'과 같이 타락하고, 수익이 많으며 처음에 계획했던 것보다 방어가 약하게 되었습니다. 태산의 6600계단을 오르면 일관도의 본부가 있습니다. 신비롭고 '성스러운' 장톈란은 그곳을 산둥에서 가장 안전하고 도덕적으로 바른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1936년까지 산둥의 주민들은 단절된 지난과 웨이하이웨이 사이의 도로와 심각한 가난함에 시달려왔습니다. 구원은 지난 근처나 태산의 정상에서나 찾아볼 수 있습니다.

"관심 없는데, 열차가 늦었군."

카이저라이히의 세계 - 상청 (펴기/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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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0% 사회주의 청년단
    0% 반일단결회
    0% 국민당
    0% 진보당
    7% 귀의도
    0% 일신천도룡화회
    0% 연구계
    21%자선회복회
    42%장쭝창 군벌
    28%일관도

  • 국가 정신
    • 만연한 마약 거래
      장쭝창의 약점인 아편은 산둥 시민들에게 퍼져있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있습니다. 마약 가격이 오르면서 폭력 사건과 강탈 사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관도와 런츠는 마약 거래와의 전쟁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원 획득 효율 -10.00%, 안정도 -5.00%
    • 개고기 장군
      그의 악명높은 행실로 이런 별명이 붙여진 장쭝창은 같은 편 군벌들 사이에서조차 관습과 도덕에 대한 완전한 무시로 비난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특징들은 특정 종류의 추종자들이 따르는 무시무시한 명성이 있게 하였습니다. 장쭝창은 공개적으로 그의 부인이 몇 명인지, 재산이 얼마인지, 또 가장 중요한 점으로 부하가 얼마인지 모른다 하여 붙여진 '삼불장군'이라는 별명을 인정합니다. 그의 행실과 함께 이런 점들은 장쭝창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들고 그의 진정한 목표와 잠재성을 알기 어렵게 합니다.
      육군 경험치 획득량 매일 +0.05, 일일 후견전제주의 지지 +0.01
    • 존경받는 스승님
      악명 높은 장쭝창을 태산 정상에서 전향시킨 것으로 세계의 이목을 끈 장톈란은 아래 지난의 만연한 부패와는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자애로운 것으로 유명하지만 동시에 베일에 싸인 장톈란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으며, 그의 수도원 요새를 넘어 멀리까지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징병 가능 인구 1.00%, 일일 국민대중주의 지지 +0.01
    • 북쪽으로의 피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남쪽의 혼돈을 피해 산둥으로 피난합니다. 군벌들의 높은 세금에 떠밀리고 일관도의 구원의 약속에 이끌려, 장쭝창의 완화된 통치는 최소한 일시적인 피난처를 제공해줍니다. 이 난민들의 운명은 누가 됐든지 지도하게 될 사람에 달려 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05, 월간 인구 +5.0%, 일일 국민대중주의 지지 +0.01


중국, 아니 카라 세계관 전체를 통틀어도 손꼽히는 막장국가. 장쭤린의 부하였던 장쭝창은 산둥성을 차지한 상태에서 3차 직봉전쟁에서 장쭤린이 즈리성을 빼앗겨 만주와 연결이 단절되며 고립되었다. 장쭤린은 4차 직봉전쟁에서 장쭝창이 자신을 도와 싸워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독일 정보부에서 이 정보를 입수해 장쭝창을 협박했다. 독일의 식민지인 칭다오웨이하이의 영향력으로 독일에 거역할 수 없었던 장쭝창은 장쭤린을 배반하고 4차 직봉전쟁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전쟁이 끝난 이후 청나라와 우페이푸에게 굴복한다.

이 과정에서 산둥성은 전쟁을 피하게 되고 독일 식민지를 통해 자본까지 들어오면서 전쟁을 피하면서 돈을 벌러 온 난민들로 넘치게 된다. 타이산을 중심으로 세력을 얻은 신흥종교 일관도의 민병대는 규율 따위는 전혀 없는 장쭝창의 군대를 대신해 산둥성의 치안을 지키고 구호활동을 하면서 난민들 사이에서 교세를 불린다. 장쭝창은 아편에 중독되어 골골대다가 일관도 도사에게 치료를 받는다. 일관도의 교주 장톈란은 이를 기회로 장쭝창을 직접 입교시켜 홍보수단으로 삼는다. 청나라에 충성하는 장군 쑹저위안은 투철한 유교 정신으로 무장한 인물이었고 무절제한 군벌 장쭝창과 수상한 신흥 종교 일관도가 산둥성을 개판으로 만드는 것을 보며 취푸연성공 쿵더청과 함께 이들을 쓸어버릴 준비를 한다.

게임이 시작되면 장쭝창을 염탐하던 쑹저위안의 스파이가 장쭝창에게 꼬리를 잡히게 된다. 여기서 베이징으로 가는 길을 앞질러가서 급습하면 쑹저위안의 음모는 실패한다. 이후 장톈란을 지난으로 유인해 처단해서 일관도를 궤멸시키면 장쭝창 루트(후견전제주의)가 열린다. 반대로 타이산으로 직접 장톈란을 죽이러 가는 길을 선택한다면 일관도의 복병에 장쭝창이 사망하고 신정국가 상청천국을 선포하며 일관도 루트(국민대중주의)가 열린다. 한편, 처음에 쑹저위안을 놓친다면 쑹저위안이 베이징에 장쭝창의 비리를 고발하며 장쭝창은 감옥으로 들어가고 쑹저위안 루트(권위민주주의)가 열린다.

장쭝창 루트에서는 청나라가 약해지면서 다시 장쭤린에게 빌붙고 남쪽의 팔성연합의 개판을 틈타 침공을 개시한다. 남경군벌, 안경군벌, 국민당 좌파를 모두 멸망시켰다면 육성연합으로 이름을 바꾼다. 남경군벌의 치셰위안과 봉천군벌의 양위팅도 한간이지만 장쭝창은 그보다 3배 더하게도 독일, 일본, 공사관 도시에 모두 점령지의 이권을 팔아먹고 군자금과 도박, 아편 자금을 얻는다. 그 셋 중 특히 가까운 것은 일본으로 봉천이 일본을 손절해도 일본의 꿀을 열심히 빨며 아예 봉천과는 별도로 공영권에 가입해버리기도 한다. 장쭝창이 사망할 경우 쑨뎬잉이 그 뒤를 잇는다.

일관도 루트에서도 남부를 공격하는 것은 동일하다. 대신 일관도는 장쭝창의 강력한 군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남부 이곳저곳에 퍼진 일관도 신자들을 이용해 점령지에서 민병대를 불러낼 수 있다. 여기도 장쭝창 못지않게 막장으로 아편 매매를 권장하고 인신공양을 시행하며 외국인들을 박해하는 등 야만적인 행위가 드러난다. 일반적으로는 비동맹으로 분류되지만 푸이가 우페이푸에 대항해 친위 쿠데타, 만주유신을 감행하면 이에 도움의 손길을 제공할 수 있고 성공할 경우 친 청으로 분류되어 청나라와 같은 세력으로 들어가게 된다. 게임 후반이 되거나 만주유신이 실패하면 청나라가 산동군벌을 공격해오는데 이 경우 역으로 청나라를 삼켜버리면 푸이를 바지사장으로 내세우고 스스로 청나라가 선언해서 전 중국을 정복할 수도 있다. 장톈란이 사망하면 아내 쑨쑤전이 뒤를 잇는다.

쑹저위안 루트는 산동군벌의 유일한 제정신 루트로 남부를 공격하지 않고 장쭝창과 일관도로 엉망이 된 산둥성을 회복하는데 주력한다. 물론 쑹저위안의 집권에 도움이 된 연성공에 대한 보답을 하는 과정도 있다. 일반적인 성향은 친 직예이지만 쑹저위안은 우페이푸가 아니라 푸이에게 충성을 다하기 때문에 만주유신이 성공하면 친 청으로, 실패하면 비동맹으로 분류된다. 쑹저위안이 사망하면 리징린이 그 뒤를 잇는다.

8.7. 산서군벌

산서군벌

산서군벌은 옌시산이 이끄는 중국의 군벌국입니다. 그들이 직예군벌에게 영토를 빼앗기고 청나라가 복원됨에 이어, 산서는 예전보다 훨씬 더 고립되어 갔습니다. 산서는 자신의 땅이 침략당하지 않는 한 다른 중국 내의 분쟁에 개입할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옌시산과 많은 국민들이 현재 청나라가 점령하고 있는 산시(산서)성과 산시(섬서)성의 그들의 적법한 영토가 반환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합니다. 옌시산은 기회주의자로 알려져 있으며, 기회가 나타날 경우 그가 놓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염석산주의

옌시산은 오랫동안 그의 행정부에 각양각색의 이념과 종교의 많은 부분을 적용해 왔습니다. 염석산주의로 알려진 이 사상은 지금까지는 무시받고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비록 이것이 실제로 성공할지는 미지수이나, 옌시산은 이 상황을 바꾸기를 갈망합니다.

"옌시산은 지혜로운 사람이야."

  • 정부
    0% 중국 생디칼리슴당
    0% 중국 생디칼리슴당
    2% 국민당
    1% 국민당
    4% 장즈쭝 군벌
    4% 한푸쥐 군벌
    4% 쑨랸쭝 군벌
    36%국민군
    46%염계군벌
    3% 일관도

  • 국가 정신
    • 산서성 먼로주의
      산서군벌은 그들만의 중립성으로 유명하며 이는 제4차 직봉전쟁의 패배 이후 더욱 심해졌습니다.
      안정도 +15.00%, 전쟁 지지도 -20.00%, 전쟁목표 생성의 긴장도 제한 +100.0%, 독립 보장의 긴장도 제한 +100.0%
    • 권력투쟁
      정치력 획득 -10%, 안정도 -5.00%
    • 국민군의 유산
      산서군의 많은 장교와 사병들은 펑위샹의 국민군, 즉 국민혁명군 출신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군대가 더 위엄 있고 전투 경험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군벌 내의 펑위샹의 영향력을 제거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단 조직력 +0.5, 사단 공격 +5.0%, 충원률 +5.0%


옌시산펑위샹의 군벌. 카라 세계관에서는 소련이 없어진 관계로 펑위샹의 세력이 더 약해졌고 결국 직봉풍전쟁에서 완전히 몰락하고만다. 옌시산은 펑위샹의 남아있는 군사력을 이용할 생각으로 펑위샹의 망명을 받았지만 이 직후 우페이푸가 3차 직봉전쟁에 승리해 중원의 지배자가 되며 문제가 발생한다. 펑위샹의 배신으로 멸망직전까지 갔던 우페이푸는 펑위샹에 대해서라면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제발이 저린 옌시산은 역으로 우페이푸를 치기 위해 4차 직봉전쟁에서 비밀리에 봉천의 편을 들어 참가하지만 우페이푸에게 간파당해 패전했고 결국 영토의 동부를 상실했다.

1936년 시점에는 옌시산이 정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펑위샹이 군사력을 바탕으로 정권을 탈취할 수도 있다. 옌시산은 중원의 싸움에는 그다지 끼어들지 않고 특유의 옌시산주의를 발전시키고 성을 개발하는 데에만 집중한다. 일반적으로는 반 직예로 분류되어 봉천과 동맹하거나 독자적으로 청을 공격하지만 푸이가 만주 유신을 감행할 때 옌시산에게 도움을 요청해 성공시키면 청나라 세력에 합류하고 친 청으로 분류된다. 펑위샹도 반 직예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군주제를 혐오하기 때문에 푸이를 싫어하고 봉천보다는 국민당이나 연성주의 세력과 동맹한다.

8.8. 사천군벌

1936년, 사천군벌

1936년이 밝았지만, 아직 쓰촨은 여러 파벌들 사이에서 매우 취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양썬은 자신의 후원자인 옥수(玉帥) 우페이푸의 지지에 힘입어 그의 측근이자 전 쓰촨성장 류쿤후의 도움을 받아 상당한 세력뿐만 아니라 지위와 인맥을 얻었고, 그에게 필요한 안정과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의 군사적 재앙으로 양센은 덩샤오와 류샹이 이끄는 파벌에 의존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정부와 쓰촨성 자체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국민당에 동조하던 장교단의 잔당들은 그들의 통제 영역이 꾸준히 줄어드는 것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쓰촨성 남부 일부 지역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쓰촨은 내분의 벼랑 끝에 서 있으며, 여러 파벌들이 성에서 권력을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직예군벌의 아주 사소한 약화의 조짐도 화약고에 불을 붙이기에는 충분해 보입니다...

사천군벌

쓰촨 현대사는 1912년부터 시작합니다. 신해혁명이 쓰촨에까지 이른 이래로 쓰촨 지역은 오랜 불안정 시대로 접어들었고, 지역 군벌들은 외교력과 무력을 통해 지배권을 놓고 다투었습니다. 1912년과 1926년 사이에대체로 국민당 충성파와 지역 군벌로 이루어진 신해 혁명가들이 쓰촨을 통제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1926년 북벌이 실패할 때 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승리한 직예군벌 지도자인 우페이푸의 개인적인 지원을 받은 양썬이 쓰촨의 첫번째 지배자가 되었고 마침내 외관상으로는 지역에 안정을 되찾아 주었습니다. 하지만 쓰촨 내부에서 수많은 군벌들이 각자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와중에 양썬이 그들의 영향력을 제거할 수 없게 되자 쓰촨의 내부 분열은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군벌 중 한명이자 충칭 지방 정부와 제휴하여 자리를 잡은 류샹은 빠르게 쓰촨의 통제권을 놓고 다투는 양썬의 주요 경쟁자가 되었습니다.

1928년에는 이웃한 운남군벌이 쓰촨을 침략했습니다. 초기에는 전쟁이 유리하게 흘러갔지만, 양썬의 사병도 상당히 줄어들었습니다. 1930년 티베트의 공격으로 인해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고, 티베트군이 양쯔강에 이르러 군벌 수도 청두 바로 앞에서 위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마가군벌이 개입해서 티베트 전쟁의 양상이 역전되기 전까지 쓰촨은 시캉 지역 절반을 티베트에게 내줄 수 밖에 없었고, 양썬의 군대는 더욱 약해졌습니다.

사천, 분열되다

1936년 사천은 분열된 상태로 여러 파벌들이 절대 권력을 놓고 갈등을 벌이는 중입니다.

현재 집권 파벌은 양썬과 그의 측근 류춘허우가 이끄는 무비계 운동입니다. 우페이푸가 개인적으로 몇년에 걸쳐 지원을 보낸 덕분에 무비계는 베이징과 난징의 직예 당국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영향력이 안정적인 지금, 최근 10년간 군벌은 직예의 지원에 의존하면서 성장했습니다. 만약 직예에 뭔가 문제가 닥친다면 양썬의 지배력 또한 상당한 위협에 직면하게 될 겁니다.

사천의 지배권을 놓고 다투는 양썬의 최대 라이벌은 중경군벌이자 사업단의 지도자인 류샹입니다. 류샹은 1931년 국민당의 확장 시도 이래로 양썬의 동맹이었으나 지금은 사천을 지배하려는 열망을 숨기려고 하지 않는 야망있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기회가 나타난다면 사업단은 언제든지 쓸모없는 양썬과의 동맹관계를 다시 고려해볼 지도 모릅니다.

세번째로 중요한 파벌은 보정군관학교 동문으로 이루어졌으며 양썬 휘하의 장군인 덩시허우가 이끄는 보정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보정군관학교를 나와야지만 파벌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최근 몇년간 보정계는 남부에서 반란군을 진압하는 작전을 담당했는데, 여기서 눈에 띄는 전공을 올렸고 이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현재 보정계는 양썬 지지층의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덩시허우가 옛날부터 양썬에게 충성을 바쳐오기는 했지만, 양썬에게는 위협으로 비쳐질지도 모릅니다.

남부에서는 1931년에 확장을 시도했던 국민당군 잔당이 지역을 점거하고 있습니다. 그들 자칭 군관계는 양썬이 지배하는 사천에 공공연히 지배하는 주요 단체입니다. 뤼차오와 슝커우가 이끄는 군관계는 생존하기 위해 인근의 운남군벌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의지합니다.

  • 정부
    0% 국민당
    0% 국민당
    0% 국민당
    2% 군관계
    2% 군관계
    16% 보정계
    20%보정계
    18% 무비계
    42%사업단
    0% 일관도

  • 국가 정신
    • 보정의 영향력
      보정파는 정부 내에서 상당한 양의 업무를 처리하며 그 영향력은 우리의 정통성을 현저히 떨어뜨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부단한 노력은 우리가 일촉즉발의 쓰촨성이 폭발하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매일 정치력 비용 +0.05, 안정도 +5.00%
    • 내분
      지난 10년간 사천군벌 내의 분열은 소폭 감소했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영향력 있는 보정파, 강력한 산업단, 남부 장교단 모두 약간의 권력 혼란이 쓰촨을 붕괴에 임박하게 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30%, 건설 속도 -20.00%, 생산 효율성 한도 -15.00%
      장관 및 법을 지정할 수 없음
      부대를 훈련하거나 해산하거나 구성을 수정할 수 없습니다.
    • 심각한 기근의 위협
      쓰촨성 내에는 아편 생산이 극도로 만연해 있는데, 이 지방의 경제적 고립으로 인한 몇 안되는 수익성 있는 작물 중 하나 입니다. 그 결과, 성내의 곡물과 쌀의 생산은 심각한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이는 지난 30년간의 불안정과 무능한 통치로 인해 더 악화되었습니다. 쓰촨은 현재 대규모의 기근이라는 천재지변의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초기 지도자는 양썬. 본래 이 지역은 통일된 세력이 거점화한 지역이 아니라 여러 갈래의 군벌들이 각축전을 벌이던 곳이었지만 1926년 직예군벌이 중국의 주도권을 잡으면서 쓰촨성에서도 직예와 동맹한 양썬의 군비파가 승기를 잡았다. 그러나 군비파는 이후 운남군벌과 티베트의 공세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산업단과 보정파가 세력을 불린다.

그나마 1936년까지는 군비파(권위민주주의)의 질서가 유지되었지만 팔성연합의 몰락으로 직예군벌의 나약함이 드러나자 류샹의 산업단(전제독재주의)이 군비파를 공격한다. 둘의 싸움이 길어지면 덩시허우와 류원후이의 보정파(사회보수주의, 시장자유주의)가 양썬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개입하고 낮은 확률로 슝커우와 뤼차오의 장교파(사회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가 어부지리로 승리할 수 있다.

내부적으로는 아편문제가 만연하고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대기근이 닥친다. 아편을 금지할지, 독점할지를 정하고 이에 따라 디시전으로 아편과 기근을 동시에 해결해야한다. 이를테면 아편을 독점하는 쪽에서는 아편을 팔아 번 돈으로 곡식을 사오고 금지하는 쪽에서는 농민들에게 아편 대신 곡식을 키우도록 권장하는 식으로 이어진다.

군비파는 직예, 산업단은 독자세력, 봉천, 연성주의, 보정파는 직예, 국민당 우파(주페이더), 연성주의, 장교파는 연성주의, 국민당 좌파와 동맹할 수 있다. 어느 루트에서도 서북 전쟁에 끼어들어 티베트에게 잃은 영토를 되찾을 수도 있다.

특수한 루트가 2개 있다. 청나라에서 만주 유신이 일어났고 사천에 군비파가 집권 중이라면 청에서 도망친 직예 인사들은 모두 사천으로 망명한다. 이들은 푸이에게 우페이푸의 죽음을 되갚기 위해 옌후이칭, 혹은 장바이리의 지도 하에 사천에서 힘을 기르다가 청을 공격해 스스로를 북양정부로 선포하게 된다.

비슷하게 양광에서 천중밍이 실각하고 사천에 장교파가 집권하면 천중밍은 사천으로 망명해 그의 연성주의 이론에 따라 낙후된 사천을 발전시켜나간다. 사천의 개발이 성공하면 다른 군벌들은 다시 연성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천중밍은 온 중국을 연성주의의 깃발 안에 묶을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9. The Long Road Home

0.11 업데이트로 캐나다, 후난, 러시아, 대영제국을 중심으로 다뤘다. 메인 테마는 I Vow To Thee My Country.[101]

국가 선택창에 있는 국가들은 이탈리아에 위치한 국가들이다. 새롭게 개편되지는 않았으나 0.6 이후 꾸준히 업데이트가 됐다.[102]

9.1. 이탈리아 사회주의 공화국

이탈리아 사회주의 공화국

1919년,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와 휴전 협정을 맺어 이탈리아 왕국이 일으킨 전쟁을 끝냈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용감한 사회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은 파괴적인 사보이 왕가에 대항하여 일어섰고, 현 체제를 더 좋아지게 바꾸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심지어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왕과 아들의 퇴위조차 불붙은 민의를 저지할 수 없었으며, 그리곤 이탈리아 전역에서 내전이 발발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탈리아 북부에서 왕실주의자들을 몰아내는 데에 성공하는 순간에도 우리 측에 반동분자들은 존재했습니다. 혁명의 필연성을 받아들이지 않은 공화주의 반군인 “백군”들은 우리와 결별하였고, 곧 오스트리아의 개가 되었습니다. 적들이 우리를 상대로 연합했지만, 우리의 진군이 포 강과 아브루초 선에서 멈추며 혁명을 완수하지 못한 채 내전이 끝났습니다.

1920년 휴전 이후 세 번의 의회가 열렸고, 혁명의 열기는 이탈리아 북부의 구석구석까지 퍼졌습니다. 이탈리아의 노동자와 농민들을 위해 많은 일이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탈리아 통합

이탈리아의 민족주의자들은 제2의 리소르지멘토로 이탈리아를 다시 한 번 통일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혁명을 확산시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탈리아 반도는 불안정한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SRI와 제3인터내셔널 간의 동맹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제3인터내셔널과의 동맹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생디칼리슴 통치하의 이탈리아를 위한 전쟁에 프랑스와 영국을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새로운 세계대전이 시작되는 도화선이 될 것입니다. 포강 동쪽의 이탈리아 공화국은 오스트리아의 보호를 받고 있지만, 우리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개입을 막으려면, 우리는 제3인터내셔널의 제한된 지원만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두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리소르지멘토를 위한 준비를 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 없습니다. 이탈리아는 반드시 재통합 되어야 합니다!

"이탈리아 만세!"

  • 정부
    10% 국민주의 조합
    47%생디칼리슴 조합
    28%이탈리아 사회당
    10% 민주개혁연맹
    5% 자유민주당
    0% 이탈리아 자유당
    0% 이탈리아 대중당
    0% 대중근왕당
    0% 군주주의 연맹
    0% 이탈리아 국민연합

  • 국가 정신
    • 분열된 국가
      내전으로 인한 분단 이후, 이탈리아 사회주의 공화국은 내분으로 들끓었습니다. 다양한 세력들이 국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분투하고 질서는 확보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만 합니다.
      매일 정치력 비용 +0.25, 안정도 -10.00%
    • 적위대
      1919년 내전 당시부터 사회주의 공화국 군대의 핵심은 적위병, 혹은 적위대라고 알려진 노동자 민병대였습니다. 이 지역 민병대는 높은 사기와 헌신적인 투사를 가지고 있지만, 이들은 전문성이 부족하고 군사 이론의 몇몇 세부 사항이나 보급과 같은 전쟁과 관련된 사항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단 조직력 -10.0%,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5%, 계획 수립 속도 -20.0%


시작시 지도자는 현실에서 오랫동안 이탈리아 공산당의 지도자로 활동한 팔미로 톨리아티. 브리튼과 프랑스처럼 초반의 선거 이벤트들을 통해서 집권정당을 선택할 수 있다. 이벤트 3개가 끝나고 정당 지지율에 따라 지방분권과 기독교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급진사회주의,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생디칼리스트, 그리고 무신론과 중앙집권을 주장하는 전체주의가 승리한다. 특이하게도 전체주의가 집권하면 마오쩌둥이 빙의한거 같은무솔리니가 집권하게 된다.

충분한 인력과 그를 뒷받혀주는 강력한 산업력, 인터내셔널 가맹국들의 지원으로[103] 인해서 가장 이탈리아를 통일하기 쉬운 국가이다.

9.2. 이탈리아 공화국

*
정부
0% 국민주의 조합
2% 생디칼리슴 조합
0% 이탈리아 사회주의당
4% 민주개혁연맹
31%자유민주당
11% 이탈리아 자유당
18% 이탈리아 민중당
13% 이탈리아 연방의회
3% 군사정부
18% 이탈리아 국민연합

  • 국가 정신
    • 불안정한 공화국
      1920년, 우리나라는 오스트리아인들에 의해 내전에서 구제되었고, 합스부르크인들은 우리의 지역들, 특히 베네토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연방을 이룰수 있도록 권력을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이러한 계획은 6년 동안 효과적인 진전 없이 제자리 걸음이었고,결과적으로 혼란스러운 관료적 상황을 만들어낼 뿐이었습니다. 야당은 자체적인 연방의 복원을 요구하며 말썽을 부리고 어떤 이들은 민주주의와 오스트리아의 영향력을 완전히 종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정치적 국면은 단기간에 안정될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일일 정치력 비용 +0.15
      국가적 중점 안정된 민주주의로 제거됨
      국가적 중점 단일 공화국을 통해 새로운 단일 공화국으로 대체됨
      국가적 중점 안정적인 이탈리아 공화국으로 제거됨


베네토롬바르디아 지방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현재의 이탈리아 깃발을 쓰는 공화국. 영토는 콩알만해졌지만 공업이 발달해 있어서 분열된 이탈리아의 5개국 중에는 이탈리아 사회주의 공화국과 함께 산업 능력에서 수위를 다툰다. 시작부터 오스트리아의 자치 괴뢰국이지만 얼마 안 가 오스트리아가 이탈리아에서 손을 뗀다는 이벤트가 뜨면서 독립할 수 있다. 예정된 선거는 37년이지만 검은 월요일로 경제가 망가지며 총리가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거를 실시한다. 선거에서는 사회자유주의, 시장자유주의, 사회보수주의, 국민대중주의 정당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다른 정당이 당선 될때는 현상이 유지되지만 국민대중주의 정당인 이탈리아 국민연합(ANI)이 당선될 경우 사실상 무솔리니만 없는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재림이 된다. 각종 선전으로 대중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유도하고 강력한 팽창주의적인 면모를 보인다. 국가 지도자도 현실에서 무솔리니의 친구였던 이탈로 발보. 이들이 정권을 잡으면 곧바로 독재에 반발해 베네치아 공화국이 반란을 일으킨다. 병력은 형편없지만 지형이 산지와 늪지로 공격해 들어가는데에 불리한 편이라 이를 적절히 돌파해 줄 필요가 있다. 또 중점을 밟다 보면 오스트리아에 전쟁을 선포하는 중점이 있는데 오스트리아가 아무리 빌빌대도 강대국인데다 속국들이 줄줄이 딸려 있어 정직하게 1대1로 맞붙으면 질 수밖에 없다. 가능하면 헝가리가 반란을 일으키는 순간이나 혹은 발칸 전쟁이 끝난 후 베오그라드 협약에 가입해 오스트리아와 충돌하는 순간을 노리도록 하자.

이벤트로 왕국을 다시 재건하여 이탈리아 연방을 수립할 수도 있다.

어느쪽이 집권하던 1938년이 되면 다시한번 리소르지멘토를 선언하는 중점이 열리게 된다. 이탈리아 사회주의 공화국은 제3인터내셔널 소속이지만 이탈리아 통일전쟁 중에는 프랑스 코뮌이나 브리튼 연방 등 세력호출을 할 수 없다. 만약 프랑스 코뮌이 개입을 선언할 경우 제3 인터네셔널 전체를 상대해야 하지만, 2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돼 라이히스팍트와 협상국이 적들의 병력을 분산시키기 때문에 할만한 편이 되었다. 이탈리아 사회주의 공화국, 양시칠리아 왕국, 교황령, 샤르데나 왕국[104]을 정복하면 디시전으로 이탈리아의 통일을 선언하여 전 지역에 핵심 주를 생성할 수 있다. 그 외에 니스, 코르시카, 몰타, 티치노, 퀴스텐란트, 리카, 달마티아, 사부아, 오트사부아에 영유권을 주장할 수도 있다.

그외에 오스트리아가 공화국 정치에 전면적으로 개입해 정당을 지원할 수도 있고, 오스트리아가 도나우-아드리아 연맹을 형성하면 거기에 가입하게 된다. 다만 상술했듯이 이탈로 발보가 집권하면 베오그라드 협약에 가입하게 된다.

사르데냐나 양시칠리아, 사회주의 공화국과는 달리 통일을 완료하면 국가 중점으로 사회주의 공화국을 제외한 타 이탈리아권의 장군들을 영입할 수 있다.

9.3. 양시칠리아

*
정부
0% 이탈리아 통일당
0% 메초조르노 노동조합연합
8% 사회개혁동맹
10% 인민민주당
10% 기독교민주당
12% 자유당
30%기독민주당
8% 농민당
12% 부르봉-나폴리 왕조
10% 시칠리아 통일주의당

  • 국가 정신
    • 조선업으로부터의 수입
      10년 이상 시칠리아는 이 어려운 시기 속에서도 여러 국가에 군함을 판매하기 위해 대규모 건선거를 사용해 큰 이익을 보았습니다. 비록 국내 건선거 대부분이 외세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는 해도, 국가 전체에 의미 있는 공헌을 가져다 줍니다.
      매일 정치력 비용+0.5, 소비재 공장 -5%, 조선소 생산량 -20%
      국가적 중점 조선소 국영화로 제거됨
    • 토지 문제
      롬바르드족의 침공 이래로 대지주들이 이탈리아 땅을 지배해 왔습니다. 상황은 최근 수십 수백년간 더욱 악화되었을 뿐이며, 극소수의 상류층이 토지 대부분을 차지한 채로 왕국 내 농촌 지역에서 엄청난 긴장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소비재 공장 20%
      국가적 중점 농업의 미래로 제거됨

  • 괴뢰국
    • 교황령 (자치 괴뢰국)


이탈리아를 통일하기 쉬운 국가에 속한다. 기본 체급이 너무 약하고 동맹도 협상국인 사르데냐나 초반에 이렇다 할 동맹도 없는 이탈리아 공화국보다는 체급도 있고 동맹 체결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사회주의 공화국이 동맹을 호출하지 못한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양시칠리아가 통일하기에는 제일 쉬운 국가일 것이다.

동맹은 디시전으로 라이히스팍트, 도나우-아드리아 연맹, 협상국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으며 이탈리아를 통일하고 나면 산하에 여러 괴뢰국을 거느린 연방을 형성할지, 아니면 제국을 선포할지 선택할 수 있다.

언제부턴가 통일 전쟁 때 이탈리아 공화국과 협정을 맺어 이탈리아 공화국을 평화적으로 흡수시키면 자동으로 이탈리아 공화국의 장군들과 원수들, 제독들을 영입할 수 있게 되었다.

9.4. 교황령

  • 정부
    0% 이탈리아 통일당
    0% 라치아 노동조합 연합
    6% 이탈리아 사회당
    2% 기독교 민주동맹
    10% 인민민주당
    10% 자유주의 연맹
    12% 라틴 사회운동
    8% 새로운 교황
    42%교회 국가
    10% 초몬타누스주의

  • 국가 정신
    • 성좌
      교황청은 전세계에 분포한 3억 명이 넘는 가톨릭교도들의 중심에 있으며, 교황이 하는 행동과 말은 지구상 어디에도 볼 수 없는 특별한 무게를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와 그 부근만을 다스리는 미니 국가로 등장. 양시칠리아 왕국의 자치 괴뢰국으로 설정되어 있다. 1936년 시점에는 비오 11세가 통치하고 있고 비오 11세가 실제 역사보다 3년 일찍 선종하면 콘클라베가 열려 4명의 후보 중 하나가 각각 스테파노 10세[105], 요한 23세[106], 비오 12세, 율리오 4세[107]로 교황에 선출되게 된다.

9.5. 사르데냐

  • 정부
    0% 전체주의 연맹
    0% 사르데냐 생디칼리슴 연합
    0% 사르데냐 사회당
    23%사르데냐 개혁파
    5% 왕립민주연맹
    5% 기독교동맹
    25%사르두당
    0% 군주주의 동맹
    42%사보이아아오스타 가문
    0% 포플루 사르두


대전쟁 이후 동맹국은 이탈리아 왕국을 해체하려 했으나 사회주의자들의 봉기와 뒤이은 혼란속에서 사르데냐 섬으로 도망친 사보이아 왕가로 협상국 소속이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독일의 압력에 의해 퇴위했고, 방계인 사보이아아오스타 가문의 아마데오 1세[108]가 지배하고 있다. 시작시에는 의회도 열리지 않는 전제군주정인데, 입헌군주제를 선언해 자유투표를 시행할 수도 있다. 이탈리아 사회주의 공화국이 망하고 피에몬테 지역을 확보한 경우 사르데냐-피에몬테로 돌아갈 수 있으며, 이탈리아 전역을 수복하는 루트를 타면 당연히 이탈리아계 국가에 코어가 박혀 통일 전쟁을 다시 벌일 수 있다.

처음부터 협상국 소속이기 때문에 2차 대전 이전에 사르데냐가 리소르지멘토를 시작할 경우 SRI가 인터네셔널에, 양시칠리아가 세력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라면 협상국에 가입해 빠른 협상국-인터네셔널간의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10. Stay at Home

0.12 업데이트. 파타고니아 노동자전선을 중심으로 다뤘다. 메인 테마는 스페인 민중가요인 Hijos del Pueblo.

파타고니아 뿐만 아니라 푸에르토리코 전용 중점이 추가되었고 부탄 중점도 리워크되었다.

패치 직후 잠시 동안 한패가 먹통이 되어 국내 유저들이 혼란에 빠졌었다. 거기다가 한패 담당자가 바뀌어서 새 한패 모드가 나왔기에 그걸로 갈아타야 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패치 이름은 Stay at Home이다(...).

10.1. 파타고니아 노동자전선

혁명의 불꽃

세계대전 동안 영국 기업들이 전쟁을 치르기 위해 가능한 한 최대로 인민과 자원을 착취하면서 아르헨티나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로 인해 전국적으로 불만이 쌓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남부의 파타고니아 지역이 가장 심각했습니다. 극단적으로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사회주의와 생디칼리슴이 대두했고, 인민 수천명이 노동을 거부하고 거리로 나와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영국은 아르헨티나 정부에게 개입할 것을 강요했고, 폭동은 반란으로 비화해 세마나 트라히카(비극의 주)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지점부터 사태는 점점 악화되기만 했고, 그 와중에 애국연맹이 주요 도시들에서, 그 중에서도 특히 부에노스아이레스 과두제 집권층 사이에서 점차 힘을 얻어갔습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남부 깊은 지역에서 새로운 종류의 저항이 성장했습니다. 시골 노동자들의 단순한 파업에서 시작한 저항은 남부의 총파업으로 커졌고, 몇 달 전에는 만기가 지난 임금을 지급하고 노동 조건을 향상시킬 것을 요구했습니다. 처음에는 '제1차 파타고니아 농촌 협정'이라는 이름의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지주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노동자들은 또 다른 총파업을 시작했습니다. 엑토르 베니그노 바렐라 중령이 지휘하는 원정대가 그들에게 군사적인 보복을 가했습니다. 1차 협정을 체결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바렐라를 믿었던 노동자들은 또 다른 협상을 기대했지만 끔찍한 결과만이 뒤따랐습니다. 바렐라는 파업자들의 무조건 항복만을 요구했고 파타고니아에서 통제권을 위협하는 자라면 누구라도 사살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의 혁명은 슬프게 시작했군."

파타고니아 반란

안토니오 소토와 호세 '파콘 그란데' 폰트를 중심으로 결집한 노동자들은 지금이야말로 혁명을 일으켜야 할 때가 왔다고 결정했습니다. 본래 농촌 협정에 있던 무장 해제 조항에도 불구하고 소토가 이끄는 아나키스트들 대부분은 무기를 알프레도 '엘 토스카노' 폰테에게 남겨 두었습니다. 그와 다른 더 급진적인 아나키스트들이 협정을 거부한 이래로 소토 본인도 노동자들을 무장시키기 위해 파타고니아 도적단과 연계해야만 했습니다. 초기 군이 승기를 잡은 이후, 노동자들은 라 아니타 농장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지역 노동자 연합이 전신선과 전령을 지원해주면서 2차 파타고니아 대규모 파업은 힘을 점차 얻어가는 중입니다. 이 와중에 아르헨티나군은 유명하고 힘있는 급진시민연합의 정치적 반발을 일으키지 않고서는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연합한 노동자는 패배하지 않는다!"

파타고니아 노동자전선 근황

수년 후, 아직 파타고니아에는 혁명의 불길이 계속 타오르고 있습니다. 칠레가 개입하면 파타고니아의 북부를 보호할 것이기 때문에 칠레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지역노동자연맹의 지도자이자 혁명의 주요 참여자 중 한 명인 안토니오 소토는 이후 국가를 이끌어 왔으며, 아나키스트, 공산주의자, 급진사회주의자들의 느슨하고 약한 연합을 이끌어 왔습니다. 정치적 불안으로 인해 아직 제대로 된 선거가 치러지지 않았고 소토는 아르헨티나와의 위기가 끝나면 결과가 어떻든간에 일단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약속했지만, 북부의 지도자로 마누엘 카를레스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곧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에 선거가 제때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파타고니아를 향한 공격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아나키즘과 사회주의의 등불로 보여지는 가운데, 인터내셔널과 열렬한 아나키스트들, 망명중인 볼셰비키들 모두 다 국제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파타고니아와 같이 겉보기에는 황량한 황무지에 홀로 있는 것만 같은 노동자들에게도 아직 기회고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비바 라 레볼루시옹!"

  • 정부
    20%계급주의 노조위원회
    29%아르헨티나 노조연합
    24%아르헨티나 지역노동자연맹 (9차 의회)
    10% 진보민주당
    1% 급진시민연합
    2% 국가민주당
    1% 반독재주의 급진시민연합
    8% 6월 해방자
    5% 정의당
    0% 애국연맹

  • 국가 정신
    • 파타고니아 저항군
      항복 한계치 +15.00%, 사단 한계 +10
    • 비승인 공화국
      매일 정치력 획득 -0.15, 안정도 -30.00%


아르헨티나 남부 파타고니아 지역의 광부들이 봉기해서 설립한 사회주의 국가. 칠레-아르헨티나 전쟁에서 승리하면 파타고니아 노동자전선에서 아르헨티나 코뮌으로 바뀌게 되면서 남미 사회주의 주도국이 된다.

장군진에 이오시프 주가시빌리, 바실리 추이코프, 게오르기 주코프, 미하일 투하쳅스키와 같은 지구-1 소련군 유명인사들이 있다. 설정상 프랑스 코뮌이 파타고니아 혁명을 지원하기 위해 러시아 혁명에서 패배해 망명 온 인사들을 보낸 것.

11. A King and His Captain

0.13 업데이트. 주요 국가는 루마니아, 세르비아. 또한 폴란드와 CSA가 리워크되었다.

메인 테마는 Imnul Regal.

11.1. 루마니아

루마니아 왕국, 1936년

루마니아 왕국은 1916년 헝가리인들로부터 트란실바니아를 빼앗겠다는 원대한 야망을 품고 세계대전에 가입했을 당시 비교적 젊은 신생국가였습니다. 1916년 초기의 몇몇 성공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나라는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고 불가리아 군대에 의해 빠르게 제압되었습니다.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루마니아군은 무너지지 않았고, 대신 그들은 이아시를 중심으로 저항을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러시아와 프랑스의 도움으로 루마니아는 그들의 힘을 보충하고 계속해서 동맹국을 격퇴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운명은 러시아 혁명과 동부전선의 붕괴로 흔들리면서 끝이 났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닿을 수 없는 이상 때문에 죽었고, 나라에는 아무런 이익도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루마니아군은 최선을 다해 싸웠기 때문에 부쿠레슈티 조약은 더욱더 쓰라린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배후중상론이 등장했습니다. 루마니아는 러시아인들에게 배신당했고, 서방의 협상국에게서 홀로 남겨졌고, 유대인들 같은 반역자들이 내부에서 벌인 방해공작에 당했습니다. 이러한 쓰라림, 보복주의, 그리고 불평등한 토지 소유와 같은 사회적 문제들은 급진적인 운동을 빠르게 발전시켰습니다. 1936년까지 그러한 운동 중 가장 강력했던 것은 철위대의 수장 코르넬리우 코드레아누가 이끄는 군단 운동으로 알려진 미카엘 대천사 군단이었습니다.

1927년, 페르디난트 왕이 사망하자 그의 아들 카롤 2세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카롤은 꽤나 바람둥이라는 평판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전쟁은 그에게 상흔을 남겼습니다. 그의 꿈은 확고했습니다: 아버지가 이루지 못했던 것을 성공시키는 것입니다. 국왕은 같은 추진력을 가진 동맹을 발견했고 코드레아누와 거래를 맺었습니다. 보복의 열정으로 힘을 합친 두 남자는 1933년 선거에서 민주주의 체제를 무너뜨렸습니다. 철위대가 이온 게오르게 두카 총리를 암살한 이후 코드레아누는 첫 군단 정부를 구성했습니다. 이는 대루마니아를 향한 첫 발걸음이었습니다.

국왕과 수장은 그들의 보복 프로젝트에서는 동맹일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 그들은 권력을 나눠 갖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두 남자 사이에서 벌어진 '그레이트 게임'이 선거 이후 빠르게 시작되었습니다. 코드레아누는 그의 근거지에서 매우 인기 있는 문제인 야심찬 토지 개혁에 착수했습니다. 영향력 있는 지주들은 왕에게 호소했고, 왕은 코드레아누에게 개혁을 중단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두 사람 사이의 적대감이 커지면서 권력 투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두 명 모두 권력을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이 대루마니아라는 공동의 목표를 공유하는 한, 그들은 함께 일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오직 신만이 알 것입니다.

  • 정부
    0% 루마니아 생디칼리슴당
    0% 루마니아 생디칼리슴당
    0% 루마니아 생디칼리슴당
    8% 루마니아 사회민주당
    11% 농민당
    16% 국민자유당
    3% 보수당
    0% 군사정부
    18% 왕실 고문단
    44%대천사 미카엘 군단

  • 국가 정신
    • 그레이트 게임 - 평형 상태
      우리의 국왕과 선장은 루마니아의 모든 미래를 결정할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고 있습니다. 현재 두 명의 영향력은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모든 중요한 결정들은 타협점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정치력 획득 -10%
    • 완료되지 않은 토지 개혁
      1934년의 군단 토지개혁은 군주정의 압력으로 인해서 끝나지 못하고 보류되었습니다. 하지만 선장은 아직 개혁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15%, 안정도 -5.00%
    • 통일주의자 열의
      카롤 2세와 코드레아누의 몇 안 되는 공통점 중 하나는 루마니아 국민들을 하나의 깃발 아래 끌어들이고자 하는 열망입니다. 범루마니아주의든 영광에 대한 열망이든, 지금의 루마니아 정치는 이 원대한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전쟁 지지도 +10.00%
    • 독일 경제 패권

    플로이에슈티 유전의 소유권은 독일에게 있습니다. ||


가혹한 부쿠레슈티 조약의 결과로 서유럽 협상국들, 러시아, 루마니아 내 소수민족들의 배신으로 졌다는 배후중상설이 퍼졌다. 이렇게 형성된 과격한 운동은 불평등한 토지 소유와 같은 사회 문제로 더 거세졌다. 이 중 제일 강력했던 것은 코르넬리우 젤레아 코드레아누가 이끄는 대천사 미카엘 군단이었다.

한편 1927년 페르디난드 1세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 카롤 2세가 즉위한다.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트란실바니아 확보의 꿈을 이루려 하는 카롤 2세는 코드레아누와 손을 잡는다. 이온 두카 총리가 철위대에 의해 암살된 후 코드레아누와 대천사 미카엘 군단이 집권한다.

하지만 두 지도자는 서로 손을 잡았지만 물러날 생각이 없다. 코드레아누가 토지 개혁을 시작한 후 지주들이 카롤 2세에게 호소해 토지 개혁을 멈추게 했다. 이것이 "거대한 게임"이라고 불리는 카롤 2세와 코드레아누 간 권력 투쟁의 시작이었다.

불가리아가 빼앗아간 도브루자를 되찾고 오스트리아의 영토인 트란실바니아와 부코비나를 빼앗는 것이 목표인데, 정치력을 소모해서 트란실바니아에 불안정을 유도하며 폭동까지 유발할 수 있다.

만약 오스트리아에게서 영토를, 특히 쾨닉스보덴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면 정치 중점 루트가 해금되어 카롤 2세의 전제정, 철위대의 영도, 녹색 왕자의 집권, 미하이 1세의 입헌군주제 루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11.2. 세르비아

세르비아 왕국 Kingdom of Serbia

1914년에 일어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의 페르디난트 대공 암살은 세계대전의 촉매가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손쉽게 이길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1915년 말이 되어서야 세르비아를 점령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 불가리아를 참전시켰습니다. 전쟁 후 세르비아 남부 영토는 불가리아에 넘겨졌고 나머지는 1926년까지 오스트리아 점령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국 내 민족적 긴장 때문에 오스트리아는 군대를 철수할 수밖에 없었고, 전쟁 영웅인 페타르 보요비치는 섭정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 이후 세르비아는 어떠한 종류의 군사적 공격에도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저자세를 유지하며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정부는 점점 더 강경해지고 있으며, 오스트리아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대신에 관심을 남쪽으로 돌려 마케도니아로 향했습니다. 이 지역에서 불가리아의 패권을 무너뜨릴 목적으로 이미 보복주의적인 루마니아 및 그리스 정부와 여러 차례 외교적 대화가 진행됐으며, 일각에서는 공식적인 동맹 논의가 멀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편 세르비아 왕좌는 텅 비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카라조르제비치 왕조를 복위할 시 개입하겠다고 위협했고, 보이보다는 이에 응해 알렉산다르 전 왕세자의 복귀 시도를 차단하고 이 과정에서 왕당파를 소외시켰습니다. 섭정이 서서히 지지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세르비아는 성공적으로 '불가리아 문제'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마침내 오랜 적 오스트리아를 물리치고 범슬라브 연합의 꿈을 실현할 수 있을까요?"

"세르비아는 다시 위대해질 것이다!"

  • 정부
    0% 중앙노동조합
    0% 중앙노동조합
    0% 사회노동당
    0% 세르비아 사회당
    4% 민주당
    13% 민주당
    21%인민급진당
    41%세르비아 국민당
    18% 하얀 손
    3% 세르비아 전사협회

  • 국가 정신
    • 오스트리아의 감시
      서류상으로 오스트리아는 이미 10년 전에 세르비아에 대한 간섭을 철회했지만, 오스트리아는 널리 사랑받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을 살해하고 세계대전을 일으킨 민족을 여전히 감시하고 있습니다. 합스부르크 왕조는 언제라도 다뉴브 강을 건너 베오그라드에 군대를 진주시키고 우리의 연약한 독립을 끝장낼 만한 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일 정치력 비용 +0.25, 법률을 변경할 수 없음, 선전 포고 불가능, 세력 참가 불가능


발칸 국가의 중심. 베오그라드 협약을 창설해 루마니아와 그리스를 동맹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시작 후 대공황으로 오스트리아가 혼란한 틈을 타 몬테네그로를 점거할 수 있으며 빈에서의 항의를 무시하고 코어를 박을 수 있게 된다. 해안을 얻게되면서 해군 중점이 열린다. 그 후 섭정 페타르를 무너뜨리기 위한 음모가 계속되는데, 이를 잘 물리친다면 군정체제 유지, 민주주의자들에게 굴복하면 공화국을 세우고, 군주주의자들에게 굴복하면 알렉산다르 2세를 불러와서 전제군주제 국가가 세워지게 된다.

이후 외교중점을 타다보면 베오그라드 협약을 창설해 불가리아에게 대전쟁 이후 먹은 땅들을 반환하라고 요구한다. 불가리아가 거부할 경우 반(反)불가리아 전쟁이 일어나며, 승세를 잡고 있으면 불가리아가 휴전을 제안하는데 그냥 무시한 후 계속 전쟁을 하면 불가리아를 괴뢰화시킬 수 있다. 어떤 방법으로든간에 불가리아와의 전쟁이 승리로 끝난다면 마케도니아 내 불가리아인들이 저항세력을 창설하고, 이를 물리치기 위해 빨리 코어를 박아야 한다.

이후에 오스트리아에 대항하기 위해 전쟁을 준비하는데, 이를 위해 극우 폴란드, 이탈로 발보의 이탈리아 국민연합을 베오그라드에 초대해 동맹을 늘릴 수 있다.

오스트리아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을 경우 독일이 개입할 가능성이 있는데, 만약 독일이 개입할 경우 이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를 못 얻게 된다. 이럴 경우 정당화를 통해 다시 한번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 독일의 개입 유무에 상관없이 일리리아를 합병한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를 형성할 수 있다.

만약 오스트리아를 공격하고 남슬라브 땅을 되찾는데 성공하면, 불가리아를 괴뢰화했었거나, 불가리아의 정권이 사회보수주의고 불가리아가 보냈던 화친조약을 받아들여 베오그라드 조약에 같이 속해 있다면, 스탐볼리스키가 대유고슬라비아를 위해 합병을 원한다는 이벤트가 뜨게 된다. 이를 수락할 경우 보리스 3세가 친위쿠데타를 일으키는데 여기에 개입할 경우 서로 전쟁이 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불가리아가 라이히스팍트나 모스크바 협약에 가입해 골치아파질 수 있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 불가리아에 코어를 박을 수 있게 된다.

왕정을 세우고 시간을 흘려보내다 보면 알렉산다르 2세가 죽고 페타르 2세가 뒤를 잇는다.

12. The Duke and the Hertzog

0.14 업데이트. 주요 국가는 발트 연합 공국과 남아프리카 연맹. 그 외에도 나탈, 짐바브웨, 네덜란드, 세르비아의 포커스 트리가 리워크되었다.

메인 테마는 Dawn.

12.1. 발트 연합 공국

발트 연합공국

발트해 동부 연안에 위치한 발트 연합공국은 1918년 발트의 독일계 주민의 주도로 결성된 유럽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독일계 국가입니다. 초기에는 독일 제국의 새로운 회원국으로 구상되었지만, 이러한 희망은 결국 좌절되었는데, 이는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지정학적 현실과 압도적으로 다수인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현지인이 이러한 계획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지, 발트의 독일인들 스스로가 그들의 조국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에스토니아 독립전쟁을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라트비아 민족주의 운동의 내부 분열 덕분에 라트비아에서 이와 유사한 봉기를 막은 뒤, 공국은 그 자리를 굳혔고, 이는 이제 거의 20년의 역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발트 연합공국은 무엇보다도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공국은 발트해 지방법, 란트탁(독일식 주의회)을 통한 대표 제도, 그리고 발트 기사단의 제도적인 역할을 리보니아 연방 시절의 것으로부터 계승하고, 이러한 전통은 독일계 발트의 정체성에서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발트해에서 가장 가난한 귀족들조차도 모든 지주들의 각각의 불만과 걱정거리에 귀 기울이는 공동체에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으며, 귀족의 기사다운 전통을 무엇보다 가장 존중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것은 공국이 비잔틴적 정부 체제로서 거의 기능하지 않는 국가라는 것을 의미하며, 앞으로의 닥쳐올 시련에 대해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공국은 번영할 것이다!"

  • 정부
    0% 라트비아 및 에스토니아 혁명동맹
    0% 라트비아 및 에스토니아 혁명동맹
    0% 라트비아 및 에스토니아 혁명동맹
    5% 리가 민주 블록
    32%발트 독일계 민주당
    8% 발트 독일계 진보당
    13% 발트 독일계 개혁당
    14% 발트 독일계 인민당
    25%발트 기사단협회
    3% 발트 형제단

  • 국가 정신
    • 비잔틴 정치체제
      매일 정치력 획득 -0.25, 안정도 -10%, 전쟁 지지도 -10%
    • 발트 향토방위군
      사단 훈련 시간 +40%, 징병 가능 인구 5%,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60%, 사단 조직력/회복률/공격/방어 +10/+10/+5/+5%, 계획 수립 속도 +10%, 육군 교리 연구 속도 +5%
    • 이민
      월간 인구 -25%, 소비재 공장 5%


발트 독일인들의 국가로 시작시 독일의 괴뢰국인 상태이다.

12.2. 남아프리카 연방

남아프리카 연방

제2차 보어 전쟁 이후 남아프리카의 영국이 소유하고 있었던 케이프 식민지, 나탈, 트란스발, 오렌지 자유국의 합병으로 1910년 결성된 남아프리카 연방은 아프리카에서 영국의 영향력의 마지막 잔재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자치령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네덜란드계 백인 주민들은 옛 보어 공화국의 독립을 갈망하고 있는 한편, 프랑스 코뮌이나 브리튼 연방이 설립되기 이전부터 영향을 미치고 있던 생디칼리슴 같은 반대쪽 정치적 사상이, 인종에 상관없이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허덕이는 빈곤한 하층민들의 머릿속으로 슬그머니 파고들고 있습니다.

연방의 정치적 구도는 얀 스뮈츠 장군의 남아프리카당과 J.B.M. 헤르초흐 장군의 국민당이라는 두 정당 체제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현재 대립하는 두 파벌로 나뉘어 있는 더 작은 정당인 노동당도 남아프리카 의회에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1924년과 1929년 사이에 이들은 연립정부에서 국민당과 통치하였으나 대공황의 대처에 실패한 이후 남아프리카당은 다시 다수당을 확보하였는데, 처음에는 국민당에서 이탈한 민족주의자들의 도움으로, 1933년 이후에는 대공황의 여파를 완화한 공로를 인정받아 스스로 다수당을 확보하였습니다.

"연방은 강하다."

남아프리카법

웨스트민스터로부터 통과된 1909년 남아프리카법은 연방의 헌법 역할을 합니다 - 남아프리카 연방은 연방이라기보다는 단일 국가로서 각 식민지의 의회가 폐지되고 지방의회로 대체됩니다.

국회는 폴크스라트(Volksraad)와 상원 두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폴크스라트 의원은 지방마다 선거권이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자격을 통과한 백인 소수자들에 의해 선출됩니다. 케이프와 남부 로디지아에서는 재산과 교육 수준에 근거한 자격 있는 선거권이 마련되어 있지만, 투표는 오로지 백인 전용입니다. 상원은 5개 지방의회의 각 의원과 폴크스라트 의원들로 구성된 선거인단에 의해 임명됩니다. 정부는 웨스트민스터 형식을 따르며, 현재 클라렌든 백작인 남아프리카 총독에 의해 임명됩니다.

남아프리카는 1920년대 영국 혁명 이후 영국을 대신하여 베추아날란드, 바수톨란드, 스와질란드를 보호령으로 관리해 왔으며, 남부 로디지아는 1922년 연방의 한 부분으로 인정받았습니다.

  • 정부
    2% 상공조합
    7% 상공조합
    8% 인터내셔널 사회주의 연맹
    6% 국민노동의회
    0% 남아프리카당
    0% 남아프리카당
    41%남아프리카당
    34%국민당
    0% 국민당
    2% 국민당

  • 국가 정신
    • 인종 분리
      남아프리카는 분단된 국가입니다. 인구의 대다수가 다양한 아프리카계 토착 민족인 반면, 사회경제적 힘은 소수의 유럽계 백인이 쥐고 있습니다. 이 집단은 차례로 네덜란드 식민지 개척자의 네덜란드어권 후손인 아프리카너들, 케이프 지방의 백인 인구 대다수, 오렌지 자유국 및 트란스발, 그리고 나탈과 로디지아의 백인 인구 대다수를 이루는 영국인으로 나뉩니다.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50%, 사단 조직력 -15%, 안정도 -15%, 생산 효율성 한도 -15%
    • 흔들리는 자치령
      공식적으로 대영제국에 속해 있지만, 많은 아프리카너들은 대영제국이나 협상국에 대한 충성을 거의 느끼지 않으며, 대신 비동맹 공화국을 세우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만큼 남아프리카의 본토 수복 참여에 대한 의지는 낮습니다.
      매일 정치력 비용 +0.10, 안정도 -10%, 전쟁 지지도 -40%, 동맹으로부터 전쟁에 참가하거나 동맹을 전쟁에 호출할 수 없음
    • 고등판무관 영토에서의 노예제
      노예제는 바수톨란드, 스와질란드, 그리고 특히 베추아날란드의 고등판무관 영토에서 여태껏 한번도 완전히 근절된 적이 없는데, 이 영토에서의 부족적 구조가 비밀리에 이 제도를 옹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야만적인 관습이 이를 없애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지속된다는 사실은 남아프리카의 명예에 오점을 남깁니다.
      안정도 -5%



13. Leaving for Syria

0.15 패치. 주요 리워크 국가는 오스만 제국과 프랑스 공화국. 그 외에 트리폴리타니아, 자발 샴마르, 아르메니아[109]와 조지아가 리워크되었으며 새로운 국가로 예루살렘과 시리아가 추가되었다.

메인 테마는 Partant Pour La Syrie Medley, 프랑스 제2제국의 국가 악기버전이다.

13.1. 프랑스 공화국

프랑스 공화국의 상황 - 역사

제3공화국이전 정권과 같이 독일군에 의해 패배하고 사회주의자들의 저항에 직면하며 멸망하는 운명을 맞았습니다. 1920년의 코뮌 혁명 이후 발발한 내전이 종결되었을 때, 정부는 항복이 아닌 망명을 선택했습니다. 정부는 마르세유로 후퇴해 프랑스 해군 선단을 타고 알제로 향하며, 신생 프랑스 코뮌 연방이 의심의 여지없이 빠르게 자멸하거나 독일놈들에게 무너져 상황이 빠르게 해결되리라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둘 중 어떠한 일도 벌어지지 않았고 독일 제국은 망명한 기존 정부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코뮌과 평화 협정을 맺었습니다. 코뮌은 새롭게 재편된 독일 동맹체계 소속국들에게 프랑스 공화국의 정당한 계승자로서 인정받게 되었고, 망명정부는 세계대전에서 같은 편에 섰던 국가들에게만 정통정부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망명자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프랑스 본토 전역과 식민제국을 통치하는 정통정부임을, 그리고 협상국을 위해 계속 싸워 나갈 것을 천명했으며 본토를 공격하기 위한 준비를 계속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망명의 여파는 국가를 매우 불안정하게 만들었습니다. 민주주의 세력들은 단결된 정부를 형성하는데 계속 실패하였고, 사소한 갈등들이 이어졌으며 설상가상으로 망명자들과 피에 누아르 이주민들 사이의 긴장 역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26년, 군이 개입하여 비상사태를 선포하였고 베르됭의 사자, 필리프 페탱이 그의 제자 프랑수아 다를랑 제독이나 앙리 모르닥 장군과 같은 세계대전 영웅들의 지원을 받아 이끄는 군정이 들어섰습니다. 프랑스군 최고사령관으로서 국가를 확고하게 통제하는 페탱은 분명 프랑스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지만, 헌법은 개정되거나 무효화되지 않았으며, 의회는 원수와 간부의 결정을 따르는 거수기로 전락했지만 동시에 공화국과 그 행정기관들은 철폐되지 않고 서류상에서나마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정당들 역시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대중들에게 민주주의의 환상을 주기 위해 계속 활동하고 있지만 이들이 어떠한 권력이라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상주의자들은 거의 없습니다. 공화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네 개의 주요 정당은 각각 급진당(RAD), 민주공화당(PRD), 기존의 자유적·보수적 정당들이 망명 후 결성한 프랑스 사회당(PSF), 그리고 악시옹 프랑세즈(AF)입니다.

"저주받을 코뮌 놈들!"

프랑스 공화국의 상황 - 정치적 상황

페탱 원수는 프랑스의 구원을 위해서는 권위주의적 통치가 필수적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제3공화국의 주요 정당으로서 패전과 혁명에 대한 책임을 질 수밖에 없기에 명성은 낮지만 급진당과 민주공화당은 여전히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으며, 전쟁 이후 참전용사들에 의해 창당된 프랑스 사회당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적 통제 사이의 길을 추구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당 활동을 완전히 금지하는 것은 공화국에 감당하기 어려운 불안정성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어떠한 민주 정당도 참전용사들에게 베르됭의 사자로 불리며, 군부가 프랑스 인터내셔널에 맞설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지도자로 여기는 페탱 원수에 맞설만한 힘을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균형을 추구하는 정권의 태도가 언제까지나 이어질 수는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이들은 정권에 대한 신뢰를 점점 잃어가고 있고, 악시옹 프랑세즈의 군주주의자들은 프랑스의 구원이 공화국과 그 제도의 전복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믿고 있으며 이러한 사상은 군 내의 많은 이들과 전통적 프랑스인, 원주민 엘리트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군정은 느리지만 확실히 정치적 신뢰를 잃어 가고 있으며 이제는 페탱의 명성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사자를 믿을 수 있다!"

프랑스 공화국의 상황 - 커져가는 불안

마치 대중의 지지 부족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던 것처럼 정권의 근간인 군부 내부에서도 원수에 대한 신뢰가 점차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페탱은 제자들을 편애해 그들을 여러 요직에 앉혀 놓았고, 그들이 확실히 유능하긴 하지만 이 때문에 많은 장교들이 뒤처졌으며 또한 일부는 페탱이 예스맨들로 둘러싸인 것이 군사 교리의 부패를 초래하고 말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수의 측근 중 앙리 모르닥과 같은 이들이 현 상황에 대해 공개적인 비판을 가해 오고 있고, 많은 이들이 페탱이 개혁적 성향의 제자들의 의견을 언젠간 경청할 것이라고 믿고 있기에 아직까지 이러한 불만은 군 내부의 논쟁 선에서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런 분열이 확대될 경우 정권에 재앙을 초래할 것이란 것입니다.

그러나 공화국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국가가 망명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알제리가 19세기 후반 공식적으로 해외 데파르트망으로서 프랑스에 합병되었고, 망명자들과 피에 누아르 정착민들이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일부 대도시에서는 대다수를 차지하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알제리 사회는 소수에 불과한 유럽인이 수백만에 달하는 원주민들을 지배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원주민들은 프랑스인으로 취급되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2등 시민으로, 무거운 세금과 노역의 의무를 지고 있으며 지역 엘리트들과 군에 의해 강압적으로 이루어지는 알제의 통치를 받고 있습니다. 세계대전에서의 패전 이후 식민지의 상황은 불안정합니다. 소요사태는 무자비하게 진압되어 왔고, 최근의 기근 대처는 실패하였으며 생디칼리스트들과 범아랍주의 운동가들은 식민정부에 대항하는 선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원주민 엘리트들은 여전히 프랑스에 충성하고 있으며, 개혁을 원하긴 하지만 여전히 정부에 충성하고자 하는 프랑스식 교육을 받은 원주민들과 원주민 참전용사들 역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만약 정부가 부주의하게 행동한다면 더 많은 불안, 더 나아가 반란까지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핵심 주가 아닌 아프리카 지역 주에서 저항도를 80 이하로 유지하는 데 실패한다면 반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아마 다 괜찮을 거야!"

  • 정부
    0% 북아프리카의 별
    0% 북아프리카의 별
    0% 북아프리카의 별
    3% 사회공화당
    7% 급진당
    8% 공화민주당
    12% 프랑스 사회당
    20%임시군사정부-모르닥 파벌
    37%임시군사정부-페탱 파벌
    13% 악시옹 프랑세즈

  • 국가 정신
    • 반코뮌
      1919년 대전쟁에서의 패배 이후, 코뮌 지지자들은 다시 봉기했고 우리의 소중한 공화국을 폐지했습니다. 다행히 가장 중요한 공화국의 핵심 인물들 중 일부는, 반혁명 투쟁을 조직하기로 계획한 알제리로 이주했습니다. 이제 생디칼리슴 반역자들이 본토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으니, 우리는 그들을 분쇄해야만 합니다! 반드시, 우리의 영원한 프랑스가 항상 자유롭게 만들 것입니다!
      전쟁 지지도 +10%, 일일 전체주의 지지 -0.05, 일일 생디칼리슴 지지 -0.05, 일일 급진사회주의 지지 -0.05
    • 원주민법
      원주민법은 1887년에 제정된 이후로 유효합니다. 제국의 원주민들에게 강요된 다양한 법과 규정으로, 그들은 엄밀히 따지면 프랑스 시민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낮은 법적 지위를 소중히 여깁니다. 현대화와 문명의 확산이라는 미명 아래로 엘리트 원주민들에 의해 집행된 연좌제, 평행한 사법제도, 군에서의 강제노동과 복무는 원주민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고 말하는 것은 절제된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식민지 활동의 확실한 노동력의 원천임이 증명되었고, 재정복을 준비하기 위해 유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정부의 많고 저명한 사람들에 의해 지지받고 있습니다.
      안정도 -15.00%, 건설 속도 +7.50%
    • 내부 불안
      수 년 동안의 행동력 부족과 정치적 침체는 군대와 국민이 급진적으로 바뀌고, 현 정권에 대한 믿음을 잃을 만한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당장은 억눌려 있을지라도, 분쟁거리는 프랑스 공화국 안에서 느리지만 확실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매일 정치력 비용 +0.25, 안정도 -20.00%



리워크 전과는 달리 정치 트리가 변경되었다. 여러 정치적 이벤트로 페탱의 군정 체제를 계속 유지하거나 군정 내 개혁파가 모인 모르닥 파벌이 정권을 잡게 만들 수 있고, 모르닥 루트를 타면 선택지에 따라 본토 수복 이전부터 민주주의를 복구할 수 있다. 모르닥 루트를 탈 때 페탱의 권력을 계속 유지시키면 둘 사이의 권력싸움 디시전이 생기는데, 모르닥이 이기면 망명법을 폐지해 보나파르트 가문의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10]를 프랑스로 불러올 수 있다. 루이 나폴레옹은 1940년 초반 레벨 1 장군으로 영입된다. 아니면 샤를 드골을 밀어줘서 오를레앙 군주정을 복고시킬 수도 있는데, 군주정 루트는 리워크 전과는 달리 전제정만 선택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그리고 아프리카 지역 주에서 저항도가 계속 오르는데, 이걸 80이 넘을 때까지 계속 방치하면 결국 반란이 일어나 나라가 쪼개진다.

본토를 되찾고 난 뒤에는 중점이 더 다양해지는데 왕국이 되었다면 왕국을 더 공고히 하는 중점이, 페탱 체제를 유지했다면 군정을 더 공고히 하는 중점이 생기고, 민주주의 루트나 모르닥 루트를 타면 본토에 민주정을 복구시키는데, 중점과 이벤트에 따라 드라로크의 독재정으로 흐를 수도 있다. 그리고 모르닥 루트에서 루이 나폴레옹의 레벨이 5 이상이며 알자스-로렌을 수복한 상태고 선거에서 사회보수주의 정당을 뽑았다면 루이 나폴레옹을 대통령으로 선출할 수 있고, 이후 보나파르트 제정을 입헌제로 복고해 루이 나폴레옹을 나폴레옹 6세로 집권시키는 이벤트가 뜬다.굉장히 힘든 루트다

본토를 되찾고 나서는 독일 제국과 불가침 조약을 체결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알자스-로렌을 영원히 돌려받을 수 없으니 알자스-로렌을 돌려받은 다음 제국을 재건하고 싶다면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지 않아야 한다.

13.2. 오스만 제국

세계대전 이전의 오스만 제국

한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 중 하나였던 오스만 제국은 18세기로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여 20세기 초에는 '유럽의 환자'라고 불릴 정도로 쇠락했습니다. 끊임없는 외국의 간섭과 지방에 대한 취약한 장악력은 효과적인 산업화를 할 수 없게 만들었고, 그런데도 오스만 사람들은 개혁하였고, 부족분쟁과 부패한 관료주의에 찌든 지역에서 제기되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19세기 초반에 마흐무트 2세에 의해 제안되었고, 나중에는 청년 튀르크당에 의해 추구된 급진적 개혁이 제국 내에 도입되었습니다. 토지 소유권은 재조정되었고, 예니체리는 해체되었으며, 모술과 알 하사에 이르기까지 전 지역에 중앙통치제도가 재설립되었으며 헌법 또한 공포되었습니다. 개혁가들은 오스만주의 사상에 기초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지역 정체성 대신 하나의 공동된 정체성을 심어주고자 하는데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충분치 않은 것이었습니다. 압뒬하미트 2세가 권력을 잡자 또 다른 변화 하나가 일어났습니다.

러시아-튀르크 전쟁이라는 명분과 함께 헌법은 폐지되었고 의회는 해산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술탄-칼리프에게 권력이 급격하게 집중되는 때였습니다. 기독교도들이 가진 힘이 계속하여 위협이 되자 술탄은 칼리프라는 지위를 바탕으로 범이슬람주의로 정책의 방향을 돌렸습니다. 무슬림들로부터는 엄청난 성공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이는 이슬람을 믿지 않는 지역의 이탈만을 더욱 가속시킬 뿐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의 절대통치는 서구의 사상에 매우 익숙해진 인구 계층들로부터 엄청난 불만을 일으켰습니다.

이러한 저항은 "통일진보위원회"라는 형태로 집결되었습니다. 1908년에 일어난 정변은 오랜 기간 동안 술탄에 의해 억압받은 오스만 제국의 정치를 한순간에 해방시켰습니다. 수십 개에 달하는 정당들은 새로이 복구된 의회에 한 자리라도 얻어보려고 했으며 이러한 모습은 오스만 제국의 쇠퇴가 마침내 끝나는 것으로 보여졌습니다. 통일된 민주주의 세력은 오래 가지 못했고 탈중앙화주의자들과 중앙화주의자들로 빠르게 분열되었습니다. 5년이라는 격동의 시기 동안, 이 두 정파들은 국가 지휘권을 잡고자 하는 전투를 벌였습니다. 1913년에 오스만 정부에 대한 습격이 벌어지자, 모든 상황이 끝나버렸습니다. 중앙화주의자들은 대중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세 파샤들과 함께 탈중앙화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권력을 빼앗고 나라를 그들의 구상대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제국주의자들의 엄청난 위협 속에서 그들은 결국엔 독일과의 관계를 강화했습니다.
세계대전 당시의 오스만 제국 파트 1 (펴기/접기)

오스만 제국은 1914년 10월 29일에 SMS 괴벤과 SMS 브레슬라우의 함장이자 오데사 포격을 이끈 빌헬름 조우혼의 방문과 함께 공식적으로 세계대전에 참전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갈리폴리 전투나 쿠트 공방전과 같이 전쟁 초반에는 연달아 대승을 거뒀습니다. 그러나 문제도 있었습니다. 러시아군과 맞붙었다가 재앙과도 같은 결과를 낸 캅카스 지역에서의 군사 작전이 그러했습니다.

이러한 재앙은 에드먼드 알렌비 장군의 지휘 하에 이뤄진 영국의 세 공세와 결합되어 발생한 1916년의 아랍 봉기와 함께 계속됐습니다. 더 나아가 1918년에는 팔레스타인에서의 처참한 패배로 인해 오스만군이 대규모 후퇴를 해야 할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예루살렘, 다마스쿠스, 그리고 알레포는 제6군의 지휘관이 아나톨리아 산맥으로 후퇴해야만 연쇄적인 패배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논란을 불러올 결정을 내림으로 인하여 빠르게 줄줄이 적들의 손으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병사들이 용맹하게 싸웠지만 결국엔 패한 안테프에서의 전투와 마라슈 근처에서 일어난 전투에서 얻은 피로스의 승리만이 마침내 알렌비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쯤 되자 제국 내의 분위기는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오스만 정부가 전쟁에서 이겨도 엄청난 피해를 볼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더 나아가, 궁 내에서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CUP의 꼭두각시였던 메흐메트 5세가 승하하자 경야 기간 동안 좀 더 적극적인 성품의 바히데틴이 술탄 자리에 올랐습니다. 모든 전선에서 그의 제국이 무너지는 것을 보는 동시에 CUP 정부가 이 재앙적인 사태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CUP를 쫓아내고 HIF에 있는 그의 동맹들에게 권력을 넘겨주고자 시도했습니다. 상황이 점점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탈라트 파샤는 제말 파샤를 꼬드겨 술탄을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려고 시도했습니다. 독일군이 우크라이나산 곡물을 공급해주길 거부한 탓에 코스탄티니예에서는 심각한 기아 사태가 일어났고, 캅카스 지방에서는 동맹국들로부터 배신당했으며, 술탄을 입막음하려는 시도와 제6군 지휘관이 전쟁부 장관과 공개적으로 갈등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까지 퍼지자 상황은 마침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다다랐습니다. 반독일정서와 평화에 대한 엄청난 염원과 함께 탈라트 파샤 내각은 술탄에게 패배를 인정하며 사임해야 했습니다.

아흐메트 테프비크 파샤는 대재상에 임명되면서 국가를 통합시킬 정부를 만들라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권력을 조금이라도 내려놓길 거부하는 CUP의 압박에 협상은 결국 깨져버렸고, 아흐메트 테프비크 파샤는 사임해 그 뒤는 아흐메트 이제트 파샤가 잇게 되었습니다. 카비트 베이, 페티 파샤, 그리고 라우프 파샤로 이뤄진 정부가 만들어졌고 CUP는 아직 패배하지 않았다는 게 명백해졌습니다.
세계대전 당시의 오스만 제국 파트 2 (펴기/접기)

그리스가 몰락하고 영국 보호령 이집트에서 혁명의 위협이 고조되자 알렌비는 자신 휘하의 군을 일부 철수시키는 등 자신의 전략을 수정했습니다. 프랑스가 1919년 말에 붕괴했고 전쟁은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오스트리아군이 이탈리아로 진군하고, 독일은 프랑스와 벨기에로 들어가고 있던 서부전선과는 대조적으로 오스만 제국은 이 중요한 시기가 될 때까지 제국의 땅을 절반 넘게 잃었습니다. 제국은 이미 점령당했거나 영국이 마음먹고 공격하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곳밖에 남지 않았으며 영국군은 자신들이 점령하고 있는 것을 그리 쉽게 넘겨주지는 않을 것이었습니다. 바히데틴 술탄은 제국에 남은 것이라도 보전하고자 하는 생각으로 영국과 협상을 벌였으며 영국도 중동 지역 내의 자신들의 영향력을 재고하고자 하는 생각으로 협상에 응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 말에 동맹국 영토 내에 있는 모든 협상국 병력들의 즉각적 철수를 요구하는 코펜하겐 조약 체결과 함께 휴전 상태가 되자 동부 지역 문제에 대한 빠른 해결책이 필요해졌습니다. 이집트,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점령 지역에서 문제가 계속 발생하자 영국은 결국 포기하면서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오직 팔레스타인과 바스라 빌라예트만이 얀 스뮈츠와 레오 아메리의 주장에 의해 계속해서 점령 상태에 놓여있게 되었습니다. 이라크에 인도군 주둔 기지와 수에즈 근처에 요새화된 진지를 구축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지 않고 '지역 내 소수민족들의 권리'에 대한 조약 내용이 만족할 만한 수준이 될 때까지라는 명목을 대면서 말이지요. 오스만 제국 내 정가의 일기상태가 오락가락한데다가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주동자들에 대한 처벌을 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했기에 제국에 대한 국제적 인식은 점점 더 떨어져만 갔고 그에 따라 동맹국으로부터의 지지도 잃게 되었습니다. 1920년 여름에는 두 개의 자치지역을 지정하자는 합의가 도출되었으나 이는 튀르크인들과 아랍인들 모두에게 엄청난 분노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예루살렘 무타사리파테(M.O.J.)가 팔레스타인에 만들어졌고 이는 알렌비 라인부터 홍해까지 이르렀습니다. 원칙적으로는 엄연히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영토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독일 제국, 대영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미국, 오스만 제국으로 이뤄진 국제 평의회에 의해 통치되었습니다. 오스만 제국군의 출입은 금지되었고, 국제헌병대 병력만이 팔레스타인 내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바스라 빌라예트는 공공연히 그들의 야망을 드러내며 위협하던 이란으로부터 니네베 평원과 우르미아 호수에서 난민으로서 도망쳐 나온 아시리아인들을 위한 새로운 집이 되었습니다.
세계대전 이후의 오스만 제국 파트 1 (펴기/접기)

평화는 1921년에 공식적으로 선포되었으며, 오스만 제국의 영토도 대부분 예전처럼 유지되었습니다. 카르스와 아르다한 행정구역은 예레반이 추가되는 동시에 다시 옛 모습을 되찾은 반면 에게해 제도에서는 도데카니사 제도에서 살던 이탈리아인들이 쫓겨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CUP, 특히 제말 파샤의 행위로 인하여 튀르크인들과 아랍인들 사이의 갈등이 공공연히 드러나게 되었고 아나톨리아 동부와 레바논 산에 살던 주민들이 강제 이주나 기근으로 인하여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등 피해는 엄청나게 불어났습니다. 튀르크 쪽의 피해가 커짐에 따라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게 되었고 결국 이는 제국의 주 소득원인 농업 생산량에 큰 타격을 가져다주게 되었습니다.

비록 아랍 봉기가 큰 실패로 끝났지만 개혁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게 되었습니다. 1913년에 있었던 아랍 회의에 대한 응답으로, 아랍어는 제국의 공식적인 제2언어로 인정받았습니다.

CUP 내에서 파벌주의가 점점 커지고 군 내의 유명인사들이 마치 밤하늘의 별똥별처럼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자 당 내부의 안정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동맹인 독일이 배신을 하자, 반독일파벌이 큰 힘을 얻으며 생겨났습니다. 당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점점 더 안 좋아지자, CUP는 당명을 테제뒤트로 바꾸고 당 내에서 독재적인 성향을 보이는 인물들을 공개적으로 몰아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제말 파샤도 짐을 싸고 나가는 동안 탈라트 파벌의 영향도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무스타파 케말 파샤는 전쟁부 장관으로서 독일 군사 사절단을 축출하고 야심찬 오스만군 재건을 시작했습니다. 그가 해낸 업적은 큰 호평을 받았고 케말은 계속해서 권력 상승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케말이 또 다른 엔베르 파샤가 될 것을 두려워한 당의 상위 위원회는 카비트 베이를 지도자로 내세웠습니다. 당시에는 그에 대항하여 성공할 자신이 없었던 케말은 1925년이 되어서야 권력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당은 두 번째로 이름을 바꿨는데 이번에는 "오스만 인민당"으로 바꾸었습니다.
세계대전 이후의 오스만 제국 파트 2 (펴기/접기)

1926년 선거는 OHF의 승리로 끝났지만 많은 이들이 이번 승리는 당 자체의 힘이 아닌 수십 개의 정당이 한 자리라도 얻기 위해 싸우는 등 반대파들의 분열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새롭게 부임한 대재상은 그의 야망을 숨기지 않았고, 개혁안을 폭풍과도 같이 내놓으며 나라를 그의 이상에 맞게 바꿔나갔습니다. 교육, 경제 회복, 종교집단들이 지닌 기득권을 빼앗기 위한 투쟁 등의 분야에서 큰 진전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대재상의 권위주의적 행태는 당을 더욱 분열시켰으며 그의 옛 동맹이자 친구였던 캬즘 카라베키르 파샤는 당에서 나와 그만의 "민주당"을 만들었습니다.

정부 기관의 신속한 중앙집권화에 의한 위협과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OHF가 전통을 깨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한 이유로 인해 OHF는 1931년 선거에서 첫 패배를 맞았습니다. 하키 알아즘이 당수로서 이끄는 행정 탈중앙화를 위한 오스만 당은 선거에서 대승을 거뒀고, 중앙화파들의 증가하는 위협에 맞서는 통일 전선을 만들기 위해 HIF 및 DF와 연합을 형성했습니다. 그러나 연합은 참여한 여러 정당들이 비 OHF 정책에 대해서 상반된 의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연합 존속은 지속적인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긴장은 1932년 말에 절정에 달했고, 하키 알아즘의 정부는 HIF와 DF와의 갈등으로 인해 무너졌습니다. HIF의 주도 아래 새로운 정부가 만들어졌지만, 소수 여당 정부였기에 탈중앙화와 자유화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연합의 계속된 실패는 OHF가 평판을 회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1935년 선거에서 OHF가 확실한 다수를 차지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대재상 무스타파 케말 파샤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 그가 오스만 하원의 끊임없는 방해와 칼리프를 통해 자신에게 간섭을 하고자 하는 보수주의 로비 단체들에 대한 대안을 찾고 있다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흥미롭군."

  • 정부
    0% 민중협약당
    0% 오스만 노동자당
    2% 오스만 사회당
    0% 사회민주당
    12% 자유와 합의당
    21%민주당
    5% 모하메단 연합당
    46%오스만 인민당
    13% 오스만 경의당
    1% 튀르크 오자클라르

  • 국가 정신
    • 제도화된 이슬람

    하지만 이처럼 이슬람을 권력의 핵심부로 끌어들인 결정은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고, 이제는 세속주의 개혁에 반대하는 수피파의 대규모 교단들이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국가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
    정치력 획득 -35%, 안정도 +10.00%
    * 광범위한 문맹
    페르시아 문자의 난해함과 교육에 대한 하층민의 무관심은 광범위한 문맹을 야기했고, 이것은 위대한 제국의 산업화를 크게 저해하고 있습니다.
    연구 속도 -15.00%
    * 무장 중립
    세계대전 동안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던 용맹한 이들의 무덤은 제국 곳곳에 퍼져 있고, 그 숫자는 전쟁 전 인구의 25%에 달합니다. 우리는 제국주의자들이 벌인 짓을 잊을 수도, 용서할 수도 없습니다. 유럽에는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고, 새로운 전쟁에 대한 공포가 커지지만 우리는 거기에 휘말리지 않을 것입니다.
    징병 가능 인구 1.00%, 안정도 +10.00%, 전쟁 지지도 -10.00%, 사단의 핵심 영토 방어력 +10.0%
    * 제국의 안정성
    주둔지 침투 기회 -100.00%, 주둔지 피해 100.00%, 안정도 -26.00%

  • 괴뢰국
    • 예루살렘 무타사리파테 (국제위임통치령)
    • 예멘 (오스만 토후국)
    • 자발 샴마르 (오스만 토후국)
    • 키레나이카 에미르국 (오스만 토후국)
    • 아르메니아 빌라예트 (오스만 빌라예트)


대전쟁 승리의 결과로 제국이 유지되었기에 압뒬메지트 2세가 칼리프직을 유지하고 술탄으로 즉위해 있다. 정치적으로는 케말리즘 루트, 숭고한 연방 루트, 무스타파 페브지 파샤[111]의 쿠데타 루트가 있다.

처음에 대재상 무스타파 케말 파샤의 주도로 제국을 세속주의 국가로 재편하는데, 이슬람주의자들의 반발을 계속 억누른다면[112] 케말리즘 루트가 유지된다. 케말리즘 루트는 지역별 불만도가 오르지 않게 관리해야 하지만 높은 안정도를 보장한다. 하지만 100% 세속주의를 표방하지 않으면 쿠데타가 발발하며 이후 쿠데타를 진압한 오스만 4세가 술탄이 된다.

하지만 이슬람주의자들의 반발에 한 발 물러서거나 하면 케말은 탄핵당하거나 저격당해 사망하고 이슬람주의 국가가 되며, 후반에는 중점으로 숭고한 오스만 연방으로 국명이 바뀐다. 숭고한 연방 루트는 지역별 불만도가 낮긴 하지만 경제 중점이 외국에 의존하는 식의 부실한 중점들이다 보니 안정도가 낮다. 처음에는 사회자유주의 정당인 사바하틴의 도당이 집권하는데 만약 사바하틴 도당이 퇴출당하고 사회보수주의 정당인 아르슬란의 도당이 집권하면 아흐메트 4세를 술탄으로 앉힌다.

페브지 파샤 루트의 경우에는 그냥 정치 중점만 바뀌는 케말리즘 루트이며, 이후 군정 체제를 유지하거나 권력을 민정에 이양할 수 있다. 권력을 민정에 이양하면 국민대중주의 정당을 집권시킬 수도 있는데, 설정상 이들은 보즈드의 영향을 받은 케말주의자들이다. 그래서 이들을 집권시키려면 러시아에서 사빈코프가 집권해 있어야 한다.

보통 권위민주주의, 후견전제주의, 국민대중주의 정당은 보수파 정당으로 분류되지만 오스만 제국은 특이하게도 이들이 개혁파 정당들이라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후견전제주의 정당은 사회보수주의 정당으로도 만들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보수파로 분류된다.

1938~1939년경 예루살렘 문제로 카이로 협약과의 전쟁이 발발하는데, 쿠르디스탄에 이어 시리아가 내부에서 튀어나오고 예멘과 아르메니아, 키레나이카가 반기를 드는 등 상당히 손이 바쁘다. 만약 카이로 협약을 이겼다면 자체 세력인 이스탄불 조약을 창설할 수도 있고, 타 세력에 가입할 수도 있다. 선택지는 라이히스팍트, 협상국, 도나우-아드리아 연맹이 있는데 도나우-아드리아 연맹 가입은 케말리즘 루트에서만 가능하며 협상국 가입은 숭고한 연방 루트를 선택했거나 페브지 파샤 루트에서 권력을 민정에 이양한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독일이 라이히스팍트 가입을 거절하면 공영권에 가입할 수 있다.

13.3. 자발 샴마르

리워크 이전에는 독립국이었지만 리워크 이후에는 오스만의 토후국이 되었다.

네지드와의 전쟁으로 멸망하거나 네지드를 멸망시킬 수 있는데 네지드를 합병해도 이크완의 반란에 이어 네지드 잔당의 반란이 일어나기 때문에 AI가 잡았다면 멸망할 확률이 굉장히 높다. 네지드 잔당의 반란을 진압해도 결국에는 사분오열되어버린다.

13.4. 키레나이카 에미르국

키레나이카 토후국

1843년 위대한 무함마드 이븐 알리 앗사누시가 설립한 사누시 교단은 그들이 지배하는 키레나이카 지역의 동의어가 되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는 오스만 제국의 일부이고 서서히 성장하고 있는 벵가지의 도시 엘리트층에게 자발지역을 점점 빼앗기고 있지만, 우리는 거의 100년 가까이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매번 비열한 제국주의자들과 싸워왔으며, 특히 선대 최고지도자들은 와다이 사막에서 시와 오아시스에 이르기까지 유럽인들을 향한 공격을 이어왔습니다. 1911년 이탈리아군이 트리폴리타니아를 침공했을 때, 우리는 칼리프와 함께 싸워 그들의 가공할 만한 병력과 싸워왔고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아 오스만이 리비아를 넘겨줄 때까지 지속했습니다.
우리와 오스만의 관계는... 말하기는 복잡하나 우리가 1911년부터 1915년까지 힘을 합쳤듯이, 오스만 정부가 이 영역에 그들의 독립된 행정부를 설치하려고 혈안이 된 것은 아닙니다. 비록 세계대전이 오스만 제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지나치게 방만하고 파산한 제국은 전후 우리의 강화된 지위에 대항할 수단이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벵가지에 있는 관료들의 명목상의 지배권 확립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키레나이카에서는 거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그 이유는 이런 안정된 상황을 바꾸려는 수단과 의지가 서로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1933년 아흐메드 샤리프 앗사누시 최고지도자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에게 넘겨주었을 때부터 약간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역사상 매우 중요한 인물의 죽음은 오스만 제국의 승리 이후 망명길에 오른 정당한 후계자이자 사누시 교단의 왕자인 이드리스와 전 최고지도자의 범이슬람 지지자들과의 긴장을 재점화시켰습니다.

"계속해!"

  • 정부
    19% 알마왈룬 이드리스
    58%알 사누시
    23%알 사누시

  • 국가 정신
    • 사누시 교단의 고향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우리 교단의 강직함은 우리를 교육, 종교, 군사, 심지어 경제까지 모든 것을 국가가 토제하고 있는 키레나이카의 주인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러한 강직함은 우리가 이탈리아와 싸울 때 상당한 이점을 가져다 주었으며 그들의 군대를 바다 건너편으로 몰아내는 데 성공하여 마그레브와 마슈리크 전역의 아랍인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5%, 사단의 핵심 영토 공격력 +5.0%, 사단의 핵심 영토 방어력 +5.0%, 적이 점령한 우리 주의 저항도 증가 속도 +100%
    * 오스만의 해양 지배
    비록 우리 교단이 키레나이카의 주인이라고는 하지만, 오스만이 벵가지와 트리폴리타니아를 통제하고 있는 한 바다에 대한 그 어떤 영향력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벵가지 오스만 군사기지는 오스만 제국이 동부 리비아에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땅으로, 오스만 공무원들과 상인들이 더 잘 알고 있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교역소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사헬 지대, 수단, 이집트, 리비아를 오가는 오래된 카라반들이 더 이상 오스만 제국이 제공하는 현대식 인프라와 경쟁할 수 없게 만들어 우리 경제를 억누르고 있습니다.
    정치력 획득 -20%, 공장 생산량 +10.00%, 해군기지 건설 속도 -50.00%, 조선소 건설 속도 -50.00%
    * 사누시 교단 지원자
    사누시 교단의 요청에 따라, 아프리카에서 프랑스인을 몰아내고 마그레브의 억압받는 이슬람교도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이슬람 세계 전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믿음의 깃발 아래 몰려들고 있습니다.
    주간 인력 +200, 기병 공격 +8.0%, 기병 방어 +8.0%


시작 시점에서는 키레나이카 지역의 오스만 토후국으로 등장하며 트리폴리타니아 지역과 벵가지는 오스만의 영토이다.

이드리스 1세를 집권시키거나 국민대중주의 루트를 타면 카이로 협약에 가입해 오스만 제국과 싸울 수 있으며, 완전히 독립하면 국명을 리비아로 바꾼다. 이후에는 중앙집권 국가와 연방 국가 중 하나를 선택하는 중점을 탈 수 있다.

13.5. 조지아 공화국

조지아 민주공화국

조지아는 러시아 내전의 혼란기에 자캅카스 민주 연방 공화국에서 이탈하며 독립을 얻었습니다. 혼란기 동안, 조지아는 주변의 적들을 막기 위한 도움을 받고자 독일의 편에 섰습니다. 조지아는 독일과 복수협정을 체결했고, 특히 포티 조약을 통해 독일의 보호를 받는 대가로 경제 내에서 독일의 확실한 지배를 초래한 몇 가지 경제적 양보를 했습니다. 또한 바투미 조약을 통해 조지아는 오스만 제국에게 무슬림 다수 지역을 넘겨줬습니다. 지금은 멸망한 아르메니아 공화국과의 짧은 갈등 끝에 조지아는 로리 지방을 얻어냈고, 이후로 평화롭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러시아의 일부였던 시절, 조지아는 독립을 쟁취했을 때도 남아 있던 멘셰비키의 중심지였고, 1918년부터 조지아의 멘셰비키 사회민주당이 집권했습니다. 1918년 노에 라미슈빌리가 의장으로 잠시 재임한 후, 노에 조르다니아는 18년 동안 이 나라를 확고히 통치해 왔습니다. 멘셰비키는 지난 몇 년간 득표 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조지아 내의 완고한 정치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1935년 선거에서 멘셰비키는 의석의 거의 대다수를 잃었지만 버틸 수는 있었습니다. 국민민주당, 즉 EDP는 많은 표를 얻었고, 당수인 에크브티메 타카이슈빌리는 복벽주의 단체들과 가까이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왕좌에 오를 주요 후보자인 카이저 빌헬름 2세의 아들 프로이센의 요아힘 황자와, 구 조지아 왕실인 바그라티온 가문의 가주인 기오르기 바그라티온과 함께, 군주제에 대한 인기는 지난 몇 년간 높아져 왔습니다.

조지아는 점점 더 커져만 가는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안정의 등불로서 서 있습니다. 지난해 말, 늙고 명망있는 노에 조르다니아가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독립 이후 조르다니아 정권에서 일해왔지만 그보다는 인기가 떨어지는 에브게니 게게흐코리가 자신의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레 재난이 닥치지 않는 한 1939년 차기 선거까지는 정치적으로 변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조지아는 살아남을 것이다."

  • 정부
    0% 조지아 공산당
    0% 생디칼리슴당
    7% 사회혁명당
    44%조지아 사회민주당
    8% 조지아 사회연방혁명당
    6% 국민지주당
    30%국민민주당
    0% 조지아 정통주의자 연합
    5% 애국연합
    0% 애국연합

  • 국가 정신
    • 포티 조약
      조지아의 독립 이후, 정부는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독일 기업에 막대한 경제력을 안겨 줄 거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포티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민족주의 정서가 팽배해지면서 포티 조약 폐지에 대한 요구가 급증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조약 폐지가 조지아를 죽음으로 몰고 갈 거라며 우려하고 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0, 소비재 공장 5.0%, 건설 속도 +15.00%, (독일 제국)종주국과의 추가 무역 +20.00%, (독일 제국)목표 국가 무역비용 -40.00%
    • 소수민족 시위
      조지아는 조지아인의 고향일 뿐만 아니라 오세트인, 압하스인, 그리고 중앙정부와 마찰을 빚는 다른 소수민족들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0,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10%, 안정도 -5.00%


시작 시점에서는 멘셰비키의 사회민주당이 집권중이다. 예정된 선거년도는 1939년이나 검은 월요일의 여파로 연말에 조기 선거를 치른다.

검은 월요일 극복 방법은 자립, 독일에 의존 2가지가 있다.
사회보수주의 정당이 집권하면 군주제를 복원할 수 있는데. 검은 월요일 극복시 자립을 택하면 바그라티온 왕조의 기오르기 9세가 집권하고, 독일에 의존을 택하면 빌헬름 2세의 6남 요아힘 폰 호엔촐레른이 집권해 이오아킴 1세를 칭한다.

군주제를 복원하면 야당이 반대하는 시위를 전개하는데 기오르기의 경우 촐로카슈빌리의 제안을 받아들여 국가를 전복할 수 있다. 이 경우 인민수비대를 재편한 주겔리가 이벤트 상의 내전을 시작하며 이벤트 체인에 따라 주겔리가 민주정을 재수립하고 재선거를 하거나 기오르기가 인민수비대를 끝장내고 후견전제주의 정부를 수립하게 된다.

14. Hindsight Is 2020

0.16 패치. 일본 제국이 중점을 비롯해 많은 부분에서 패치를 받았으며, 그 외 미국과 봉천정부, 조지아, 동유럽 공통 이벤트, 디시전이 추가되는 등 열강과 지역 단위의 마이너 패치에 집중했다. 따라서 0.15 패치로 새로 생기고 개편된 국가가 그대로 넘어왔다.

메인 테마는 Marching Through Georgia관악 편곡 버전으로, Gramercy Brass Orchestra에서 연주한 걸 갖다 썼다.#

15. 고유 국가 중점을 가지는 국가

시작 시점에 존재하지 않는 국가는 기울임체 처리.

15.1. 유럽

  • 롬바르디아
    이탈리아 공화국을 합병한 후 이탈리아를 분할하면 등장한다.
  • 리투아니아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제물이 되거나 아니면 자신이 폴란드-리투아니아를 세워 폴란드를 합병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라이히스팍트에 반대해서 독립전쟁을 일으키는 독일 속국 중 가장 첫 번째로 독립전쟁을 일으키는 나라다. 라트비아, 에스토니아는 다시 라이히스팍트로 가는 경우가 많아서...
  • 리가
    발트 연합 공국이 현지인 게릴라들의 반란으로 무너질 경우 대부분의 지역은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로 독립하지만 리가시만은 유일하게 독일의 세력으로 남게 된다.
  • 모데나
    이탈리아 사회주의 공화국을 합병한 후 이탈리아를 분할하면 등장한다. 부르봉 계열 왕정(스페인, 카를로스파, 프랑스 왕국, 양 시칠리아 왕국)이 점령할 경우 파르마로 등장한다.
  • 백루테니아
    국민정신 수가 매우 많다. 독일의 속국으로 등장하며 시작 시점에서는 카이저 빌헬름 2세의 동생 하인리히의 아들 울라지미르가 지도자로 등장한다. 만약 울라지미르 왕이 권력을 유지하면 계속 독일의 속국으로 잔류하지만(그나마 중점으로 자치 괴뢰국으로 승격되기는 한다.) 왕의 동생 지히문트가 왕을 죽이고 왕이 되면 선택지로 현 상황을 유지하거나 독립 후 홀로 서거나 러시아의 손을 잡을 수 있다. 만약 지히문트가 왕이 되어 독일에게서 독립한 상태에서 리투아니아 역시 국민주의 쿠데타로 독일에게서 독립하면 리투아니아와 손을 잡고 리투아니아-루테니아 연합이라는 세력을 만들 수도 있다.
  • 베네치아 공화국
    이탈리아 공화국을 합병한 후 분할하면 등장하기도 하고 이탈리아 공화국에 국민대중주의자들이 집권하면 독재에 반발해서 뛰쳐나오기도 한다.
  • 스위스
    세계대전 이후의 혼란기 동안 프랑스에서 오트사부아 주를 챙겼다. 프랑스 코뮌이 강성해지자 오트사부아와 더불어 서부의 프랑스어권 지역인 로망디를 요구받게 된다. 이 사건은 오트사부아 위기라고 불리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독일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아예 제3인터내셔널에 합류해 버리거나 외교적 수완을 최대한 발휘해 중립을 유지할 수도 있고 이도저도 안되면 오트사부아에 이어 로망디까지 뜯기고 군사독재 체제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프랑스 코뮌과 독일, 플란데런-왈로니 사이에는 힌덴부르크선이라는 상당히 두꺼운 요새선이 형성되어 있으나 스위스 방면으로는 요새선이 없기 때문에 독일 입장에서는 스위스가 인터내셔널 측으로 넘어가게 되면 골치아파진다.
  • 스칸디나비아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로 만들 수 있다.
    헌법을 정하는 포커스가 나오는데 3국의 왕이 돌아가면서 국가원수를 맡는다고 하나 지도자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헌법 정하고 땡이라 막상 만들어보면 실망스러운 국가이다.
  • 스페인 왕국
    스페인 내전이 스페인 왕국vs전국노동연맹vs카를로스파 3파전으로 발생하지만 가끔 선거를 허용하면 내전은 회피할 수 있으나 확률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지 결정된다. 왕국이 선거에서 이겼다면 병으로 혼수상태가 된 알폰소 13세의 후계자를 뽑게 되는데 왕정 폐지를 선택하면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다시 공화국을 수립하며, 왕국을 유지하려면 후안 3세[117]를 왕으로 세우면 된다. 참고로 확률은 낮지만 하이메 1세가 왕이 되었을 경우 프랑스 왕위를 주장하며 코뮌의 영토에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점이 열린다.
    카를로스파가 암살을 시도해야 하나 그러는 일이 없기 때문에 콘솔을 쳐야 한다. 프랑스 코뮌을 점령해도 핵심주는 박히지 않는다.
  • 아일랜드
    말이 마이너 국가지 바뀌어 버린 역사 때문에 지정학적 위치가 기가 막힌 곳 중 하나이다. 협상국 입장에서 보면 영국 제도와 유럽 본토로 진출할 교두보이면서 라이히스팍트 입장에선 아군으로 끌어들이면 프랑스 코뮌과 브리튼 연방의 뒤를 조일 수 있는 양면전선용 동맹국이다. 거꾸로 제3인터내셔널 입장에선 적대 세력으로 편입되면 골치 아프기 그지 없는 국가. 이 때문인지 브리튼 연방에게 통첩받은 경우 협상국이나 라이히스팍트에게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중점을 통해 가입할 수도 있다. 그외의 중점들도 완성도가 높다. 아일랜드의 대량 이민 역사가 거꾸로 반전되어 오히려 외국의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 들이는 중점이 존재하며 이덕분에 년 단위로 국민들의 짬짬히 보충된다. 미국 이민의 역사도 반영되어 미국과 교류를 할 수 있으며 미국 내전에 지원을 하거나 미국과의 교류로 연구, 산업 발전 이벤트도 있다.
  • 알바니아
    0.6 업데이트에서 많은 이벤트가 추가되었다. 정치는 셰프체트 버를라치의 진보당과 아브니 루스테미의 통합당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데 도중에 카눈으로 정권이 교체될 수 있다. 정권이 교체되고 나면 이전 정권이 찍었던 중점도 모두 사라진다. 베오그라드 협약과 불가리아의 전쟁 중에 코소보를 노리며 세르비아를 공격할 수 있다. 특이하게 오스트리아의 속국이 되면 조구에 의해 쫓겨난 빌헬름 추 비드 대공이 다시 집권할 수 있다. 물론 비드 대공도 카눈의 대상이 될 수 있다.
  • 왈로니아
    아델베르트가 왕으로 등장한다.
  • 우크라이나 왕국
    동유럽 라이히스팍트 구성국 중 유일한 독립국이다. 시작 시점에서는 합스부르크 왕족 출신인 바실리[118]가 왕으로 집권하고 있으며 정치적으로는 올렉산드르 슘스키[119]를 정부에 참여시켜서 사회주의 공화국이 될 수도 있고 도중에 슘스키를 자를 수도 있다. 또는 헤트만인 파울로 스코로파즈키를 밀어줄 수도 있고, 친러파나 우크라이나 국민주의자들을 밀어줄 수도 있다.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지 않는 이상 바실리의 후계자를 뽑게 되는데, 바실리의 아들인 레오 스테판을 왕으로 세울 수도 있고, 파울로 스코로파즈키의 아들인 다닐로를 왕으로 세울 수도 있다. 0.12 패치 이후 정치 중점이 대폭 리워크되어 슘스키 루트가 아니더라도 왕정 폐지가 가능해졌다.[120]
  • 카를로스파 스페인
    중점이 그저 그런 타 스페인 내전 국가들과 달리, 나름 국가 중점이 알차게 준비된 유일한 국가. 내전이 끝나면 협상국에 가입한다.
  • 토스카나
    이탈리아 사회주의 공화국을 합병한 후 이탈리아를 분할하면 등장한다.
  •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폴란드나 리투아니아로 세울 수 있는 나라. 영토 자체는 두 나라가 합쳐진 만큼 약소국은 아니지만 국가 중점을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내전이 일어날 수도 있기에 둘의 의견을 잘 조율하여 중점을 찍는게 중요하다. 왕을 퇴위시키고 사회주의 루트를 갈 수도 있다.
  • 플랜더스
  • 플란데런-왈로니
    실제 역사와는 다르게 독일 제국이 승전함으로서 기존 벨기에 왕정은 폐지되고 잠시간 군정 체제였으나, 얼마 후 카이저 빌헬름 2세의 삼남 아델베르트가 새로운 국왕으로 즉위했으며, 콩고 식민지는 독일령 중앙아프리카에, 본토 동부 영토는 독일 제국에 편입되었다. 현재 상황은 겉으로만 보면 무난해 보이지만 사실 내부에서는 왈로니아계는 프랑스 코뮌에 편입을 기도하며, 플랜더스계는 네덜란드에 편입되기를 원하는 등 내부 문제가 만만찮다. 더군다나 두 세력이 유일무이하게 동의하는 부분이 바로 독일의 지배는 이쯤이면 충분하다는 반독 정서. 선택에 따라 플랜더스와 왈로니아로 분열되거나 다시 벨기에가 되어 독립할 수 있다.
  • 전국노동연맹
    스페인 내전에서 카탈루냐 지방에서 봉기하는 사회주의 세력이다. 내전에서 이길 경우 이베리아 연합으로 이름을 바꾼다. 스페인 내전 세력들 중 가장 재미가 없다.

15.1.1. 폴란드 왕국

1936년 폴란드의 상황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폴란드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폴란드 영토였던 것은 18세기 말에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로이센 사이에 분할되었고, 19세기 내내 산발적인 봉기에도 불구하고 삼국은 계속해서 폴란드를 분할 통치했습니다. 그러나, 폴란드의 운명은 1916년에, 폴란드의 자치를 골자로 하는 11월 5일 법이 제정되면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헝가리 그리고 독일이 폴란드의 지위와 폴란드 왕을 두고 분쟁을 벌이면서 1921년과 1936년 사이 폴란드 국왕 자리는 비게 되었고, 야누시 라지비우의 섭정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폴란드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바르샤바는 1937년의 대타협이 폴란드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지만, 어떤 이들은 오스트리아-독일의 속국으로 있는 것에 지쳤으며, 언젠가는 모든 폴란드인을 위한 왕국을 만들기를 바라면서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고 동쪽에 있는 그들의 '영원한' 형제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 Jeszcze Polska nie zginęła!"

  • 정부
    4% 폴란드 공산노동자당
    15% 일반노동연합
    8% 분열파
    12% 폴란드 사회당
    14% 인민당
    10% 민주당
    10% 폴란드 기독민주당
    4% 섭정의회
    13% 군정
    10% 국민민주당

  • 국가 정신
    • 영원한 섭정
      폴란드의 새로운 왕을 결정하기 위해 처음으로 만들어졌던 폴란드 섭정의회는 약 20년간 지나치게 비대해지고 비효율적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작은 나라인 폴란드에 가하는 부담은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30, 안정도 -35.00%
    • 독일의 산업 지배력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은 우리나라 내부에서 운영되는 독일 기업들에 유리한 경제 접근성을 제공하며 시간을 썼습니다. 이제 독일의 기업 이익은 폴란드 경제의 상당 부분을 통제하고 독일 경제에 연료를 공급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마르게 합니다.
      소비재 공장 10.0%, 생산 효율성 한도 -10.00%


처음에는 왕이 없는 섭정왕국 상태인데, 이미 대논쟁 중점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대논쟁 기간 동안 검은 월요일로 파산한 독일 기업들을 압류하거나[121] 섭정의회 의원들이 책상 크기를 두고 논쟁한다는 등의 이벤트가 뜨며 만약 대논쟁 기간을 잘 넘겨서 왕을 뽑게 된다면 4명의 후보 중 한 명을 뽑아야 한다.
  • 리투아니아 왕: 리투아니아의 왕 민다우가스 3세 카를 게로 폰 우라흐를 왕으로 선출하며 유일하게 이벤트 완료 10일 전의 이벤트로 국왕 선출이 가능하다. 폴란드-리투아니아를 결성할 수 있는 유일한 루트이며 만약 폴란드-리투아니아를 결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리투아니아가 독립국이 되었다면 중점으로 리투아니아에 보호를 제안할 수 있다.
  • 독일인 왕: 빌헬름 2세의 사남 아우구스트 빌헬름 폰 호엔촐레른[125]을 왕으로 선출한다. 독일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라이히스팍트에 가입한다. 0.14 패치 이전에는 작센의 프리드리히 크리스티안 폰 베틴이 폴란드의 왕이 되었지만 패치로 변경되었다.
  • 합스부르크 왕: 카를 스테판 오이겐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 대공의 아들이자 갈리치아-로도메리아를 지배하는 카를 알브레히트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 대공[126]을 왕으로 선출한다. 오스트리아에게서 중점으로 갈리치아-로도메리아를 넘겨받을 수 있는 등[127] 오스트리아와 가까워지며 라이히스팍트나 도나우-아드리아 연맹에 가입한다.
  • 폴란드인 왕: 아우구스틴 유제프 차르토리스키를 왕으로 선출한다.

독일, 리투아니아, 오스트리아는 각각 자신 계열의 왕을 지원한다. 왕을 뽑은 이후에는 중점으로 전제군주제나 입헌군주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대논쟁 도중 일어나는 사건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섭정의회가 붕괴되고 공화국, 생디칼리슴, 극우 정권을 수립할 수 있게 되는데, 극우파 루트는 특이하게도 브와디스와프 시코르스키의 후견전제주의 루트와 로만 드모프스키의 국민대중주의 루트가 모두 같은 중점을 사용한다.

민주주의 루트는 모스크바 협약이나 라이히스팍트에 가입하며, 생디칼리슴 루트는 제3인터내셔널에 가입해 세계혁명을 전파하며 후견전제주의-국민대중주의 루트는 민족주의를 부르짖으며 갈리치아 요구, 리투아니아 합병과 벨라루스 접경지대 요구, 우크라이나 분할과 최종적으로 독일에 대한 복수전을 치를 수 있게 된다. 중점을 찍는 도중 오헝이라는 공동의 적을 상대하는 베오그라드 협약에 가입할 수 있다.[128] 만약 루마니아가 협상국에 가입해 있고 갈리치아-로도메리아가 멸망하거나 해서 없어졌다면 협상국에 가입할 수 있다.

0.13 패치로 세력 가입을 중점이 아닌 디시전으로 하게 되었다.

15.1.2. 오스트리아 제국

1936년 오스트리아의 상황

세계대전의 승리자들 사이에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제국 내에서 문화, 계급 및 이념의 분열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했으며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내부의 불안은 계속되었습니다.

카를 황제는 다민족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20세기에도 생존할 수 있도록 개혁을 시도하다가 암살된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발자취를 따라 일련의 대규모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제국의 헝가리계 귀족들에 의해 크게 방해받았고, 이로 인해 그의 연방화 계획들은 제국의 시스라이타니아(제국의 오스트리아 영토) 쪽에서만 천천히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오스트리아에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제국은 힘들었지만 그 노력은 보상받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연방국인 시스라이타니아 오스트리아는 진정되었습니다. 하지만 트란스라이타니아(제국의 헝가리 영토)는 그러지 않습니다. 헝가리인들이 라이타 강을 넘어 자유를 바라보며 자신들도 그러한 자치를 누리기를 원하기 때문에, 카르파티아 분지가 계속해서 마자르의 손에 남아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개혁이 헝가리에서 이뤄질지의 여부는 오직 황제만이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세계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Austria erit in orbe ultima".
오스트리아 제국 소개 (펴기/접기)

진정한 강국은 견뎌낸다.

1914년의 사라예보 사건 후,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를 향한 최후통첩은 발칸과 세계를 뒤흔들 동맹의 도화선을 태우게 되었다. 제국 안에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의 무너지는 협상국들에 대한 선견지명이 조국의 승리로 이끌었고, 합스부르크라는 이름이 세계 역사에 새겨지게 된다고 배웠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게 영광스럽지는 않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진군하는 이탈리아와 러시아군의 진군에 맞서지 못하고 빠르게 무너졌고, 독일의 완전한 장교진 교체 덕분에 겨우 생존할 수 있었다. 마지막엔 승리를 거두었지만, 세계대전은 오스트리아 제국을 완전한 붕괴에 가까운 매우 부패하고 무능한 국가로 인식되게 만들어버렸다.

193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내의 다양한 정부들은 연방을 뿌리부터 바꿀 새롭고 전면적인 대타협(Ausgleich)을 제시했다. 비록 약화되긴 했지만, 카를 1세의 존재는 오스트리아 패권의 강력한 상징으로 남아있다. 오스트리아의 황제에게만 충성하는 통합군(Common Army)의 새로운 재무장은 교활한 헝가리인들을 없애버리고 그의 완벽한 권력을 빈에서 부다페스트까지 늘리려는 황제의 야심을 보여주고 있다.

계속해서 불안정한 오스만 제국은 발칸 반도에서의 세력 균형을 흔들고 있고, 세계대전에서 패하긴 했지만, 이탈리아에선 복수주의에 가득찬 지배층이 남티롤의 탈환에 대한 계획을 계속해서 꾸미고 있다. 심지어 오스트리아의 예전 동맹인 독일마저도 약해지고 있는 제국에 대한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다.

내부와 외부에서 적으로 둘러싸인 오스트리아-헝가리는 과연 시들고 쓰러질 것인가? 아니면 제국의 투쟁이 끝나고 유럽의 주도국이라는 유산을 마침내 되찾을 것인가? #

  • 정부
    0% 전체주의 인민회의
    0% 사회주의 노동위원회
    4% 사회주의 작업공동체당
    37%사회민주노동자당
    3% 자유운동
    4% 국가자유당
    47%기독사회당
    3% 농민연맹
    2% 대독일인민당
    0% 보국당

  • 국가 정신
    • 오스트리아-헝가리 관계 악화

    그들은 1926년 남부 슬라브인 반란 중재안으로 인한 일리리아 왕국의 형성에 여전히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오스트리아 정부에 의해 배신당한 이들은 크로아티아 토지 손실에 대한 보상을 원합니다. ||
    매일 정치력 획득 -0.15, 소비재 공장 5.0%
    * 공동군 모집
    게마인자메 아르메(Gemeinsame Armee), 또는 공동군은 군주제의 베바프네텐 마흐트(Bewaffneten Macht), 또는 "군대"의 주요 요소입니다. 이것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전역에서 신병들이 오는 등 군대에서 가장 크고 장비가 잘 갖춰진 부분입니다.
    징병 가능 인구 2.50%, 항복 한계치 +10.00%
    * 빈 학파

    그들의 활동은 "파멸의 위기에 관한 정확한 사고"라는 중심적인 사상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
    연구 속도 +2.00%
    * 문호개방의 과실 [A]
    소비재 공장 -2%

  • 괴뢰국
    • 헝가리 (왕관령)
    • 일리리아 (왕관령)
    • 보헤미아 (왕관령)
    •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관령)
    • 이탈리아 공화국 (자치 괴뢰국)[140]


분열되어 있는 제국을 어떻게 재편성하느냐가 중요하다.

시작 시점에서 검은 월요일로 경제가 박살나는데, 이때 총선이 시행되며 선택지에 따라 사회보수주의 정권의 유지나 사회민주주의 정권의 탄생이 결정된다. 그 후에는 정권에 따라 대치되는 경제를 되살리는 중점을 타서 검은 월요일의 영향을 없애고, 경제의 선진화가 완료되면 그때서야 외교, 군사, 경제 부흥+연구 중점을 시작할 수 있다.

7차 대타협으로 결정되는 제국의 재편성 루트는 현상 유지, 다원주의, 그리고 군사 점령 총 3개로 나뉜다.

  • 현상 유지 루트: 말 그대로 제국의 현 상태를 유지하는 루트로 모든 속국들은 합병되지 않고 오스트리아에 종속된 게임 시작 시의 상황을 유지하게 된다. 따로 조건도 없고 내전도 잘 일어나지 않지만 아무 이득이 없다. 사실 가리발디 패치 이전까지는 '복원된 이원론' 중점을 찍고 나면 천천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의 통합이 가능했는데 패치 후 불가능해졌다.

  • 다원주의 연방제 루트: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구상했었고 실제 역사에서는 구상으로 끝났던 연방 국가를 세우는 루트다. 우선 1937년의 대타협 이벤트에서 헝가리에 더해 보헤미아, 일리리아, 갈리치아까지 초대하거나 아예 제국 내의 모든 민족들을 초대하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며 헝가리를 배제시켜야 하는데 보헤미아가 주장한 슬로바키아인들의 분리 요청을 들어주면 헝가리 대표단이 알아서 회의장을 뛰쳐나간다. 이후 일리리아와 갈리치아의 헝가리 영토 요구[143]와 트란실바니아의 분리 요청[144] 까지 들어주고 나서 기다리고 있으면 헝가리가 슬로바키아와 트란실바니아의 분리 운동을 무력진압했다는 이벤트가 뜨는데 이 때 헝가리에게 분쟁 지역에서의 철수를 요구한다. 만약 헝가리가 요구를 거절한다면 헝가리에 선전포고하는 선택지를 고른 뒤 합병, 디시전으로 슬로바키아와 트란실바니아를 왕관령으로 독립시키고 헝가리를 다시 왕관령으로 해방시키면 되며, 반대로 헝가리가 요구를 수용한다면 평화적으로 슬로바키아, 트란실바니아, 마러머로시, 뉴거트반샤그(+버이더샤그)가 오스트리아의 영토가 된다. 이후는 거절했을 때처럼 슬로바키아와 트란실바니아를 왕관령으로 독립시키면 된다. 일리리아와 갈리치아가 요구하는 영토는 주든 말든 마음대로 하면 된다. 헝가리가 오스트리아의 요구를 수용하든 거절해서 전쟁 후 재건되든 조건만 충족되면 '다원주의 수용' 중점이 열리며 종속국들을 완전히 통합할 수 있다. 슬로바키아와 트란실바니아 둘 중 하나만 왕관령이 된 상태여도 헝가리가 오스트리아의 왕관령이기만 하면 다원주의 루트를 탈 수 있다.
    완전히 통합되면 사회보수주의 정권의 경우에는 국명이 대 오스트리아 합중국(United States of Greater Austria)이 되고, 사회민주주의 정권의 경우에는 국명이 도나우 연방(Danubian Federation)이 된다. 대 오스트리아 합중국 루트는 통합으로 주어지는 페널티가 적고 헝가리를 빨리 통합시킬 수 있는 대신 통합이 늦고, 도나우 연방 루트는 국기가 멋있게 바뀌며 빠른 통합이 가능한 대신 헝가리를 빨리 통합시킬 수 없으며 큰 페널티를 가지게 된다. 물론 페널티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없어진다.

  • 군사 점령 루트: 헝가리를 점령한 뒤 슬로바키아와 트란실바니아를 모두 독립시키지 않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루트다. 보헤미아, 갈리치아, 일리리아가 슬로바키아와 트란실바니아의 점령에 반발하며 '슬라브 형제단'을 형성해 선전포고하는데 이들까지 모두 점령하면 오스트리아 제국 전토를 통합할 수 있고[146], 이후 세르비아, 루마니아, 실레시아 지역에 영유권을 주장하며 이탈리아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선택지도 있다. 0.12 패치 이후 이 루트를 타면 후견전제주의 정당이 집권하게 되었다.

대체적으로 유저들은 다원주의 루트를 가장 선호하는 편. 역사적으로는 끝내 구상으로 그쳤던 합중국/연방을 만들어 볼 수 있다는 로망이 있거니와 군사 점령 루트는 중점이 미완성이라는 단점, 현상 유지 루트는 통합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어서 선호도가 낮다. 다만 오스트리아가 독일 본토를 점령하면 선택지로 '오스트리아가 주도하는 독일 제국'을 세울 수 있는데 언제부턴가 패치가 이루어져서 군사 점령 루트나 현상 유지 루트를 선택한 상태에서만 오스트리아의 독일 제국 형성이 가능해졌다. 때문에 이제 다원주의 루트로 오스트리아의 독일 제국을 만들고 싶다면 치트를 이용해야 한다.[147]

이탈리아 공화국의 정치에 개입해 정당을 지원하는 이벤트가 있으며 알바니아를 속국으로 만들면 빌헬름 추 비드를 다시 왕위에 앉힐 수 있고 '알바니아산 석유' 국민정신이 붙으며 알바니아에게서 지속적으로 석유를 공급받는다.

시간을 계속 흘려보내다 보면 카를 1세가 죽고 황태자가 오토 1세로서 뒤를 잇기도 한다.[148]

0.13 패치 후 세력 창설 중점 루트가 약간 변경되었으며[149] 세르비아가 일리리아에게서 몬테네그로를 뜯어가는 이벤트가 추가되었다. 돌려받고 싶으면 전쟁을 해서 뺏는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독일이 전쟁 중일 때 독일이 밀리고 있으면 오스트리아가 자기 세력을 모두 가지고 임시로 라이히스팍트에 가입하는 디시전이 추가되었다. 라이히스팍트 정식 가입도 가능한데, 가입하려면 세르비아와 루마니아가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일으키는 5차 발칸 전쟁에서 져야 한다.

0.14 패치에서는 세력 창설 중점 루트에서 루마니아를 세력에 끌어들이는 중점이 사라졌다. 애초에 루마니아는 오스트리아와 친하게 지내는 루트가 없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15.2. 아프리카

  • 가봉
    중앙아프리카의 몰락시 등장한다. 망명 프랑스나 프랑스 코뮌 중 한 곳에 접촉해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세력에 가입할 수 있다.
  • 나탈
  • 남로디지아
  • 쥐트베스트아프리카 [151]
    중앙아프리카의 몰락시 등장한다. 아프리카 주재 독일인들이 피난한 곳으로 독립한 아프리카 국가들을 재정복해 다시 중앙아프리카를 부활시킬 수 있다.
  • 다호메이
    중앙아프리카의 몰락시 등장한다. 독립하자마자 망명 프랑스의 속국으로 들어간다.
  • 독일 망명정부
    예상하다시피 독일 제국이 전쟁에서 지면 중앙아프리카로 망명한다. 첫 중점트리 제목은 '가장 암울한 시기'로, 사실상 유럽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는 암울한 상황을 훌륭하게 반영한다.(...)
    독일 망명정부를 플레이하기 위해서 게임 초반에 일부러 프코뮌에게 항복당하지 않은 이상, 대부분의 경우에는 독일 본토가 러시아와 인터네셔널에 의해 점령된 상태니, 다른 임시정부들이 모여있는 협상국에 가입해 본토탈환을 위해 인터네셔널을 상대할 수 있다. 또는 프랑스 공화국을 침공해 협상국과의 전쟁을 하는 대신 독자적으로 마르세유 상륙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협상국 가입국들의 상륙을 막는 도중에 인터네셔널의 대대적인 침공으로 공멸할 수 있으니 독자루트는 가지말자. 협상국으로 본토를 탈환한 후 영국과 프랑스를 배신하고 전쟁을 할 수는 있다.
    의외로 중앙아프리카 전체에 코어가 박혀있어 인력은 충분히 뽑히지만,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 매우 빈약한 산업력과 산업중점을 가지고있다. 시작 이전에 미리 개발딸을 쳐놓지 않은 상태라면 협상국 경제기구에 막대한 투자로 산업력 버프를 받아 공장을 늘리도록 하자.
    미텔아프리카가 붕괴된 이후 생겨나는 남서아프리카보다 더 컨텐츠가 빈약하고, 독일 본토를 탈환한 이후 받는 새로운 중점도 없어 플레이가 권장되지 않는다. 제작자들도 이런 국가는 아무도 안할거라고 생각했던 모양. 만약 독일제국 붕괴 이후에도 라이히스팍트 소속이었던 동유럽국가나 독일령 동아시아가 살아있어도, 이들을 모아서 세력창설조차 하지 못한다.
  • 모로코
    시작시 독일의 속국으로 등장한다. 독일 붕괴 이후 자주국이 되면 거의 대부분 이집트가 주도하는 카이로 협약에 가입한 후 프랑스에게 전쟁을 건다. 대부분 협상국에게 처맞고 합병당하지만 인터네셔널이 떡상했을 경우엔 의외로 득을 보기도 한다.
  • 카탕가
    중앙아프리카의 몰락시 등장한다. 벨기에 계와 아스카리들이 피난한 곳으로 원주민들과 식민지 경영인들 사이에서 내부 분쟁이 일어난다.

15.3. 북아메리카

  • 멕시코
    멕시코 혁명 와중에 1917년 베누스티아노 카란사가 대통령이 되고 에밀리아노 사파타판초 비야를 비롯한 경쟁자들을 제거하려하자 다시 봉기가 시작되었고 1922년 알바로 오브레곤이 대통령이 되었다.[153] 오브레곤 대통령은 비야를 프랑스 코뮌의 대사로, 아돌포 데 라 우에르타를 미국 대사로 보내 외교 관계를 개선했고 사파타의 정책을 일부 받아들여 농민과 원주민을 위한 정책을 펴서 인기를 얻었다. 1927년 오브레곤의 꼭두각시로 대통령이 된 데 라 우에르타는 오브레곤의 재선을 위해 대통령 연임 제한을 철폐하고 해외의 격변으로 경제사정이 악화되며 인기가 떨어진다. 결국 1932년의 대선에서는 오브레곤이 아닌 사파타가 당선된다. 사파타는 다시 대통령을 단임제로 만들었고 토지개혁을 개시해 농민들에게는 인기를 얻었지만 우파에게는 미움을 산 상태였다.
    일단 사파타의 정해진 임기는 37년까지지만 36년에 사파타에 대한 암살시도가 성공하면 세 가지 선택지가 나오는데 군사 쿠데타, 플루타르코 카예스의 집권, 빠른 선거가 있다. 암살이 실패하거나 선거로 판초 비야, 파스쿠알 루비오, 비센테 톨레다노 중 한 명이 뒤를 이으면 좌파적 민주주의가 유지된다. 카예스 집권시 극좌 독재 정부가 수립되며, 군사 쿠데타 시 우파적 민주주의를 재건하거나 군사정권을 유지하거나 아니면 호세 우르퀴자의 시나키스트 독재정권을 수립한다. 외교적으로는 좌파 집권시 제3인터내셔널에, 우파 집권시 협상국에 가입할 수 있으며 인접한 센트로아메리카 4개국 중 다른 성향을 가진 국가에 전쟁을 선포할 수 있다. 시나키스트가 집권하고 관련 중점을 찍으면 중앙아메리카와 미국-멕시코 전쟁 때 뺏긴 영토를 수복하는 디시전이 열린다.
  • 센트로아메리카
    과테말라, 엘 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의 4개국이 하나로 통합해 형성할 수 있는 국가. 사회주의 성향일 경우 센트로아메리카가, 민주주의 성향일 경우 중앙아메리카 연방이, 권위주의 성향일 경우 중앙아메리카 공화국이 성립된다.
  • 엘 살바도르
  • 유카탄
    멕시코에서 시나키스트들이 정권을 잡으면 독립할 수 있다.
  • 파나마
    미국 내전이 시작되면 파나마 운하를 점거하게 된다. 그러나 협상국도 파나마 운하를 노리고 있기 때문에 협상국에 가입하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얼마없는 인구와 공장을 최대한 짜내서 6개월 동안 운하를 방어하는데 성공하면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다.
  • 푸에르토 리코
    미국 내전이 시작되면 미국 연방정부에서 독립한다. 미국에서 순순히 독립시켜줄 때와, 군사 정변으로 독립할 때의 트리가 다르다. 미국에서 독립시켜주는 경우엔 다시 미국에 복귀하는 경우도 있지만 존재감은 없다.

15.4. 남아메리카

  • 과라라페스 연방
    브라질 분열시 등장하는 7개국 중 하나
  • 고야즈
    브라질 분열시 등장하는 7개국 중 하나
  • 그랑 파라
    브라질 분열시 등장하는 7개국 중 하나
  • 바히아
    브라질 분열시 등장하는 7개국 중 하나
  • 베라 크루즈
    브라질 분열시 등장하는 7개국 중 하나
  • 볼리비아
    시작 시 게르만 부시 베세라가 집권하고 있는데 검은 월요일 위기 때의 광산 파업에 대처하는 이벤트가 발생한다. 잘 대처했다면 부시의 정권이 계속 유지되지만 만약 대처에 실패했다면 베르나르디노 리오하의 군사정권이 들어서거나, 민주주의, 생디칼리슴 정권이 들어서기도 한다. 칠레와 아르헨티나 전쟁 중 파라과이를 공격해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을 수 있으며 칠레를 공격해 영해를 되찾을 수도 있다.
  • 상 파울루
    브라질 분열시 등장하는 7개국 중 하나
  • 에콰도르
  • 우루과이
  • 콜롬비아
  • 피라티니
    브라질 분열시 등장하는 7개국 중 하나

15.5. 아시아 & 오세아니아

15.5.1. 서아시아

  • 네지드
    사우디 아라비아의 전신이 된 국가. 시작하자마자 자발 샴마르와 분쟁들을 벌이게 된다. 분쟁에서 승리할 경우 땅들과 기타 보너스를 받게 된다. 이후 전쟁이 벌어지는데, 네지드 쪽이 병력에서 우월해서 쉽게 승리하는 편. 이후 이집트 주도의 카이로 조약에 참여해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게 된다. 포르투칼과 더불어서 몇 안되는 수구적인 국가로, 80년 더 빠른 ISIS 비슷한 국가를 성립시키거나, 아니면 현실 사우디랑 유사한 체제 중 하나를 선택 할 수 있다.
  • 무스카트
    오만의 전신이 되는 국가. 영국의 영향력이 소멸하여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고 사이드 빈 타이무르[155]가 계속 집권하고 있다. 예멘과 네지드의 위협을받고 있고 카이로 조약이나 협상국에 가입할 수 있다.
  • 예멘
    게임 시작시 오스만 제국의 괴뢰국이지만 카이로 조약이 오스만을 공격할 경우 반란 이벤트로 독립전쟁을 벌인다.

15.5.2. 남아시아

참고:현재 인도 3국은 리워크 예정이다
  • 바라티야 코뮌
    인도에서 생디칼리슴 혁명이 일어나 북동쪽에 자리잡은 생디칼리슴 국가. 전체주의 계열 집권시 찬드라 보스가 지도자가 되고 급진사회주의 계열의 지도자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가 암살되며 니르말 큐마르 보스가 내전을 일으킨다. 간디가 집권 시에는 반대로 찬드라 보스가 내전을 일으킨다. 내전 잡는건 그리 어렵진 않은편. 참고로 인도 자치령이 사민주의이고 간디가 집권하면 평화 통일을 시도 할 수도 있다.
  • 부탄
  • 인도 자치령
    인도가 3국가중 하나 인도가 분할되면서 북서쪽을 차지했다. 시작하자마자 5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발발한다.[158] 영토가 분열됐다지만 기본 국력도 있고 협상국 국가들이 같이 참전하기 때문에 쉽게 이길 수 있다.[159] 이후 산업 트리를 착실히 밟아가며 국력을 키운 후 인도 통일전쟁에 참가하면 된다. 전쟁중 여차하면 협상국 맴버들을 호출할 수 있으니 통일이 쉬운 편이다.
  • 토후 연맹
    포커스를 타는 도중 남부 토후국들의 봉기를 진압해야 하며 정치적 타협안을 거부하고 인도를 통일한 뒤에는 인도 제국을 칭하는 루트를 탈 수 있다.

15.5.3. 동남아시아

  • 네덜란드 망명정부
    네덜란드의 정치 불안정을 빠르게 수습하지 못하면 좌파 쿠데타가 일어나 바타비아 코뮌이 설립된다. 그럴 경우 본 네덜란드 정부는 네덜란드령 동인도로 넘어와 망명정부를 설립하는데, 중점을 타며 라이히스팍트에 들어가 본국을 되찾으려 할 수 있다. 시작시 국가 지도자는 빌헬미나 여왕인데, 본국에서 빌헬미나 퇴위 후 공화정이 수립된 이후 쿠데타가 발생한 경우에도 지도자는 빌헬미나 여왕이다.

  • 시암 왕국
    담당자가 태국인인 덕분에 모든 아시아 국가, 심지어 일본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한 포커스 트리와 이벤트 그리고 체제가 준비된 국가. 선택에 따라서는 민주주의 혁명이나 군부 쿠데타 등의 요인으로 내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
  • 인도차이나 연합
    베트남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생디칼리슴 국가. 호찌민은 독립 운동 중에 독일에 붙잡혀 사망했지만 그 불씨는 꺼지지 않아 검은 월요일 발 경제 위기 이후 독일령 동아시아에 대항해 봉기가 일어나게 된다. 독립전쟁 중에는 여러 디시전으로 총기를 수입해 올 수 있고 독일령 동아시아의 사단에 각종 디버프를 걸어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 독립 이후에는 토지 개혁에 대한 미션이 발동해 디시전을 이용해 토지 개혁 포인트를 쌓아 시간 내에 토지 개혁 약속을 지켜야 한다. 이후 외교 중점에 따라 시암을 공격하고 프랑스 주도의 제3인터내셔널이나 바라티야 코뮌 주도의 동방 생디칼리슴 연방에 가입하게 된다.
  • 인술인디아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 억압된 통치를 시행할 경우 지역민들이 들고 일어나 내전이 발생한다.
  • 카친

15.5.4. 동아시아

  • 공사관 도시
    1925년, 영국의 생디칼리슴 혁명으로 인해 영국 소유의 중국 조계지들이 위험에 처하자, 독일과 일본은 군을 파견하여 조계지들을 차지하기 위해 신경전을 벌인다. 이후 1928년 4차 직봉전쟁이 독일-일본의 전면전으로 확장되기 직전 미국이 개입해 타국의 중국에 대한 개입을 금지하고 각국 간에 이익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그 결과 7개국[170]의 조계지를 모두 모으고 확장해서 공사관 도시가 탄생했다.
    미국의 영향으로 세워진 국가이니만큼 현 대표는 미국 대사가 맡고 있다. 그러나 게임 진행상 미국이 내전으로 무너지면 대표 자리가 영국, 독일, 일본 대사 중 한명에게 넘어갈 수 있다. 미국 대사가 유임되거나 영국 대사가 대표가 되면 중립을 유지하거나 협상국에 가입한다. 독일 대사와 일본 대사는 당연히 각각 라이히스팍트, 공영권에 가입하려하고 상대편 대사를 공사관에서 추방해버릴 수 있다. 공사관 도시의 자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파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상하이만 남기고 남은 영토는 독일령 동아시아, 일본, 동중국 등으로 넘어가버린다. 상하이와 홍콩이 같은 소속으로 들어간 덕에 홍콩의 삼합회와 상하이의 청방이 모두 날뛰고 있고 조직 범죄 관련 이벤트들이 심심치않게 발생한다.
  • 국민당 좌파
    국민혁명 이전까지는 중국 남부 최대의 세력이었지만 독일의 개입으로 국민혁명이 실패하면서 폭삭 망해버렸다. 후한민랴오중카이 암살 미수 사건을 빌미로 처형, 장제스는 국민혁명 와중에 암살, 리쭝런, 주페이더 등은 지역 군벌화됨에 따라 당내 우파 세력들은 씨가 말랐고 왕징웨이를 필두로 랴오중카이, 저우언라이 등의 지지를 받는 국민당 좌파가 정권을 잡았다. 시작시점에서 대부분의 당내 인사는 프랑스나 바라티야 코뮌으로 망명했으나 쑹칭링, 다이리 등 중국에 남아 해방구를 건설하는 인물들도 존재한다.
    36년 초반에 팔성연합이 몰락하면 장쑤성 남쪽 끝 룽옌에서 봉기하며 급진사회주의자인 왕징웨이가 지도자로 등장한다. 시작하자마자 남경군벌, 안경군벌, 산동군벌을 상대로 팔성연합전쟁을 치르게 되고 연합전쟁이 끝나면 당대회를 열어 훈정을 계속할지, 헌정을 실시할지, 종래의 중앙집권적인 체제를 유지할지, 분권화적으로 변화할지 등을 결정한다. 대회에서 결정한 것과 반대되는 중점을 타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것이 여러 번 반복되면 정보기관을 맡고 있던 다이리가 쿠데타를 일으킨다. 또 쑹칭링의 국민당은 중화합중국과 더불어 선거를 하는 몇 안되는 중국 세력이다. 같은 국민당이더라도 주페이더 등의 국민당 우파와는 사이가 좋지 않지만 선거로 사회민주주의자인 쑹칭링이 지도자가 될 경우 국민당 우파와 평화통일이 가능하다. 참고로 산하의 자치령을 통합하는 디시전을 달성하면 자치령의 장군들과 원수들, 제독 중 일부를 영입할 수 있다.
  • 동투르키스탄
    신강 군벌에서 봉기하며 등장한다. 신강 군벌과 쿠물 칸국을 진압하게 된다면 부그라 가문, 티무르 베그, 마수드 사브리의 루트가 갈린다. 부그라 가문이 집권하면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가 되고 티무르 베그가 집권할시 금권 독재 공화국이 되거나 왕국으로 전환된다. 마수드 사브리가 두 세력을 모두 물리치면 스스로 군사독재를 선언하거나 민주주의 국가를 세울 수 있다.
  • 만주
    중국이나 일본 이외의 국가[171]가 봉천 정부를 멸망시킬 경우 세워진다.
  • 몽골
    투바와 차하르 지역, 현 몽골 영토만을 가지고 있어 주변 국가와 비교하면 국력이 약한 편이다. 시작시 지도자는 운게른이나 이후 세력다툼으로 운게른 유지, 몽골 인민당, 창캬 후툭투, 데므치그돈로브 중 하나가 집권한다. 마가군벌과 티베트의 전쟁 중에 마가군벌의 뒤통수를 쳐서 영토를 뜯을 수 있고 이후로는 일본이나 러시아에게 빌붙게 된다. 운게른이 정권을 잡으면 중점을 통해 러시아와 협력하거나 독자노선을 걷고, 불교연맹이 집권하면 티베트를 본받아 신정국가로 바뀌면서 불교를 국교로 지정하는데 소수종교는 공존/금지 중에서 중점을 택해 정하게 된다. 인민당이 집권하면 공화정/데므치그돈로브가 집권하면 귀족 과두정이 된다. 몽골은 인구가 적어서 어느 중점이든 인력 한계를 늘려주는 중점을 받는데 운게른이나 불교연맹 집권이 유리하다.
  • 신강 군벌
    양쩡신이 아직까지 집권 중이다. 시작 이후 곧 양쩡신은 실종[172]되며, 그의 후임자 진수런은 쿠물 칸국을 편입하려 하다가 하미 반란군, 동투르키스탄 반란군에 의해 양면전선에 처하게 된다. 두 반란을 진압한 후 폭정을 하게 될 경우 성스차이를 주축으로 한 반대파가 쿠데타를 일으키며, 성스차이의 친국민당적인 정책에 반발하는 마샤오우가 정치투쟁을 벌인다.
    국민당 좌파가 살아서 북벌을 성공한 상태고 신장의 지도자가 마샤오우가 아닐 경우 국민당과 협상하여 자치령이 될 수도 있다.
  • 양광 군벌
    광둥의 천중밍과 광시의 루룽팅이 연성주의의 구호로 묶인 군벌. 팔성연합이 붕괴하며 천중밍을 대표로 해서 독립해나온다. 광둥의 재력과 광시의 군사력으로 서로를 보완하며 발전해나가나 싶지만 1936년 말 루룽팅이 사망하고 리쭝런이 광시로 침공해 광서내전이 일어나며 상황이 급변한다. 리쭝런이 이기고 광둥의 천밍수가 리쭝런에 호응해 천중밍을 몰아내면 내전을 회피하고 이후 회담을 통해 천밍수가, 혹은 리쭝런이 지도자가 될지 결정할 수 있다. 천중밍이 자신의 자리를 계속 유지하면 리쭝런과 천중밍 사이에서 광동-광서 전쟁이 일어난다. 리쭝런이 패배하고 루룽팅의 후계자 마지가 승리하면 천중밍이 루룽팅의 장례식에 참가하는데 여기서 마지가 천중밍을 암살하려 시도한다. 암살에서 살아남으면 천중밍과 마지 사이에서 광동-광서 전쟁이 일어난다. 천중밍이 사망하면 광둥성에서는 천롄보(진염백), 혹은 천밍수가 권력을 잡고 광동-광서 전쟁이 일어난다. 광둥 광서 전쟁에서 승리한 측이 누구냐에 따라 천중밍의 연성주의 중화합중국, 천밍수의 국민당 좌파, 리쭝런의 국민당 우파[173], 천롄보의 친일 상인 공화국, 마지의 친 직예 군벌화로 루트가 갈린다.
    가장 자주 발생하는 것은 천중밍의 승리로 그의 연성자치주의 루트를 타다보면 운이 좋으면 사천-호남-운남 군벌을 평화적으로 괴뢰화할 수 있고, 운이 좋다면 마가군벌이나 신강도 평화적으로 괴뢰화할 수 있으며 확률은 매우 낮지만 청나라가 멸망한 후 산서성과 북경을 지배한다면 봉천도 평화적으로 합병할 수 있다. 마지막 정치 포커스를 찍는다면 포커스트리가 새롭게 바뀌며 정치 포커스트리를 타다보면 옛 군벌들(국민당,직예,봉천 등)을 받아들일 건지에 대한 이벤트가 나온다. 당연히 장군, 원수, 제독들 중 일부를 영입할 수도 있다. 중국 통일 이후 핵심주 박기만 하는 다른 세력보단 후반 컨텐츠가 많은 편.
    만약 리쭝런의 신광시군벌이 이긴다면 (국민당 좌파가 살아 있을 때)국민당 좌파를 침공하고 국민당의 정통성을 가져오며, 이후 남서부 군벌을 공격하고 북벌을 준비하는 등 과격하게 확장하는 면모를 보이며, 권력투쟁에서 국민당 우파가 이긴 군벌들과 연합하기도 한다. 천밍수가 정권을 잡을 경우 오히려 국민당 좌파와 협력하며, 국민당이 멸망했을 경우엔 자신이 진짜 국민당이라 주장한다.
    희귀하긴 하지만, 구광시군벌이나 상인단이 이겼을 경우 인도차이나 연합을 침공하거나 운남 등을 모아서 호국군을 창설하는 등 따로 노는 등의 행보를 보이다가 직봉전쟁에서 승리한 봉천과 일본에 의해 멸망당한다.
  • 안경 군벌
    팔성연합에서 천댜오위안이 독립하며 등장한다. 우페이푸가 안경군벌의 편을 들면 친청 루트로, 그 이외의 경우에는 친봉천루트로 들어선다. 시작하자마자 쑨촨팡의 남경 군벌과 전쟁을 벌이며 남경 군벌 멸망 이후에는 국민당과 전쟁을 벌인다. 산동 군벌(혹은 상청천국)과도 전쟁중이라면 양면전선에 처해 분할당할 수도 있다.
    안휘성이 세력기반인데, 돤치루이의 안휘군벌과는 연관성이 없고 지역 군벌, 혹은 직예 군벌로 분류해야할 것이다.
  • 쿠물 칸국
    신강과 마가군벌, 몽골 사이에 낀 작은 이슬람국가이다.
    1936년 게임 시작 이후 진수런이 강제로 한족화 정책을 펼쳐 쿠물 칸국을 폐지하고 하미시로 괴뢰화하지만 진수런의 폭정에 반발해 주민들이 독립전쟁을 일으키고 이후 마중잉의 군대를 빌려 신강 군벌과 동투르키스탄에 대항하는 전쟁을 벌인다. 신장성 전체를 차지하면 칸국의 운명을 결정지울 각 파벌간 영향력 싸움이 시작되며, 결과에 따라 칸국의 보존(입헌군주제와 전제군주제), 호자 니야즈의 동투르키스탄 부활, 마씨 군벌 중 하나인 마중잉의 쿠데타, 판야오난[174]의 한족화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마중잉이나 판야오난이 신장을 차지할 경우 다른 군벌들처럼 중국에 코어를 박을 수 있게 되며, 베이징을 점령할 경우 중화민국 선포를 할 수 있게된다. 몽골, 티베트, 마씨군벌 등을 침공할 수 있는 중점들을 가진 마중잉이 형성하기 쉬운 편이다.
  • 트란스아무르
    블라디보스토크를 수도로 한 연해주에 위치했으며, 1924년 콜차크의 반란으로 세워진 친일 국가. 봉천정부와 비슷하게 일본의 독립 보장을 받는 것으로 표현된다. 알렉산드르 콜차크가 다스리고 있고 러시아와는 사이가 매우 나쁘다.
    반콜차크 정서 국민 정신이 존재하면 1937년에 반콜차크 쿠데타 이벤트가 발생한다. 콜차크가 성공적으로 쿠데타를 막아낼 수도 있고, 군부가 콜차크를 처리한 뒤 체코 군단 출신의 세르게이 보이체호프스키[175]가 이끄는 군부독재 체제를 만들 수도 있으며 빅토르 페펠랴예프[176](시장자유주의)나 스피리돈 메르쿨로프(사회보수주의), 보리스 슈먀츠키[177](사회민주주의) 등이 이끄는 민주 공화국이 될 수도 있다. 일본이 직접 쿠테타를 사주해 트란스아무르를 굴복시키면 군사 정권, 공화국, 오오이 시게모토[178] 장군 중 하나를 골라 집권시킨다.
    의외로 확장은 쉬운 편인데 반콜차크 쿠데타를 일본의 개가 되지 않고 어떻게든 끝내서 시베리아 영토를 얻는 중점을 해금하면 이후 러시아가 개입하느냐 개입하지 않느냐에 따라 영토를 그냥 얻을 수도 있고 러시아와 전쟁을 할 수도 있다. 러시아를 멸망시키고 나면 러시아를 칭하며 일본의 영향력을 완전히 없애는 중점이 열리며 러시아처럼 옛 러시아 제국의 영토를 되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이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을 단속하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하는데, 이걸 무시하면 일본이 최후통첩을 보내고, 최후통첩까지 무시하면 일본과 전쟁을 벌여 러시아를 칭할 때처럼 일본의 영향력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 진행하면서 어쩔 수 없이 모스크바 협약을 창설해야만 하는 러시아와는 달리 초반에 캐나다에 특사를 보내는 이벤트가 좋게 마무리되었다면 협상국에 가입이 가능하다.
  • 티베트
    달라이 라마 13세의 생전 통치기간 동안 판첸 라마 9세는 바라티야로 망명[179], 급진주의 정당을 세우고 섭정이 다스리고 있는 현 티베트정부에 대항하고 있다. 티베트의 섭정들은 꿈을 꾸며 달라이 라마 14세에 대한 정보를 얻고, 그 정보를 통해 환생한 아이를 찾아야한다. 전체주의 정당이 집권을 하게 되면 달라이 라마 제도를 폐지시킬 수 있다.
    시작시 마가 군벌과 국경분쟁을 하고 있으며 사천 군벌의 땅을 이전에 차지한 적이 있어 그로 인해 사천과 사이가 나쁘다. 위수분쟁이 전쟁으로 악화되면 티베트+몽골vs마가 군벌+사천 군벌이 전쟁을 하게 되는데, 높은 확률로 사천군벌은 자기 먹을 것만 먹고 전쟁에서 먼저 빠져나가고 ,마가군벌은 몽골과 티베트가 각각 분할한다.
    또한 전체주의 정당이 집권할 경우 부탄, 네팔 등 히말라야 국가들을 침공할 수 있다.
  • 호남 군벌
    팔성연합 붕괴 이후 독립하며 초기 지도자는 자오헝티. 독립 후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는다. 선거 조작으로 자오헝티가 당선될 경우 친 직예, 정당하게 자오헝티가 당선되면 친 연성주의, 청첸이 당선되면 국민당 좌파 혹은 우파, 탕성즈가 당선되면 국민당 우파 혹은 친 연성주의로 분류된다.

16. 기타

아래 국가들은 고유의 국가중점이 없고 공용 중점을 쓴다. 대부분은 시작시에는 존재하지 않으니 게임 진행 중에 등장할 수도 있다.

16.1. 아시아

  • 대한민국[182]
    국가 지도자는 전체주의, 생디칼리슴, 급진사회주의일 경우 조봉암, 독립전쟁이 일어날 경우 김구, 청나라가 해방할 경우 의친왕, 일본의 괴뢰로 등장할 경우 영친왕이 등장한다. 다른 나라로 일본을 굴복 시켜 독립시키는게 아니라면 독립 전쟁 혹은 일본이 괴뢰국으로 독립시켜서 탄생한다. 전자의 경우는 높은 확률로 일본군에게 다굴을 맞아서 재흡수되거나 괴뢰국이 된다. 고유 국가 중점이 아직까지는 존재하지 않지만 몇몇 국가에서 한국의 독립 전쟁을 지원해주는 이벤트와 독립 후 일본인 이주민을 어떻게 처리 할지 결정하는 이벤트[183]가 존재한다.
  • 시베리아
    러시아를 항복시키면 시베리아를 독립시키는 선택지가 나오는 이벤트로 등장한다.
  • 트라반코르
  • 드라비디아나두
    토후 연맹의 남부 토후국 봉기가 터졌을 시 등장한다.

16.2. 아프리카


아래 국가들은 모두 미텔아프리카가 붕괴할 시 등장한다.

16.3. 유럽

  • 웨일스
    브리튼을 항복시켰을 시 나오는 이벤트로 독립시킬 수 있다.
  • 브르타뉴
    프랑스 코뮌을 항복시켰을 시 나오는 이벤트로 독립시킬 수 있다.

16.4. 아메리카

  • 퀘벡
    캐나다를 항복시켰을 시 나오는 이벤트로 독립시킬 수 있다.

[1] Dreiklassenwahlrecht. 선거권자들을 세금 비율에 따라 세 계급으로 나눠서 같은 수의 선거인단을 가지게 하는 제도. 이 제도 때문에 4%의 고세율자 계급이 80%의 저세율자 계급과 같은 선거인단을 가지게 된다.[2] Dreiklassenwahlrecht. 선거권자들을 세금 비율에 따라 세 계급으로 나눠서 같은 수의 선거인단을 가지게 하는 제도. 이 제도 때문에 4%의 고세율자 계급이 80%의 저세율자 계급과 같은 선거인단을 가지게 된다.[A] 3.1 3.2 3.3 3.4 3.5 3.6 3.7 3.8 3.9 3.10 3.11 3.12 3.13 3.14 3.15 3.16 3.17 3.18 3.19 3.20 3.21 3.22 3.23 3.24 시작 직후 활성화[9] 리투아니아 왕국의 경우 극우 국민주의자가 집권해 독립을 선언하기도 하며, 발트 연합공국의 경우에는 독립, 백루테니아의 경우 독립이나 자발적 러시아 편입을 시도한다.[10] 우크라이나는 불황이 심해질 경우 올렉산드르 슘스키가 국정에 간섭하고 아예 쿠데타로 왕을 퇴위시킨 뒤 생디칼리슴 국가를 만들어 제3인터내셔널에 가입해버린다.[11] 중앙아프리카는 안정도가 일정 이하로 떨어지게 될 경우 반란으로 인해 아프리카 소국들이 난립하며 해체된다.[12] 완성이 되지 않았다.[13] 원래 루마니아도 선택 가능했지만 삭제되었다.[14] 영국 왕실이 떠났기에 Republic Air Force가 되었다[15] 남독일의 경우 요새와 언덕, 산이 많고 벨기에쪽은 평지지만 강이 많다.[16] 이 뒤로도 쿠키 음성이 있다. 브리튼 섬에 상륙한 마이어스와 SBS 대원들이 로렌스라는 현지 협력자와 만나는 내용.[17] 이 뒤로도 쿠키 음성이 있다. 브리튼 섬에 상륙한 마이어스와 SBS 대원들이 로렌스라는 현지 협력자와 만나는 내용.[18] 이 문구는 조지 5세와 마이어스 대위가 함께 말한다.[19] 이 문구는 조지 5세와 마이어스 대위가 함께 말한다.[20] 러시아의 괴뢰국이지만 게임 시작 후 얼마 안 가 독립한다. 아주 가끔 잔류할 때도 있다.[21] 러시아의 괴뢰국이지만 게임 시작 후 얼마 안 가 독립한다. 아주 가끔 잔류할 때도 있다.[22] 러시아의 괴뢰국이지만 게임 시작 후 얼마 안 가 독립한다. 아주 가끔 잔류할 때도 있다.[23] 러시아의 괴뢰국이지만 게임 시작 후 얼마 안 가 독립한다. 아주 가끔 잔류할 때도 있다.[24] 러시아의 괴뢰국이지만 게임 시작 후 얼마 안 가 독립한다. 아주 가끔 잔류할 때도 있다.[25] 러시아의 괴뢰국이지만 게임 시작 후 얼마 안 가 독립한다. 아주 가끔 잔류할 때도 있다.[26] 실제 역사에서는 사회혁명당 소속이었지만 여기서는 우파로 전향했다는 설정으로 나온다.[27] 혁명을 일으킬 때는 알렉세이 리코프가 집권하지만 혁명이 성공한 뒤에 대표가 부하린으로 바뀐다.[34] 풀네임은 윌리엄 깁스 맥아두(William Gibbs McAdoo)로, 미국의 제 49대 재무장관이자 우드로 윌슨의 사위이다.[35] 2차대전 중 서부전선에서 제3기갑사단장으로 복무하던 중 사망. 폴란드 출신 유대인 후손으로 2차 대전 중 독일군의 포격으로 사망한 장성 중 최고위.[36] 미국 대선 후보였던 존 매케인의 할아버지.[37] 현직 군인들은 대부분 다른 파벌에 속해있고, CSA의 장성들은 노동자 출신으로 어떠한 공을 세워 장군으로 선출된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군사 교육이나 참모 업무에 대한 건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이 장성진 대부분을 꿰차고 있다.[38] 게임상 태그는 TEX이다. 모순적이게도 텍사스 일부 지역은 내전 시작시 미연합국 소속이 아니다.[39] 엔딩 음악으로 미연합국 테마인 New Kings Walking이 나온다.[40] 소개 영상의 말투가 텍사스 사투리가 강하다. 다만 정작 수도는 댈러스휴스턴, 오스틴도 아닌 애틀랜타이다.[41] 엔딩 음악으로 미연합국 테마인 New Kings Walking이 나온다.[42] 소개 영상의 말투가 텍사스 사투리가 강하다. 다만 정작 수도는 댈러스휴스턴, 오스틴도 아닌 애틀랜타이다.[43] 휴이 롱이 제안한 재산 재분배 정책. 돈이 남아도는 부유층에게 거액의 세금을 뜯어내 모든 가족에게 생활 지원비로 분배한다는 정책이다. 이렇게 뜯어낸 세금은 지원비 뿐만 아니라 노인 생활 보조금이나 무상 교육과 같은 복지 정책에도 투자된다.[44] 성은 커글린, 코글린, 코플린 등 중구난방으로 번역된다. 가톨릭 신부로 라디오를 통해 반유대주의를 선전했다. 게임 중에서도 미국으로 플레이하면 교황령에서 커글린 신부가 라디오에서 못 떠들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이벤트가 나온다.[45] 휴이 롱이 제안한 재산 재분배 정책. 돈이 남아도는 부유층에게 거액의 세금을 뜯어내 모든 가족에게 생활 지원비로 분배한다는 정책이다. 이렇게 뜯어낸 세금은 지원비 뿐만 아니라 노인 생활 보조금이나 무상 교육과 같은 복지 정책에도 투자된다.[46] 성은 커글린, 코글린, 코플린 등 중구난방으로 번역된다. 가톨릭 신부로 라디오를 통해 반유대주의를 선전했다. 게임 중에서도 미국으로 플레이하면 교황령에서 커글린 신부가 라디오에서 못 떠들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이벤트가 나온다.[47] 게임상 tag는 CAL이다.[48] 엔딩 음악으로 미태평양합중국 테마곡인 The West Will Never Fall이 나온다.[49] 엔딩 음악으로 미태평양합중국 테마곡인 The West Will Never Fall이 나온다.[50] 미국 독립 전쟁 당시 쓰이던 구호. 똬리를 틀고있는 방울뱀이 그려진 개즈던 플래그(Gadsden flag)와 함께 사용되었다. 그러니까 건드리면 물어뜯겠다는 의미다. 최근에는 대안 우파들이 들고 나와서 이미지를 조졌다.[51] 소개 영상의 말투가 고증대로 보스턴 특유의 억양이 매우 강하다.[52] 미국 독립 전쟁 당시 쓰이던 구호. 똬리를 틀고있는 방울뱀이 그려진 개즈던 플래그(Gadsden flag)와 함께 사용되었다. 그러니까 건드리면 물어뜯겠다는 의미다. 최근에는 대안 우파들이 들고 나와서 이미지를 조졌다.[53] 소개 영상의 말투가 고증대로 보스턴 특유의 억양이 매우 강하다.[54] 태평양합중국 영상 화자인 산악사단 병사다.[55] 정황상 미연합국 영상 화자다.[56] 내용이 좀 나사 빠졌는데, 2020년 만우절 영상이라서 그렇다. 댓글에 따르면 테마는 만우절 농담이지만 진짜 카이저라이히의 세계 영상이라고. 이후 후원자 닉네임을 말하는 파트에도 말론이 튀어나온다. 후원자 닉네임은 안 말하고 하와이 포스터 홍보나 카이저 캣 시네마 트위터 계정 홍보를 하는데 마지막에 일본군이 하와이를 공격한다는 전화를 받으며 끝난다.공식 채널의 여러 답글들 중 하나가 Why do I hear boss music#이다[57] 태평양합중국 영상 화자인 산악사단 병사다.[58] 정황상 미연합국 영상 화자다.[59] 내용이 좀 나사 빠졌는데, 2020년 만우절 영상이라서 그렇다. 댓글에 따르면 테마는 만우절 농담이지만 진짜 카이저라이히의 세계 영상이라고. 이후 후원자 닉네임을 말하는 파트에도 말론이 튀어나온다. 후원자 닉네임은 안 말하고 하와이 포스터 홍보나 카이저 캣 시네마 트위터 계정 홍보를 하는데 마지막에 일본군이 하와이를 공격한다는 전화를 받으며 끝난다.공식 채널의 여러 답글들 중 하나가 Why do I hear boss music#이다[61] 봉천 정부의 협화회 지지도에 따라 변동[63] 봉천 정부의 협화회 지지도에 따라 변동[65] 봉천 정부의 협화회 지지도에 따라 변동[67] 봉천 정부의 협화회 지지도에 따라 변동[69] 봉천 정부의 협화회 지지도에 따라 변동[71] 봉천 정부의 협화회 지지도에 따라 변동[72] 0.10 패치로 봉천이 일본의 속국에서 벗어났고 0.13 패치로 트란스아무르마저 독립국으로 설정되었다.[73] 풀네임은 익찬정치회(翼賛政治会/요쿠산세이지카이).[74] 성능 하락이나 비용 증가를 대가로 이 보너스를 강화할 수도 있다.[75] 공영권을 완성하면 일본에겐 소비재 -15%, 공장, 조선소 생산 +30%, 다른 가입국들은 소비재 -10%, 건설속도 +20%, 자원 채집 효율 +20% 이라는 국가 정신이 된다.[76] 소비재 +20%, 전쟁 지지도 -10%[77] 사단 훈련 시간 -10%, 작전 수립 속도 +10%, 최대 계획 수립 +10%[78] 이탈리아 연방, 국민 프랑스, 일본, 오스만, 네덜란드, 브라질, 인도 자치령, 루마니아 철위대. 강대국의 위치에 일본 대신 오스트리아가 있었다.[79] 올리벤사 지역은 패치로 사라졌다.[80] 그리스의 경우 땅이 워낙 좁은데다가 승점 지역이 국토 남쪽, 그것도 해안가에 몰려 있어서 항복 한계가 굉장히 낮다.[81] 네지드 술탄국, 시리아.[82]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동부.[83] 나이지리아 북부.[84] 모두 이슬람 우위 지역이다.[85] 상술된 인물 맞다.[86] 경제적 영향권 아래 있는 도시의 개수에 따라 달라짐[87] 경제적 영향권 아래 있는 도시의 개수에 따라 달라짐[88] 경제적 영향권 아래 있는 도시의 개수에 따라 달라짐[89] 경제적 영향권 아래 있는 도시의 개수에 따라 달라짐[90] 경제적 영향권 아래 있는 도시의 개수에 따라 달라짐[91] 경제적 영향권 아래 있는 도시의 개수에 따라 달라짐[92] 중앙 정부의 권력이 먼 곳까지는 못 닿는다는 의미다.[93] 중앙 정부의 권력이 먼 곳까지는 못 닿는다는 의미다.[94] 낮은 확률로 쑹저위안이 집권할 경우에는 참전하지 않는다.[95] 심지어 여당격인 광복회조차 영향력이 너무 커지면 국민정신 '부도덕한 통치 방식'이 '처참한 통치 방식'으로 악화되어 버린다.[96] 이때 선택지에 따라 선전포고도 가능하다.[97] 제작팀의 답변에 의하면 협화회가 시장자유주의로 나오게 된 까닭은 이들이 만철의 이익 관계를 대표하기도 하지만 넣을 만한 다른 이념이 없는 이유로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98] 국민당 좌파가 멸망하면 초대할 수 있다.[99] 그런데 실제 역사에서 양위팅은 항일을 주장해 관동군에게 거슬렸었다. 아마 양위팅이 일본 육사 출신이라는 사실만 보고 양위팅을 협화회로 설정한 듯.[100] 주페이더가 정권을 잡아도 국민당 좌파에 쑹칭링이 집권해 있다면 협상으로 국민당의 속국이 될 수 있다.[101] 4분의 4박자로 바꾸고 앞부분만 반복시킨 자체 편곡 버전이다.#[102] 0.11 패치 이전까지는 이탈리아 지역 국가들끼리 싸울 때 세력 가입도 마음대로 가능했고 자신이 가입한 세력을 전쟁에 소환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2차대전이 일어나지 않았을 시 세력 가입이나 타국의 지원이 불가능해졌다.[103]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제 3 인터내셔널 가입을 할 수 없다.[104] 정복을 하려면 협상국과도 전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필수는 아니다.[105] 피렌체 대주교 엘리아 달라 코스타 추기경. 반파시즘적인 태도를 보였고 탄압받는 유대인들을 숨기도록 지시해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가경자로 선포[106] 실 역사의 요한 23세와는 다르다. 의 주교였던 아실 리에나르 추기경으로 노동 사제 운동에도 참여할 정도로 진보적인 성향이었다.[107] 밀라노 대주교 알프레도 일데폰소 슈스터 추기경. 무솔리니와 파시즘 정권에 대한 밀월관계로 악명이 높았다.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108] 아마데오 1세의 손자로 실제 역사에서는 2차 대전 중 영국군에게 포로가 되어 1942년 사망한다. 동생 아이모네는 크로아티아 독립국의 왕 토미슬라프 2세로 추대되기도 했다.[109] 고유 중점은 여전히 없고 대신 오스만의 빌라예트가 되었다.[110] 일부 이벤트에서 그의 이름에 붙임표가 들어가 루이나폴레옹(Louis-Napoléon)으로 적혀 있는데, 프랑스어 위키 항목에서는 이름에 붙임표가 없다. 아마도 착각으로 인해 붙임표를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111] 실제 역사의 무스타파 페브지 차크마크.[112] 케말을 퇴출시키려는 작당모의를 적발하는 이벤트에서 마지막에 적당히 봐주는 플레이가 필요하다.[113]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아버지. 실제 역사에서는 왕이 된 적이 없으며 프랑코의 독재에 반대하며 계승권을 주장했다. 이후 프랑코가 죽고 왕위에 오른 아들이 스페인을 민주화시키자 스스로 계승권을 포기했다.[114] 스타팅 시점 갈리치아-로도메리아의 왕인 카를 알브레히트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 대공의 동생이다.[115] 이전에는 미키타 크루시초프가 등장했었지만 패치로 변경되었다.[116] 일례로 친러파가 정권을 잡으면 미하일 불가코프가 집권해 왕정을 폐지하고 러시아와 손을 잡는다.[117]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아버지. 실제 역사에서는 왕이 된 적이 없으며 프랑코의 독재에 반대하며 계승권을 주장했다. 이후 프랑코가 죽고 왕위에 오른 아들이 스페인을 민주화시키자 스스로 계승권을 포기했다.[118] 스타팅 시점 갈리치아-로도메리아의 왕인 카를 알브레히트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 대공의 동생이다.[119] 이전에는 미키타 크루시초프가 등장했었지만 패치로 변경되었다.[120] 일례로 친러파가 정권을 잡으면 미하일 불가코프가 집권해 왕정을 폐지하고 러시아와 손을 잡는다.[121] 국민정신 '독일의 산업 지배력'이 삭제되는 이벤트다.[122] 실제 역사에서는 나치 빠돌이가 되어 슈츠슈타펠에도 들어갔고, 그래서 나치 독일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던 아버지에게 외인 취급당했다.[123] 실제 역사에서는 1차 대전이 동맹국의 패배로 끝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된 이후 신생 폴란드 제2공화국에 합류했고, 폴란드군에 입대해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에도 참전했다. 이름도 폴란드식으로 읽은 카롤 올브레히트로 바꾸었으며 2차 대전 시기에는 폴란드 점령지에 총독부를 설치한 나치 독일에게 협조를 요구받았지만 자신은 폴란드인임을 천명하며 이를 거부해 체포, 전향을 강요받으며 고문당했음에도 끝까지 전향하지 않았고 결국 한쪽 눈이 멀고 반신불수가 되었다. 심지어 나치에게 재산을 압류당한 건 덤. 전후 수용소에서 해방되어 폴란드로 돌아왔지만 당시 폴란드는 공산화되어가는 중이었고, 그래서 얼마 가지 않아 스웨덴으로 이주해 1951년 스톡홀름 근교에서 죽었다. 폴란드에 남은 그의 재산은 1945년 인민 공화국 정부가 압류했다고 한다.[124]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전역을 다 주는 경우도 있고 크라쿠프 지역만 주는 경우도 있다.[125] 실제 역사에서는 나치 빠돌이가 되어 슈츠슈타펠에도 들어갔고, 그래서 나치 독일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던 아버지에게 외인 취급당했다.[126] 실제 역사에서는 1차 대전이 동맹국의 패배로 끝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된 이후 신생 폴란드 제2공화국에 합류했고, 폴란드군에 입대해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에도 참전했다. 이름도 폴란드식으로 읽은 카롤 올브레히트로 바꾸었으며 2차 대전 시기에는 폴란드 점령지에 총독부를 설치한 나치 독일에게 협조를 요구받았지만 자신은 폴란드인임을 천명하며 이를 거부해 체포, 전향을 강요받으며 고문당했음에도 끝까지 전향하지 않았고 결국 한쪽 눈이 멀고 반신불수가 되었다. 심지어 나치에게 재산을 압류당한 건 덤. 전후 수용소에서 해방되어 폴란드로 돌아왔지만 당시 폴란드는 공산화되어가는 중이었고, 그래서 얼마 가지 않아 스웨덴으로 이주해 1951년 스톡홀름 근교에서 죽었다. 폴란드에 남은 그의 재산은 1945년 인민 공화국 정부가 압류했다고 한다.[127]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전역을 다 주는 경우도 있고 크라쿠프 지역만 주는 경우도 있다.[128] 만약 세르비아가 러시아의 동맹 제의에 수락한다면 조약은 해체되고, 그리스를 제외한 국가들은 러시아 세력에 들어갈건지 선택지가 뜨는데 이럴 경우 대중주의 폴란드도 러시아와 동맹을 맺을 수 있다.[132] 양쯔강 패치로 오스트리아의 괴뢰국이 되었지만 얼마 안가 독립한다.[133] 양쯔강 패치로 오스트리아의 괴뢰국이 되었지만 얼마 안가 독립한다.[134] 양쯔강 패치로 오스트리아의 괴뢰국이 되었지만 얼마 안가 독립한다.[138] 양쯔강 패치로 오스트리아의 괴뢰국이 되었지만 얼마 안가 독립한다.[139] 양쯔강 패치로 오스트리아의 괴뢰국이 되었지만 얼마 안가 독립한다.[140] 양쯔강 패치로 오스트리아의 괴뢰국이 되었지만 얼마 안가 독립한다.[141] 일리리아는 뉴거트반샤그(베스트바나트)를, 갈리치아는 마러머로시(트란스카르파틴)를 요구한다. 일리리아의 경우 대타협 이벤트에서 버이더샤그(보이보디나)까지 얹어줄 수 있다.[142] 실제 역사에서의 강역만 분리시켜 줄 수도 있고 아예 트란실바니아 전역을 분리시켜 줄 수도 있다.[143] 일리리아는 뉴거트반샤그(베스트바나트)를, 갈리치아는 마러머로시(트란스카르파틴)를 요구한다. 일리리아의 경우 대타협 이벤트에서 버이더샤그(보이보디나)까지 얹어줄 수 있다.[144] 실제 역사에서의 강역만 분리시켜 줄 수도 있고 아예 트란실바니아 전역을 분리시켜 줄 수도 있다.[145] 다만 독립만 하고 끝나는 경우도 있다.[146] 다만 독립만 하고 끝나는 경우도 있다.[147] 이에 대해서는 다원주의 루트에 대한 디버프라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148] 엄밀히 따지면 오토 1세라는 즉위명은 고증오류다. 실제 역사에서 오토 황태자는 프란츠 요제프로 세례를 받았기에 황제가 되었다면 프란츠 요제프 2세가 되었어야 했다.[149] 패치 이전에는 루마니아에 내전이 일어날 시 왕당파를 지원하는 중점이 있었지만 패치로 루마니아 내전이 사라지면서 중점이 삭제되었다.[150] 정확히 영문판에선 독어로 남서아프리카를 뜻하는 Südwestafrika 라고 나온다.[151] 정확히 영문판에선 독어로 남서아프리카를 뜻하는 Südwestafrika 라고 나온다.[152] 오브레곤이 집권할 때까지는 실제 역사와 같으나, 카라에서는 비야와 사파타가 혁명 이후에도 살아남았다.[153] 오브레곤이 집권할 때까지는 실제 역사와 같으나, 카라에서는 비야와 사파타가 혁명 이후에도 살아남았다.[154] 실 역사에서는 32년 쿠데타로 망명[155] 실 역사에서는 32년 쿠데타로 망명[156] 대영제국 붕괴 이후 영국령 인도가 혼란에 빠지자 아프가니스탄이 4차 아프간 전쟁을 벌여서 접경지대를 빼앗았다.[157] 이 전쟁에서 아프가니스탄이 자치령을 깨부술 경우 발루치스탄과 카슈미르, 최대 델리까지 먹는 조건으로 평협을 할 수 있다.[158] 대영제국 붕괴 이후 영국령 인도가 혼란에 빠지자 아프가니스탄이 4차 아프간 전쟁을 벌여서 접경지대를 빼앗았다.[159] 이 전쟁에서 아프가니스탄이 자치령을 깨부술 경우 발루치스탄과 카슈미르, 최대 델리까지 먹는 조건으로 평협을 할 수 있다.[160] 미국, 독일, 일본, 영국,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플란데런-왈로니.[161] 보통은 러시아[162] 사실은 신강성의 공금을 유용해 비자금을 조성해왔고 나중에 혼란을 틈타 고향 운남으로 도망갔음이 밝혀진다.[163] 국민당 좌파에서 사민주의가 정권을 잡으면 두 국민당 간의 통합이 가능하다.[164] 실제 역사에서 양쩡신을 죽인 인물[165] 실제 역사에서도 체코 군단 출신이었다.[166] 러시아 내전 시기 마지막 백군이자 게임 내에서 트란스아무르의 원수로 등장하는 아나톨리 페펠랴예프의 형. 실제 역사에서는 끝까지 콜차크를 따랐으며 그가 처형당할 때 함께 처형되었다.[167] 실제 역사에서는 소련 영화계의 책임자였으며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의 <베진 초원> 문제로 처형당했다.[168] 시베리아 출병 때 일본군 12사단 사단장이었다. 원래는 시베리아 출병의 지휘관이었던 유히 미쓰에가 집권했으나 1925년에 죽은 인물을 예토전생시킨 거라 더 오랫동안(1951년 사망) 살아남았던 오오이로 교체되었다.[169] 실제 역사에서는 중화민국으로 망명[170] 미국, 독일, 일본, 영국,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플란데런-왈로니.[171] 보통은 러시아[172] 사실은 신강성의 공금을 유용해 비자금을 조성해왔고 나중에 혼란을 틈타 고향 운남으로 도망갔음이 밝혀진다.[173] 국민당 좌파에서 사민주의가 정권을 잡으면 두 국민당 간의 통합이 가능하다.[174] 실제 역사에서 양쩡신을 죽인 인물[175] 실제 역사에서도 체코 군단 출신이었다.[176] 러시아 내전 시기 마지막 백군이자 게임 내에서 트란스아무르의 원수로 등장하는 아나톨리 페펠랴예프의 형. 실제 역사에서는 끝까지 콜차크를 따랐으며 그가 처형당할 때 함께 처형되었다.[177] 실제 역사에서는 소련 영화계의 책임자였으며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의 <베진 초원> 문제로 처형당했다.[178] 시베리아 출병 때 일본군 12사단 사단장이었다. 원래는 시베리아 출병의 지휘관이었던 유히 미쓰에가 집권했으나 1925년에 죽은 인물을 예토전생시킨 거라 더 오랫동안(1951년 사망) 살아남았던 오오이로 교체되었다.[179] 실제 역사에서는 중화민국으로 망명[180] 패치 전 조선 왕국.[181] 모조리 일본으로 쫓아내버리는 선택지와 경제 발전을 위해 그들을 수용하는 선택지가 존재한다. 전자의 경우 정치력을 획득하는 대신 인력이 -10000 감소하며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공장 생산량이 감소하는 국가신념이 생성되어 600일 후 사라진다. 또한 일본에서는 한국 난민 이벤트가 발생한다. 후자의 경우 반대로 정치력이 감소하는 대신 일본과의 관계가 가까워지며 공장 생산량이 증가하는 국가신념이 생성된다.[182] 패치 전 조선 왕국.[183] 모조리 일본으로 쫓아내버리는 선택지와 경제 발전을 위해 그들을 수용하는 선택지가 존재한다. 전자의 경우 정치력을 획득하는 대신 인력이 -10000 감소하며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공장 생산량이 감소하는 국가신념이 생성되어 600일 후 사라진다. 또한 일본에서는 한국 난민 이벤트가 발생한다. 후자의 경우 반대로 정치력이 감소하는 대신 일본과의 관계가 가까워지며 공장 생산량이 증가하는 국가신념이 생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