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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 대학농구연맹전
춘계 우승: 연세대 추계 우승: 중앙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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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2년도 대학농구연맹전 및 기타 대학농구 대회들에 대해 소개한다.
대회
| 일시
| 우승팀
| MVP
| 준우승팀
| 3위
| 4위
| 비고
|
춘계 대학농구연맹전
| 4월
| 연세대
| 오성식(연세대)
| 중앙대
| 고려대
| 경희대
| |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
| 5월
| 연세대
| 문경은(연세대)
| 중앙대
| 경희대
| 동국대
| |
전국체전
| 10월
| 중앙대
| -
| 경희대
| |||
추계 대학농구연맹전
| 11월
| 중앙대
| 홍사붕(중앙대)
| 경희대
| 고려대/연세대[2]
| ||
2. 대회결과
2.1. 춘계 대학농구연맹전 (4월)
1) 참가팀 및 주요 사항
- 대학농구연맹 남대 1부 12개팀 전체가 참가하였다.
2) 조별 예선
순위
| A조
| B조
| C조
| |||
1
| 연세대
| 3 - 0
| 중앙대
| 3 - 0
| 경희대
| 3 - 0
|
2
| 명지대
| 2 - 1
| 고려대
| 1 - 2
| 동국대
| 2 - 1
|
3
| 성균관대
| 1 - 2
| 국민대
| 1 - 2
| 한양대
| 1 - 2
|
4
| 홍익대
| 0 - 3
| 단국대
| 0 - 3
| 건국대
| 0 - 3
|
순위
| 결선리그
| 비고
| |
1
| 연세대
| 5 - 0
| 우승
|
2
| 중앙대
| 4 - 1
| |
3
| 고려대
| 3 - 2
| |
4
| 경희대
| 2 - 3
| |
5
| 명지대
| 1 - 4
| |
6
| 동국대
| 0 - 5
| |
- MVP: 오성식(연세대)
2.2.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 (5월)
2.3. 전국체전 (10월)
1
| 중앙대
|
2
| 경희대
|
2.4. 추계 대학농구연맹전 (11월)
1) 참가팀 및 주요 사항
- 대학 1부 12개팀과 2부팀인 서울대(!!), 청주대까지 총 14개팀이 2개조로 나뉘어 예선을 진행하였다.
2) 조별 예선
순위
| A조
| B조
| ||
1
| 중앙대
| 6 - 0
| 경희대
| 6 - 0
|
2
| 고려대
| 5 - 1
| 연세대
| 5 - 1
|
3
| 건국대※
| 3 - 3
| 동국대
| 4 - 2
|
4
| 국민대※
| 3 - 3
| 한양대
| 3 - 3
|
5
| 성균관대※
| 2 - 4
| 명지대
| 2 - 4
|
6
| 홍익대※
| 2 - 4
| 단국대
| 1 - 5
|
7
| 서울대
| 0 - 6
| 청주대
| 0 - 6
|
※ 골득실차로 순위 결정
3) 6강 토너먼트
3) 6강 토너먼트
6강
| 4강
| 결승
|
-
| 고려대: 패
77 : 85 (OT) 경희대: 승 | 경희대: 패
70 : 73 중앙대: 승 |
고려대: 승
91 : 89 (OT) 동국대: 패 | ||
-
| 연세대: 패
66 : 72 중앙대: 승 | |
연세대: 승
82 : 58 건국대: 패 |
- 최종순위: 중앙대 우승 / 경희대 준우승 / 고려대/연세대 공동 3위
- MVP: 홍사붕(중앙대)
2.5. 1992-93 농구대잔치 (12월~1993년 3월)
1992-93 농구대잔치 항목 참조
팀명
| 최종성적
| 전적
| 비고
|
연세대
| 4위 (4강 진출)
| 11 - 9
| |
중앙대
| 5위 (6강 진출)
| 10 - 9
| |
고려대
| 9위
| 5 - 8
| |
경희대
| 11위
| 4 - 9
| |
명지대
| 13위
| 2 - 11
| |
동국대
| 14위
| 1 - 12
|
3. 시즌 결산
연맹전/MBC배/전국체전
| 농구대잔치[13]
| ||||
우승
| 준우승
| 4강
| 6강
| ||
연세대
| 춘계/MBC배
| 추계
| 4위
| ||
중앙대
| 추계/체전
| 춘계/MBC배
| 5위
| ||
경희대
| 추계/체전
| 춘계/MBC배
| 11위
| ||
고려대
| 춘계/추계
| 9위
| |||
동국대
| MBC배
| 춘계/추계
| 14위
| ||
명지대
| 춘계
| 13위
| |||
건국대
| 추계
| ||||
-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예선에서 깔끔하게 탈락하면서, 1992년 한해동안 대표팀 소집 자체가 거의 없었다. 덕분에 지난 1991-92 농구대잔치 4강팀 연세대는 오랜만에 시즌 전 대회에 전력누수없이 참가할수 있었고, 상반기 춘계연맹전과 MBC배를 가볍게 휩쓴다. 특히 춘계연맹전 종료후 4학년 가드 오성식이 스카웃 파문을 일으키면서 연세대로부터 징계를 받아 남은 모든 대회(농구대잔치 포함)에 결장하게 되었지만, 연세대는 지난 농구대잔치부터 이미 2학년 이상민이 주전 포인트가드 자리를 꿰찬데다, 신입생 우지원, 김훈이 정재근의 졸업과 오성식의 이탈 공백을 잘 메우면서 1992년 시즌 또한번 실질적 대학 최강자의 자리에 오른다. 1992-93 농구대잔치에서도 지난 대회에 이어 2연속 4강에 진입하며, 대학농구의 레벨을 넘어 국내 성인농구계에서 기존의 실업 3강(기아-현대-삼성)과 나란한 위치에 올라있음을 증명했다.
- 고교랭킹 1,2,3위라 불리던 전희철(C,198cm,경복고 졸), 김병철(G,185cm,용산고 졸), 박준영(F,195cm,휘문고 졸)을 싹쓸이하면서 올해야말로 80년대 초반의 영광을 되찾아오겠노라 다짐했던 고려대는, 그러나 아직 미숙한 신입생들을 받쳐줄 기존 선배들의 전력이 부족하여 기대한만큼의 성적을 내진 못하고 연세, 중앙대에 밀리며 춘계/추계연맹전에서 각각 4강권에 그치고 만다. 오히려 경희대가 이창수의 졸업에도 불구, 추계 연맹전에서 고려대를 꺾고 결승까지 오르는등 모든 대회에서 4강이상의 성적을 거두었고, 봉하민(3년,G,190cm)-박재현(4년,F,189cm)-이병률(4년,C,195cm)의 동국대가 선전하면서 4강권을 위협하는 구도였다.
4. 1992년 졸업반 선수들의 행보
오성식을 제외하곤 특급이라 부를만한 선수는 없고 대부분 KBL에서 롤플레이어 또는 식스맨 역할 정도만 하는 선수가 대부분이었으나, 그래도 최악의 암흑기였던 90, 91년도 졸업반보다는 뎁스가 어느정도 있었다. 현 KBL 드래프트 기준으로 보면 1순위 오성식, 2,3순위 정경호 or 정인교, 4순위 박상관 정도일텐데, 원년시즌(1997) 원주나래 돌풍을 이끌었던 정인교를 제외하곤 KBL에서 단일 시즌이나마 큰 임팩트를 준 선수가 잘 보이진 않는다.
- 국가대표팀 선발
- KBL 출범(1997) 이후까지 활약선수신장포지션학교실업팀KBLKBL 시즌182G/F고려대산업은행원주나래(97-98)-부산기아(98-00)-여수골드뱅크(00-02)
-울산모비스(02-03)-서울삼성(03-04)8200C명지대삼성전자수원/서울삼성(97-02)-대구오리온즈(02-03)7윤호영180G고려대삼성전자수원삼성(97)-창원LG(97-99)-서울SK(99-01)5박재현189F동국대현대전자대전현대(97-99)-광주골드뱅크(99-00)-울산모비스(00-01)5이병률195C동국대기업은행광주나산/여수골드뱅크(97-01)5문필호182G홍익대SBS안양SBS(97-01)5김광은192F중앙대현대전자대전현대(97)-청주SK(97-00)4김재열191F한양대SBS안양SBS(97-98)-대구동양(98-99)-서울삼성(99-00)4188F경희대기업은행광주나산(97-99)3187F국민대산업은행원주나래(97-99)3이창욱188F단국대동양제과대구동양(97)-원주나래(97-98)2정회조185G중앙대기아자동차부산기아(97-98)2김승환190F건국대기업은행광주나산(97)1
- 프로출범 이전 은퇴선수신장포지션학교실업팀박권우190F/C고려대산업은행설왕진180G건국대기아자동차정진안180G한양대?유동혁-G홍익대SBS
5. 그때 그 선수들
5.1. 건국대
추계연맹전 6강
- 정진영(1학년,G,184cm)
- 김용식(1학년,G,187cm)
- 황준삼(2학년,F,179cm)
- 김승환(4학년,F,190cm): 부산동아고 졸. 기업은행-광주나산(97)
은퇴 뒤 2000년경부터 은사인 주봉삼 감독의 후임으로 건국대 감독을 5년간 지내다 이후 울산무룡고 코치, U-18 대표팀 코치 등을 지냈으며 16-17 시즌을 앞두고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수석코치로 임명되었다. - 이일웅(3학년,C,195cm)
5.2. 경희대
5.3. 고려대
춘계연맹전 3위, 추계연맹전 3위, 농구대잔치 9위
- 윤호영(4학년,G,180cm): 휘문고 졸. 삼성전자-수원삼성(97)-창원LG(97-99)-서울SK(99-01)
드리블과 어시스트 능력이 뛰어난 정통 포인트가드로 고교시절 청소년 대표에 뽑힐 정도로 유망주였으나, 피지컬과 득점력이 아쉬워 실업 및 프로에서 두각을 내지 못했다. 현재 KBL 심판으로 활동하며 선수시절에 받지못한 유명세(?)를 제대로 떨치고 있다. - 김병철(1학년,G,185cm)
- 정인교(4학년,F,182cm): 휘문고 졸.
- 이지승(2학년,F,188cm)
- 전희철(1학년,C,198cm)
- 박세웅(3학년,G,180cm)
- 박준영(1학년,F,195cm)
5.4. 국민대
- 이환우(2학년,G,184cm)
- 장윤섭(4학년,F,187cm): 명지고 졸. 산업은행/나래이동통신-원주나래(97-99)
- 김성환(2학년,F,194cm)
- 조승민(3학년,C,192cm)
5.5. 단국대
- 위성우(2학년,G,185cm)
- 이창욱(4학년,F,188cm): 강원사대부고 졸. 동양제과-대구동양(97)-원주나래(97-98)
5.6. 동국대
MBC배 4위, 춘계/추계연맹전 6강, 농구대잔치 14위/14팀
- 정성조(1학년,G,181cm)
- 봉하민(3학년,G,190cm)
- 박재현(4학년,F,189cm): 대구계성고 졸 현대전자-대전현대(97-99)-광주골드뱅크(99-00)-부산 기아(00-01)
- 이병률(4학년,C,195cm): 대전고 졸. 기업은행-광주나산/여수골드뱅크(97-01)
대전고 2학년 때 선배 이상범과 함께 대전고의 창단 첫 전국대회 우승(1987 동국대총장기)을 따냈던 주역으로, 동국대 진학 후엔 국가대표 출신 서대성(195cm, 삼성전자) 이후 동국대 최고 센터로 불리며 팀의 골밑을 4년간 홀로 지켰다. 신체조건은 특출나지 않았지만 슛거리가 길었던 센터로, 기업은행 입단 후 이민형의 골밑 파트너로 뛰며 기업은행을 1993-94 농구대잔치 8강까지 진출시켰고, 이듬해는 상무에 입대하여 상술한 1994-95 농구대잔치에서의 상무 돌풍 시 주전센터로 뛰었다. KBL 출범후엔 여느 국내빅맨들과 마찬가지로 벤치만 지키다 은퇴했는데, 광주나산-광주골드뱅크-여수코리아텐더 시절을 모두 겪으며 5시즌을 뛰었다. 은퇴후엔 충남 홍주고등학교 체육교사로 부임하여 학생들 및 일반 동호회원들에게 농구를 지도하고 있다.
5.7. 명지대
춘계연맹전 6강, 농구대잔치 13위/14팀
- 조성훈(1학년,G,185cm)
- 고상준(3학년,F,182cm)
- 조성원(3학년,F,182cm)
- 장기명(2학년,F,186cm)
- 박상관(4학년,C,200cm): 대경상고 졸. 삼성전자-수원삼성(97-02)-대구동양(02-04)
- 정재헌(1학년,C,193cm)
5.8. 성균관대
- 박규훈(2학년,G,180cm)
- 배상우(1학년,F,192cm)
- 박상욱(3학년,C,200cm)
5.9. 연세대
5.10. 중앙대
시즌 2관왕(추계연맹전, 전국체전), 농구대잔치 5위
- 정회조(4학년,G,185cm): 경복고 졸. 기아자동차/부산기아(97-99)
고교 시절만 해도 랭킹 2위의 유망주 가드였으나, 고학년 시절 후배 김승기, 홍사붕에 밀려 오히려 많이 출장하지 못했으며, 기아자동차 입단 후에도 화려한 멤버들에 밀려 가비지타임에만 간간히 출장하였다. KBL 출범 직전 열린 1996-97 농구대잔치에서 당시 기아가 전력을 다하지 않음에 따라 조현일, 장석환 등 후보멤버들과 함께 이례적으로 많은 출장시간을 얻었으며, 그해 기아는 7전 전패로 실업부 꼴찌를 차지하고 만다.(;;;)[35] - 심상문(4학년,G,184cm): 송도고 졸. 기아자동차-부산기아(97-99)-대구동양(99-00)
정인교 스타일의 단신 3점 슈터. 위의 정회조와 비슷한 테크트리를 타면서 은퇴한다. - 김희선(1학년,G,186cm)
- 김광은(4학년,F,192cm): 송도고 졸. 현대전자/대전현대(97)-청주SK(97-00)
우리은행 위비의 금지어인 그 분 맞다. 당시 기준으로 장신 3점슈터로 꽤 두각을 나타냈으나, 역시 워낙 출중한 후배들(김영만,양경민)에 밀려 고학년때 출장기회가 적었다. 현대전자 암흑기에 임근배와 함께 외곽슈터로 잠깐 활약했고, 이후 KBL 두번째 시즌(1997-98)부터 합류한 청주SK 나이츠가 선수부족에 시달림에 따라 긴급 합류하여 준주전급으로 활약했으나 팀은 꼴찌를 면치 못했다. 그래도 1998-99 KBL 올스타전 3점슛 콘테스트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하면서 짧게나마 KBL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문제는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그렇지, 선수생활 마지막 해인 1999-2000시즌에는 SK의 창단 첫 우승을 경험하고 은퇴한다. - 정경호(4학년,C,202cm): 휘문고 졸.
- 안병익(2학년,C,196cm)
5.11. 한양대
- 정진안(4학년,G,179cm)
- 김동철(2학년,G,180cm)
- 이인규(2학년,G,187cm)
- 최호(2학년,F,193cm)
5.12. 홍익대
- 유동혁(4학년,G): SBS 입단.
KBL 출범직전 은퇴하여 SBS 카메라기자가 되었다. - 이무진(2학년,F,186cm)
- 김대현(2학년,F,190cm)
[1] 공동 3위[2] 공동 3위[3] 1년전 열린 1991 고베 아시아선수권에서 준우승 하면서 1장뿐인 티켓을 중국에 넘겼다.[4] 사실 정재근, 표필상이 졸업하면서 대학생 국가대표는 연세대의 문경은, 오성식 뿐이었다.[5] 1년전 열린 1991 고베 아시아선수권에서 준우승 하면서 1장뿐인 티켓을 중국에 넘겼다.[6] 사실 정재근, 표필상이 졸업하면서 대학생 국가대표는 연세대의 문경은, 오성식 뿐이었다.[7] 예선에서의 상대 전적을 가지고 간다.[8] 오성식 항목 참조[9] 기존 정봉섭 감독 시절의 팀이 정경호(4년, 202cm), 조동기(3년, 197cm), 안병익(2년, 196cm) 등을 더블포스트로 기용하는 전술이 주였다면, 강정수 코치는 싱글포스트에 김영만-양경민의 두 포워드를 주로 이용해 전방위 디펜스 및 속공을 주 전력을 삼았다. 이에 따라 싱글포스트 자리는 기동력이 좋은 조동기가 중용되기 시작했다.[10] 오성식 항목 참조[11] 기존 정봉섭 감독 시절의 팀이 정경호(4년, 202cm), 조동기(3년, 197cm), 안병익(2년, 196cm) 등을 더블포스트로 기용하는 전술이 주였다면, 강정수 코치는 싱글포스트에 김영만-양경민의 두 포워드를 주로 이용해 전방위 디펜스 및 속공을 주 전력을 삼았다. 이에 따라 싱글포스트 자리는 기동력이 좋은 조동기가 중용되기 시작했다.[12] 총 14팀 참가[13] 총 14팀 참가[14] 상무소속이던 1993년 자카르타 ABC부터 1996년 애틀랜트 올림픽까지 국대의 2번째 포인트가드 자리를 놓고 이상민과 경쟁하였다.(첫번째는 당연히 강동희)[15] 스카웃 파동을 수습하고자 졸업후 바로 상무에 입대했다가 상황이 어느정도 잠잠해지면서 제대후 SBS로 합류했다.[16] 1995년 서울 ABC 때 서장훈의 대타로 합류, 이후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과 1999년 후쿠오카 ABC 대표팀에서 뛰었다.[17] 상무소속이던 1993년 자카르타 ABC부터 1996년 애틀랜트 올림픽까지 국대의 2번째 포인트가드 자리를 놓고 이상민과 경쟁하였다.(첫번째는 당연히 강동희)[18] 스카웃 파동을 수습하고자 졸업후 바로 상무에 입대했다가 상황이 어느정도 잠잠해지면서 제대후 SBS로 합류했다.[19] 1995년 서울 ABC 때 서장훈의 대타로 합류, 이후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과 1999년 후쿠오카 ABC 대표팀에서 뛰었다.[20] 상무소속이던 1993년 자카르타 ABC부터 1996년 애틀랜트 올림픽까지 국대의 2번째 포인트가드 자리를 놓고 이상민과 경쟁하였다.(첫번째는 당연히 강동희)[21] 스카웃 파동을 수습하고자 졸업후 바로 상무에 입대했다가 상황이 어느정도 잠잠해지면서 제대후 SBS로 합류했다.[22] 상무소속이던 1993년 자카르타 ABC부터 1996년 애틀랜트 올림픽까지 국대의 2번째 포인트가드 자리를 놓고 이상민과 경쟁하였다.(첫번째는 당연히 강동희)[23] 스카웃 파동을 수습하고자 졸업후 바로 상무에 입대했다가 상황이 어느정도 잠잠해지면서 제대후 SBS로 합류했다.[24] 1995년 서울 ABC 때 서장훈의 대타로 합류, 이후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과 1999년 후쿠오카 ABC 대표팀에서 뛰었다.[25] 1995년 서울 ABC 때 서장훈의 대타로 합류, 이후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과 1999년 후쿠오카 ABC 대표팀에서 뛰었다.[26] 강병수(191cm, 산업은행), 정한신(192cm, 현대전자), 노정현(193cm, 은퇴)[27] 양정고 출신 90학번 정구근(200cm)은 강압적인 훈련에 반발하여 미국 유학을 택했고, 전희철의 고교 선배였던 이익수(2학년,203cm)는 부상으로 아예 나오는 일이 드물었다. 그 바람에 4번 시켜준다고 해서 고려대를 택했던 전희철은 1학년 내내 센터로만 뛰어야 했다.[28] 이때 산업은행에 남은 선수가 안세환(전 구리 KDB생명 감독), 이도용 등이고, 박희성, 정인교, 강병수, 장윤섭, 이인규, 최호, 지형근 등 어린선수들은 나래이동통신과 계약하였다.[29] 강병수(191cm, 산업은행), 정한신(192cm, 현대전자), 노정현(193cm, 은퇴)[30] 양정고 출신 90학번 정구근(200cm)은 강압적인 훈련에 반발하여 미국 유학을 택했고, 전희철의 고교 선배였던 이익수(2학년,203cm)는 부상으로 아예 나오는 일이 드물었다. 그 바람에 4번 시켜준다고 해서 고려대를 택했던 전희철은 1학년 내내 센터로만 뛰어야 했다.[31] 이때 산업은행에 남은 선수가 안세환(전 구리 KDB생명 감독), 이도용 등이고, 박희성, 정인교, 강병수, 장윤섭, 이인규, 최호, 지형근 등 어린선수들은 나래이동통신과 계약하였다.[32] 4월 춘계연맹전 이후 연세대로부터 자체 출장정지를 당했다. 항목 참조.[33] 4월 춘계연맹전 이후 연세대로부터 자체 출장정지를 당했다. 항목 참조.[34] 농구대잔치 종료직후 열린 1997 원년시즌, 부산기아는 우승했고 정회조는 다시 벤치로 물러났다.[35] 농구대잔치 종료직후 열린 1997 원년시즌, 부산기아는 우승했고 정회조는 다시 벤치로 물러났다.[36] 정락영-이인규-존 다지-이훈재-자바리 마일스 주전에 김재열, 신현식, 이현주 등이 주로 뛰었다.일반 팬들은 알만한 이름이 별로 없다. 제일 유명한게 가나 왕자 존 다지와 야반도주한 그레그 콜버트[37] 정락영-이인규-존 다지-이훈재-자바리 마일스 주전에 김재열, 신현식, 이현주 등이 주로 뛰었다.일반 팬들은 알만한 이름이 별로 없다. 제일 유명한게 가나 왕자 존 다지와 야반도주한 그레그 콜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