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선의 수상 및 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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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희선(金熙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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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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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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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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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87cm, 91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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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입단
| 1996년 삼성전자 농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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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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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 부천 하나 외환 여자농구단 코치 (2012~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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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아마추어 선수 시절
중앙대학교 출신으로 일명 마지막 승부 세대 멤버이다. 187cm의 신장에 포지션은 슈팅 가드였다. 2학년까지 식스 맨 역할을 했는데, 당시 중앙대의 주전이던 3, 4학년의 자리가 너무 확고했고,[1] 본인의 기량도 터지기 전이었다. 그래도 이 때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를 통해 김승기, 홍사붕의 백업가드로, 또한 허재의 전담 마크맨으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농구대잔치가 끝난 후 김승기, 홍사붕이 졸업하면서, 공석이 된 주전 포인트 가드 자리를 꿰차면서 중심멤버로 자리잡고 4학년 때는 팀 주장을 맡는다. 3학년 때는 김영만, 양경민 쌍포가 건재하여 3옵션 정도의 위치였지만, 4학년 때 중앙대의 간판스타는 누가 뭐래도 김희선이었다.
이 농구대잔치가 끝난 후 김승기, 홍사붕이 졸업하면서, 공석이 된 주전 포인트 가드 자리를 꿰차면서 중심멤버로 자리잡고 4학년 때는 팀 주장을 맡는다. 3학년 때는 김영만, 양경민 쌍포가 건재하여 3옵션 정도의 위치였지만, 4학년 때 중앙대의 간판스타는 누가 뭐래도 김희선이었다.
3. 실업, 프로 선수 시절
삼성전자 농구단에 입단하며 역시 백업 가드로서 활약했다. 2000-01 시즌 당시 챔피언결정전에서 수비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팀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챔피언결정전 4차전에서 95-95 동점 상황에서 조성원의 공을 가로채 그대로 결승 레이업슛을 넣은 것. 큰 키를 바탕으로 한 수비력도 좋은 편이었고, 괜찮은 외곽슛을 가진 가드라서 비교적 오래도록 뛸 수 있었다.
FA 자격을 얻은 후, 억대 연봉을 받으며 SBS로 이적해 초반에 좋은 모습을 보였다가, 점차 비중이 줄어들면서 다시 식스맨이 되었다. 이적 첫 해에 평균 12.4점을 넣으면서 맹활약한 것. 그 뒤로는 황진원, 이정석 같은 신예 가드들이 들어오면서 비중이 줄어들었다. 사실 삼성에서도 FA 당시 잡으려고 했지만, 본인이 주전으로 뛰고 싶었기에 이적한 것. 쏠쏠한 가드로서 효용성이 높았다.[2]
그리고 SBS에서는 양희승의 연봉을 맞춰주는 상황에서 김희선을 샐리러캡을 줄이기 위해 현금 트레이드 형식으로 KTF로 보냈다. 부산에서 김희선은 말년 2년간 팀의 고참이자 식스맨, 주장으로 충실히 뛴 후, 다시 잡은 FA 때, 은퇴를 선언했다. 후배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라고.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KTF도 예우를 잘 해줘서, 2년 밖에 뛰지 않은 그에게 은퇴식을 열어 주고, 팀의 코치로 임명했다.
FA 자격을 얻은 후, 억대 연봉을 받으며 SBS로 이적해 초반에 좋은 모습을 보였다가, 점차 비중이 줄어들면서 다시 식스맨이 되었다. 이적 첫 해에 평균 12.4점을 넣으면서 맹활약한 것. 그 뒤로는 황진원, 이정석 같은 신예 가드들이 들어오면서 비중이 줄어들었다. 사실 삼성에서도 FA 당시 잡으려고 했지만, 본인이 주전으로 뛰고 싶었기에 이적한 것. 쏠쏠한 가드로서 효용성이 높았다.[2]
그리고 SBS에서는 양희승의 연봉을 맞춰주는 상황에서 김희선을 샐리러캡을 줄이기 위해 현금 트레이드 형식으로 KTF로 보냈다. 부산에서 김희선은 말년 2년간 팀의 고참이자 식스맨, 주장으로 충실히 뛴 후, 다시 잡은 FA 때, 은퇴를 선언했다. 후배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라고.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KTF도 예우를 잘 해줘서, 2년 밖에 뛰지 않은 그에게 은퇴식을 열어 주고, 팀의 코치로 임명했다.
4. 지도자 경력
2012년까지 kt의 2군 코치이자, 유소년 지도자로 활동하다가 9월 신세계 쿨캣을 인수해 새로 출범한 구단으로 고교 및 대학 선배인 조동기 코치가 감독으로 승격된 부천 하나 외환 여자농구단의 코치로 부임했으나 2013-14 시즌이 끝나고 성적 부진의 책임으로 물러난 조동기 감독을 따라 함께 사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