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 FIFA 월드컵 프랑스
| ||
Coupe du Monde 1938
1938 FIFA World Cup France™ | ||
대회기간
| ||
개최국
| ||
공인구
| 알렌(Allen)
| |
참가팀
| 15개국
| |
대회 결과
| ||
우승
| ||
준우승
| ||
3위
| ||
4위
| ||
수상
| ||
골든볼
| ||
골든슈
| ||
이전·이후 대회
| ||
1938년
프랑스 | ||
1. 개요
2. 개최지 선정
3. 지역예선
- 개최국 프랑스는 전 대회의 개최국인 이탈리아와 달리 지역예선을 거치지 않고 본선부터 편하게 축구를 했다. 그리고 전 대회 우승국인 이탈리아도 역시 지역예선을 거치지 않았다. 이 시스템은 2002 한일 월드컵까지 이어져오다 2006 독일 월드컵부터는 우승팀의 자동출전 자격이 폐지되었다.[5]
- 독일은 대회 직전에 오스트리아를 병합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소리는 즉, 1930년대 초반에 잘 나가던 ‘분더팀’ 오스트리아 선수들을 모두 흡수했다는 소리. 결국 이 대회는 당초 계획되어 있던 16개 팀이 아닌 15개 팀으로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퓨전의 결과는? 그리고 독일이 1라운드에서 탈락한 두 번의 월드컵 중 하나이다. 나머지 하나는 무려 2018년. 80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6]
4. 대회 엠블럼·마스코트·공인구
5. 경기장
월드컵이 열린 도시와 구장은 다음과 같다.(수도 파리를 제외하면 가나다순)
6. 대회 진행
6.1. /1라운드
왼쪽에 있는 진하게 표시된 국가는 8강 진출국.
6.2. 8강
6.3. 4강
왼쪽에 있는 진하게 표시된 국가는 결승 진출국.
8강부터의 자세한 내용은 /8강 이후 문서 참조.
경기
| 대진표
| 경기
| 대진표
| 경기
| 대진표
| 경기
| 대진표
|
A
| I
| M
| P
| ||||
B
| |||||||
C
| J
| ||||||
D
| |||||||
-
| |||||||
E
| K
| N
| |||||
F
| |||||||
G
| L
| ||||||
H
| O
| ||||||
- 이 표에서 1라운드의 경기에 붙어있는 번호의 순서는 팀의 성적이 아닌 경기 시작 순서에 따랐다.
7. 우승
8. 기록실
-
- 자책골
- 무득점팀
본국과 식민지의 동반 무득점
18경기에 84골이 터지면서 경기당 평균 4.67골을 기록했다.
9. 결과
순위
| 국가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득실
| 승점
| 비고
|
1
| 4
| 4
| 0
| 0
| 11
| 5
| +6
| 8
| 우승
| |
2
| 4
| 3
| 0
| 1
| 15
| 5
| +10
| 6
| 준우승
| |
3
| 5
| 3
| 1
| 1
| 14
| 11
| +3
| 7
| 3위
| |
4
| 3
| 1
| 0
| 2
| 11
| 9
| +2
| 2
| 4위
| |
5
| 3
| 1
| 1
| 1
| 5
| 3
| +2
| 3
| 8강
| |
6
| 2
| 1
| 0
| 1
| 4
| 4
| 0
| 2
| 8강
| |
7
| 3
| 1
| 1
| 1
| 5
| 5
| 0
| 3
| 8강
| |
8
| 3
| 1
| 1
| 1
| 5
| 12
| -7
| 3
| 8강
| |
9
| 2
| 0
| 1
| 1
| 4
| 5
| -1
| 1
| 1라운드
| |
10
| 2
| 0
| 1
| 1
| 3
| 5
| -2
| 1
| 1라운드
| |
11
| 1
| 0
| 0
| 1
| 5
| 6
| -1
| 0
| 1라운드
| |
12
| 1
| 0
| 0
| 1
| 1
| 2
| -1
| 0
| 1라운드
| |
13
| 1
| 0
| 0
| 1
| 1
| 3
| -2
| 0
| 1라운드
| |
14
| 1
| 0
| 0
| 1
| 0
| 3
| -3
| 0
| 1라운드
| |
15
| 1
| 0
| 0
| 1
| 0
| 6
| -6
| 0
| 1라운드
|
- 재경기 승패 결과는 순위에 반영하지 않는다.45페이지 참조
9.1. 수상
9.2. 베스트11
10. 기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8강전은 내용적으로 명승부였을 뿐 아니라, 양 팀 선수들이 보여준 페어플레이 정신에 힘입어 월드컵 역사에 긍정적인 기록을 남겼다.[29] 프랑스 선수들은 승리한 이탈리아 선수들과 포옹을 나누며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했고, 홈 관중들 역시 프랑스 국기와 이탈리아 국기를 양 손에 들고 흔들며 38년 대회를 '평화의 제전' 분위기로 몰고 갔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우승하고 난 1년 후. 세계는 대대적인 전쟁에 휩싸이게 된다. 그로 인해 월드컵이고 뭐고 전부 중단되었고 다음 대회의 개최까지는 12년이 걸리게 된다.
그리고 이후 60년 뒤 프랑스에서 다시 월드컵을 개최하게 됐다. 또, 이 월드컵에서 개최국인 프랑스가 사상 최초로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었다.게다가 앞서 8강전에서 다시 이탈리아를 만나 승부차기까지 간 끝에 그 승부차기에서 이겨 1938년의 패배도 설욕했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우승하고 난 1년 후. 세계는 대대적인 전쟁에 휩싸이게 된다. 그로 인해 월드컵이고 뭐고 전부 중단되었고 다음 대회의 개최까지는 12년이 걸리게 된다.
그리고 이후 60년 뒤 프랑스에서 다시 월드컵을 개최하게 됐다. 또, 이 월드컵에서 개최국인 프랑스가 사상 최초로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1] 하지만 교통도 교통이지만 아프리카는 현존하는 대부분 국가들이 식민지였고, 아시아도 거의 식민지가 많았고 또한 축구 인프라와 수준이 너무 떨어지긴 했다.[2] 쥘 리메가 직접 FIFA를 압박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FIFA 위원들이 쥘 리메의 노고를 생각하는 뜻에서 23표 중 19표를 주었다.[3] 세네갈 쇼크 때문이 아니라 대회 시작 전에 이미 자동출전권을 폐지하기로 결정되어 있었다.[4] 다만, 월드컵 조별리그 기준으로 보는 경우에는 최초의 탈락이다.[5] 세네갈 쇼크 때문이 아니라 대회 시작 전에 이미 자동출전권을 폐지하기로 결정되어 있었다.[6] 다만, 월드컵 조별리그 기준으로 보는 경우에는 최초의 탈락이다.[7] 또 다른 이름은 스타드 올랭피크 드 콜롱브. 파리에는 월드컵을 개최한 구장이 2개가 있다. 이곳은 1924년 올림픽 당시 메인 스타디움이었다. 또한 1938년 월드컵의 결승전도 이곳에서 개최되었다.[8] 1897년에 개장된 매우 역사 깊은 구장이다. 1932년과 1972년에 대대적인 개보수를 거쳤으며, 1972년엔 거의 새로 짓다시피한 대공사를 거쳤다. 현재 파리 생제르맹 FC의 홈구장이다.[9]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의 홈구장. 1998년 월드컵 당시 우리나라가 네덜란드에게 떡실신당했던 구장이 바로 이 곳이고, 데니스 베르캄프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유명한 쓰리터치 결승골을 성공시켰던 곳도 이 곳이다.[10] 지롱댕 보르도의 홈구장. 현재의 이름은 스타드 샤방-델마. 자크 샤방-델마는 1947년부터 1995년까지 무려 48년간이나 보르도 시의 시장을 지낸 정치인으로 이 사람이 사망한지 1년 후 이 사람의 이름이 구장에 헌정되어 현재의 스타드 샤방-델마가 되었다.[11] 또 다른 이름은 스타드 올랭피크 드 콜롱브. 파리에는 월드컵을 개최한 구장이 2개가 있다. 이곳은 1924년 올림픽 당시 메인 스타디움이었다. 또한 1938년 월드컵의 결승전도 이곳에서 개최되었다.[12] 1897년에 개장된 매우 역사 깊은 구장이다. 1932년과 1972년에 대대적인 개보수를 거쳤으며, 1972년엔 거의 새로 짓다시피한 대공사를 거쳤다. 현재 파리 생제르맹 FC의 홈구장이다.[13]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의 홈구장. 1998년 월드컵 당시 우리나라가 네덜란드에게 떡실신당했던 구장이 바로 이 곳이고, 데니스 베르캄프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유명한 쓰리터치 결승골을 성공시켰던 곳도 이 곳이다.[14] 지롱댕 보르도의 홈구장. 현재의 이름은 스타드 샤방-델마. 자크 샤방-델마는 1947년부터 1995년까지 무려 48년간이나 보르도 시의 시장을 지낸 정치인으로 이 사람이 사망한지 1년 후 이 사람의 이름이 구장에 헌정되어 현재의 스타드 샤방-델마가 되었다.[15]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 본선 출전국.[16]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 본선 출전국.[17]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어 아예 없어졌기 때문에 스웨덴은 자동으로 2라운드에 진출.[18]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어 아예 없어졌기 때문에 스웨덴은 자동으로 2라운드에 진출.[19] 5경기는 2경기의 재경기[20] 5경기는 2경기의 재경기[21] 9경기는 1경기의 재경기[22] 9경기는 1경기의 재경기[23] 10경기는 5경기의 재경기[24] 10경기는 5경기의 재경기[25] 같은 시간에 치러졌던 다른 1라운드 재경기인 스위스와 독일의 경기에서도 역전승이 나왔지만 이 경기가 시간상으로 역전이 더 빨리되었다.[26] 같은 시간에 치러졌던 다른 1라운드 재경기인 스위스와 독일의 경기에서도 역전승이 나왔지만 이 경기가 시간상으로 역전이 더 빨리되었다.[27] 풀네임은 레오니다스 다시우바. 브라질에서 처음으로 월드컵 역사에 제대로 이름을 남긴 레전드. 체격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탄력을 이용하여 공중전에 매우 강한 선수였으며 별명이 흑진주, 고무인간이었다. 오버헤드킥으로 대표되는 바이시클 킥을 전 세계에 알린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28] 이탈리아의 1938년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자 역대 세리에 A 최다 득점 기록을 가진 전설적인 스트라이커이다[29] 사실 이런 일들을 포함하여 월드컵으로 세계 평화에 이바지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은 덕분에 쥘 리메는 노벨평화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전 대회에서 베니토 무솔리니가 월드컵을 파시즘 선전에 악용하는 바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