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일본의 두 번째 연호(元号). 시기는 율리우스력 기준 650년~654년.
하쿠치는 흰(白) 꿩(雉)이라는 뜻으로, 아나토노쿠니(穴門国)[1]의 고쿠시(国司)[2] 구사카베노 시코부(草壁醜経)가 천황에게 흰 꿩을 헌상한 것을 기념하여 개원하였다. 당시 일본에서는 흰 꿩은 길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654년 11월에 제36대 코토쿠 덴노가 승하하여 사용이 종료되었으며, 그 후로는 연호를 쓰지 않고 종전처럼 육십갑자 기년법을 쓴 것으로 보인다. 제40대 덴무 덴노 즉위 14년 뒤, 연호 사용 중단 32년 만인 686년에 슈초(朱鳥) 연호가 개원했다.그나마도 2달짜리 연호였다
하쿠치는 흰(白) 꿩(雉)이라는 뜻으로, 아나토노쿠니(穴門国)[1]의 고쿠시(国司)[2] 구사카베노 시코부(草壁醜経)가 천황에게 흰 꿩을 헌상한 것을 기념하여 개원하였다. 당시 일본에서는 흰 꿩은 길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654년 11월에 제36대 코토쿠 덴노가 승하하여 사용이 종료되었으며, 그 후로는 연호를 쓰지 않고 종전처럼 육십갑자 기년법을 쓴 것으로 보인다. 제40대 덴무 덴노 즉위 14년 뒤, 연호 사용 중단 32년 만인 686년에 슈초(朱鳥) 연호가 개원했다.
2. 특징
3. 주요 사건
이하는 전부 율리우스력을 사용한다.
- 원년 (650)
- (개원 전): 3월 16일에 아나토노쿠니(穴門国)의 고쿠시(国司) 구사카베노 시코부(草壁醜経)가 흰 꿩을 헌상했다.
- 3월 22일: 하쿠치(白雉) 연호 개원. 아나토노쿠니의 조역(調役; 공물 헌상)이 3년간 면제되었다.
- 3년 (652)
- 4월: 반전수취(班田収授)가 완료되고 호적(戸籍)이 작성되었다.
- 6월 2일: 큰 수해가 발생하여 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경작지도 크게 피해를 입었다.
- 4년 (653)
- 5년 (654)
- 2월: 다카무코노 구로마로(高向玄理)가 제3차 견당사(遣唐使)로 파견되었다. 2차 때와 마찬가지로 당의 한반도 침략에 관한 정세에 대응하려는 목적도 있었다는 설이 있다.
[1] 후일의 나가토노쿠니(長門国). 현재의 야마구치현 서부.[2] 쿠니의 행정관으로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3] 통칭 '전기 나니와 궁(前期難波宮)'. 지금의 오사카시 주오구에 위치했다. 터 일부는 나니와노미야 사적공원(難波宮史跡公園)이 되어 있다.[4] 전 수도[5] 퇴위 이후 스메미오야노미코토(皇祖母尊) 상황으로 불렸다.[6] 통칭 '전기 나니와 궁(前期難波宮)'. 지금의 오사카시 주오구에 위치했다. 터 일부는 나니와노미야 사적공원(難波宮史跡公園)이 되어 있다.[7] 통칭 '전기 나니와 궁(前期難波宮)'. 지금의 오사카시 주오구에 위치했다. 터 일부는 나니와노미야 사적공원(難波宮史跡公園)이 되어 있다.[8] 전 수도[9] 전 수도[10] 퇴위 이후 스메미오야노미코토(皇祖母尊) 상황으로 불렸다.[11] 퇴위 이후 스메미오야노미코토(皇祖母尊) 상황으로 불렸다.